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학/상주학 제4권

상주아리랑의 정체성

빛마당 2014. 8. 9. 19:52

상주문화원 금요사랑방

『상주아리랑』과 정체성

김 재 수

상주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

Ⅰ. 들어가는 말

‘아리랑’에 대해 나는 무지하였다. 아리랑이 무엇인지 왜 아리랑인지 아리랑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불려 졌는지에 대하여 막연한 상식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2008년 10월, 제2회 『상주동화나라이야기축제』 한 마당에서 ‘상주아리랑(김의철 작곡)’이란 낯선 이름을 접했다. 구슬프게, 정말 ‘청성 맞다’는 말이 맞을 정도의 구슬픈 소리로 다가 온 상주아리랑.

‘상주 아리랑’이라니, 상주에도 아리랑이 있었던가? 62년을 상주에서만 살아온 내게 상주아리랑이란 말은 너무도 생경하게 들렸다. 내가 아는 아리랑이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라는 본조아리랑 정도였고,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의 밀양아리랑, 그리고 ‘아리아리 쓰리쓰리 / 아라리요 /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간다.’ 라는 강원도 아리랑을 그나마 노래방에서 들어 본 정도였다.

그리고 내 상식으로 아리랑이라 함은 ‘나름대로의 역사성이나 지역성, 설화 등이 바탕이 되어 구전되어 내려오다가 하나의 소리로 정착되거나 또 첨가 변형되면서 불리어 온 노래’ 정도였기에 어느 날 갑자기 찾아 온 ‘상주 아리랑’에 대한 ‘낯가림’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다가 아리랑에 대해 내 상식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안 것은 (사)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인 김연갑 씨의 글을 읽으면서였다. 김연갑 씨는 창작 『대구아리랑』에 대한 글에서 “대구아리랑은 분명 창작 아리랑이다. 그러나 따진다면 창작 아닌 아리랑이 강원도 아리랑(긴아라리·자진아라리)말고 어떤 것이 있는가. 밀양아리랑이 1920년대, 진도아리랑이 1930년대, 하물며 아리랑의 대표라는 의미로 불리는 본조아리랑(서울․경기아리랑)이 1926년 개봉된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 이고 보면 거의 모든 아리랑이 창작 아리랑인 것임을 알게 된다. 바로 여기에서 시사 받을 수 있는 것은 전통이란 반드시 옛 것이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는 글이었다.

이로 인해 아리랑에 관심을 가지고 인터넷 여행을 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이미 우리 지역에도 ‘상주아리랑’이란 이름으로 전해 내려오는 가사가 몇 편 있으며, 김의철 씨가 작곡한 ‘상주아리랑’ 외에 1950년대에 김소희 명창이 작창(作唱)한 ‘상주아리랑’이 불러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뿐만 아니라 김소희 명창이 작창한 상주아리랑은 전국적으로 보급되어 국악이나 민요를 하는 분들은 이미 잘 알려 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사실은 솔직히 내겐 충격이었다. 이토록 나만 모르고 있었을까. 아니면 우리 지역 모두가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지역문화에 대한 무감각, 무성의했던 나 자신을 일깨워야 하겠다는 자각과 함께 지역사회에 대해 죄송한 마음이 전류처럼 흘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상주아리랑’ 보급을 위해 이미 관심 있는 분들이 오래 전부터 악보를 채보하는 노력을 하고 있었고, 상주문화원 민요교실과, 영남아리랑 보존회 상주지부(김동숙 지부장) 회원들, 그리고 이명희 명창의 문하와 그 밖에도 관심 있는 분들이 활동하고 계심을 알았다.


Ⅱ. 아리랑은 어떤 노래인가?


 1. 아리랑이란?

우리나라 민요 가운데 아리랑은 가장 상징적인 노래다. 우리나라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를 가더라도 아리랑이 없는 곳이 없다. 또 누구나 한 곡쯤 부를 수 있는 노래도 아리랑이다.

옛날부터 아리랑은 식견 높은 양반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가 아니라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지어 부르고 어깨 너머로 배워 부르고 했던 백성들의 노래, 즉 민요(民謠)인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아리랑’이라 할 때 가락이 가지는 독특한 매력, 쉬운 표현 형식, 해학성, 그리고 노래가 가진 기능의 다양함, 노랫말 속에 숨어있는 저항성 등 참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난다. 그러나 그 어느 것 하나 ‘아리랑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아리랑을 노래하거나 읊조리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른 생각이나 느낌을 가지고 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비록 분명하지는 않더라도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생각은 한 번 쯤 해 봄직 하다. 그러다가 아리랑에 대해 관심을 가진 전문가 몇 분의 글을 접하면서 막연했던 아리랑이 그나마 ‘그래, 이런 것이구나.’하고 조금은 선명한 모습으로 다가 오기 시작했다.

아리랑에는 어김없이 ‘고개’가 등장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 아라리요 /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간다.’

‘문경 새재는 무슨 고갠고/구비야 굽이굽이 눈물이 난다.’

이 고개에 대하여 김열규 씨는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고개의 뜻은 뭣보다 이 ‘넘음’을 실마리로 풀어가야 한다. ‘넘음’은 너머가 없고서는 불가능하다. 저 너머, 그 너머로 가는 것이 곧 넘음이다. 고개를 가름으로 해서 이쪽과 저쪽은 서로 너머가 된다.”-중략

“민요 아리랑이 이 고개의 노래요 재의 소리인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은 괴롭고 쓰라리게, 한스럽고도 서럽게 살아간 사람들, 해서 구겨지고 찌든 목숨들이, 그래도 그냥이야 차마 주저앉아 버릴 수 없어 되짚고 일어나 넘어서려는 의지를 담은 노래다. 그러기에 우리들의 ‘소리의 소리’요 ‘노래의 노래’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들은 아리랑이 노래하는 고개의 진상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작게는 한 개인의 꿈과 소망과 꺾임이 엇갈린 삶의 고개요, 크게는 온 겨레의 의지와 절망이 교차하는 역사의 고개였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 우리들은 아리랑을 지도나 지리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 우리들의 삶에서 찾아야 하고 역사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삶에 고비가 있고 역사에 난관이 있다면, 그 고비며 난관들이 다름 아닌 ‘아리랑 고개’ 바로 그것이다. ‘아리랑 고개’란 아무데도 없고 아무데나 있는 고개다. ‘아리랑 고개’는 우리들 삶과 역사에 솟은 절망의 절정이고 동시에 소망의 절정인 고개 바로 그것이다.”

김열규 씨는 이어 “아리랑은 노래라기보다 역시 소리였다. 소리를 단순히 노래와 같은 값의 말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소리는 그야말로 육성(肉聲)이다.

아리랑을 결코 한 종류의 노래라고 부를 수는 없다. 아리랑은 사뭇 복합적이다. 그것은 한국인의 모든 것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서민들이 그들 삶의 안팎의 모든 것을 그들 각각의 육성에 담아 소리하는 것이 아리랑이다.

아리랑은 결국 우리들 삶의 혈맥과 같은 것이었다. 우리들 몸 구석구석 핏줄이 뻗치고 또 서며 있듯이 우리들 삶 구석구석에 아리랑은 뻗어 있고 또 스며서 울리고 있었다. 아니면, 그것은 우리들 생활과 문화의 지각(地殼) 밑에 고루 번져 간 수맥과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하는 것일까.” 라며 고개로서의 아리랑과 소리로서의 아리랑을 말하고 있다.

한편 김연갑 씨는 그의 편저 ‘아리랑 서설(序說)’에서

“아리랑은 통곡이다. 아리랑은 피다. 아리랑은 분노이다. 아리랑은 항변이며, 절규이며, 반란이다.

아리랑은 깃발이다. 아리랑은 소화제다. 아리랑은 이정표다. 아리랑은 잘 여문 아주까리이다. 아리랑은 슬픈 화냥질이며, 한없는 그리움이다.

아리랑은 이 땅에 있는 유일한 국산이다. 그래서 아리랑은 곧 흙이요, 쌀이다. 아리랑은 한 복이다.

