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단체/종교단체

실로암 일본 여행기

빛마당 2010. 6. 17. 23:40

카멜리아 호의 모습

뉴 카멜리아호는요. 1일만에 일본에 도착하구요

화물배?? 라서요. 1일만에 도착한답니다^^

1. 방의종류

1등양실B (2층침대로써. 2명사용가능합니다)

1등양실C (2층침대 2대가있구요, 4명사용가능합니다)

특등 1인실 ( 말그대로, 1인실! 1명사용가능합니다)

특등 2인실 ( 말 드대로, 2인실 2명사용가능합니다)

특별실 - 특별실 발코니 (특별실좋구요, 발코니도 잇습니다)

2등실 ( 2등실은,, 6명? 정도 잘수있구요, 땅바닥에서 잡니다. 물론 TV도 잇습니다!!)

1등화실 ( 의자와 TV 밖에 없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2. 부대시설

DVD감상관, 레스토랑, 전망 볼수 있는곳, 면세점, 매점, 오락실, 대욕탕,

자동판매기 코너, 인터넷코너와.. 흡연실, 노래방도 있습니다.


* 후쿠오카 [福岡(복강), Fukuoka]

비행기 편으로 김포에서1시간 10분 김해공항에서는 50분 정도 소요되는 후쿠오카(福岡)는 일본의 4개의 큰 섬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큐슈(九州)섬의 위쪽에 자리 잡고 있다.후쿠오카는 후쿠오카현의 중심지로 일본에서 8번째로 큰 도시. 기후는 1년 내내 따뜻하며 나라, 헤이안시대부터 무역항으로 발달해 외국 문화를 받아들이는 요지의 역할을 담당해 왔다. 후쿠오카는 옛부터 이도시의 가운데를 흐르는 나까(那河)강을 중심으로 동쪽을 하카타(搏多) 서쪽지역을 후쿠오카라고 불려왔다. 하카타 지역은 무역도시로 지금도 상업, 무역의 중심지 이며 후쿠오카지역은 에도(江戶)시대 쿠로다(黑田)라는 장군이 통치한 곳으로 성을 중심으로 한 일본 서부지역의 정치적 중심지로 외국공관, 외국정부 기관이 자리 잡고 있던곳 이다. 1889년에 이 두 지역을 후쿠오카시로 통합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예전의 하카타라는 지명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 후쿠오카에는 신간센역인 JR하카타역과 텐진에 사철인 니시데츠(西鐵)후쿠오카역이 있다. 이두지역에는 각각의 버스센터(고속,시외버스터미널)가 있다.

일본 규슈[九州] 후쿠오카현(縣) 북서부에 있는 도시. 면적  339.38㎢ 인구  128만 9915명(2002)

하카타만[博多灣]에 면한 현청소재지이다. 규슈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추적 관리도시이다.

일찍이 다자이후[大宰府:일본의 규슈·이키[壹岐]·쓰시마[對馬]를 관할하고 외교·국방을 맡았던 관청]의 외항, 견수(遣隋)·견당사(遣唐使)의 기지로서 번영하였고, 15∼16세기에는 명(明)나라와의 무역과 성읍으로서 번영하였다.

메이지[明治] 때는 후쿠오카와 하카타[博多]가 합병되었고, 쇼와[昭和] 때는 기타큐슈[北九州]의 중화학공업과 지쿠호[筑豊] 등의 석탄광업의 발전에 따라 규슈 제일의 대도시로 발전하였다.

공업은 화학·방적·기계·인쇄제본·식료품 공업 등 외에 하카타 견직물·하카타 인형 등의 전통산업도 활발한 상업도시이다. 하카타 어항은 서일본의 원양어업기지로서, 어획량은 전국의 2∼3위를 차지한다.

철도는 산요신칸센[山陽新幹線]·가고시마본선[鹿兒島本線]이 통하고 지쿠히[筑肥]를 비롯하여 4개 지선이 분기하며, 항공로선은 국내 각지를 비롯하여 홍콩·타이베이[臺北]·서울·부산 등지와 연결된다.

