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 내일이라는 유혹
우리는 내일이라는 희망에 살고 있습니다.
희망이란 ‘앞일에 대하여 어떤 기대를 가지고 바람. 앞날에 대한 희망을 주는 마음의 기둥이나 지탱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 올 것이라 믿으며 삽니다.
만약 우리에게 내일이 없다면 얼마나 허무할까요? 어쩌면 허무를 넘어 절망에 이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곰곰이 살펴보면 내일이란 오늘이 있기에 존재함에도 우리는 가끔 내일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오늘을 소홀하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41년 교직생활을 퇴임했습니다.
우선 오늘 하루는 좀 쉬자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오늘이 벌써 보름을 훌쩍 넘겼습니다.
육신은 편하고 좋은 듯 했지만 생활의 리듬이 깨어지니 몸과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쓰자고 작정을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내 안에 자리해 있던 작은 옹달샘마저 꽁꽁 막혀 있었습니다. 결국 막힌 마음의 구멍 하나 억지로 뚫어내는 일에 열흘을 보내야 했습니다.
사탄의 유혹 중 가장 현명한 방법으로 채택된 것이 바로 ‘내일로 미루게 하는 것’이란 어릴 적 들은 예화가 생각났습니다.
성공적인 삶을 방해하는 나쁜 버릇 중에 미루는 잘못이 큰 것임을 이번 기회에 깨달았습니다.
그랬습니다. 우리에게 내일은 필요 합니다.
더구나 절망 중에 있는 이들에게 내일은 바로 희망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일이라는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오늘이란 우리가 내일을 준비하는 가장 소중한 내 시간이자 지금 이 순간이 바로 내일의 희망을 일굴 수 있는 텃밭입니다.
그러기에 언제 할까라는 머뭇거림에 시간을 빼앗기기보다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심을 두는 일이 중요합니다.
더구나 작품을 쓰는 이들은 흔히 말하는 ‘생각의 씨앗’이 하늘로부터 주어 질 때는 지체 없이 심고 가꾸는 일에 몰두해야 합니다.
잠시라도 미루는 순간 하늘의 지혜와 감동은 하늘을 아름답게 만들던 무지개처럼 이내 사라지는 경험을 했을 터이니까요.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오지 않습니다.” 라고 말한 마드 테레사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날입니다.
2009. 4. 8
221. 다시 쓴 일기
“퇴임한지 오늘이 꼭 세 달. 아침부터 우울하다.
이건 아니다.
집에 쉬면 손녀를 보겠다던 내 말이 씨가 된 것이다.
두 돌 채 되지 않는 손녀는 천방지축 제마음대로다.
아내의 고생도 그렀거니와 아이의 투정을 들어주기보다 편하다는 내 나름의 판단으로 밥 짓기, 설거지, 방청소, 음식물 쓰레기 처리까지 내 몫이 되었다.
매일 닦아도 노랗게 묻어나는 봄철 송화 가루는 일상만큼이나 짜증스럽다.
가끔 내 몸에서 음식물 냄새가 나는 착각을 일으킨다.
아이와 싸우면서도 아내는 아침 드라마에 빠진다.
보통 주부들의 아침을 잠식하는 드라마 증후군. 나도 곁눈질하며 ‘하얀 거짓말’이라는 드라마에 거짓말처럼 빠져 든다.” -중략-
이 날 쓴 일기의 한 부분입니다.
어른들의 이런 사정을 알 까닭이 없는 아이는 자정이 넘도록 설쳐 마침내 짜증이 터졌습니다.
내외간에 음성이 높아지자 아이의 눈 속으로 두려움이 스밉니다. 그럼에도 점점 화가 치밉니다.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긍정적으로 살자는 내 다짐이 한 순간 무너지고 있습니다.
얼마 만에 책상 앞에 다시 고쳐 앉았습니다.
“오늘도 퍽 분주 했다. 오른 쪽 팔 인대가 늘어났다고 끙끙 앓는 아내. 아이의 목욕물부터 속옷, 발라 줄 각종 크림 준비, 기저귀 챙기기. 우유타기, 컴퓨터 켜서 유아 동요며 뽀로로와 빼콤 함께 감상하기 등등. 소소하게 곁에서 도와야 할 일들이 만만치 않다.