아리랑은 곧 이 땅의 소리다. 아리랑은 외침이며, 참말(眞言)이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소리를 듣지 못할 때 아리랑은 웃는다.

아리랑은 풍자하고, 아리랑은 힐난하고, 아리랑은 비아냥거린다. 아리랑은 자지러지고, 흐늘거리고, 능청스럽다가 은근해지기도 한다. 아리랑은 증언할 뿐이다. 언제나 그 고개를 넘어가며 증언할 뿐이다. 그것은 아리랑이 힘이 있기 때문이다. 숱한 왜곡과 수난의 고개를 넘어 오늘도 이 땅의 바람소리처럼 들려오는 것은 바로 그러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아리랑은 바로 우리 민족의 힘인 것이다.”라며 아리랑을 다양한 의미로 표현하였다.

또한 신찬균 씨는 다음과 같이 아리랑을 노래로서 풀어내었다.

“노래는 남는다. 그 노래가 민중의 입에서 입으로 끊이지 않고 불리는 까닭은 그 안에 담긴 민족의 정한(情恨)이 가슴 가슴으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아리랑은 한민족의 넋이다. 어느 날 갑자기 부르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노래가 아니라 한민족 삶의 자취이다. 우리 민족이 사는 곳이면 어김없이 부활되어 고단한 삶을 달래주고 민족적 합의를 이끌어내어 한민족이면 누구나 부르게 만드는 것이다.”

이쯤하면 우리는 아리랑이란 무엇인가 어렴풋이나마 짐작이 갈 것이다.


2. 아리랑의 신비


아리랑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명확한 대답을 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아리랑은 불려 지기까지 사연도 많고 시간도 길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아리랑은 우리에게서 신비한 소리임에는 틀림이 없다.

아리랑이 불리어지는 곳에는 장소 불문하고 남녀와 노소가 구별이 없이 같은 감정으로 부르고 듣게 된다. “ 하나의 감정으로!” 이를 연대감 또는 동질성이라고 한다. 노래로서 하나 되게 하는 연대감. 이 연대감이 아리랑의 신비이다.

아리랑에게는 하나의 노래가 강원도에도 서너 가지가 있고 경상도에도 있고, 전라도에도 있고, 당연히 북한에도 있고, 멀리는 우리 교민들이 살고 있는 러시아, 중국, 미국, 일본에까지도 있다. 제각각 제 음색 제 노래 말로. 아마도 하나의 노래가 이렇게 여러 갈래로 존재하는 것은 아리랑뿐일 것이다. 이도 아리랑의 신비의 하나이다.

또 하나 세상 어느 나라 노래가 가르치지 않고 또 배우지 않고 전승될 수가 있는가. 한국 사람 누가 유치원에서, 학교에서 악보를 놓고 아리랑을 배워서 부르는가. 그저 어느 결엔가 부르려 하니 입에서 그냥 나와 부르게 된 것이다. 이것 또한 아리랑의 신비이다.

또 하나 정선아라리의 형태는 세 가지, 엮음, 일반, 잦은 아라리 이렇게..... 거기다 노래 말은 보통 말할 때 700여 수, 어느 나라 어떤 노래가 노랫말을 이렇게 많이 가지고 있는가. 이것이 아리랑이 가진 신비로움이다.


3. 아리랑의 보편성 및 특징


 아리랑이라고 말할 때 대략 세 가지 개념으로 불려진다. 그 한 가지는 모든 아리랑을 총칭하는 의미, 또 한 가지는 일반적으로 서울․경기․본조아리랑이라고 하는 통속아리랑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세 번째 의미로 각각의 개별적 아리랑으로 보통 지명을 붙여 부르거나 성격을 붙여 부르는 것을 말하는데 예를 들면 진도아리랑이거나 잦은 아리랑이란 이름이 그것이다. 모든 아리랑이 공통으로 지니는 보편적인 성질, 달리 말하며 아리랑의 보편성이 될 것이고 다른 민요에 대해서는 아리랑의 특징이라 말할 수 있다.

첫째, 다양성이다. 하나의 노래가 여러 모양으로 갈라져 결국 같으면서도 다른 것들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본래는 어떤 한 지역의 아리랑이 분화되어 진도, 밀양, 제주, 해주아리랑 등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둘째, 노래 말의 적층성일 것이다. 퇴적층이 땅의 역사를 말해 주듯 아리랑의 역사도 노래 말의 적층성으로 견줄 수 있을 것이다. 정선아라리는 700여 수, 울릉도 아리랑은 단 7수, 이런 적층성의 비교에서 주종의 관계를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형식의 용이성이다. 이는 아리랑이 어찌하여 그 수많은 종류와 노래 말을 지닐 수 있느냐라는 질문에 하나의 답이기도 한데, 그것은 2행- 1연- 1구라는 쉬운 형식을 말하는 것이다. 두 줄을 만들고 거기에 후렴을 붙이거나 아니면 그냥 또 두 줄을 붙이면 아리랑이 되는 것이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고정부인 후렴만 두고 유동부인 두 줄 시만 지어 부르면 되는 것이다. 얼마나 들어 기억하기 쉽고 그래서 역시 지어 내기 쉬운가.

넷째, 다기능성이다. 이 말은 쓰임새가 여럿이라는 말인데, 논에서는 논매기소리로, 산에서는 지게 목발소리로, 뗏꾼들의 쉼터인 보매기 여울에서는 썩장이 노래로, 들병장이나 젓가락 장단의 작부집에서는 권주가로, 광복군들에게는 군가로...

이런 아리랑을 일러 어떤 이는 ‘아리랑은 다면체의 얼굴을 한 노래’라 하기도 하고 ‘아리랑은 한국인의 만다라’라고 하기도 한다. 바로 위의 특징들을 모두 함축한 말로 아리랑은 각각 곳곳에 맞게 그 역할을 해 내는 노래라는 사실이다.


4. 아리랑의 어원


 아리랑의 역사성이나 어원에 관해서는 학자마다 다양하게 나타난다. 본고는 아리랑의 어원에 대해서는 비교적 일반적인 관점을 간단하게 정리하고자 한다.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멋과 얼이 담겨있는 상징적인 어휘다. 이렇게 오랜 세월 구전된 아리랑의 뜻은 무엇인가. 아리랑을 제 아무리 잘 부른다는 사람도 이런 질문에는 설왕설래한다. 아리랑을 한민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노래로 여기면서도 그 뜻조차 알지 못하기에 '아리랑'은 매혹적인 연구 대상이 되어왔다.

1930년대부터 미미하게나마 연구되기 시작한 아리랑의 뜻을 찾기 위해 최근까지 수많은 학자들이 다양 한 접근을 시도해왔다.

고어(古語)에 의한 유추 방법, 전설에 의한 유추 방법, 문헌을 근거로 한 유추 방법 등 온갖 노력을 하며 아리랑의 뜻을 끄집어내려고 했으나 어느 것 하나 설득력 있는 정설(定說)로 평가받지 못했다.

오히려 아리랑의 뜻에 너무 집착을 하다 보니 아리랑과 비슷한 어휘들을 아리랑에 결부시켜 구구한 설만 나오게 했다. 그러나 ‘아리랑’이라는 낱말이 뜻을 나타낸다고 하기보다는 음악적으로 리듬을 이루고 흥을 돋우는 무의미한 사설(nonsense verse)에 가깝다.


5. 아리랑의 종류


 민요 아리랑은 ‘아리랑 또는 이와 유사한 음성이 후렴에 들어있는 민요의 총칭’으로 남북을 통틀어 약 60여종 3천6백여 수에 이른다. 우리나라에는 평안도에 '서도 아리랑', 강원도에 '강원도 아리랑', '정선아리랑' 함경도에 '함경도 아리랑', '단천 아리랑', ‘어랑 타령’ 경상도에 '밀양 아리랑', 전라도에 '진도 아리랑', 경기도에 '긴 아리랑' 등이 대표성을 띈 아리랑이고 그 밖에 지역마다 각기 다른 아리랑이 있다. 나라 밖으로도 우리민족이 사는 중국 땅에 ‘독립군 아리랑’, 러시아 땅에 ‘사할린 아리랑’ 등이 있다.

