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벌국역사보존회주최 역사문화유적지 정비와 관광자원화 방안 토론회
2014 사벌국역사보존회주최 역사문화유적지 정비와 관광자원화 방안 토론회가 12월 12일 금요일 오후 1시 30분부터 상주시청소년수련관 강당에서 열였다. 이날 정환묵 상주문화융성시민모임회장과 의성군 박물관 최강국학예사의 발표와 김재수, 이세근, 정재석씨ㅇ가 토론자로 나와 행사를 마쳤다.
의성 召文國과 금성산고분군의 개발
최강국(의성군 학예사)
-목차- Ⅰ. 머리말 Ⅱ. 조문국에 대하여 1. 연구사검토 1)문헌사적 연구 2)발굴사적 연구 2. 조문국의 탄생 3. 조문국의 성장 4. 조문국의 멸망 | Ⅲ. 금성산고분군의 개발 1. 조문국사적지 공원화 사업 2. 조문국박물관 건립 사업 3. 3대문화권사업 신라본역사지움 (조문국지구)개발 Ⅳ. 맺음말 |
Ⅰ. 머리말
조문국은 의성지역에 있었던 고대 왕국으로 아직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5세기〜6세기 화려한 왕관 및 의성양식토기를 만들어낸 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나라였다. 그 나라의 중심지는 지금의 경북 의성군 금성면에 위치한 금성산고분군 일대임이 틀림없다.
의성 금성산고분군은 경북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 학미리, 탑리리에 분포해 있는 고분군 유적지로, 약380여기의 고분(309,830㎡)이 있으며 1998년 경상북도 기념물 제128호로 지정되었다. 2013년 12월 국가지정 문화재 사적으로 승격지정 신청하였다. 현재 문화재청에서 심사 중에 있으며 12월말 현장조사를 앞두고 있다.
금성산고분군 개발의 가장 큰 성과는 2013년 조문국박물관이 개관하였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2014년 5월 개관한지 1년 만에 10만명의 관람객이 다녀가는 대성과를 거두었다.
본 글은 Ⅱ장에서 조문국 및 조문국사적지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 Ⅲ장에서 조문국사적지의 개발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자 한다. 본 글은 준비하는 시간이 2주 밖에 없었기 때문에 문헌조사 및 관련자료를 탐구하는 시간이 부족하였다. 따라서 조문국과 금성산고분군의 개발에 대해서는 간략히 설명을 하는 정도의 글로 보아주기 바란다.
조문국(召文國)의 건립 연대는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데 대략 기원전 2세기로 보고 있으며, 멸망연대는 『三國史記』본기 벌휴왕 2년조에 나오는 기사가 유일하다.
二月 拜波珍飡仇道一吉飡仇須兮爲左右軍主 伐召文國 軍主之名始於此
2월, 파진찬 구도(仇道)와 일길찬 구수혜(仇須兮)를 좌우군주(左右軍主)로 삼아 조문국(召文國)을 정벌하였다. 군주(軍主)라는 명칭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三國史記』에 나오는 기록은 조문국의 정벌에 관한 기사가 나올 뿐 언제 건국이 되었는지에 대한 기사는 등장하지 않는다. 조문국에 대한 문헌기록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연구하기가 어렵다는데 있다. 따라서 연구의 진행 속도도 느리며 연구하는 학자도 많지 않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Ⅱ. 조문국에 대하여
1. 연구사검토
1)문헌사적 연구
조문국에 대한 연구는 관련문헌 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연구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三國史記』에 조문국의 정벌에 대한 기사가 한줄 정도 나오고 있는 것 외에는 관련 문헌이 거의 없다.
조문국에 관한 최초의 논문은 박순교의「召文國考」이다. 이전의 연구들은 조문국에 대해서 부분적으로만 접근을 하였는데 이 논문에서는 조문국에 대하여 상세히 논하고 있다. 召文에 대한 기록 검토 및 조문국의 통합과정, 조문국의 강역과 지역집단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박순교의 논문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서기 185년에 이루어진 신라의 조문국 정벌을 단순한 영토 확장이 아니라 중요한 진지를 설치하여 백제를 방비함에 있다는 것이다.
주보돈은「문헌상으로 본 義城의 召文國과 그 向方」이라는 논문에서 『三國史記』의 기록에 나오는, 서기 185년의 신라가 조문국을 정벌하였다는 기록은 신라본기 초기기록의 편년 자체가 널리 지적되어 왔듯이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으므로 그대로 신빙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사로국이 주로 진한에 속한 동료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병합운동을 통하여 신라로 전환하는 것은 대체로 4세기 전반경 이었는데 조문국이 신라에 병합된 것도 이때쯤이라고 한다.
김병곤은 「조문국의 탄생과 성장」이라는 논문에서 조문국은 기원전 3세기에서 서기 3세기 사이에 조문국이 실제하였다고 보고 있다. 특히 조문국은 당시 첨단 기술이라 할 수 있는 야금술을 바탕으로 금(金)생산을 통해 비약적인 성장을 도모하여 경제대국 내지는 문화대국을 지향하였다고 한다. 당시 사로국은 뛰어난 제철기술을 기반으로 군사대국을 지향하고 있었는데, 금(金)의 가치를 잘 알고 있어서 조문국을 정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조문국에서 생산되는 금(金)은 조문국의 성장 동력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사로국의 침략을 받게 되는 원인이 된 것이다.
조범환은「召文國과 斯盧國과의 관계 변화과정과 그 영향」이라는 논문에서 『三國史記』에 나타나고 있는 서기 185년의 조문국 정벌 관련 기사를 주보돈과 달리 그대로 믿고 있다. 조문국의 탄생은 한반도에 한사군이 설치되면서 해당 지역에 살던 수많은 사람들이 남쪽으로 이주하였고 그 결과 그들이 낙동강을 통해 조문국에 이르게 되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기왕의 연구 성과를 살펴보면, 현재 낙동강 동쪽 경상북도 일대에는 기원전 2세기경부터 소국들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므로, 조문국도 대략 이 무렵이거나 혹은 그보다 약간 늦은 시기에 이주민과 조문국 지역에서 지석묘를 축조하던 선주민과의 결합을 통해 조문국이 형성되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서기 185년 사로국의 침략을 받았지만 왕족의 일부가 사로국으로 이주하여 생활하였으며, 사로국의 허가 없이는 군사적인 행동도 할 수 없는 간접적인 통치가 이루어 졌다고 보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조문국에 대한 연구사 검토에서 핵심적인 내용은 『三國史記』에 기록되어 있는 조문국의 침략에 대한 기사를 신빙할 것인지 말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문헌상으로 나타나는 조문국의 성립에 대한 기사는 없기 때문에 기원전 108년 한사군의 설치로 인하여 남하한 세력에 의하여 조문국이 성립되었을 것으로 추측을 하고 있다. 서기 185년에는 사로국에의하여 조문국은 정벌을 당하였지만 일부세력이 경주로 이주하였으며 조문국은 예전처럼 군사권을 행사 할 수 없는 처지로 전락하여 간접적인 지배를 받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2)발굴사적 연구
일제강점기에 의성 금성산고분군에 대한 유리원판 사진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서 일제도 금성산고분군에 대해서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제에 의한 고분발굴에 대한 기록은 없다. 해방 이후 1960년 국립박물관의 관장인 김재원 박사팀에 의해서 탑리고분군이 발굴되었다. 금동관을 비롯하여 접형관식, 조익형관식, 금동제이식, 은제과대, 금동신발, 무기류, 마구류등 230여점이 출토 되었다.
김용성은 1960년에 국립박물관에 의해 발굴된 의성탑리고분 이후에 경북대박물관의 대리리 3호분 발굴, 학미리고분군, 조탑동고분군 발굴등의 성과를 정리하여 아래의 도표로 작성하였다.
고분 | 묘제 | 규모 | 주요 출토 유물 | 연대 | 비고 | |
탑리 고분 | Ⅰ곽 | 변형적석목곽 | 350×170×180 | 금동관, 은수식, 경식, 금동과대 | 5c전반 | |
Ⅱ곽 | 변형적석목곽 | 390×150×150 | 금동관식, 금이식, 은과대, 은장화두, 금동식리 | 5c전반 | ||
Ⅲ곽 | 변형적석목곽 | 350×150×90 | 곡옥부경식, 금이식, 금동관식, 환두도 | 5c중엽 | ||
Ⅳ곽 | 변형적석목곽 | 330×130×80 | 은제환 | 5c후반 | ||
대리 3호 | 1,2곽 | 적석목곽 | 주:370×130×? 부:510×180×? | 금동관식, 금이식, 은과대 | 5c전반 | |
3곽 | 변형적석목곽 | 300×160×? | 금수식, 경식 | 5c후반 | 도굴 | |
학미리고분 | 횔혈식석실 | 480×270×220 | 은장삼엽환두대도, 은과대?, 대형정동령, 쇠솥 | 6c1/4 | 도굴? |
<표1. 금성산고분의 발굴과 묘제>
김용성은 글에서 금성산고분군은 늦어도 5세기 초에 경주의 영향으로 성립된 적석목곽묘를 변형시켜 지상에 목곽을 두고 사방에서 돌을 쌓아 목곽을 고정한 다음 봉토를 덮는 금성산고분군 특유의 변형적석목곽묘로 볼 수 있는 묘제를 창출하여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2014년 10월 31일에는 성림문화재연구원에서 금성산고분군 중 일부를 발굴하여 중간발표를 가졌다. 조사구역에서 확인된 유구는 삼국시대 봉토분 4기, 목곽 28기, 석곽 21기, 석실 4기, 토광묘 1기, 고려~조선시대 건물지 1기, 소토유구 2기 등 모두 61기이며, 유물은 토도류, 금공품 및 철기류를 포함한 약1,000여점이 출토 되었다. 조사결과 확인된 유구는 5세기 중엽에서 6세기초를 중심연대로 하는 분묘군으로 현재가지 확인되지 않았던 암광묘 및 석곽등의 새로운 묘제가 확인됨으로서 금성산고분군 묘제에 대한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발굴된 은제관식, 금동관식, 은제과대, 규두대도, 금동관모, 삼엽환두대도 등의 유물은 의성지역 지배세력의 최고신분을 상징하는 중요한 위세품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는 것이라고 한다.
이상에서 금성산고분군의 발굴에 대한 연구사를 검토하였다. 대략 요약을 하자면 묘제는 대부분이 5세기에서 6세기에 걸쳐서 만들어진 것이며 발굴된 유물들도 역시 5세기에서 6세기의 유물들이라는 것이다.
