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학/내 동시집

제6 동심의 시 열무꽃

빛마당 2022. 9. 12. 11:56

제6 동심의 시 열무꽃을 2022년 9월 말 쯤 발간할 예정이다.

동시집 열무꽃의 표지

동심의 시 『열무 꽃』을 내면서

동심의 시 『오월의 산』을 낸지 5년 만에 다시 여섯 번째 시집 『열무 꽃』을 펴냅니다.

그동안 차곡차곡 모아 둔 내 삶의 자취들입니다.

하늘이 시의 씨를 주실 때마다 동심의 밭에 뿌리고 열심히 가꾸어 낸 마음의 열매들입니다.

시를 특별히 따로 나누지 않고 글을 쓴 순서대로 엮었습니다.

다만 독자가 잠시 쉬어가시라고 다섯 묶음으로 모았습니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이 어린이에서부터 출발하듯 문학도 아동문학에서 시작한다. 아동문학 은 문학의 뿌리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성장하면서 제일 먼저 읽은 문학 작품이 동시와 동화다. 우리가 못 느껴서 그렇지 아무리 나이가 많은 어른이 라도 자기 안에 어린이 한 사람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라고.

이 동시집을 읽으면서 어린이는 더욱 어린이답게, 어른들은 잃었던 동심을 다시 찾아내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2022년 9월

 

햇살 가득한 뜰에 앉아서

 

차례

* 책머리에

 

제1부

 

음악공부(1)

음악공부(2)

노크

3월에

밭갈이

엄마와 아기

사이

겨울나무

똑똑

봄꽃

소나기

간이 정류장

감꽃

풋감

한 걸음

세탁기

나무심기

떡잎

호박

파 모종

숙제

꼼지락 꼼지락

미안해

리모컨

바위

 

제2부

 

가을사진(1)

이슬

수건을 개면서

경천사지10층대리석탑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이상해

몰라

입춘

우수

꽃자리

효자손

마음

내 손

길을 가다가

신호등 앞에서

참깨 밭에서

낙동강

접시꽃

아버지의 바지

천사나팔꽃

권정생 생가에서

호박덩굴

덩굴손

둥지

아뿔싸

까막눈

카톡

이상한 온도계

 

제3부

 

방귀

그리움

순이(21)

순이(22)

벚꽃(1)

벚꽃(2)

똥 손

골목

탱자나무 울타리

바람

벚나무

엄마는

사다리

정답

자물쇠

빈자리

꼼지락

비 오는 날 별 보기

나리꽃

반걸음

달맞이꽃

달성공원 키다리 아저씨

구절초

반찬

참 이상해

엄마

CCTV

 

제4부

 

종이컵

코로나 일기

1. 코로나 선생님

2. 거리두기

3. 코로나 만남

4. 아차!

5. 한 칸 건너

6. 말이 안 되는 말

7. 점심시간

8. 낯가림

9. 요양원

10. 신기해

11. 간호사

12. 체온 측정기

13. 자장면 사먹기(1)

14. 자장면 사먹기(2)

15. 꽃밭에서

문패(1)

문패(2)

장미

천둥번개 치는 날

감나무

수평선

냉장고 청소

왜 그럴까?

졸업

숙제(1)

숙제(2)

 

제5부

 

목발

섣달 그믐날

이상한 웅변

그 자리

봄(1)

봄(2)

춘분

열무 꽃

눈 맞춤

우연

단비

풀꽃

현충일

너를 기다리는 동안에

잡초

폭염 아래

에어컨 실외기

꽃밭에서

나 여기 있어요

담쟁이덩굴

바람

호박꽃

기러기

물주기

악보

맨드라미

장마

꽃받침

 

 

음악공부(1)

 

자 -

셈여림 연습이야

점점 세게

점점 여리게

 

시작-

매 <------------------

------------------앰 >

옳지 잘했어.

 

자- 리듬 연습

온음표가 다섯 개

마디에도 이음줄을 붙여봐

 

시작-

매---------------

-----------------앰

하나, 둘, 셋, 넷..........

 

온음표 다섯 개를

이어서 내는 매미들

 

박자를 세는

내가 다 숨이 차다.

2016. 8.7

 

 

음악공부(2)

 

성질 급한 참새는

2분음표도 내지 못해

 

조금 더 길게

조금 더 천천히

 

아무리 가르쳐도

짹,

짹, 째짹,

 

8분 음표, 16분 음표에

늘 스타카토

2016. 8.9

 

노크

 

나무도 가끔

대화를 하고 싶나보다

 

시원한 그늘 아래 앉아

먼 산을 보는 내 머리 위로

 

똑똑

 

나뭇잎이 가끔

노크를 하고 있다.

2016. 8.20

 

 

3월에

 

해님이

지구를 갈고 있다

따뜻한 눈길로.

 

팽팽하던 바람과

얼었던 골짝 물

 

단단하던 흙덩이

메마른 나뭇가지가

부드러워 지고 있다

 

그렇구나!

 

부드러워 져야

싹이 돋고 꽃이 필 수 있다는

하늘의 말씀

2017. 2.26

 

밭갈이

 

땅속 깊이 보습을 박는다.

겨우내 단단하던 흙의 가슴에

 

녹지 못해

아직 맺힌

한 겨울의 단단한 덩어리

 

보습이 지나간 자리

드러낸 속살이 부끄러운데

 

“괜찮아”

“괜찮아”

 

햇살과 봄바람이

어루만지고 있다.

2017. 4.14

 

엄마와 아기

 

까만 눈동자가

서로 만난다

 

엄마 눈

아기 눈

 

엄마와 아기 사이의

보이지 않는

무선 통신.

2017. 5.17

 

사이

 

제비꽃, 꽃다지, 민들레···

담장 사이에 두고

 

양달에서 볼 때와

응달에서 볼 때가

다르게 보인다.

 

이쪽에서 보면

환하게 웃는 꽃

 

저쪽에서 보면

어둡고 그늘진 꽃

2017. 9.17

 

겨울나무

 

앙상하게 선

네 모습 보고

까칠하다고

나무랐는데

 

찬바람 맞고 서니

알겠다

 

내 마음도

까칠해 졌거든.

2018. 2. 6

 

똑똑

 

너를 향해 두들겼지

열어 달라고

안 열리더군

 

어느 날

나를 향해 두들기다가가

보았어

 

나도 모르게 내 안에

단단히 잠긴

빗장 하나

 

알았어

내가 열어 놓아야

네가 열린다는 걸

2018. 2. 19.

 

봄꽃

 

겨우내

눈꽃이 피고

바람꽃 펴도

꼼짝 않더니

 

빗장을 풀었다

풀과 나무들이

 

한꺼번에 터뜨려 올린

박하사탕 웃음

 

상큼하고

달다.

2018. 3.8

 

소나기

 

하늘도 나처럼

울고 싶은 날이 있나봐

 

잔뜩 먹구름으로

찌푸린 얼굴

 

우루루 쾅쾅

요란한 소리로

눈물을 한참이나 쏟아 내리더니

 

속 시원해 졌구나

해맑은 얼굴

2018. 4,2

 

간이 정류장

 

종일

햇살만 기웃거렸다.