각 지역마다 독특한 정서를 담은 이들 아리랑 가운데 정선 아리랑, 진도 아리랑, 밀양 아리랑은 우리나라 3대 아리랑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편 경기도지방의 아리랑이 전국에 전파되면서 아리랑에는 많은 변이형이 생겨났다. 아리랑의 변이형에는 ‘신(新)아리랑’, ‘별조(別調)아리랑’, ‘긴아리랑’, ‘아리랑 세상’ 등이 있으며, 이들 변이형과 구별하기 위해 본래의 아리랑을 ‘본조(本調)아리랑’이라고 한다. ‘아리랑’ 중에서 유일하게 ‘정선아리랑’은 지방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이외에 특수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아리랑이 있다. 천연두 예방주사를 보급시키기 위한 《종두(種痘)아리랑》, 문맹퇴치를 위한 《한글아리랑》 등이 그 예이다. 또한 아리랑은 민요에만 머물지 않고 대중가요와 접목되면서 많은 창작아리랑이 만들어 졌다.

여기에선 대표적 아리랑의 가사 몇을 소개한다.


가. 정선아리랑(1)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후렴) 눈이 올려나 비가 올려나 억수 장마 질려나 / 만수산 검은 구름이 다 모여든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좀 건네주게 / 싸리골 울동백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백은 낙엽에나 쌓이지 / 사시장철 임 그리워서 나는 못살겠네


나. 정선 아리랑(2)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 주오(후렴) 강원도 금강산 일만이천봉 / 팔만구암자 유점사 법당뒤 칠성단 / 모두 모고 /팔자에 없는 아들딸 나달라고 / 섣달 열흘 녹음에 / 정성을 말고 / 타관객리 외로히 난 사람 / 괄시를 마라 세파에 시달린 몸 만사에 뜻이없어 / 홀연히 다 떨치고 청려를 의지하여 / 지향없이 가노라 니/풍광은 예와달라 만물이 소연한데 / 해저무는 저녁노을 무심히 바라보며/옛일을 추억하 고 시름없이 있노라니 / 눈앞에 왼갖 것이 모다 시름뿐이라


다. 강원도 아리랑

아리아리 쓰리쓰리 / 아라리요 /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간다(후렴) 아주까리 정자는 구경자리 / 살구나무 정자로만 

만나보세 열라는 콩팥은 왜 아니 열고 / 아주까리 동백은 왜 여는가 / 아리랑 고개다 주막집을 짓고 / 정든님 오기만 기다린다


라. 밀양아리랑


아리당다꿍 쓰리당다꿍 아라리가났네/아리랑고개로 날넘겨주소 (후렴) 날좀보소 날좀보소 날좀보소 / 동지섣달 꽃본 듯이 날좀보소 정든임 오셨는데 인사를 못해 / 행주치마 입에물고 입만벙긋 저건네 저집이 정든네 집인데 / 지안가고 내안가니 수천리로다 밀양아 영남루 경치가 좋아 / 시상아 끝날까지 다보아준다 물길러 가는체 술길러 이고 / 오동나무 수풀속에 임찾아간다 우수야 경칩에 대동강 풀리고/ 서방님 말씀에 내마음 풀린다 솔가치 담장은 높아야 좋고 / 술아주머씨 고와야 좋다 일본아 대판아 얼매나 좋아 / 꽃같은 날두고 연락선을 타는냐 꽃같은 날두고 왜한번도 안오나 / 아이구야 보고파서 환장을 하네 서산에 지는해는 지고싶어 지나 / 날두고 가신임은 가고싶어 가나 청천에 하늘엔 잔별도 많고 / 요내야 가슴엔 희망도 많다 세월아 봄철아 오고가지 말어라 / 사뜰한 내청춘 다늙어진다.


마. 진도아리랑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 아라리가 났네 / 아리랑 응응응응 / 아라리가 났네(후렴) 왜왔던고 왜왔던고 / 울리고 갈 길을 /왜왔던고 청천 하늘에 / 잔별도 많고 / 요내 가슴속에 / 수심도 많다 간다간다 내 돌아가요 / 정든님 따라서 / 내 돌아간다 문경세재는 왠 고갠가 / 굽이야 굽이굽이 / 눈물이로구나 만남이 반가우나 / 이별을 하네 / 이별을 할라면 / 왜 이리 왔나


바. 경기아리랑


아리령 아리령 아라리요 / 아리령 띄여라 노다가게(후렴) 문경세재 박달나무 / 홍두깨 방망이 다나간다 남산우에 고목나무 / 나와갓치만 속썩는다.


사. 상주아리랑


<중모리> (뒷소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앞소리) 개나리 봇짐을 짊어지고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버지 어머니 어서와요 북간도 벌판이 좋답니다 쓰라린 가슴을 움켜쥐고 백두산 고개를 넘어간다 <엇모리> (뒷소리)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앞소리) 1. 문전에 옥토는 어찌되고 쪽박의 신세가 웬일인고 2. 원수로다 원수로다 원수로다 총 가진 포수가 원수로다 3. 말께나 하는 놈 재판소 가고 일께나 하는 놈 공동산 간다 <중모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 광복군 아리랑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요 / 광복군 아리랑 불러나 보세(후렴) 우리네 부모가 날 찾으시거던 / 광복군 갔다고 말 전해주소 광풍이 불어요 광풍이 불어요 / 삼천만 가슴에 광풍이 불어요 바다에 두둥실 떠오는 배는 / 광복군 싣고서 오시는배래요 동실령 고개서 북소리 둥둥 나더니 / 한양성 복판에 택극기 날리네.


Ⅱ. 상주 아리랑


 민요 아리랑은 ‘아리랑 또는 이와 유사한 음성이 후렴에 들어있는 민요의 총칭’으로 남북을 통틀어 약 60여종 3천6백여 수에 이른다는 것을 아리랑의 종류에서 이미 밝힌 바 있다. 뿐만 아니라 각 지역마다 대표성을 띈 아리랑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볼 때 우리 고장처럼 고도(古都)요 삼한 시대부터 조성된 공갈못을 배경으로 한 ‘연밥노래’라는 귀중한 민요가 전해지는 고장에서 상주다운 아리랑 한 곡조가 없을 리는 만무하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찾아보지도 못했고 또한 이곳저곳을 방문하는 노력도 하지 못하여 우리 고장 아리랑에대해 조사가 미흡하였지 만 그래도 이만큼의 수확을 얻었음은 다행이라 여기며 각종 문헌상에 나타난 내용과 인터넷에 올려있는 상주 지역의 아리랑에 대한 내용을 단편적이나마 살펴보고자 한다.


1. 상주아리랑의 종류와 유형

가. 문헌상에 나타 난 상주아리랑


1) 아리랑

1. 아리랑 고개다 집은 짓고 동모야 오기만 기다린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얼씨구 아라리요

2. 여보게 쇠꼴을 밧비 비오 저건너 저집에 연기 난다

3. 실실아 동풍에 구진비 오고 동모야 오기만 기다린다.


2) <아리랑>(제목 없음, 상주)-1930년 채록

아리아리랑 시리시리시리랑

문경아새재는 언(님)고갠가 구부야구부야 눈물일세

문경아새재야 떡물푸리는 말채쇠채로 다나간다

문경아새재야 물박달은 큰애기 손길로 다나간다

-전집, 39쪽.

위처럼 후렴 아리랑을 달고 나오는 사설인데 상주아리랑의 원형태를 지니고 있다.

제목 없이 상주라 표시한 아리랑이 그것이다. 상주시리랑이라고 명명할 만하고 창곡도 충분히 재현할 수 있다. 상주아리랑의 원형에 가까운 것이다.

상주아리랑의 기억은 처음으로 이재욱이 알려 주었다. 그는 1930년 7-8월 상주 현지조사에서 곡명 없는 상주시리랑-필자 붙임-을 분명 채록하였다. 사설로 보아 현재 전승은 단절되었다. 다만 일반 아리랑, 경북아리랑, 문경 운운 아리랑으로 흡수되었다. 모심기소리와 초부가(목동노래)류의 아리랑과 관련이 깊다.


