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학/동화

용칠이

빛마당 2014. 3. 6. 20:52

(동화) 용칠이

 

김재수

하늘의 어깨가 몹시 무겁게 보였다. 가던 길을 멈추고 하늘의 무거움을 가늠해 본다. 그래도 날씨가 포근한걸 보면 아마 눈이 내릴 것 같다. 앙상한 도시의 가로수가 더 을씨년스럽다. 이따금 아직 제 갈 길을 찾지 못한 버짐나무 마른 이파리가 잔뜩 추위에 오그라진 채 바람이 불 때마다 길 한쪽을 헤매고 있다. 이런 날은 펑펑 눈이라도 내렸으면 좋겠다.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 앞엔 여전히 오고가는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시골에서 올라 온 사람들과 볼일을 마치고 다시 내려가는 사람들이 늘 혼잡한 곳이다. 이곳을 지날 때면 가끔씩 걸음을 멈추고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혹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지나 않을 까 하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다. 거리엔 날씨와는 관계없이 성탄절 반짝 불들이 한낮에도 반짝이고 있다. 무심코 길 건너 지하상가 출입구 쪽을 바라보던 내 눈이 딱 멎고 있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낯익은 얼굴. 날씨 탓에 몸을 잔뜩 오그리고 걷고 있었지만 분명히 아는 얼굴이다. 한참이나 내 머릿속엔 그 사람의 기억으로 복잡해 졌다. 그러나 그 사람은 건너편 지하도 안으로 막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순간 이쪽 지하도 출입구를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랬다. 그 사람은 분명히 용칠이었다. 지하도 계단을 뛰어 내려가면서도 용칠이에 대한 생각이 온통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재빨리 계단을 내려가서 저쪽 건너편 입구 쪽으로 뛰어 갔지만 그러나 그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물 흐르듯 흐르고 있는 사람들 틈을 빠른 걸음으로 헤집고 다녔지만 헛일이었다.

‘내가 잘못 본 건 아니겠지. 분명히 용칠이었는데...’

아쉬움이 물밀 듯 가슴으로 밀려들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머릿속에는 그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그러면서도 어느새 나는 잊고 있던 내 고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노음산 깊은 골을 등에 이고 누웠다가 잠시 일어나 동쪽으로 조금 내려오면 신라 시대에 창건했다는 남장사가 산속에 다소곳이 앉아 있고, 남장사 일주문을 돌아내리는 여울을 따라 빽빽하게 들어선 솔숲을 지나면 어느새 눈앞이 확 트이게 열린 동네가 보인다. 이곳이 내 고향 경상북도 상주시 남장동이다. ‘호랑이와 곶감’이라는 전래 동화의 발상지. 언제 심었는지 나로서는 가늠할 수 없는 아름드리 감나무들이 밭이며 집주변에 울처럼 둘러서 있어 이곳 사람들은 ‘감이 열리는 마을’이라고 불렀다. 지금도 저 유명한 상주곶감의 주요 생산지이기도 한 마을. 눈을 감으면 온통 발갛게 등을 단 익은 감들과 그 감들을 깎아 매단 곶감타래의 풍경이 저녁노을처럼 붉게 가슴에 물들게 한다.

용칠이는 동네에서도 외따로 떨어진 상여집 근처에 엄마와 둘이 살았다.

엄마는 대부분 남의 집 허드렛일을 해주곤 했는데 그래도 용칠이를 학교에 보냈다. 동네 사람들은 용칠이를 바보라 불렀다. 그러면서 바보를 무엇 하러 학교에 보내는지 모르겠다고 수군거렸다. 세 살이나 많으면서도 나와 한 반에 다녔지만 정말 공부는 지지리도 못했다. 그래서 대부분 꾸중은 용칠이가 받았다. 그는 읽기는 물론 그 쉬운 덧셈이나 뺄셈도 못해 바보라고 놀림을 받았다. 요즘말로 왕따였다. 그랬으니 학교 가기가 오죽 싫었을까? 그래서 학교 가는 일보다 허드렛일을 하는 엄마를 도와 줄 때도 많았다.

또래 아이는 물론 동네 어른들도 용칠이를 싫어했다. 자주 빨아 입지 않은 옷에서는 늘 쉰 냄새가 났기 때문에 그가 곁에 오면 슬슬 피하기도 하고 대놓고 냄새가 난다고 대놓고 무안을 주었다.

어느 날이었다.

마을 뒷산에서 아이들은 신나게 산태도 타고 솔방울 싸움도 하면서 놀고 있었다. 이런 놀이에도 용칠이는 잘 끼워 주지 않았다. 그는 우리들이 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우리가 신나서 까르르 웃으면 그냥 소리 없는 웃음을 웃기만 했다. 그는 우리랑 노는 대신 풀을 뜯는 소나 염소랑 놀기를 좋아했다.

우리가 놀이에 정신이 없이 떠들고 있을 때 용칠이가 급하게 나를 불렀다.

