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학/산문

학창시절

빛마당 2008. 4. 30. 16:53
 

190. 학창시절

- 사랑으로 함께 했던 하숙집 가족들 -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사랑이다. 나는 그 사랑을 먹고 2년의 꿈을 안동이란 곳에서 키웠다. 그래서 나는 나를 아는 모두를 그 때 받은 그들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있고 앞으로도 사랑하고 싶다.


 그날 안동시외터미널에는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난생 처음 고향을 떠나 타향이라는 곳에 청운의 꿈(?)을 안고 버스에 내려서자 막막했다. 우선 갈 곳이 없다. 마땅히 정해 둔 곳도 없이 무작정 왔는데 짖궂은 봄비는 타향살이 시작을 서글프게 하고 있었다. 빗발이 조금 거세어 비를 피할 양으로 터미널 앞 마침 지붕 처마가 삐죽이 내민 어느 가게 옆에 보따리 하나  들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데 내 몰골이 너무 어설펐던지 지나가는 아주머니가 내게 말을 걸었다. 하숙집을 하시는 아주머니였다. 자기도 하숙을 치는 자기 집으로 가면 어떠냐는 말이다. 그녀는 구세주였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안동의 도심을 지나 도착한 곳이 한국벨트공장이 있는 신안동 골짜기. 아주머니는 이 골짜기에서 다시 자전거만 다닐 만한 좁은 골목을 끼고 돌더니 이번엔 산허리를 감고 올라가고 있었다. 비에 젖어 무거운 보따리를 들고 무작정 따라 올라간 곳이 안동시 신안동 산 00번지. 번화한 안동 시내라는 냄새도 나지 않는 함석집 두어 채가 외따로 자리한 산골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바깥주인 의 사업이 잘 될 때 별장으로 지은 이곳이 가세가 기울자 삶의 터전이 되고 하숙집이 되었단다. 찬밥 더운밥 가릴 신세도 아니고 우선 임시 거처로 정할 양으로 따라 들어가니 아주머니께서 더운점심을 해 오셨다. 내가 거처할 방이라기에 따라 들어가니 방안을 밝히고 있는 것은 전기불이 아니라 커피 병을 개량해서 만든 심지가 두 개 달린 호롱불이 아닌가? 갑자기 전설의 고향에 온 것 같은 두려움이 전신을 엄습해 왔다.

이 두려움을 시작으로 내 2년의 안동교육대학 시절은 출발하게 되었다.

사람 사는 거 정말 별거 아니요 모든 것은 정(情)두기에 달렸다는 말이 실감났다. 하숙생이 아니라 한 가족처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그들에게 나는 반하고 만 샘이다. 이 호롱불 집에서 탈출하여 20세기 문명의 이기가 풍부한 시내 한 복판으로 내려가자는 내 첨의 생각은 사라졌던 것이다. 안동시내 살면서 전기 구경 한 번 못하고 2년을 이 어둑한 방을 사랑하며 사는 나를 다른 사람은 잘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행복하고 즐거웠다. 계절마다 바뀌는 자연의 변화를 사랑하고 매일 몇 차례 씩 오르내려야 하는 6부 능선의 오르막길이 오히려 내 체력을 도와주었으며 봄철이 지나면 딸기를 따고 여름철이면 오이와 참외도 가꾸고 가을에는 감나무에 올라가 고향집 감나무처럼 홍시를 따먹으며 이곳을 사랑했다. 친구들이 왜 이런 후진 집에서 같은 돈을 주고 하숙을 하느냐, 혹시 하숙집 처녀가 맘에 들어서이냐고 쑥스러운 질문도 했지만 이도 저도 아닌 이 집 식구들의 가족사랑 때문이라는 걸 내 오랜 친구 김창한 사장은 잘 알고 있다. 실제로 하숙집 처녀는 나보다 나이가 두 살 정도 연상이었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틈틈이 집안일을 잘 도우는 억척 누님이었으니까.

