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풍산일대 유적의 정비와 활용방안
상주박물관장 全 玉 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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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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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머리말338
Ⅱ. 유적의 현황과 성격340
Ⅲ. 유적의 가치344
Ⅳ. 유적의 관리 및 정비대책의 수립346
Ⅴ. 유적의 활용방안351
Ⅵ. 맺음말353 |
Ⅰ. 머리말
상주는 현 행정구역상 경상북도의 북서단에 위치하여 북에서 동, 남으로는 경상북도 문경시, 예천군, 의성군, 김천시 등과 접해 있고 서에서 남으로는 충청북도 괴산군, 보은군, 옥천군, 영동군 등과 접경해 있다. 또한 상주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백두대간을 기점으로 서고동저의 지세를 보이며 낙동강, 금강, 남한강 수계로 흘러드는 많은 지천들로 인해 형성된 넓은 충적평야와 이를 에워싸는 산세로 인해 형성된 함창분지, 상주분지 등 크고 작은 구릉과 하천, 평야가 잘 발달해 있는 지역이다.
산과 들을 잇는 육상교통로, 낙동강을 끼고 발달한 하상교통로 등 사통팔달의 교통요충지이자 동쪽의 낙동강수계, 남서쪽의 금강수계, 북서쪽의 남한강 수계의 대소 하천들로 인해 형성된 비옥한 충적평야가 발달한 곡창지대로 주민이 모여들고 차츰 그 사회가 번성할 수 밖에 없는 천혜의 여건을 자연지리적으로 이미 보유하고 있다.
실제로 신상리 구석기유적의 존재에서 알 수 있듯이 상주 일대는 한반도에 인류가 출현한 이래 지속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으리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따라서 인류활동의 흔적인 여러 시대에 걸쳐 다양한 성격의 유적이 유존할 가능성은 매우 높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선사와 고대의 상주의 실체를 해명해 줄 수 있는 유적의 조사는 극히 미진한 상태에 머물고 있다. 그나마 1990년대 이후 몇 차례의 지표조사나 각종 건설공사에 수반된 긴급구제발굴조사 성과를 통해 구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삼한시대, 삼국시대의 상주에 대하여는 어느 정도 윤곽은 드러나고 있으나 신석기시대 유적의 공백 등 선사 이후 고대의 상주의 위상을 전반적으로 해명하기에는 아직 턱없이 자료가 부족한 실정이어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조사연구계획의 수립과 실행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아무튼 지금까지의 고고학적 연구성과를 통해 살펴보면 상주는 지리적으로 산과 강, 평야가 고루 발달해 있는 비옥하고 풍요로운 지역인 동시에 교통로도 발달하여 인접한 제 지역과의 활발한 교류가 이뤄질 수 밖에 없는 지정학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
삼한시대에는 마한과 삼국시대에는 특히 백제, 신라 등과 접경하여 때로는 우방으로 때로는 적으로 빈번하게 접촉했으며 종국에는 신라로 통합될 때까지 독특한 지역색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상주의 문화는 신라와 닮아 있는 듯, 백제와 닮아 있는 듯 독특한 지역색을 가진다. 이러한 성격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이 병풍산 고분군이다. 함창 신흥동, 청리 고분군등과 더불어 상주의 대표적 고분 유적으로 부각되고 있으나 이번에는 병풍산 일대의 유적에 한정하여 살펴보려 한다.
병풍산고분군은 중부내륙고속도로 건설공사시 실시한 구제발굴조사, 최근 실시된 정밀분포조사 등을 통해 낙동강변, 사벌 일대의 최고 위계의 묘역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그 전모와 정확한 성격 규명에는 다소 자료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어서 종합적인 학술발굴조사를 통해 좀더 많은 자료와 정보가 축적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본고에서는 경상북도 기념물 제125호(1998. 4. 13)로 지정되어 있는 병풍산고분군을 중심으로 이 일대 유적의 성격과 역사적 가치에 대해 한번 짚어보고 향후 상주를 대표하는 고분유적으로서의 조사 및 정비 방향 및 활용방안에 대해 약간의 제언을 해보고자 한다.
