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문화/상주문화 23호

바람 속에 바람처럼 살다간 바람의 시인 해명(海蓂) 김완 론(論)

빛마당 2014. 2. 24. 16:55

상주의 시인들 ④

바람 속에 바람처럼 살다간 바람의 시인

해명(海蓂) 김완 론(論)

박 찬 선

목 차

해명(海蓂) 김완101

바람의 의미103

자아(自我), 그리고 덧없음106

바람의 집으로 가고 싶다.112

그대에게 부는 사랑의 바람소리118

상주의 시인들 ④

치유(治癒)와 구원(救援)의 잠언적 시

이창화 시인의 시세계

박 찬 선

 근년에 상주에서 출생하여 상주에서 문학 활동을 했거나, 타지에서 출생하여 상주에 와서 문학 활동을 하다가 작고한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김구용, 이대희, 이계명, 이창화, 윤용화, 이무일, 김경자, 박정구, 이상달이 유명을 달리한 사람들이다. 이 분들에 대한 문학적 업적의 평가와 정리는 산 사람의 몫이다. 필자는 ‘상주의 시인들’이라는 표제 아래 일련의 작업을 계속 진행 중이다. 한국문단에 기여한 빛나는 업적도 중요하지만 우리 지역에서 소박하게 작품 활동을 한 것도 그만 못지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자료 미비와 필자의 안식이 일천하여 오히려 작가에게 누를 끼치는 일이 되지 않을까 저어했지만 지금 이때에 남기지 않으면 망각의 늪에 빠져서 아주 잊어버리게 될 것 같아 서두르게 되었다.

사람은 생시에는 함께하면서 별로 의식치 않다가 떠나고 나면 생각나는 것이 인지상정인가 보다. 자리가 비었을 때에 문득 생각나는 사람, 김완이 그런 사람이다.

해명(海蓂) 김완

“해명(海蓂) 김완은 1964년 경북 상주 출생. 바람으로 흐르다…2004년 1월 미명(未明)에 바람으로 흩어지다. 이 시집은 그 바람의 편린들이다”.

2004년 3월 10일 도서출판 나그네에서 발행한『마치 거짓말 같이』추모시집의 지은이 소개 일부이다. 불혹의 나이,한창 인생도 작품도 무르익어 왕성하게 빚을 때에 세상을 떠났으니 안타까움을 더해준다.

시집의 뒤쪽에는 “지금은 다다를 수 없는 피안(彼岸)의 세계로 먼저 떠난 님을 그리며 우리 마음을 모아 이 책을 엮었습니다”라고 김시인의 문우들이 적었다.

김시인은 생전에 사랑의 문자 메시지『그대에게 부는 바람소리』와『마치 거짓말 같이』(원본)가 있는데 두 시집을 펴낸 곳이 모두 아이 올리브(i Olive)이고 발행날짜가 2003년 9월 17일로 되어 있다. 그런데 같은 이름의 시집 2004년 3월에 낸『마치 거짓말 같이』는 앞서 2003년 9월에 낸 같은 이름의 시집에서 가려서 낸 선시집인 셈이다

해명은 어머니의 빼어난 생활력과 아버지의 사업(방앗간과 택시회사 운영)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했다. 상주초등학교 다닐 때는 어린이 회장을 맡을 정도로 활달하고 모범적 이었으며,그 뒤 상주중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 어머니의 교육열이 뜨겁게 이어졌다. 사춘기, 부모의 기대와 넘치는 사랑에 오히려 반발심이 일어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준비하기도 했다. 학원에 다니다가 만난 여학생을 짝사랑하며 가슴앓이를 오랫동안 하기도 했다. 80년대 중후반 친구인 김봉기(건국대 충주캠퍼스에 근무할 때 찾아옴. 현 판화가)가 심리적 안정과 극렬한 정서 표출을 위해서 시 공부를 권했는데, 첫 작품이「눈 먼 내 사랑」이었다. 한 때는 절에 들어가 공부하면서 한문도 익혔는데 자연스럽게 불교의 핵심인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의 참선을 통한 깨달음에 접했다. 자기 본성을 밝혀볼 때에 본래의 면목이 나타나서 마음 밖에 부처가 없고 자기 마음이 곧 부처임을 아는 마음공부에 매료되기도 했다. 하지만 뒤에 명문(名聞)과 이양(利養)의 명리학에 관심이 있어서 대전(계룡산)에 들락거리며 1년 넘게 공부를 했다. 이후 가까운 사람들의 사주풀이도 곧잘 해줬다니 공부에 무게가 실렸음을 알게 한다.

왕산 앞 2층(철거됨)에서 북카페 ‘드렁크’를 운영했으나 처음부터 영리를 계산한 것이 아니어서 이냥 문을 닫았다.(필자도 방문하여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이 때 독서삼매(讀書三昧)에 빠져들면서 다독과 함께 사색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북카페를 그만둘 때는 많은 장서를 정리하여 도서관에 기증하였다. 그 중에 불교에 관한 책은 외우(畏友) 김봉기에게 넘겨 주었다,이후 일정한 직업 없이 불규칙한 생활로 방황하기도 했다. 막노동판에 나가 일을 해서 하루 노임(5-7만원 정도)을 받으면 밤이 이슥토록 혼자 술을 마시며 사고하기를 즐겼다. 아마도 정신적 자적(自適)에 탐닉(耽溺)한 것이 아니면 비정한 세상에 비관을 한 것이 아닐런지. 이런 불규칙하고 불안정한 생활이 거듭 됨으로써 발병(간암)의 원인이 되고 앞당겨 바람으로 가게 되었으니 안타까울 수밖에…

두 권의 시집을 한꺼번에 낸 뒤 백 여일 뒤에 유명을 달리했으니 이 어인 일인가? 시집을 낸 뿌듯한 기쁨도 채 가시지 않았는데 운명의 신과 시의 여신이 시샘을 하여 서둘러 찾아온 것인가?