위에서 조문국에 대한 문헌사적 연구와 발굴사적 연구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三國史記』의 기록을 믿는다면 조문국은 서기 185년에 신라에 정벌 당하였고, 발굴로 나타나는 유물들은 5세기~6세기에 걸친 유물들이라는 것이다. 즉 조문국이 멸망하였는데 실제 발견되는 유물의 연대와는 2백여년의 시간차이가 생긴다는 점이다. 이점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2. 조문국의 탄생
조문국의 탄생은 문헌기록상으로는 찾을 수가 없어서 정확히 언제쯤 생겨난 나라인지는 파악할 수가 없다. 다만 기원전 108년 한(漢)나라의 침공을 받은 고조선의 유민이 남하하면서 세웠을 것이라는 추측해 볼 수 있다.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는 벌휴왕2년(서기 185년)에 조문국을 정벌하였다는 기사를 그대로 믿어서 받아 들어도 될까하는 문제가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고대의 기록을 그대로 믿어도 좋을 것 같다. 몇몇 학자는 신빙하지 않고 있지만 『三國史記』의 고대기록을 사료비판하는 것은 좋으나 완전히 신빙하지 않고 무시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2세기경에 탄생하였던 조문국이 서기185년에 멸망하였는데 어떻게 5세기~6세기의 고분과 유물들은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인가? 라는 의문이 남게 된다. 『삼국사기』의 기록처럼 조문국은 서기 185년에 좌우군 파친찬 구도(仇道)와 일길찬 구수혜(仇須兮)에 의해서 정벌 당한 것은 사실로 보여 진다. 정벌을 하였지만 완전히 조문국의 정치 집단을 해체하여 직접 지배한 것이 아니라 군사권 및 몇몇분야에 제약을 가하는 간접적인 통치를 한 것으로 보여 진다. 즉 조문국이 정벌 당하였지만 조문국의 원래 통치자들은 신라의 제약을 받았겠지만 그대로 유지되었던 것이다.
조문국이 사로국에 의해 정벌 당한 다음 조문국의 지배세력 중 일부는 경주로 강제적으로 이주를 하여 인질 형식으로 거주를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 진위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화랑세기』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나온다.
미추대왕이 광명을 왕후로 삼으며 후세에 알려 말하기를 “옥모의 인통이 아니면 곧 황후로 삼지말라” 하였다. 까닭에 세상에서 이 계통을 진골 정통이라 한다. 옥모부인은 곧 조문국의 왕녀인 운모공주가 구도공에게 시집가서 낳은 사람이다. 옛날부터 진골이 아니다.
위의 기사를 살펴보면 서기 185년에 조문국을 정벌한 구도가 조문국의 공주 운모공주와 결혼을 하여 옥모를 낳았다. 옥모의 세력 즉 조문국 유민의 세력들 매우 커져서 옥모의 계통이 아니면 왕후로 삼지 말라 라는 말까지 하고 있다. 또한 이런 옥모 세력이 원래는 진골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조문국이 사로국에 정벌당하였지만 후대세력들은 경주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영향력은 조문국의 본거지에 남아 있는 세력들의 도움을 받아 가면서 유지되었던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겠다.
토기분야에 대해서 살펴보면 의성금성산고분군 출토 토기를 지표로 하는 의성양식토기는 경부북부의 안동, 상주, 문경뿐만 아니라 동해연안 지역, 나아가 청원지역까지 확인된다고 한다. 5세기때에는 금성산고분군에서는 경주양식토기가 출토되지 않으며 5세기 말~6세기 전반으로 편년되는 학미리 고분군 단계에 가서야 경주 양식토기가 출토되기 시작한다고 한다.
금성산고분군의 묘제에 있어서도 변형된 적석목곽분이 있었다고 앞에 연구사 검토에서 살펴 보았다. 적석목곽분은 경주지역에서 주변으로 퍼져나간 묘제이다. 이러한 묘제 역시 금성산고분군에서는 5세기가 되어야 나타나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내용을 종합하여 보면 조문국은 추측이기는 하지만 2세기경에 탄생 했다가 서기 185년에 사로국의 정벌을 받았지만 조문국을 완전히 해체하지는 못하였고 간접지배를 받았다. 조문국의 일부 지배세력은 인질격으로 경주로 압송되었다. 그렇지만 조문국을 원래 통치하던 세력은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의성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남아 있던 세력과 경주로 끌려갔던 세력은 긴밀하게 계속해서 서로 영향력을 주고받았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문국의 공주 출신이 경주에서 큰세력을 펼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3. 조문국의 성장
조문국은 기원전 2세기경에 출현하였다. 그 본거지는 현재 의성군 금성면 있는 금성산고분군이 있는 곳이 틀림이 없다. 의성은 경상북도의 정중앙에 위치해 있는 곳이다. 계립령(문경과 충주를 잇는 고개) 및 죽령을 거쳐서 경주로 들어가려면 의성을 거쳐서 영천을 통해 경주로 들어가는 길목에 의성이 있다. 교통의 요지에 조문국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교통의 중심지에 있었기 때문에 사로국에서 군사적인 요충지임을 알고 백제를 방비하기 위해서 조문국을 정벌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이러한 지리상의 이점을 이용하여 주변국과 활발한 교역을 통하여 많은 부를 축척한 것으로 보인다.
조문국에는 금(金)이 산출되는 지역이었고 그리고 금은을 채광하고 가공하는 기술자들을 다수 확보함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조문국 자체가 금은의 산지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다량의 금은 산지가 과연 어디였을까 하는 문제는 그동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겨진 상태이다. 과거의 지명으로 금이 산출된 지역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은 김천(金泉)과 의성 두곳이라고 주보돈 교수는 보고 있다. 주보돈 교수는 고구려에서는 연개소문(淵蓋蘇文)에서 蘇文을 일명 蓋金이라고 풀이한 사실이 있는데 소문이 곧 금을 뜻하는 것으로 확인된다고 한다. 고구려에서는 召文이 곧 금으로 치환될 수 있다고 하면서 소문은 금의 뜻을 지니고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금성산(金城山) 및 금성면(金城面)도 역시 금(金)과 관련된 지명으로 과거에 여기에서 금이 생산되었을 가능성이 많다고 볼 수 있다고 한다.
조문국은 교통의 요지에 있으면서 금(金)이 산출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현재 남아 있는 금성면과 금성산 등의 지명에서도 금과 관련된 지명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금이 생산되었고 지리상으로 요충지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오히려 사로국의 정벌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4. 조문국의 멸망
조문국의 멸망은 『삼국사기』의 기록처럼 서기 185년에 사로국에 의해서 정벌당한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구도(仇道)와 구수혜(仇須兮)에 의해 정벌을 당하였지만 조문국을 원래 통치하던 세력을 완전히 해체하지는 못하고 간접적인 지배를 하였다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조문국은 사로국의 정벌을 당하여 군사적 독자적인 행동 및 몇몇 분야에서는 제약을 받았겠지만, 조문국의 지배세력은 당당하게 남아서 세력을 유지하였던 것이다.
일단 조문국은 기원전 2세기경에 탄생하여 서기185년에 사로국의 정벌을 받아 큰 타격을 입었으나 조문국의 정체성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고 본다. 그렇다면 조문국의 멸망시기를 언제로 보아야 타당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게 된다.
『三國史記』地理志 尙州條를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문소군은 본래 조문국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의 의성부이다. 영현이 넷이었다. 진보현은 본래 칠파화현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의 보성이다. 비옥현은 본래 아화옥현 또는 병옥이라고도 하였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도 그대로 쓴다. 안현현은 본래 아시혜현 또는 아을혜라고도 하였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의 안정현이다. 단밀현은 본래 무동미지 또는 갈동미지라고도 하였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도 그대로 쓴다.
위의 기사에서처럼 신라 경덕왕(742-764)대에 조문국이 문소군으로 재편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록에서처럼 본래 조문국이 있었는데 문소군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다. 이때부터 조문국은 신라의 직접 지배 하에서 행정구역도 개편이 되고 그 이름도 완전히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 즉 조문국은 8세기 경덕왕대에 와서 그 정체성이 완전히 사라지고 신라에 동화된 것으로 보여진다.
Ⅲ. 금성산고분군의 개발
금성산고분군의 개발은 1960년 국립중앙박물관의 관장인 김재원박사의 탑리고분 발굴을 시작으로 처음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발굴은 금성산고분군을 개발하기 위해서 발굴을 한 것은 아니었다. 김재원 관장은 경상북도의 중앙선 철도가 지나는 지역에는 아직까지 조사가 없었고, 『삼국사기』에 나오는 조문국의 성격에 대해 밝히기 위해서 발굴을 시도하였다.
본격적인 개발은 경북북부 유교문화권 관광개발계획에 의해서 진행된 조문국사적지 공원화 사업(2001~2009), 조문국박물관 건립 사업(2007~2012), 신라본역사지움 조문국지구 사업등을 들 수 있다.
1. 조문국사적지 공원화 사업
경북북부 유고문화권 관광개발계획의 하나로 시작된 조문국사적지 공원화 사업은 총사업비 93억원(국비47, 지방비 46)이 투자되었다. 2001년부터 시작하여 2009년에 사업이 마무리 되었다.
금성산고분군의 정비, 탐방로 설치, 녹지공원조성 및 주변정비를 실시하였다. 금성산고분군을 공원화하여 주위의 금성면 산운마을과 점곡면 사촌마을, 빙계리 얼음골을 연계한 관광코스를 개발하여 관광기반을 조성하는데 역점을 두고 사업이 실시되었다. 주요사업은 금성산고분군에 안내판 및 주차장 설치, 화장실 설치, 녹지공원 조성, 고분정비, 묘제체험관, 고분 발굴(2기), 고분군 탐방로 조성, 고분연계 주변 정비 등을 실시하였다. 지금 현재의 조문국사적지(금성산고분군)은 이 사업의 시행으로 대부분이 정비 되었다.
2. 조문국박물관 건립 사업
조문국박물관 건립의 근본 원인은 1960년의 국립중앙박물관의 관장 김재원 박사가 주도한 의성탑리고분을 발굴하면서부터라고 볼 수 있다. 이때 우수한 유물들이 출토 되었는데 모든 유물을 국립박물관으로 이관하여 보관하게 된 것이다. 당시에는 의성에 박물관이 없었기 때문에 유물을 보관하고 전시할 장소가 국립박물관이 유일하여 어쩔 수 없는 조치였던 것이다. 그때 당시에는 6.25전쟁이 끝나고 7년 정도 지난 뒤인데, 국민들이 아직까지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시기였다.