내가 집에서 그나마 도움이 되고 있음이 다행이다.
어른들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일을 저질기도 하고 재롱을 떠는 아이. 우리 부부에게 수현이가 없었다면?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오히려 감사한 일이다.
퇴임 하면 내 방랑벽이 도질까봐 이를 아시는 하나님은 일부러 집안에 붙잡아 두시는 것 같다.
그리고 아이처럼 엉뚱한 일거리를 자주 만들어내는 내 성미를 아시니 내 신경을 다른 곳에 돌리시는 것 같다.” -후략-
글을 쓰다가 잠이 든 아이와 아내를 바라봅니다.
아내는 지친 모습인데 꿈을 꾸는지 아이는 입 꼬리에 잔뜩 웃음꽃을 달고 있습니다.
그랬습니다. 퇴임 하면 아동문학 강좌를 열고 싶다는 욕심을 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준비조차 하지 못한 나에게 하나님은 진정한 아동문학 체험학습을 계획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어른들이 할 수 없는 표정과 몸짓, 때마다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는 수현이는 동심의 세계를 경험하게 하는 내 스승이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아이 때문에 불평하고 화를 낸 내가 미웠습니다.
“사소한 일에도 감사하지 못한 내 의지가 부끄럽다.
다행이 이런 깨달음과 함께 내 잘못된 일기를 다시 고쳐 쓸 수 있는 여유를 주신 분이 계시니 참 다행스럽다.”
일기를 마무리 하자 타오르던 불평이 스러진 마음자리에 편안함과 아늑함이 밀려들고 있습니다.
아이 곁에 누워 봅니다.
아이의 숨 쉬는 소리가 꿈나라로 이끄는 행복한 자장가로 들리고 있었습니다. 허허허.
2009. 5. 13
222. 동구 밖 느티나무
참으로 오랜만에 동구 밖 느티나무와 마주 섰습니다.
불과 200여 미터. 지척에 두고 50년만의 해후(邂逅)입니다.
첨엔 서로 낯 갈이 하는 아이처럼 서먹했습니다. 어른인 내 팔 둘레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우람해 졌지만 세월의 흔적이 나나 나무나 마른버짐처럼 앉아있었습니다.
시간이 나면 느티나무 위에서 ‘붙잡기’ 놀이를 했는데 나무 타는 재주가 없었던 나는 자주 술래를 했습니다. 하지만 나무는 언제나 자신의 어깨와 큰 그늘로 기꺼이 모두에게 비워주었습니다.
우리들은 그늘아래 모여 흙을 묻혀가며 시간을 잊었습니다.
작열하는 뙤약볕과 맞서려는 듯 요란하게 울어대던 매미. 해 그림자 드리우면 날아드는 잘 새들을 품어 안던 무성한 나무 잎. 낙엽이 떨어지고서야 가까이 보이던 까치집. 엄마에게 꾸중을 듣고 속이 상한 나에게 나뭇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보여주던 빛나던 별. 별을 헤아리다 마음이 풀릴 때쯤이면 어김없이 어둠 속에서 나를 부르던 나직한 엄마 목소리. 마을에 일들이 생기면 모두들 나무 밑에 모였고 우리는 나무 위에 올라 어른들이 더불어 이루어가는 공동체 생활을 익히기도 했습니다.
어린 시절, 나무와 함께 꿈이 자라던 자리였는데. 언제부터인가 철이 들고 어른이 되어 삶이라는 현실의 물결 속에 떠밀려 다니는 동안 동심(童心)을 까마득 잊고 살았습니다.
신을 벗었습니다. 그리고 흙을 밟았습니다.
여전히 살갑게 다가오는 흙의 감촉. 나무의 가슴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자 줄기를 타고 물오르는 소리가 어느 틈에 내 가슴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를 향해 숨겨둔 이야기들을 쉰 개가 넘는 나이테를 들추고 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랬습니다. 내가 나무를 까마득 잊고 있었을 때에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새 잎을 피울 때는 희망의 촛불을 켜들고 봄을 알리려 하였고, 비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은 이파리와 가지가 찢겨 나가면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뚝심을 보여 주기 위해 안간힘으로 버티고 있었고, 가을이면 곱디고운 단풍으로 시를 엮어 파란 하늘 위로 노래하여 주었고, 황량한 겨울, 모두 외롭고 쓸쓸하다 할 때에도 홀가분하게 벗은 맨몸으로 서서 침묵으로 시련을 이기는 법은 깨우쳐주려고 서있었습니다.