3) 이앙가(상주)

문경아새재야 박달낭근 홍둑게 방마치로 다나간다

문경아새재야 떡물푸리 쇠채말채로 다나간다

문경아새재야 박달낭근 큰애기손질노 다나간다

진산덕산 왕대뿌리는 소구채로 다나간다

중아중아 대사중아 느거신님 어듸갓노

개산금산 너른들에 목해동영 하로갓네

위의 각 편은 후렴 아리랑이 없다. 사설 분위기로 보아 논농사형 상주아리랑이다. 제목도 이앙가라 하였다. 더욱이 뒤 두 줄은 상주 모심기 소리와 같다. 18세기 후반 경 이앙법의 도입으로 농경사회에서 지역공동체 구성원들이 만든 두레문화에서 김매기노래나 모심기노래로써 아리랑이 농요 곧 농업노동요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어 널리 불리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창곡은 경북아리랑조로 불렸다는 점이다. 모심는 현장에 문경새재 운운 사설이 널리 전승된 탓이다. 경북아리랑은 영남아리랑으로 포괄하여 이해되고 있다.


4) 아리랑 타령

도라지 병풍 연다지 안에 잠든 큰 애기 문 열어라

바람 불면 비 올 줄 알고 내 올밤은 왜 모르나

시집가던 심일 만에 본 가장은 귀양 가고

귀양 가던 일주일에 객사했다 통지 왔네

두자 두치 잣 비게는 어느 낭군 비어주며

오동장농 객개수는 어느 자식 물려줄꼬

가자는 서방도 열셋이요 죽자는 서방도 열셋이요

살자는 서방도 열셋이라

일삼은 삼 삼삼은 구하니 서를 아홉 번 호강하니

여중에 일생은 나뿐일세


5) 상주아리롱-상주 아라리(강원도 아라리의 곡조로 불려진다)

가세 가세 모도 가세

백골 명산에 산나물을 가세

아리롱 아리롱 아라리야

백골 명산에 모도모도 산나물을 가세

가메 바우 뒤에 묵밭띠기 작년에도 묵었는데

금년에도 날과 같이 또 묵었구나

아리롱 아리롱 아라리야

백골 명산에 모도모도 산나물을 가세

갈대 밭골 발대 밭이 곱다 해도

백골산 밑에 노총각 만은 나는 영 못하여

아리롱 아리롱 아라리야

백골 명산에 모도 모도 산나물을 가세


이 외에도 1993년 이소라 교수가 채록한 『상주의 민요』에 11편의 지역민이 부른 아리랑이 채록되고 있으나 특별한 자료로 활용하기엔 평범하여 본고에서는 그 내용을 생략하기로 한다.

지금까지 제시한 문헌상의 자료는 불행하게도 사설만 전해 올 뿐, 기미양님의 <상주 아리롱> 만이 ‘강원도 아리랑 곡조로’라는 말이 붙어 있을 뿐 가락이 어떤 것인지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지금 어디엔가 이 아리랑을 노래하는 분이 계시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하지만 어쩌면 이 들 아리랑의 음원을 복원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2. 김소희 명창의 상주 아리랑


 ‘상주아리랑’에 대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많은 이들이 부르고 알려진 아리랑은 김소희 명창이 작창한 상주아리랑이다.


가. 김소희 명창의 작창 배경


 김소희 작창의 상주아리랑에 대해서는 2008년 8월15일(금) 대구 시민회관에서 열린 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가 주최

한『대구아리랑제』(DaeGu Arirang Festival)에서 김연갑 씨는 다음과 같은 해설하였다.

“이 아리랑은 50년대 김소희 선생 작창으로 불려 지기 시작한 작품으로 남도 육자배기제에 경상도 목으로 구성된 특이한 작품이다. 기본 곡조가 상주 민요 ‘상주 함창 공갈 못’과 같아 ‘상주아리랑’ 이라고도 하지만 김소희 선생의 뜻은 사설에 역점을 두어 ‘통일아리랑’으로 불려 지길 바랬다. 때문에 ‘통일아리랑’으로도 불린다.” 라고 말하고 있음을 볼 때 상주아리랑으로 이름 지어진 배경을 어느 정도는 가늠할 수 있다.


  나. 김소희 작창 상주아리랑의 가사


(중모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1. 괴나리 봇짐을 짊어지고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2. 아버지 어머니 어서와요 북간도 벌판이 좋답디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3. 쓰라린 가슴을 움켜쥐고 백두산 고개로 넘어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엇모리)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4. 문전의 옥토는 어찌되고 쪽박의 신세가 웬일인가.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5. 원수로다 원수로다 원수로다 총 가진 포수가 원수로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6. 말 꽤나 허는 놈 재판소 가고 일 꽤나 허는 놈 공동산 간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김소희 명창이 작창한 아리랑 가사들을 살펴보노라면 각 지역마다 같은 가사들이 중복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지역의 아리랑에서 보여주는 가사는 각 지역마다 독특한 특색이 있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후렴구나 가사들이 서로 섞여져 있음을 자주 보게 된다.

김소희 작창의 ‘상주아리랑’에 나오는 가사가 다른 지방 아리랑에도 자주 등장하는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창원 아리랑’의 15절

“말께나 하는 놈 재판소 가고 일깨나 하는 놈 공동산 가고”

‘경기아리랑’ 13절

“쓰라린 가슴을 움켜잡고 백두산 고개로 넘어 간다.”

‘신 아리랑’ 6절 “괴나리봇짐을 짊어지고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

7절에 “아버지 어머니 어서 오소 북간도 벌판이 좋다더라.”

8절 “쓰라린 가슴을 움켜쥐고 백두산 고개로 넘어 간다.”

10절 “원수로다 원수로다 총 갖은 포수가 원수로다”

‘본조아리랑’ 4절

“문전의 옥토는 어찌되고 쪽박의 신세가 왼 말인가.”

6절 “말 깨나 하는 놈 재판소 가고 일깨나 하는 놈 공동산 간다.”

‘서도지방 신 아리랑’(2)

4절. “아버지 어머니 어서 오소 북간도 벌판이 좋다드라.”

10절. “괴나리 봇짐을 짊어지고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11절. “쓰라린 가슴을 움켜쥐고 백두산 고개로 넘어간다”

12절. “원쑤로다 원쑤로다 총갖은 포수가 원쑤로다”


다. 가사의 변형


 김소희 명창이 직접 부른 영상을 중심으로 위 가사가 원형이라면 상주아리랑을 부른 사람에 따라 각각 그 가사의 내용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보았다. 어떤 원인인지는 모르지만 부른 이들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 가사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이명희 명창이 부른 ‘상주 아리랑’

(중모리 장단)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1. 개나리 봇짐을 짊어지고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2. 쓰라린 가슴을 움켜쥐고 백두산 고개로 넘어 간다.

3. 아버지 어머니 어서 와요 북간도 벌판이 좋답디다.

4. 울 넘고 담 넘어 호박꽃 피고 저 고개 넘으로 님 소식 온다.

(엇모리 장단)

후렴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

1. 문전옥토는 어찌되고 쪽박의 신세가 웬 일인고

2. 말깨나 허는 놈은 재판소 가고 일깨나 허는 놈은 공동산 간다.

3. 원수로다 원수로다 원수로다 총 가진 포수가 원수로다.

4. 팔자로다 팔자로다 팔자로다 문전걸식 하는 것도 팔자로다.

5. 간다네 간다네 내 돌아간다 저 멀리 임 따라 내 돌아 간다.

6. 근심걱정 허느라 세월만 가고 몸 따라 마음도 늙어 간다.

7. 저 산 넘어 저 멀리 임 보내 놓고 뜰아래 앉아서 탄식만 한다.

8. 팔자로다 팔자로다 팔자로다 팔자타령 허느라고 세월만 간다.