떠나기 4일전 친우인 김봉기와 담배를 나눠 피우며 예감이라도 한 듯이 마지막 남긴 “나 없어도 울지 마”라던 천진한 말이 자꾸만 가슴을 친다. 생전의 삶이 그가 추구한 유현(幽玄)한 정신세계와는 달리 요란스럽게 살았다는데(내면의 고뇌를 극복하기 위해서) 마지막 가는 날도 진눈깨비가 퍼붓고 어지러웠단다.

바람의 의미

해명이 남긴 두 권의 시집에는『그대에게 부는 바람소리』에서부터 바람이 유독 많이 나온다. 원본『마치 거짓말 같이』에 실린 88편의 작품 제목 아래 지은이 란에는 아예 바람이라고 작품마다 꼬박꼬박 적어두고 있다. 시집의 첫 작품부터 제목「가을눈물」아래 다음 줄에 바람이라고 표기했는데 그에게 있어서 바람은 무엇인가? 바람 속에 바람으로 살다간 바람의 시인이라고 했을 때 바람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바로 바람은 김완이다. 김완은 바람이다. 마치 자연, 감정, 개인주의를 고양시킨 질풍노도(疾風怒濤) 같은.

정, 연, 하, 질, 강, 열, 구 이것은 초등학교 때 배운 바람의 종류다. 바람의 세기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눠짐을 알았다.

바람의 15세기 표기는 風이다. 어근 에 접미사 -이 붙었다. 불다(吹)의 불은 과 어원이 같다. ‘불-’의 어원은 소리(聲,音)의 뜻을 지녔다. 노래 부르다(唱),사람을 부르다(呼)의 어근 ‘불-’이 소리의 뜻을 지녔다. 옛사람들은 바람을 청각적 소리로 인식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신화에서 바람은 우주의 구성을 동적으로 관찰함으로써 하늘과 우주의 숨과 기운을 상징한다. 단군신화에서 환인이 환웅에게 대동케 한 우사(雨師),운사(雲師),풍백(風伯)을 내세운 것도 우주론적 상징성을 상기시킨다. 특히 우주의 섭리를 관장하는 풍백을 앞세운 것이다.

그리고 자연지리를 의미하는 풍수(風水)에서 바람은 자연의 기운을 상징한다. 자연의 운세가 인간의 운세에까지 미친다고 생각한 것이다. 우순풍조(雨順風調)란 말에서 비와 바람이 삶의 순조로움을 가늠케도 했다.

일상생활에서 바람은 행동이나 사건의 동기로 삶의 약동성과 그에 관련된 환희(신바람)와 에로티시즘(바람 피우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쓰였음을 보여준다.

문학에서 바람은 무상,시련,재생,가변성(可變性)을 나타낸다. 가령 월명사가「제망매가」에서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여기저기 떨어지는 잎처럼/한 가지에 나고서/가는 곳 모르는구나”에서는 불교적 무상을 상징한다.

풍상(風霜),풍파(風波),설한풍(雪寒風),풍표표(風瓢瓢)등은 삶의 기욺, 생명력의 퇴락(頹落), 간난신고(艱難辛苦)와 시련을 상징한다.

바람이 집이 없으되, 어이 그리 잘 부는고/절개는 고죽청풍(孤竹淸風)이요, 의기는 흑선풍(黑旋風)이요 덕택(德澤)은 제순남훈풍(帝舜南薰風)이요, 예의는 부자유풍(夫子遺風)이로다/아마도 수다(風中)에 측량하기 어려울 손 동짓달 갑자일(甲子日)에 동남풍인가 하노라.

김수장의 사설시조는 자연, 인간, 문화에 걸친 바람의 가변성을 보여주고 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 했다…/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윤동주「서시」)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윤동주「자화상」)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또 다른 고향」)윤동주의 바람은 ‘하늘의 소리’ ‘신의 계시’ ‘계절의 섭리’등의 상징과 철저한 자기반성의 준거를 보여 준다. 그가 살았던 시대의 암울한 그림자를 느끼게 한다. 바람은 힘없이 몰려가는 처절한 현실이자 출발점이기도 한 자기응시(自己凝視)의 시작이다.

사벌면 매호리(매호별곡의 현장)이제 조우인 문학비가 세워진 곳에서 퇴강쪽으로 돌아서는 강변에는 어풍대御風臺라는 표석이 세워져 있다. ‘바람을 타고 공중을 난다’는 조망이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는 외세의 바람을 제어하는 상징적 의미도 들어있음은 물론이다.

동녘 바람에/ 풀잎이 날리지만/ 날리는 것은 바람이다.//(필자「東學」일부)에서 바람은 풀잎이 날리는 동인(動因)이자 날리는 주체이기도 하다.

그리스 신화에서 바람의 신 아이올루스(Aeolus) 또는 히포타테서(Hippotades)는 말(馬)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정지용의 시「향수」에 ‘밤바람소리 말을 달리고’에서도 나타난다. 밤바람은 말처럼 날쌔고 민첩하기 때문이리라.

이러한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바람은 바람 본연의 의미 외에 작자의 의도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했음을 알겠다. 바람의 상징은 바람처럼 변용의 가변성(可變性)을 지녔다는 데에 그 특성이 있다.