나는 졸업을 하고 현직으로 발령을 받고 적어도 여름, 겨울방학이 되면 하숙집을 찾았다. 세월이 지났음에도 찾아주는 날 더 반겼고 반겨주는 그들이 너무 좋아 행복했기 때문이다. 내가 2년 동안 지내던 그 방에는 세월이 지나 전기불도 들어 왔지만 방안에 큰 대자로 들어 누우면 마치 먼 여행에서 돌아온 내 집 내 방처럼 이상하게도 편안하고 좋았다.

졸업 후 5년이 지났을까. 그 해 여름 다시 찾은 그 집에는 낯선 사람이 살고 있었다. 누님처럼 존경하던 처녀가 서울로 시집을 간 후 모두 이사를 했단다. 그들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면서 느낀 그 허전함과 쓸쓸함이 이 글을 쓰는 이 순간 다시 내게로 엄습해 옴을 느낀다. 그 때 그 아주머니와 아저씨, 이젠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 같고 서울로 시집간 그 누님은 어디서 잘 살고 계시겠지.  40년 전 가족처럼 함께 지내던 내 이름을 그도 기억하고 있으리라 믿는 것은 내가 그들을 잊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유 때문이리라.

생각하면 정겹고 그리운 옛날이야기.

그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앞이 흐려진다.

나도 나이가 들었나 보다.

2008. 3. 20

 

192. 밭갈이

 어제는 모처럼 들에 나갔습니다. 봄볕이 논두렁을 따라 화사하게 내리고 있는데 ‘이랴, 이랴,’ 소를 몰며 밭갈이 하던 옛 모습은 보이지 않고 경운기와 트랙터들의 밭갈이 소리가 요란합니다. 보습사이로 사정없이 무너지는 흙의 가슴이 보입니다.

 농촌에서는 추경(秋耕)과 춘경(春耕)이 있습니다. 추경을 하면 땅속에 있는 병균·해충 등이 겨울에 죽으며, 풍화작용에 의해 물리적인 변화를 일으켜 물리성이 개량되고, 지면의 유기물이 땅속으로 들어가서 이듬해 파종 전에 부식되는 등 이점이 있습니다.

 중고등학교시절 흙덩이가 부드럽지 않을 경우 고무래라는 연장으로 흙덩이를 힘들게 깬 일이 있습니다. 흙살이 부드럽지 않으며 씨뿌리기도 힘들뿐 아니라 씨의 싹틈도 시원치 않음을 그 때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래는 ‘밭갈이’라는 저의 졸시 입니다.


 겨우내 굳게 잠긴 땅의 빗장을/농부가 풀고 있다./봄비가 두드려도 열리지 않던/흙의 가슴/굳은 땅일수록 가슴이 열려야/싹이 트고 열매 맺는/하늘의 이치/날이 선 보습을 흙의 가슴에 깊이 묻고/농부는 땀으로/흙의 가슴을 열고 있다.

 

 밭갈이 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끔 우리네 마음도 자주 보습으로 갈아야 할 때가 있음을 느낍니다. 흙은 춘경이나 추경으로 되지만 사람의 마음은 때를 따라 필요에 따라 수시로 갈아야 합니다. 사노라면 이런 저런 이유로 부디 칠 일들이 생깁니다. 육체의 경직은 질병의 근원이 되지만 마음이 부드럽지 못하면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깁니다. 사고의 경직은 마치 내 몸속에 자라고 있는 암세포와 같아서 자신이 키우면서 자신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행여 다른 이와 의견충돌이나 언짢은 논쟁으로 속상한 일들이 잦아 졌다면 일단 자신을 점검해야 할 신호입니다. 쓸데없는 固執과 沒理解는 본인은 물론 주변까지 힘들게 하고 결국은 자신이 짊어져야 할 무거운 짐이 됩니다.

 오늘도 아침부터 농로를 따라 트랙터와 경운기들이 부산히 움직입니다. 날카로운 보습이 지나 간 자리마다 흙의 맨살 속으로 봄볕이 골고루 뿌려 지겠지요. 이런 저런 이유로 아직 봄을 맞지 못하고 있는 내 마음 구석구석을 오늘은 저 찬란한 햇살아래 해바라기하고 싶은 아침입니다.

