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문화/상주문화 25호

상주학.현대규방가사(2)‘회혼가’연구

빛마당 2016. 3. 30. 21:36

현대규방가사(2)‘회혼가’연구

상주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상주고등학교 교사

권 택 룡

Ⅰ. 서론

1. 연구의 방향과 방법

가사(歌辭)는 여말선초에 정립된 문학 장르로, 조선초기와 중기에는 양반 사대부들이 유교 이념과 자연 속에서의 풍류를 드러내는 작품을 많이 지었다. 그러던 것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박인로의 ‘누항사’와 같이 현실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 작품으로 그 내용이 변화되었다. 대표적인 것으로 기행가사와 규방가사 등이 조선 후기 가사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때부터의 가사를 근대가사라고 한다.

근대가사는 형식적으로도 많이 변모하였다. 초기에는 비교적 짧고 마지막 행은 시조와 같은 3․5․4․3의 음수율을 지닌 정격가사(正格歌辭)가 지어졌으나, 후기에는 매우 길고 마지막 행도 정격가사와 같은 음수율을 더 이상 지키지 않게 되었다. 이를 변격가사(變格歌辭)라 한다.

필자가 분석한 작품은 1928년에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에서 지어진 ‘회혼가’이다. 회혼은 결혼 60주년을 맞이한 부부가 모두 생존하였을 때 이를 기념하기 위해 혼례를 한 번 더 치르는 경우를 말함이다. 이는 의술이 발달한 현재는 많았지만, 90여 년 전인 20세기 초반에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이를 위한 연구의 방법으로 우선 이 작품이 지어진 지역의 전반적인 특징을 조사하고, 가 두루마리를 소장하고 계신 분과의 인터뷰를 통해 집안에 대한 이야기, ‘회혼가’의 내용에 대한 이야기, 향유 방식 등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또 그 가사의 내용과 형식상의 특징을 자세히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이들 작품이 지닌 문학적 의의를 진단해 보았다.

이외 규방가사와 규방가사 연구의 방향과 방법, 연구사 등은 필자의 졸고 ‘현대규방가사연구(1)’(상주문화 24호)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Ⅱ. ‘회혼가’가사 개관

1. 작품의 주제적 양상

‘회혼가’는 ‘모동면지’에 실린 가사 작품으로 그 책 첫째 쪽에 회혼가에 대한 정보가 나온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작가는 김이섭씨로 휘(諱) 응규의 손자이지만 출계를 하여 종손(從孫)이 되었다. 호는 제료(霽潦)이다. 회혼(回婚)을 맞으신 분은 김응규(金應奎)로 상산(商山) 김씨(金氏)이다. 자(字)는 사달(士達)이며, 거주하는 곳은 상주 모동(牟東) 송포(松浦)이다. 향년 팔십 오세이며, 신해(辛亥)생이다. 배(配-아내)는 연안(延安) 이씨(李氏)로 향년 팔십 삼세이다.

비록 출계하였지만 친손자인 이섭이 그 할아버지 응규의 경사인 회혼식을 기록하였다. 평균 수명이 길지 않았던 90여 년 전에는 부부가 혼인을 하여 60년을 같이 해로하기가 쉽지 않았다. 또한 이 일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를 치르기 위해서는 경제적 여유와 집안의 단합된 모습, 신분을 비롯한 합당한 제반 조건이 필요하였을 것이다. 이런 것을 모두 갖추어야 이런 대규모 행사가 가능하였을 것이다.

작자 김이섭은 자신과 같은 항렬인 여동생이나 사촌 여동생의 입장에서 가사를 서술하고 있다. 여성 화자(話者)를 내세운 이유는 규방가사의 주된 독자층이 여성이며, 남성은 주로 한시를 감상하였기 때문이라 추측된다. 필자가 이전에 수집한 공검 지역의 규방 가사 5편 중 4편이 남성이 지었으며, 주된 독자는 여성이었다. 또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여성 화자는 남성 화자에 비해 정서를 보다 절실하게 전하기가 쉽다는 점이다. 이 글의 주요 내용인 회혼을 맞이한 당사자나 주변 사람들의 감상(感想) 등은 정서(情緖)적인 면이라 할 수 있다. 독자가 주로 여성인 점, 정서의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서 비록 남성이 지었지만 여성 화자를 내세운 것으로 짐작된다. 내용은 크게 세 부분이다. 첫 번째 부분은 오래 건강하게 사는 것이 쉽지 않은데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장수하셔서 매우 좋은 일이라고 예찬하고 있다. 또 절기가 좋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자식을 앞세운 입장에서 이 행사가 당치않다는 당사자의 말과 이를 듣고 슬퍼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나와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어 긴장을 유지하게 한다. 아무리 좋은 일도 모든 것이 다 좋을 수는 없다는 평범한 가르침을 주는 것 같다.

자식과 손자들의 간청 끝에 치른 회혼식 장면이 두 번째 내용이다. 두 노인이 결혼식을 다시 치르기 위해 단장을 하고 복식을 갖추고 여러 자식과 손자, 조카, 사돈들이 가마를 메거나 상자를 지거나 길 안내를 하거나 후행(後行)을 하는 모습을 화려하고, 떠들썩하고, 분주하고, 해학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 구경꾼들의 모습, 주변 자연 풍경 묘사, 혼례식의 광경 등의 모습도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할 정도로 매우 자세하고 실감이 나는 사실적(寫實的) 장면이다. 이 중간 부분이 가장 길고 내용도 핵심적이고 작가의 역량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마지막 부분은 아쉬움을 토로하는 내용이다. 행사가 미흡해서가 아니라 너무나 화려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언제 이렇게 모든 자손이 모여 다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고 이런 행사를 치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슬픔을 서로 느끼며 마지막 술잔을 나누는 석별의 정을 나타내고 있다. 집안의 구심점인, 오늘 행사의 두 주인공인 조부모님의 만수무강을 빌며 특히 화자와 같은 여성인 할머니가 사십 여명의 자녀와 손자를 두었지만 혼인을 하면 부모와 멀어지는 한이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듯 이 작품의 내용은 크게 회혼식 행사 의의, 모습, 감상으로 이야기 할 수 있다.

2. 지역적 특징

가사가 수집된 지역은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상판1길 39-18번지 일대(구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상판2리 769번지, 一名 松浦)’이다. 상주시 모동면은 상주시청으로부터 서남쪽 30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북쪽으로 백화산(해발 933m)과 남으로 지장산(해발 772m) 동으로 백학산(해발 618m)에 둘러쌓여 형성된 산간분지로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추풍령면과 공성면, 모서면이 접해 있으며, 해발 200~400m 중산간지대로 비옥한 토질과 일교차가 심하여 포도를 비롯한 과수재배에 적합한 지역이다.

상주 모동 송포(松浦) 마을은 상산김씨(商山金氏) 송포파(松浦派)의 세거지(世居地)이다. 상주의 향리(鄕吏)를 지낸 시조(始祖) 김조(金祚) 이래 주요 후손은 성균진사(成均進士)인 11세(世) 광두(光斗), 통정대부(通政大夫)를 지낸 18세 우하(遇河)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집성촌이다. ‘회혼가’의 주인공인 응규는 19세(世)이며, ‘회혼가’를 지은 이섭은 21세(世)이다.