“왜 불러? 신나게 노는데...”

“빨리 와봐. 아무래도 너희 집 염소가 이상하게 울고 있어.”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그를 따라 갔다. 용칠이가 가리키는 곳에 내가 매어놓은 염소가 울고 있었다. 염소는 고삐가 나무 그루터기에 챙챙 감겨 꼼짝 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용칠이는 얼른 달려가 땅에 깊이 박힌 말뚝을 뽑아내고는 그루터기에 감긴 고삐 풀어내었다. 그제야 염소는 살았다는 듯 우릴 보고 모가지를 흔들어 보였다.

“어떻게 알았어?”

“그냥 울음소리만 듣고”

내가 무슨 말을 더 하기도 전에 그는 팔을 휘휘 내 돌리며 저만치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그날 이후 이상하게 나는 용칠이가 싫거나 밉지 않았다. 그는 내가 모르는, 아니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는 다른 재주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저녁이었다. 국어 숙제로 동시를 지어야 했다. 하루일 중에서 제목을 정하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솔방울 싸움’을 제목으로 쓰려다가 자꾸만 염소와 용칠이 생각이 났다. 그래서 제목을 ‘용칠이’라고 붙였다.

 

용칠이

바보 용칠이

 

친구라곤

이웃집 까만

염소 두 마리

 

음메---

청을 높여 우는

소리만 들어도

 

배고픈가, 아픈가

고삐에 감겼는가

 

척척 알아내는

참 용한

우리 용칠이.

 

선생님은 내가 지은 동시를 아이들에게 읽어 주셨다. 내 숙제로 이렇게 칭찬을 들은 일은 첨이었다. 그리고 이런 일을 한 용칠이까지 칭찬을 해 주셨다. 내가 용칠이를 바라보자 그도 씩 웃었다. 아이들은 용칠이가 한 건 했다고 또 놀렸다.

 

봄이 되면 노음산과 그 주변엔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었다. 그래서 노음산 자락에 자리 잡은 남장사는 온통 꽃 속에 묻힌 대궐처럼 보였다. 마을에서 오리쯤 떨어진 학교를 오가는 길에도 개나리가 한창 꽃 담장을 이루곤 했다.

학교를 파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은 가게에 들려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입에 물었다. 빨기도 하고 깨물기도 하고 먹는데 저만치 뒤에서 용칠이가 따라 왔다. 우리 일행을 바라보는 눈빛에 먹고 싶은 마음이 가득 담겨있었다. 나는 애써 못 본 채 했다. 그에게 아이스크림 하나 사 줄 돈도 없으려니와 그 땐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한 동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그가 갑자기 손을 내저으며 저만치 앞질러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용칠이가 보이지 않게 되자 오히려 마음이 편해 졌다.

그러나 우리가 마을 입구에 다 올 때 쯤 언제 나타났는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환하게 핀 진달래가 한 아름 안겨있었다.

“와, 언제 꺾었어? 너무 곱구나”

“줄까?”

용칠이는 웃으며 말했다.

“응 그래. 나도 좀 줘”

“나도 줘”

아이들은 서로 달라고 손을 내 밀었다. 나도 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아이들 뒤에서 차마 말은 못하고 멀찍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한 아름 꺾어온 진달래를 모두 다 나누어 주었다. 그의 얼굴은 참 편하고 신나 보였다. 이윽고 빈손이 되자 휘파람을 불면서 저희 집으로 뛰어 갔다. 그의 뒷모습이 진달래꽃보다 더 환하다고 느꼈다.

 

용칠이

바보 용칠이

 

아이들이 먹는

사탕이랑 아이스크림

 

눈 빠지게 바라보다

침만 흘리다

 

빈 손 싱겁게 내저으며

뒷산으로 내닫더니

 

가슴에 가득

꺾어 안고 온

부끄러운 얼굴처럼

붉은 진달래

 

-나도

-나도

손 내미는 아이들에게

 

꽃처럼 웃으며

나누어 주는

 

참 환한

우리 용칠이.

 

어느 새 내 일기장엔 용칠이에 대한 동시가 두 편이나 되었다. 이상하게 내 가슴한 구석에 용칠이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학교 앞 문구점에는 봄이 되면 병아리를 팔곤 했다. 나도 병아리를 기르고 싶었는데 마침 성칠이가 병아리 한 마리를 사 오며 말했다.

“우리 이 병아리 어미 닭이 될 때까지 잘 키워보자”

아이들은 그렇게 하자고 입을 모았다. 학교에서 돌아오자 따뜻한 담 밑에 둘러앉아서 병아리 상자를 열었다. 노란 병아리는 ‘삐약’소리를 내며 떨고 있었다.

“추운가 봐”

우리는 바람을 막고 양지쪽으로 병아리를 향해 주었다.

“쓸데없는 짓하고 있구나. 니들이 병아리를 키울 수 있을 것 같아? 부화장에서 병든 것들을 팔고 있는 줄도 모르고...”