2008. 3. 24 

 

 

194. 추억 이라는 사진첩 들여다보기

 까만 양복에 점점이 찍힌 연두색 물방울의 넥타이를 매었더니 봄이라는 계절 때문인지 퍽 싱그러워 보였습니다. 어울리는지 아내에게 넌지시 물었습니다. 아내는 꼭 장가 올 때 모습 같다고 치켜 새웁니다. 거짓말이라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35년 전의 일이 떠오릅니다. 약혼식을 마치고 영호루에 갔습니다. 아내는 분홍색 치마와 저고리를 입었고 나는 오늘처럼 까만 양복을 입었습니다. 계절이야 10월 하순이었으니 봄과는 사뭇 달랐지만 낙동강 긴 다리를 천천히 걸어가며 본 강물은 가을 하늘이 온통 잠겨 더 파랬고 여기 저기 물색 고운 단풍들은 산천에 꽃수를 놓고 있었습니다. 나와 함께 걷는 새색시는 아직도 부끄러운지 빨개진 얼굴에 하얀 코고무신만 보면서 걷는데 철없는 막내처남은 뭐가 그리 신 나는지 우리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깡충대며 달리기도 했습니다. 어쩌다 새색시 손이라도 잡을 라 치면 처남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아 얼른 놓곤 했는데 지금은 자동차로 가도 한 참을 가야 하던 그 먼 다리가 그 땐 얼마나 짧게 느껴졌는지 기억이 새롭습니다. 생각해보면 약혼자 둘 만 호젓한 시간을 보내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상식일 터인데 왜 유치원생인 처남을 딸려 보냈는지 야속했습니다. 아마 안동의 전통 예절에 젊은이 둘만 내 보내는 일이 썩 내키지 않았던 장모님의 지나친 세심함이 아니었었나 하고 아내와 웃습니다. 영호루를 오르내리는 동안 짓궂은 동네 꼬마들이 여기 저기 숨어서 모래 장난을 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짓궂은 행동도 싫지가 않았습니다. 택시를 탈 생각도 안하고 고무신 신은 색시를 걸려 안동 구 시장까지 왔으니 나도 철없기는 마찬가집니다. 시장 끼가 들어 들른 경회루의 우동국물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데, 구 시장 고무신 가게에 들려 사준 처남의 축구화. 그 때는 차범근 선수로 인해 축구가 인기 있었습니다. 장모님의 당부도 잊었는지 처남은 축구화를 손에 들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가고 있었습니다.

 눈을 감았습니다. 요즘이야 지극히 평범한 일이지만 세월의 강을 거슬러 오르니 그 때 그 순간이 내 가슴에 아직도 보석이 되어 빛나고 있습니다. 흔한 말로 ‘추억은 아름다운 것’ 이라 했는데 이런 이유인가 봅니다. 그때 철부지 처남도 벌써 불혹을 넘기고 아들 딸 삼남매를 낳았습니다. 처남의 기억 속에도 이 추억이 살아있을까요? 허허허

 새로운 추억거리를 만드는 일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오늘처럼 가끔 추억이란 이름의 사진첩을 넘겨보는 것도 일상을 보다 의미 있게 하는 하나의 방편이 되리라 생각하는 아침입니다. 

2008. 4. 1

 

 

195. ‘하이패스’ 유감

  요즘 유행하는 ‘하이패스’를 마련했습니다. 막내딸이 청주에 살고 있어 고속도로 이용을 자주 하는 편입니다. 사고 보니 참 편리했습니다. 우선 카드 이용자는 금액과 요일에 따른 할인 혜택이 있고, 일단 정차했다가 다시 출발하는 불편이 없을 뿐더러 앞차가 빠져 나가기를 기다리는 시간도 조금이나마 단축되어 좋았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고속도로 통행을 위한 통행권을 뽑지 않아서 편했습니다. 통행권을 뽑다가 일어난 어처구니없는 일들은 누구나 한두 번은 있을 겁니다. 너무 멀찍이 진입해서 손이 닿지 않는 경우, 뽑기도 전에 차가 진행되어 다시 후진하는 경우, 손에 막 잡혔던 통행권이 바람에 날려 차에서 내려 당황하던 일들, 뒤차가 경음기라도 눌러대면 참 난감했습니다.

