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 돌을 닦으며
어제는 충청남도 태안의 천리포를 다녀왔습니다. 치솟는 기름 값이 서민들의 생계를 위협하더니 이번엔 그 비싼 기름을 바다에 버려 서해안 주민들을 절망으로 몰아간 어처구니없는 현장을 봤습니다. 이미 앞선 봉사자들의 수고로 해안선은 많이 깨끗해졌지만 아직 모래아래는 기름들이 배어있고 따개비 같은 작은 조개류들의 죽음을 보며 이 거대한 人災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새벽부터 긴 해안선에 빼곡하게 들어앉아 땀 흘리는 손길을 보면서 인간의 손이 가진 양면을 생각했습니다. 이 작은 손으로 엄청난 일을 저질기도 하고 또한 그 손들이 모여 믿기지 않을 정도의 큰 재앙을 이겨내고 있다는 것 말입니다. 뉴스 화면에 비친 백색 인간 띠를 현장에 와서 확인하면서 역시 우리는 위대한 국민임을 실감했습니다.
돌을 닦았습니다./절망이란 이름의 검은 때를/ 따뜻한 손들이 닿는 곳마다/
돌은 고맙게도 제 살빛을 드러냅니다./태안의 가슴/ 젓줄마저 막힌 젓 무덤에/
이젠 서서히 피가 돕니다./돌을 닦다가 문득/물을 끓여 왜놈에게 붇던/진주성 돌쇠네 아범을 만났습니다./치마가 다 닳도록 돌을 나르던/행주산성 순이네 엄마도 만났습니다./돌 하나 만지며/내 가슴에도 이어 흐르는 그들의 온기를 느낍니다./아직은 밀려오는 고난의 파도/손잡고 막아선 저 흰 옷 입은 사람들의 띠/땀방울 떨어진 자리마다/새살은 새싹으로 돋아나고 있습니다./기름걸레 분주한 해안선을 따라/희망의 새 역사가 기록되고 있습니다.//
졸시 ‘돌을 닦으면서’ 입니다. 이 시를 쓰면서 느낀 것은 한 민족의 역사는 그 역사의 현장 속에 ‘이름 없는 사람들의 살아있는 의식’이 좌우한다는 사실 이었습니다. 우리만큼 수난의 역사를 가진 민족은 세계 속에 드물 겁니다. 5,000년의 세월을 두고 임란과 호란과 같이 기록된 전쟁의 역사 외에 기록되지 않은 왜구의 침략까지 더한다면 무려 3,000회가 넘는다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고비마다 이 땅을 지킨 이들은 한 결 같이 이름 없는 民草들이었다는 걸 역사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돌아오는 길, 서해안의 상징인 서해대교위로 저녁 해가 붉게 그림처럼 걸리고 있습니다. 비록 많은 일은 하지 못하고 돌아오지만 마음은 저녁 해처럼 뜨거워지는 것은 나도 이름 없는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겠지요.
2008. 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