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가 낳은 성인(聖人) 개운조사(開雲祖師)생애와 사상
각근사 주지 무진행
⚬ 지금 감추어진 성인을 드러내는 이유
조선이 500년간 사문난적과 억불 숭유로 유교 선비이외의 구도자를 천대하여 불가와 선문의 도인들이 세상에 나오기를 꺼려하였고, 일제는 곳곳에 명당혈을 끊어 조선에 도인 나오기를 방해했는데도 우리는 정작 도인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고, 무심하여 개운조사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해방된지 70년이 지나 대통령이 10분이나 나왔는데도 단 한사람도 공공장소에 동상이 세워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도를 알지 못하여 잘 살고 간 인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후손보기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지금이라도 도를 알아 우리 모두 잘살고 가야 합니다. 자비가 있어 세속을 떠나지 않고 지혜가 있어 세속에 물들지 않는 지순한 연꽃같은 인격의 성인은 인류의 사표(師表)로서 일월과 같이 미래 제가 다하도록 중생을 구제 할 수 있기에 상주가 낳은 자랑스런 성인을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저는 충청도가 고향이며 상주에 인연 따라 온지 15년 되었으며 30여년전에 개운조사, 주석의 능엄경을 읽으면서 이분이 상주분임을 알았고, 주석 말미 자서(自序)중에 조실부모하고 기구한 운명에도 좌절하지 않고 정성을 다해 도를 구하는 자세와 후학을 위하여 능엄경을 주석하고 열심히 공부할 것을 간곡히 부탁하면서 경에 나오는 한자(漢字)를 하나하나 찾아내어 능엄경 옥편을 달아놓은 진심에 가슴뭉클했던 기억이 있어 작년 (2016)에 조사가 공부하고 도를 얻은 봉암사, 희양산 환적암, 도장산 심원사를 두차례 방문 답사 하고 참고인을 찾아 뵌 일이 있습니다.
1. 생애
개운조사는 1790년 상주시 개운동에서 아버지 김씨 어머니 양씨사이에서 밝은 별이 부모님 가슴에 안기는 태몽 꿈을 꾸고 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3살 때 아버지를 5살에 어머니를 잃으니, 자손이 없는 외숙부 내외가 아들마냥 데려다 기르는데 그 외숙부 내외도 7살, 9살에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그때, 어린 조사가 지극히 외숙모 3년상을 치르는 것을 보고 동네 사람들은 큰 감명을 받아 양효동이라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9세에 천애 고아가 된 조사는 인생의 무상(無常)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주변 어른들을 만날 때마다 죽음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없느냐 물으니 사람들은 어이 없어하고, 쓸데없는 생각이라 비웃기도하고 머리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나 조사는 포기하지 않고 그 의심을 풀어줄 스승을 찾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스님을 만나 불법을 닦으면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외숙모 3년 상을 마치고 13살 되던 해에
혜암선사가 계신 문경의 봉암사로 찾아가 삭발출가 했습니다.
그 후 1년 뒤에는 혜암선사마저 입적하므로, 개운조사는 6년을 더 봉암사에 머물다가 19세 되던 해에 제 방의 선지식을 찾아 전국을 다니기를 십여년 만에 다시 봉암사로 돌아오니 그때 나이 30이었습니다. 그 이후의 행장은 조사의 유서(遺書)를 그대로 옮깁니다.
유서
후세에 이경을 봉독하는 자는 경(經)과 송(頌), 주(註)와 토(吐)에 있어서 한자와 한구라 신중히 하고 고치지 마라. 또 비방하는 요망한 무리는 반드시 신사(神司)가 벌을 내릴 것이다.
희양산 환적암은 선환화상(善幻和尙)이 입적한곳이다. 오늘 중에 이 몸이 회원(回願)하니 감개가 무량하다. 후세 재현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산중에 무엇이 있던가? 고개위에 백운이 많아라 다만 스스로 기뻐할지 언정 그대에게 갖어다 줄 수 없는 것이니 각기 스스로 깨달아서 각기 스스로 기뻐하라. 내가 스승을 만나 법문을 듣고서 수능엄 삼매의 실천공적을 수행한 것을 대강 보여주어 인연이 있은 사람으로하여금 믿고 수행하고자 한다.
그래서 죄벌을 두려워하지 않고 현기(玄機)를 누설하는 것인데 믿지 않고 수행치 않음은 그대들의 허물이다. 10여년 동안 풍우에 젖어 있다가 홀연이 고덕의 “공연히 쇄신만 닳게 하면서 동서를 분주하게 다니네”라는 글귀에 감동하여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환적암으로 돌아 왔는데 그때 나이 30이었다.