Ⅱ. 유적의 현황과 성격
병풍산 일대는 동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북쪽으로는 북천, 서천이 병성천으로 흘러들고 병성천은 다시 병풍산 동북단에서 낙동강과 합류한다. 해발 356.6m의 병풍산을 중심으로 특히 그 서쪽과 북쪽에는 이러한 하천의 영향으로 넓은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어 예로부터 풍요로운 지역이었음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으며, 이에 걸맞게 여러 시기에 걸친 다양한 유적들이 분포하고 있다(도면 1).
병풍산 정상에는 하상교통로, 육상교통로를 모두 조망할 수 있는 지정학적으로 매우 유리한 위치에 포곡식산성이 축조되어 있으며 산정에서 북쪽으로 몇 개의 지맥이 뻗어 나가 있는데 그 능선상상에 병풍산고분군이 넓게 영조되어 있고 지명상 헌신동, 병성동 일원에 해당한다. 그 밖에도 거의 동시기에 조성된 성동리고분군이 인접하고 있으며 헌신동, 성동리 일대에 청동기시대의 생활, 분묘유적도 분포하고 있는 고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도면 1. 병풍산고분군 위치 및 주변유적도
병풍산고분군에 대한 조사는 고대 사벌국 관련 문화유적 지표조사에서부터 중부내륙고속도로 건설에 수반된 구제발굴조사, 2년전 상주박물관에 의한 봉분의 분포조사에 이르기까지 몇 차례 실시되어 그 전모가 대략적이나마 밝혀져 있다.
특히 2010년에 상주박물관에서 실시한 지표조사는 GPS를 활용한 봉분의 분포조사이다. 봉분의 위치와 규모를 일일이 측정하고 각 고분의 개별 현황까지 상세하게 파악한 보고가 있는데 이를 통해 병풍산고분군의 개요를 소개한다(도면 2).
병풍산 북편에 펼쳐져 있는 구릉의 정선을 따라 열을 지어 분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봉분이 확인되는 것만 총 862기로 추산되고 있어, 이미 파괴되었거나 봉분이 삭평된 유구까지 포함하면 최소 1000여기 이상에 이를 것이며 그 존재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4세기대의 목곽묘까지 감안한다면 상주 일대에서는 최대급 규모의 분묘유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상주박물관이 실시한 지표조사시 병풍산 고분군은 편의상 서에서 동으로 가며 구릉별로 가~다, 3개 구역으로 구분해두었으며 각 구역별 현황은 아래 표와 같다.
구역 |
위치 |
基數 |
비고 |
가 구 역 |
속칭 벼락바위산 헌신-병성간 도로를 기준으로 가-1, 2구역으로 구분 |
가-1구역 13기 가-2구역 99기 |
봉분직경 20m 내외, 최대 34m 규모의 봉분이 능선을 따라 열을 지어 해발 220m 선까지 분포하며 특히 다른 구역에 비해 대형분이 밀집 분포하고 있음 |
나 구 역 |
금동골 동편 넓은 구릉 |
394기 |
해발 220m 선상까지 중, 소형의 봉분이 축조되어 있으며 크게 4개의 능선상에 열을 지어 분포하고 있으며 묘역조성 등으로 훼손이 심각함 |
다 구 역 |
병풍산 동쪽기슭 골마마을 뒤쪽 구릉 |
356기 |
해발 200m 선상까지 중, 소형의 봉분이 축조되어 있으며 크게 4개의 능선상에 열을 지어 분포하고 있으며 묘역조성 등으로 훼손이 가장 심각함 |
도면 2. 병풍산 고분군 분포도(상주박물관)
전반적으로 오래전에 도굴이 심하게 진행되어 온전한 것은 거의 전무한 상태이며 각 가문의 선산, 묘역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로 인해 이미 현상변경되거나 훼손 정도가 심한 유구도 상당수 존재하여 관리대책의 수립이 시급하게 요구되는 상황이다.