그리고 필자가 방문한 적이 있는 송포 마을의 자연 경관을 소개한다. 상주의 서쪽에는 모동면 송포 마을이 있는데, 그곳 주변은 경치가 아주 말끔하고, 밝으며, 산을 뒤에 두고, 물을 앞에 둔 배산임수형의 비교적 큰 마을이다. 마을 뒤의 산은 높고 부드러우며, 물은 풍부하고, 조용하게 흐르고 있었다. 또 아름드리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서 옛 전통 마을의 풍수적 길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땅은 넓고 토질은 비옥하며 길이 잘 닦여 있다. ‘회혼가’의 배경이 된 20세기 초반은 물론 상산김씨 송포파의 입향조(入鄕祖)가 들어와 살았던 시기에도 자연 경관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입향조는 이곳이 상주시에서는 비교적 멀어서 풍속이 옛날 그대로이며, 인심이 넉넉하여 밭을 갈고 글을 읽어도 욕심내지 않고, 그 일에 그저 충실하기에 딱 맞은 곳이라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상산김씨 송포파는 이곳에서 대대로 살아오며 근본을 닦고, 덕을 세우게 되었던 곳이다. 자신들의 분파를 자신들의 마을 이름을 빌려 송포파라 이름한 것부터가 상산김씨 일족(一族)이 이곳을 세거지로 하여 오래 살아왔음을 증명한다.

3. 후손 인터뷰

‘회혼가’ 의 주인공 김응규의 증손(曾孫)이며 ‘회혼가’를 지은 응규의 손자 이섭의 아들이 되는 김정기씨와 상산김씨의 가계(家系)와 ‘회혼가’의 전반적인 내용에 대하여 인터뷰를 하였다.

먼저 ‘회혼가’와 연관된 가계를 여쭈어 보았다.

우리 상산김씨 송포파는 고려 때 시중(侍中)을 지내신 휘(諱) 조(祚) 할아버지를 시조로 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 직계(直系)를 말씀드리면 성균진사를 지내시고 임진왜란 때에 창의(倡義)하신 11세손 일묵재 휘 광두(光斗) 할아버지, 통정대부를 지내신 18세손 휘 우하(遇河) 할아버지, 그분의 아드님이고 ‘회혼가’의 당사자이신 19세손 휘 응규(應奎)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렇게 대단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시조 이래 끊이지 않고 학자와 충신을 길러낸 집안의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평화로울 때는 그 지방 사람들과 융화하여 안분지족하며, 학문하고, 농사짓는 모습이고, 국가가 위기에 닥치면 적극적으로 분발하여 이를 바로잡는 데에 힘쓰는 일묵재 선생같은 자랑스러운 모습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계속하여 ‘회혼가’와 연관된 가계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그리고 ‘회혼가’에도 많이 언급되는 후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를 알아야 작품의 전말(顚末)을 알 수가 있습니다. ‘회혼가’의 당사자이신 19세손 휘 응규(應奎) 할아버지께서는 5형제를 두셨습니다. 첫째가 저의 할아버지인 휘 병후(秉厚)로 택호(宅號)가 장천이며, 백부(伯父)님의 양자로 들어가셨습니다. 둘째는 휘 병건(秉健)으로 택호는 사천이며 삼종숙(三從叔)님의 양자로 들어가셨습니다. 셋째는 휘 병식(秉式)으로 택호가 낙동이며 넷째는 휘 병직(秉直)으로 택호가 봉대이며, 다섯째는 병철(秉轍)로 택호가 회룡입니다.

‘회혼가’의 당사자인 응규는 아들을 많이 두었다. 그래서 형님이나 삼종숙에게 첫째와 둘째 아들을 양자로 보내게 되었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하여도 집안의 대를 잇는다는 의식이 강하여 이렇게 출계(出系)를 한 경우가 많았다. 응규의 실질적인 대를 잇는 자식은 셋째 병식이 된 것이다.

다음은 응규의 손자들에 대한 설명이다.

첫째, 휘 병후의 아들은 21세손 휘 이섭(理燮)으로 택호(宅號)는 대안(또는 수산)이며, 저(22세손 정기)의 선친이십니다. 첫째 딸은 황봉연(黃鳳淵, 長水人)에게 출가하였고, 시댁은 너러실입니다. 둘째 딸은 고상형(高相亨, 開城人)에게 출가하였고, 시댁은 녹문입니다.

둘째, 휘 병건의 아들은 휘 규섭(珪燮)으로, 택호는 삼봉입니다. 첫째 딸은 성현(成俔, 昌寧人)에게 출가하였고, 시댁은 홈실입니다. 둘째 딸은 김준영(金俊永, 順天人)에게 출가하였고, 시댁은 소양입니다.

셋째, 휘 병식의 아들은 휘 흥섭(興燮)으로 택호는 모산입니다. 첫째 딸은 김도진(金道鎭, 永山人)에게 출가하였고, 시댁은 모란입니다. 둘째 딸은 김동대(金東大, 順天人)에게 출가하였고, 시댁은 소양입니다. 셋째 딸은 조성선(趙誠選, 豊壤人)에게 출가하였고 시댁은 송촌입니다. 넷째 딸은 박일보(朴日甫, 密陽人)에게 출가하였고, 시댁은 인천입니다.

넷째, 휘 병직의 아들은 휘 기섭(琪燮)입니다. 첫째 딸은 윤지만(尹志萬, 坡平人)에게 출가하였고, 시댁은 연흥입니다. 둘째 딸은 김태정(金兌貞, 瑞興人)에게 출가하였고, 시댁은 진주입니다. 셋째 딸은 황정주(黃楨周, 長水人)에게 출가하였고, 시댁은 수봉입니다.

다섯 째, 휘 병철은 첫째 아들이 휘 정섭(正燮)으로 택호는 상계입니다. 둘째 아들이 휘 호섭(浩燮)으로 택호는 평산입니다. 셋째 아들이 휘 인섭(仁燮)으로 택호는 덧질입니다. 넷째 아들이 휘 진섭(晉燮), 다섯째는 휘 해섭(海燮), 여섯째는 휘 영섭(暎燮)입니다. 첫째 딸은 신학래(辛學來, 靈山人)에게 출가하였습니다.

출계한 첫째와 둘째까지 합하여 5형제를 둔 ‘회혼가’의 당사자 휘 응규는 그 손자와 손녀가 모두 22명이다. 증손(曾孫)이나 외손(外孫)을 합치면 주인공의 자손은 100여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이며, 이중 절반 정도의 자손만 왔다 하더라도 성대하고 다복한 가족 행사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다음으로 작품을 짓고 향유한 것에 대하여 여쭈어 보았다.

작품을 지은 것은 저의 선대이신 21세 휘 이섭이십니다. 회혼하신 휘 응규 증조부의 경사를 맞아 치른 회혼식의 의의와 장면, 감상 등을 누이들의 입장에서 쓰셨습니다. 이를 짓고 정리하여 두었는데, 당신을 비롯한 집안의 여인들과 동네의 여인들이 주로 읽거나 필사하여 돌려보곤 했습니다. 상주와 모동면이 떠들썩할 정도의 큰 행사이고, 경사이었기에, 이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선친은 한학도 하셨지만 한글도 능하셔서 이렇듯 가사를 지은 것으로 보입니다.

대대로 학문을 숭상하는 집안의 분위기로 작가 이섭도 한학을 배웠고, 자연스럽게 가사도 배웠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글을 한다는 것은 과거의 일을 후대에 상세히 알게 하여 후대의 전범(典範)이 되게 하는 데에 의의가 있다.

이밖에도 ‘회혼가’를 차례대로 읽어가며 김정기씨와 필자는 두어 시간 동안 상세하게 그 뜻에 대하여 묻거나 답하고, 토의하고, 토론하여, 정확한 의미를 구하고자 노력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그 결과는 이후에 이어지는 내용 부분에서 자세히 담기로 한다.