47년의 세월이 흘러 2007년이 되어서야 의성 금성산고분군에서 출토된 문화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2007년 영남일보에 게재된 민선 5기의 김복규 군수 인터뷰 내용은 아래와 같다.
의성군은 1960년부터 시작된 발굴에서 봉토가 획인된 고분만 탑리리 130여기, 대리리 40여기, 학미리 30여기 등 미확인고분까지 합산하면 380여기가 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여기서 발굴된 유물 또한 방대한 양을 자랑한다. 그러나 발굴된 유물들은 보관상의 이유로 발굴단이 남긴 보관증과 바꾸어야만 했다. 이 유물들은 경주를 제외한 신라의 지방고분에서 출토된 유물 중 최상급이었다. 출토된 유물들은 “의성양식토기”가 대부분이며, 금동관, 대도 등의 부장품과 마구류 등 다양한 금속제품이 주를 이루었다.
김군수는 “변변한 박물관 하나 없었기에 외지에 반출된 유물들을 꼭 되찾을 것” 이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의성군에 조문국 유물관 건립을 서두를 것이며, 군 재정이 열악하지만 ‘의성군민 자긍심 되찾기 운동’을 펼쳐서라도 외지로 반출된 유물을 되찾겠다”고 했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김복규군수는 금성산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이 타지역에 유출되어있는 유물을 조문국박물관을 건립하여 되찾아 올려고 하는 의지가 강하게 나타나 있다.
현재 금성산고분군에서 발굴된 유물은 대략 740여점이 국립대구박물관과 경북대학교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구분 | 유물명 | 수량 | 소장처 | 비고 |
금성산고분군출토유물 | 탑리고분출토유물 | 약230여점 | 국립중앙박물관 | |
대리고분출토유물 | 약270여점 | 경북대박물관 | ||
학미리고분출토유물 | 약240여점 | 경북대박물관 | ||
계 | 약740여점 |
<표2. 금성산고분군 출토유물 보관처>
의성에서 발굴된 유물이지만 조문국박물관에는 단한점도 금성산고분군의 출토유물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조문국박물관에서는 전시할 자료가 없어서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유물을 대여하여서 전시하고 있다. 의성에서 출토된 유물이지만 의성에는 단한점도 남아 있지 않다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김복규 군수의 인터뷰 이후 2008년 7월 25일에는 의성문화원 시청각실에서는 “조문국유물 되찾기 및 조문국박물관 건립추진 범군민연대회의” 발기인대회를 갖고, 공식출범에 박차를 가하였고, 준비위에서는 다음과 같이 결의를 하였다.
①반출된 유물 반환 및 전시·보관을 위한 박물관건립 서명운동
②가칭 '조문국박물관' 건립을 위한 기금 모금
③정치권과 중앙정부를 대상으로 하는 범군민 궐기대회 및 실무부처 방문 ④조문국 위상 제고를 위한 학술대회 개최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칠 것
김종우 의성문화원장은 "유네스코는 모든 문화재가 제자리로 돌아가야 할 것을 천명했다. 또 그리스는 서구열강이 약탈해간 문화재를 돌려달라는 의미로 큰박물관을 건립해 기다리고 있다"며 범군민연대 결성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마재하 준비위원장(전 군의원)은 "지역민의 자긍심인 조문국 유물을 되찾기 위한 열기가, 유물을 보관 중인 외지 박물관과 중앙정부에 꼭 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결의를 다졌다.
이어서 2008년 9월 5일에는 '조문국 유물 되찾기 및 박물관 건립추진 범군민연대회의'(공동대표 김동호·김재도·김종우·신경효·신태하·황종규)가 군민회관에서 김복규 군수·남동화 군의회의장을 비롯한 기관단체장과 지역주민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조문국(召文國) 유물 반환과 이를 보관할 박물관 건립을 위한 범군민대회를 열고 공식출범하였다.
연대는 이날 공식출범과 동시에 △공동대표 6명 △상임고문 5명 △자문위원 11명 △집행위원 5명 △운영위원 31명 △홍보위원 15명 △사무국 등 운영기구를 편성하는 등 구체화됐다. 범군민연대는 출범식을 통해 조문국 유물을 되찾는 것과 이를 보관할 박물관 건립을 목적으로 하는 △3만명 서명운동 △박물관건립 기금모금운동 △학술연구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칠 것을 다짐했다. 범군민연대는 보관상의 이유로 외지에서 전시 중인 유물을 되찾기 위해 군민들의 자발적인 기금모금운동과 중앙정부의 예산지원으로, 금성면 초전리 일원 조문초등 부지에 125억원을 들여 3천㎡ 면적의 '조문국박물관' 건립에 주력하고, 한편 김동호 변호사(공동대표·53)는 "프랑스가 약탈한 외규장각도서가 제자리에 돌아와야 하듯, 조문국 유물도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며 "우리 6만 의성인의 염원을 담아 꼭 성사시킬 것"이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2008년 낙동강프로젝트 사업에 조문국사적지 박물관 건립계획이 들어가게 되고 의성군 조문국박물관 건립 기본계획이 만들어 지면서부터 조문국박물관 건립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조문국박물관은 2010년 2월 1일 공사를 시작하여 2012년 10월 24일 준공을 하였다. 건물을 준공하였지만 유물을 전시하는데 시간이 걸려서 개관은 2013년 4월 5일 하게 되었다.(지하 1층 지상 3층, 부지면적 18,695㎡, 건축연면적 3,980㎡) 공사비용은 처음 예상한 것 보다 많이 들어 18,000백만원 (광특 4,500, 도비 3,150, 특교 2,500, 군비 7,850)이 들어갔다.
조문국박물관은 1종 전문박물관으로 야외전시장으로 미로정원, 도자기정원, 석실고분, 고인돌, 탑리오층석탑(모형), 어린이놀이터 등을 갖추었다. 개관 1년 만에 관람객 10만명을 돌파하였다. 총소장유물은 1,956점이며 이 중에서 127점은 국립대구박물관에서 대여하여 가져온 유물이다.
3. 3대문권사업 신라본역사지움(조문국지구) 개발
3대문화권 사업은 현재 진행 중에 있는 사업으로 의성에서는 신라본 역사지움 고운사지구와 신라본역사지움 조문국지구 2개가 있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고운사지구와 조문국지구에 536억원(국비22,720백만원, 군비 30,920백만원)을 들여 개발하는 사업이다.
신라역사의 근간을 형성한 의성군 조문국의 문화원형을 보존하고, 청정 자연환경 속에 꽃핀 신라문화의 흐름을 현대적으로 재조명하여 의성의 관광명소로 조성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조문국지구에서는 조문국역사문화체험지구를 만들어 문화예술체험공간을 만들어 토기촌(전시관, 가마터 등), 조문국 사적지 탐방로를 조성한다. 즉 의성군 토기 전시 및 체험공간 조성, 대리리-학미리 고분공원 탐방길 조성할 예정이다. 경관탐방의 공간에서는 학미리고분군을 복원하여 고분역사공원을 조성한다. 휴식의 공간에서는 조문국 도읍지 탐방전망관(조성완료), 고분공원 문화쉼터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Ⅳ. 맺음말
맺음말은 위에서 설명한 부분을 요약하는 것으로 마무리 하고자 한다. 조문국은『삼국사기』벌휴왕 2년(서기 185년)에 사로국에 정벌당하였다는 기사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기록이 없다. 따라서 사료의 부족으로 인하여 연구하기가 어려운 점이 많다.
조문국의 탄생은 문헌기록이 없어서 파악하기 어려운데 한사군이 설치되고 남하한 고조선의 유이민이 대략 2세기경에 건립하였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멸망은 『삼국사기』의 기록대로 서기 185년에 사로국에게 정벌 당하였다. 그러나 조문국의 지배세력을 완전히 해체 시키지 못하고 간접지배를 하여 조문국의 정체성은 그대로 살아 남았던 것이다. 신라의 영향을 받은 적석목곽분의 형태가 조문국에서는 5세기에 가서야 등장하기 때문이다. 조문국은 8세기 경덕왕이 지방조직을 개편하면서 문소군으로 개칭하면서 그 세력이 없어진 것 같다. 조문국은 금성산고분에서 출토된 화려한 금관 및 의성양식토기에서 볼 때 5세기에서 6세기 사이에 최대의 전성기를 누렸던 것이다.
금성산고분군의 개발은 1960년 국립중앙박물관의 고분 발굴로 처음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에 국보급 유물이 출토되었으나 의성에 박물관이 없어서 국립박물관으로 가져가 보관하였던 것이다. 50여년의 세월이 흘러 2007년이 되어서야 의성에서 출토된 유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의성의 유물을 의성에 보관하고자, 조문국박물관을 건립하려는 의식이 들불처럼 일어난 것이다. 이후 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고, 조문국박물관은 2007년 건립계획을 세워 2010년 공사에 들어가 2013년 4월 5일 개관하였다. 박물관을 개관하였지만, 조문국박물관에는 아직까지 1960년에 김재원박사에 의해 발굴된 유물을 비롯하여 740여점의 유물은 단한점도 돌아오지 못하고,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유물을 대여하여 전시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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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 2007년 5월 3일자.
영남일보 2008년 6월 20일자.
영남일보 2008년 9월 6일자.
상주 병풍산 유적지의 관광자원화 방안
상주문화융성시민모임 회장 정환묵
목 차
Ⅰ. 서 론
Ⅱ. 병풍산 유적지와 창조관광
2.1 병풍산 유적지 관광환경 조성
2.2 문화의 융(복)합 기술과 창조관광
2.3 문화콘텐츠 산업
2.4 문화와 IT 융(복)합 기술
2.5 문화콘텐츠와 스토리텔링
Ⅲ. 병풍산 유적지의 관광자원화 모델
3.1 문화유산의 관광 자원화
3.2 정신문화의 산실인 병풍산 유적지 공원화
3.3 병풍산 유적지 중심 스토리텔링
3.4 병풍산 승천원의 영성문화 체험지 조성
3.5 병풍산 주변의 관광자원과의 연계 방안
3.6 문화 건강 융(복)합 비즈니스 모델
Ⅳ. 문화유산의 디지털화
Ⅴ. 결 론
Ⅰ. 서 론
문화가 100년의 국가 미래를 준비하는 시대가 되었다. 세계 각 국가나 민족 단위의 전통문화가 정보기술(IT와 CT의 융합기술)과 만나 새로운 문화상품으로 변형되어 각광을 받고 있다.
