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쥐의 선물
김재수
“와 더디어 이를 뽑았다!”
민지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꽃처럼 달립니다.
이마에는 제 딴에는 애를 썼는지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 있습니다.
엄마 손에는 민지의 앞니 하나가 실에 매달린 채 놓여있습니다.
“엄마, 정말 생쥐가 선물 주는 거지? 오빠 말이 맞지?”
민지는 엄마에게 다짐을 합니다.
“글쎄, 오빠가 한 말이 맞겠지? 그건 그렇고 우리 민지 대단해”
엄마는 빙그레 웃었습니다.
언제 부터인지 민지의 얼굴이 아주 큰 걱정꺼리가 있는 듯 보였습니다.
엄마는 민지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꾹 참았습니다.
“엄마. 나 어떡해?”
“왜 무슨 걱정이라도 있니?”
“앞니가 흔들려. 어떡해?”
민지는 금방 울 쌍이 되었습니다.
“호호, 그럼 우리 민지 이빨을 뽑아야 되겠네. 그런데 어떡하지? 앞니 빠진 갈가지 뒷도랑에 가지 말아 붕어 새끼 놀랜다.”
엄마는 민지의 빨간 볼을 살짝 꼬집으면서 놀렸습니다.
‘이를 뽑으면 얼마나 아플까...’
민지는 엄마가 놀리는 것 보다 이를 뽑는 일이 더 걱정입니다.
“민지야 걱정 마. 이 뽑는 거 하나도 안 아프단다. 오빠도 너 만할 때 여러 번 뽑았거던.”
학교에 가려고 가방을 메던 오빠가 민지 마음을 안심시켜 줍니다.
“그리고 말이야, 생쥐란 놈이 꼬마들 이빨을 무지 좋아 해. 그래서 이를 뽑아 베게 밑에 감추어 두면 이빨을 몰래 가져가면서 선물도 주고 간다.”
“정말?”
선물이라는 말에 민지의 얼굴이 금방 펴집니다.
“나도 이를 뽑을 때마다 생쥐가 주는 선물을 꼭 받았어. 어쩌면 민지도 받을지 몰라”
가방을 챙겨 맨 오빠는 씽긋 웃고는 현관문을 밀고 나갔습니다.
민지는 오빠가 한 말이 정말이다 싶어 겁이 났지만 아침을 먹은 후 엄마에게 이를 뽑아 달라고 졸랐습니다.
“아직 좀 더 있어야 해. 엄마가 보기에는 아주 많이 흔들려야 뽑을 때 아프지 안 아.”
엄마는 아침부터 밀린 빨래랑 부엌 청소랑 하느라 바빴습니다.
“엄마, 나 이제는 뽑아도 될 것 같아요. 이가 많이 흔들려요.”
한나절이 훨씬 지나자 민지가 입을 벌리며 엄마에게 말을 합니다. 이가 많이 흔들려야 뽑을 수 있다는 엄마 말에 민지는 종일 돌아다니며 일부러 앞니를 손가락으로 흔들었던 모양입니다.
“엄마, 민지 이 뽑았어요?”
학교에서 돌아 온 오빠가 민지 몰래 엄마에게 묻습니다.
“응, 민지 고것 대단하지? 한나절 이를 흔들며 다녔는지 오후에 쉽게 빠졌단다.”
엄마의 말에 오빠도 ‘씩-’하고 웃었습니다.
“오빠, 나 앞니 뽑았다. 여기 봐.”
놀이터에서 놀다 온 민지가 오빠를 보자마자 마치 자랑이나 하듯 잇몸을 쑥 내밀어 보입니다.
“와, 우리 민지 대단하네. 아파서 울지 않았어?”
오빠가 민지를 추겨 세웁니다.
“응. 하나도 아프지 않았어. 오빠, 생쥐가 정말 선물을 가져다줄까?”
“글쎄, 나는 선물을 받았지만 민지 이빨은 생쥐가 좋아할지 모르겠네.”
“그런 게 어디 있어? 오빠가 거짓말 한 건 아니지?”
“글쎄, 오늘 밤 자고 나야 알지. 나도 잘 몰라. 그런데 민지야. 생쥐가 어떤 선물을 주었으면 좋겠니?”
“응. 내가 제일 좋아하는 미미 인형을 받았으면 하는데 생쥐가 내 마음을 알는지 몰라”
오빠는 씽긋이 웃고는 숙제해야 한다며 얼른 방으로 들어갑니다.
“생쥐도 깨끗한 이빨을 좋아할 거야. 깨끗이 씻어서 베게 밑에 넣어 둬야지”
민지는 빠진 제 앞니를 세면대에 물을 받아 깨끗하게 씻더니 베개 밑에 넣었습니다.