특히 가 구역의 경우 이 일대 유적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지역이지만, 헌신-병성간 도로로 인해 구릉이 잘려져 있는데다가 가-2구역은 다시 중부내륙고속도로에 의해 단절되어 있어 미관상으로도 흉물스럽지만 유적에로의 자연스러운 접근에 애로가 있다. 본격적으로 유적 정비가 진행되면 유적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구릉을 연결시켜 주는 연결통로 조성에 관해서도 충분히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Ⅲ. 유적의 가치
병풍산고분군은 오래전에 이미 심하게 도굴되어버려 출토유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다소 제한적이기는 하나, 독특하고 다양한 묘제, 유구 구조 만 보더라도 본 유적은 고대 상주의 면모를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해주는 중요한 유적임은 너무도 분명하다.
병풍산 일대와 남쪽의 낙동강안, 병성천을 끼고 형성되어 있는 여러 시기에 걸친 다양한 유적들, 특히 병풍산 북쪽 직선거리로 약 2km 지점의 이부곡토성, 전사벌왕릉 뒤편의 고분군, 금흔리 목곽묘 유적 등 주요 유적들이 분포하고 있다는 점은 당시 병풍산 일대의 지정학적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잣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벌국의 고지가 현재의 사벌면 일대와 거의 일치한다고 가정한다면 사벌국의 최고위계, 즉 수장묘역은 병풍산고분군임에는 틀림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병풍산 정상의 병풍산성과도 조합을 이루는 양상으로 아직 확인된 바는 없지만 이들의 생활근거지로서의 취락유적의 유존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으며, 이부곡토성과의 연관성에 대한 검토에 이르기까지 향후 조사를 통해 계속적으로 추적해 나가야 할 것이다.
성주의 성산고분군과 성산산성, 고령의 지산동고분군과 주산성 등과 같은 조합상과 병풍산고분군-병풍산성의 관계에 대입해 보면 더더욱 이 일대의 수장묘역일 가능성을 더욱 높게 한다.
한편 출토유물의 검토를 통해 병풍산고분군과 시기적으로 거의 병행하는 것으로 판단되는 함창 신흥리고분군은 오봉산정의 남산산성과 조합되고, 산성이 있는 오봉산 북쪽 산자락에 이안천을 마주하며 조성되어 있는 등 입지여건과 성격, 규모 등에서 매우 닮아 있어, 이 또한 고령가야(古寧加耶<古寧國>)의 고지에 해당한다는 측면도 매우 닮아 있다.
이들 양 고분군의 관계에서 보면 사벌국(沙伐國)과 고녕국(古寧國)은 신라에 병합되기 이전까지 서로 이웃하여 협력관계를 유지한 상주의 양대 세력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본고에서는 다룰 내용이 아니어서 좀더 자료를 취합하여 별고에서 다루고자 하며 그 만큼 상주 지역에서 이들 양 고분군유적이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잠깐 지적해 보았다.
또한, 본고에서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으나 신라의 상주진출의 거점으로 추정되고 있는 청리일대를 거쳐 완전히 신라화되고 난 이후 통일신라시대의 발전된 도시구조를 보여주는 복룡동유적 일대에로의 고대 상주의 중심 이동 추이가 상주의 고대사회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될 것으로 생각되어 향후 고고학적으로 검토해보고 싶다.