자아(自我),그리고 덧없음

몇 꺼풀의 영혼을 지녔는지,나는 나를 잘 몰라

사람들도 나를 잘 모르지,내 안에 웅성대는 바람소리가

노래인지,울음인지 그래 내가 나를 잘 안다 확신해도,

사람들이 나에게 분명하다해도

맞는 말인지 틀린 모습인지 알 수가 없어

그건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것과 같아,멀고

먼 어느 날 볕에서 날아왔는지 신의 옆구리를 벗어났는지

아니면

작은 한 점의 어둠이나 빛에서 시작되었는지 궁금할 뿐이야

우리는 온 곳을 모르면서 갈 곳은 환한 듯

뛰어가고 있잖아 두고 온 것들도 모르면서

사랑도 마찬가지야 뜨거운 입술을 그대의 겉비닐에 부비면서도

어쩔 줄 몰라하지 그대를 사랑하는지 안으로

들어서고 싶은지 사랑하는 척 맴돌고만 있는지 알 수가 없어

혹은 몇 백 광년의 착각을 믿고 싶은 맘인지도 몰라

그래도 사랑을 믿는 힘으로 살아내기도 하잖아

마치 거짓말 같이

-「마치 거짓말 같이」 전문

한 마디로 존재에 대한 물음이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선문답의 화두 같은 이 물음은 누구나 가지는 본연적인 물음이다. 마치 철학이 존재에 대한 물음으로 한결같이 이어져 왔듯이 내가 나를 모르는데 어찌 다른 사람이 나를 알 리 있겠는가? ‘내 안에 웅성대는 바람소리가 기쁨의 노래인지, 슬픔의 울음인지’ 분간할 수 없다손 치더라도 그건 분명 살아있음의 증좌가 아닌가? 본연의 나, 실존에 대한 물음이 아닌가?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달마(Bodhi Dharma)로부터 혜가(慧可)가 법을 받으면서 마음으로써 마음을 찾으며 구해보았지만 결국은 마음을 얻을 수가 없었다(心不可得)는 것이다. 마음을 떠나서 자기에 대한 자각도 있을 수 없고 주위의 사물에 대한 인식도 있을 수 없다. 오직 마음을 명백하게 하면 자기도 주위의 사물도 명백하게 된다. 그런데 마음은 불가득이라니 그것은 ①마음은 대상을 아는 역할을 하는 자신이기 때문에 대상화할 수 없다. ②대상화된 것은 벌써 마음 그자체가 아니며 ‘마음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식(唯識)에서는 대상을 소연(所緣),그것을 보며 아는 면을 능연(能緣)이라고 말하지만 마음은 어디까지나 능연 그 자체이기 때문에 소연으로서 저쪽에 놓여지는 순간에 능연 그 자체의 마음은 없어진다. 사실 마음은 능연만이 마음인 것은 아니며 소연도 또한 마음이 나타난 것이며 능연 소연 전체가 마음이다라는 것이 유식의 큰 줄기이다

별, 신의 옆구리,한 줌 어둠이나 빛,이런 것은 소연으로서 대상에 불과한 것이다. ‘온 곳을 모르면서 갈 곳은 환한 듯 뛰어가고 있는’ 어쩌면 우리네 삶은 속고 속으면서 사는 거짓말의 연속 아닌가? 마치 부나비가 불(몸을 겉비닐로 비유)로 날아들듯이. 그러면서 사랑을 하면서 사랑의 착각을 믿고 싶은 마음으로,사랑을 믿는 힘으로 살아낸다는 배리(背理)의 구조를 보여준다. 마치 거짓말 같이.

임제록을 따라 읽는다

숲 속에 들어 숲 전부를 보아야할 때다

소중할수록 움켜지는 손가락이 더욱

제 발목을 잡는다

‘부처를 죽여라 부모를 죽여라’

바람처럼 안겨드는 호령소리

질퍽한 머리 속에 순간 플레시가 터지고

눈앞은 더욱 캄캄해진다

깜박이는 활자의 징검다리에 기대어

내 마음의 먼 강을 어떻게 건널까?

나를 만나면

나를 죽일 수 있을까?

내 앞에 무릎 꿇고 큰 절 올린다

다시 죽인다

-「임제록을 읽으며」전문

임제(臨濟)는 서기 845년에서 847년 사이, 중국불교의 대대적인 수난기에 태어났다. 주로 진주(鎭州. 하북성河北省 정정正定)의 임제원(臨濟院)에 머물러서 임제라 부르게 되었다. 법명은 의현(義玄), 조주(曹州) 남화(南華. 산동성山東省 연주부兗州府)출신으로 속성은 사(邪)씨다. 출가,출가동기,스승도 일체가 드러난 것이 없다. 어록에는 처음에 율(律)을 익혔다고 나온다. 경전에 밝았다고 나오는데 법화졍, 화엄경, 유마경, 능엄경등이다. 임제는 황벽(黃檗)을 만나서 비로소 당대(唐代) 선종의 개조(開祖)로 가장 빛나는 별이 되었다. 임제록은 그의 오도(悟道)의 기록이다. 임제의 선풍은 수행자에게 신랄했고 행동적이며 현재적이었다. 임제록은 그의 언행을 제자들이 엮은 책이름이다.

숲은 숲 밖에서 보면 쉽게 보이지만 숲 안에서 보면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숲 안에 들어 숲 전체를 보아야’ 하는 일은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하는 일과 같다. 정면 승부를 하는 일이다. 하나의 문제가 있다면 문제의 핵심과 본론에 들어가서 전체 문제를 이해하는 일이다. 세상에 만유(萬有)한 불성(佛性)의 세계에서 머물 것이 아니라 내면의 불성 즉 자성(自性)을 봄으로써 전체의 불성을 보는 일이다. 이어서 ‘부처를 죽이고 부모를 죽이는 일’은 실체가 아닌 허상의 죽임을 이름이다. 허공처럼 허상일 뿐이다. 그 허상을 부셔버리는 일,집착이 현재의 삶을 가릴 때 끊어버리는 일, 그렇게 함으로써 진면목이 나타나는 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형상이 없는 것이 부처의 법인(法印Dharma-mudra). 교법의 표치(標幟)이며 본래 마음이다. 그래서 나아가 가상의 나를 죽임으로써 ‘무릎 꿇고 큰 절 올릴’수도 있는 것이다.