9. 낙동강 굽이굽이 물결따라 노젖는 뱃사공아 쉬었다 가세

10. 상주함창 공갈못에 연밥따는 처녀야 연밥만 따지말고 저총각 보소

한편 송옥경 원장이 제공한 ‘거리 예술단’ 채보 악보에는 이명희 명창이 부른 가사 가운데 9절과 10절은 생략되어 있다.


2) 중모리 장단에 가사 4절 첨가.

울 넘고 담 넘어 호박 꽃피고

저 고개 너머로 님 소식 온다.


3) 가사의 절 순서가 바뀐 경우

누구의 노래인지는 모르지만 역시 다음과 같이 가사의 순서가 바뀐 경우도 있다.

아리랑- 아리랑-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1. 쓰라린 가슴을 움켜 쥐고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아리랑- 아리랑-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2. 아버지 어머니 어서와요 북간도 벌판이 좋답디다

아리랑- 아리랑-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3. 개나리 봇짐을 짊어지고 백두산 고개를 넘어 간다

아리랑- 아리랑-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4. 문전의 옥답은 어찌되고 쪽박어 신세가 왠말인가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5. 말께나 허는 놈은 재판소 가고 일께나 허는 놈은 공동산 간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6. 간다네 간다네 내가 간다네 정든 임 따라서 내가 간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7. 원수로다 원수로다 원수로다 총가진 포수가 원수로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8. 팔자로다 팔자로다 팔자로다 문전의 걸식이 팔자로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4) 반주를 곁들인 가사

반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라랑 고개를 넘어 간다

1. 아버지 어머니 어서 와요 서보들 벌판이 좋답디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라랑 고개를 넘어 간다

2. 울 넘고 담넘어 호박꽃 피고 저 고개 넘어로 님 소식 온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라랑 고개를 넘어 간다

3. 간다네 간다네 내 돌아간다 정든 님 따라서 내 돌아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반주-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간다

4. 간다네 간다네 내 돌아간다 정든 님 따라서 내 돌아간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간다

5. 원수로다 원수로다 총가진 포수가 원수로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라랑 고개를 넘어 간다


5) 박수관의 상주아리랑

김옥숙의 천년의 멋과 흥에 특별 출연한 박수관의 상주 아리랑으로 김소희 명창의 가락과 가사가 조금 다르게 표현되고 있다.

1. 개나리 봇짐을 짊어 지고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2. 쓰라린 가슴을 움켜쥐고 아리랑 고개를 넘어 넘어 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 간다

3. 문전 옥토는 어찌하고 쪽박의 신세는 웬일인고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아리 얼씨구 넘어 간다

4. 근심걱정 하느라고 세월만 가더니 몸따라 마음도 다 늙어 간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아리 얼씨구 내가 돌아 간다

5. 돌아간다 돌아간다 내 돌아 간다 --------- 내가 돌아 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6) 임동창의 상주아리랑

상주아리랑 편곡, 피아노/임동창 소리, 전인삼/ 뒷소리, 더불어 앙상블 아쟁, 김영길/ 사물놀이, 한울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1. 쓰라린 가슴을 움켜 쥐고 백두산 고개로 넘어 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2. 아버지 어머니 어서 와요 북간도 벌판이 좋답디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3. 개나리 봇짐을 짊어지고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7) 서명희 명창의 상주 아리랑

신영희 명창으로부터 사사 남도민요보존협회 이사로 활약 중인 서명희 명창의 가사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1. 개나리 봇짐을 짊어지고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2. 아버지 어머니 어서 와요 북간도 벌판이 좋답디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3. 허- 허 - 허 허 - 허- 허 - 허 - 허 -허 - 허

가사가 매우 생략되었고 3절 부문이 독특이한 것이 특징이다.


8) 소리꾼 꽃봉이 콘서트에 나타난 상주아리랑

엇모리 장단에 다음과 같은 가사가 첨부되어 부르기도 한다.

아깨나 낳을 년은 갈보질 하고 목도깨나 메는 놈은 부역을 간다

이씨의 사촌은 되지 말고 민씨의 팔촌이 되려무나

밭은 헐려서 신작로 되고 집은 헐려서 정거장 되네


3. 현대적 작곡으로 본 ‘상주아리랑’


가. 이기경 작곡 상주아리랑


 김소희 명창의 작창인 ‘상주아리랑’은 현대적 기보법에 의해 어린이들의 합창곡으로 작곡되어 각종 합창경연대회 주요 곡목이 되었다. 다음은 경기도에 있는 황룡초등학교 합창부가 2008. 11. 6. 고양시 청소년수련관에서 열린 제5회 고양시 푸른 청소년 음악제 초등부문에 출전한 상주아리랑이다.

초등학교 합창곡으로 작곡 된 이 아리랑은 초등학교 학생들 수준에 맞도록 일부 가사가 ‘희망을 안고--희망을 안고---안고 희망을 안고-’

‘문전에 옥토는- 풍-년이-요---우리의-신-세는-희망일세-’ 등과 같이 바뀌어 불리어지고 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개나리 봇짐을 짊-어-지-고--아리랑--고개-를-넘어-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고개--로-넘어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고개--를-넘어간다

희망을 안고--희망을 안고---안고 희망을 안고-

백두산 고-개로- 백두산고-개로 넘어-간다-

아리아리 스리-스리 아-라리-요--아리랑-고개-를-넘겨 간다-

문전에 옥토는- 풍-년이-요---우리의-신-세는-희망일세-

아리--랑 스리스리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랑-스리스리-아리랑-스리스리- 아라리요 아리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 김의철의 상주아리랑


1. 개나리 봇짐을 짊어지고 백두산 고개를 넘어 간다

2. 아버지 어머니 어서 와 북간도 벌판이 좋답디다

3. 쓰라린 가슴을 움켜지고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4. 문전에 옥토는 어찌 되고 쪽박의 신세가 웬말인고

5. 말께나 허는 놈은 재판소 가고 일에나 허는 놈 공동산 간다

6. 원수다 원수다 원수로다 총가진 포수가 원수로다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아리 아리 스리스리 아라리요 아리 아리 아리 아리

김의철의 창작곡 ‘상주 아리랑’에 대해서는 이 곡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상주아리랑’이 2008년 10월 ‘동화나라상주이야기축제’에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이 음반을 녹음했던 당시 ‘청개구리’ 음악감독 문지환 씨가 밝힌 뒷이야기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은 문지환 씨가 ‘상주아리랑’이 수록된 CD 재킷에 밝힌 글이다.


“2008년 5월 어느 쯤에 선가 한창 공연 중인 틈을 타서 수더분하게 생긴 지인을 소개 받았다. 자유롭게 풀어 헤쳐진 머리카락 사이로 반짝이는 맑은 눈망울을 가진 뚝배기 같 은 느낌의 건장한 청년.

바로 상주이야기를 꺼내들었고, 그 자리에서 상주 아리랑이라는 곡이 있는데....하며 시작 된 이야기가 그 자리에서 녹음까지 연결되며 그토록 오랫동안 누군가가 했어야 했고 꼭 있어야 할 무언가가 만들어지기까지 했다.<중략>

누가 시켰을까?

마침 우리 공연 팀은 우즈배키스탄에 있는 고려인 마을에서 할 공연에 온갖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었을 때였다. 그 공연 준비를 하면서 그 곳에서 처절한 삶의 절규 속에 살아남 은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했고, 그 속에서 우연히 상주아리랑을 만나게 되었다.

그 먼 우즈배키스탄에서 상주아리랑이라니.....

그냥 흔한 민요 한 자락으로 생각하다 그네들의 삶과 그 곡이 담고 있는 가사 내용과 이 런 저런 얘기들을 듣고 온몸에 전율이 일면서 아!

괴나리 봇짐을 짊어지고 백두산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어버지 어머니 어서와요. 북간도 벌판이 좋답디다.

아리랑 아리랑....

하면서 이어지는 노랫말 중 특히 찡했던 부분은

문전의 옥토는 어찌되고 쪽박의 신세가 웬 말이냐(후렴 생략)

말 깨나 하는 놈 재판가고 일깨나 하는 놈 공산 간다

원수다 원수다 원수로다 총 가진 포수가 원수로다

하면서 그 당시의 처절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구구절절 들려오는데 연주하는 내내 울컥 했던 감정을 숨기기가 쉽지 않았다.