 

해 지자

초승달

서산을 넘다가 또 기웃거렸다

 

아무도 몰래

나무 잎 몇 개

앉았다 갔다

 

며칠 째 빈

의자

 

천정에서 매달린 거미가

혼자

줄타기를 하고 있다.

2018. 5. 15

 

감꽃

 

파란 잎 사이사이

노란 왕관

환하게 쓰고 있더니

 

오늘 아침 땅바닥으로

모두 벗어 버렸다

 

꽃 관 벗어 던진 자리

보송보송

어린 얼굴들

 

모두 실하다.

2018. 5. 28

 

 

풋감

 

뚝!

풋감 하나 떨어졌다

 

빈 꼭지가

하늘만큼 텅 비었다

 

모두가 내려다보고 있다.

미안한 눈으로

2018.6.19.

 

한 걸음

 

저기 까마득 은행나무까지

걸어서 가잔다 아빠는

힘들고 싫은데

 

“멀어도 한 걸음씩이야”

 

억지로 따라 걸었다.

한 걸음씩

 

어느 새

다 왔다

 

장하다

한 걸음.

2018.6.2

 

세탁기

 

세제 한 컵을 넣고

스위치를 누른다.

 

윙 윙

돌아가는 세탁기

 

비누 거품이 속으로

시커먼 땟물이 보인다.

 

불현 듯

나도 내 몸 어딘가에

스위치를 누르고 있다.

2018. 6. 19.

 

나무 심기

 

어제 심은 나무가

목발을 짚고 섰다.

 

나무 밑에서부터 가슴까지

빙빙

붕대도 감고 섰다.

 

새로 옮겨심기는 건

많이 아픈가 보다

뿌리를 내리고

다시 가지를 뻗는 다는 건

힘드나 보다

 

어제 전학 온

내 짝 영철이가

나무처럼 보였다.

2018. 7. 8.

 

떡잎

 

깨물어도 열리지 않던

콩 알 하나

 

땅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떡잎 한 장

좌우로 반쪽 씩

나누어 가졌다.

 

딱딱한 것도 풀리면

모든 것을 품는가 보다

 

열린 떡잎 사이로

연두 빛 새로운 싹이

올라오는 게 보인다.

2018. 7.16

 

호박

 

우리 집 호박순이

순이네 흙담 위로 건너가더니

 

이집 저집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순이 웃음을 닮았다.

 

주먹만 한 호박도 달았다.

내 얼굴을 닮았다

 

우리 담 위의 호박을

나도 따고

순이가 따도

 

순이 웃음 웃으며

나 닮은 애호박이

자꾸자꾸 달렸다.

2018. 8.7.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너와 나는

 

우연히 만나

새로운 모습이 되었지

만질 수도 눈에 볼 수도 있는

 

이제

끊어 질수도

나누어질 수도 없다

 

작게는 한 방울이지만

서로가 손잡으면

더 넓은 강이 되고 바다를 이루는

 

너 가진 수소 둘

내가 가진 산소 하나

만나서 얻었다 새 이름

 

물.

2018. 8. 8

 

파 모종

 

높이 돋운 북 골에

옮겨 심은 파 모종

 

여린 파 두세 개

눕혀 흙을 덮었는데

 

다음 날 아침

조금씩 일어서고 있다

 

굽은 허리 펴느라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

 

장하다

홀로 서기.

2018. 8. 16.

 

숙제

 

숙제장이 든 가방

바윗돌처럼 무거웠다

 

얇은 수학책 한 쪽이

좀처럼 넘어가지 않고

 

풀리지 않는 문제들

절벽보다 높았는데

 

생각의 고리를 엮어

하나씩 풀었다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 졌다

2018. 8.16

 

 

꼼지락 꼼지락

 

“들어가지 마세요.”

더 들어가고 싶어

발가락이 꼼지락 꼼지락

 

“만지지 마세요.”

더 만지고 싶어

손가락이 꼼지락 꼼지락

 

“보지 마세요.”

더 보고 싶어

눈알이 몰래 꼼지락 꼼지락

 

“마세요.”를 보면 더 하고 싶고

“하세요.”를 보면 더 하기 싫은

까닭 하나

 

내 마음 나도 몰라

청개구리 한 마리

내 안에서 꼼지락 꼼지락

2018. 8.19

 

미안해

 

오른 쪽 엄지발가락에 난

상처 하나로

발목도, 무릎도 힘들어 한다.

 

무릎이 용을 쓰니

허리와 목과

나중엔 온 몸이 아프다

 

엄지발가락이

말했다.

 

미안해 모두.

2018. 9.14

 

 

리모컨

 

번호 하나 누르면

빛의 속도로 달려오던 네가

보이지 않아

 

건전지도 그대로이고

다른 화면은 더 선명한데

 

나 몰래

채널을 바꾸었는지

 

누르고 눌러도

너는 보이지 않고

 

지지지지-직

지지지지-직

 

조각조각

부서져 내리는 화면이 찔러

자꾸 아프다.

2018. 9.19

 

 

바위

 

마지막 남은

단풍잎 하나

 

바위 위에

앉았다.

 

바위 가슴에

또 하나

 

나이테가

생겼겠다.

2018.10.14

 

 

가을 사진 (1)

 

고추잠자리

두 마리 사랑하다가

 

철모르는 달맞이꽃에게

들켰다.

 

달맞이꽃 노란 웃음에

잠자리

온 몸이 빨갛다.

2018. 10.22

 

이슬

 

밤새

 

새날을 준비하느라

애쓴

 

지구가 흘린

 

땀방울.

2018.10.26.

 

 

수건을 개면서

 

더러운 온갖 것

다 닦아 내더니

 

세탁기 속에서

온 몸을 비비고

보송보송 마른 후

 

새로운 얼굴로

태어난 수건

 

누군가의 더러워진 곳을

닦아 주기 위해

다시 준비하는

 

너를 개면서

차곡차곡 함께 넣는다

미안한 마음

2018.10.29.

 

 

경천사지10층대리석탑

 

고향이 그립겠다

네가 첨 서 있던 경천사지

하늘에 따스한 햇살이 있고

때때로 구름이 한가하게 지나고

솔소리 바람소리 물소리 그윽한

 

온통 대리석으로 둘러싸인 지금 이 자리

웅장한 건물 한복판에서 뭇 사람들이

네 모습 그 당당함에 감탄하고 있을 때

 

맨 꼭대기 옥개석 위에

고향을 그리는 슬픈 눈이 보였다.

 

어느 일본인의 헛된 욕심 때문에

그 큰 몸집이 무너지고 조각난 채

바다 건너 남의 땅에 실려 가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까지

다듬어 놓은 낯 선 정원에

보란 듯 우 뚝 서 있었지만

바다 건너 고향생각 끊이지 않았겠지

 

하늘이 도와 다시 찾는 조국 땅

경복궁 회랑 한 모퉁이에 버려 진 듯 다시 섰지만

깨어진 조각보다 더 부서진 가슴

그래도 우리 땅이라 마음은 편했을 거야

 

일제강점기 역사만큼 상처투성이 네 모습

그래도 우리 손으로 고치고 다듬어

비바람 막아 주는 이곳에 세웠는데

 

고향이 그립겠다

네가 섰던 그 자리 경천사지

하늘에 따스한 햇살이 있고

때때로 구름이 한가하게 지나고

솔소리 바람소리 물소리 그윽한

 

웅장한 네 모습 맨 꼭대기 옥개석 위에

아직도 고향을 그리는 네 마음이 보였다.

