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 나무 곁에서
짠한 햇살에 봄이 잉잉거리는 나무 곁에 섰습니다. 나무는 언 듯 보면 서로 비슷하게 생겼지만 꽃망울이 부풀어 오를 때면 빛깔만 봐도 봄의 전령사 벚나무, 살구나무, 복숭아나무를 구분합니다.
같은 날 심어 10년을 함께 자랐으니 서로가 많이 닮을 터인데 어떻게 각각 다른 꽃을 피울까?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 같은 엉뚱한 생각을 합니다.
그 나무 아래로 저희들 끼리 어울려 묶음을 이룬 이름 모를 풀꽃들. 도대체 이 다양한 무리들이 어디 있다가 언제 여기에 왔는지요.
셋 중에서 가장 먼저 축제를 시작하는 벚꽃, 눈부시도록 하얀 빛이 오히려 부끄러워 꽃 안 자리만 살짝 붉은 눈시울이 정겹지요. 그 뒤를 이어 피는 살구꽃은 분홍 빛깔 중에도 고운 빛만 다 모았는지 번지듯 화사하게 찍은 볼연지가 해맑아 곱습니다. 셋 중에서 늦을세라 다투어 피는 복숭아꽃은 장난 끼 많은 소녀들의 웃음소리 같습니다. 한 자락 펼쳐놓은 아지랑이 속으로 분홍 속살까지 다 드러내놓고 깔깔대는 천연스러운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까지 물들여 좋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벚꽃은 저보다 더디 피는 살구나무나 복숭아를 보고 우쭐대지 않지요. 살구나무도 벚꽃에게 시샘의 눈길을 보내지 않습니다. 복숭아는 오히려 먼저 핀 꽃들에게 ‘멋지다’, ‘장하다’, ‘수고 했다’고 신나게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나무들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지만 서로 닿아도 좋을 만큼 가슴을 열어 놓습니다. 아울러는 서로가 바람을 막아도 주고 햇살을 골고루 나누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찬란한 봄의 한가운데 선 나무에도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것도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말라버린 가지입니다. 긴 겨울을 견디지 못해 생명력을 잃은 것들입니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요?
그랬습니다. 이들이 이 봄을 봄이게 하는 건 어제의 생명이 아닌 오늘의 생명력, 다시 말해 저마다 지금 살아 있음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때를 분명히 알고 자기의 자리를 지키며 어떤 환경에서도 제 모습을 잃지 않은 의지였습니다.
나무 곁에 섰습니다. 꽃들의 성찬입니다. 내 마음까지 짠한 걸 보니 내 마음도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내 발바닥에서부터 머리까지 물오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래서인지 하늘로 치켜 든 내 손 열 손가락에서도 툭툭 꽃들이 필 것 같다는 착각을 합니다.
2010.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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