 첨 몇 번은 톨게이트를 진입하고 나올 때 마다 문명의 이기가 주는 편리함과  신기함을 맛보았는데 어느 날 내 자신도 모르는 묘한 감정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먼저 하이패스 전용진입로라는 길을 이용한다는 특권의식입니다. 그리고 다른 차들은 일단 정지, 그리고 통행권 뽑기와 같은 과정을 거치는데 내 차만은 그들을 앞질러 유유히 톨게이트를 빠져 나온다는 해방감입니다. 그래서 한 번 쯤 옆 차선에서 빠져 나오는 차를 나도 몰래 힐끗 돌아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처구니없는 우월감입니다.

 ‘아 이래서 차도 좋은 차, 집도 평수가 넓은 집을 선호하는 구나’

그렇습니다. 누구나 보잘 것 없는 일 하나에도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위에 두고 싶은 것이 人之常情이겠지요. 그러므로 자기 이상을 보다 높은 곳에 두고 최선을 다하는 일은 어쩌면 바람직한 일입니다. 매슬로우(Abraham H. Maslow)의 욕구단계는 우리들의 이런 심리를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매슬로우도 인간의 욕구를 강도나 중요성에 따라 단계적으로 배열한 것이지 결코 행복 그 자체를 계층적으로 배열한 것은 아닙니다. 흔히 우리의 불행은 나와 남을 비교함으로 시작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행복 추구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좋은 일이나 남과 비교하여 자신을 폄하하거나 남을 비난하는 일, 또는 쓸데없는 우월감이 교만으로 자리 잡는다면 자신이나 자신이 소속한 공동체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차에 시동을 거는데 차창 앞으로 봄 햇살이 아침부터 눈이 부십니다. 안전띠를 매면서 혹 내 안에 쓸데없는 우월감이 도사리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보는 아침입니다.

2008. 4. 3

 

196. 나눔이 부풀어지는 기적

지난 3월 29일은 ‘상주연탄은행’이 전국 20호점으로 문을 연지 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일 년의 성과를 되돌아보니 지난겨울이 참 따뜻했습니다. 연탄 지원 가구만 377가구에 67,700장이 배달되었으니 평균 180여장씩 배달되었고 연탄뿐만 아니라 1,510kg의 쌀도 지원을 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참여한 자원봉사자 수만도 연인원 902명이나 되고 보니 나눔이 주는 풍성함을 많은 이들이 누린 셈입니다.

 흔히 ‘나누다’라는 말은 산술적으로는 ‘제하다’, ‘분배하다’라는 뜻인데 이때는 양이나 크기가 상대적으로 줄어듦을 뜻합니다. 그러나 삶의 한 분야로서의 나눔은 ‘함께하다’라는 ‘동참(同參)’의 의미가 강합니다. 이 때 나눔의 의미는 산술적 의미보다 훨씬 다양하고 포괄적이며 풍성합니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라는 평범한 말이 이토록 멋있고 아름다운 말인 것을 참여의 기쁨을 누려본 이들이 아니면 느낄 수 없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연탄배달 봉사를 하던 젊은이가 첫 월급에서 기꺼이 30만원을 후원하면서 쑥스러워 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행복이 무엇인지 아는 이의 표정을 읽었습니다.

 “사랑의 연탄 천사, 그들의 얼굴이 까만 것 같지만 사실은 빨간 불덩어리. 그래서 우리가 사는 세상은 따끈따끈하게 하지요. 300원만 저축하세요. 그러면 당신을 사랑의 연탄천사로 변화시켜 드리지요’. ‘행복한 중독, 나눠서 얻는 더 큰 행복한 봉사! 우리 모두 함께 해요.” 이는 연탄 은행 홍보 글입니다.

 지난겨울 1,286,300개의 구멍에서 뜨겁게 타 올랐을 빨간 불꽃을 상상합니다.