2018.12. 28.

 

 

 

국립중앙박물관에서

- 대 고려전

 

동굴처럼 연결된 전시장 통로를 따라

화살표가 이끄는 곳에

1,000년 전 고려가 거기 있었다

 

450여점

다가서자 서로 맞닿은 눈 덥석 손을 잡고

끊임없이 내게로 와 속삭이는데

그들의 말을 거의 들을 수 없다

 

1,000년이란 시간의 거리 때문일까?

한 겹 유리를 사이에 둔

안과 밖의 경계 때문일까?

인공지능 시대를 사는 내 눈이

채 읽지 못하는 답답함

 

한 마디 말도 못하고 돌아 나오려는데

진열장을 빠져 나온 고려의 유물들이

내 발걸음을 민망하게 붙잡고 있었다.

2018. 12.28.

 

 

이상해

 

놀이동산에서 회전목마 타다가

어지럼증이 생기고

 

바이킹을 타다가

멀미를 일으켰는데

 

지구의 자전속도 시속 1669km

지구의 공전속도 시속 10만 7000km

 

한 번도 어지럽거나

멀미를 하지 않아

 

먼 달나라에서

토끼가 우리를 본다면

멀미할까 걱정할까?

2019.1.18.

 

 

몰라

 

아무것도 아닌 일로

내 짝이 토라졌다.

 

왜 그럴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아주 먼 별빛도

내가 바라보면 금방

반짝반짝 눈길을 보이고

 

서쪽 하늘 가냘픈 초승달도

바라보면 금방 눈짓하는데

 

손 내밀면 닿을 네 마음

정말 몰라.

2019. 1.20

 

 

입춘(立春)

 

영차!

영차!

 

응달에 남은

겨울 꼬리를 잡고

바람이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좀처럼 놓지 않는

끈질긴 추위

바람의 손이 팽팽하다

 

땀을 쥐고 바라보는

산과 들의 온몸에

 

조금씩

파랗게 힘줄이 돋고 있다.

2019.2.8.

 

 

 

우수(雨水)

 

우수(雨水)라는 말에

땅과 하늘이

몸을 풀고 있다.

 

팽팽하던 바람

부드러워지고

 

산비탈 잠자던 개울에도

졸졸졸 물소리

 

하나, 둘, 셋, 넷...

 

풀과 나무와 새들이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몸 풀기 체조를 시작하고 있다.

2019. 2.17

 

 

꽃자리

 

피는 꽃 예쁘더니

지는 꽃도 곱다

 

꽃자리 선 듯

내어 준 자리

 

자리마다 얼굴 내미는

작은 열매

 

미덥다.

2019. 4.5.

 

 

효자손

 

누군가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고 싶다

 

손이 닿지 않아 힘든 곳도

내가 있으면 문제가 없다

 

누군가 손에 잡히면

난 행복하다

 

하지만 회초리는

안 돼

 

다른 이의 가려운 곳

긁어주다 보면

어느 듯

가렵던 내 몸도 시원해진다.

2019. 4. 21.

 

 

마음

 

마음을

볼 수 있을까

 

아무렴

 

보이지 않는 바람이

솔 소리로 솔잎을 흔들며

나 여기 있어 하는 것처럼

 

내가 오늘 한 일

내가 오늘 한 말

생각해 보면

 

보이지 않던 마음이

나 여기 있어

소리 내고 있는 것 같아

2019. 4.22

 

 

내 손

 

할아버지 등을

주물러 드리면

 

할아버지는

아 시원하다

 

할머니 다리를

주물러 드리면

 

할머니도

아 시원하다

 

이상하다 내 손

선풍기도 아닌데

에어컨도 아닌데.

2019. 5.21.

 

 

길을 걷다가

 

‘속도를 줄이면 사람이 보입니다.’

 

오호!

 

개미를 만났다.

굼실굼실 풀 섶으로 가는

애벌레도 만났다

 

종종걸음으로 와서

종알대다 날아가는 새들도 만났다

 

천천히 걸었더니

나와 함께한

모두가 보였다.

2019. 7.20

 

 

신호등 앞에서

 

어머니

빨간 불이어요

멈춰 서서

아까운 시간을 보내야 하나요?

 

얘야

자세히 보렴

깜박깜박 시간이

파란불을 데리고

네게 점점 다가오고 있잖니?

2019. 7.20

 

 

참깨 밭에서

 

여기 모여라

 

햇살 안에 들어있는

바람 속에 들어있는

고소한 것들만

 

참깨 밭에 참깨들이

줄지어 서서

 

조롱조롱 매달린

하얀 종을 치고 있다.

2019. 7,20.

 

 

 

낙동강

 

시작이 보잘 것 없어도

이어지면 커진다는 거

 

속 좁은 마음도

열어두면 넓어진다는 거

 

가로 막혀 답답할 때는

돌아갈 수도 있다는 거

 

때로는 위로 또 위로

거슬러 오르고 싶다가도

 

이내 마음을 사려

내려 갈 줄도 아는 거

 

오늘도 넉넉히 흐르는

너를 보고 배운다.

2019. 8.

 

 

접시꽃

 

너를 보면

왠지 편해.

 

환한 얼굴도 그렇고

밝은 웃음도 그렇고

 

올망졸망

꼭대기까지

수없이 매단 꽃망울

 

볼 때마다 끊임없이

새롭게 피는

 

너를 보면

너를 닮는지

 

내 가슴에서도

자꾸 자꾸 꽃이 핀다.

2019. 9.17.

 

 

아버지의 바지

 

땀과 흙먼지로 뒤범벅되어

언제나 후줄근한

아버지의 바지

 

가족의 숫자만큼 무거워

낡은 바지자락

 

시원하게 땟물 벗어

홀가분한 가슴으로

 

빨래줄 위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고단한 아버지의 하루가

모처럼 쉬고 있다.

2019.10.9.

 

 

 

천사나팔꽃

 

일어나라

일어나라

 

이른 아침 꽃들이

기상나팔을 불고 있다.

 

힘차게 울려 퍼지는

수십 개의 노란 나팔

 

마당 가득

집안 가득

 

오늘도 좋은 아침

 

소리 없이 향기로

하루를 깨우고 있다.

2019. 10.9

 

 

권정생 생가에서

 

한 칸 오두막 쪽문을 열면

눈앞에 다가오는 일직교회 십자가 종탑

 

십자가를 바라보며 이어진 그의 기도는

하늘과 이웃을 향해 끊임이 없었지

 

하루치 양식이면 감사해

이웃에게 나누어야 편했던 여린 마음으로

 

붓을 잡으면

몽실 언니, 해룡이, 강아지 똥....