해명의 나에 대한 물음과 나를 죽이는 일은 그가 세상살이를 파악하는 바탕이 되고 있다. 본래적인 자아의 탐구에 몰입한 뒤에 오는 덧없음은 허공에 세운 빈집처럼 허무,허탈에 빠지게 한다. 이 세상에 살면서 영위하는 모든 일들이 무상하고 이 세상 존재한 모든 진리에 무아의 경지를 실감한 결과이다.‘내 마음의 강을 어떻게 건널까?’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는,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으로 가는 내가 기댄 ‘깜박이는 활자의 징검다리’는 진리의 게시(揭示)에 다름 아니다. 나를 죽여야만 강을 건널 수 있기 때문이다. 해명의 현실인식은 불교적 허무 즉 무상(無常)에 있다.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도 어디론가 가고 있는 것이다

가는 곳을,

마침내 모르는 것이다.

분명 내안에 있는데

내 것이 아닌

그리움

나는 늘

손가락 끝을 서성이며 어디론가

떠난다

나를 찾아

내 안으로 떠나는

셀 수없는 향기들 속으로

-「절망」 전문

삶의 주체는 나다.그런데 내가 가고 싶은 데도 가지 못하는 무엇인가에 얽매인 포박(捕縛)당한 나.정작 가고 싶은 곳이 아닌 엉뚱한 곳으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고 있다.방황과 좌절 속에 가는 곳이 어딘 줄도 모르면서 가고 있는 나.정작 나를 가게 하는 주인은 누구인가? 내안에 있는 것은 분명한데 그것을 감지하고 붙잡지 못하고 있다.

선문답에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은 왜보나?’라는 비유가 있다. 달은 부처의 경지나 깨달음을 나타낸 것이요, 손가락은 깨침의 방법에 대한 설명이나 가르침을 나타낸 것이다. 달만 보면 되는데 손가락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꾸짖은 것이다. ‘나는 늘/ 손가락 끝을 서성이다가’는 변두리 외곽에서 방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눈에 보이는 현상에 집착하다가 참 나를 찾아 떠나는 내 안의 길.그것은 자각의 길이자 나를 아는 길로서 깨침의 길이다.가려고 하는 의욕은 있는데 가지 못하는 데에 해명의 절망이 있다. 해명의 절망은 깨달음의 길로 가지 못하는 주체적 자각과 행위의 결여에서 오는 절망이다.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자의(自意)가 아닌 타의(他意)에 따라 가고 있는 나. ‘나를 찾아/ 내 안으로 떠나는’ 길은 참의 길이자 구도의 길이다.

수평저울에 나를 올린다

저울 저 편에 함부로 뛰어드는 여러 이름들

점점 가벼워진다 나는.

점점 무거워진다 나는,

저울의 중심은 내가 아니구나

나는 내가 아니구나

모두 쓸어 내려라

우리가 만드는 무게가

우리를 누른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견딜 수 없는 무게가 된다

세상을 다 담고도 움직이지 않는 저울

깃털하나 작은 눈짓에도 대답하는 저울

스스로 저울이 되어

바늘도 눈금도 지워버린 저울

드디어 풀어놓은 무게가 되어 흘러가는 저울

쓸모 없는 저울 그래도

자꾸 달아보려는

불안한 내 손

내 눈빛

-「저울」 2,34,5연

해명의 수평저울은 마음의 저울이다. ‘함부로 뛰어드는 여러 이름들’ 상대가 되는 대상 곧 대자(對自)로 하여 즉자(卽自)인 나의 무게는 달라진다. 밀렌 쿤데라(Milan Kundera)의 대표작「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슬픔은 형식이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라는 주인공 테레사와 토마스의 사랑에 대한 마지막 구절은 삶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넘어선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결코 가볍지 않은 사랑이야기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문제는 간단하다. 그러나 우리가 만드는 삶의 무게가 우리를 누르고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 지지 않는 꽃이 되는 것이 아니라 ‘견딜 수 없는 무게’가 되는데 문제가 있다. 해명의 자아탐구는 집요하다.나는 저울의 중심도 아니다.내 존재의 무게는 진위(眞僞)에 따라서 가벼워지기도 하고 무거워지기도 한다.나아가 나는 내가 아니구나 하고 저울의 무대 위에서 쓸어내리라고 한다. 그것은 자기방기(自己放棄)다. 서로에게 견딜 수 없는 부담과 고통이 되는 삶은 큰 세상을 담고도 움직이지 않는가하면 가벼운 깃털 작은 눈짓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저울이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삶의 방식이자 도덕률인 바늘도 눈금도 지워버린 쓸모없는 저울로 바뀐 것이다.이렇게 존재에 대한 비극적 인식은 상실의 아픔과 불안만을 가중시키고 있을 뿐이다.우리는 근원적 상황인 불안에 빠지고 죽음에 이른다. 불안에서 탈출이 삶의 길이다.

바람의 집으로 가고 싶다.

나의 영혼이 늘/바람으로 이루어졌길 바랬다// 바람은 내게/자유와 허무 그리고 사랑의 상징이였다// 아득한 구도의 암시였다//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 바람/멈추면,/ 이미 바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휘몰아가는 바람의 영혼 속에 자리 잡은/살아있는 허공,바로/바람의 집이다//바람의 집으로 가고 싶다

시집『마치 거짓말 같이』책머리에 적은 말이다.바람이 상징하고 있는 것은 자유,허무,사랑임을 밝히고 있다.바람은 이르지 않는 곳이 없는 자유의 성질을 지녔다. 바람은 일정한 방향으로 부는 집념의 사랑을 지녔으며 바람의 자유와 사랑은 낭만적이다. 멈추지 않는 바람이 진실 된 바람이다. ‘살아있는 허공’이 ‘바람의 집’이다. 바람의 집은 실체가 보이지 않는 텅 빈 공간이다. 무(無)의 존재, 허무이다.