일제에 나라를 뺏기고 그 울분에 몸서리치며 멀리 저 멀리 북간도를 거쳐 그 먼 동토의 땅에 얼음 밭을 일구고 서로의 체온으로 어린 생명들을 녹이고 살리면서 넌 꼭 살아 남거 라 하며 강강수월레를 하듯 원으로 둘러싸고 나이 많은 노인들부터 바깥쪽에서, 또 그가 쓰러지면 다음 노인이 그렇게 그렇게 어린 생명들을 지키면서 희생하면서 살아온 그들의 애환이 그대로 이 곡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중략>

상주아리랑이 녹음되면서 이제 있어야 할 곳에 무엇인가 제대로 자리를 찾아 갔다는 생 각이 들면서 아직도 중앙아시아뿐만 아니라 그 어딘가에서 떠돌고 있을 그 많은 한과 설 움들을 조금이나마 진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맘이다. 그 영혼들이 이런 만남 을 주선했고 그 영혼들이 이 곡을 만들었고 그 영혼들이 이 노래를 불러서 오늘 이렇게 음반으로 들을 수 있게 되었다고 믿는다.

하기 사 고향을 등지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 중에 한을 품은 채 생 을 마쳐야 했던 분들이 어디 상주 분들 뿐이겠는가. 우리 민족의 서러운 역사요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이이며, 앞으로 우리의 마음속에 굳게 다져야 하는 역사적 사실이며 교훈이리라.<중략>

아리--아리--아리--스리스리 아라리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힘에 겨워 아리랑을 끝까지 못 부르는 아낙에의 숨소리...

아리----랑 아리---랑

녹음을 마치며....청개구리 음악감독 문지환


Ⅲ. 상주아리랑의 정체성과 발전 방향


1. 김소희 명창의 <상주아리랑>의 정체성


 문화는 한 시대와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이들에 의해 창조되고 발전되며 또한 계승되어 간다. 이를 흔히 창조적 계승이라 하는데 때 창조와 계승은 서로 보완적인 관계를 가지면서 발전해 왔다. 다시 말해 창조적 계승이 없으면 새로운 문화의 창조는 어려워진다. 계승이란 자기 문화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애착과 관심에서 출발한다.

대체로 민요는 다음의 세 가지 속성을 가진다. 첫째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끊임없이 연결되는 연속성(連續性), 둘째는 지속되지만 그 민요를 지속해 온 공동체의 창조적 욕구에 의해 일어나는 변화성(變化性), 셋째는 그렇게 일어난 변화들을 그 민요를 전승하는 공동체의 여러 조건과 성격에 따라 버리고 선택하는 선택성(選擇性)이다.

위와 같은 속성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연속성이다. 이 연속성은 지역민의 관심에서 유지 된다. 모든 문화는 관심과 사랑을 자양분으로 생성되고 발전하며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 말은 아무리 좋은 문화라고 하더라도 관심과 사랑이 없으면 한 때의 유행에 불과할 뿐 문화로서의 생명력은 잃게 마련다. 지역문화도 문화라는 측면에서는 다르지 않다. 앞서 밝힌바 있지만 우리 지역에서 불러왔던 숱한 아리랑도 이제는 문헌상에만 나타나 있을 뿐 그 가락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그 이유는 세월이 지나면서 그 가락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이 식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상주를 대표할 만한 민요로 ‘연밥노래’와 ‘상주서보가’ 그리고 ‘모심기 노래’가 명목을 유지하고 있음은 이에 대한 관심을 가진 이들이 이 노래를 보급하고 소개하기에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이런 관점에서 김소희 명창의 <상주아리랑>은 과연 상주의 아리랑인가?’라는 질문은 상주아리랑의 보급과 활용을 위해 선결 과제가 상주아리랑의 정체성 논란이다.


가. 상주아리랑은 상주 노래가 맞다.


1) 창작의도


 김소희 명창의 상주아리랑(이하 상주아리랑으로 통칭)은 상주의 노래가 맞다.

그 이유는 모든 창작이 그러하듯 그 작품이 창작하게 된 배경과 그 배경으로 인한 동기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소희 작창의 상주아리랑에 대해서는 2008년 8월15일(금) 대구 시민회관에서 열린 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가 주최한『대구아리랑제』(DaeGu Arirang Festival)에서 김연갑 씨는 다음과 같은 해설하였다.

“이 아리랑은 50년대 김소희 선생 작창으로 불려 지기 시작한 작품으로 남도 육자배기제에 경상도 목으로 구성된 특이한 작품이다. 기본 곡조가 상주 민요 ‘상주 함창 공갈 못’과 같아 ‘상주아리랑’ 이라고도 하지만 김소희 선생의 뜻은 사설에 역점을 두어 ‘통일아리랑’으로 불려 지길 바랬다. 때문에 ‘통일아리랑’으로도 불린다.” 라고 말했다.

이 증언을 뒤집어 보면 김소희 명창은 첨엔 분명히 상주아리랑으로 명명한 것이 분명하다. 다시 말하면 김소희 명창은 첨부터 상주민요 채련요로부터 창작을 위한 감동과 이미지를 만났을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남도 민요의 성격인 육자배기에 경상도 상주지방의 메나리조가 융합된 상주아리랑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 후 김명창이 ‘통일아리랑’으로 불리기를 원했다는 말은 당시 통일염원이란 시대적 요청에 의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증언 외에도 신나라레코드사 정문교 사장님의 증언도 이를 뒷밭침해 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상주아리랑이 주제이라면 통일아리랑은 부제일 수밖에 없다.


2) 상주아리랑의 사설 역시 상주인의 것


 김의철 씨의 ‘상주아리랑’이 2008년 10월 ‘동화나라상주이야기축제’에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필자가 상주아리랑에대해 관심을 받게 된 동기도 바로 김의철 씨의 상주아리랑 때문이다.

김의철의 상주아리랑 사설은 마지막 부분 “아리 아리~~~”를 제외하고 5절과 6절이 바뀐 것을 제외하면 김소희 명창의 상주아리랑과 같다.

앞서 청개구리의 음악감독 문지환 씨의 증언에서 밝혔지만 이 아리랑 멀리 우즈베키스탄에 공연을 갔다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부르는 애절한 노래를 듣고 상주아리랑을 작곡하였고 했다. 그때 감동적으로 들려주던 그들의 노래가 바로 상주아리랑이었다고 말했고 자기들의 조상들이 전해 준 것이라는 증언도 했다.

1890년대 동학농민군의 학살과 그들의 매장지가 상주아리랑고개였고, 1928년경 상주사람 30가구가 상주 아리랑고개를 거쳐 간도로 이주한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면 이미 우리 선조들은 상주아리랑을 위의 사설로 불렀고 간도와 우즈베키스탄까지 함께 가져가 그곳에서 부르며 자기의 자손들에게 전했던 것이다.

본조아리랑이 1926년, 밀양아리랑이 1927년, 진도아리랑(진도아리랑타령(1926년) 남산신사 낙성식 초창 --1926 젓대 명인 박종기 작/ 김소희 창--경성방송(JODK) 전파로 소개)이 1930년에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면 1928년 우리 조상들이 간도로 이주하면서 상주아리랑을 불렀다면 상주아리랑은 이미 이들 아리랑보다 훨씬 앞서 불러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상주아리랑의 사설은 상주인이 즐겨 부르던 우리 아리랑이었고 김소희 명창은 이 사설에 자신의 감정을 실어 상주아리랑을 작창했음이 분명하다.


3) 김소희 명창이 상주인이 아니어도 상주아리랑이다.


 국민으로부터 애창을 받는 가요의 경우를 한 번 살펴보았다.

많은 애창가요가운데 그 가요의 작사가가 대부분 그 지역 출신은 아니었다.

‘목포의 눈물’의 작사는 목포출신의 문일석 씨, 가수는 목포 양동출신 신인가수 이난영이 그나마 다 그 지방 출신이었다.