미국, 영국, 유럽연합 등은 정부의 지원으로 창조문화산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고, 다양한 문화상품을 개발하여 미래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자국의 문화상품을 홍보하기 위하여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본 원고에서는 경상북도 기념물 제125호(1998. 4. 13)로 지정되어 있는 상주 병풍산 고분군을 중심으로 이 일대 유적지의 성격이나 역사적 가치에 대한 지금까지의 관련자료에 의거하고 여기서는 IT융(복)합 기술과 창조관광에 기반한 상주 병풍산 유적지의 관광자원화 방안과 활성화 방법을 제안 한다.
문화산업 육성과 문화의 상품화 현상 중 하나가 문화유산의 관광자원화이다. 문화의 경제적 측면에서 관광은 문화소비 행위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자본 증가에 따라 관광성향이 개별화와 차별화를 추구하는 관광형태로 변화하고 있어 수요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문화유산의 관광자원화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관광이 지니고 있는 상업적 속성으로 인해 문화유산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에 대하여 많은 우려와 반대하는 견해가 높은 것도 사실이다. 문화유산의 관광자원화에 의한 상품화의 반대 논리는 문화유산의 관광화에 대한 이데올로기와 제도적 맥락이 일반관광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고, 문화유산 관리에 아직도 큐레이터(curator)적 사고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보존중심의 문화유산 관리정책은 재정문제와 의사결정과정에 일반인들의 참여보다
문화유산을 가능한 원형대로 보존하기 위한 유지관리를 우선으로 여기고 있는데서 출발하고 있다.
한편, 문화유산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에 대해 문화의 상품화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역사와 문화를 관광자원으로 개발하여 방문객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도 경제활동의 하나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지금까지 “사벌국역사보존회” 같은 민간단체의 노력으로 일부 정화작업을 통해 관리되고 있으나 유적지 전역을 대상으로 종합적인 발전계획과 관리대책의 수립은 한계가 있다. 지자체나 정부관련 기관의 지원이나 협력 아래 본 유적지의 정비나 복원 및 개발계획은 중 ․ 장기 발전계획의 틀 속에서 체계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에 의해 조성된 시설이 제대로 운영 관리되지 못하고 무용지물로 전락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정부나 지자체 중심 주도의 하향적 보존 및 활용 정책은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지 못하고 의타심만 초래하거나 주민의 자립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상주 병풍산 유적지의 역사 ․ 문화의 사회적 가치를 경제적 가치로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유적지와 경천대 일원의 관광자원을 네트워킹화 하여 관광자원화 함과 동시에 “사벌국역사보존회”나 “상주의 역사 ․ 문화 지킴이”와 같은 봉사단체와 함께 민․ 관의 적극적인 협력이 있어야 한다.
또한, 병풍산 고분군의 전통문화를 문화산업기술(CT)과 융(복)합 기술 등을 활용하여 콘텐츠화 함과 동시에 출판(만화), 비디오, CD, 캐릭터/에니메이션, 음반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국내는 물론 국경을 넘은 지구촌 전체에 상주의 지역문화를 홍보해야 한다.
Ⅱ. 병풍산 유적지와 창조관광
2.1 병풍산 유적지 관광자원화 배경
여기서는 경상북도 기념물 제125호(1998. 4. 13)로 지정되어 있는 병풍산 고분군을 중심으로 이 일대 유적지의 성격이나 역사적 가치에 대한 관련 자료는 지금까지의 연구를 기반으로 한 논문과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유적의 보존. 복원 및 산업적 가치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학문적 고증과 더불어 높은 디지털 기술이 필수 요소다. 체계적인 조사와 연구를 통한 학술적 기반 위에서 단기적으로는 주변정화 위주, 장기적으로는 종합적인 복원 정비에 이르는 종합정비계획을 수립하고 이에 의거하여 체계적으로 실행해 가면서 동시에 다양한 활용방안도 강구하는 형태가 가장 이상적이며 또한 합리적 방법이다.
병풍산 고분군 주변의 이미 훼손되거나 소멸된 문화유산은 복원이나 재현을 통하여 관광 자원화하고 전통적인 역사․ 문화자원과 생태관광 자원을 개발하거나 관광자원화 하여 상품화 할 필요가 있으며, 경제적 파급효과를 극대화 하여야 한다.
그러나 너무 역사적 사실이나 검정에만 초점을 마출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검정이 다소 부족하여도 창의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관광에 대한 새로운 가치와 패러다임을 창출하고, 문화 ․인문 ․과학기술의 융․복합을 통해 창출된 관광자원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 창조관광이라고 볼 수 있다.
향후 병풍산 고분군의 조사 및 연구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이 일대 유적지를 상주를 대표하는 유적지로 격상시키기 위한 자리매김과 관광 활성화도 추진되어야 한다.
문화유산의 관광자원화는 문화경제(cultural economy) 활동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문화경제 관점에서 문화상품화는 지역에 소재하고 있는 유적지, 서원, 사찰, 경관, 문학작품, 드라마, 시각적 예술, 민속, 수공예품 등과 같은 문화적 요소를 적절한 방법으로 선정하여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병풍산일대 유적의 발굴, 복원 및 정비를 통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은 문화경제 측면에서 다양한 형태의 문화생산의 소재를 제공하는 기회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문화유산의 관광자원화와 같은 문화의 상품화는 옛 모습과 연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전통문화 활성화에 기여할 수도 있다. 문화의 많은 분야에서 진정성이 상실되고 있는 지금, 관광자원화로 인한 문화의 상품화가 새로운 문화 창조의 계기가 되고 있다는 견해가 있다. 특히 현대사회에서는 실물과 복제물, 원본과 변조물,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동일한 수준에서 유지하는 것과 같이 문화영역에서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문화영역과 마찬가지로 현대사회의 관광에서는 관광객들이 진품보다 모조품을 더 선호하는 현상을 실존적 진정성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다. 현대사회의 문화현상과 마찬가지로 관광을 문화영역의 하나로 볼 때, 현대사회에서 나타나는 관광현상의 진정성 문제는 실존적 진정성 의미로 접근할 수 있다.
지금까지 알려져 있는 병풍산고분군의 출토자료는 유적의 전모를 밝힐 수 있는 학술 발굴 조사가 선행되어 이를 근거로 단계별로 추진되어야 한다.
이상의 검토를 통해 병성동~헌신동을 잇는 병풍산고분군, 병풍산성 등 병풍산 일대 유적지를 관리. 정비와 아울러 활용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단계별로 추진되어야 한다.
병풍산 유적지 주변의 이미 훼손되거나 소멸된 문화유산은 복원이나 재현을 통하여 관광 자원화하고 전통적인 역사․ 문화자원을 개발하거나 관광자원화 하여 호국과 관련된 교육훈련장 (학생, 군인, 공무원 등) 등으로 사용하도록 관광 상품화 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병풍산 유적지의 경유형 관광객을 체류형 관광객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상주지역 뿐만 아니라 타 시(군)지역의 관광지나 휴양지 까지를 연계한 다양한 관광 상품을 개발하여 경제적 파급효과를 극대화 하여야 한다.
(단계 1) 병풍산 일대는 유․ 무형의 소중한 역사. 문화 유적을 많이 갖고 있다. 병풍산 일대 유적의 전모를 파악하기 위한 종합적인 학술․ 발굴․ 조사 계획을 수립하여야 한다.
(단계 2) 현재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유적범위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 하므로 유적 전체를 보호구역이나 개발금지 구역으로 지정하여 더 이상의 파괴나 형상변경이 진행되지 않도록 보존, 관리해 나가야 한다. 효율적인 보존관리를 위해서는 시유지로 편입해 나간다. (단계적으로 매입해 나가는 체계적인 매입 계획의 수립과 실행이 필요하다)
(단계 3) 이러한 병풍산 일대 유실된 문화유산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복원 (restoration)이나 재현(reconstruction)을 통해 원형을 회복하도록 한다.
(단계 4) 디지털 문화재의 보존. 복원 및 산업적 가치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학문적 고증과 더불어 높은 디지털 기술이 필수 요소 이다. 여기에는 유․ 무형의 문화재를 발굴하고 축적하여 디지털 자료화(DB)하는 기술, 측정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원형을 모델링하고 복원․ 재구성하는 기술, 그리고 디지털 문화재의 관리 및 보존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통합관리 기술 등 여러 기술들이 필요하다.
(단계 5) 이와 같이 디지털화 하여 문화 컨텐츠화 하는 데에도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야 한다. 이러한 기술과 접목된 인문사회학, 디자인, 예술, 민속학 분야의 다양한 지식과 노하우를 활용하여야 한다.
병풍산 유적의 정비와 아울러 다양한 활용방안을 수립하여 지역주민의 학습장으로 활용함은 물론, 관광객의 발길도 끊이지 않게 하는 다양한 문화컨텐츠를 개발하여야 한다.
2.2 문화의 융(복)합 기술과 창조관광
창조경제 (Creative Economy)의 기본개념은 자본이나 단순한 노동보다 인간의 창의력, 상상력, 아이디어, 지적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선도형 경제로 창조산업(creative industries)이 핵심이 되는 개념 이다. 국민 개개인의 상상력과 창의성을 과학 기술과 ICT(정보통신기술)에 접목해 산업과 산업, 산업과 문화 콘텐츠와의 융합과 창업을 통해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산업과 시장,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창조경제는 과학기술 한 분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산업 전 분야에 걸쳐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나가는 것이다. 창의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가치와 패러다임을 창출하고, 문화 ․ 인문․ 과학기술의 융 ․복합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이끌어 가야 된다.
즉, ‘창조경제’ 개념은 가치 창출의 요소가 노동·자본(산업경제), 지식·정보(지식경제)에서 이제 “혁신적 기술과 창의적 아이디어”가 중심인 ‘창조경제’의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국민의 상상력과 창의성을 과학기술과 ICT에 접목하여 새로운 산업과 시장을 창출하고, 기존 산업을 강화함으로써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새로운 경제전략 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따라서 창조관광이란 기존 관광산업에 상상력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더해 새로운 고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관광산업으로 관광벤처라고도 한다. 농업, 환경, 의료, 정보기술(IT), 교육, 레저, 예술 등 다양한 영역을 관광과 접목해 융·복합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관건이라 할 수 있다.