아무튼 병풍산고분군은 지금까지의 발굴조사성과만으로 본다면 5~6세기대의 고분자료에 집중되어 있고 이 또한 극히 제한적이지만 병성동, 헌신동 일대에서 삼한시대 전기(초기철기시대)의 수혈주거지에서 조합우각형파수부호, 원형점토대토기 등이 출토되고 있으며 유적의 규모가 매우 방대한 반면, 발굴조사는 극히 일부분에만 이루어졌다는 점, 고분의 영조는 시간적으로나 위계적으로나 일련의 규칙성이 갖는 경우가 일반적이라는 점 등으로 미루어볼때 아직 드러나지 않은 많은 정보가 숨겨져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따라서 필자는 향후 병풍산고분군과 병풍산성을 연결하는 병풍산 일대유적에 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조사연구 및 정비계획을 조속히 수립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 후 종합계획에 따라 먼저 충분한 조사연구를 통한 자료를 축적하고 이를 통해 체계적으로 정비해 나간다면 고대 상주의 면모를 규명하는 동시에 상주 지역민들의 자긍심도 고취할 수 있는 대외적인 자랑거리로서의 유적박물관(역사문화공원) 조성이라는 일석이조의 성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Ⅳ. 유적의 관리 및 정비대책의 수립
병풍산고분군유적 일대는 오래전에 이미 도굴로 인해 일차적으로 훼손된 이후 현재까지 개간, 마을의 확장, 현대 묘역의 조성 등으로 인해 급속도로 파괴되는 등 현상변경이 진행되고 있다. 상주시와 사벌국역사보존회 같은 민간단체의 노력으로 일부 정화작업을 통해 봉분의 윤곽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유적 전역을 대상으로 종합적인 관리대책의 수립이 시급하며 본 유적의 정비 또한 이 관리대책의 틀 속에서 체계적으로 진행되어야만 할 것이다.
구체적인 유적정비에 대해 언급하기 전에 성공적인 유적 정비를 통해 역사문화 컨텐츠로 잘 활용하면서 역사문화적 인식을 통한 지역민의 자긍심 제고, 지역홍보, 방문객의 증대 등 다각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영남 일원의 고분유적 정비 사례를 간략하게 살펴보겠다.
고령지산동유적, 합천 옥전유적, 김해 대성동유적, 동래 복천동유적 등이 대표적인 예인데 이들 유적의 정비과정을 살펴보면 다들 공통적으로 최소 10여년 이상의 오랜 준비 과정이 선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령 지산동유적(도판1)의 경우 대가야의 수장묘역으로, 1977년 경북대학교 박물관과 계명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44, 45호분의 발굴조사가 시작된 이후 계명대박물관, 경북문화재연구원, 영남문화재연구원, 대동문화재연구원 등에 의해 지금까지도 정비 목적의 학술발굴조사가 진행되어 오고 있으며 그 모든 조사연구정보를 토대로 유적 정비가 이뤄지고 대가야박물관이 건립되어 다양한 문화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합천 옥전유적(도판2)의 경우는 대가야연맹의 양대축 중 하나인 다라국(多羅國)의 수장묘역으로 1985년도부터 1991년까지 5차에 걸쳐 경상대학교박물관이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발간된 10책의 발굴조사보고서등 학술조사성과를 토대로 유적을 정비하고 합천박물관을 건립하여 유적의 관리와 문화서비스가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김해 대성동유적(도판3)은 1990년부터 5차에 걸쳐 경성대학교박물관에 의해 조사가 진행된 후 금관가야(구야국)의 수장묘역
도판1-① 고령 지산동고분군 발굴 모습
도판1-② 고령 지산동고분군 정비모습
도판2-① 합천 옥전고분군 발굴 모습
도판2-② 합천 옥전고분군 정비모습
도판3-① 김해 대성동고분군 발굴 모습
도판3-② 김해 대성동고분군 정비모습
도판4-① 부산 복천동고분군 발굴모습
도판4-② 부산 복천동고분군 정비모습
으로 판명됨에 따라 이 일대를 김해시가 매입하고 본격적인 종합정비계획을 수립하였고 그 기반 위에서 2003년 대성동박물관이 건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최근에는 대성동박물관 연구진에 의해 직접 학술발굴조사를 실시하고 그때마다 매번 새로운 조사성과가 밝혀져 학계를 흥분시키고 있다.