Ⅲ. 내용 및 표현상의 특징 고찰

‘회혼가’의 내용은 크게 세 부분이다. 서두는 회혼식의 의미를 자연과 종교, 문학 등의 내용과 풍유와 비교 등의 표현법을 통해 회혼식을 맞이하는 경사스러운 일을 예찬하고 있다.

중간은 회혼식 장면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누가 무엇을 하고 있으며, 이 모습에 대한 감상은 어떠한지를 회혼식의 순서에 맞게 순차적으로 제시하고 있어 이 글만 보고도 충분히 그 장면을 떠올릴 만하다.

마지막 결미는 회혼식 이후의 감상을 담고 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슬픔과 모든 친척이 다시 모일 날을 기약할 수 없는 슬픔, 후손이 모두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 혼인하면 부모와 멀어지는 여자의 아픔 등을 노래하고 있다.

1. 서두

건곤(乾坤)이 유의(有意)하여 수역(壽域)을 열었도다.

금수화산(錦繡花山) 가려(佳麗)한데 연화별계(蓮花別界) 이 안인가?

하늘과 땅이 뜻이 있어(조화를 이루어) 오래 살았다고 할 만한 나이가 되었도다.

비단에 수를 놓은 듯 꽃이 핀 산이 아름답고 화려한데 부처님의 아름다운 연꽃 세계가 이 아닌가?

회혼식은 90여 년 전에는 매우 드문 경사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한 글을 쓰는 것이기에 그 서두를 장황하고 거창하게 쓰고자 한 것이다. 하늘과 땅, 즉 천지 신명의 뜻한 바가 있어야 오래 살 수 있으며, 회혼을 맞이한 봄의 절기가 매우 아름다워 부처님의 연꽃 세계 안에 있는 듯하다고 하며, 계절을 예찬하고 있다.

창창(蒼蒼)한 헌수봉(獻壽峰)은 안전(眼前)에 솟아있고

황황(煌煌)한 남극성(南極星)은 월색(月色)같이 밝았도다.

울창한 헌수봉은 눈앞에 솟아있고, 빛나는 남극성은 달빛같이 밝았도다.

오래 사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예찬하는 구절이다. 그렇다면 헌수봉은 단순히 회혼식이 있었던 고향 마을에서 바라보이는 산 이름은 물론 그 뜻도 함께 사용한 것이 아닌가 한다. 헌수(獻壽)는 일반 명사로는 “환갑잔치(還甲) 같은 때 오래 살기를 비는 뜻으로 잔에 술을 부어서 드림.”의 의미로 쓰이기에 이어지는 구절의, 장수를 비는 의미의 남극성과도 호응하기 때문이다.

또한 노래하기 알맞은 가사 특유의 대구적(對句的) 표현으로 리듬감을 살리고 있다.

어와 벗님내야, 이내 말씀 들어보소.

칠십인간(七十人間) 어려움은 자고(自古)로 드물도다.

어와 벗님내야, 나의 말을 들어보시오. 사람이 칠십 세를 사는 것은 예부터 드물다.

앞 구절은 상투적으로 많이 쓰이는 말 건넴의 표현으로 자신의 뜻을 드러내기 위한, 독자를 염두에 둔 앞말에 해당한다.

그리고 ‘회혼가’ 전체의 의미와 이 구절의 앞뒤 문맥에 맞게 오래 삶에 대한 예찬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 뒷 구절이다. 유명하여 사람의 칠십 세를 가리키는 이칭으로도 쓰이는 두보의 ‘고희(古稀)’란 표현은 ‘예부터 드물다’는 의미를 드러낸다.

향산구로(香山九老) 높은 무덤 백년해로(百年偕老) 그 뉘런가

팔백(八百) 살 팽조노인(彭祖老人) 사십구처(四十九妻) 가소롭다.

향산구로(香山九老)의 높은 무덤 백년해로 그 누구런가.

팔백 살 팽조노인의 사십구 명 아내가 가소롭다.

중국의 오래 살고 많은 나이에 즐거운 삶을 지낸 역사적 인물과 비교하는 대목이다. 향산구로는 오래 살아 노인이 된, 뜻이 맞는 친구들이 모여 즐거운 때를 보냈다는 의미의 대명사이며, 팽조노인은 오래 살기도 하고, 여인과의 방중술에도 능하여 많은 부인을 거느린 쾌락의 대명사이다.

이렇게 오래 살고 한 때를 즐긴, 그런 뜻으로 쓰이는 동양 문명의 대명사가 된 사람보다 ‘회혼가’의 당사자들이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부부가 다정히 함께 나이 들고 오래 살아, 혼례를 치른 지 다시 60년의 세월이 지남은 교양있는 노인들의 동성(同性) 모임이나 오래 산 호색한(好色漢)보다 낫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장(壯)하실사 우리 왕부(王父) 거룩하신 우리 왕모(王母)

팔십광음(八十光陰) 강녕할사 천도가절(天桃佳節) 새로워라.

장하시구나, 우리 왕부 거룩하신 우리 왕모 팔십년의 세월을 강녕하시니 천도 가절이 새롭구나.

서술어 ‘장하구나’를 앞세운 도치법으로 회혼을 맞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예찬하고 있다. 뒷부분에 구체적으로 그 근거를 대고 있다. 팔십 년의 세월을 건강하고 안녕하게 보내시어 장수를 비는 좋은 절기를 맞이하였다고 하고 있다.

반가울사 무진년(戊辰年)에 윤이월중순(閏二月中旬)이라.

난만(爛漫)한 척촉화(躑躅花)는 향기(香氣)를 자아내고

옥동도화만수춘(玉洞桃花萬樹春)은 가지가지 봄빛이라.

반가워라 무진년 윤이월 중순이다. 꽃이 활짝 많이 피어 화려한 철쭉꽃은 향기를 자아내고 신선 사는 옥동은 복사꽃 수만 그루가 봄을 알린다고 하듯이 가지가지가 봄빛이라.

작품이 지어진 것은 표지에 나와 있는 회혼 당사자의 출생연도와 나이를 바탕으로 하면 1935년이다. 그런데 회혼식이 있었던 해는 위의 노래처럼 1928년 봄이다. 회혼식이 있던 해와 작품이 지어진 해가 7년의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아마 작품이 지어진 것은 회혼식이 이루어진 지 얼마되지 않은 시간이었으리라 예상한다면 작품은 1928년에 지었지만, 이를 다시 정리하고 기록한 것이 1935년이 아닌가 짐작된다. 후손과의 인터뷰에서 ‘회혼가’ 이외의, 석별을 아쉬워하는 다른 작품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다수의 작품을 함께 정리하는 것이 당장은 시간적으로 어렵지 않았겠는가 하는 예상을 할 수 있다. 아무튼 1928년 무진년(戊辰年) 봄에 회혼식을 올린다는 것은 첫 혼례가 60년 전인 1868년 무진년이란 의미이다. 이를 축하하기 위해 활짝 핀 철쭉이 향기를 자아내고 있음을 노래하고, 한시 구절을 인용하여 난만한 봄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신선이 사는 곳같이 아름다운 봄이란 뜻이다. 신선이 먹는다는 복숭아나 봄꽃, 물이 오른 봄 나뭇가지 등이 작품 곳곳에 표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월춘풍(二月春風) 좋은 경(景)은 천고(千古)에 이름이라.