 

*후쿠오카 타워                     


높이가 234m나 되는 해변 타워로서는 후쿠오카의 상징이며 일본 두번째로 높은 타워이다. 지상 116m와 123m의 2군데의 전망실로부터 내려다 보는 경관은 실로 최고의 아름다움.8000장의 하프미러(반투명거울)로 단장한 외벽은 후쿠오카 시가지 전경을 그대로 비추고 있다.7월,8월에는 은하수,12월에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전광장식 조명이 타워 전체의 아름다움을 유난히 돋보이게 한다.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환상적인 네온의 일루미네이션을 즐길 수 있다.

 


*후쿠오카성터              

후쿠오카 성 진짜 웅장하고 멋있었다. 우리나라 궁과는 또 다른 느낌..우리나라가 좀 붉고 활발한 느낌이라면 그들은 좀 푸르고 고요하고 어두운 느낌.

성의 이미지는 ~은 돌로 된 벽돌 같은 걸 쌓아놓고 길이 계속되고 호수 같은 걸로 진을 친다고 하는 거..배수의 진이라고 하나? 그런 거 있었던 것 같은데..? 여튼 물이 있었다..;;(ㅈㅅ..ㅠ)

또 주위에 길가다가 보면 어떤 사람 동상이 하나 있는데 누구인지 또 기억이 안 난다. ㅠ도요토미 히데요시인지 도쿠가와 이에야스인지.어쩜 둘다 아닐 수도 있지만

여길 지나가면서 일본인은 추모를, 한국인은 욕을 하면서 지나간다.. 참 사람 하나가지고 이렇게 다른 반응이 나온다니. 물론 나도 그 역사얘기를 들으면서 욕하며 지나갔다ㅋㅋ

1601년부터 7년간에 걸쳐  만들어진 성으로 마이즈루성이라고도 한다. 이 성은 성주가 거주하는 높은 성곽이 없는 덕에 막부시대에도 공격의 대상이 되지 않아, 지금도 성곽의 일부가 남아 있으며 당시의 정취를 품어내고 있다.

현제 성 주위는 마이즈루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육상경기장, 야구장, 테니스 코트등의 시설도 있다. 계절을 막론하고 꽃들이 피어있고, 봄에는 벚꽃이 만발해 꼭 가볼 곳

케이쵸우 6년(1601년)에 7년간을 소비해 쿠로다 나가마사가 축성했다. 현재는 마이즈루(무학)공원으로서 공개되고, 공원 내에는 텐슈카쿠(성 중심부에 3층 또는 5층으로 제일 높게 만든 망루)는 없지만, 정면 출입문, 정문 누각, 호수 쪽 누각이 남아 있어 당시를 연상케 한다.  외곽 해자에 둘러 핀 쓰쿠시오오카야쓰리는 천연 기념물로 지정 되었고 자생하는 그 모습이 눈을 즐겁게 해준다.

이 성은 성주가 거주하는 높은 성곽이 없는 덕에 막부시대에도 공격의 대상이 되지 않아, 지금도 성곽의 일부가 남아 있으며 당시의 정취를 품어내고 있다.


* 오호리 호수 공원

중국 서호를 본따 만든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호수 사이를 가르는 다리와 호수 안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물의 공원이로 불리운다.

연못 주위는 약2킬로나 있어 산책이나 죠깅을 하는 연인, 가족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시민의 휴식터이다.

공원주변에는  일본정원이나 미술관도 있어 시민뿐 아니라 관광객들에게도 인기가 있다.

 


* 종합 쇼핑몰 캐널시티

1996년에 개장한 캐널시티 하카타는 약 3만 5000평방미터에 이르는 넓은 부지에 중앙을 가로지르는 인공운하를 중심으로 호텔, 음식점,영화관, 쇼핑가등이 자리 잡은 복합문화 쇼핑시설이다.

도시의 극장이라는 컨셉으로 만들어진 캐널시티는 찾아오는 손님이

주인공이 되고 때로는 관객이 되는 장소로 중앙 이벤트 홀에서 여러 가지 이벤트, 라이브 그리고 분수 쇼가 볼거리이다.