 

이 땅의 아픈 이들 마음 헤아려

샘물처럼 빚은 사랑이야기

 

지금은 텅 빈 생가

먼지 묻은 댓돌에 앉으니

 

“좋은 동화 한 편은

백 편의 설교보다 낫다.”며

오늘도 뎅그렁 뎅그렁

 

십자가 저 너머 하늘 향해

종 줄을 당기고 있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2019.10.19.

 

 

호박덩굴

 

담장 위 여기 저기

누런 호박 앉혀놓고

 

이웃집 담장위에도 몇 덩이 더

달고 있는 호박덩굴

 

뿌리에서 끝 순까지

십 미터도 넘는 거리인데

덩굴마다 첫 꽃처럼

싱싱한 꽃 나팔

 

“꽃 하나 또 피고 열매도 맺었다”

“알았다. 힘내라. 파이팅”

 

이웃과 깜깜이로 사는 요즘

길게 이어진 줄기로 연신 주고받는

 

호박덩굴 환한

유선통신.

2019. 10.19.

 

 

 

덩굴손

 

장대 끝으로 손 내미는

덩굴손

 

닿을락 말락

닿을락 말락

 

덩굴손 맨 끝자락에

흐르는 땀

 

힘내라 힘내

 

바라보는 햇살이

머물러 선 바람도 힘을 보태고

 

보이지 않는 땅 속에서도

뿌리가 용을 쓰고 있다.

2019.10.20.

 

 

 

둥지

 

빈 둥지에

새 한 마리

 

햇살 한 줌

물어 왔다.

 

환하다.

 

깃털 하나

깔았다

 

따스하다.

2019. 10.31

 

 

아뿔싸

 

달팽이 한 마리

파란 하늘 보며

길을 건너고 있다

 

아뿔싸

밟을 뻔 했다.

 

철 잃은 민들레

풀벌레와 귓속말을

나누고 있다

 

아뿔싸!

밟을 뻔 했다.

2019.11.9.

 

 

 

까막눈

 

밤늦게까지 연필 끝에 침 발라가며

네모 칸 공책 빼곡하게 채우던 할머니

 

까막눈은 떠야 한다고

한글학교 개근상 받던 날

 

비뚤어도 꼭꼭 눌러 쓴

열 한자

 

“야들아 내도 까막눈 떴대이.”

 

이제야 알았다 까막눈이란 말

할머니 돋보기에 가득 찬

까만 연필 글씨.

2019.12.

 

 

카톡

 

경쾌한 소리에 실려

네 마음이 왔다

 

기꺼이

내 마음도 보냈다

 

오고 갈수록

더 단단하게 이어지는

 

서로 고맙다

너와 내 마음

2020. 1.2

 

 

이상한 온도계

 

엄마 손이 이마에 닿았다

어머나! 펄펄 끓고 있네.

38.5도

 

엄마 손이 이마에 닿았다

오호! 다 식었네

36.5도.

2020. 2.4.

 

 

방귀

 

엄마 아빠가 자꾸 물었다

뀌었니?

 

간호사 누나도 의사 선생님도

나왔니?

2020. 2.5.

 

 

 

그리움

 

그리움이란

나의 모두가 네게로

달려가는 것

 

보고 싶다는 건

너의 모두를 내게로

불러 오는 것

2020.2.13.

 

 

 

순이(21)

 

순이야

네 작은 웃음에

버들강아지 마른 줄기 물이 오르고

네 따스한 입김에

파릇파릇 새잎도 곱더라

보드라운 네 손길 닿으면

올망졸망 꽃망울

참지 못하고 활짝 피겠지

미세 먼지 짙게 바람꽃 피던 날도

사뿐사뿐 다가오는 발길을 따라

환하게 열리는 하늘을 본다

순이야 어쩌니?

너로 인해 나는 늘

봄으로 살겠네.

2020. 3.18

 

 

 

순이(22)

 

줄넘기를 하다가

발목을 다쳤다는

 

금이 간 것도 아니고

부러졌다는 기별에

내 발목이 저려왔어

 

코로나 19로 인해

찾아 볼 수도 없는 병실

 

석고붕대를 한

너의 모습 때문일까

사방이 잠시 하얗게 보였다

 

이 겨울 지나면

일어 설 수 있을 테지

기도하는 마음으로 길을 가는데

 

겨울나기 준비하는

가로수 밑 둥마다

칭칭 감겨진 보호대가

 

네 발목을 감싸고 있는

석고붕대로 보였다.

2022. 1.4

 

 

 

벚꽃(1)

 

무엇이 그리 급해

화르르 왔다가

화르르 가더니

 

무엇이 그리 서러워

그렁그렁 꽃 진자리

그렁그렁 까만 눈망울

 

무엇이 그리 못 잊어

새록새록 가슴에 소름이 돋고

으슬으슬 온 몸에 열이 나는지.

2020. 4. 7

 

 

 

벚꽃(2)

 

화르르

화르르

연기 없는 불꽃

 

데었나 보다

보이지 않는 자리

 

오래도록

아린 거 보니.

2020. 4.10.

 

 

 

맺히면 풀기도 하고

끊어지면 잇기도 하지만

 

풀리지도 않고

날카로운 칼날에도

끊이지 않는

 

내 안에

보이지도 않는

 

이상한

끈 하나.

2020. 4.10.

 

 

 

똥 손

 

만지면 부서지고

닿으면 쏟고

잡으면 찢어진다고

아빠는 말썽꾸러기 내 손을

똥 손이라 하지만

 

방 안 가득 흩어진

레고 조각들

붙였다 떼었다 할 때마다

신기하게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는 작품

 

아무도 몰라줘도

자랑스러운 내 손

똥 손.

2020. 4.10

 

 

골목

 

늘 거기에

있을 줄 알았어

 

철없이 삐쳐 달아날 때

금방 쫓아와 달래주던

엄마 목소리

 

빛바랜 크레파스 벽화는 물론

고물고물 살아있는

내 낙서

 

생각도 못했지

어느 날부터 중장비에 무너진 자리

다시 선 아파트 숲

 

사진이라도 찍어 둘 걸

후회 했는데

 

눈 감으면

내 속에서 살금살금 나와

여전히 나를 부르는

그 골목.

2020.4.16.

 

 

탱자나무 울타리

 

팔랑팔랑 나비도

윙윙 벌도

겁 없이 드나들고

 

바람도 가시 울을

드나드는데

 

무섭지 않니?

아니

 

보이는 가시는

무섭지 않아.

2020. 4.25

 

 

 

바람

 

바람도 가끔은

제 모습을 보이고 싶어

 

나 여기 있어

나뭇잎을 흔든다

 

바람도 가끔은

제 소리를 내고 싶어

 

내 소리를 들어봐

휘파람을 분다.

2020. 4.25

 

 

 

벚나무

 

가장 아름다울 때

꽃비 내리듯

손을 놓는 꽃잎

 

늘 함께 할 줄 알았는데

훌훌 떠나고

 

이젠

빈손

 

그럴 줄 알면서도

늘 그랬듯

가슴 속에 꽃잎을 새겨 두고

기다린다 나무는.