미안하고 쑥스러워 덥석 그의 허리를 껴안았지만 세월의 간격만큼 한 아름에 안을 수 없는 나무. 하지만 어느 순간 50년의 긴 여정의 간격을 밀어내고 마침내 내 가슴에 매미들의 합창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소리들은 이윽고 한 여름 뙤약볕을 그늘 아래로 흔들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2009. 7. 28
223. 농심(農心)
아침 산책길에 한 농부를 만났습니다.
산책길 옆 손바닥만 한 빈터를 삽과 괭이로 부지런히 일구고 있었습니다. 꽤 이른 아침인대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고 겉옷은 이미 젖었습니다.
농사지을 땅도 넉넉해 이런 변두리 산자락을 거두지 않아도 될 만한 분입니다.
걷던 걸음을 멈췄습니다. 그 분은 잠시 허리를 펴며 길 아래 묵정밭을 보며 한 숨을 쉬었습니다.
땅은 농부를, 농부는 땅을 서로 미더워하고 사랑하는 게 세상의 이치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튿날 아침, 그는 부드러운 흙의 속살에 무엇인가 정성껏 심고 있었습니다.
“곡식은 농부의 발자국소리를 듣고 자라지요.”
아직은 아무것도 싹트지 않은 빈자리를 둘러보며 마치 선문답을 하듯 들려준 그분의 말입니다.
“농부의 발자국 소리라....”
남산 산책로를 한 바퀴 돌면서 그분의 한 마디가 자꾸만 머리에 맴돌았습니다.
농부의 말처럼 며칠이 지나자 텅 빈 자리엔 이곳저곳에서 싹들이 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또 얼마를 지나자 산자락을 향해서는 너 댓 포기의 호박순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그 아래로부터 몇 이랑은 땅콩이 자랐습니다.
그리고 산책로를 따라 옥수수들이 씩씩하게 줄을 맞추며 일어서고 있었습니다.
‘잘 살아 보세’라는 구호를 열심히 외친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구호 덕분으로 경제적으로 윤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잘 산다’ ‘잘’에 어느 틈엔가 정신적 가치를 배제한 경제적 의미만 통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더니 마침내 사람 사는 이치도 경제적인 논리로 정의되기 시작했습니다.
담을 넘어 나누던 이웃과의 인정은 애호박 하나도 돈으로 환산되면서 끊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흰 쌀밥과 고기는 넘치게 되었지만 우리 전통 사회가 이어주던 정신적 가치는 점차 자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입니다.
한동안 마무리하지 못한 원고를 정리하고 있는데 바깥에 인기척이 났습니다.
뜰에 내려서니 밀짚모자를 눌러 쓴 그분이 한 손엔 아주 참한 애호박 한 덩이를, 다른 한 손에는 옥수수 한 보따리를 들고 계셨습니다.
나누어 먹기 위해 길렀으니 당연한 일이 아니냐며 고마워하는 나와 아내에게 겸연쩍다는 듯 두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까맣게 그을린 그는 얼굴에 환한 호박꽃 꽃등을 달고 있었습니다.
그 정성을 받아 든 나와 아내의 얼굴에도 그분이 안겨준 환한 꽃등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모처럼 이웃을 만나는 아침이었습니다.
2009. 8. 1
224. 청문회(聽聞會)
TV화면에 비친 청문회 장면을 스쳐보면서 어이가 없어 웃었습니다.
정부 고위직에 임명될 한 관계자의 자격을 검정하기위한 청문회인데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는 참으로 희극이었습니다.
숱한 부정직한 보따리를 등 뒤에 숨긴 채 질문자의 질문을 피해가기위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느라 땀 흘리는 모습이 그랬고, 질문하는 그분 역시 자신의 등 뒤에는 제법 굵직한 비리가 담긴 보따리 숨겨놓고 가장 정직한 채 질문하는 모습이 어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다가 당리당략으로 분칠한 질문은 국민들을 초등학생으로 착각하는 유치함도 돋보였습니다.