동래복천동유적(도판4)은 금관가야연맹의 양대 축 중 하나의 세력인 독로국(瀆盧國)의 수장묘역으로 1980년 주택건설을 위한 구제발굴조사의 형태로 부산대학교박물관에서 조사를 실시하면서 유적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사적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1996년까지 부산대학교박물관과 부산박물관에 의해 누차에 걸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으며 이러한 발굴조사성과를 토대로 유적정비계획이 수립되었으며, 1996년 복천박물관(부산박물관 복천분관)이 건립되면서 더욱 본격적인 유적정비와 관리대상 범위를 넓혀가며 최근까지도 유적정비와 관련한 크고 작은 발굴조사를 실시하는 등 전시, 교육, 학술활동을 왕성하게 해나가고 있다.
다시말해 이들 유적은 학술발굴조사→충분한 검토를 통한 정비 및 활용계획수립→유적 정비 및 박물관의 건립→다양한 문화서비스 제공의 형태로 사회에 대한 문화환원사업 실행의 수순을 잘 밟아간 유적 정비 및 활용의 경우로 꾸준히 축적된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유적을 정비하고 유적박물관화하여 유적을 잘 보존, 관리하여 후세에 고이 물려줄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고 일부는 정비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의 고대문화의 우수성,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데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한편, 유적정비에 수반하여 건립된 고령 대가야박물관, 합천박물관, 대성동박물관, 복천박물관등은 이후 여러 지역에서 공립박물관 건립을 활성화하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음도 빼놓을 수 없는 사실이다.
위와 같은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병풍산고분군의 성공적인 정비를 위해서는 종합적인 복원정비계획 수립이 우선되어야 한다. 조급한 마음에 정확한 고증없이 졸속하게 복원, 정비하는 것을 경계해야만 하며 현재 알려져 있는 병풍산고분군의 출토자료는 사실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므로 유적의 전모를 밝힐 수 있는 학술발굴조사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상의 검토를 통해 병성동~헌신동을 잇는 병풍산고분군, 병풍산성 등 병풍산 일대유적의 이상적인 정비 및 활용을 위해서는 다음의 수순을 따를 필요가 있다.
첫째, 현재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유적범위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므로 유적 전체를 보호구역으로 지정, 더 이상의 파괴, 현상변경이 진행되지 않도록 보존, 관리해 나간다.
둘째, 효율적인 보존관리를 위해 차차 시유지로 편입해 나간다. 이 일대에서 최상위 위계의 묘역으로 추정되는 가 구역부터 단계적으로 매입해 나가는 체계적인 매입 계획의 수립과 실행이 필요하다.
셋째, 이와 더불어 병풍산일대 유적의 전모를 파악하기 위한 종합적인 학술발굴조사 계획을 수립하고 이에 따라 연차적으로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정밀한 유적 정보를 축적해 나간다.
넷째, 이와 같은 작업에는 오랜 기간이 소요되므로 이와 동시에 더 이상의 훼손을 방지하는 활동과 봉분을 가리고 있는 잡목과 가시덤불 등을 제거하는 유적 정화활동을 꾸준히 병행함으로써 멀리서도 봉분의 위용을 조망할 수 있는 정화 위주의 정비작업을 지속적으로 시행한다.
다섯째, 유적의 정비와 아울러 다양한 활용방안을 수립하여 지역주민의 학습장으로 활용함은 물론, 관광객의 발길도 머물게 하는 다양한 문화컨텐츠를 개발한다.
다시 말해 유적을 정비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부터 할 수 있는 단순 정화작업은 지속적으로 진행하면서 장기적으로는 유적의 전모를 완전하게 밝힐 수 있는 종합적인 조사 및 정비계획의 수립이 선행되어야 하며 이에 따라 체계적인 조사, 연구, 정비가 연계적으로 이뤄져야만 한다.