2020. 4.29.

 

 

 

엄마는

 

삐뚤삐뚤

1,2,3,4,5···

숫자를 쓰고

‘엄마’라고 첨 쓴 글씨

개발세발 엄마 모습

첨 그렸을 때

 

우리 아들

천재네 하더니

 

어려운 수학문제

그 숱한 영어 단어

한두 개 틀릴 수도 있지

어깨에 힘 빠지게 하는 말

 

바보니?

2020.5.1.

 

 

 

사다리

 

1+5=6

2×4=8

원의 넓이=반지름×반지름×3.14

 

우리 집

우리고장

우리나라

이웃나라 알기

 

서둘지 말고 조금씩 올라가기

힘들어도 조금 참기

 

세상을

더 높이 더 멀리 더 넓게

한 칸 씩 올라가는 지혜의 사다리.

2020. 5.1

 

 

정답

 

1+2=3

3×4=12

왼쪽과 오른 쪽이 맞아야

정답이지만

 

너와 나

이쪽 지방과 저쪽 지방의 기후

왼쪽과 오른 쪽이 틀려야

정답.

2020. 5.4

 

 

자물쇠

 

단단히 잠겨 있어도

너를 열 수 있는 건

 

네 마음과 통하는

열쇠 하나

 

내 마음 꽁꽁

숨길 수 있는 곳

 

내 마음 받아 주는

자물쇠 하나.

2020.6.17.

 

 

빈자리

 

내 마음 한 귀퉁이

아주 작은 빈자리 있어

 

이따금

바람소리만 들렸는데

 

어느 날 우연히 그 자리

채우고 앉은 너

 

너도 나처럼

그런 자리 하나 있다고 했지

 

나도 너처럼

그 자리에 앉아 있을게.

2020. 6.26.

 

 

꼼지락

 

네 말 한 마디

눈빛 하나에

 

내 마음이

자꾸만 꼼지락거리는지

 

너도 모르게

조금씩 다가가는 거

 

들키지 않으려 아닌 척 하면서도

들키고 싶어

 

오늘도 모르는 척

너를 향한 내 마음

 

꼼지락 꼼지락.

2020.7.4.

 

 

비 오는 날 별보기

 

비 오는 날 별을 보잔다

멀쩡한 날에도 보기 힘든 별을

 

우산 하나 받쳐 들고

하늘만 보는데

 

빤히 나를 바라보며

별이 보인단다 내 눈 속에

 

쿵쿵 심장이 뛰고

하얗게 비어버린 머릿속

 

쏟아지고 있었다

무수한 별들이.

2020. 7.20.

 

 

 

 

나리꽃

 

닥지닥지

주근깨투성이지만

 

뽀얀 백합

부럽지 않아

 

해님보다 더 붉은 얼굴

환하게 웃는 꽃

2020. 7.21

 

 

 

반걸음

 

성큼 다가가고 싶니?

 

참고

반걸음만 다가가 봐

 

성큼 성큼 다가가고 싶은데

반걸음이라니

 

노래 부를 때

반음 올릴 때나 반음 내릴 때

부드럽고 편해지는 느낌

 

바로 그거야

너와 나 사이도 편안해 지고

더 가까워지는

 

다가 선 듯 아닌 듯

묘한 반걸음의 맛.

2020. 8.30.

 

 

 

 

달맞이꽃

 

달을 좋아한다고

누가 내 이름까지 지었는지

 

나날이 변하는 저 달을

왜 내가 좋아 하는지

 

하늘은 너무 높고

달은 너무 멀리 있어

 

멀어지지 않으려

밤마다 달빛 닮은 얼굴로

 

하늘 바라보는 내 이름은

달맞이 꽃.

2020. 8.30.

 

 

달성공원 키다리 아저씨

 

달성공원에 갔었어

없는 거 빼곤 다 있다는 동물원

 

그림책이나 TV에서만 보던 거

실제로 본다는

호기심 잔뜩 안고 갔었지

 

우리 집 보다 훨씬 큰

대문이 문을 활짝 열어놓고

나를 반기는데

 

이게 뭔 일이래?

대문 문짝만큼 높은 키에

수줍게 웃고 선 이상한 아저씨

 

영화에서 본 킹콩이

옷을 입고 있는 줄 알았지

 

구경 잘하라고

솥뚜껑 같은 손을 흔들어 보이던

키다리 아저씨

 

첨 본 신기한 동물보다

오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달성공원 앞

키다리 아저씨

스핑크스의 미소.

2020. 9.29

 

 

구절초

 

아름드리 소나무가

받치고 선 가을 하늘

 

구절초 한 무리 하늘

하늘바라기 하는 동안

 

꽃잎 속에 젖어드는

솔잎 사이로 내린 하늘

 

여린 햇살 내려앉은

주인 없는 빈 의자

 

찬바람에 실려 온 듯

이름 모를 낙엽 하나

 

구절초 환한 웃음에

얼굴 빨개 돌아앉았다.

2020. 10.9

 

 

 

반찬

 

맛있는

고등어 반찬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는

눈으로만 드신다

 

눈치 없게 혼자서

다 먹었다

 

내 모습을 바라보시던

모두의 눈빛이

 

이상하다

맛있게 드신 표정이다.

2021.2.17.

 

 

참 이상해

 

엄마와 나는

사랑한다고

자주 말하면서

 

좋아하는 일

싫어하는 일

모를 때가 더 많아

 

참 이상해

사랑한다면서

서로를 잘 모른다는 것.

2021. 2.21

 

 

엄마

 

마음에도 구름이 끼어

가슴 먹먹해 지고

가로등 없는 골목길처럼

앞도 뒤도 안 보일 때

 

이런 저런 속상한 일들

내가 미워지고

토라진 마음 풀리지 않고

더 단단히 얽힐 때

 

즐겁고 신나는 날에는

잊고 있었는데

부르고 싶어 기대고 싶어

엄마라는 그 이름을

 

부르면 금방 다가와

파란 하늘이 열리고

기대면 따스하게 안아

보듬어 주는 가슴

 

생각만 해도 그렁그렁

눈시울 젖어와

마른 가슴에 싹이 트는

봄비 같은 우리 엄마

2011. 1.8.

 

 

 

CCTV

 

오가는 차도 사람도

몰래 찍는다

동그란 눈 부릅뜨고

 

찰칵 찰칵

이 골목 저 골목에서도

 

속도위반 하는 차

못된 짓 하는 사람

거짓말 못하도록

잘도 찍는 카메라

 

어쩌나

하늘 어디엔가

내 마음을 찍는

카메라가 있다면

2021.3.9.

 

 

 

 

종이컵

 

버려진 일회용

종이컵

 

흙을 채우고

씨앗을 넣고

물을 뿌렸다

 

파랗게 돋아난

무 싹 배추 싹.

 

쓰레기가 된 컵이

나란히 줄 맞춰

생명을 길렀다.

2021. 3.9.