순이네 아버지가 우리를 보시고는 핀잔을 주었다.

꾸벅꾸벅 졸기만 하던 병아리가 한나절이 지나자 그만 죽고 말았다.

“에이 씨, 돈만 버렸잖아.”

성칠이가 축 늘어진 병아리의 주검을 들고 얼굴을 찌푸렸다. 모두들 속았다며 하나 둘 담 밑을 떠나고, 노란 병아리의 주검만 햇살아래 누워 있었다. 한동안 나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때였다. 누가 부른 것처럼 용칠이가 내 옆에 다가와 섰다. 그는 각시 풀을 뜯어서 병아리 배위에 십자가를 만들더니 침을 탁 탁 두 번 뱉았다. 그리고는 살아나게 해 달라고 기도까지 했다.

‘저렇게 한다고 죽은 병아리가 살아날까?’

나는 속으로 웃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병아리가 살아날 기미가 없자 용칠이는 나무꼬챙이 하나를 가져와 양지바른 담 밑을 파기 시작했다. 병아리의 주검을 정성껏 펴고 그 안에 넣더니 흙을 덮고 무덤을 만들었다. 그리고 작은 풀꽃 하나 꺾어서 무덤위에 꽂아 놓더니 나를 보고 씩 웃었다. 나도 그를 보고 씩 웃었다. 세수도 하지 않은 그의 얼굴에 풀꽃같은 웃음이 피고 있었다.

그 날 나는 세 번째 용칠이의 시를 썼다.

 

용칠이

바보 용칠이

 

아이들이 데리고 놀다

죽어버린 병아리

 

아무렇게 버려진

길가의 그 주검을

 

각시 풀 뜯어다

배 위에 올려놓고

 

허연 침 ‘탁’ 뱉으며

살아나라고 빌어도 보다

 

양지쪽 담벼락 밑

작은 무덤 만들고

 

이름 모를 풀꽃 한 송이

꽂아 놓고 일어서며

 

억지로 웃고 가는

우리 용칠이.

 

어느 날 장마철 학교를 가야하는데 폭우가 내려 마을 앞 개울물을 건널 수 없게 되었다. 그날도 그랬다. 모두들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용칠이는 바짓가랑이를 둥둥 걷어 올리더니 내가 건너 줄 터이니 등에 업히라고 했다. 모두들 냄새 난다고 싫어했지만 나는 가장 먼저 용칠이 등에 업혔다. 나를 업고도 힘든 기색을 내지 않는 그의 등이 나는 바위처럼 든든하게 느꼈고 그의 등에서 나는 냄새는 흙냄새처럼 나를 푸근하게 만들었다. 나는 지금도 그의 등에서 나는 냄새와 그렇게 넓고 든든등을 잊지 못한다.

 

용칠이

바보 용칠이

 

동네 앞 징검다리

학교 가는 길

 

장마 비 물이 불어

걱정이 불어

 

동동걸음 구르는

동네 꼬마들

 

넓적한 등에다

아이들 업고

 

바짓가랑이 적셔가며

건너다 주고

 

황소 웃음 웃으며

손 흔들어 보이는

 

시멘트 다리보다 더 실한

우리 용칠이.

 

이렇게 용칠이에 대한 시는 나의 일기장을 매워 나갔다. 내가 서울로 전학을 오기까지 내 일기장엔 모두 열아홉 편의 그에 대한 시가 들어있었다. 이제 겨우 네 편의 시만 밝혔지만 기회가 되면 내 일기장에 들어있는 용칠이의 이야기를 더 하고 싶다.

 

‘만날 수 있을 거야’

창문을 여니 어느새 하얀 눈이 세상을 덮어주고 있었다. 용칠이에 대한 내 그리움을 첫눈은 그렇게 덮어주고 있었다.

 

 

2014년 2월호 월간문학

 

 

 

 

 

 

 

 

 

 

 

 

 

 

 

 

 

 

김재수(金在洙)

1947.1.5일생 경북 상주에서 남. 안동교육대학을 졸업하고 방송통신대학 행정학과를 나옴. 1973년 제1회 창주아동문학상으로 등단

1980년 제12회 한정동 아동문학상 받음

1988년 제5회 상주시 문화상(예술부문)

1993년 제1회 M.B.C 창작동화 입선(동화, 철조망이 피운 꽃)

1996년 제16회 해강아동문학상 받음(동시, 농부와 풀꽃)

2010년 경상북도문학상 받음(한국문인협회경상북도지회)

1974년 낙서가 있는 골목(동시집, 대학출판사)

1978년 겨울 일기장(동시집, 학사원)

1995년 농부와 풀꽃(동시집, 미리네)

1992년 사랑이 꽃피는 언덕(동화집, 효성사)

1996년 하느님의 나들이(동화집, 도서출판 대길)

2008년 트임과 터짐(산문집, 시와에세이)

한국문인협회 상주지부장 역임

경북문협 부지회장

상주아동문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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