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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조문국 고분군과 고령 대가야 박물관을 다녀와서

빛마당 2011. 6. 13. 22:48

사벌국역사보존연구회 의성 조문국 및 고령 대가야 박물관 현지탐사

2011년 6월 11일 토요일 오전 8시 20분 상주시 무양청사 앞에서 사벌국역사보존연구회 의성 조문국(召文國) 및 고령 대가야 박물관 현지 탐사팀 43명이 동양관광을 타고 현지로 출발하였다. 김종호 회장은 결혼 주례 약속으로 참석하지 못하고 조희열 부회장과 차광식 사무국장의 인솔로 43명이 상주를 출발하였다. 11시쯤 의성군 금성면 금성산 고분군(경상북도 기념물 128호)에 도착 그곳에서 김문진 문화예술계장과 김재도 보존회장 김종우 전 의성문화원장님이 마중해 주셨고 마창원 박물관추진위원회 대표(영남일보 안동.의성 기자)가 나오셨다. 그리고 박금숙 해설사가 나와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셨다. 의성의 조문국은 의성국 금성면 탑리리, 대기리, 학마리 일대로 금성산 주변에 약 200여기의 고분이 분포되어 있는데 조문국은 삼한시대 국가였고 이곳은 조문국의 도읍지로 신라 벌휴왕 2년 서기 185년에 신라의 영향권으로 편입되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볼 수 있으며 의성지역 지방 세력의 시회구조 및 신라와의 관계 파악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김종우 전 의성문화원장은 이 고분은 1960연도 첫 고분 발굴 이후 여섯 번의 학술대회를 열었는데 1-4회는 의성군 자체로 학술대회를 열었고 5회와 6회는 전문학술대회로 학계에 주목을 받는 새로운 자료들이 발견되고 있다고 말씀을 하신다.

 이어 고분전시관이 세워지고 박물관이 건립되면 좀 더 활기찬 활동을 하겠노라고 포부가 크다. 조문국에 대한 학술회의를 할 때 경비는 2,000만원 정도의 예산이 든다고 했는데 올해는 물론 매년 1회 정도로 할 계획이란다. 의성군에서 지원하여 ‘왕국의 부활’이란 소설도 발간했단다. 지금 현존한 고분은 230여기가 있지만 현재 21기의 고분을 손질하는데 150억의 예산이 들었단다. 의성군과 군민 및 관련단체는 조문국의 부활을 위해 온갖 노력을 하고 있고 이를 위한 예산 지원과 민간단체들의 활동이 한껏 고조되고 있는 분위기를 직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조문국 경덕왕릉 앞에 2호 고분을 발굴을 했는데 발굴비 13억에 950여점의 유물이 출토 되었는데 발굴 비 보조는 유교문화권지원사업으로 이루어 졌다고 했다.

마창원 박물관건립추진위원 공동대표는 영남일보 안동 의성지역 책임자로 박물관설립에 대한 당위성을 영남일보에 시리즈로 게재함으로 지역민들이 문화의 힘에 대해 인식을 높이고 조문국의 실상을 외부에 알릴 수 있는 상징적인 역할이 박물관의 건립이라는 인식이 들게 되었다고 말했다. 지금 의성에는 조문국 발전을 위한 모임이 지역 각 단체와 범국민연대와 힘을 모아 약 400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으며 마창원 기자는 범국민연대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김종우 씨와 김재도씨 그리고 마창원씨 그리고 문화예술계장인 김문진 씨는 이 일을 위해 미친 사람이라는 평을 듣는다고 말했다. 이 고분들의 특징은 산의 경사면이나 산마루에 위치한 것이 아니라 완만한 계곡에 위치해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조문국경덕왕릉 (召文國景德王陵)’이란 비석의 앞에서 박금숙 해설사는 이곳은 삼한시대 진한 12국의 하나로 이 왕릉이 왕릉임을 말해주는 이야기로 500년 전 어느 날 초전리 외밭에 일하는 오익겸이란 촌로에게 꿈이 경덕왕이란 분이 나타나 현몽하면서 왜 내게 말뚝을 박느냐 하며 촌로의 팔뚝에 글을 써 주었는데 촌로가 이 글을 읽지 못해 당시 현감에게 보였더니 예사 일이 아니라고 글의 내용대로 경덕왕릉이라 칭하고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왕릉 앞 2호 고분은 발굴을 마쳤는데 전시관이 건립되면 곧 전시를 할 계획이란다.