 

 

코로나 일기

 

1. 코로나 선생님

 

손은

흐르는 물에 30초 이상 씻어세요

여럿이 모인 곳엔

가지 않기

사람과 거리는 2m이상 유지하기

기침이나 재채기할 땐

옷소매로 가리고

외출할 때는

꼭 마스크를

 

남녀노소

누구나 꼼짝없이

말 잘 듣게 가르치는

무서운 선생님

2020. 3.13

 

 

 

2. 거리두기

 

눈치 없이

네 곁에 서성거리는

 

나보다 잘생긴 그 녀석

얄미웠는데

 

‘마스크 쓰고

저만치 거리 두기’

 

고맙다

코로나 19.

2020. 6.26.

 

 

 

3. 코로나 만남

 

너를 만났지 아주 잠깐만

 

한 발 떨어진 틈 사이가

왜 이렇게 멀어 보이는지

 

눈빛으로 나눈 짧은 이야기

아쉬움만 가슴에 쌓이는데

 

마스크가 가린

반쯤의 미소

 

내 마음에 애써 담으려 해도

자꾸만 자꾸만 흐려지는지

 

돌아 서는 등 뒤로

바람이 불었다.

2021.2.13.

 

 

4. 아차!

 

숙제 챙겼지?

미술 준비물도

 

비 오는 날은

챙길 것이 더 많아

우산, 비옷, 장화...

 

급하게 막

문을 나서는데

 

아차!

또 챙기지 못했네

이놈의 마스크.

2021. 5.1

 

 

 

5. 한 칸 건너

 

가끔 챙겨오지 못한

학용품

 

눈치만 보내도 금방 아는

내 짝꿍

 

곁에 앉아야 할 짝꿍이

한 칸 건너 앉았다

 

애를 쓰도 좀처럼

통하지 않는 눈짓

 

이제 알았다

한 칸 건너가 이렇게 먼 줄을.

2021. 5. 1.

 

 

6. 말이 안 되는 말

 

네 모습

잊어 버릴까봐 겁나

 

가릴 것 없는데

반 쯤 가리고 있으라니

 

가까이 봐도

더 보고 싶은데

 

다가서지 말고

저만큼 떨어져라 해놓고

 

‘마음은 가까이’

말이 되니?

2021. 5.1.

7. 점심시간

 

마주 보며 먹어야

좋지

 

웃기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그래야 소화도 잘 되지

 

투명 칸막이 세워두고도

마주 앉으면 안 돼

 

다투다 돌아앉은 그날처럼

네 뒷모습만 보며

먹는 점심

 

진짜 맛없다.

2021.5.1

 

 

 

8. 낯가림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와 엄마와는

함께 모여도 괜찮은데

 

모처럼 다니러 온

삼촌네 가족

사촌들

 

안 된단다

함께 앉으면

 

손소독도 잘하고

마스크도 잘 쓰도

 

낯가림이 심하나보다

코로나 19 이놈은.

202

 

 

9. 요양원

 

할머니의 손

잡지도 못했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

하지도 못했다

 

멍하니 바라만 보다가

돌아 선 요양원

 

유리창 너머

계속 흔들고 계시는

할머니의 여윈 손이

 

내 눈시울 안으로

젖고 있었다.

2021. 5.4

 

 

 

10. 신기해

 

들판을 가득 매운

유채꽃 무리

 

비탈길에 무더기로 핀

애기똥풀

 

어깨 나란히

저리 무리지어도

 

괜찮니?

코로나 19

 

손 소독에

마스크 쓰고도

절절매는데.

2021. 5.5.

 

 

11. 간호사

 

삼복더위에

우주복 같은 방호복 입은

간호사 누나

 

흐르는 땀에

이마며 콧등이 눌려

반찬고까지 붙였다

 

병실 하얀 벽에

지친 듯 기대앉은 모습을 보다가

 

마스크 쓰고 투정부린 내가

부끄러웠다.

2021.10.5.

 

 

12. 체온 측정기

 

마스크를 쓴 채

설 때마다

주눅이 든다

 

36.5

정상입니다

 

보이지도 않은

내 몸의 온도를 알다니

 

가끔은 속마음 들킬까봐

옷깃을 여미고 선다.

2021.10.5.

 

 

 

13. 자장면 사먹기(1)

 

마스크는 쓰셨죠?

체온도 재시고

아참

소독제로 손을 소독 하셔야지요

 

하루에도 몇 번씩

소독하는 손

 

손바닥이 부풀다

벗겨지는데

백신은 맞으셨나요?

 

세 번 다

보여주세요 증명서

좋아요

 

이번에는 여기에 전화 한 통만

080-531-****

감사합니다 앉으셔도 되요

 

자! 여기에

자장면 두 그릇.

2022.1.10

 

 

 

14. 자장면 사먹기(2)

 

어서오세요

어디서 오셨나요?

마트에서 왔어요

마스크 하셨군요

 

열재시고 손 소독도

접종은 세 번?

이 번호로 전화 해주세요

네 감사해요

 

어디서 오셨나요?

지하철 타고 왔네요

그럼 안심입니다.

여기 앉으세요

 

자!

여기 자장면 세 그릇.

2022.1.10.

 

 

 

15. 꽃밭에서

 

꽃이 아픈 거 같다

잎과 줄기에 힘이 없다

 

왜 그럴까

마주 앉아 한참을 바라봐도

어쩌지 못하는 내가 안타까운데

 

오히려 꽃나무가

나를 걱정하는 것 같다

 

걱정하지 말라고

코로나 조심하라고

눈웃음을 보내 주었다.

2022. 7.24

 

 

 

문패(1)

 

들며 나며 늘

바라보이는 곳에

문패 하나 걸었다

 

아버지 이름 바로 곁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문패 하나

 

볼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어

가물가물 잊혀 질 것 같아

 

들며 날며

가장 잘 보이는 곳

 

못 꽝꽝 박아

문패 하나 더 걸었다

2021. 6.4.

 

 

 

문패(2)

 

우리 집 출입문에는

106동 103호였는데

 

어느 날

묵직한 나무 문패 하나 달았다

 

기름칠 잘 먹은 나무판에

먹물 선명한

‘김재수’라는 글자

 

엄마는 촌스럽다고

반대했지만

우리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온 가족의 마음이 들어있다고

자주 쓰다듬는 아버지의

투박한 손

 

문패 나무만큼

든든해 보였다.

2021. 6.4

 

 

 

장미

 

담장 너머로

밝게 웃고 있다

 

철조망 그 안에

누가 사는지

무얼 하는지

알 수 없는데

 

날카로운 철조망을

푸른 잎으로 덮고

 

구부러진 오월의

골목 가득

 

향기로 채웠다.

2021. 6.22

 

 

 

천둥번개 치는 날

 

번쩍!!!

우르르 꽝!

하늘이 화가 났나보다

 

잘못한 게 없는지

가슴을 쓸어 내려도

 

콩닥콩닥

뛰는 가슴

 

아무렇지 않은 듯

친구 흉을 본 일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왜 자꾸 생각이 나는지

 

엄마 아빠랑 함께 있어도

뛰는 가슴

 

콩닥콩닥.