하물며 드문 경사(慶事) 양신(良辰)도 유심(有心)하다.

이월 봄바람 좋은 경치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이름나 있다. 하물며 드문 경사 양신도 뜻이 있구나.

계속 경사인 회혼을 맞은 봄의 절기와 아름다운 봄 풍경을 예찬하고 있다.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고 온갖 꽃이 피고 신록이 우거지는 이월은 예로부터 이름이 나 있다. 이런 때에 드문 경사인 회혼식을 하니 양신 즉 좋은 시기라 하는 것은 뜻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의중지인(意中之人) 다 모아서 동동촉촉치행(洞洞燭燭治行)할제

왕부주(王父主)님 하신 말씀 아무리 고수해로(高壽偕老) 좋다한들

왕사(往事)를 추념(追念)하면 이 놀음 부당(不當)하다.

마음속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사람을 다 모아서 깊이 헤아려 살펴 길 떠날 여장을 준비할 제 우리 왕부 주인님(할아버지) 하신 말씀, 아무리 백년해로를 좋다한들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하면 이 놀음이 당치않다.

좋은 일에도 항상 걱정거리는 있는 법이다. 회혼식을 준비하는 원근 친척들과 친지들이 많이 모여 시작할 준비를 하고 길 떠날 준비를 한다. 그러나 주인공인 할아버지께서 아들을 앞세운 마당에 이 회혼식을 부당하니 그만두자는 말씀을 하시고 있다. 회혼식 당일에 얘기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는 않으나 정황으로 보아 이전에도 회혼식을 치르지 말 것을 아들들에게 많이 이야기 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 것이다. 예식이 있는 당일 다시 한 번 아들이 먼저 저 세상을 간 것을 생각하고, 회혼식의 부당성을 말한 것이리라 생각된다.

이 말슴 듣자오니 인비목석(人非木石) 안이여든

뉘라서 몰을소냐 원만(圓滿)한 자녀손(子女孫)이

남 몰으게 누수(漏水) 짖고 누차위로간청(累次慰勞懇請)한 후(後)

노인성적(老人成赤) 살피오니 장(壯)하고도 거룩하다.

이 말씀을 듣자오니 사람이 목석이 아니거든 누가 모르겠는가. 원만한 자녀와 손자가 남모르게 눈물짓고 여러 차례 고달픔을 풀도록 따뜻하게 대(對)하여 주며 간청한 후에 회혼식을 준비하는 두 노인의 얼굴에 분을 바르고 연지를 찍는 모습을 살피오니 장하고도 거룩하다.

할아버지의 이 말씀을 들은 자식과 손자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들의 형님과 아버지와 숙부없이 아버지, 할아버지의 회혼식을 치르는 것을 슬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망자에 대한 위로이며 미안한 마음일 뿐 여러 손님을 모신, 상주와 모동이 떠들썩한 큰 잔치를 이로 인해 그만둘 수 없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아들과 손자가 할아버지를 위로하고 간청하여 허락을 얻어냈던 것이다.

그런 후에 두 노인은 혼례를 준비하기 위해 곱게 단장을 한 모습을 장하고 거룩하다고 예찬하고 있다.

2. 중간

단장함(丹粧函) 정히 열고 도화분(桃花粉) 구리분에

해당연지(海棠臙脂) 간뜯 찍고 청홍(靑紅) 육모 족두리에

국화금단(菊花金緞) 가추어서 양청고사금박(洋淸高紗金箔)당기

옥반진주(玉盤珍珠) 넌짓 달아 풍채(風采) 좋게 드리우고

청홍단(靑紅緞) 가추어서 오색나삼원삼(五色羅衫圓衫)이라.

얼굴을 곱게 꾸미는 물건이 있는 상자를 곱게 열고, 복숭아 빛깔의 분과 크림에 해당화 연지를 살짝 찍고, 청홍 육모족두리에 노란 국화 무늬 비단을 갖추어서 짙은 푸른색 실에 금박 댕기 옥반에 굴러가는 진주를 넌지시 달아 풍채좋게 드리우고, 청홍색 비단을 갖추어서 색동의 나삼 원삼이라.

본격적인 ‘회혼식’의 장면을 묘사한 것이 중간 부분에 해당한다. 할머니가 전통 혼례 신부 복장을 한 모습을 묘사한 대목으로 시작하고 있다. 화려하기가 그지없는 모습니다.

신혼단장(新婚丹粧)하신 신인(新人) 백발낙치(白髮落齒) 무삼일고

세수단장(洗手丹粧)하고 보니 얽도 검도 않근만은

함박살 주름살이 빈틈없이 고루 있소.

신혼단장하신 새댁이 흰 머리카락에 빠진 이가 무슨 일인가. 세수 단장하고 보니 얽기도 검지도 않지만 뭉친 살 주름살이 빈틈없이 고루 있소.

예쁘게 화장을 하고 고운 예복을 입은 할머니 신부가 흰 머리카락에 이가 빠진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해학적인 표현이다. 또 몸을 깔끔히 다듬고 보니 얼굴을 얽은 것도 아니고 검지도 않지만 나이 들면 생기는 뭉친 살과 주름살이 얼굴에 가득하다고 묘사하고 있다.

객관적 설명을 하고 있으나 어울리지 않는 것을 함께 묘사하는 해학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단장하였지만 늙음을 가릴 수 없는 할머니에 대한 손녀의 안타까움도 묻어난다.

흥을 띄여 살펴보니 엄숙(嚴肅)하신 왕부주(王父主)는

숭품대신(崇品大臣) 모양으로 청포옥대오사모(靑袍玉帶烏紗帽)며

옥포선(玉布扇)을 가추시고 예석행차(禮席行次) 깃거워라.

흥을 띠워 살펴보니 엄숙하신 왕부주는 숭정대품 모양으로 푸른 도포, 옥대, 오사모며 옥포선을 갖추시고, 예식을 베푸는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 기쁘구나.

할머니 신부가 늙은 모습에 안타까워 하다가 흥을 띠워 할아버지 신랑을 보니 벼슬아치가 하는 차림새로 예식을 치르러 가는 모습이 화려하여 기쁘다는 화자의 목소리이다.

숙부(叔父)님 사형제(四兄弟)분 교자대령(較子待令)하이실제

후행(後行)은 뉘실는고 흥양이씨문장(興陽李氏門長)이요.

관대함(冠帶函)은 뉘가 진고 우복선생(愚伏先生) 후예(後裔)로다.

숙부님 사 형제분께서 교자를 대령할 제, 후행 누구신가, 흥양이씨 문장이요. 관대함은 누가 지고 가는가, 우복선생 후손이로다.

죽은 첫째 아들을 제외한 네 아들이 회혼을 맞은 아버지의 교자를 대령하고 있다. 후행은 흥양이씨 문장어른이, 관대함은 우복 선생의 후손이 맞고 있다. 평소 교유(交遊)한 친지(親知)이며, 주위에 명망이 있는 분들이었을 것이다.

양반 집안에서 첫 번째 혼례의 경우 가마를 메거나 관대함을 지는 따위의 힘든 일은 하인들의 차지였다. 하지만 두 번째 혼례에 해당하는 회혼의 경우는 자식과 손자, 원근의 친지들이 이 일을 맡아 회혼을 맞은 왕부(王父), 즉 할아버지에 대한 최대한의 예우를 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전개되는 회혼의 과정 또한 다르지 않다.

왕모교자치행(王母較子治行)할 제 앞뒤 교군(轎軍) 발 고루어

누구누구 뫼었는가, 청숙(淸肅)한 우산종형(愚山從兄).