“증인은 벌써 네 번째 위장 전입을 한 사실이 있지요?”
질문은 근엄했지만 그 분도 아마 지역구 국회의원을 하기 위해 여러 차례 위장 전입을 한 사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증인은 모 기업 00회장과 골프를 친 일이 있지요?”
질문하는 그 분은 00회장과 골프를 더 많이 친 일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지난 정부 시절 이런 저런 문제로 인해 법원의 결정으로 실형을 살기도 했고, 선거법이나 정치자금 문제로 세상이 떠들썩했던 분이기에 더욱 가소로웠습니다.
“위장 전입은 두 번은 자녀 교육문제로 그리고 그 이후는 내가 모르는 사실이었고 아내가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부동산 투기라고 하는 것은 투기가 아니라 노후를 위해 마련한 것일 뿐이고 자녀 병역문제는 유학 때문에...”
권력이나 명예가 얼마나 탐이 났으면 발가벗긴 자신의 알몸을 세간에 다 내어 보이며 스스로 생각해도 궁색한 변명에 낯이 뜨거워 오는 것을 참는 것일까.
이런 분들이 우리의 지도자라는 사실이 창피하고 우리 사회가 이런 모습을 아직도 봐야 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청문회란 국회에서 필요한 경우 증인, 참고인, 감정인을 채택하여 신문하는 제도로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 11월에 5공비리와 관련된 일해(日海) 청문회를 시작으로 광주민주화운동 청문회, 언론기관통폐합 청문회, 1998년 김현철 비리와 관련된 한보 청문회, 1999년 8월에는 옷로비사건 청문회, 파업유도사건 청문회 등이 있었습니다.
하나 이런 청문회를 통해 지금까지 밝혀진 진실이란 이미 보통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유비통신의 상식’을 확인하는 정도였고 그나마 존경하던 지도자들의 치부(恥部)를 괜히 들추어 이래저래 속상함만 앙금으로 남을 뿐입니다.
‘삼고초려(三顧草廬)’라는 사자성어를 남긴 유비와 제갈공명과의 만남을 우리 시대에서는 정영 찾을 수 없는 것일까요?
TV를 끄자 까만 모니터 위로 삼국지 영화 한 장면이 오버랩 되는 것은 그래도 아쉬움 때움이겠지요? 허허허.
2009. 8. 2
225. 행복의 가치
사람들이 붐비는 거리를 허름한 복장의 노인이 걷고 있습니다.
구부정한 허리에도 불구하고 그는 연신 무언가를 주워서 비닐봉지에 담고 있습니다.
첨에는 이상한 눈으로 곁눈질 하며 보던 사람들도 이젠 예사로 보입니다.
이 지역에서 저렇게 담배꽁초를 주워 온 지가 벌써 10년이 넘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가 주운 담배꽁초의 양을 모았다면 10가마가 훨씬 더할 것만 같습니다.
꽁초가 모일수록 깨끗해진 거리를 상상하는 그분의 얼굴에는 그 누구도 느끼지 못하는 행복한 미소가 잔잔히 번지고 있습니다.
‘도덕 재무장’ 운동에 참여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부터 해보리라고 시작한 일입니다.
또 한 사람. 바쁜 듯 길을 걷던 사람이 갑자기 멈추어 서더니 잠시 주위를 살핍니다.
이윽고 아주 빠른 손놀림으로 길거리에 떨어진 것을 집어 듭니다.
담배 꽁초였습니다.
그의 담배 갑에는 크기에 따라 차례로 꽁초들이 줄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런 횡재가...’ 그는 지금 아주 비싸면서도 2/3 정도나 남은 꽁초를 주워 들고는 얼굴엔 온통 기쁨으로 가득합니다.
한적한 곳에 이르자 이윽고 주운 꽁초에 불을 붙입니다. 희뿌연 연기를 시원하게 내뿜는 그의 얼굴에도 남이 알지 못하는 행복한 미소가 연기 속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담배 한 개비를 아끼는 그의 절약 정신에 대해 주변에 많은 사람들은 말이 많았고 마침내 그가 죽자 수 십 억 원의 거액이 예금된 통장이 발견되었다하여 한 때는 화재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행복이란 참 묘한 것이어서 그것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입니다.