2021. 6.26

 

 

 

감나무

 

호박순 연한 줄기에

어깨 잠시 빌려주더니

 

여린 가지가

등짐을 지고 섰다

허리가 휘도록 매달린

누런 호박 두 덩이

 

가을바람에 잎 지듯

떨어지면 어쩌나

 

굽은 허리 펴지 못해도

잘 견디고 섰다.

2021. 9.24.

 

 

 

수평선

 

바다가 나누었을까

하늘이 나누었을까

 

하늘과 바다 사이

가로로 그은

뚜렷한 선(線) 하나

 

닿아도 떨어진 듯

떨어져도 닿은 듯한데

 

안개 잔뜩 낀 날

하늘과 바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누었던 그 진한 자리

사라지고 안보였다.

2021.10.4.

 

 

 

냉장고 청소

 

보물도 아닌 것들이

자꾸 나왔다

 

아낀다고 저만치

밀어 넣어 둔 것들

 

시간이 지나면

쓸모없다는 거

 

엄마는 아깝다지만

다시 넣을 수 없는 것들

 

배속에 잔뜩 껴안고

얼마나 답답해했을까

 

빈자리 생길 때마다

채한 듯 했던 내 가슴이

뻥 뚫린 듯하다.

2021. 11.6.

 

 

 

왜 그럴까?

 

우리 집 창가에 찾아와

노래하는 새들

 

새소리 들으면

콧노래가 절로 나오고

마음이 절로

상쾌해 지는데

 

이상해

어른들은

 

후여! 저놈의 새

시끄럽고 똥만 싼다며

화내는 걸 보면.

2021. 12.22

 

 

 

졸업

 

졸업이란 말에

가슴에 커다란

나이테 하나가 생긴 것 같다

 

어제와 오늘

키를 재어 보고

몸무게를 달아 봐도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

 

누굴까?

보이지 않는 시간위에

보이지 않는 매듭을 만들어

 

나도 모르게

작지만 다짐을 하게 한 사람은?

2022.1.4

 

 

 

숙제(1)

 

감기로 결석한 날

숙제를 내셨다 카톡으로

너무하신 선생님

 

새소리, 바람소리 듣기 5분

하늘보기, 창밖으로 별보기 5분

눈감고 친구들 생각 3분

마지막 선생님 생각은 1분만

 

쉽고도 어렵다

선생님 숙제

2022. 1.26.

 

 

 

숙제(2)

 

새소리, 바람소리듣기 3분

하늘 보기, 구름보기 3분

친구들 생각하기 2분

 

카톡으로 보내 온

선생님 숙제

 

나만 알고 보는 이도 없어

대충했는데

 

마지막 선생님 생각하기 1분

 

눈을 감자마자

빙긋 웃으시는 모습

내 맘 모두 틀긴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2022. 1.31

 

 

 

목발

 

내 아픈 다리만큼

누르는 힘으로

너를 힘들게 해놓고

 

네가 떠받치는 힘으로

내 겨드랑이가 아파

몇 번이나 버리고 싶었는지

 

참으로 오래 동안

힘들어 하면서 서로 기댔는데

 

하얀 석고붕대를

훌훌 풀어 던지고 난 후

어딘가에 버리고 잊었지

 

뽀얀 먼지 묻은 너를

뒤 곁에서 다시 만난 오늘

 

아픈 내 다리를

대신해준 네게 미안해

 

겨드랑이 안으로 깊숙이

너를 껴안고

속상했을 네 마음을

꼭 품어 본다.

2022. 1.25.

 

 

 

섣달 그믐날

 

꿈을 꾸었어

하나님이 나와 달팽이랑

달리기를 시켰어

“15초 동안 열심히 달려봐”

나는 100m

달팽이는 1cm

내가 이겼다고 좋아했는데

하나님이 주신 상장엔

커다랗게 찍힌 빨간 도장

“둘 다 열심히 했음으로 칭찬함”

2022. 2.1.

 

 

이상한 웅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이 연사 소리 높여 외칩니다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고

이 연사 소리 높여 외칩니다

 

허 그것 참.

2022. 2.13.

 

 

그 자리

 

그 자리에

또 피었다 패랭이꽃

 

뿌리 채 뽑아내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여기가 제자리라며

보랏빛 얼굴로

또 피었다

 

뽑아내려던

손을 거두었다.

2022. 3.19.

 

 

봄(1)

 

햇살이 여린 빛으로

콕 콕

꽃눈을 쪼고

 

꽃눈도

콕콕

껍질을 쪼아 두더니

 

병아리 알을 까고 나오 듯

 

톡, 톡, 톡···

봄꽃이 지천으로

환하게 터졌다.

2022. 3.19.

 

 

 

봄(2)

 

응달에 붙박인 얼음이

겨울 꼬리를 잡아도

 

겨울은 팔자걸음으로 가고

봄은 까치걸음으로 오는 사이

 

꽃 샘 추위가

화사한 매화와 벚꽃에

심술궂게 눈을 뿌린다

 

매화도 벚꽃도 눈꽃도

모두

꽃이어서 좋아

 

가벼운 옷차림으로

골목길을 나서는 아이들 얼굴도

환하게 꽃이

향기로 피는 하루.

2022. 3.20

 

 

춘분(春分)

 

응달에 붙박인 얼음이

겨울 꼬리를 잡는 동안

 

겨울은 팔자걸음으로 가고

봄은 까치걸음으로 오고

 

화사한 매화와 벚꽃에

꽃 샘 추위가

심술궂게 눈을 뿌린다

 

매화도 벚꽃도 눈꽃도

모두 꽃이어서 좋아

 

가벼운 옷차림으로

골목길을 나서는 아이들 얼굴도

환하게 꽃이 피는 하루다.

2022. 3.20.

 

 

열무 꽃

 

다육이 화분 한 쪽에

이상한 싹이 돋았다

엄마는 웬 열무 씨가 돋았지

뽑아 버릴까?

 

아니에요

흙속에서 다육이와 약속했을 거에요

함께 자라기로

 

어느 날 꽃이 피었어요

서로 다른 꽃

 

약속해서인지

웃는 모습이

서로 닮았어요.

2022. 5.4.

 

 

 

눈 맞춤

 

풀과 나무, 꽃과 새

하늘의 구름과 바람까지

 

눈을 맞추면

내 안으로 쏙 들어오는데

 

별것 아닌 것으로 토라진 너

바로 볼 수 없어서

 

오늘은 내가 먼저 나선다

네가 다니는 그 길목

저 멀리서부터 눈을 맞추러

 

눈을 맞추는 건

마음이 하나가 된다는 것

2022. 5.18

 

 

 

우연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 많고 많은 산소와

그 많고 많은 수소 중

 

어떻게 만나

물이 되었을까

 

서로에게 시원한

물이 되었을까

2022. 5.18

 

* 노사연의 노래 첫 소절

 

 

 

단비

 

긴 가뭄 끝에

내리는 비

모두가 단비란다

 

손바닥에 받아 본 맛

그냥 맹물인데

 

흠뻑 비를 맞고 있는

나무와 풀들이

 

운동 후 목이 말라

꿀꺽 꿀꺽

사이다 마시던

꼭 내 표정이다.