고분의 규모는 동서 30.8미터 남북 29미터 높이 8미터로 이 고분의 특징은 가족 순장 묘인데 30년을 한 세대로 해서 3세대 100년에 걸쳐 이루어 진 무덤으로 온 가족이 순장된 묘라고 했다. 과연 가족순장이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그리고 이곳은 문익점 선생이 목화씨를 가져와 자기의 손자 문승로에게 목화를

재배하게 했던 곳이어서 이곳에 문익점의 목화시배지란 비문이 세워져 있다. 특히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세운 비가 함께 서 있어 특이하게 느꼈다.

 조문국 고분군을 뒤로하고 12시에 고향식당으로 가서 함께 갈비탕으로 점심을 먹었다. 임주원 은자골탁배기 사장님이 제공한 막걸 리가 여기서도 인기가 있었다.

 의성 탑리를 출발한 일행은 다시 1시 25분에 대가야 박물관에 도착했다.

우리는 여기서 고령 문화관광해설사 겸 국사편찬위원회 조사위원인 김재호 님의 안내로 대가야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과 대가야 역사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김재호 해설사는 정말 대가야 역사를 알리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정열적인 해설사로 느낌이 들었다. 해박한 대가야 역사를 꿰뚫는 해박한 지식은 물론 해설사로의 자긍심이 대단하였다.

 대가야 박물관은 대가야 왕릉이 모여 있는 주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대가야왕릉전시관과 대가야역사관을 말한다. 국내에서 최초로 확인된 대규모 순장무덤인 지산리 44호 분의 내부를 원래의 모습 그대로 재현해 놓았고 이 무덤에서 출토된 자료들을 통해 대가야 문화와 다른 가야와의 차별, 그리고 신라와의 차별된 문화에 대한 내용을 설명하였다.

 대가야 박물관 견학을 마치고 지산리 산 능선을 따라 조성된 고분들을 탐방했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끝까지 올라가지는 못했지만 임명우 고령군청 문화재 담당관은 25만평에 현존 700여기의 고분 중 91개를 정비했는데 약 41억원의 예산이 투입되었다고 했다. 지금은 이를 관리하는데 만 년간 7600만원이 든다고 하는데 이는 주로 국가에서 보조를 받는다고 했다.

 지산동 고분군의 혀황은 사적 제79호로 지정되었고 면적은 830.181m2

발굴조사 및 정비로는 봉토분 91기가 정비되고 관람로 1,512m를 개설하고 수목제거등을 했으며 발굴 조사로는 현재 10기의 고분을 발굴했다고 한다. 산재한 700여기의 고분중 거의 도굴이 되었다는 현황은 상주의 병성동 고분과 별반 다를 바 없는데 우리들이 걷는 관람로 아래도 모두 지석묘가 존재한다고 말하며 신산동 산 전체가 고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했다.

대가야 왕릉전시관을 건립하는데 (2000년 9월 18일 개관) 국비 77억4천만원 지방비 68억 4000만원 합계 145억 8천만원이 들었단다. 그리고 대가야 박물관 건립으로 (2005년 4월 2일 개관) 97억원(국비 47억 지방비 50억)의 경비가 들었으며 앞으로도 매년 5-10억원으로 봉토 정비 및 관람로 정비, 잡목제거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한다고 한다.

 이곳을 돌아오면서 한마디로 위대한 ‘고령’이란 말이 입에서 절로 나왔다. 이는 부러움과 속상함이 함께했다는 표현이리라.

 돌아오는 길에 우륵박물관을 들러 상주로 올라왔는데 우륵박물관은 전국에 유일한 박물관으로 그 규모가 상주박물관과 크기가 비슷하였다.

 차를 타고 오가는 도중 조희열 부회장님의 해박한 역사지식과 향토사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참 뜻 깊은 하루 탐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