다시 말하면 개인마다 ‘이것이 행복이다.’라고 할 만한 기준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각각 다르게 느끼는 개성적 행복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 는 없습니다.
그러나 앞의 두 사람에게서 다 같이 꽁초를 주었지만 평가는 각각 달랐습니다.
엄밀히 말해 우리가 후자를 비난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음에도 우리 사회가 전자는 칭찬을 후자에게 비난을 하는 까닭은 개인이 누리는 행복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공헌하는 가치로 남을 수 있느냐 하는 차이입니다. 흔히 사람의 삶을 꿀벌과 개미와 거미의 삶으로 비유하는 경우를 봅니다.
나의 행복을 위해 다른 이에게 아픔을 준다거나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지 않더라도 나만을 위한 행복 추구라면 과연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진정한 행복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오늘도 모든 이들이 행복한 삶을 꿈꾸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러면서도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출발하고 있을까? 나 자신에게도 던지는 물음입니다.
2009. 8. 22
226. 자동차의 상처를 지우며
3년이 넘도록 부스럼처럼 안고 다니던 내 자동차의 상처를 마침내 지웠습니다.
정비공장에 들를 때마다 진작부터 지우라고 권하던 상처입니다.
상처를 지우지 않은 까닭은 차문을 여닫을 때마다 ‘서둘지 말라.’, ‘화를 내서는 안 된다.’라는 나름대로 교훈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보다 깊이 내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건 하나의 핑계였을 뿐 차의 상처보다 더 깊게 패인 마음의 상처였습니다.
세월이 약이라기에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치유되리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 상처는 치료는 고사하고 속으로 더 깊이 곪아 갔고 겉은 멀쩡한 듯 했지만 그 속에서는 지독한 미움이 불같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미움이 이토록 무섭고 끈질긴 줄 차마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 미움의 근원도 따지고 보면 무너진 자존심을 되살리려는 옹졸한 집념이었습니다.
지난해입니다.
경주톨게이트를 막 들어서자 좌우 길가에 십이지신상이 줄을 서서 경주를 찾는 이들을 환영하듯 서 있는 걸 보았습니다.
그런데 앙증맞도록 서 있는 십이지신상이 갑지기 불쌍하게 보였습니다.
가장자리 경계와 출입 통제를 하기 위한 뜻인지 모르지만 십이지신상들이 아주 굵은 쇠사슬로 연결이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쇠사슬이 없는 모습이 훨씬 좋을 것 같아 경주시 홈페이지에 건의했더니 그 다음 기회에 톨게이트를 지나는데 아니나 다를까 십이지신상들이 자유로운 몸이 되어 참 보기가 좋았고 발빠르게 민원에 대처하는 경주시가 참 고마왔습니다.
돌아오는 길, 기분 좋은 마음으로 다시 그 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들은 한 목소리로 나에게 무어라고외치고 있었습니다.
그랬습니다. 십이지신상을 얽어맨 쇠사슬은 볼 줄 알면서도 지난 3년을 내가 매어놓은 쇠사슬에 매여 옴짝 달싹도 하지 못한 나를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생활의 순간 나를 짓누르기도 하고 얽어매었던 쇠사슬. 그것을 벗어 내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용서’ 뿐이라고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용서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내 생각을 내 생활에서 떨어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요. 용서는 용기가 필요했습다.
‘제가 이미 용서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아직도 미운 모습으로 마음에 남아
/저를 힘들게 할 때도 있고//깨끗이 용서받았다고 믿었던 일들이/ 어느새 어둠의 뿌리로 칭칭 감겨와/저를 괴롭힐 때도 있습니다.’
‘이해인 수녀의 기도집ㅡ다른 옷은 입을 수 없네.’라는 시의 일부입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용기를 내어 먼저 한 일이 자동차의 상처를 지우는 일이었습니다.
‘멋져요. 이렇게 좋은 걸 왜 진작 안하셨어요?’
내 속마음을 아는지 기름 묻은 장갑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종업원이 환한 웃음을 웃습니다.
‘가장 나쁜 감정은 질투. 그러나 가장 좋은 선물은 용서.’라는 어느 카페에서 읽은 글이 새롭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차를 타고 오는 동안 쇠사슬을 벗은 십이지신상처럼 마음이 하늘을 날 듯 가벼워지고 있었습니다.