그리고 추운 겨울바람을 막으며 신나게 덥혔을 377가구의 구들장을 상상합니다. 손을 호호 불며 방안으로 들어와 따스한 아랫목에 거친 손 묻으며 좋아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모습도 떠올립니다. 언덕배기 좁은 골목까지 연탄 리어카를 끌며 때로는 줄줄이 띠를 이어 연탄을 나르던 902명의 봉사자들의 검정 묻은 얼굴을 생각합니다. 힘겨운 배달을 끝내고 돌아오는 저녁 길, 차가운 하늘에 파랗게 떨고 있는 별들을 향해 유쾌한 휘파람을 불어대는 그들만의 보람과 행복을 느껴봅니다. 아침마다 가게 문을 열면 빨간 불꽃으로 타오르는 ‘협력업체’ 마크가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일구는 마스코트임을 실감합니다.

“나눔은 누군가를 향해 소리 없이 행해지는 채움이며 이로써 스스로에게 되돌려지는 채워짐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신나게 바람을 맞으며 흔들립니다. 출근 길 현수막만 바라보아도 가슴이 더 따스해짐을 실감하는 아침입니다.

2008.4. 28

 

197. 프로쿠르스테스의 침대

 한 주 전 북천교(北川橋) 교차로 가장자리에 튜립과 팬지가 화사하게 피어 행인들의 눈길이 한동안 멈추었습니다. 각기 다른 꽃이었지만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꼭 한 주가 지난 오늘 다시 그 광경이 보고 싶어 찾아갔지만 화려하던 튜립은 무심히 지고 팬지만 변함없이 피어 있었습니다. 같은 장소, 같은 날에 심은 화초도 저렇게 다르다는 것을 보면서 새삼 자연의 다양함을 실감했습니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열린 공간에 생각들을 내어 놓고 논의하는 토론 문화가  부족했습니다. 정치는 주로 밀실에서 이루어지고 가정이나 사회에서의 의사 결정은 합의가 아니라 주류들의 일방적 결정이거나 그것도 대부분 하향식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의견을 편하게 드러내는 일도 자연스럽지 못하고 다른 이의 생각을 원만하게 수용하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견해들은 상호 가치중립적이기보다는 다분히 자기중심이 되어 마침내 흑백논리로 변질되고 감정의 기폭만 존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돌아보면 이 세상에 같은 게 하나 없이 다양하고 개성적임에도 서로 낯설음에 대한 불안을 내 사고방식에 맞추어야 편해짐으로 억지를 부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흔히 ‘프로쿠르스테스의 침대’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물에 대한 객관성의 절대 결여상태를 의미할 때 주로 사용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새 스스로 프로쿠르스테스가 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어느 날 장자(莊子)는 제자들에게 발이 수없이 많은 노래기가 발 없이도 빨리 달리는 뱀을 부러워하고, 뱀 또한 자신은 수많은 등뼈와 근육을 움직여야 하는데 아무 형체도 없이 빠르고 힘찬 바람을 부러워하자 바람이 말하기를 “나는 손으로 큰 나무도 꺾어버리고, 큰 집도 날려버릴 수 있지만 사람이 손가락으로 나를 찌르고 발로 나를 밟아도 그것을 부러뜨릴 수도 날려 버릴 수도 없다네.” 하고 말했다. 이번에는 수리부엉이가 “나는 밤에는 벼룩도 잡을 수 있지만 낮에는 아무리 눈을 부릅떠도 저 큰 앞산을 볼 수 없다네.”라고 한탄했다는 우화를 들려주었습니다. 세상사는 이치와 삶의 방식이 다양함을 우화로 표현한 말입니다.

  오늘은 회의가 있는 날입니다. 우리나라의 회의는 대부분 전달에 가깝고, 안건에 충분한 논의가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충분한 논의를 하는 경우도 서로 상반된 주장이 합의점을 이루지 못해 도리어 불편한 감정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고 그러한 감정은 회의장 밖까지 이어져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회의가 잦을수록 성과는 반감된다는 우스운 소리가 나올 정도입니다.  ‘나와 다름의 수용’

 출근길에 새겨보는 화두입니다.