해명의 현실인식은 비극적이라고 했다. 주체적 판단에 의해서 내 주관대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끌려가고 있다.나를 알기위한 자각에 관심을 가지지만 절망의 늪에 빠지고 만다.여기에서 체득된 것이 바람이다.실체가 없는 바람이 자기의 상징으로서 선택된 공(空)의 세계다. 공은 물건이 없는 곳으로서 공간, 공허, 공무(空無)를 말한다. 그리고 유(有)가 아닌, 실체가 없는, 자성(自性)이 없는 것이다. 집착을 버리고 외부사태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경지를 진여(眞如)라고 한다. 그것은 색과 공을 초월한 세계로서 해명이 꿈꾸는 이상적 세계일 것이다.

돌멩이들

쏟아져 내린 산길을 걸으며

자꾸만 빈 손바닥 들여다 본다

맑은 햇살 한 줌

담아볼 그릇이 내겐 없다

바람 한 줄기 저 출렁이는 힘을 묶을

한 가닥 끈이 내겐 없다

아무도 가져갈 수 없는 이 풍경 앞에서

자꾸만 급해지는 나를

철사줄 같은 햇살이 묶는다

거미줄 같은 바람이 또 덮친다

칭칭 온몸이 감긴 고치들

산길로 쏟아진다.

-「산길에 갇히다」전문

섬세하다.민감하다.‘맑은 햇살 한 줌 담아볼 그릇’이 없고 ‘바람 한 줄기 저 출렁이는 힘을 묶을’ 끈이 없는 나의 무소유가 순진하다.세상살이에는 욕망을 끌어 담을 그릇도 필요하고 성난 바람도 묶어둘 끈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이를 헤쳐 갈 단단한 담력도 두둑한 배짱도 있어야 한다.분명히 아무도 가져갈 수 없는 풍경임을 알면서도 그 앞에서 초조해지는 나는 참 순수하고 과민하다.‘자꾸만 급해지는’ 것은 때 묻지 않은 풍경을 누릴 준비와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철사줄 같은 햇살’ ‘거미줄 같은 바람’의 생생한 비유의 세계에 묶이고 덮치는 것은 애써 바라는 일이 아니던가.

풍경은 위에서 언급한 공의 세계가 현현(顯現)한 것으로 나타남이다. 풍경을 누리려면 열려있어야 한다.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칭칭 온몸이 감긴 고치는 해명 자신이다.산길에 갇힌 존재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바람 속을 걸으면

바람이 된다

나지막이 제비꽃 향기 맴돌던 바람

출렁,일어나

백두대간 다 흔들며

이리로 온다

거침없이 날아와

코 속으로 바람이 빨려들고

내 혼이 스르르 풀려나간다

비워진다

바람 속으로

바람 속으로

여기도 길일까

험한 가장자리 넘어서고 넘어

살아있는 고요

거기로 간다

다시

바람의 끝으로 가고 싶다 -「바람 속으로」 전문

바람은 우리들의 생존의 장이다.백두대간을 흔들며 오는 역사의 줄기이다.내 혼을 스르르 풀려나가게 하는 주재자이다.폭풍이 지나고 난 뒤의 고요,그 은밀한 시간으로 우리는 돌아간다.고요는 적멸(寂滅)이다. 적멸은 열반의 번역이다. 생사(生死)의 인과(因果)를 멸(滅)하여 다시 혼미(昏迷)한 상태를 계속하지 않는 적정한 경계를 이름이다. 그래서 ‘살아있는 고요’가 되며 ‘거기로 간다’고 한 것이다. ‘바람의 끝’은 끝이 아니라 바람의 시작이다. 바람의 길이 거기 있다. 한 조각 구름이 피었다가 사라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라 하지 않던가.바람의 끝으로 가고 싶음은 그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을 뜻하는 것이다.

발 디딜 수 없는 곳,

그대 마음의 바닥에 삽질을 하네

부스러지기 쉬운 모래흙

엉겨 붙는 뻘흙이건 소식 듣지 못하고

그대의 밑바닥 자꾸 두들기며 찾네

어지러워라 가슴 메이는 시멘트 분말

눈물에 녹슨 철근 따위 던져 넣고 비벼 넣지

흔들리면 안돼,가벼운 인사도 말아 줘

완강하게 바닥에 누워,그대 바닥이 될 거야

박하사탕 입에 물고 종일 흥얼거리네

유리병 알사탕들 쪼르르 잘도 굴러

아하 그대 사랑 허공을 구르는 알사탕 같은 게지

빈 상자를 걷는 별들 내가 디딘 땅바닥

모두 공중에 둥둥 두둥실,내가 믿은 바닥이란 말이지

여긴 어디야 왜 흔들리지 별인가 지구야 그대 사랑인가 허공이야

허공에 빈 집 한 채

그대 사랑인거야 내 울음인 거야

-「허공에 집을 짓다」 전문

실체가 없는 ‘허공에 빈 집 한 채’는 사랑의 집이다.마음 바닥에 삽질을 하고 바닥의 상태를 확인치도 않고 일방적으로 거기에다가 시멘트 분말과 눈물에 젖은 녹슨 철근을 집어넣고 다지는 작업.그 바닥에 누워 사랑하는 이의 바닥이 된단다.일방적이다.튼튼한 사랑의 집을 짓기 위한 그러면서도 사랑의 진지함을 풍자한 박하사탕 입에 물고 흥얼거리고 허공을 구르는 알사탕으로 가볍게 여긴다.경박하다.어딘가 흔들리는 별과 지구의 불안정한 영지에서 사랑이 곧 허공에 빈 집 한 채 있다.그것이 그대 사랑이고 내 울음이다.사랑과 울음이 상반된 속성의 낱말에 대한 인식은 별과 지구, 사랑과 허공으로 상반된 양상을 보이지만 사실은 사랑,허공,빈 집,울음이 모두 하나인 것이다.모든 것을 공空(허공)으로 파악한 허무의 인식은 해명의 시 전반에 걸쳐 작용하고 있다.시집의 마무리 글인「맺으며」에서 확인이 된다.