2009. 8. 26
227. 지렁이 유감
어제 밤 가랑비가 내리더니 아침이 훨씬 상쾌하게 다가왔습니다. 대지가 산뜻한 얼굴로 환하게 웃고 있으니 산책 나선 사람들의 발걸음도 훨씬 가볍고 표정이 밝습니다. 먼 산도 오늘은 일찍 일어나 훤한 이마를 드러내면서 반가운 인사를 합니다. 이런 날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휘파람이 절로 나옵니다.
한참을 기분 좋게 걷는데 저 쪽에서 누군가 땅 바닥에 엎드려 조심스럽게 무언가 줍더니 연신 길 가장자리 풀 섶에다 던지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비 온 후 길에 나와 있는 지렁이들을 손으로 집어 옮겨주고 있는 중입니다.
그제야 나는 길 위에서 죽은 무수한 지렁이들의 주검을 보았습니다.
비가 오면 흙 속에서 나와 다니는 게 지렁이들의 습성이지만 안타깝게도 이 길은 흔히 말하는 우레탄으로 포장된 길입니다. 한 번 길 위로 나오면 불행하게도 다시는 흙으로 돌아 갈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지렁이들은 대부분 햇빛에 말라죽거나 사람들의 발길에 희생을 당합니다.
‘우레탄, 흔히 폴리우레탄(polyurethane)으로 불리는 인류의 과학 문명이 낳은 또 하나의 발명품입니다. ‘내부에 기포 구멍이 많아 열전도율이 낮은 덕에 단열재나 흡음재로 많이 쓴다. 폴리올(polyol)과 이소시아네이트(isocyanate)라는 액체 상태의 두 화학물질을 섞고 여기에 발포제를 넣어서 만든다. 불에 잘 타는 성질이 있으며, 불이 붙으면 일산화탄소(CO), 시안화수소(HCN) 같은 각종 유독가스를 내뿜어 인체에 치명적인 해를 줄 수 있다.’라고 인터넷 지식 백과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하찮다고 여기는 미물의 생명을 위해 가던 길을 멈춘 그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동안 보지 못했던 수만은 지렁이의 주검이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함부로 걷는 내 발걸음에 조심성이 생겼습니다.
되돌아보면 우리는 ‘편함’ 때문에 참 많은 것을 얻었고 또 잃었습니다. 편함은 ‘문명’이라는 화려한 열매를 얻었지만 자연과 소통하는 법을 놓쳐 마침내 자연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잘못을 저질게 되었습니다. 이 잘못으로 우리 세대는 이미 혹독한 자연으로부터의 도전을 받고 있음을 봅니다.
인간의 두뇌와 지식이 새로운 환경을 창조하는 일을 나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표현하고, 모험을 시험하고 싶은 것은 인간만이 가진 특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창조적 행위를 할 때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에게 이로울 때만 의미가 있다”라고 호주의 원주민인 ‘참사랑 부족’과 생활했던 말로 모건의 말이 절실하게 생각되는 아침이었습니다.
2009. 8. 30
228. 빚진 자
2009년 9월 1일부터 9일까지 필리핀 마닐라의 ‘빠세코’와 루세나의 ‘바라’ 지역에 의료선교를 다녀왔습니다. 마닐라의 번화가에서 불과 2km 떨어진 곳에 있으면서도 빈부의 격차가 너무 심해 한 눈에 천국과 지옥을 경험하는 듯 했습니다. 마닐라로 무작정 모여든 사람들이 사는 빈민촌 ‘빠세코’는 이곳 마닐라에서도 버림받은 땅입니다. 호적도 변변히 하지 못한 주민이 10만 명, 그 중에 어린이만 2만 명. 어른들은 일자리가 없어서, 아이들은 학교 갈 형편이 안 돼 사람들이 길과 집안에 가득 했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마약, 매춘, 장기매매와 같은 범죄들이 어둠 속에서 활기를 찾는 곳입니다.
22명의 의료진과 협력단원들은 한 마음이 되어 교정과 침술, 그리고 한방과 내․외과를 진료 및 치료하고 나는 약사와 함께 약을 처방하는 일을 했습니다.