* 쿠시다 신사

옛날부터 하카타를 지키는 신를 모시는 신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일본 7월에 하카타 기온  야마카사, 10월에는 하카타 오쿤지가 열리는 곳으로 더욱 유명하다.



* 태재부천만궁

 - 학문의 신 스가와라 미치자네 신사 

일본의 태재부천만궁이라는 신사이다. 학문의 신인 스가와라 미치자네를 모신신사이다

니시데쯔(서철)오오무타선으로 40분 하차후 도보로 5분

제신으로서 학문의 신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를 모시는 텐만구의 총본사(본래신사)역 앞의 참배길에 명물 매화가지떡을 파는 찻집이 늘어서 있어 풍정을 느끼게 한다.매화의 명소이며 약 6,000 그루에 이르는 매화가 철 늦춰 피어 2∼3월말까지 꽃을 즐길 수 있다.경내에는 유명한 비매를 비롯해 심자연못과 창포연못, 연꽃을 가로넘는 대고교, 시가사,본전 등이 늘어서 그 크기를 자랑한다. 또 바쇼와 요시이유우의 가비,천연 기념물인 히로하치샤노키도 볼수 있다.


* 코우메이젠지 절

텐만구우(천만궁)의 총본사인 다자이후 텐만구의 결연절로,개기(절을 세운 승려)가 테쓰테엔신,종파가 임제종의 고찰. 앞뜰에는 불광석 정원이 있고,석가, 보현, 문주의 삼불로 정해진 돌이 배치되어 있다.또한 뒷 뜰의 잇테키 우미노니와 일적해지는정은 이끼와 흰 모래가 배치된 정취있는 표현이 눈을 끌게 하는 형태로 되어있다. 바로 가까이에 다자이후 텐만구(천만궁)가 있어,토산품 점이 늘어선 참배길을 돌면서 절을 걷는 것도 즐겁다.

   

* 쿠마모토성[熊本城]

나고야[名古屋]성, 히메지[?路]성과 함께 일본 3대 성 중 하나.

쿠마모토성은 임진왜란때 선봉장이었던 가토 키요마사라는 나쁜 놈이 지휘해서 만든 성이죠. 성 바로 옆에 가토 키요마사를 모셔놓은 [가토신사]가 있습니다. 가토 키요마사 초상화도 걸려있습니다. 우리에겐 나쁜 놈이지만 일본인들에겐 영웅이겠죠.

우리에게는 위대한 영웅 광개토대왕이 피해자인 중국 소수민족에게도 영웅일 수 없는 것처럼

쿠마모토의 상징이라고 한다면, 역시 쿠마모토성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쿠마모토성은 규모나 역사에 있어서 그 위상이 굉장히 높은데, 그로 인해 일본의 3대 명성(名城) 중 하나라고 알려져 있지요. 물론 현재의 쿠마모토성은 재건된 것이지만, 코쿠라성이나 오사카성처럼 내부가 현대적으로 꾸며진 것은 아니라서, 큐슈에 왔다면 들려볼 가치가 충분합니다

쿠마모토성의 자리에 있던 본래 성은 ?本城(읽는 법은 같음)으로, 1400년대에 이미 축성되어 있었습니다. 쿠마모토성을 지금처럼 거대하게 건조한 것은 우리에게는 가등청정으로 잘 알려져 있는 카토 키요마사[加藤?正]입니다. 1601년부터 1607년까지 수년에 걸친 공사 끝에 완성된 것이 지금의 쿠마모토성이고, 성의 이름을 熊本城로 바꾼 것도 축성이 완료된 1607년 전국시대에 이름 높았던 무장의 성이라 그런지, 천수각의 규모도 대단합니다. 이 녀석은 1877년 큐슈 지방을 휩쓴 서남전쟁[西南] 중에 원인불명의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60년에 축성 350주년을 맞아 복원된 녀석입니다.