스승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침식까지 잊었다가 경배하는 기원이 잠시도 해이한 적이 없었는데 미색이 앞에 나타나거나 천락(天樂)이 귀에 들리기도 하며 맹호가 뒤따라오거나, 큰 뱀이 몸을 휘감기도 하며 황금과 비단이 방에 가득하거나 도적이 문을 부수기도하며 그 밖에 기쁘고 두렵고 믿음이 가고 의심이 가는 등 마사들도 있으나 다 말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조금도 동심하지 않고 정직함을 고수하면서 계, 정, 혜(1)를 성실하게 수행하였다.
이렇게 하기를 1년 남짓하였을 적에 어떤 미친 듯한 중이 비틀걸음으로 들어오는데 신체는 수척하고, 의복은 남루한데다 온몸은 짓무르고 부스름이 나서 그 냄새가 가까이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공경히 맞이하여 성심껏 봉양하였는데 꾸짖기도 하고 때리기도 하였으며 희롱도 하고 자비롭기도 하였다. 이렇게 하기를 한 달 남짓 하면서 역시 동심하지 않고 정직만을 고수하며 배나 더 공경할 뿐이고 한 번도 의심하지 아니하였더니 어느 날밤 불러서 말하기를 “너는 무심한 사람이구나. 꾸짖어도 괴로워하지 않고, 때려도 성내지 않고, 희롱해도 싫어하지 않고, 자비를 베풀어도 기뻐하지 아니하니 마음을 항복받았다 할 수 있는데 반드시 득도할 것이다. 여러 해 동안 부처님 앞에서 축원한 것이 무엇이었느냐?” 하므로 눈물을 흘리며 공경히 절하고 말하기를 지극한 소원은 참다운 스승을 만나 불법을 듣는 것이고 그 밖에는 구하는 것이 없습니다. 하였더니 말하기를 내가 너의 스승이 되면 어떻겠는가 하였다.
나는 곧 슬픔과 기쁨의 감회가 함께 일어나 백배하며 애걸하였더니 말하기를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인것과 마찬가지로 수도도 그러한 것이다.” 하고 나를 데리고 희양산에 올라갔는데 달이 낮처럼 밝고 안계가 쾌활하게 전개 되었다. 큰 반석위에 정사(精舍)가 저절로 세워지고 음식이 제때 마련되었다. 나는 이러함을 보고서 신심이 백배나 솟구쳤다.
사자(師資,스승과 제자)가 삼보 앞을 향하여 공경히 예배드리고서 큰 참회와 깊은 맹서를 한 다음 말하기를 “너는 지금 마땅히 알아야 한다. 수도를 함은 마음을 항복받는 것으로 시작과 끝마무리에 절요함을 삼는다. 학자가 만에 하나 성도하지 못함은 마음을 항복받지 못하고 아만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 그리고 다시 설법한 다음 토굴로 들어가게 하였는데 칠일만에 건혜지 누진통(乾慧地漏盡通)₁의 인(因)을 증득하니 우리 선사가 정본수능엄경과 유가심인록을 나에게 부탁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보현존사에게 구결(口訣)로 받은 신, 해, 수, 증이 모두 여기에 있으니 진중하게 받들어 간수하라.” 하므로 공경하게 배수하였는데 또 다시 대승의 묘결을 구두로 전해주므로 이를 하나하나 터득하고 깨달았다. 수수(授受)하기를 마친 다음, 허공으로 날아가므로 공경히 백배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전송하고 돌아보니 정사가 없어졌다. 미증유의 일임을 감탄하고 백련암으로 내려와서 백 일만에 십신의 수다원 누진통₂의 과를 증득하고 그리고 칠 일만에 초주분정도태(初住分定道胎)₃의 인을 증득하고서 도장산에 들어갔다. 어째서 마음을 항복받는 것이 수도의 절요함이 되는가 하면, 성품(性品)이 움직이면 마음인데 그 이름이 마음심(魔音心)이고 마음이 안정하면 성품인데 그 이름이 성품성(聖品性)이다. 그래서 성품을 따르는 자는 성인(聖人)이 되고 마음을 따르는 자는 마(魔)가 되는데 마와 성품은 두 종류가 아니라 자신이 저지른 것을 자신이 받는 것이다.