이곳에 올 때 나는 어려운 이들에게 작은 것이지만 도움을 주러 간다는 자부심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가진 자의 시혜(施惠)’ 나 ‘있는 자의 오만(傲慢)’한 마음이 가득했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모여드는 그들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입장에 서게 되었고 값 싼 연민의 심정으로 그들을 만났습니다.
그런 나에게 조장휘 장로의 기도는 큰 소용돌이를 일으켰습니다.
“우리 민족을 위해 귀한 생명을 헌신했던 이 나라와 백성들에게 우리는 ‘빚진 자의 심정’으로 왔으니 오늘 하루 만이라도 이들을 최선을 다해 섬기는 겸손한 자가 되게 하소서.”
그랬습니다. 우리는 이들에게 빚진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빚진 자가 더 교만했습니다. 그들을 다시 바라보는 순간 내 눈엔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크던 작던 빚진 자들입니다. 교회는 복음의 빚을 졌고 국가는 우방들에게 빚을 졌습니다. 정말 가난했던 우리가 이렇게 잘 사는 나라로 바로 서게 된 것은 자신을 희생하며 우리를 도운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손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집니다. 부모 형제와 이웃과 사회와 국가로부터 지금의 내가 될 수 있도록 많은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에게 빚진 자들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 내 수고는 수고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흘리는 땀은 땀 그 이상의 가치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수고는 저희들의 몫입니다. 그러나 치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한 봉지 한 봉지 약을 지어면서 나의 기도는 더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2009. 10.1
불감증(不感症)은 의학용어로 많이 쓰이지만 일반적으로는 ‘감각이 둔하거나 익숙해져서 별다른 느낌을 갖지 못하는 일’을 말합니다. 뜻으로 보면 대수롭지 않지만 그러나 개인이나 사회가 이로 인해 예상 밖의 큰 화를 불러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은 자연재해 앞에 어쩔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동물들은 인간보다 더 예리한 감각으로 이 재해들을 예견하고 있음은 놀랍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첨부터 동물적인 이 감각이 없었던 것일까요?
내 좁은 생각으로 우리는 수많은 문명의 이기로 인해 본래 가진 감각을 잃지 않은지 모릅니다. 최근의 현상을 봐도 그렇습니다. 노래방 문화는 노랫말을 기억하지 못하게 만들고, 네비게이션의 길 안내는 오히려 많은 길치(痴)들을 만들어 내더니 빈번한 휴대폰 단축키 사용은 급기야 자기 집이나 가족의 전화번호마저 기억하지 못하는 현상들로 이어졌습니다. 이런 불감증들에 대해서는 웃고 넘기면 그만이지만 ‘안전 불감증’은 개인의 생명은 물론 국가 안보에도 심각한 문제가 되니 큰일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이 ‘설마 나에게 그런 일이..’ 라는 안일함이 점점 우리를 불감증 환자로 만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입산 통제를 무시한 산행으로 인한 조난사고나 위험 지역에 들어가 야영을 하다가 갑작스런 폭우로 인한 사고는 본인은 물론 119 구조대나 경찰들의 생명까지 희생하게 되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얼마 전 북한이 임진강 상류 댐을 무단 방류하여 발생한 인명피해는 우리사회 모두가 얼마나 ‘안전 불감증’에 중독되어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전쟁이나 기타 적의 전투 활동으로 우리의 생명과 재산의 손실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벌이는 비군사적 활동을 통틀어 민방위 훈련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훈련이 시작 된지 굉장히 오래 되었지만 경보 사이렌이나 깃발의 표시를 정확히 알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요? 내 생명과 재산이 직결된 절대 절명의 훈련을 ‘불편한 훈련’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걸 보면 말입니다.
영화 ‘해운대’가 방화 사상 또 천만 명의 관객을 돌파했다는 소식입니다. 우리 영화가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고 관객의 안목도 높아졌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단순한 흥행을 위한 영화가 아니라 우리에게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위기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은 기우(杞憂)일까요?.
필리핀의 태풍과 인도네시아 강진 등 우리와 가까운 지구촌의 재난들이 남의 일이 아닌 듯합니다. 이 모두가 타산지석이 되었으면 하는 하루입니다.
2009.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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