현철(賢哲)한 삼봉종형(三峯從兄), 앞채에 좌편(左便) 메고

우편(右便)에는 누구런고, 연화(蓮花) 같은 성실(成室)이와

행화(杏花)같은 황실(黃室)이며, 도화(桃花)같은 고실(高室)이라.

왕모께서 교자를 타고 길을 떠날 때에 앞뒤의 가마꾼들이 발을 맞추어 누가 누가 메었는가. 맑고 엄숙한 우산 사촌 형님과 어질고 사리에 밝은 삼봉의 사촌 형님께서 앞채의 왼쪽을 메고, 우편에는 누구인가 연꽃 같은 성실이와 살구꽃 같은 황실이며 복숭아꽃 같은 고실이라.

이번에는 할머니이다. 가마를 멘 사람으로 앞채의 왼쪽은 첫째 아들의 큰 며느리와 둘째 아들의 맏며느리이다. 그분들은 연세가 어느 정도 되었기에 맑고 엄숙하고 어질고 사리에 밝다는 덕성을 주로 드러내고 있다. 계속해서 앞채의 오른 쪽은 손녀들이 메고 있다. 그들은 아직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사람들이기에 외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 각각 어울리는 꽃에 비유하고 있다.

뒤채는 누구런고, 이화(梨花) 같은 윤실(尹室)이라.

아릿다운 상계종형(從兄), 부용(芙蓉) 같은 본가종제(本家從弟)

좌우편(左右便)에 메였는데 하인(下人) 치레 장관(壯觀)이지.

뒤채는 누구인가, 배꽃 같은 윤실이라. 아리따운 상계 사촌형님, 연꽃 같은 본가의 사촌 형님 좌우편을 멨는데, 하인으로 참여한 모양새가 볼만하다.

계속하여 할머니 가마의 뒤채는 손녀와 손부(孫婦)들이 메고 있다. 할머니를 예우하기 위해 하인들을 대신하여 자녀와 며느리, 손녀들이 가마를 메고 있는 모습이다.

녹의홍상(綠衣紅裳) 생색(生色) 맞춰 쌍쌍(雙雙)이 발고룰 제

연두저고리와 다홍치마 색깔 맞춰 쌍쌍이 발을 맞출 때에

가족들은 잔치를 맞이하여 모두 고운 옷을 맞추어 입고, 발도 맞추어 가마를 메고 있다.

인자(仁慈)하신 숙모주(叔母主)요, 저의 말슴 들어보소.

중당(中堂)의 백모(伯母)님은 금년(今年)이 회갑(回甲)이라.

교군(轎軍)하기 난감(難堪)할덧, 소처(所處)를 생각하여

저의가 메였으나 아녀(阿女)의 연연약질(軟軟弱質)

중로(中路)에 허기(虛氣)날까 노세(路貰)나 후히 주소.

인자하신 숙모주요, 저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가운뎃집의 백모)님은 올해가 회갑이라. 가마꾼하기 난감할 듯 소처를 생각하여 저희가 메었으나 아녀자의 연약한 체질 중간에 허기가 질까 하니 노자(路資)나 후히 주소.

이 행사를 담당하는 주인인 첫째 며느리에게 그 조카들이 하는 부탁의 말이다. 며느리 중 병후의 처가 회갑인 나이로 인해 걱정이 되니 노자를 후히 주어 허기를 달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고 있다.

후행(後行)은 뉘실런고 왕이모(王姨母)님 배행(陪行)일세.

교군(轎軍) 인물(人物) 굉장(宏壯)하다. 안질(眼疾) 침침 백모(伯母)님은

금년(今年)에 육십노인(六十老人) 훌떡훌떡 고생이요.

후행은 누구이신가 왕 이모님 배행일세. 가마꾼 인물이 굉장하다. 눈병으로 눈이 침침하신 큰어머님은 금년 육십 노인 훌떡훌떡 고생이요.

회혼을 맞은 할머니 후행을 할머니의 친 동생이 하고 있다. 교군의 인물들이 대단하다며 예찬하고 있는데, 이는 뒤에 이어지는 내용으로 보아 반어법(反語法)으로 한 말이다. 눈병이 나 눈이 침침한 백모님은 육십 노인으로 가마를 따라 가는 것도 힘들어서 숨이 가쁜 모습이다.

낙치(落齒)한 중숙모(仲叔母)는 절은 키를 강작(强作)하여

고생(苦生)으로 달린 모양 우습고도 민망하다.

이가 빠진 중숙모님께서는 작은 키에 억지로 일을 하여 고생으로 달리신 모양 우습고도 민망하다.

이가 빠지고 키가 작은 둘째 숙모님께서는 일행을 따라 가는 것이 상대적으로 힘이 들고 모양새도 우스워 민망하다 하고 있다.

황당(荒唐)할사 본가숙모(本家叔母) 앞뒤 몸 거동 보소.

앞에 서서 길 가누며 불문곡직(不問曲直) 다라나니.

맹랑할사 저 일이야, 길나라비 분명하다.

황당하구나 본가의 숙모 앞뒤의 몸 거동을 보아라. 앞에 서서 길을 가다듬으며 묻지도 않고 바로 달아나니, 맹랑하구나 저 일이야, 길 앞잡이가 분명하다.

가마의 앞에 서서 길을 가다듬으며 뒤의 일행과는 관계없이 곧장 앞장으로 서고 달려가며 길나라비 하는 본가 숙모의 모습이 황당하다고 하고 있다. 아마 여러 사람이 모여 있어 당황한 모습으로 짐작된다.

현철(賢哲)할사 봉대(鳳坮) 숙모, 깊은 눈과 볼부리로

고이하고 질긴 모양 참으로 남스럽다.

어질고 사리에 밝은 봉대 숙모, 깊은 눈과 볼과 입으로 괴이하고 질긴 모양 참으로 남사스럽다.

어질고 사리에 밝지만 깊은 눈과 볼, 입으로 괴이하게 생긴 모양이 남 보기가 부끄럽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특히 외모는 못났더라고 미화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그리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조선 시대 인물화도 그러하다. 터럭 하나까지도 있는 그대로 그리려 하였다.

몰풍경(沒風景) 적은 숙모 적은 목을 길게 빼여

먼 산 보기 주장하고 호서(湖西) 말슴 이상하다.

볼 것이 없는, 키 작은 숙모 짧은 목을 길게 빼서 먼 산 보기를 주장하고, 충청도 사투리가 이상하다.

계속 회혼 당사자인 응규의 다섯 며느리들을 묘사하고 있다. 이번에는 막내며느리이다. 키가 작은 막내 숙모가 인산인해를 이룬 행사장에서 목을 빼서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 모습이다. 그 모습이 그리 아름답게 보이지는 않은 것 같다. 또 그분은 충청도로 시집을 가서 말투도 충청도 말로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가고 그곳을 고향 삼아 살아온 것이다. 이는 필자의 졸고 ‘현대규방가사 –상주 양정’에서도 다룬 바 있다. 오랜 찾아온 시댁을 ‘고향’이라고 하며 눈물을 짓는 회고가의 내용이 있다. 시집간 여자들은 시댁이 그들의 고향이자 전부였다.

이와 같이 차례차례 메였는데 무사득달경영(無事得達經營)하나

천신만고(千辛萬苦) 생각하니 승천입지(升天入地) 완연(宛然)하다.