일본의 성은 관청이자, 군사주둔지이자, 요새였기 때문에, 천수각에 올라서면 주변이 한 눈에 보입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쿠마모토도 참으로 큰 도시입니다. 사실 이곳은 천남성이 고등학생 시절에도 한 번 올라서 바라보았던 각도인데, 그걸 기억하는 이유는 당시에 저 안테나 뒤에 서있는 호텔 건물에 화재가 나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 모두는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기에 바빴습니다(...).

일본에는 카토 키요마사에 대한 무예와 충의에 대한 평가가 많지만, 한국인에게 있어 카토 키요마사는 임진왜란의 왜장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합니다. 울산에는 지금도 매년 봄소풍 장소 후보가 되어 울산의 초중고생들을 괴롭히는 '학성공원'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울산왜성이라고 하여 본래 카토 키요마사가 주둔하고 있던 장소입니다. 또한 울산 남쪽의 서생에는 지금까지도 일본군이 쌓은 성이 보존되어 있어 서생포 왜성이라고 불리는데, 역시 카토 키요마사가 세운 성입니다      

쿠마모토성에는 다른 일본의 성과 구별되는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바로 이 성벽입니다. 쿠마모토성의 석단은 처음에는 경사가 완만하여 가볍게 덤벼들기 쉽지만, 점차 경사가 급격하게 변하여, 어느 선에 올라가면 이미 그 경사가 사람이 오르게 불가능하게 됩니다. 이 독특한 석단의 스타일은 성 위로 오르려고 덤벼든 무사들을 돌아가게 한다는 의미의 무샤카에시[武者返し]라고 불립니다

 이러한 축성법은 울산왜성에서도 이용되어, 이곳을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드는 데에 기여했습니다. 울산왜성을 둘러싸고 두 차례에 걸쳐 벌어진 울산전투는, 정유재란 때에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는데, 특히 1차 전투 때에는 무려 5백 여 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13일간 조명 연합군 전체가 달겨들었는데도 이 성을 함락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물론 그 전투의 왜측 사령관이 바로 카토였습니다.

이런 한국와의 악연과 같은 역사도 쿠마모토성에는 서려있지만, 동일하게 한국과 연결된 역사인데도 다소 유머러스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쿠마모토성에 무샤카에시 석단만큼이나 유명한 것이 바로 우물인데, 성 내에 있는 우물 개수만 120여개. 그 이유가 앞서 이야기했던 울산전투 때문이라는데….

울산전투 당시 조명 연합군은 울산왜성에서 농성 중인 일본군을 압박하기 위하여, 성에서 강으로 내려가는 길을 막아 식수보급을 차단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본군 입장에서는) 다행히도 식수보급이 끊긴지 하루 만에 조명연합군은 결국 퇴각하여, 카토와 일본군은 다시 물을 마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지간히도 그 하루가 트라우마로 남았는지, 그 전투가 있은 지 3년 후 이 쿠마모토성을 축성할 때는, 그놈의 물에 한이

맺혀 우물만 냅다 팠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와는 전혀 관련 없을 것 같은 이러한 일본의 한 성도 그와 같이 한국와 그 역사가 얽혀있는 것을 보면, 두 나라는 참으로 가까운 나라입니다. 서로 이웃하여 있기 때문에 티격태격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만, 그 전에 우리가 먼저 해야 할 것은 서로를 아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 아소호텔

아담한 규모의 리조트풍의 아소 주변의 산을 볼 수 있는 우찌노마끼 호텔 주변에 위치한 호텔로 천연온천과 일본식 가이세키 요리를 맛볼 수 있는 호텔이다.

다다미 방은 두꺼운 이불 둘 정도 깔고 덮을 수 있는데 냉난방 시설이 잘 되어 불편함은 없다. 호텔 옆엔 24시간 할 수 있는 족탕이 마련되어 있고 정상인의 경우 30분을 담구고 있을 수 없는 온도. 식사는 보통 세미 일본 정식인 가이세키. 먹을 거라곤 밥과 된장국. 호텔 음식으로는 최악일 수 있다. 그러나 온천과 족탕은 최고 수준.


