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학/산문

275. 가족

빛마당 2012. 6. 29. 13:39

275. 지레짐작

우리말에 ‘지레짐작’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지레’와 ‘짐작’의 합성어로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 또는 어떤 기회나 때가 무르익기 전에 미리 넘겨짚어 어림잡아 헤아림’을 말합니다.

우리는 보통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대부분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만으로 충분한 고려를 하지 않고 판단할 때가 더러 있습니다.

그리하여 아주 사소한 일에 괜한 오해와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 이유는 내 경험이나 생각은 지극히 주관적이어서 객관성이 부족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마침내 대인관계에서는 신뢰가 무너지기도 하고 최악의 경우는 적대적인 관계까지 이어지는 경우를 종종 경험합니다.

모처럼 지인들과 산행을 했습니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어서 평일에도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만나는 이들마다 인사를 나누며 기분 좋게 걸었습니다.

요즘 산길에서는 서로 마주치는 이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반갑게 인사를 나눕니다.

산 중턱을 오를 즈음 우리 일행 앞에 한 사내가 혼자 걸어오고 있습니다.

우리 일행 모두 아주 다정하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사내는 단 한마디의 답례도 하지 않고 그냥 스쳐 지났습니다.

산행을 하면서 이런 경우는 드물다 보니 모두 기분이 언짢았나 봅니다.

하여 예의가 없다느니, 무식하다느니, 산을 오를 자격이 없다느니...그 사내를 안주삼아 한 마디씩 하다가 어느 듯 정상에 올랐습니다.

정상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으려고 하는데 언제 다시 되올라 왔는지 그 사내가 우리 뒤를 따라와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도시락을 펴는 우릴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머뭇거리는 이상한 행동에 그가 벙어리라는 걸 안 것은 한참 후였습니다.

‘아차, 우리가 실수를 했군요.’ 누군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를 안주 삼았던 우리 일행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 사내를 손짓으로 불러 식탁에 초대했습니다.

우리의 호의에 굳었던 그의 표정이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점심 식사가 다 끝나갈 무렵엔 그래도 몸짓과 표정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고 지레짐작으로 가졌던 오해와 쑥스러움도 조금씩 해소되고 있었습니다.

오해가 풀어지니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도 달라졌습니다.

산을 내려오면서 모두 지레짐작에 대해 한 마디씩 했습니다.

올라 갈 땐 그가 맛없는 안주거리였었는데 내려올 때는 오히려 침묵이 던져 준 교훈 하나를 저마다 가슴속에 되 세기고 있었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한 사람을 통해 스스로를 되돌아 본 유익한 산행이었습니다.

2012. 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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