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의 인물/상주의 인물 제6권

한국 불교 능엄선(楞嚴禪)의 주창자 승형(承逈)

빛마당 2019. 3. 30. 22:23

이 글은 상주문화원이 발간한 상주의 인물 제6권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전재합니다. 스크랩을 하시는 분들은 이 내용을 꼭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한국 불교 능엄선(楞嚴禪)의 주창자 승형(承逈)

김재수 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우리나라 불교의 종파로 크게 교종(敎宗)과 선종(禪宗)으로 나눈다.

교종은 경전(經典)에 의거한 교리해설을 주로 하기에 문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교종은 삼국 시대에 불교 경전이 유입되면서 수용되었다. 그 후 신라 통일시기에 원효를 비롯한 여러 고승들에 의해 경전에 대한 주석이 가해짐으로써 불교 철학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었고, 아울러 5종파가 확립되었는데 보덕의 열반종, 자장의 계율종, 원효의 법성종, 의상의 화엄종, 진표의 법상종이 그것이다.

선종은 인도인으로 중국에 들어온 달마 대사가,

 

편안한 마음으로 벽을 바라보면서(安心觀壁)”

 

깨달음을 구한 후, 혜능이,

 

不立文字(불립문자) 문자에 입각하지 않으며

敎外別傳(교외별전) 경전의 가르침 외에 따로 전하는 것이 있으니,

直指人心(직지인심) 사람의 마음으로 직접 터득하고

見性成佛(견성성불) 본연의 품성을 보고 부처가 된다.

 

라 이야기하고, 마조도일이

 

타고난 마음이 곧 부처(自心卽佛)”

 

라 하며, 인간의 평등과 인간성의 고양을 강조하면서 체계화된다. 선종은 직관적인 깨달음과 참선을 중시하는 동아시아의 특징적인 종파이다.

선종은 신라 시대에 한반도에 도입되어 왕실과 지방 호족 세력의 후원 속에 교세를 확장하였다. 신라 말에는 선종 세력과 결합한 호족 세력이 새로운 왕조 개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하였다. 고려 시대에는 천태종과 조계종이 각각 성립하여 발달하였다.

1424(세종 6)에는 조계종(曹溪宗)·천태종(天台宗).

총남종(摠南宗)을 합하여 선종(禪宗)으로 하고, 화엄종(華嚴宗)·자은종(慈恩宗)·중신종(中神宗)·시흥종(始興宗)을 합하여 교종(敎宗)으로 하여 모든 종파를 선교양종(禪敎兩宗)으로 정리하였으며, 각각 18개소의 사원만을 인정하여 다른 사찰들은 이의 지배를 받도록 하였다.

 

승형(承逈, 1172년 고려 명종 2~1221년 고종 8)

고려 중기의 승려이며 대선사(大禪師)요 국사(國師). 성은 신씨(申氏), 자는 영형(永逈), 본관은 상락(上洛), 아버지는 통한(通漢), 시호는 원진(圓眞)이다.

능엄선(楞嚴禪)의 주창자(主唱者; 주의나 사상을 앞장서서 주장하는 사람)이다.

상주 출신으로 세살 때 고아가 되어 숙부인 시어사(侍御史) 광한(光漢) 밑에서 자라났다. 13세 때 문경 봉암사(鳳巖寺)에서 선사 동순(洞純)을 은사로 득도(得度: 출가하여 승려가 됨)하였고, 이듬해 김제 금산사(金山寺) 계단(戒壇)에게서 구족계(具足戒) 를 받았다.

1197(명종 27) 스승 동순이 죽자 승려들이 보는 과거를 포기하고 수도에 정진하였으나, 명종이 그의 뛰어난 도행을 듣고, 특별히 초선(初選)을 치르게 하였다.

그 뒤 조계산 수선사(修禪社)의 지눌(知訥)에게서 법요(法要)를 받고 강릉 오대산에서 문수보살(文殊菩薩)에게 예배한 뒤 크게 감응을 얻었다.

, 청평산에서 이자현(李資玄)의 유적을 찾다가수능엄경(首楞嚴經)은 마음의 본바탕을 밝히는 지름길이라는문수원기(文殊院記)를 읽고 마음 깊이 감명을 받아능엄경을 열람하였다.

이로써 모든 상()이 이치에 맞지 않는 허황된 생각임을 환하게 깨닫고 자기 마음의 넓고 큼을 알아 불법을 선양할 때에는능엄경을 으뜸으로 삼겠다고 불전(佛前)에 빌었다.능엄경이 한국 선종에서 숭상되게 된 연유는 이자현이 문을 열고 승형이 다시 분명히 한데에서 비롯되었다.

한국 불교에서능엄경을 강조한 이는 고려 중기 청평거사 이자현인데 근·현대에는 용성 스님과 성철 스님께서도능엄경을 중시하여 제자들에게 능엄주를 외우라고 강조하였다. 능엄주에 마음을 집중시켜 능엄삼매를 얻어 번뇌를 끊고 깨달음을 이루게 하기 위해서이다. 능엄선(楞嚴禪)능엄경(楞嚴經)을 바탕으로 공부하는 참선수행법이다.

그는 1210(희종 6)에 연법사(演法寺) 법회의 법주(法主)가 되어 선풍(禪風)을 떨치고, 1213(강종 2)에 삼중대사(三重大師), 1214(고종 1)에 선사(禪師)가 되었고, 이듬해에 대선사(大禪師)가 되어 영일군 보경사(寶鏡寺)에 머물렀다.

1214(고종 1)에 보경사에 주지로 오면서 보경사를 중창하였다. 이 때 승방 4동과 정문 1칸 등을 중건하고 범종·()·법고 등도 새로 구비하였다고 한다.

경북 포항시 보경사 산내암자 서운암 창건하였다고 하는데 1898(광무 2)에 작성된서운암중수기현판에는 원진국사가 보경사를 중창할 때 아홉 암자 가운데 하나로 서운암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1220년에는 희종의 넷째 아들인 경지(鏡智)의 은사(恩師)가 되었고, 1221년에능엄경을 설한 뒤 팔공산 염불사(念佛寺)로 옮겨 입적하였다. 나이 51, 법랍 38. 국사(國師)로 추증되었으며 비는 현재 포항 보경사에 있다. 시호는 원진(圓眞)이다. 흔히 원진국사(圓眞國師)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