창조경제에 대한 활용과 이해는 이론 및 학문을 중심으로 한 해석보다는 정부의 정책적 관점에서 창조경제에 대한 이해와 해석을 중심으로 이들의 적용이 많아 창조경제를 통일된 개념으로 해석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정부의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이라는 개념은 대중적 합의에 의한 개념의 정착 과정보다 통치권자의 의지가 곧바로 반영되어 완성된 것으로 아직도 개념만 난무하고 실현방식 또한 추상적이며 일반 국민들 대부분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 것 같다.
또 창조경제에 이어 문화융성이라는 개념은 경제논리와 문화논리 간 조합, 즉 산업적 가치 (문화콘텐츠, 한류, 창조산업, 일자리 창출 등의 키워드)와 문화적 가치(문화유산, 갈등 치유, 격차 해소 등 사회적 가치 확산, 문화복지, 행복문화 등의 키워드)가 공존해 있다.
문화는 이와 같이 ‘문화의 융성’과 ‘문화를 통한 융성’ 두 범주 모두를 지칭하는 방식으로 쓰이고 있다. 이번 정부에서 문화의 융성이 “인문, 예술, 콘텐츠, 체육, 관광 등 문화 분야의 역량이 전반적으로 향상”되는 것이라면, 문화를 통한 융성이란 “문화의 융성이 다른 사회 분야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지칭한다. 문화를 융성하려는 가치 실현 방식에서는 하나가 경제적 가치추구 (창조경제/창조산업) 라면 다른 하나는 문화·사회적 가치 추구 (국민행복/문화행복) 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국가사회 전 분야에 걸쳐 신기술이 급속도로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으며 컴퓨터 기술 보급, 휴대전화 및 인터넷 사용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과 접목된 인문사회학, 디자인, 예술, 민속학 분야의 다양한 지식과 노하우를 발굴하고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신기술을 활용해야 한다. 이와 같은 신기술은 인류의 미래를 변화시키고 있고 신기술의 특징은 전체가 방대하면서도 서로 다른 기술이 상호 융합하여(특히 IT, BT, NT, CT) 보다 첨단화된 기술의 탄생을 위한 상승작용을 하게 된다. 또 이러한 기술은 기존기술(전통기술)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에 전통기술과도 접목되어 전통기술의 첨단화 및 경쟁력 유지를 위하여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문화기술(CT: culture Technology)은 문화예술. 인문사회. 과학기술이 융합하여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게 하는 기술을 다룬다. 이러한 기술을 기반으로 문화산업은 창작에 의해 만들어진 문화, 예술작품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으로서 통상적으로는 인류의 유.무형적 생산물 전반을 지칭한다. 그 영역은 전통문화(문화원형),지식, 교육, 언론, 출판, 순수예술 등을 망라한다고 볼 수 있다. 좁게는 영화, 에니메이션, 게임, 방송, 인터넷, 모바일, 음악 등에 관련된 기술을 의미 하기도 한다.
2.3 문화콘텐츠 산업
콘텐츠산업이란 음악, 영상, 게임, 만화, 에니메이션 등의 문화적・오락적 작품을 상품으로 생산, 유통, 판매하는 영리산업을 말한다. 이들의 대부분은 저작권이나 상표권 등의 지적재산권으로 보호되고 있고, 이것을 활용한 형태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에 착안하여 (특히 미국 등) 저작권산업이라고도 한다. 콘텐츠 산업에 포함되는 영화나 음악, 게임 등은 지금까지 놀이나 오락으로 취급되어 왔고 경제성장에 있어서는 마이너스적인 존재로 취급되어 왔다. 또 에니메이션이나 만화 등이 인기는 있어도 수출로서 경제적 가치를 갖어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선진국은 이 업계가 가지는 경제적 가치에 착안하여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산업이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고 부가가치가 높은 고도의 지적인 서비스 산업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제조업 등과 융(복)합에 따라 경제적 파생효과 면에서도 기대를 받고 있는 산업이라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콘텐츠(Culture Contents)란 문화적 요소가 체화된 콘텐츠를 의미하는 개념이다. 21세기에 문화가 중요해지면서 자연스레 문화콘텐츠라는 합성어가 일반화 되었다. 최근에는 특히 산업과도 결합하면서 부가가치의 새로운 원천이 되고 있고 미래 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문화 콘텐츠란 말 이전에는‘디지털 콘텐츠’란 말이 상용되었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의 기반에서 이루어지는 정보사회에서 디지털의 기술적 우월성과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었고, 이와 함께 사람들은 콘텐츠의 가치에 주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또한 급속도로 발전해 온 디지털 기술에 힘입어 콘텐츠의 디지털화가 이루어지면서 ‘디지털 콘텐츠’란 말이 정착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후 콘텐츠의 범위가 넓어지고 과학기술과 문화의 결합이 강조되면서 문화컨텐츠 산업이 오늘날 새로운 유망 트렌드로 부각되었다.
문화콘텐츠산업이란 창의력, 상상력을 원천으로 문화적 요소를 이용하여 경제적 가치를 산출하는 산업을 말하며, 문화산업 중에서도 특히 매체와 결합해 고부가가치를 생산해내는 분야를 뽑아낸 개념으로써 문화콘텐츠산업 분야로 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 게임, 영화, 방송콘텐츠, 음악, 공연, 에듀테인먼트 콘텐츠, 인터넷/모바일 콘텐츠 등을 포함시킬 수 있다.
현재 문화콘텐츠에 대한 정의는 매우 다양하지만 학계의 일부 학자는 자신의 전문분야를 디지털 데이터화하는 것을 문화콘텐츠라고 하고, 일부 현장의 기술자는 자신의 기술로 구체적인 상품을 만드는 것을 문화콘텐츠라고 한다. 또 일부 경영자는 오로지 대중에게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문화를 문화콘텐츠라고 한다. 이처럼 문화콘텐츠는 각자가 자신의 관점이나 자신의 학문적 편향에 따라 나름대로의 의미와 자기 학문 중심적인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문화컨텐츠 산업은 제조업 대비 성장률, 고용유발 효과, 수출 증가율이 높은 고성장 산업이자‘저탄소 녹색성장’을 선도할 미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평가된다. 이와 더불어 젊은 층들의 소비문화를 자극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산업이기 때문에 미래 가정을 이루는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미래가 더 중요한 산업이라고 본다.
문화산업의 대표적 특징은 창구효과(Window Effect)로서 하나의 문화상품이 문화산업의 한개의 영역에서 창조된 후 부분적인 기술적 변화를 거쳐 문화산업 영역 내부, 혹은 다른 산업의 상품으로서 활용이 지속되면서 그 가치가 증대되는 효과로서 원소스(One-Source)의 흥행여부에 따라 파생상품의 흥행이 결정된다. OSMU(One-Source Multi-Use)는 하나의 원천 콘텐츠가 게임, 만화, 영화 , 캐릭터 , 소설 , 음반 등의 여러 가지 2차 문화상품으로 파급되어 원소스의 흥행이 2차 상품의 수익으로까지 이어지는 문화 상품만이 가지는 연쇄적인 마케팅 효과를 말한다.
OBMU(One-Brand Multi-Use)는 하나의 문화 컨탠츠를 게임 /출판 /음반 / 영화/ 애니메이션 등으로 동시에 발표하는 것을 말하며. 시너지 효과를 겨냥한 새로운 마케팅 전략으로 최근에 각광을 받고 있다.
예를들어, 조앤롤링이라는 작가에 의해 출판된 해리포터 소설 시리즈가 원소스 멀티유스 (소설 - 연극 – 뮤지칼 – 오페라 – 영화 – 게임 – 캐릭터 )가 되어 엄청난 부가가치 소득을 창출할 수 있었다.
Ⅲ. 병풍산 유적지의 관광자원화 모델
3.1 문화유산의 관광 자원화
최근에 경제 및 문화자본 증가로 문화의 경제적 가치가 증가함에 따라 문화산업 육성과 문화를 상품화하기 위한 노력이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문화산업 육성과 문화의 상품화 현상 중 하나가 문화유산의 관광자원화이다. 문화의 경제적 측면에서 관광은 문화소비 행위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자본 증가에 따라 관광성향이 개별화와 차별화를 추구하는 관광형태로 변화하고 있어 수요변화에 대응하기 위하여 문화유산에 대한 관광자원화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변화하고 있는 관광환경과 여건을 분석하고 관광성향에 대응하여, 관광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 중 하나가 문화유산의 관광자원화이다.
사회적 계층별로 상품소비 뿐만 아니라 지역, 직업 및 교육 등과 같은 개개인 사이의 생활 모든 분야에서 차별화 하려는 성향이 나타나고 있다. 즉 현대사회에서 문화양식 변화로 나타나는 현대관광은 관광대상물에 대한 관광경험의 개별화와 차별화를 추구하는 성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관광성향이 개별화, 차별화를 추구하고, 문화현상에서 진품과 모조품간의 영역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적 구성요소를 관광자원화 하는 것은 변화하는 관광수요 충족뿐만 아니라 관광의 경쟁력을 높이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소득과 여가시간의 증대에 따라 관광욕구가 증가하는 관광객들에게 상업적․물질적 시설주의적 관광에서 벗어나 역사․문화․생태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관광자원개발의 질적․양적 발전을 기대할 수 있으므로, 상주 병풍산 유적지의 관광자원인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한 관광자원화는 시장 만족도와 자원관리를 동시에 도모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기존의 경천대 중심의 경유형 관광객을 체류형 관광객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상주지역에 있는 관광지 뿐만 아니라 인근 시(군)지역의 관광지나 휴양지를 연계한 다양한 관광 상품을 개발하여 경제적 파급효과를 극대화 하여야 한다.
관광 상품화에도 역사적인 사실이나 검정에만 초점을 마출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검정된 부분이 부족하여도 창의적․상상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가치와 패러다임을 창출하고, 문화 ․인문 ․과학기술의 융․복합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이끌어 가야 된다.