이와 같이 차례차례 메었는데, 무사히 도착하기를 계획하였으나 마음과 몸을 온 가지로 수고롭게 하고 애써서 생각하니 하늘로 올라 들어가는 것이 분명하다.

자식과 며느리 손자와 손녀들이 합심이 되어 목적지에 거의 도착한 상태이다. 어쩌면 가마를 메고 걸어온 과정은 아마 지금까지의 인생 역정(歷程)이었을 것이다. 무사히 여기까지 도착함을 계획하고, 천신만고 끝에 이곳에 이르니 마치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저승이 저 앞에 있는 같이 힘들다고 말하고 있다.

해당연화(海棠蓮花) 현교두관

청황모모(靑皇氈帽) 반듯 써고 한님차로 배행(陪行)하니

요지선녀(瑤池仙女) 분명토다.

해당화 연꽃 모양의 현교두관과 청색 황색 모모를 반듯하게 쓰고, 한님차로 배행을 하니 요지의 선녀가 분명하다.

고운 모자를 쓰고 배행을 하는 모습을 신선이 사는 곳에 있는 선녀들의 모습과 같다며 예찬하고 있다.

종택(宗宅)으로 행(行)할 적에

활장같이 굽은 길로 줄기줄기 벌었구나.

종갓집으로 갈 적에 활 같이 굽은 길로 줄기줄기 벌여 있구나.

종갓집은 셋째 아들 병식의 집이다. 그 집으로 가는 길이 활 같이 굽은 곡선이며 그 가지도 많다고 하고 있다. 목적지에 거의 다다른 모습이다.

교배석(交拜席)을 휘어드니 각색준비(各色準備) 찬란(燦爛)하다.

사시무변송죽(四時無變松竹)이며 만화(萬花) 가지 병화(甁花)로다.

교배석을 휘어 들어오니 여러 가지 준비가 찬란하구나. 사계절 변치 않는 소나무와 대나무며 여러 아름다운 꽃가지들이 꽃병 속에 꽂혀있구나.

회혼식 자리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지조의 상징인 소나무와 대나무, 아름다운 꽃들이 화려한 모습이다.

이화(李花) 가지 기화(奇花) 가지 이리 휘영 저리 휘영

일지이지풍화(一枝二枝風和)하니 천공(天公)도 유심(有心)하다.

배꽃 가지 기이한 꽃가지, 이리 휘고 저리 휘고

한 가지 두 가지 가지런하니 하늘도 속뜻이 있다.

주위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배꽃 가지를 비롯한 여러 꽃가지들이 휘어져 드리워 회혼식을 축하하는 듯하니 마치 하늘도 뜻이 있는 것 같다고 하고 있다. ‘이화 가지 기화 가지’란 표현은 대구의 표현으로 리듬감을 살린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시각적으로 풍성한 느낌과 ‘기화’란 표현을 통해 상상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수만인(數萬人) 구경꾼은 년치(年齒)로 열좌(列坐)로다.

서동부서홀기(婿東婦西笏記) 소리 은은이 들려온다.

수많은 구경꾼들은 나이순으로 앉았구나. 신랑은 동쪽, 신부는 서쪽에서 초례청 앞에 마주 서고 홀기 소리 은은히 들려온다.

나이순으로 벌여 앉은 수많은 친척과 친지들의 모습을 묘사한다. 전통 혼례에 맞게 서동부서(壻東婦西)한 가운데 혼례의 절차를 낭독하여 모든 이에게 식의 순서를 알리고 있다. 혼례의 시작이다.

환배주(換盃酒) 한 잔 술에 백발홍장(白髮紅粧) 두 노인이

절 다툼이 야단일세, 부선재배(婦先再拜) 밧비하소.

합환주 한 잔 술에 흰 머리를 하고 연지 따위로 붉게 화장한 두 노인이 절 다툼이 야단일세, 신부가 먼저 두 번 절하는 것을 바삐 하소.

좋은 일에 재미있는 있으면 더 오래 기억되고 즐거운 것이 인지상정이다.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곱게 화장을 하고 술을 나눠먹는 모습은 아름답고 경건하다. 그러나 이후에 한바탕 먼저 절하겠다고 절 소동을 벌이는 장면은 우습고도 재미가 있다. 부선재배(婦先再拜)라고 신부가 신랑에게 먼저 두 번 절하는 것이 전통 혼례의 순서이다.

왕부주(王父主)님 하신 말슴 부선재배(婦先再拜)하는 법은 예절에 뜻커늘

동석(同席)에 저 노인은 삼종지례(三從之禮) 물우오니 백년해로 난감(難堪)하다.

왕부님 하신 말씀 신부가 먼저 두 번 절하는 법은 예절의 뜻이 있거늘 같은 자리의 저 노인은 삼종지례를 모르오니 백년해로 난감하다.

할아버지가 부선재배를 일깨우며 할머니를 농담 삼아 책망하고 있다. 현재에는 맞지 않지만 90여 년 전에는 여자가 남자의 말을 따르고 남자를 먼저 모시는 것이 하나의 법도였다고 할 수 있다.

만장(滿場)이 대소(大笑)하니 이도 또한 승사(勝事)로다.

우리 비록 몰풍(沒風)하나 일일풍류(一日風流) 몰을소냐.

잔치에 가득 모인 사람들이 크게 웃으니 이도 또한 훌륭한 일이로다. 우리 비록 풍치(風致)을 모르나 하루의 풍류를 모르겠는가.

회혼식에 모인 많은 자손과 친척, 친지들이 이 작은 소동에 모두 웃고 즐기고 있다. 대단한 풍류는 없지만 하루의 풍류는 안다고 하면서 말이다.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선세(先世)의 적선지택(積善之宅) 창천(蒼天)이 감동할사.

백세향년(百歲享年) 누리시니, 강능축수(岡陵祝壽) 이때로다.

선대의 착한 일을 많이 한 집안을 푸른 하늘이 감동하여 (조부모께서) 오래 사시니, 언덕이나 작은 산에서 오래 사시기를 비는 것이 이때로구나.

오늘의 이 좋은 일은 선대가 착한 일을 많이 하여 하늘이 감동한 바라고 하고 있다. 조부모님께서 장수하시었으니 더 오래 사시기를 비는 것이 지금이라고 말하고 있다.

만수배(萬壽盃)를 드릴 적에 화랑광대(花郞廣大) 춤을 추고,

오음육율(五音六律) 맑은 곡조(曲調) 봉황(鳳凰)이 춤을 춘다.

오래 사시기를 기원하는 술잔을 드릴 적에 화랑 광대춤을 추고, 오음육율 맑은 곡조 봉황이 춤을 춘다.

자손이 회혼을 맞은 조부모에게 오래 사시기를 비는 술잔을 올리고, 이를 축하하는 춤과 음악이 낭자하여 봉황새가 춤을 추는 듯하다는 말이다. 회혼식이 절정에 이른 모습이다.

가진 경사(敬事) 무궁하나 슲으다 나의 야야(爺耶).

어느 선경(仙境) 비끼시고 성대한 이 광경을

몽매(夢寐) 알음 없사시니 생각사록 느껴워라.

갖은 경사 끝이 없으나, 슬프다 나의 아버지여 어느 아름다운 경치를 비켜나시고, 성대한 이 광경을 꿈에도 알 리 없으시니 생각할수록 느꺼워라.

여러 가지 경사를 축하하는 의식이 끝이 펼쳐지나 행사의 초입에서 할아버지가 하신 말씀같이, 망자(亡者) 딸의 입장인 화자는 슬퍼하고 있다. 이렇게 즐거운 날, 이 성대한 광경을 돌아가신 아버지는 꿈에도 아실 길이 없으니, 이것은 북받치는 설움과 같은 것이리라.