후학은 알아야 한다. 마음을 항복 받은 다음에야 수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비유하면 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가 되고, 뱀이 마시면 독이 되는 것처럼 사람이 마음을 항복받으면 도기道器가 되고 마음을 항복받지 못하면 도기가 못된다.
그래서 금강경에서 불타가 마음을 항복받는 것을 먼저 제시 한 것이다.
인연이 있는 재현이 이 경을 읽고 불법을 깨달아서 전일하게 전진하면 보리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니 이는 내가 고심(苦心)하여 스승을 구하고 도를 깨달은 본원(本源)이다.
51세가 되는 경자년 8월 3일에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여 뒤에다 덧붙인다.
송(頌) “손으로 동천(洞天)각주이란 글자를 쓰고 손톱으로 한좌(閑坐)라는 글귀를 새기니 돌이 물렁한 흙처럼 부드러워서 나의 현명(顯名)을 받아들이네 맑은 물 흐르는 반석위에 용자(龍子)를 놀게 했노라. 나의 조그마한 희적(戱跡)도 천추만추에 전할 수 있는데 더구나 간경(看經)의 공덕이랴. 복해(福海)는 한이 없다네.
수학하는 제현들은 사생(死生)을 벗어나라, 위대하여라, 이경의 공덕은 일컬을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고, 사의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자광(慈光)이 변만하여 험로를 비추며 혜검(慧劒)이 주류(周流)하며 죄근(罪根)을 끊네, 공경하고 공경하여라. 초심으로 천박한 무리는 이 사람 말을 자세히 들어라. 대장부가 진결(眞訣)을 만나면 모름지기 그 뜻을 지키고 영원히 물러서지 말지어다.
사상
1) 개운조사는 13-30세까지 주로 불교 기초교리인 삼세인과(5), 십법계(6), 5계, 사제법, 6바라밀(팔정도) 등을 집중 반복 꾸준히 수행하면서 참된 스승을 만나기를 소원 하던 중 하루는 거지스님(화신 관세음보살(7)을 만나 능엄경의 요체를 전수받고 수행하여 도(성문과)를 깨달아 육신통이 자재하게 되었습니다.
2) 깨달음의 내용
가) 천지는 나와 더불어 본래하나이며(대승, 일승, 불승)
나) 그 하나임을 아는 놈은 무시이래 일체중생이 갖추고 있는 불성(보리열반의 청정체)으로 누구나 부처될 수 있음과 (여래장 묘진여성), 만물이 이로부터 나고 들며 그놈은 시공을 초월하여 불생불멸함과 언어, 문자, 사량, 분별 명(名), 상(相)이 끊어진 자리로 형용할 수 없는 데 부득이 마음, 불성, 진공묘유, 태극, 일시무시일, 일종무종일이라 부르나 어디까지나 가명(假名)자(字)인 것인과
다) 생각과 분별(반연심)은 마음이 아닌데 무시이래 중생이 이를 마음으로 잘못알고 살아 생사윤회의 근본이 되고 있음과
라) 모든 성인이 생명의 본질이 사랑이고 기쁨임을 깨닫고 자비, 인, 사랑을 종지로 삼음과
마) 이 마음을 깨달으면 열반, 사덕(진상, 진락, 진아, 진정)을 누릴 수 있어 살아서 행복하고 임종에 편안하고 사후에 윤회를 벗어난 부처님세계에 항상 태어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바) 신선도도 깨달았습니다, 신선도란 도교의 용어로 마음과 몸을 함께 수련하면(성명쌍수,性命雙修) 신선이 된다는 가르침인데 수행방법은 몸의 정(精,배꼽아래)→기(氣,배꼽에서 미간)→ 신(神,미간에서 정수리)을 연정화기(煉精火氣)→연기화신(煉氣化神)→연신환허(煉神還虛)의 순서로 단련하면 5유형의 신선이 된다합니다. ⓵귀선(鬼仙)⓶인선(人仙)⓷지선(地仙)⓸천선(天仙)⓹신선(神仙)=대라금선입니다.
정, 기, 신법은 불교의 삼계(욕계, 색계, 무색계)해탈과 같으며 과학으로는 발전소의 열, 전기, 빛과 같습니다. 개운조사가 손으로 바위에 새긴 동천, 한자의 뜻은 신선이 사는 이상세계를 뜻하며 선도 수행하는 분들이 개운조사를 중시조(中始조祖)로 받들고 상주시 (내서)가막골 태어나 1998년 118세로 좌탈 입적하신 개운조사의 제자 탄공선사(呑空,속명,이현조)를 사부(師父)로 모시는 것으로 보아 개운조사는 신선도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할 것입니다.