2022. 6.4.

 

 

 

풀꽃

 

한참이나 너를 본다

쪼그리고 앉아

 

내 마음 이미 네게

빼앗겼나 봐

 

이렇게 쪼그리고 앉아

너를 보고 있다니

2022. 6. 4.

 

 

 

 

현충일

 

태극기를 걸었다

오늘은 기폭만큼 내려서

 

그 많은 깃발 중에서

태극기는 우리나라 국기

 

감사한 일이다

우리 집 대문에

오늘 내가

태극기를 달 수 있다는 게

 

기폭만큼 내린 빈자리에

고마운 마음을 펄럭여야지.

2022. 6.6.

 

 

너를 기다리는 동안에

 

간의 의자에 앉아

너를 기다리는 동안

 

무릎위로 햇살이

살금살금 올라 왔어

안녕 하면서

 

바람도 나를 간지럽게

감싸 주고

 

발밑에서 민들레가

노란 웃음을 웃고 있었어

 

모두

나를 기다린 것처럼

 

네가 내게 다가와

너를 향해 일어서려는데

 

잘 가

모두 서운한 표정으로

말하는 것 같아

자꾸만 뒤를 돌아 봤어.

2022. 6.10.

 

 

잡초

 

뽑고 뽑아도 자라는

저 씨앗은 누가 뿌렸나요?

 

하늘이 우리 몰래

뿌린단다

 

하늘은 왜

우리를 힘들게 해요?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하라고 내는

숙제란다.

2022. 6.11

 

 

폭염 아래

 

오늘은 네 안에 나를

모두 꺼낸다.

 

오래 자리 잡고 있어

느슨해진 그 틈 사이

 

어둠의 바이러스가

기생하고 있을지 몰라

 

타는 햇볕 아래

부끄러운 것들 펼쳐 놓는다

 

폭염아래

하얗게 바래져야

 

네 안에 다시 들어 갈 수 있도록

그 첫 마음

2022. 6.22.

 

 

에어컨 실외기

 

에어컨을 켰어

시원해서 좋았지

 

방안의 열기도

내 몸의 더위도 식히려고

바깥의 실외기는

소리 내며 돌아가고 있었어

 

방안이 시원한 만큼

너는 더욱 뜨거워지고 있었어

 

뚝뚝

흘러내리는 땀방울

 

미안하다.

2022. 7.13.

 

 

 

꽃밭에서

 

꽃과 내가 마주 앉아

한참이나 바라보았어.

 

서로가 하는 말을

알지 못해도

 

좋아하는 마음

눈빛으로 알 수 있었어

 

네가 나에게

꽃인 것 같이

 

나도 너에게

꽃이었으면 좋겠어.

2022. 7.19.

 

 

 

나 여기 있어요

 

흐드러지게 핀

봉숭아꽃 사이로

자꾸 꼬리를 흔들었다

강아지풀이

나도 여기 있어요

 

토실토실한 꼬리를

흔들었다

 

오호!

너도 거기 있었구나

고개를 끄덕여 주었더니

 

신이 났는지

바람결에 꼬리를

더 흔들고 있었다.

2022. 7.25

 

 

담쟁이덩굴

 

담장에 붙어 어정어정

게으름을 피우더니

갑자기 담장을 타고 올랐다

 

누군가 벽에 그려놓은 보기 흉한 낙서들

담쟁이는 더듬이로 알아차렸나 보다

 

수십 개의 이파리

손바닥처럼 펴더니

 

오늘 아침 파란 벽화로

바꾸어 놓았다.

2022. 7.26.

 

 

바람

 

바람이 쉬는 걸 알 수 있니?

바람이 자는 걸 본 일 있니?

 

쉿!

 

작은 풀잎이 입을 모으고

작은 이파리들이 숨을 죽이고

꼼짝하지 않을 때

자세히 보렴

 

바람이 지금 쉬는 중이야

바람이 지금 자는 중이야.

2022. 7.26

 

 

호박꽃

 

호박 덩굴은

우리 엄마보다 손이 크다*

 

지나가는 풀벌레들이 쉴 수 있도록

땡볕도 소나기도 우산처럼 가려주는

이파리도 그렇고

 

성큼성큼 뻗어가는 덩굴 마디에

조롱조롱 맺은 애호박도

듬직하다

 

크고 환한 웃음으로

꿀벌에게 열어 주는 가슴도

넉넉하다

 

그러니까 가을이면

한 아름도 더 넘는

달덩이 같은 호박을

 

우리 집 담장 여기저기에

숨겨 놓나 봐.

2022. 7.27

 

* ‘손이 크다’라는 말의 뜻은 ‘사람이 씀씀이가 후하다’라는 뜻이다.

 

 

 

기러기

 

앞서 가던 기러기가 지치면

다른 기러기가 앞장을 서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 도우며

수만리 하늘 길을 간다는 기러기

 

일등을 향해

고개 한 번 돌려보지 못하는

나의 날개 짓

 

오늘은 나도 한 번 쯤

기러기가 되고 싶어.

2022. 7.29.

 

 

 

물주기

 

비가 내린다

때로는 가랑비

때로는 소나기

 

내가 화분에 물을 주듯

하나님이 지구라는 큰 화분에

물을 주고 계신다.

2022. 7.30.

 

 

 

 

악보

 

마음이 울적해서 노래를 불렀다

 

악보 맨 첫머리에 올림표

기운 내라는 신호

 

한 마디 두 마디 지나면

숨 고르라는 숨표

 

한 소절 다 하면

쉬어 가라 쉼표

 

신나면 큰소리로

속삭일 땐 소리를 낮추어

 

점점 세게 점점 여리게

때로는 마음껏 길게 늘이다 보면

 

이젠 그만

마음을 붙잡아 두는

두 겹세로줄

2022. 8.3.

 

 

 

맨드라미

 

닭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수탉이 콕콕

쪼아도 본다

 

수탉 벼슬보다 더 붉게 핀

맨드라미 꽃

 

“너는 누구니?”

 

모두 눈이

대록대록하다.*

2022. 8.10.

 

* 작은 눈알을 이리저리 깜찍하게 굴리다.

 

 

 

장마

 

하나님

너무 많이 내려요

 

우리 농사도

이웃집 과수원도

큰일이어요.

 

억지 같지만

지구를 거꾸로 뒤집어

쏟아내고 싶어요

 

넘치는 물

돌려 드리고 싶어요.

2022. 8.10

 

 

 

 

하늘이

해와 달과 별

구름과 비와 바람을

품고 있다가 내려주면

 

땅은

수많은 씨앗을 품고 있다가

조금의 빈자리라도 생기면

이름 없는 온갖 풀들을

쑥쑥 기워 주는데

 

나는

누구의 품이

키우고 있을까?

2022. 8.17.

 

 

꽃받침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을 위해

꽃잎을 받치고 있는

너를 본다

 

꽃 떨어진 자리 열매를 위해

또 두 손 받치고 있는

너를 본다

 

아무도 모르는

뒤 자리에서

칭찬 한 번 받지 못해도

 

너는 장하다.

2022.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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