사실, 병풍산성에서부터 고분군에 이르기까지 병풍산 일대유적은 매우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어 잡목이나 덤불을 제거하는 기초적인 정화작업에도 많은 인력과 예산이 소요될 것이다. 따라서 가장 효율적으로 봉분의 형태가 가시화되고 병풍산성까지 매끄럽게 연결되는 구역을 선정하여 이곳을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정화해서접근도 용이하게 하고 지나가는 길에 봉분의 형태를 조망할 수 있게 한다면 지역주민은 물론 외지인들에게도 충분히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고 나아가 지속적인 유적을 잘 보존하고 정비 하는데 큰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Ⅴ. 유적의 활용 방안
앞에서 살펴봤듯이 유적의 전반적인 정비에는 지속가능한 종합계획 수립이 필수적이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유적정비를 해나가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만 정화 위주의 정비 차원에서 병풍산일대 유적을 홍보하는 동시에 주민참여 또한 유도할 수 있으며 지금 당장부터라도 실행할 수 있는 활용방안을 몇 가지 제안해두고자 한다.
․ 병풍산 일대 역사탐방 루트 설정
병풍산일대 유적을 통한 고대 상주의 위상을 브리핑한 후 병풍산고분군에서 시작하여 병풍산성까지 둘러보는 일종의 역사트레킹 코스를 개발이 필요하다. 사이사이 고분의 성격, 특징, 산성의 종류와 특징, 구조, 축조기법 등을 이해하면서 휴식도 겸할 수 있는 설명 패널, 벤치 등이 구비된 야외데크 등을 마련하여 학습과 동시에 차차 정상으로 올라가며 눈에 들어오는 상주분지의 넓은 평야와 지천인 북천, 병성천이 합류하고 다시 낙동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감상하도록 한다면 최근 유행어처럼 등장하는 힐링과 더불어 상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학습효과로 방문지에 대해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상주관내 청소년들을 대상의 체험 프로그램으로 활용한다면 자연스럽게 향토문화에 접근하고 알아가며 장래의 향토문화 지킴이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 마련에도 일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청소년 유적 바로알기 활동
위에서도 말했듯이 졸속적으로 행하는 유적정비는 도리어 유적과 유적을 에워싸고 있는 전체적인 경관을 망칠 수도 있으므로 장기적인 종합정비계획하에 체계적으로 선 발굴조사, 후 정비의 수순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관은 물론이고 뜻있는 주민들도 같이 참여하는 민관협동의 형태로 유적보호차원의 정화활동을 꾸준히 실천해 나가는 것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이와 같은 활동에 일반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의 실시도 중요하지만 청소년들도 참여하는 프로그램도 병행 실시한다면 청소년시절부터 우리 지역 문화유산의 의미와 가치를 인식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가치관를 형성해가는 도정에 있는 청소년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방안도 강구함으로써 애향심과 역사인식이 몸에 밴 이들이 장차 지역문화를 이끄는 리더역할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는 측면에서 이와 같은 활동의 중요성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 역사경관을 활용한 문화관광 활성화
병풍산일대유적을 비롯한 사벌국 관련 역사문화 인프라, 경천대를 비롯한 낙동강변의 우수한 자연경관 인프라, 낙동강 신관광벨트화 사업으로 구축된 사회시설 인프라, 자전거박물관, 국립생물자원관, 상주보 등 다양한 유형 자원과 시의전서 등을 통해 구현된 상주의 전통음식 등을 복합시킨 상주만의 특화된 고급의 문화관광 상품을 개발하여 방문객 만족도를 제고한다면 자연스레 재방문 동기 유발은 물론 이들에 의한 홍보효과까지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사벌면 일대에는 청동기시대부터 삼한,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상주의 선사~고대문화를 엿볼수 있는 다양한 유적들이 분포하고 있고 근세에 들어서면 애국과 민족정신을 고양할 수 있는 정기룡장군 유적지가 있으며, 상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종합적인 이해를 도와줄 수 있는 상주박물관이 있다. 한편, 여가활동 및 휴식을 제공해주는 경천대에서 상주보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자전거박물관, 국제승마장과 같은 시설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편안하고 묵을 수 있는 숙박, 휴양시설만 보완된다면 현재 보유하고 있는 문화 인프라만으로도 그 활용가치는 매우 크다.