다른 날 같으면 엄마가 빨리 자라고 재촉을 해도 자지 않고 텔레비전을 보며 말썽을 피우는데 오늘은 달랐습니다. 일찍 손발을 깨끗하게 씻더니 베개를 들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베게 밑에는 잘 씻어 둔 앞니 하나를 예쁜 종이에 싸서 숨겼습니다. 그리고는 마음속으로 빌었습니다.
“선물이 좋긴 한가봐. 저 말썽꾸러기가 일찍 잠든 걸 보니...”
민지가 잠든 걸 본 오빠는 귀여운 동생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조용히 문을 닫고 나옵니다.
이튿날 아침 민지는 훨씬 일찍 눈을 떴습니다. 그리곤 얼른 베게 밑에 손을 넣었습니다. 거기엔 있어야 할 이를 싼 종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어, 정말 생쥐가 다녀갔나 봐’
아직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벌떡 일어나 이리저리 살피던 민지의 눈에 예쁜 미미 인형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엄마, 생쥐가 다녀갔나 봐요. 와, 내가 좋아하는 미미인형을 두고 갔어요.”
민지는 신이 나서 미미인형을 끌어안고 부엌에서 아침 준비를 하는 엄마에게 달려갑니다.
“와, 정말이네. 우리 민지 이빨을 생쥐가 좋아했나 봐. 그러니까 예쁜 선물도 주고 갔지. 우리 민지 좋겠다.”
엄마도 민지만큼 환한 웃을 웃으며 기뻐합니다.
“오빠. 생쥐가 정말 선물주고 갔다”
“정말? 역시 생쥐는 아이들의 이빨을 좋아하나 보네.”
오빠도 민지만큼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와, 우리 민지 신나겠다. 민지 앞니가 아직 여러 개 있으니 한 개씩 빠질 때마다 선물을 준다면 많이 받겠네”
아빠도 신문을 읽어 시다가 민지를 돌아보며 빙그레 웃으십니다.
모처럼 아침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들은 앞니가 빠져도 신이 난 민지 때문에 환하게 웃었습니다.
민지는 앞니가 빠질 때마다 받는 선물이 신이 났습니다. 그 때마다 생쥐는 용하게도 민지가 원하는 선물을 주고 대신 이빨을 가져갔습니다.
‘난 여자 애지만 사내아이들이 좋아하는 쌍절곤도 달래면 줄까’
오빠에게만 넌지시 말했는데 어떻게 생쥐가 알았는지 정말 쌍절곤을 선물로 주고 갈 때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쌍절곤을 가지고 놀이터에 나가자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남자 친구를 만났습니다.
“여자 애가 무슨 쌍절곤이니?”
“응. 이건 말이야, 생쥐가 내 이빨을 가져가고 나에게 준 선물이야.”
“생쥐가 이빨을 가져가고 준 선물이라고?”
별 일도 다 있다며 그 아이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했습니다. 민지는 앞니가 하나씩 빠질 때마다 생쥐에게 받은 선물들을 아주 신나게 자랑을 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뽑아야 할 이가 이거야. 마지막으로 ‘병원놀이’를 선물로 받았으면 좋겠어.”
“그런 엉터리가 어디 있니? 생쥐가 이빨을 가져가고 선물을 주다니. 거짓말이야”
어이없다는 듯 사내아이는 민지를 바보라고 놀렸지만 그 아이 앞에서 민지는 마지막 뽑아야 할 앞니 하나를 손가락으로 신나게 흔들어 보이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민지의 마지막 앞니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오빠는 민지의 이빨이 흔들릴 때마다 걱정이 앞섭니다. 왜냐 구요? 민지의 선물을 사기위해 오빠의 용돈은 자꾸만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몇 번이나 사실대로 말 할까 생각했지만 천사처럼 귀엽고 순진한 어린 동생이 실망할까봐 말하지 못하곤 했습니다.
‘그래, 이번이 마지막이야. 민지 앞니도 이제 다 갈았으니...’
“엄마, 이빨이 흔들려요. 빼 주세요”
더디어 민지의 마지막 앞니가 빠지는 날입니다. 오빠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엄마와 의논해서 ‘병원놀이’ 장난감을 사다가 예쁘게 포장을 해 뒀습니다.
여느 때처럼 민지는 일찍 잠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뽑은 이빨을 예쁜 봉투에 담아 베게 밑에 넣고 말입니다. 오늘따라 잠이 든 동생이 더 귀엽습니다. 오빠는 민지가 잠에서 깨기 전에 머리맡에 선물을 가져다 놓고는 조심스럽게 베개 밑에 숨겨 둔 봉투를 꺼냈습니다. 그리곤 이빨을 꺼내려고 봉투를 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이빨과 함께 나온 작은 종이에는 삐뚤삐뚤한 글씨로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생쥐 오빠 고마워. 좋은 선물을 주어서. 오빠 사랑해”
오빠는 천사처럼 잠든 민지를 오래 오래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