2008. 4. 30

 

 

198. 별에 대하여

 평범한 사람은 엄청난 우주가 가진 비밀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적습니다. 나 역시 지구는 태양계에 속해 있고 우주 속에는 태양계와 같은 은하계가 수없이 많다는 정도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구와 가장 가까운 달에 대하여 아는 상식이라고는 지구와 달까지의 거리가 38만km이라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웬 별이냐 하겠지만 “선생님은 제게 언제나 높은 별입니다.”라는 문자 하나를 받았거던요. 여기에서 ‘높은 별’이란 말이 주는 뉘앙스입니다. 한참이나 별을 바라 봤습니다. ‘너무 멀리 있구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생각을 뒤적이다가 오래 전 써 둔 ‘달’이라는 시가 생각났습니다.

 

 38만km의 거리/오가자면 76만km/야호-/동구 밖에서 너를 향해 소리를 지르면/얼마 후에야 내 목소리가 닿겠니?/그 목소리/계수나무에 부딪혀/얼마 후에야 메아리로 오겠니?/아폴로 우주선이 너를 향해 날고/닐 암스트롱이 네 곁에 잠시 머물렀다고/신기하다지만/정말 신기한 건/내가 눈빛을 보내기만 해도/금새 빛으로 답하는 너/내 가슴을 열기도 전에/어느 새 내 속에/들어앉은 네 얼굴//

 

 살아가면서 달에 대한 이미지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어린 시절 호기심과 낭만의 대상이었던 달이 한낱 물리적인 사물에 지나지 않고 숱한 전설과 이야기를 만들어 냈던 대상이 사람도 살 수 없는 불모의 땅으로 인식되면서 인간의 감정은 달의 표면처럼 삭막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많은 이들의 가슴에 이러한 물리적이고 과학적이 아닌 신비와 경외의 대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다행스럽습니다. 

 밤하늘에 수없이 많은 별이 반짝입니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별을 보면 별은 어느 새 내 눈 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수 억 광년이란 상상하기조차 먼 거리에 떨어져 있지만 별과 나는 금방 하나의 빛으로 만납니다. 물리적인 거리는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마음이 닿으면 늘 함께 빛나는 빛으로 만납니다. 이 만남은 시공(時空)을 초월한 만남입니다. 태양이 눈부신 아침입니다. 이런 눈부심을 넘어서 별을 만나는 인연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욕심을 부려봅니다.

허허허

2008. 5. 1

 

199. 내면(內面)과 외면(外面)

 낱말을 사용하다보면 서로 짝을 이루는 말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천국과 지옥, 밖과 안, 성공과 실패 등과 같은 말들은 서로가 짝을 잘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이를테면 내면(內面)과 외면(外面)입니다. 쉽게 생각하면 안과 밖 이라는 뜻으로 짝이 맞는 것 같지만 심리적인 측면으로 보면 많이 다릅니다.

 내면(內面)이라는 함은 ‘밖으로 드러나지 아니하는 사람의 속마음. 사람의 정신적, 심리적 측면을 말함’인데 비해 외면(外面)은 ‘마주치기를 꺼리어 피하거나 얼굴을 돌림. 어떤 사상이나 이론, 현실, 사실, 진리 따위를 인정하지 않고 도외시함.’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노라면 ‘외면’이라는 것이 마치 발가락에 난 티눈이나 손톱 밑에 들어간 가시처럼 작용만 해도 불편함이 동반되니  그 괴로움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인간관계에서 외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외면이나 무시(無視)는 ‘상관하지 않는’ 의미로 작용하지만 이미 외면이라는 행위가 나타 날 때까지의 심리적인 상태는 상대방의 일이나 생각이나 행동에 다양하게 상관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외면이라는 외적 행동은 이러한 내적, 심리적 갈등-이를테면 미움, 시기, 질투, 분노, 증오(憎惡)와 같은 것들이 증폭되어 마지막 단계에 일어나는 행동이기에 인간관계에서 ‘소극적 적대행위’와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외면은 때로는 상대방은 인식하지 못한 채 자신만이 무거운 짐으로 짊어져 결국 이런 관계가 오래 지속되면 자신만 정서적 피해자가 됩니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언제나 갈등이 있기 마련입니다. 갈등을 겪게 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경험과 가치관, 이해관계 때문입니다. 처음 시작은 별것이 아니나 나중은 좋지 못한 행위로 변합니다. 이미 여러 글에서 밝혔지만 이러한 내적 갈등의 치유는 이해와 용서와 사랑뿐인데 우리의 불행은 미련하게도 머리로만 인식할 뿐입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만나고 스치는 사람들. 나와 관계없이 무심히 지나치는 이도 있고 한 번 쯤 웃음을 주고받는 이도 있지만 만날수록 반갑고 정겨운 이도 있습니다. 오늘은 어떤 이를 만날까 상상해 봅니다. 행여 외면해야 할 사람이라도 만난다면.... 가슴에 다시 돋는 가시하나 어쩌지 못하는 아침입니다.