3.2 정신문화의 산실인 병풍산 유적지의 공원화
경상북도 기념물 제125호(1998. 4. 13)로 지정되어 있는 병풍산 고분군은 병풍산 북편에 펼쳐져 있는 구릉의 정선을 따라 열을 지어 분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봉분이 확인되는 것만 총 862기로 추산되고 있어, 이미 파괴되었거나 봉분이 삭평된 유구까지 포함하면 최소 1,000여기 이상에 이를 것이며 그 존재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4세기대의 목곽묘까지 감안한다면 상주 일대에서는 최대급 규모의 분묘유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병풍산 고분군은 지금까지의 발굴조사 성과만으로 본다면 5~6세기대의 고분자료에 집중되어 있다. 병성동, 헌신동 일대에서 삼한시대 전기(초기 철기시대)의 수혈주거지에서 조합우각형파수부호, 원형점토대토기 등이 출토되고 있으며 유적의 규모가 매우 방대한 반면, 발굴조사는 극히 일부분에만 이루어졌다는 점, 고분의 영조는 시간적으로나 위계적으로나 일련의 규칙성이 갖는 경우가 일반적이라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볼때 아직 드러나지 않은 많은 정보가 숨겨져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특히 사벌면 일대에는 청동기시대부터 삼한,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상주의 선사~고대문화를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유적들이 분포하고 있다,
이러한 정신문화의 산실인 병풍산일대 유적을 대표한 병풍산 역사․문화 공원을 조성하여 정신문화의 못자리가 되도록 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문화가 곧 우리 민족의 “민족혼” 이라면, 상주문화는 곧 “상주 시민의 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바로 상주시민이 상주문화를 가꾸고 지켜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병풍산 고분군을 우리 선조들의 정신과 넋을 기리기는 추모공원으로 조성하여 교육의 장소로 활용하기도 하고, 관광 상품화 할 수 있도록 개발 할 필요가 있다.
이곳을 중심으로 경천대 일원과 영역권화 하여 스토리텔링의 출발점으로 삼아서 역사적 배경을 활용하여 문화관광을 활성화 시켜야 한다.
상주의 아름다운 자연경관 및 우수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경관과 관련한 상주만의 차별화된 문화 관광상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병풍산 유적지 주변을 정신문화 중심지로 공원화하여 관광지로의 개발이 필요하다. 병풍산 고분군의 전통적인 역사․문화 자원을 대표할 수 있는 상징적인 공원으로 조성하여 관광자원화 하고 상품화 할 필요가 있다. 병풍산 유적지의 관광 모델은 다음과 같은 병풍산 유적지의 주변환경과 관광자원을 활용해 차별화 된 창조관광 사업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병풍산 고분군 중심의 융·복합형 산업인 창조관광의 역할과 그 중요성도 창조경제시대를 맞아 더욱 중요시 되고 있으며, 창조적 융·복합을 통한 관광사업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병풍산일대 유적을 통한 고대 상주의 위상을 병풍산고분군에서 시작하여 병풍산성까지 둘러보는 일종의 문화생태탐방로로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문화생태탐방로는 지역의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 역사자원을 특성 있는 스토리로 엮어 국내외 탐방객들이 느끼고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도보 중심의 길로서 고분 사이사이 산 경사도에 따른 사계절 꽃으로 미관을 조성하고 고분의 성격, 특징, 산성의 종류와 특징, 구조, 축조기법(석실 형상화) 등을 이해 하면서 휴식도 겸할 수 있도록 한다. 기후변화와 더불어 국가발전전략으로 '저탄소 녹색성장'이 제시되어, 환경에 대한 가치와 미래세대를 고려한 발전정책이 정책기조로 설정됨에 따라 탐방로 사업은 향후 더욱 활성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설명 패널, 벤치 등이 구비된 야외 데크 등을 마련하여 학습과 동시에 차차 정상으로 올라가며 눈에 들어오는 상주분지의 넓은 평야와 지천인 북천, 병성천이 합류하고 다시 낙동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감상하도록 한다면 힐링과 더불어 상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스토리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로 만들어 스토리텔링 학습효과로 방문지에 대해 차별화된 방법을 개발하여야 한다. 스토리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의 유형은 문화형과 생태형으로 구분하며, 문화형은 자원의 내용 및 형식에 따라 역사 문화형, 예술 문화형, 생활 문화형으로 재분류될 수 있다. 스토리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는 '빨리 걷기가 익숙한 시대에 소박한 여유와 운치가 있는 느린 걸음으로 국토 곳곳에서 우리 문화가 들려주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즐기는 여행'을 지향한다.
병풍산 유적지의 중.장기적인 종합 정비계획하에 체계적으로 선 발굴조사, 후 정비의 수순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지자체는 물론이고 뜻있는 주민들도 같이 참여하는 민·관협동의 형태로 유적보호차원의 정화활동을 꾸준히 실천해 나가는 것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이와 같은 활동에 일반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과 청소년들도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병행 실시한다면 청소년시절부터 우리 지역 문화유산의 의미와 가치를 인식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3.3 병풍산 유적지 중심 스토리텔링
문화유산은 인류의 과거로부터 집적된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가치가 높은 문화적 소산물로서 경제적 가치와 정신적 가치를 포함하고 있다. 최근 여가중심 사회가 되면서 문화의 다양화와 고급화를 지향하면서 문화관광자원의 콘텐츠 및 스토리텔링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스토리텔링은 문화콘텐츠산업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문화산업의 중요성이 재인식 되면서 킬러콘텐츠 개발 등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문화산업과 관광산업의 활성화를 위한 융·복합 산업인 창조문화관광의 필요성이 요구된다.
스토리텔링 (Storytelling)이란 ’스토리(story)와 텔링(telling)’의 합성어로서 상대방에게 알리고자 하는 바를 재미있고 생생한 이야기로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 즉, 단어, 이미지, 소리를 통해 사건,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다. 스토리 또는 내러티브(narrative)는 모든 문화권에서 교육·문화 보존·엔터테인먼트의 도구로서, 또 도덕적 가치를 가르치는 방법으로서 공유되어 왔다. 스토리텔링에는 줄거리(plot), 캐릭터, 그리고 시점이 포함되어야 한다.
상주의 문화관광산업의 현실은 문화자원의 창조적 활용이나 관광산업에 대한 관심도가 낮고, 관광자원의 인프라가 미흡하며 문화산업과 관광산업의 연계에 대한 마인드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시대 흐름에 맞는 소프트웨어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문화콘텐츠 활용도는 더욱 미흡한 상황이다. 또한 단순 체험상품, 무거운 이미지, 문화재 중심의 경쟁력 상실 등으로, 창조적인 문화콘텐츠 활용을 바탕으로 한 문화관광산업은 더욱 침체되어 왔다. 향후 문화관광자원의 홍보 마케팅에 있어서도 이러한 스토리텔링 및 문화콘텐츠를 통한 창의적인 마케팅이 요구된다.
상주의 스토리텔링에 관한 자원은 풍부하지만 활용도가 매우 낮은 상황이다. 현대는 감성적 요소가 가치를 창조하는 시대로서 스토리텔링에 기반한 고부가가치 창출 관광이 부각된다는 점에서 킬러콘텐츠 개발이 절실이 필요한 실정이다.
스토리텔링 콘텐츠를 통해서 문화관광을 활성화 시키기 위해서는, 첫째, 스토리텔링을 활용한 문화관광자원화 전략에서는 표적시장이 원하는 스토리텔링을 개발하고 체계를 확립하여 브랜드스토리마케팅, 원라이프 멀티스토리 문화관광자원화 전략이 필요하다. 둘째, 스토리텔링을 활용한 테마 관광 상품화 전략에서는 둘러보기 보다는 체험과 감성을 강조하는 전략을 통한 문화관광 마케팅이 요구되며, 이야기 지향점을 설정하여 소비자의 욕구에 부합해야 한다. 셋째, 스토리텔링을 활용한 문화관광축제의 경쟁력 강화이다.
문화관광축제는 지역 스토리텔링을 통해 컨셉을 도출하여 대중과 소통하는 방식이며, 보편적 가치를 통해 체험학습을 극대화하고 관광객 참여를 증진시킨다. 경천대 일원의 축제로는 “경천대 오디축제” ,“경천섬 주변 MTB 자전거 대회”, “낙동강700리 시발지의 강변음악회” 등이 있으나 계절별 축제를 실시한다면 관광객 유치나 홍보에도 효과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스토리텔링을 활용한 마케팅 및 관광객 유입 전략으로는 첫째, 표적시장이 원하는 스토리텔링 개발 및 브랜드 마케팅을 전개함으로써 원라이프 멀티스토리 창출 및 문화관광자원화 전략을 확립하는 것이다. 둘째, 여행경험이 많고 교육수준이 높은 여행객을 중심으로 상호관계성 여행을 활성화함으로써 스토리텔링을 활용한 여행객 유입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셋째, 디지털 매체 변화에 따른 문화관광객의 스토리텔링 참여 유도 방안이다.
디지털 가상 공동체를 고려한 문화관광 전략이 요구되며, 수동적 소비자에서 능동적 참여자로의 디지털 매체변화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현재 세계적 트렌드인 ‘산업간 융·복합’을 우리나라의 관광산업에 적용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함으로써 관광의 영역과 범위를 더욱 확대시키고 이를 통해 관광산업의 구조 고도화 및 고부가가치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를 정책적으로 유도해 나가야 한다.
또한 문학과 전자기술이 만나는 관점에서 본 디지털 스토리텔링에 대해 간단히 언급 하도록 한다. 디지털 매체를 이용한 스토리텔링에서 이야기가 종이 매체에서 표현될 경우 문학이 되고, 영상 매체에서 표현될 경우 영화가 되며, 디지털 매체에서 표현될 경우 디지털 스토리텔링이 된다.
디지털 스토리텔링이란 컴퓨터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서사행위, 웹상의 상호작용적인 멀티미디어 서사 창조들을 말한다. 여기에는 텍스트 뿐 아니라 이미지, 음악, 목소리, 비디오, 애니메이션 등을 포함한다.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관건은 스토리텔링 기술에 대한 인간중심적인 인식과 새로운 디지털 도구의 창조적이고 잠재력 있는 정교한 인식사이의 균형감각 이다. 이 예술 형식의 실행자는 그들의 디자인에 영향을 주는 서사예술(시, 스토리텔링, 연극, 소설, 수필, 영화)에 대한 높은 식견을 지니는 컴퓨터상에서 창조적 작업을 하는 사람을 포함한다.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전반적인 특징으로 유연성, 보편성, 상호작용성 등 세가지를 들 수 있고,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종류로는 네트워크 문학, 하이퍼텍스트 문학, 컴퓨터 게임 중 서사성이 강한 장르들, 인터랙티브 영화와 홀로그램 등 4개 분야로 나눌 수 있다. 디지털 시대의 스토리텔링은 디지털 매체와 조우하면서 또 다른 형식을 보이고 있다.