제가 자료를 수집하다보니 불가보다는 선가에서 훨씬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아라한과 신선은 모두 자리는 완성하여 신통자재하나 이타가 부족한 점에서 같고 아라한은 부처가 되는 한 과정에 있으니 안주하지 말라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고 신선은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하고 안주하는 것이 다를 뿐 별차이가 없습니다. 공자가 값줄 사람을 찾아 13년간 72제후를 만나러 다닐 때 값줄 사람이 없는 줄도 모르고 상가집 개 마냥 떠돌아 다닌다고 비웃은 은인(隱人)이 바로 신선도 하는 사람입니다.
신선도의 비조는 여순양이고 건강장수와 신선되는 비결로 백자명(百字名)₉과 인생도 덧없고 부귀도 부질없다는 황량몽(黃梁夢)₁₀의 고사(古事)를 남기고 말년에 여산의 황룡사 황남용 선사를 만나 여순양은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3. 결어
개운조사는 초년에 사고무친의 기구한 운명에도 좌절하지 않고 불법에 귀의하여 계, 정, 혜를 기초로 바르게 수행하는 한편 간절한 소망으로 바른 스승을 만나 수도의 비결을 전수받고 정진하여 아라한과를 얻고 인생의 목적이 지혜와 복덕의 완성임을 손수 가르치시고 자비가 있어 세속을 떠나지 않고, 지혜가 있어 세속에 물들지 않는 지순한 연꽃 같은 삶을 사시다가 182세 되는 1972년 가을 지리산에서 소나무 가지를 잡고 선채로 입적하시므로 생사를 자유로이 할 수 있음을 보여주신 성인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세계 제일의 자살율, 음주율, 교통사고율, 40대 사망률 등 사회병리를 치료 할 수 있는 길은 도인의 삶을 본받아 지혜를 개발하여 인생의 목적을 바로알고 바르게 사는 도리 밖에 없으므로 개운조사를 우리민족의 사표(師表)로서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것 입니다. 도의 경지가 진묵대사님과 비견할 수 있어 상주의 자랑이기도 합니다.
용어의 정리
⓵ 계, 정, 혜 : 계율과 선정과 지혜
⓶ 건혜지 누진통 : 삼독(탐, 진, 치)의 습기는 다했으나 아직 지혜가 부족한 것을 마른 지혜 즉 건혜지라 하는데 선정으로 이 부족한 지혜를 보충한 경지를 말함
⓷ 수다원 누진통 : 미혹을 단절하고 처음의 성인의 반열에 들어간 것
⓸ 초주분 정도태 : 성불하기까지 52단계가 있는데 (10신, 10조, 10행, 10회향, 10지, 등각, 묘각) 10신초기에 진리의 맛을 알아 불퇴전의 신심이 생긴 것
⓹ 삼세인과 : 과거, 현재, 미래 중 현재는 과거의 과(果)요, 미래의 인(因)임
⓺ 10법계: 인격의 미성숙에서 성숙에 이르는 십단계로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 천, 성문(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 벽지, 보살, 불. 지옥에서 천까지는 윤회의 세계로 성문에서 불까지는 영생의 세계, 지정각의 세계로 보고 있음. 그중 아라한은 성문 4과중 하나임.
