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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444

빛마당 2008. 1. 28. 13:30
 

182. 44,444

 제목이 무슨 암호 같습니다. 하지만 암호도 아니고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사탄의 숫자 ‘666’ 과 비슷한 내용도 아닙니다. 이 숫자는 단지 오늘 내 승용차 주행 거리가 막44,444km를 지났다는 표시입니다. 계기판을 보다가 주행거리가 44,442km임을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2km만 더 가면 44,444km가 되겠기에 호기심도 있고 해서 마지막 2km를 우리 집 차고에서 마무리하기로 마음속에 작정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내 혼자 생각이었을 뿐 내 차가 44,444km에 도달하는 순간은 우리 집 차고가 아닌 상주에서 겨울바람이 가장 강한 북천교 위였습니다.

 이 일을 통해 우리가 사는 삶 도 이와 별로 다름이 아님을 느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정말 별것도 아닌 일도 내 뜻대로 쉽게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계획의 적정성,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의지력, 또한 외적 환경이 필요하며 여기에 ‘기회’와 같은 요소들이 함께 어우러져야합니다. 기회란 ‘어떠한 일을 하는 데 적절한 시기나 경우’를 말하는데 평범한 우리로는 그 ‘적적한 시기나 경우’를 포착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이탈리아의 토리노 박물관에는 커다란 날개도 모자라 발목에 작은 날개가 달린 조각이 있는데  제우스의 아들 ‘카이로스’라는 기회의 신상입니다. 이 신은 앞머리만 무성할 뿐 뒷머리는 번쩍번쩍하는 대머리인데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사람들이 기회를 만났을 때 쉽게 잡을 수 있게 함이고, 대머리인 까닭은 일단 지나가면 다시는 붙잡을 수 없을 상징적으로 나타냈다고 합니다. 신화의 내용과 그 형상이 時事하는 바가 큽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기회란 단 한 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생을 통해 또 다른 모습으로 몇 번이고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기회에 대한 미련으로 다가오는 기회를 놓쳐버리는 우를 범할 때가 있습니다. 

 비록 44,444km의 계획이 갑작스러운 일로 실패했지만 다시 55,555km가 될 때는 분명히 우리 집 차고에서 실현시켜 보리라고 다짐을 합니다. 승용차의 계기판을 보니 벌써 44,478km를 돌파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11,077km가 남았습니다. 참 별 일도 아닌 일에 계획을 세우고 있는 참 별 볼일 없는 나를 보며 웃는 아침입니다. 허허허

2008. 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