* 아소산

일본 아소산..유황이 팔팔 끓는다.

정말 멋졌다. 다행히도 바람이 우리 쪽으로 불지 않아서 관람이 가능했다! 이 어찌나 멋지던가!!

아소산은 약 3000만 년 전 분화를 시작했다고 한다. 약 10만 년 전에 지금의 모습이 만들어졌다고 했다. 이 분화구 외벽산의 높이는 평균 900m라고 하니 화산 폭발 당시 얼마나 큰 폭발이 있었을까 상상이 가지 않는다. 산줄기가 아소 산을 둘러싸고 동그랗게 128km나 이어지고, 그 안의 마을은 7곳, 주민은 5만 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미총(米塚)은 쌀 무덤으로 아소산의 기생화산이다. 멀리 산들이 보이고 아소산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분지가 보인다.

아소산은 ‘아소오악(阿蘇五岳)’이라는 다섯 개의 화산으로 이뤄져 있다. 근자악(根子岳), 고악(高岳), 중악(中岳), 저도악(杵島岳), 오모자악(烏帽子岳) 이렇게 아소오악은 자연의 웅대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고 안내판에 적혀있다. 분화구 아랫자락의 구사센리(草千里)는 그 오악 중 하나인 에보시다케 기생화산의 분화구로 너른 분지가 온통 초원인 형상을 두고 붙인 것이다.


* 유후인 민예촌

오타이현의 중아에 자리 잡은 유후인은 수려한 자연 경관과 예쁜 숖과 공방들이 밀집한 온천 휴양지다. 산뜻한 미술관, 특이하고 예쁜 숲, 전통 골방, 아기자기한 카페, 일본식 여관, 노천온천 등 수 백 개의 숲과 숙박 시설들이 온 마을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규슈 유후인 민예촌 입니다. 민예 촌 안쪽은 사진 촬영 금지

민예촌에는 민예품 전시와 유리, 종이, 염색, 팽이, 과자 등등 다양한 직업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공방이 인기 만점이랍니다. 그중에서도 된장이나 드레싱 만드는 음식공방도 함께 운영하고 있어 색다른 느낌이 듭니다. 유후인 방문한 일본 여행객의 필수 코스로 손꼽히는 곳.

유후인역 에서 유명한 족탕이 있는데~ 역 안에 위치하고 있답니다. 발 닦는 수건을 유후인역 안에서 구입 할 수 있는데 가격은 160엔 입니다.

유후인 구경을 하며 피로가 쌓인 것을 족탕으로 피로를 풀며 편안히 휴식을 취한답니다.


* 벳부 온천

뱃부의 온천은 다쓰마키(龍卷)지옥: 용지역 / 우미(海)지옥: 해지옥 혹은 바다지옥 / 보오즈(坊主)지옥: 스님지옥 / 야마(山)지옥: 산지옥 / 가마도 지옥/ 시라이케(白池)지옥:하얀연못지옥/ 긴류우(金龍)지옥:금색용지옥/ 오니야마(鬼山)지옥:귀신산 지옥 입니다.


◎ 벳푸(別府) 온천(오이타현)

오이타현 벳푸시에 위치하고 있으며 빼어난 경치와 함께 끊임없이 분출하는 열탕은 세계적인 온천지역을 대표하는 곳으로 손색이 없다. 8개의 각기 다른 독특하고 특색있는 온천으로도 유명하며 이곳에는 75개의 공공욕장 이용이 가능하다.

- 벳부

오이타(大分) 현에 속하며 벳푸만의 가장 안쪽 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벳푸는 서 일본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유명한 온천 리조트 이다. 이곳에서 솟아오르는 온천물은 하루 100,000㎘가 넘고, 온천 또한 3,000개 이상 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지고쿠온센을 꼭 들러보고 온천물에 몸을 담가 보아야 한다. 벳푸는 벳푸 국제관광 건설법이 1950년에 제정 된 이래 국제 관광항의 완성, 규슈 횡단도로와 야마나미 하이웨이의 개통으로 규슈 관광의 핵심지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