231. 분수(噴水)
직지사(直指寺) 초입에 이르면 김천시가 조성한 조각공원이 있습니다. 중소도시의 공원으로는 조경이나 전시된 작품들이 눈길을 끕니다. 공원 한가운데는 또 멋진 분수대가 있어서 저녁 시간을 잘 맞추기만 하면 화려한 조명아래 펼쳐지는 분수 쇼가 볼거리 입니다. 컴퓨터에 입력된 자료에 의해 이루어지는 각기 다른 물줄기들이 음악에 맞추어 이루어 내는 변화무쌍한 조화는 한 여름의 더위를 잊게도 하고 찌든 도회생활의 분분한 마음을 씻어 줄 만 합니다. 그래서 이 주변엔 늘 감탄사들이 분수처럼 터지고 있습니다.
나도 이들 틈에 끼어 쉼 없이 솟구치는 물줄기들을 바라봤습니다. 그런데 마치 하늘로 오를 듯 높이 치솟던 물줄기는 결국 하늘을 오르지 못하고 땅으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높이 오른 물줄기 일수록 그 떨어짐이 급하고 더 무참했습니다. 물줄기가 떨어진 자리는 둔탁한 물소리와 함께 뽀얀 물보라가 일어나고 바닥에 떨어진 물들은 다시 다투듯 오르는 중이었습니다. 끝없이 오르려다 떨어지는 물, 물, 물....
분수를 구경하는 많은 사람들. 그들 중에 솟구치는 물줄기 대신 땅으로 곤두박질하는 물줄기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얼마일까요? 치솟는 분수에 보내는 환호대신 떨어져 내리는 물의 아픔을 아는 이는 있을까요?
말없이 분수를 바라보다가 이룰 수 없는 끝없는 욕망을 향해 달리는 우리를 보는 듯 했습니다. 하기야 위로 향하려는 심리는 누구나 가지는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이런 욕구가 없다면 인류의 문화는 정지될 수밖에 없었겠지요. 하지만 이 욕심이 조절이 안 되니 문제입니다. 우리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은 자신의 분수(分數 )를 알지 못하고 남보다 “더 높이, 더 많이”라는 허욕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올라가면 언젠가 내려와야 한다는, 너무 높이 올라가면 내려올 때 더 힘들다는 사실을 안다면 높이 오르는 일이 모두 성공은 아니라는 걸 것 깨닫습니다.
분수대 옆에 선다/구호처럼/높이/보다 더 높이/일곱 빛 무지개를 드리우며/
오르던 수많은 물줄기/그 화려한 시샘들이/풀이 꺾여 어이없이 내려오고 있구나/
받쳐 든 우산 위로 주룩주룩 비는 내리고/다시 내린 빗방울들이 모여 흐르는/
길을 바라보노라면/오!/저기 발아래/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이어져 흐르는/
빗물의 노래/합창이 어우러지는/ 개울이 보인다.
‘비오는 날’이란 제목의 제 시입니다.
땅으로 내리는 비와 하늘로 오르는 분수(噴水)의 묘한 대비를 보면서 내 안에 끊임없이 오르려는 분수(分數)의 노즐을 느슨하게 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비에 젖은 풀과 나무처럼 조금씩 고개를 수그리는 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하루입니다.
2009.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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