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학/산문

270. 스타킹을 신는 여인

빛마당 2012. 1. 17. 21:03

270. 스타킹을 신는 여인

예배당 안에 때 아닌 노랫가락과 유행가 소리로 가득합니다.

신나게 손뼉을 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표정이 마치 잘 핀 살구꽃처럼 환합니다.

첨엔 조금 낯선 풍경이었지만 교회 부설 장수대학이 해가 갈수록 모두에게 익숙하고 편해 졌습니다.

오늘도 노래강사는 신나게 최신 유행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강사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기 시작하자 모두 한 마음이 되어 어깨춤까지 덩실덩실 춥니다.

이를 곁에서 바라보는 이도 흥이 납니다.

한바탕 노래 마당을 펼치던 강사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활짝 웃습니다.

그 미소가 자신은 물론 모두를 또 한 번 즐겁게 합니다.

그런데 그 미소보다 그녀의 이야기가 더 멋있었습니다.

“여러분. 전 오늘 아침 행복 했거던요. 궁금하지 않으세요?”

“왜요?”

“오늘 아침 나는 스타킹을 신었거던요.”

“스타킹을 신는 일이 뭐가 행복해요?”

이야기는 그랬습니다. 주부의 아침은 분주합니다.

가족들 다 챙겨 주고 나야 겨우 내 시간입니다.

거기다 노인대학 시간에 맞추려면 괜히 마음이 더 바쁩니다.

허둥대며 스타킹을 신는데 그만 스타킹 올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다시 새것으로 갈아 신으면서 올이 터지듯 자신도 모르게 울화도 터졌습니다.

‘괜히 강사는 맡아 가지고...’

퉁퉁 부은 마음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그러나 이 곳 저 곳에서 만나는 이들의 인사에 금방 마음이 풀어 진겁니다.

“아이고 우리 교수님. 예쁘기도 하셔라.”

함박꽃을 피우듯 환한 얼굴로 인사를 하는 어르신들. 덥석 손을 잡으며 한 주간동안 보고 싶었다며 반가워하는 그들을 보며 어느새 퉁퉁 부은 마음이 눈 녹듯 갈아 앉게 된 것입니다.

‘그래, 누가 나 같은 사람을 기다려 줄까.

그래도 나를 기다려 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내가 오늘 스타킹 신을 기회가 없었다면 어찌 이들을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하니 말썽을 부리던 스타킹이 오히려 고맙게 느껴졌단다.

“여러분이 계셔서 제가 행복합니다.”

고백하듯 말하는 그녀의 눈가에 웃음과 함께 달린 맑은 이슬방울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은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순간부터 그 자리에 행복이라는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그렇죠?

2012.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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