바람은 늘 나를 흥분시킨다// 바람이란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공기의 흐름이다/머물지 않는 마음의 흐름이다// 머무는 순간 바람은 소멸되고 만다.그래서/바람은 위험한 사랑일 수 있다/집착을 버린 사랑일 수 있다// 바람은 바람이 아닌 것들로 알 수 있다/떠도는 방황과 고난 그리고 슬픔을 통해/바람이 아직/불어가고 불어오고 있다는 걸 눈치 챈다// 태풍의 눈!이 말은 나를 더욱 흥분시킨다/세상의 마음을 다 겪으면서도/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고요함!이것이 태풍의 눈이다// 다시 바람은 불어오리라.

그대에게 부는 사랑의 바람소리

해명은 사랑의 시인이다. 시집『그대에게 부는 바람소리』에는 200편의 사랑의 노래가 담겨 있다.적지 않은 분량이다.얼마나 열정적인 집요한 사랑인가? 책머리에 담긴 글은 사랑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다.

늘 사랑하고 싶다.// 못 견디게 보고픈 사람이 있었다/그러나/가까이 다가갈 수도,먼 발치에서 바라볼 수도/사랑한다 말할 수도 없었다/숨이 막혔다.// 어느 날 문득/내 맘에 바람처럼 흘러가는 소리가 들렸다/그 바람소리를/40자의 문자메시지로 옮겨/그대에게 보내고 싶었다.// 내 사랑이/그대에게 각가지 바람이 되어/늘 그대 맘을 두들겼으면 좋겠다.

마흔 자 전후로 짜인 5행의 연시는「그대에게 부는 바람소리」1~50, 51~100, 101~150, 151~200 4부로 나눠 촘촘히 박혀 있다.5행으로 일관한 형식은 발단, 전개,절정,전환,대단원의 소설구성의 방법과 유사하다.그만큼 견고한 골격을 갖추고 있다.그런가 하면 전편 모두 제목 없이 일련번호만 붙이고 띄어쓰기를 하지 않고 붙여 써서 긴장감을 유발하고 있다. 이것은 의도적이다. 찬찬히 읽어서 행간과 전체에 담긴 뜻을 새기게 했으며 통합된 의미망을 이루도록 했다. 옥수수 알 박히듯 줄줄이 꽉 박힌 사랑의 짜 올림과 어울림, 가슴에 맺힌 절절한 한 편 한 편이 별처럼 반짝이고 있다. 전편에 흐르는 사랑은 ‘그대’에게 바치는 사랑의 헌가(獻歌)로서 독립되면서도 다양한 사연을 함축하고 있다.

『그대에게 부는 바람소리』는 간결하고 압축된 형식으로 나타낸 사랑의 팡세(단상斷想)요 아포리즘(aphorism)이다. 짧고 단편적이지만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단장(斷章 Fragmente)으로 결코 짧지 않은 사랑의 연작시(連作詩)이다.

사랑은총알같다

그대맞추지못하면방향을돌려

오히려내가슴을

뚫는다

그대는사랑의총알이다 「그대에게 부는 바람소리」1.

내영혼의가을날

또는봄날의꿈속에

그댄흰구름흘러가는하늘이다

붉게물드는

사랑의노을이다 「그대에게 부는 바람소리」83.

운명이라고생각하자

그댄내게

사랑받기위해서태어난사람이라고

난그대

사랑하려온사람이라고 「그대에게 부는 바람소리」113.

오래비에젖은사람은

따스한햇살이

가슴에퍼지길꿈꾼다

내맘의구들장에누워

그댈꿈꾸고싶다 「그대에게 부는 바람소리」200.

사랑은총알같다/…그대는사랑의총알이다(「그대에게 부는 바람소리」1), 목숨을건장난/ 그것이바로사랑이다(2),그대향한사랑은/ 들숨과날숨같아(3), 이유없는사랑(11), 뜻밖의기적그대사랑(25), (매미같이)짧지만온삶을다해우는사랑(33), 밤새국어사전을뒤적였다/ 너에게줄/ 내영혼의단한마디를찾고싶었다(40), 사랑은천둥같다(52), 내영혼에 박힌무수한탄알/ 그대사랑(89), 그대가나의심장이분명하다(94), 쫓기듯땅끝에선다…끝인듯/ 영원한내사랑(120)

존재의 이유, 삶의 근거가 되는 절대적인 사랑을 읊었다. 총알이자 천둥 같은 사랑을 내 영혼의 한 마디말로서 표현하기 위해 국어사전을 뒤적이며 고심한 사랑. 그 사랑은 목숨이자 심장이요, 숨쉬기로서 사랑이 없으면 죽은 몸이다. 그래서 못 견디게 보고 싶은 사람을 사랑하면서 사랑을 노래한 것이다. 사랑은 영원하고 전부이기에 생존을 위해서. 거기에는 이유가 없다. 영원한 사랑만 있을 뿐이다.

내사랑은바위같다(57), 드디어사랑이다…초록의끝이/ 톡톡뻗쳐오르는(90), 물은아래로/ 나무는위로자란다…모두그대향해 움직이는/사랑의힘이다(95), 정든옷/ 정든그대/ 누더기같은사랑(114), 싱싱한바다의사랑을 전하고싶다(118), 그대사랑/ 내맘도별이될것이다(123), 가을의영혼속으로떠나가자/ 별들이단풍잎이다(131), 비바람에/쓰러지지않는나무는… 땅속어딘가/ 떠나기싫은사랑이있기때문(152), 쉼없이앓고있는나무여/ 그대도사랑을하는구나(155), 가을갈대가아름답다느낀건/ 그대흰팔의솜털을보고난후다/ 바람불면/그대솜털꿈같다(168)

사물과 동일시되고 일체화 되는 사랑을 읽을 수 있다. 모든 대상이 사랑이다. 바위 같은 사랑은 초록의 생명이 자라나는 힘이 된다. 누더기 같은 사랑은 오래도록 정이든 곰삭은 사랑이다. 내 사랑이 반짝이는 별이 되고, 나무가 쓰러지지 않도록 지탱하는 힘도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그대 흰 팔의 솜털을 보고난 뒤 갈대가 아름답다고 느낀 감정. 오래 비에 젖은 사람은/ 따스한 햇살이/가슴에 퍼지길 꿈꾼다(200)는 사랑의 꿈, 사랑의 감정이입(感情移入)이 자연스럽다.