현재 미비된 부분을 포함해서 보다 나은 휴식과 여가활동을 위한 각종 프로젝트들이 이미 수행중이거나 꼭 착수할 예정이어서 머지않은 미래에 문화관광을 위한 다양한 인프라가 구축될 것이다. 단순한 여가 및 휴식활동으로 상주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놀이문화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우월한 역사경관과 관련한 상주만의 특화된 고급 문화관광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Ⅵ. 맺음말
이상에서 병풍산고분군의 정비와 활용방안에 관한 필자의 견해를 거칠게나마 피력해 보았다. 앞에서 언급한 여타 지역의 성공적인 고분정비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간취되는 점은 장기간에 걸친 학술조사활동을 통해 얻어진 자료를 충분히 규명한 탄탄한 기반 위에서 비로소 고분의 정비와 활용방안을 강구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상주분지의 병풍산고분군은 함창분지의 신흥리고분군과 더불어 상주의 고대사를 해명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주는 유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제발굴조사를 통해 얻어진 자료가 거의 전부로 한계가 많다. 지금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정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지도 모를 정도로 무궁무진한 자료가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어 향후 고고학적으로 해명해야 할 것이 너무도 많이 남겨져 있다.
이처럼 자료부족으로 인해 고령이나, 성주 등 주변지역에 비해 선사시대부터 고대에 이르는 시기의 상주의 위상은 다소 미미하게 평가되고 있는 현실이 정말 안타깝다. 하지만 상주의 우월한 자연지리적 환경, 지정학적 위치로 미루어 볼 때 상주의 역할과 위상은 지금 알려져 있는 것보다는 월등하게 높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결국 기초적인 정보부족으로 인해 상주의 위상이 평가절하되고 있는 현실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선사~고대의 상주의 위상을 올바르게 세우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종합 학술조사 계획의 수립이 선결되어야 하며, 이에 의거한 학술발굴조사를 통해 기초자료와 정보 또한 차근차근 꾸준하게 축적해 나가는 것이 급선무이다.
고분군 등 유적의 정비도 급한 마음에 학문적 고증을 생략하고 졸속하게 처리되는 어리석음을 결코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체계적인 조사와 연구를 통한 학술적 기반 위에서 단기적으로는 주변정화 위주, 장기적으로는 종합적인 복원정비에 이르는 종합정비계획을 수립하고 이에 의거하여 차근차근 체계적으로 실행해 가면서 동시에 다양한 활용방안도 강구하는 형태가 가장 이상적이며 또한 합리적이지 않을까.
참고문헌 및 논고
상주박물관『상주분묘자료집성』2012
상주시『상주시사』제1권 역사, 2010
상주박물관『상주병풍산고분군 지표조사보고서』2010
문화재보호재단『상주 병성동․헌신동고분군』학술조사보고 제107책, 2001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상주 병성동고분군』학술조사보고 제8책, 2001
상주시․상주산업대학교부설 상주문화연구소『고대 사벌국관련 문화유적 지표조사보고서』1996
상주박물관 編『5~6세기 고분문화와 고대상주』상주시, 2012. 11. 15
경북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편『경북지역 가야유적의 세계유산 가치검토』경상북도, 2012.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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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형, 석병철「상주 병풍산고분군 현황과 과제」『상주문화』제20호. 상주문화원, 20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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