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대구 중구 근대골목길을 다녀와서-
빌딩 숲 사이로 납작 엎드린 길로
사람들이 다니기 시작합니다
낯익은 사람도 낯선 사람도 함께 다닙니다
아주 오래 잊고 있던 길
길도 이름을 붙여주니 살아납니다
청라언덕에 ‘동무생각’이 들리고
만세 언덕에는
만세소리도 들립니다
시집 속에 잠자던 ‘빼앗긴 들’을
사람들이 중얼중얼 외며 갑니다.
‘마당 깊은 집’에서 옛이야기가 들려옵니다
길에 이름을 붙여 주는 일
김춘수 시인의 ‘꽃’이 되는 시간입니다.
2023. 6. 19
어느 수집가의 전시회
-이건희 회장 소장품 전시회에서
‘귀한 것, 보물은 나만 두고 봐야지’
놀부 아저씨처럼 꽁꽁 숨겨놓고
몰래 혼자만 보던 할아버지가
마음의 빗장을 열었어요
‘내 것이 아니라 모두의 것’
이 생각 하나로
어두운 창고에서 숨죽여 있던 보물들이
있어야 할 곳에 자리 잡고 앉아
모두와 행복한 눈 맞춤하고 있어요
돌아오는 길 가슴속에
보물 한두 점 가지고 왔겠지요.
2023. 6.19
어느 시인의 문학관에서
150여권이 넘는 책들이
서가에 누워 있다
책 겉장을 열면
시인의 생각들이 들릴 것 같은데
‘눈으로만 보세요.’
‘마음으로 읽으세요.’ 라고 했으면
마음과 마음으로
통했을까
궁금함만 잔뜩 남겨두고
제목만 눈 속에 담아 왔다.
2023. 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