‘안동역에서’의 작사는 김병길 씨는 안동출신, 그 노래를 불러 히트한 사람은 전라도 부안출신의 진성이었다.

‘소양강 처녀’ 작사는 반야월 씨 반야월 씨는 윤기순이라는 18세 소녀의 초대로 소양강에 갔다가 이 노래를 지었다.

‘처녀 뱃사공’ 작사는 윤부길 씨. 작곡가 한복남씨는 평남 안주 출신. 군에 가서 전사한 오빠 대신 두 처녀(언니 박말순, 아우 박정숙)가 뱃사공을 하고 있는 애처러운 모습을 보고 이 노래를 지었다.

‘대전 부르스’ 1959년 작사자 최지수 씨는 서울에서 목포를 가는 도중 대전에서 열차를 갈아 타기 위해 대전발 0시50분을 기다리는 도중 대전역의 풍경을 보고 이 노래 말을 지었고, 작곡가 김부해 씨를 찾아가서 3시간 만에 작곡을 완성한 노래이다.

‘홀로 아리랑’ 노래를 만든 서유석 씨는 서울 출신이었다. 그러나 이 노래는 독도의 노래가 되고 있다.

이렇게 노래와 그 노래를 만든 사람들과의 관계는 지역출신이 아니어도 훌륭한 그 지역의 노래가 되고 있다.

비록 많은 자료를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이 노래들은 모두 노래비로 세워져 그 지역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상주아리랑 역시 작창자가 상주인이 아니어도 분명한 상주아리랑인 것이다.


4) 상주아리랑에 ‘상주’라는 지명이 없어도 상주아리랑이다.


 이 문제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일부 시민, 일부 상주시의회지도자, 일부 행정담당자)이 문제제기를 하고 상주아리랑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나타내는 것 중의 하나이다.

결론부터 말해서 최근에 창작된 아리랑을 제외하면 대부분 그 지역을 구체적으로 표시하고 있는 지명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3대 아리랑인 ‘정선아리랑’,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 그리고 흔히 아리랑이라 하면 떠오르는 본조아리랑을 살펴보자.

먼저 강원도를 상징하는 정선아리랑(1)에 ‘만수산’, ‘아우라지 뱃사공’, ‘싸릿골’이란 지명이 등장하고, 정선아리랑(2)에 ‘강원도 금강산 일만이천봉 팔만구암자’, ‘유점사’ 라는 지명이 나온다.

본조아리랑(아리랑)을 보자. 사설 중에 서울이나 한성이나 한양이란 어휘는 발견할 수 없다. 그냥 편하게 한탄, 원망, 그리움에 대한 사설이 주류를 이룬다.

진도아리랑의 경우도 그렇다. 흔히 부르는 진도아리랑 1~3절에도 진도는 없다. 오히려 “문경새재는 웬 고갠가 굽이야 굽이굽이 눈물이 나네.” 하는 가사가 나온다. 진도의 ‘아리랑체험관 듣고 부르기’에는 1~6절도 마찬가지이고, 진도국악인들이 즐겨 부르는 가사 1~8절이 있는데 6절에 “한국의 최남단 보배섬 진도 인심이 좋아서 살기가 좋네.”가 나온다. 하지만 전체적 가사의 배열로 볼 때 최근에 작위성을 가지고 삽입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진도아리랑 관광지 방송용’ 가사는 무려 43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21절에 역시 위의 가사가 나오지만 전체적인 맥락으로 볼 때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밀양아리랑은 어떤가? 오늘 날 중·고등학교 음악교과서에 실린 밀양아리랑에 밀양이란 지명은 등장하지 않는다. 1928년 8월호 잡지『별건곤(別乾坤)』에 등장하는 밀양아리랑은 모두 4절로 되어 있다. 어쩌면 밀양아리랑의 원전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 여기에 싫어 보지만 여기에도 밀양이란 지명은 보이지 않는다.


(후렴) 아리아리랑 아리아리랑 아라리가났네

아리랑 어얼시고 넹겨넹겨주소

날좀보소 날좀보소 날좀보소

동지섯달 꽃본듯이 날좀보서

네가잘나 내가 잘라 그누가잘라

구리백통 은전지화 돈잘났지

남의집 영감은 자동차를타는데

우리집 문둥이는 콩밭만탄다.

우리집 영감은 북간도 갔는데

철없는 모판에 봄풀만났네


 이 가사는 박시춘의 아버지 박남포에 의해 작사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동명이인인지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

(밀양아리랑(1927년) 박남포 지원으로 김금화 레코드 출판(일츅조선소리반 K588-B). 1933년 3월 3일 경성방송국 방송 소개 : 당대 창작의 신곡 대중가요 아리랑으로 출발 /1934 박부용 노래(OK레코드사) 대유행<--토속소리 :밀양 백중 놀이 ‘북춤’과정에서 부 르던 소리)

다만 요즈음 밀양에서 부르는 밀양아리랑에서는 가사 중 4절 부분에 “밀양아 영남루 경치가 좋아”라는 가사가 등장하다가 느닷없이 6절에 가면 “우수야 경칩에 대동강이 풀리고”가 나오고, 8절에 가면 “일본아 대판아 얼마나 좋노”라는 밀양과 관계없는 지명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가사 6절도 개인적이고 주관적 생각이지만 어쩌면 첨부터 부른 것이라기보다 세월이 흐르면서 작위적으로 삽입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위와 같은 사례를 보면서 내린 결론은 그 지방 아리랑에 반드시 그 지방을 상징하는 지명은 별 의미 없음을 볼 수 있다. 다만 그 지방에서 부르는 사람들에 따라 자연스럽게 아리랑의 본질 같은 즉흥적인 흥과 신명으로 불리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상주아리랑에 상주라는 지명이 없어도 분명한 상주아리랑이라 말할 수 있다.


2. 상주아리랑의 발전방향


가. 상주아리랑의 정체성 논란에서 벗어나야


 상주아리랑은 우리들이 모르는 사이 이미 세계적인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경기도 어느 중학교 홈페이지에는 태창출판사 발간 중1 음악교과서에 감상 자료로 ‘상주아리랑’이 소개되었고, 2007년 10월 11일 부천시청 대강당에서 열린 2007 전국어린이 합창제에는 고촌초등학교 합창부(지휘:조현정)가 상주아리랑(이기경 곡)을 불러 찬사를 받았으며, 2006세계합창올림픽(The 4th World Choir Olympics)에 상주아리랑 (이기경 곡/ solo 강보은)이 최우수 금메달을 땄다는 기사도 눈에 띄었다. 이 뿐만 아니었다. 전국 또는 각 지방의 문화 행사나 주요 음악 콘서터 프로그램에는 약방의 감초처럼 상주아리랑이 차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정작 우리 상주는 세계적 브랜드인 상주아리랑의 정체성 논란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상주문화원을 비롯한 몇몇 단체에서 상주아리랑의 보급을 위해 최근 10여 년간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상주아리랑은 상주 것이 아니다.’라고 오해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지방자치시대를 맞이하여 자기 지역의 문화를 축제화, 관광 상품화 하려고 혈안이 되고 있다. 심지어 소설 속에 나오는 지명이나 인물을 이미지화하고 스토리텔링 작업을 통해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형편이다. 좀 과한 경우는 역사적 근거가 희박한 무덤하나를 두고 서로 자기네 지역의 것이라고 우기는 경우도 있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다투어 지역마다 그 지역을 대표하는 노래비가 세워지고 있다.

목포에는 ‘목포의 눈물’ 노래비가 있고, 가수 이난영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대전에는 ‘대전 부르스’ 노래비가, 춘천에는 ‘소양강 처녀’ 노래비와 소녀 윤기순 양의 입상이 서있다.

함안군에서는 악양나루가 ‘처녀 뱃사공’의 배경이라는 것을 알고 그곳에 노래비를 세우기로 하고 1999년 악양루의 빼어난 경치와 <처녀 뱃사공> 탄생배경을 모티브로 주민이 즐겨 찾을 수 있는 명소로 꾸민 것은 물론 2000년 10월 2일 남강변 악양나룻터에서 노래비 제막식을 가졌다.