3.4 병풍산 승천원의 영성문화체험지 조성
정부는 2017년 관광수입 240억불, 외래관광객 1,600 만 명 실현을 정책 목표로 설정하고 본격적인 외래관광객 2천만명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새로운 관광콘텐츠의 개발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이며 우선 주목해 볼 내용이 영성문화자원으로 생각되며 영성문화자원을 관광적으로 활용하는 문제를 검토할 때가 되었다. 영성문화관광을 정의하면, 문화관광의 한 범주로서 정신(영성)문화를 동반하는 특수목적관광(SIT)이며 종교, 명상(수행), 치유, 성찰에 특별 한 관심을 가지고 마음(정신)치유, 정신고양, 자아성찰을 관광을 통해 공급하거나 참여하는 행위를 말한다.
창조경제 시에 부응하는 새로운 융·복합 콘텐츠로 영성문화자원의 관광자원 화가 정책으로 추진할 필요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먼저 정책대상의 신성성이 존중되어야 하고 문화측면의 훼손 우려 등이 있다는 점을 인지하여 이를 충분히 고려하여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병풍산 승천원과 같은 화장터를 혐오시설로 보고 있으나 이제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바꿀 때가 된 것 같다. 병풍산 고분군의 경우는 다른 곳과 달리 1,000여기(862기)의 고분군이 산재해 있으며 우리 조상들의 정신이나 영혼이 살아있는 곳으로 매우 의미 있는 장소이다. 병풍산 승천원은 “영혼이 숨쉬는 장소”, “천국으로 가는 문”,“삶과 죽음의 만남의 장소”, “고분군으로 가기위한 갈림길” 등으로 타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의미 있는 장소로 만들어 화장문화, 장례문화 및 영성문화체험의 교육 장소로 관광자원화 할 필요가 있다.
영성은 각 종교의 본질로 영성의 개념 속에 종교는 반드시 포함될 수밖에 없지만 여기서는 종교의 본질 자체의 신성성이나 종교적 특성 보다는 각 종교마다 지니고 있는 종교별 영성을 향한 종교의식 문화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이곳을 화장과 장례문화의 특색 있는 장소로 조성하여 국내 최초의 대표적인 영성문화체험 교육장소로 조성하여 관광자원화 할 필요가 있다. 오래전부터 외국의 경우는 종교나 명상 등 영성문화자원을 관광자원화 해 왔으며 더욱이 우리나라 처럼 다양한 종교가 평화적 공존이 가능한 나라는 국제사회에서 많지가 않다.
영성문화자원의 범주에 속하는 종교 문화자원은 불교, 천주교, 개신교, 원불교, 유교 등 각 종교 마다 추모공간(빈소)을 두어, 종교시설, 종교의식, 종교문화 자원, 종교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포함하여 종교 문화와 교육의 체험이 가능한 교육의 장소로 활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지금까지 1,700여년의 역사를 배경으로 최근 세계적 브랜드로 성장한 템플스테이를 개발한 한국불교,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 속에서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103위의 성인과 124위의 복자를 모시고 있는 한국 가톨릭, 세계 선교 2위의 강국이면서 국제적 메가처치를 다수 포함한 한국 기독교, 종주국보다 생활적 밀착도가 훨씬 높고 이미 국책 사업으로 추진되었던 ‘유교문화권’개발 사업을 펼친 유교는 물론 다양한 민족종교와 함께 우리 민족과 역사를 같이한 무교 등 다양한 종교기반의 영성문화체험 장소로 활용할 수 있다.
이곳을 단계적으로 정화해서 접근도 용이하게 하고 지나는 길에 봉분의 형태를 조망할 수 있게 한다면 지역주민은 물론 외지인들에게도 충분히 관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고 나아가 지속적인 유적보존과 ‘영성문화명소’로 육성 할 수도 있다.
3.5 병풍산 주변의 관광자원과의 연계 방안
병풍산일대 유적을 비롯한 사벌국 관련 역사문화, 경천대를 비롯한 낙동강변의 우수한 자연경관, 낙동강 신 관광벨트화 사업으로 구축된 사회시설, 자전거박물관, 국립 생물자원관, 상주보 등 다양한 유형의 관광자원이 있다.
특히 사벌면 일대에는 청동기시대부터 삼한,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상주의 선사~고대문화를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유적들이 분포하고 있고 근세에 들어서면 애국과 민족정신을 고양할 수 있는 정기룡장군 유적지가 있으며, 상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종합적인 이해를 도와줄 수 있는 상주박물관이 있다. 한편, 여가활동 및 휴식을 제공 해주는 경천대에서 상주보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자전거박물관, 국제승마장과 같은 시설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다양한 전통음식과 편안하고 묵을 수 있는 숙박, 휴양시설만 보완된다면 현재 보유하고 있는 문화 인프라만으로도 그 활용가치는 매우 크다.
단순한 여가 및 휴식활동으로 상주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우수한 역사경관과 관련된 상주만의 특화된 문화 관광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기존의 경천대와 병풍산 고분군 주변의 이미 훼손되거나 소멸된 문화유산은 복원이나 재현을 통하여 관광 자원화하고 전통적인 역사․ 문화자원과 생태관광 자원을 개발하거나 관광자원화 하여 관광 상품화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병풍산 경유형 관광객을 체류형 관광객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상주지역 관광지 뿐만 아니라 타 시(군)지역의 관광지나 휴양지를 연계한 다양한 관광 상품을 개발하여 경제적 파급효과를 극대화 하여야 한다.
상주지역의 주요 관광 자원인 낙동강 수변관광지 경천대, 성주봉 한방산업단지(한방 요양, 휴양, 치유 등), 백화산의 역사. 문화자원과 생태관광 자원을 중심으로 주변 관광지를 포함한 관광인프라를 활용하거나 연계시킨 다양한 유형의 적합한 모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3.6 역사․문화․건강 융(복)합 비즈니스 모델
병풍산 중심의 융·복합형 산업인 창조관광의 역할과 그 중요성도 창조경제시대를 맞아 더욱 중요시 되고 있으며, 창조적 융·복합을 통한 관광산업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전통문화와 IT(정보기술), CT(문화기술), NT(나노기술) 등을 융(복)합화 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새로운 사회 환경에 적합한 차별화된 모델로 조성 하여야 한다.
병풍산 주변의 관광자원인 병풍산일대에는 유적을 비롯한 사벌국 관련 역사문화, 경천대를 비롯한 낙동강변의 우수한 자연경관, 낙동강 신 관광벨트화 사업으로 구축된 여러 사회시설 등 인프라가 구비되어 있다.
웰빙, 힐링, 웰니스 등 건강문화의 확산과 열풍으로 건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자연물질 및 한방을 이용한 치료와 이를 응용한 기능성 건강보조식품, 허브, 요양, 휴양, 치유 등 노인성 질환 에 대한 관심과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또 치료보다는 예방적 관점의 건강에 대한 관심증대와 노령인구의 증가로 노후건강에 대한 관심 급증으로 실버건강산업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 하고 있다.
○ 관광트랜드 전망
• 다문화(multi-culture) 관광소비 확산
• 뉴 시니어(New senior) 핵심관광 소비계층 부상
• 헬스 투어리즘 (health tourism)의 확산
• 소비자가 주도하는 창조관광 시대
• 체험추구 관광소비자, 트라이투어슈머 (trytoursumer)의 부상
• 소셜 네트워크가 주도하는 관광의 시대
• 관광산업, 그리너(Greener) 비즈니스로의 도약
• 네오 럭셔리 관광소비의 확산
• 레저 재핑(Leisure zapping)시대
• 노블레스 노마드 사고 확산
○ 급변하는 관광환경
• 초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진입속도 세계에서 최고)
• 다문화 사회 도래 (이주를 넘어)
• 그리노믹스(Greenomics) 산업의 등장
• 최첨단 기술의 융(복)합에 따른 산업간 변화 발생
• 국내 서비스 산업의 고도화와 고급화 확산 등
세계 관광기구(WTO)는 미래 관광객의 행태변화에 대한 예측자료를 제시하고 해양관광, 스포츠 관광, 모험관광, 생태관광, 문화관광, 도시관광, 농촌관광, 크루즈, 테마파크, 국제회의와 같은 주요한 10개의 관광행태를 전망 하였다.
병풍산과 경천대를 중심으로 일대 유적을 비롯한 사벌국 관련 역사문화, 경천대를 비롯한 낙동강변의 우수한 자연경관, 낙동강 신 관광벨트화 사업으로 구축된 사회시설을 활용하여 다양한 유형의 창조관광 모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여기에 상주지역에서 6차산업화를 추진하는 경영체로 문화관광, 향토산업, 지역전략농산물 판매사업, 관광농원, 체험휴양마을 등 2·3차 산업간 융합을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농촌 경영체도 연결시킬 수 있다.
최근, 웰빙, 힐링, 웰니스 문화의 확산과 열풍으로 건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으며 특히, 치료보다는 예방적 관점의 건강에 대한 관심증대와 노령인구의 증가로 새로운 서비스 사업으로 실버중심의 건강 의료 관광산업 대한 관심과 수요가 급증 하고 있다. 성주봉 한방산업단지와도 연계하여 요양, 휴양, 치유 등 노인성 질환 등 다양한 건강에 관련된 관광 상품으로 적합한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한편 백화산 주변의 전통적인 역사․ 문화자원과 생태관광 자원과도 연결하여 관광 상품화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역사, 문화, 건강을 창조적 융·복합을 통한 관광상품으로 연결시킨 상주만의 특화된 관광상품을 개발 하여야 한다.
따라서 병풍산 유적지 중심의 융·복합형 산업인 창조관광산업의 역할과 그 중요성도 창조경제 시대를 맞아 더욱 중요시 되고 있어, 창조적 융·복합을 통한 관광산업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Ⅳ. 문화유산의 디지털화
지난 2008년 초 600여년 된 우리 문화유산 국보1호 숭례문이 한 시민의 방화로 잿더미가 되었다. 모든 국민이 우리 문화유산의 관리와 보존의 중요성을 재인식 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각국은 정부주도로 문화유산의 보존 및 공간적 제약 극복을 위하여 문화유산의 디지털 아카이브를 시도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에 대한 훼손 방지 및 아키이브 자료를 통한 교육활용 등 디지털 아카이브(Digital Archive)를 활용한 여러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디지털 아카이브는 시간의 경과에 의해 질이 떨어지거나 훼손의 위험이 있는 문화유산 및 정보들을 디지털화함으로써 항구적인 기록과 보존ㆍ이용 등을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이다. 디지털보존(digital preservation)이라고도 하는 디지털 아카이브가 부각하게 된 배경은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인하여 디지털 정보의 생산과 유통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문화유산의 디지털화를 통한 보존에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
이와 함께 세간의 주목을 받은 것이 숭례문 3D 입체영상 이었다. 이 숭례문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디지털 문화재의 근본적 의미와 가치는 전통문화의 복원과 보존에 있다. 그리고 디지털 복원이 단순히 실제와 같은 영상, 시각정보의 충실한 재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청각, 촉각 등 오감을 충족시키는 방법으로 확대 진화하면서 산업적 가치와 가능성을 극대화 시키고 있다. 그리고 최근 영화나 드라마에서 역사물이 유행하면서 디지털 문화재에 대한 산업적 수요는 더욱 커져갈 전망이다.
