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학/산문

소원 빌기

빛마당 2012. 6. 13. 21:21

 

 

 

273. 소원(所願)빌기

‘소원’의 사전적 의미는 ‘바라고 원함’입니다.

‘소원 빌기’란 바라고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도록 정성을 모으는 일인데 이러한 소원 빌기는 동서고금(東西古今), 남녀노소(男女老少)는 물론 계층을 가리지 않고 바라고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 국민에게 소원을 물으면 대부분 ‘통일’이라고 말 합니다.

통일은 마치 숙명처럼 우리를 하나로 묶는 공통분모이기도 합니다.

‘소원 빌기’ 하면 떠오르는 그림이 있습니다.

이른 새벽, 장독대 위에 정화수 한 그릇 떠 놓고 두 손이 다 닳도록 비는 우리들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어머니들이 그토록 정성을 다해 빌던 그 소원은 무엇일까요?

자신의 안녕과 건강이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어머니의 소원은 오직 하나, 가족의 건강과 행복, 그리고 자녀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일이었습니다.

기회가 있어서 안동 하회마을을 찾았습니다.

하회마을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곳엔 하회 류 씨 입향조(入鄕祖)가 심었다는 600년 된 느티나무가 세월을 견디며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일본의 신사에나 있음직 한 풍경이 새롭게 생겼습니다.

새끼를 아주 가늘게 꼬아 느티나무를 두르고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이른바 ‘소원 빌기’ 메모를 매달게 한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곳에 소원을 빌었는지 가느다란 새끼줄들이 느티나무 아름만큼이나 굵게 감겨져 있습니다.

이렇게 매 단 메모들은 정월 대보름이 되면 달집태우기를 할 때 함께 태워 소원을 하늘로 올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곳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참으로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 많은 소원들 과연 무엇이었을까?

초등학생은 로봇과 같은 장난감을, 중․고등학생은 좋은 학교 진학을, 대학생이나 청년들은 취업이나 좋은 배우자 만남을, 그리고 어른들은 대부분은 주식 대박이나 로또 대박을 꿈꾸는 소원이 이었다는 겁니다. 부모님들은 여전히 가정의 안녕과 자녀들의 건강과 행운을 빌고 있는데 정작 부모님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내용이 찾아보기 힘들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설이나 추석 명절이 끝날 쯤 이면 고향을 찾은 자녀들에게 하나라도 더 챙겨 보내려는 우리네 고향 풍경을 봅니다.

내 창고는 점점 비워도 자녀들 창고를 더 채워주지 못해 아쉬워 멀어져 가는 차 꽁무니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선 우리네 부모님들의 모습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같은 60대를 일러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지막 세대요, 자식에게 버림받는 첫 세대’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600년 동안 한 자리를 지켜온 느티나무에게 제 혼자 마음으로 묻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어떻게 해야 제 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무슨 소원을 비는지 메모를 쓰는 곳에는 사람들이 줄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2012. 6. 9

'나의 문학 >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275. 가족  (0) 2012.06.29
가족  (0) 2012.06.13
세월과 변화  (0) 2012.06.13
271. 고등어와 꽃바구니  (0) 2012.01.17
270. 스타킹을 신는 여인  (0) 2012.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