행사가 즐거울 수만은 없다. 이런 날 슬픔을 느끼는 일도 사람도 있는 것이 사람 사는 일인 것이다.

헌수(獻壽)를 전폐(全廢)하니 비희(悲喜)가 상반(相伴)이라.

파좌퇴출(罷座退出) 하올 적에 각기분배(各其分配) 좌정(坐定)하니

배반(杯盤)이 낭자(狼藉)로다, 어와 친척(親戚)이여.

헌수를 전폐하니 슬픔과 기쁨이 상반이라. 자리를 끝내고 물러나서 나갈 적에 각자 나누어서 자리 잡아 앉으니 술상이 낭자하구나, 어와 친척이여.

먼저 운명을 달리한 첫째 아들로 말미암아 오래 살기를 빌기 위해 올리는 술잔을 받치는 것을 모두 그만두니 큰 아들이 없는 슬픔과 회혼의 기쁨이 회혼식의 분위기를 절반씩 차지하고 있다.

회혼식이 끝나고 각자 자리에 앉아 술잔을 나누고 있는 친척들의 다정한 모습이다.

3. 결미

오늘날 이 대연(大宴)에 원근친척(遠近親戚) 모앗다가

수륙진반(水陸進盤) 허무하고 즉일작별(卽日作別) 막연(漠然)하다.

오늘날 이 큰 잔치에 멀고 가까운 친척들을 모았다가 바다와 육지에서 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허무하고 당일 작별이 막연하다.

행사에 대한 감상이 드러나는 결미 부분이다. 오늘 이 큰 잔치에 멀고 가까운 곳에 있는 거의 모든 친척들이 모여 진수성찬을 나누어 먹은 즐거운 일이 끝나고 오늘 작별을 맞이하는 것이 갈피를 잡을 수 없이 아득하다고 하고 있다. 벌써 며칠 전부터 먼 곳에 있는 친척들은 이곳에 와서 준비도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큰 잔치가 무사히 끝나고 헤어질 시간이 된 것을 아쉬워하는 것이다. 옛날에는 이렇게 서로 간에 정이 많았다.

축수(祝壽)로다 축수(祝壽)로다. 우리 왕모(王母) 회혼(回婚) 후(後)에

사십 여명 자녀손이 계계승승(繼繼承承) 장수(長壽)로다.

오래 사시기를 빈다, 오래 사시기를 빈다. 우리 왕모(할머니, 祖母) 회혼 후에 사십 여명 아들, 딸, 손자들이 대대(代代)로 이어받아 내려와 오래 살리라.

회혼을 맞은 조부모가 더욱 오래 사시기를 반복법을 통해 간절히 빌고 있다. 그리고 이를 기념하는 회혼 이후에 사십 여명의 자손들이 장수하기를 기원하고 있다.

한(恨)이로다 한(恨)이로다, 여자유행원부모(女子有行遠父母)라.

숙질종반노소동락(叔姪從班老少同樂) 암암(暗暗)할사 후기(後期)로다.

중산천지(中山天地) 잘 있거라, 백화산(白華山)아 다시보자.

한이로다, 한이로다. 여자가 혼인을 하면 부모와 멀어지는지라. 아재비와 조카, 사촌, 늙은이와 젊은이가 함께 즐겁고, 훗날을 기약함이 아득하구나. 중산 천지 잘 있거라, 백화산아 다시 보자.

작가 김이섭은 이 작품을 누이들인 황실이와 고실이의 입장에서 주로 서술하고 있는데, 그들은 모두 여성으로서 출가를 한 상태이다. 그러므로 여자가 혼인을 하면 친부모와 멀어지는 아픔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분명 상산김씨 송포파의 자손으로 태어났지만 딸로 태어났기에 정든 부모와 고향을 등지고 다시 시댁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던 것이다. 다시 언제 만날 기약도 없이 정든 친정의 친척들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있다. 고향 산천도 함께 말이다.

Ⅳ. 결론

지금까지 상주 모동 지방에서 쓰인 ‘회혼가’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가사는 조선 초기의 연군(戀君)이나 풍류를 담은 가사에서 후기의 기행가사, 규방가사로 발전하였다. 규방가사는 특별한 놀이가 없는 규방의 여성들이 자신들의 삶을 기록하고 윤독(輪讀)함으로써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하였던 것인데, 남성 작가가 지었지만 이를 여성 화자의 입장으로 서술한 것도 대단히 많다. 가사를 지을 만한 능력을 여성들이 갖추기 힘들었고, 섬세한 이야기를 전하기에는 여성 화자가 유리하였을 것이다.

‘회혼가’는 1920년대에 지어지고, 1930년대에 정리된 것으로 보이는 경상북도 상주 모동 지방의 규방가사이다. 회혼 당사자의 손자가 ‘회혼식’의 장면을 묘사한 규방가사 ‘회혼가’를 짓고, 그 작가의 아들, 즉 회혼 당사자의 증손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자세한 가계(家系)나 작품의 내용을 상고(詳考)하였다. 상산김씨 송포파가 세거(世居)하고 있는 경북 상주 모동 송포 마을에 살고 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회혼을 맞아 그 자손 40여 명과 수많은 친지들이 모여 회혼식을 올렸다. 그 행사는 상주와 모동에서도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관심을 가질 만큼 큰 규모의 떠들썩한 행사였다고 후손은 전하였다.

가사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 그 내용과 표현 방법을 분석하였다. 첫 부분은 회혼을 맞은 조부모를 하늘도 예찬한다고 운을 뗀다. 또 중간에서는 혼례식의 순서에 따라 그 모습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결미에서는 석별의 정을 노래하고 있다.

‘회혼가’를 통해 20세기까지 규방가사가 널리 지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흔하지 않은 일을 가사로 남겨 후대에 다시 읽으며, 그날의 일을 회상하는 일이 많았음을 이를 통해 알 수 있다.

부록

회혼가(回婚歌)

건곤(乾坤)이 유의(有意)하여 수역(壽域)을 열었도다.

금수화산(錦繡花山) 가려(佳麗)한데 연화별계(蓮花別界) 이 안인가?

창창(蒼蒼)한 헌수봉(獻壽峰)은 안전(眼前)에 솟아있고

황황(煌煌)한 남극성(南極星)은 월색(月色)같이 밝았도다.

어와 벗님내야, 이내 말씀 들어보소.

칠십인간(七十人間) 어려움은 자고(自古)로 드물도다.

향산구로(香山九老) 높은 무덤 백년해로(百年偕老) 그 뉘런가

팔백(八百) 살 팽조노인(彭祖老人) 사십구처(四十九妻) 가소롭다.

장(壯)하실사 우리 왕부(王父) 거룩하신 우리 왕모(王母)

팔십광음(八十光陰) 강녕할사 천도가절(天桃佳節) 새로워라.

반가울사 무진년(戊辰年)에 윤이월중순(閏二月中旬)이라.

난만(爛漫)한 척촉화(躑躅花)는 향기(香氣)를 자아내고

옥동도화만수춘(玉洞桃花萬樹春)은 가지가지 봄빛이라.

이월춘풍(二月春風) 좋은 경(景)은 천고(千古)에 이름이라.

하물며 드문 경사(慶事) 양신(良辰)도 유심(有心)하다.

