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서 미워서 네 이름 잊으려 지우고 또 지웠지 종이에 구멍이 나도록 네 얼굴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고 또 감았지 눈이 아프도록 네 소리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고 또 막아 귀가 아픈데 어쩌니? 갑자기 생각나고 보이고 들리는 네 목소리 밉다. 2023. 10.26 나의 문학/동시 2023.10.26
방지턱 방지 턱 갈까 말까 망설이다 가려고 나섰더니 갑자기 가슴이 덜컹거렸다 말할까 말까 하다가 말 하려는데 또 가슴이 덜컹거렸다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하려고 했더니 또 가슴이 덜컹거렸다 아! 그렇구나 하나님이 나에게 방지 턱을 몰래 설치하셨구나. 2023.10.26. 나의 문학/동시 2023.10.26
지우개 지우개 김재수 잘못 쓴 것 지울 때는 지우개가 필요한데 컴퓨터에 쓴 글들은 금방 지우고 또 지울 수 있는 지우개 단추가 있지 지우고 또 지워도 지저분한 지우개 똥도 잘못 쓴 흔적도 남기지 않는 지우고 싶어도 잘 지워지지 않는 마음속의 티끌이 있어 나도 그런 단추 하나 달고 싶다. 2023.10.26 나의 문학/동시 2023.10.26
나무에게 나무에게 아름드리 느티나무 그늘아래서 책을 읽는데 갑자기 책이 느티나무에게 말을 건네는 거야 “나도 너처럼 잎이 무성한 나무였단다.” 느티나무가 책을 보며 깜짝 놀랐지 이번엔 긴 의자가 말하는 거야 “나도 너처럼 아름드리 나무였단다.” 느티나무가 또 의자를 보며 놀랐어 책과 의자가 말했어 “너는 살아서 그늘을 만들지만 우리는 다른 모습으로 다시 살고 있단다.” 2023. 10.13 나의 문학/동시 2023.10.26
풀꽃 풀꽃 풀꽃 하나가 화분 속에 핀 꽃에게 물었어 너는 어디를 딛고 서 있니? 꽃이 말했어 나는 화분을 혼자 차지하고 서있지 화분에 핀 꽃이 물었어 너는? 나는 지구를 감싸며 서 있단다. 2023ㅣ10.12 나의 문학/동시 2023.10.26
윷놀이 윷놀이 네 개의 윷 까치가 신기하다 다섯 가지 달라지는 경우들이 웃기도 울리기도 하는 고뿔 한 번 안하고 단숨에 나는 윷말도 있고 넉동짜리 윷말이 마지막 자리에서 뒤 도에게 잡히는 기막힌 역전 앞서 간다고 앞서는 것도 아니고 뒤 딸아 간다고 처지는 것도 아니다 돌아서 간다고 늦어지는 것도 질러간다고 빨리 가는 것도 아니다 모 나오라고 소리쳐도 도가 나오고 걸쯤이 좋다는데도 제 맘대로 나오는 윷 알 수 없는 윷 까치를 던지며 우리는 오늘도 신나는 윷놀이 중. 2023.10.11. 나의 문학/동시 2023.10.26
가을풍경 가을 풍경 대빗자루로 곱게 쓸어낸 마당에 가득 내리는 가을 볕 한 자락을 깔고 빨간 감나무 이파리 하나 누웠다 가을이 그린 수채화 한 점. 2023.10.3 나의 문학/동시 2023.10.26
맨발 맨발 맨발로 흙을 밟았다 발바닥에 흐르는 실핏줄들이 흙을 향해 실뿌리를 내리고 땅의 기운들을 온 몸으로 빨아올리는 듯 했다. 2023. 9.30. 나의 문학/동시 2023.10.26
기다리기 기다리기 성질 급한 나에게 숙제를 주셨다 엘리베이트 닫힘 단추 누르지 않기 에스컬레이트에서 걸어가지 않기 손가락이 근질근질하고 빨리 가고 싶던 조바심이 엄마의 숙제 덕분에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횡단보도 파란 신호등 3초를 기다려도 발을 동동 구르지 않는 걸 보면. 2023. 9.27 소년문학에 보냄 나의 문학/동시 2023.10.26
해바라기 해바라기 땅위를 슬슬 기는 나팔꽃이 안쓰러워 슬며시 손잡아 주었더니 칭칭 몸을 감고 올라왔다 힘들어도 같이 견뎠더니 해바라기 환한 웃음 위로 고맙다고 나팔을 불어주었다. 2023. 9.13. 소년문학에 보냄 나의 문학/동시 2023.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