⓻ 거지스님(화신관세음보살) : 불보살 성문, 벽지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언제든지 몸을 바꾸어 나툴수 있음
⓼ 육신통
천안통 : 천리만리를 앉아서 볼 수 있음
천이통 : 천리만리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음
신족통 : 천리만리를 오고갈 수 있음
숙명통 : 남의 전생을 다 알 수 있음
타심통 : 남의 마음을 다 알 수 있음
누진통 : 육근이 청정해짐
⑨ 백자명
養氣忘言守(양기망언수) 降心爲不爲(항심위부위)
動靜知宗祖(동정지종조) 無事更尋誰(무사갱심수)
眞常須應物(진상수응물) 應物要不迷(응물요부미)
不迷性自住(부미성자주) 性住氣自回(성주기자회)
氣回丹自結(기회단자결) 壺中配坎離(호중배감리)
陰陽生反復(음양생반복) 普化一聲雷(보화일성뢰)
白雲朝頂上(백운조정상) 甘露灑須彌(감로쇄수미)
自飮長生酒(자음장생주) 逍遙誰得知(소요수득지)
坐聽無弦曲(좌청무현곡) 明通造化機(명통조화기)
都來二十句(도래이십구) 端的上天梯(단적상천제)
⑩ 황량몽
인생이 덧없고 영화도 부질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고사 내용은 이렇다. 도사 여옹이 한단의 한 주막에서 쉬고 있는데 행색이 초라한 젊은이가 옆에 와 앉더니 산동에 사는 노생이라며 신세 한탄을 하고는 졸기 시작했다. 여옹이 보따리 속에서 양쪽에 구멍이 뚫린 도자기 베개를 꺼내 주자 노생은 그것을 베고 잠이 들었다. 노생이 꿈속에서 점점 커지는 그 베개의 구명 안으로 들어가 보니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있었다. 노생은 최씨로서 명문인 그집 딸과 결혼하고 과거에 급제한 뒤 벼슬길에 나아가 순조롭게 승진했다. 경조윤을 거쳐 어사대부겸 이부시랑에 올랐으나 재상이 투기하는 바람에 단주자사로 좌천 되었다. 3년후 호부상서로 조정에 복귀한지 얼마 안되어 마침내 재상이 되었다. 그 후 10년간 노생은 황제를 잘 보필하여 태평성대를 이룩한 명재상으로 이름이 높았으나 어느 날, 갑자기 역적으로 몰렸다. 변방의 장군과 결탁하여 모반을 꾀했다는 것이다. 노생과 함께 잡힌 사람들은 모두 처형당했으나 그는 환관이 힘써 준 덕분에 사형을 면하고 변방으로 유배되었다. 수 년 후 원죄임이 밝혀지자 황제는 노생을 소환하여 중서령을 제수한 뒤 연국공에 책봉하고 많은 은총을 내렸다. 그 후 노생은 권문세가와 혼인하고 고관이 된 다섯 아들과 열 명의 손자를 거느리고 행복한 만년을 보내다가 황제의 어의가 지켜보는 가운데 80년의 생애를 마쳤다. 노생이 깨어보니 모든 것이 꿈이었다. 옆에는 여전히 여옹이 앉아 있고 주막집 주인이 짓고 있던 기장밥도 아직다 되지 않았다. 노생을 바라보고 있던 여옹이 웃으며 말했다.
“ 인생이란 다 그런 것이야.” 노생은 여옹에게 공손히 작별 인사를 하고 한단을 떠났다.
*각주(各註)
상주 화북면 우복동 동천암 바위에 “洞天”이라 쓰여진 글자를 놓고 양사언이 새겼다. 개운조사가 주먹으로 썼다는 두 주장이 있는바 상주가 고향인 개운조사(1790~1972)는 당신이 주석한 능엄경말미 遺書(유서)에 바위에다가 洞天(동천) 閑坐(한좌)라는 글씨를 주먹과 손톱으로 썼다는 기록이 있는데 (확인결과 동천은 찾았고 한좌는 못찾았음) 이를 반대하는 분들은 한정당 송문흠(1710~1752)이 그의 문집 甁泉記略(병천기략)에 (개운조사가 태어나기 전부터)양사언이 동천이라는 두 글자를 새겼다고 하여 개운조사보다 앞서 출생한 생년연대를 고증으로 양사언이 썼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일은 조선의 명필 선비와 드물게 도를 이룬 도인의 인격에 관한일로 죽은 당사자가 살아나 밝히지 않는 한 그 진실을 알 수 없으므로 추측은 쉬고 좋은 쪽으로 생각하여 서로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마침 당사자들이 모두 신선이 사는 이상향, 洞天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니 개운조사의 생애와 사상도 세상에 알리고 봉래 양사언과 한정당 송문흠의 생애와 사상도 소개하여 상주문화가 반대를 수용하여 상생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반대를 수용하는 중도의 철학은 남북평화통일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참고>
-정본수능엄경(개운조사 주석 양성스님 역해)
-능엄경 정해 상하(각성스님)
-인터넷 개운조사 탄공선사 편
-불교수행법 강의(남희근)
-금강경(남희근)
-불교사전
-천부경(무진)
-희양산 봉암사, 환적암, 도장산 심원사 2회 방문 답사
'상주학 > 상주학 제9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주학. 상주문화원 금요사랑방 118강 (0) | 2018.05.11 |
---|---|
상주학. 상주문화원 금요사랑방 117강 (0) | 2018.05.11 |
상주학. 상주문화원 금요사랑방 제115강 (0) | 2018.05.11 |
상주학 상주문화원 금요사랑방 114강좌 (0) | 2018.05.11 |
상주학 상주문화원 금요사랑방 제113강좌 (0) | 2018.05.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