그대를통해/ 돌멩이하나작은풀꽃들이름/ 새롭게배워간다(62), 사랑은/추리소설을 읽는 것과 같다(133), 사랑은우연히오지만/ 떼어내기어려운/ 거미줄(136), 서로다른것들이만나자아내는/이화목한긴장(144), 많이아픈것은/ 많이사랑한까닭이다(174), 사랑에귀기울이면/네속눈썹에제비꽃잎스치는소리(183), 제영혼의머리칼을/ 한줌씩/ 허공에뿌리는민들레를보았다/ 사랑을다해/ 사랑한맘저리홀가분하다(196)

불가해의 신비로운 사랑이다. 사랑이 ‘추리소설을 읽는 것’ 같고, ‘화목한 긴장’이 유지되고, 영혼의 머리칼, 하얀 꽃씨를 허공에 날리는 민들레는 사랑의 마음을 표출한 것이다. 사랑을 통해 작은 돌멩이와 풀꽃이름을 배워가는 눈뜸과 열림의 자세는 사랑의 효능을 감지케 한다. 그리고 ‘사랑에 귀 기울이면 네 속눈썹에 제비꽃잎 스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음은 섬세함의 극치다. 그에게 닿으면 모두가 사랑으로 둔갑한다.

그대는나의푸른지구다(12), 바다가파도가되고/ 깊은수평선이되는건/ 그대가그립기때문이다(46), 그대사랑하는맘별이고싶다(50), 내영혼을모두빨아들인/ 사랑의블랙홀(54) 온우주감싸안는 /그런사랑이고싶다(81) 서로의가슴에둥지튼사랑(98), 온우주를/ 진공으로만든사랑(122), 그댄내게/깊은어둠속달과별이다(147), 난좁쌀같은사람/ 사랑도좁쌀만하다그러나/ 사랑아그속에전혀/ 색다른우주가/ 무변광대할수있다(157)

한없이 넓은 우주론적인 사랑이다. 지구, 바다, 별과 달, 블랙홀이 그대이거나 그리운 사랑으로 대변되었다. 인간은 소우주, 사랑이 차면 당연히 우주가 된다. 우주를 감싸 안는 사랑, 진공으로 만든 사랑, 달과 별 같은 사랑, 잘디잔 좁쌀이지만 광대무변한 우주가 든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는 사랑론. 인간애(人間愛)를 바탕으로 우주애(宇宙愛)로 확대, 확산된 만유(萬有)의 사랑을 볼 수 있다. 붉게 물드는/ 사랑의 노을(83).

이제그댄나의신앙이다(75), 운명이라고생각하자/ 그댄내게/ 사랑받기위해서태어난사람이라고(113), 나는너에게신이고싶다…그대만사랑할신이길(121), 내영혼의등불로/ 불붙는그대(128), 평생사랑을앓고그대를앓고나면/ 다음생이환할까(148), 놀라워라어둠마저/ 반짝이는빛이게하는사랑아(154), 널생각하면/ 머릿속이투명한어항같다(159), 내겐그대향한그리움이/ 내해탈의순간이다(185)

종교적 운명적인 사랑을 노래했다. 그대가 나의신앙이요,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너에게 신이고 싶은 전능한 포괄적(包括的) 사랑이 보인다. 영혼의 등불로 불붙는 사랑이자, 어둠마저 빛이게 하는 광명의 사랑이 있다. 그리고 이승의 사랑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평생 사랑을 통해 다음 생(生)이 환생하는 구원의 사랑으로 이어진다. 차안과 피안의 사랑, 나아가 절정의 경지인 ‘해탈(解脫)의 순간’을 본다면 지고지순(至高至純)한 사랑이 아닐까보냐. 실존의 구경의 단계가 종교적 실존이라고 볼 때 이것은 사랑의 정점에 이른 것이라고 하겠다. 환하게 밝은 세상에는 사랑이란 말조차 식상할는지 모른다.

존재 이유이자 삶의 근거로서의 사랑, 사물과 동일시되고 일체화되는 사랑, 불가해의 신비롭고 섬세한 사랑, 광활한 우주론적 사랑, 종교적 운명적인 사랑이 파노라마처럼 전개되어 있다. 사랑의 만화경(萬花鏡)이자 총체적인 사랑이다.「책머리에」밝힌 것처럼 어쩌면 끝내 이루지 못한 사랑,숨 막혀 속만 태운 사랑,바라보고, 말할 수도 없는 답답한 사랑, 일방적인 혼자만의 사랑을 한 해명.그의 뜨거운 사랑의 바람이 그대 마음의 문을 줄기차게 흔들고 있다.

누에가 부지런히 뽕잎을 먹고 넉 잠을 잔 뒤 온몸을 다해 고치를 짓듯이 해명은 사랑의 시를 지으며 사랑의 집을 짓고 살다가 갔다. 더러는 사랑을 읊을 언어의 한계,세계의 한계를 느끼며 선악의 피안에 있을 사랑을 가늠했으리라.

무엇이 그를 그토록 사랑하게 했던가? 무엇이 그를 그토록 사랑에 들뜨게 했던가? 무엇이 그를 그토록 사랑에 빠지게 했던가? 이제 여기서 시집『그대에게 부는 바람소리』의 맺음말을 보자.