우리는 우리의 관심과 노력이 없었음에도 상주아리랑을 세계적 브랜드로 만들어 주신 김소희 명창에게 진심으로 감사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상주아리랑 노래비’를 세워 그분에게 보답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때를 놓치면 다 차려놓은 밥상을 차버리는 우를 범하는 후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리랑 전문가이신 김연갑 씨는 다음과 같은 말로 우리들에게 상주아리랑을 아끼라고 충고하였다.

“모든 민요가 그러하듯 악곡과 가사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이를 누가 어디서 얼마나 향유하려는 가에 따라 그 민요를 자기 것으로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신발은 신발을 만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 신발은 신발을 신고 다니는 사람의 것’이란 사실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뿐만 아니라 김기현 교수는 “비록 본디부터 향토의 토속소리는 아니라 하더라도 지역에 널리 유포되고, 지역민에 의해 향유되는 노래가 있다면, 지역민요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다. 이를 ‘민요의 재생산’이라 한다. 제주도의 <오돌또기>처럼 타 지역이나 장르에서 전승 전파되어져 특정 지역 민요가 된 예는 많다. 이는 지역민이 무조건 그것이 자기들의 노래라는 인식의 전제가 필요하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다른 지역에서 이미 브랜드화 된 상주아리랑을 자기고장의 것으로 제목을 바꾸어 노래하고 향유하면 상주아리랑은 다른 지역 아리랑으로 자리를 빼앗길 가능성도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나. 발전 방향을 위한 학술적 탐구노력


 2012년 12월 6일, 우리나라 아리랑이 세계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 되었다. 그나마 우리 상주는 이보다 빠른 시간에 「상주아리랑축제위원회」가 구성되고 2011년부터 지금까지 3회의 <상주아리랑축제>를 개최하였음은 발 빠른 행보였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2011년 상주아리랑축제추진위원회 주최로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발전방향 모색을 위한 학술적 탐구노력이 이루어지고, 늦은 감은 있지만 2014년 7월 21일 상주시가 주최하고 경북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주관하는 ‘상주아리랑의 정체성’에 대한 포럼이 열리게 됨은 다행한 일이다. 앞으로 이러한 노력은 속도를 내어야 한다. 모든 문화는 학술적인 바탕위에 보다 미래지향적으로 이루어 져야 하기 때문이다.


다. 상주아리랑의 자료 보급 및 미래 창조를 위한 콘텐츠의 개발과 실현


 이러한 과제는 전문가들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아직 대부분의 축제가 민간중심이 아닌 관(官) 중심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정치적, 행정적 뒷받침이 없으면 그 성과를 이루기 어렵다. 일의 성패는 얼마만큼의 관심을 가지고 지역사회 여론을 이끌며 발 빠르게 진행하는가에 달렸다.

상주아리랑의 보급은 교육기관이 담당하고, 기타 지원은 행정이 지원해야 한다. 그리고 콘텐츠의 개발은 전문가들이 맡아야 한다. 특히 콘텐츠의 개발과 학문적 연구는 하루아침에 이루어 지지 않기에 많은 투자와 지원을 해야 한다. 아울러 일선에서 일하는 문화·예술 단체들은 시민들에게 홍보하기 위해 특단의 노력을 해야 한다.

상주교육지원청(백만흠 교육장)에서 ‘상주아리랑보급을 위해 힘을 쓰겠다.’는 기사를 우리지방신문에서 본 일이 있어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한 일이다.

전국유일의 민요마을에 초산민요는 시도 때도 없이 울려야 한다. 모심기 노래의 원형인 ‘공갈못 연밥노래(채련요)도 공갈못 현장이나 공갈못 역사관에서는 귀가 따갑도록 들어야 하며, 함창의 명주박물관과 테마공원에 ‘베틀노래’ 한 가락도 마찬가지다. 아울러 상주 사람이라면 어딜 가던지 어떤 모임에 참석하던지 ‘서보가’, ‘연밥노래’, ‘상주아리랑’ 한 소절을 부를 수 있는 자랑스러운 문화시민이 되도록 힘써야 한다. 그러기 위한 준비를 지금부터라도 해나가며 또한 점검해야 한다.

남의 고장 이야기이지만 요즈음 눈에 확 뜨이는 기사가 있었다. 지난 7월 3일 안동역 광장에서 일어 난 일이다. 가요계에 뜨고 있는 ‘안동역에서’라는 노래가 최근 국민가요로 애창되고 있음에 안동시는 안동브랜드로 가치를 높인다는 측면에서 안동역광장에 ‘안동역에서’ 노래비(가로 2m, 세로 1.8m)를 세우고 제막식과 함께 작은 음악회를 개최했다는 소식이다. 이는 선비의 고장이라고 자처하는 안동시가 얼마나 안동을 위한 일에 발 빠른 행보를 보인 아주 의미 있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라. 상주 시민이 만들어가는 상주아리랑 축제


 <상주아리랑축제>는 지금까지 3회를 실시하고 있다. 축제추진위원회기 심혈을 기울이고 이를 위해 세미나와 전문가를 통한 콘텐츠 계발을 하고 있지만, 아직 시민 전체가 대동참여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은 미흡하다는 지적을 하고 싶다. 그래서 아리랑축제가 계림동과 그 주변의 사람들만의 축제라는 인식을 받아서는 안 된다. 적어도 <상주이야기축제>와 맞먹는 홍보와 시민참여를 유도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직은 자체적으로 해 내기가 힘들어 그렇겠지만 가급적 외부 인사의 초청(예를 들면 인기 국악인이나 가수)하여 사람을 모으기 보다는 지역민이 주체가 되어 축제를 주체화 할 수 있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상주아리랑은 상주사람이 불러야 한다. 그래야 상주아리랑은 진정한 상주아리랑이 되기 때문이다.

밀양아리랑 연구가 서정매 씨는 “밀양아리랑은 비록 1900년대(정확하게 1927년) 이후 만들어진 신민요의 하나로 추정되지만 영남의 민요가 아닌 것은 결코 아니다. 이미 통속화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경기민요의 창자들이 부르는 밀양아리랑과 밀양의 토박이가 부르는 밀양아리랑은 현저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밀양아리랑이 밀양에서 뿌리를 내려 밀양 특유의 음악성과 토속성으로 전승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말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말이다. 상주아리랑도 마찬가지다. 상주사람이 상주아리랑을 부르지 않는 사이 상주아리랑은 이미 본조아리랑처럼 일반화 되어 그 원형이 변질되고 있다는 걱정을 하는 전문가도 있다. 왜냐하면 세계화가 된 상주아리랑을 소리꾼들이 저마다 쉽게 자기 나름의 창법으로 변형되어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상주아리랑이 되기 위해서는 한 소절 한 소절마다 상주 사람이 상주특유의 감성으로 불러 상주다운 아리랑으로 만들어야 한다.


Ⅳ. 맺는 말


 지금까지 아리랑에 일반적인 내용과 아리랑의 종류, 그리고 상주아리랑은 어떤 것이 있으며 김소희 명창의 상주아

리랑은 어떻게 작창 되었고, 지금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가에 대한 일반적인 사항을 나열하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상주아리랑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를 살펴보았다. 앞으로 상주가 이 정체성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상주아리랑은 희망이 될 수 있고 이대로 남의 집에 불 보듯 하면 우리에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도 있다.

필자는 이 정체성의 논란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본다. 아울러 이를 위해 보다 발전적 학술적 탐구노력이 다양하게 전개되어야 한다고 본다. 아울러 상주아리랑 뿐만 아니라 우리지역 민요의 보급과 확장을 위한 자료제작과 상주시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상주아리랑 축제를 위해 더 많은 전문가들과 시민이 참여해야 함은 물론 정치적 행정적 뒷받침이 있어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오늘 논의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가락이 사라지고 사설만 남은 본고에 실린 몇 가지 상주아리랑에 대해서는 음원을 찾아내고 복원하는 일과 아울러 미래를 향하여 새롭고 더 ‘상주적인 아리랑’의 창조활동도 앞으로 이루어야 할 과제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