의중지인(意中之人) 다 모아서 동동촉촉치행(洞洞燭燭治行)할제

왕부주(王父主)님 하신 말씀 아무리 고수해로(高壽偕老) 좋다한들

왕사(往事)를 추념(追念)하면 이 놀음 부당(不當)하다.

이 말슴 듣자오니 인비목석(人非木石) 안이여든

뉘라서 몰을소냐 원만(圓滿)한 자녀손(子女孫)이

남 몰으게 누수(漏水) 짖고 누차위로간청(累次慰勞懇請)한 후(後)

노인성적(老人成赤) 살피오니 장(壯)하고도 거룩하다.

단장함(丹粧函) 정히 열고 도화분(桃花粉) 구리분에

해당연지(海棠臙脂) 간뜯 찍고 청홍(靑紅) 육모 족두리에

국화금단(菊花金緞) 가추어서 양청고사금박(洋淸高紗金箔)당기

옥반진주(玉盤珍珠) 넌짓 달아 풍채(風采) 좋게 드리우고

청홍단(靑紅緞) 가추어서 오색나삼원삼(五色羅衫圓衫)이라.

신혼단장(新婚丹粧)하신 신인(新人) 백발낙치(白髮落齒) 무삼일고

세수단장(洗手丹粧)하고 보니 얽도 검도 않근만은

함박살 주름살이 빈틈없이 고루 있소.

흥을 띄여 살펴보니 엄숙(嚴肅)하신 왕부주(王父主)는

숭품대신(崇品大臣) 모양으로 청포옥대오사모(靑袍玉帶烏紗帽)며

옥포선(玉布扇)을 가추시고 예석행차(禮席行次) 깃거워라.

숙부(叔父)님 사형제(四兄弟)분 교자대령(較子待令)하이실제

후행(後行)은 뉘실는고 흥양이씨문장(興陽李氏門長)이요.

관대함(冠帶函)은 뉘가 진고 우복선생(愚伏先生) 후예(後裔)로다.

왕모교자치행(王母較子治行)할 제 앞뒤 교군(轎軍) 발 고루어

누구누구 뫼었는가, 청숙(淸肅)한 우산종형(愚山從兄).

현철(賢哲)한 삼봉종형(三峯從兄), 앞채에 좌편(左便) 메고

우편(右便)에는 누구런고, 연화(蓮花) 같은 성실(成室)이와

행화(杏花)같은 황실(黃室)이며, 도화(桃花)같은 고실(高室)이라.

뒤채는 누구런고, 이화(梨花) 같은 윤실(尹室)이라.

아릿다운 상계종형(從兄), 부용(芙蓉) 같은 본가종제(本家從弟)

좌우편(左右便)에 메였는데 하인(下人) 치레 장관(壯觀)이지.

녹의홍상(綠衣紅裳) 생색(生色) 맞춰 쌍쌍(雙雙)이 발고룰 제

인자(仁慈)하신 숙모주(叔母主)요, 저의 말슴 들어보소.

중당(中堂)의 백모(伯母)님은 금년(今年)이 회갑(回甲)이라.

교군(轎軍)하기 난감(難堪)할덧, 소처(所處)를 생각하여

저의가 메였으나 아녀(阿女)의 연연약질(軟軟弱質)

중로(中路)에 허기(虛氣)날까 노세(路貰)나 후히 주소.

후행(後行)은 뉘실런고 왕이모(王姨母)님 배행(陪行)일세.

교군(轎軍) 인물(人物) 굉장(宏壯)하다. 안질(眼疾) 침침 백모(伯母)님은

금년(今年)에 육십노인(六十老人) 훌떡훌떡 고생이요.

낙치(落齒)한 중숙모(仲叔母)는 절은 키를 강작(强作)하여

고생(苦生)으로 달린 모양 우습고도 민망하다.

황당(荒唐)할사 본가숙모(本家叔母) 앞뒤 몸 거동 보소.

앞에 서서 길 가누며 불문곡직(不問曲直) 다라나니.

맹랑할사 저 일이야, 길나라비 분명하다.

현철(賢哲)할사 봉대(鳳坮) 숙모, 깊은 눈과 볼부리로

고이하고 질긴 모양 참으로 남스럽다.

몰풍경(沒風景) 적은 숙모 적은 목을 길게 빼여

먼 산 보기 주장하고 호서(湖西) 말슴 이상하다.

이와 같이 차례차례 메였는데

무사득달경영(無事得達經營)하나 천신만고(千辛萬苦) 생각하니

승천입지(升天入地) 완연(宛然)하다.

해당연화(海棠蓮花) 현교두관

청황모모(靑皇氈帽) 반듯 써고 한님차로 배행(陪行)하니

요지선녀(瑤池仙女) 분명토다.

종택(宗宅)으로 행(行)할 적에

활장같이 굽은 길로 줄기줄기 벌었구나.

교배석(交拜席)을 휘어드니 각색준비(各色準備) 찬란(燦爛)하다.

사시무변송죽(四時無變松竹)이며 만화(萬花) 가지 병화(甁花)로다.

이화(李花) 가지 기화(奇花) 가지 이리 휘영 저리 휘영

일지이지풍화(一枝二枝風和)하니 천공(天公)도 유심(有心)하다.

수만인(數萬人) 구경꾼은 년치(年齒)로 열좌(列坐)로다.

서동부서홀기(婿東婦西笏記) 소리 은은이 들려온다.

환배주(換盃酒) 한 잔 술에 백발홍장(白髮紅粧) 두 노인이

절 다툼이 야단일세, 부선재배(婦先再拜) 밧비하소.

왕부주(王父主)님 하신 말슴 부선재배(婦先再拜)하는 법은 예절에 뜻커늘

동석(同席)에 저 노인은 삼종지례(三從之禮) 물우오니 백년해로 난감(難堪)하다.

만장(滿場)이 대소(大笑)하니 이도 또한 승사(勝事)로다.

우리 비록 몰풍(沒風)하나 일일풍류(一日風流) 몰을소냐.

선세(先世)의 적선지택(積善之宅) 창천(蒼天)이 감동할사.

백세향년(百歲享年) 누리시니, 강능축수(岡陵祝壽) 이때로다.

만수배(萬壽盃)를 드릴 적에 화랑광대(花郞廣大) 춤을 추고,

오음육율(五音六律) 맑은 곡조(曲調) 봉황(鳳凰)이 춤을 춘다.

가진 경사(敬事) 무궁하나 슲으다 나의 야야(爺耶).

어느 선경(仙境) 비끼시고 성대한 이 광경을

몽매(夢寐) 알음 없사시니 생각사록 느껴워라.

헌수(獻壽)를 전폐(全廢)하니 비희(悲喜)가 상반(相伴)이라.

파좌퇴출(罷座退出) 하올 적에 각기분배(各其分配) 좌정(坐定)하니

배반(杯盤)이 낭자(狼藉)로다, 어와 친척(親戚)이여.

오늘날 이 대연(大宴)에 원근친척(遠近親戚) 모앗다가

수륙진반(水陸進盤) 허무하고 즉일작별(卽日作別) 막연(漠然)하다.

축수(祝壽)로다 축수(祝壽)로다. 우리 왕모(王母) 회혼(回婚) 후(後)에

사십 여명 자녀손이 계계승승(繼繼承承) 장수(長壽)로다.

한(恨)이로다 한(恨)이로다, 여자유행원부모(女子有行遠父母)라.

숙질종반노소동락(叔姪從班老少同樂) 암암(暗暗)할사 후기(後期)로다.

중산천지(中山天地) 잘 있거라, 백화산(白華山)아 다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