‘때론 사랑하는 일이/구도의 길처럼 느껴지곤 한다// 내 맘을 움켜쥐고 있는 사랑의 갈망에서/홀가분하고 싶다// 그러나 어느 하늘아래 선들/ 사랑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순간순간 내 영혼을 스친/그대 향한 그리움을 모아 한자리에 묶었다// 볼품없는 글들이지만/그 순간 그 순간 내겐 가장 절실한 찰나였다// 또 바람이 되어 그대에게로 불고 싶다(맺음말 전문)

절절한 사랑의 바람소리는 시공을 초월하여 그침 없이 울려온다. 주목할 점은 사랑하는 일이 구도의 길처럼 느껴짐에 있다. 단순히 일상의 일반적인 사랑에서 벗어나 구경의 성스러운 경지에 이른 것이다. 도 닦듯 사랑의 길을 헤쳐 간 정신적인 숭고한 사랑이다. 그리고 어느 곳에 있다고 한들 사랑을 벗어날 수 없는 사랑의 실재를 확언했다. 사랑의 굴레, 사랑의 갈망으로부터 자유롭기를 바란다고 한들 인간은 이제나 저제나, 여기에서나 저기에서나 사랑의 부림을 받는 존재가 아닐까. 무한한 사랑의 권능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20대 후반 시 공부를 시작하여 처음으로 쓴 작품이「눈 먼 내 사랑」이라고 했다. 그의 두 권의 시집에는 동일 제목의 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첫 시집『마치 거짓말 같이』에는「사랑의 가시」「사랑」「사랑아」「사랑노래」「봄비 같은 사랑」사랑을 읊은 작품이 들어있다. 사랑을 제재로 한 그 중 한 편을 보자.

사랑아

눈 먼 내 사랑아

그 가슴 한복판 칼 한 자루

못내 꽂을 줄 모르는 사랑아

부끄러이 한 올의 머리칼로

고뇌의 폭포를 휘감으며

훨훨 춤이라도 추어야 할

붉은 한 줌의 꽃을 태워

천 번이라도 스치우면

멍든 가슴 속 타는 속살

정작 다 들어낼

수줍은 나의 사랑아

고운 아가도 어미 가죽을 찢어

싱싱한 울음을 연다 하니

내 흙 되어 단단히 누워

깊이도 묻힌 사랑의 설움이

가문 날의 물이 되고, 모진 날의 울타리 되고

끝내 불붙는 들녘 끝 갈 데 모를

잔잔한 풀꽃 그 풀꽃으로나

피어오를까 보다, 나의 사랑아 「사랑아」 전문

위의 작품「사랑아」첫 연에 “사랑아/ 눈 먼 내 사랑아”로 해명이 시 공부를 하여 쓴 첫 작품 제목과 같은 시행이 들어있다. 공교롭게도 ‘눈 먼 내 사랑’의 시행과 제목의 일치로 보아 이것이 그의 첫 작품이 아닌가하고 짐작이 간다. 그뿐 만아니라 ‘칼’ ‘꽃’ ‘머리칼’ ‘폭포’ ‘춤’ ‘물’ ‘울타리’ ‘들녘’ ‘풀꽃’ 같은 동일 시어의 사용과 눈 먼 사랑의 생(生)과 사(死), 비극적 설정이 시집『그대에게 부는 바람소리』에 담긴 사랑 노래와 큰 차이가 없다. 따라서 이 작품은 해명의 사랑 노래의 원형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이 첫 작품을 바탕으로 해명의 사랑 연작시는 보다 다양한 모습으로 심화 확대 되었다고 하겠다.

우리는 만해 한용운의「님의 침묵」에서 ‘님’은 부처요, 중생이요, 사랑하는 사람이요, 조국이라고 읽었다. 해명에게 있어서 그리운 사랑은 바로 무명(無明) ‘깨침’ 곧 해탈에 있음을 알겠다. 그것은 불교적 사유와 발상으로 득도(得道)요 각자(覺者)가 되는 일이다. 격정적인 사랑의 바람은 잦아들었지만 사랑하면서 행복했던 날들을 돌이키며 ‘내 맘을 움켜쥐고 있는 사랑의 갈망에서 홀가분하고 싶다’고 했다.사랑을 하던 말던, 선택의 자유를 나타낸 의지의 표현이다.

사랑의 자유를 누리고 세상의 온갖 바람(풍상風霜)을 맞으면서 바람(현실) 속에서 살다가 온갖 사슬을 끊고 바람으로 사라져간 해명.사랑한다사랑한다사랑한다/그대향해/바람이불고/사랑한다사랑한다사랑한다/다시살아야겠다(80)고 삶에 대한 의욕을 보였던 해명이 삶의 덧없음을 자적(自適)하며 허공에 집 한 채 지어두고 서둘러 떠난 바람의 시인 김완.바람, 그 변용의 가변성 속에 삶의 무상을 느끼고 참 나를 찾아 떠난 시작이자 끝이요 끝이자 시작인 바람의 길, 바람 속에 바람으로 살다가 바람으로 사라진 바람의 시인 해명, 일정 기간 특정 풍향의 출현빈도가 높은 우세풍(優勢風)이자 탁월풍(卓越風)으로 살다간 김완. 이제는 인연의 사슬을 끊고 피안의 세계, 사랑의 집에서 사랑의 시를 읊으며 행복하게 살리라. ‘바람은 촛불 하나를 꺼트리지만 모닥불은 살린다. 무작위성, 불확실성, 카오스도 마찬가지다.’라는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월스트리트의 금융분석가)의 말이 생각난다. 세속적 바람 속에 피워온 사랑의 모닥불이 타고 있다. 오늘도 바람이 분다.그대에게 부는 사랑의 바람소리가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