4.1 문화유산의 복원과 보존
문화유산의 정비 및 복원은 진정성(authenticity) 왜곡을 우려한 신중론과 문화유산의 관광자원화에 의한 지역문화 및 경제 활성화를 위해 필요하다는 의견으로 나눌 수 있다. 문화유산 정비 및 복원과 활용을 목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은 문화유산 관리정책에 대한 인식전환이 선결과제이다.
문화유산 관리정책에서 관광자원화와 같은 상업적 목적으로 문화유산을 활용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보존중심의 사고는 문화유산을 전문가들의 전유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유산을 전문가들의 전유물로 인식할 경우 일반인의 접근이 어렵고, 문화유산이 생명력을 지니지 못하게 될 수가 있다.
문화유산이 생명력을 지니는 것은 지역주민과 관광객들이 문화유산에 접근이 용이하여 문화유산을 소재로 다양한 문화생산과 소비활동을 촉진시킬 때 가능한 일이다.
특히 문화 경제적 관점에서 문화유산의 관광자원화는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문화생산과 소비활동의 한 형태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유산 복원에 대한 긍정적 견해로는 ‘문화재가 교과서 역할을 하고 있고, 목조건물은 복원해야 역사 교과서로서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리고 건물 복원의 정당성은 문화유산의 복원에 의한 국가적 자부심, 재사용, 교육 및 연구, 관광진흥, 현장보전 등 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문화유산 복원에 신중하여야 한다는 입장은 ‘복원할 물리적 근거가 없고, 복원이 아닌 재건방법에 따라 국가적 자부심, 관광, 교육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와 ‘복원에 의한 유구 파괴 우려”, “복원은 새로운 건축이지 옛 건축이 아니며, 그 장소에 새 건축을 하는 것은 과거 역사를 멸실하는 것”, “진정성이 결여된 건물복원은 복원이 아니고 새로운 건축물에 불과하다”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화유산의 정비 및 복원에 대한 견해의 대립은 원형고증을 통한 복원과 활용문제로 귀결된다. 그렇지만 문화관광 관점에서 문화유산의 정비 및 복원은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을 전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특히 근래에 문화자본 증가에 따른 문화소비행위에서 관광활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게 나타나고 있고, 그 중 역사문화유산에 대한 관광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정부가 문화의 경제적 가치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문화산업 육성정책을 추진하고 있고,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문화경제 관점에서 지방문화 상품화를 위해 관광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에서도 문화유산의 복원을 통한 활용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문화유산 복원문제에 대해 대체로 우리나라 전문가들 사이에 현 단계에서 물리적 근거가 없는 문화유산의 복원은 무리라는 의견으로 모아지고 있지만, 향후 생산적 논의를 위해서는 문화유산 보존조치에서 복원 및 보존과 관련된 용어의 의미를 통해 그 방향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4.2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복원
문화유산은 실재 세계에 존재하는 것과 가상공간에 존재하는 것으로 볼 때, 실재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문화유산은 가상공간에 원형을 찾는 디지털 복원이고, 현재 남아 있는 문화유산의 경우, 3D스캔 기법 등을 적용 해 가상공간에 옮기려는(일종의 디지털 copy) 디지털 재현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유산은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이 있고 남아있지 않는 것이 있다. 따라서 디지털 복원도 이 두가지 형식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 물론 명확히 이 두가지 형식으로 구분하기가 애매한 경우도 있다. 남아있는 경우, 대개 3차원 스캔 작업을 통해 형상을 사이버(Cyber)공간으로 데이터를 옮기는 방법을 취하고 남아 있지 않는 경우, 고증 자료를 근거로 3차원 모델링 작업을 통해 가상(Virtual)공간에 저장한다. 구분하기가 애매한 경우에는 이 두 가지 방법을 적절히 병행시키면 된다.
이러한 가정하에 디지털 복원 방법도 접근 방식이 각기 다를 수 밖에 없다. 현존하는 문화유산의 경우 디지털 가상 공간화와 현존하지 않는 문화유산의 경우 디지털 가상공간화 및 현존하는 것과 현존하지 않는 경우가 뒤섞여 없는 경우의 디지탈 가상공간화 방법이 있다.
디지털 문화재의 보존. 복원 및 산업적 가치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학문적 고증과 더불어 높은 디지털 기술이 필수 요소다.
여기에서는 유.무형의 문화재를 발굴하고 축적하여 디지털 자료화(DB)하는 기술, 측정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원형을 모델링 하고 복원. 재구성 하는 기술, 그리고 디지털 문화재의 관리 및 보존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통합관리 기술 등 여러가지 기술들이 필요하다.
디지털 문화재의 보존. 복원 및 산업적 가치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학문적 고증과 더불어 높은 디지털 기술이 필수 요소다.
여기에서는 유.무형의 문화재를 발굴하고 축적하여 디지털 자료화(DB)하는 기술, 측정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원형을 모델링 하고 복원. 재구성 하는 기술, 그리고 디지털 문화재의 관리 및 보존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통합관리 기술 등 여러가지 기술들이 필요하다.
즉 복원과 보존에 관련된 용어는 복원(reconstruction), 수복(restoration), 보존(conservation),용도변경(rehabilitation),재건(re-creation),복제(replication)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 중 보존조치와 관련된 용어에서 수복(restoration)은 특정시기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 다른 시기의 것을 제거하거나 빠진 부분을 보충하여 특정시기의 형태, 외관, 성격을 재현하는 행위로 매우 제한된 범위 내에서 조심스럽게 기계, 전기, 배관 등의 부분을 개선하는 일이 가능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 복원(復元)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화유산의 복원과 관련하여 복원(reconstruction)은 역사적 장소 내에 특정한 시기의 현상을 모사하기 위해 신축을 통해 현재 존재하지 않는 지구, 경관, 건물, 구조물, 물체 등의 형태, 외관, 세부를 재현하는 일련의 행위를 지니고 있어 재건(再建)으로 번역하는 것이 정확하다는 것이다.
Ⅴ. 결 론
창조경제를 구현하는 큰 축인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의 바탕위에 병풍산 유적지의 역사․ 문화 관광자원의 사회적 가치를 경제적 가치로 승화시켜, 창의성 문화정책을 매개로 창조경제 패러다임으로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지금까지 알려져 있는 병풍산 고분군의 출토자료는 유적의 전모를 밝힐 수 있는 학술발굴조사가 선행되어 이를 근거로 관광자원화 하기위해 단계별로 추진되어야 한다. 병풍산 고분군의 성공적인 정비를 위해서는 종합적인 복원이나 정비계획이 수립 되어야 한다.
병풍산 고분군 주변의 이미 훼손되거나 소멸된 문화유산은 복원이나 재현을 통하여 관광 자원화하고 전통적인 역사․ 문화자원을 지속적으로 발굴하여 개발하거나 관광자원화 하여 역사문화공원으로 조성하여 등으로 사용하도록 관광 상품화 할 필요가 있다.
상주 병풍산 유적지와 경천대 주변의 역사․ 문화의 사회적 가치를 경제적 가치로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급변하는 관광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상주 정신문화의 산실인 병풍산 유적지를 공원화하고, 유적지 일대와 경천대 일원의 관광지를 네트워킹화하여 스토리텔링을 제작하여 관광자원화 하여야 한다.
또 병풍산 화장터인 승천원을 전국 최초의 영성문화체험지로 조성하여 교육이나 관광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
또 상주지역 뿐만 아니라 타 시(군)지역의 관광지나 휴양지까지를 연계한 다양한 관광 상품을 개발하여 경제적 파급효과를 극대화 시켜야 한다. 병풍산 유적지와 경천대 일원의 역사.문화 관광자원을 정보기술과 접목시켜 다양한 문화상품으로 개발하거나 새로운 문화상품으로 변형시켜 전 세계에 홍보할 필요가 있다.
또 병풍산 유적지의 창조관광 산업을 시작으로“ 역사·문화 관광산업의 중심도시 상주!”로 육성하기 위한 시험대로 보고 상주의 가용자원을 집중시켜 창조도시 상주를 만드는 시금석이 되어야 한다.
앞으로 상주지역의 신화, 전설, 민담이나 역사적 사건 등의 시나리오 소재, 캐릭터 소재, 전통문양이나 회화 등의 미술관련 소재, 음원이나 악기, 국악연주 등의 음악관련 소재, 전통무예 , 복식 등을 지속적으로 발굴하여 콘텐츠화 해 나가야 한다.
본 자료는 강연을 위한 자료로서 병풍산과 관광 등의 일부내용에 개념의 파악과 이해를 돕기 위하여 여러 자료들을 참고하거나 인용 하였으며, 병풍산 고분군을 중심으로 이 일대 유적의 성격이나 역사적 가치에 대한 관련 자료는 지금까지의 연구를 기반으로 한 “상주 병풍산 (상주박물관)”, “병풍산일대 유적의 정비와 활용 방안 (상주박물관, 전옥연)” 을 인용 또는 활용하였으며 일관성이 결여되었다는 점도 밝혀 둡니다.
참고문헌
전옥연 「 병풍산일대 유적의 정비와 활용방안 」『상주문화』제22호, 상주문화원, 2011. 12
경상북도 「제5차 경북권 관광계발계획 」2011
김상태 「영성문화자원의 관광융복합 잠재력에 관한 연구」
김영준, 최승묵 「관광개발사업 활성화 방안」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
김규호 「문화유산의 진정성과 관광자원화 」한국관광학회 2012.6
우정권 외 11「문화유산 스토리텔링 활성화 연구 용역, 연구과제 결과 보고서」2011. 12
상주박물관 編「상주병풍산」 20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