2008. 5. 3

 

200. 행복 쪼꼬렛

 언제부터인가 고속도로 휴게실에 들릴 일이 있으면 휴게실 코너에 진열된 책을 한 권씩 사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책을 사면 책 앞면에 꼭 그 날짜와 ‘ㅇㅇㅇ 휴게소 에서’라는 글을 남깁니다. 고속도로 휴게실에 진열된 책들은 대부분 3,000원 均一 價 입니다. 책값이 싼 것도 그렇고 내가 좋아하는 수필집이 많습니다. 단체 여행의 경우 오가는 길에 대부분 내용을 읽을 수 있어서 좋기도 하거니와 가끔 내용에 감동되어 혼자 웃기도 울기도 하는 맛은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즐거움입니다. 사실 여행이란 오묘한 창조질서와 자연의 변화, 그리고 함께한 이들과의 간격 없는 대화들로 채워지지만 요즘은 떠들고 흥청대는 분위기에서 조용히 혼자만의 생각을 즐기는 경우가 많아져 내겐 오히려 다행입니다.

 어제는 이웃 어른들을 모시고 원주에 있는 천주교 ‘배론 성지’를 다녀왔습니다. 단양 휴게소에 들렸을 때 맨 첫눈에 들어온 책이 ‘행복 쪼꼬렛’입니다. 첫 장을 열면서부터 나는 감격했습니다. ‘하얀 운동화’란 제목을 글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내 행동이 수상했는지 아내가 얼굴을 돌립니다. 나는 대충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아내는 내 이야기만으로도 눈시울이 붉어지나 봅니다. 애써 차창을 내다보며 연신 눈가를 훔치고 있는 걸 보면 말입니다. ‘거창하게 포장하면 할수록 퇴색되는 것이 사랑이다.’라는 속표지의 카피내용처럼 포장되지 않아서 더 감동적인 사연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내려오는 길 내내 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고 연신 눈시울이 붉어지며 나오는 콧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눈물을 과학적인 측면에서 살피면 ‘눈물샘 및 그 부근에 산재하는 부누선에서 결막낭 안으로 분비되는 투명한 액체’를 말합니다. pH는 약알칼리성이며 성분으로는 약간의 염분과 수분으로 이루어지고 각막과 결막을 항상 적셔서 이물을 씻어냄과 동시에 각막 상피에 포도당과 산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눈물의 기능 외에 더 많은 기능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눈물은 그 무엇으로도 분석할 수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것들이 잔뜩 들어 있습니다. 우선 눈물을 통해 내면이 순화됨은 물론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사랑의 실체도 체험하게 됩니다. 책을 읽는 내내 쉰 네 가지 서로 다른 사연들로 흘린 눈물 덕분에 황폐해 지던 마음이 많이 부드러워 졌습니다. 쪼꼬렛은 우리의 입을 잠시 달게 하지만 ‘행복 쪼꼬렛’은 몸과 마음까지 달콤하게 할 뿐 아니라 시공을 초월하여 행복에 젖을 수 있게 하는 매력을 지녔습니다. 참으로 행복한 여행이었습니다.

2008.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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