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 7월에 핀 코스모스
국도 갓길에 철 이른 코스모스가 화사하게 피었습니다. 가냘픈 몸매에 그 특유의 미소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모자람이 없습니다. 우리네 나이라면 코스모스에 얽힌 추억 하나 아련한 고향처럼 가슴에 묻혀 있을 것이고 젊은이 들이라면 그들 나름대로 또 하나의 추억거리가 하나씩 엮어 지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오늘 아침에 만난 꽃에서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다른 이미지 때문입니다.
7월에 활짝 핀 코스모스. 어딘지 계절에 걸맞지 않는. 하긴 요즘 비닐하우스 덕분에 제철에 피는 꽃이나 채소가 따로 없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래도 들꽃마저 계절을 분별하지 못한다면 심각한 일입니다.
인도네시아를 휩쓴 쓰나미나 미얀마를 휩쓴 싸이클론, 그리고 중국 쓰촨성의 대지진을 경험한 지구촌의 사람들은 한 결 같이 인간이 지닌 지혜의 한계와 자연의 거대한 반발에 속수무책임을 한탄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큰 변혁이 있을 때마다 개구리나 두꺼비 떼의 대이동이라 던지 물고기의 이상행동이라 던지 자연은 이미 여러 가지 방법으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주었습니다.
어린 시절 우리나라 사람 우장춘 박사의 ‘씨 없는 수박’ 발견에 환호를 보냈고 그 후 유전공학이 발달하면 하나의 과일나무에 여러 가지 과일이 달리는 시대가 온다는 환상을 가졌는데 마침내 인간은 유전자 변형 식품(‘유전적으로 변형된 유기체’(GMO, Genetically Modified Organism)을 만들기에 이르렀고 더 나아가 ‘줄기세포’를 통한 의료혁명을 꿈꾸기에 이르렀습니다.
인간은 창조 이래 유일하게 자연의 법칙을 거부하며 끊임없이 신의 생명창조 질서에 도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도전은 긍정적이 아니고 부정적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유전자 변형은 꿈이 아니라 동물은 물론 인간에게까지 치명적 식품으로 둔갑을 하여 끊임없이 자연에 도전했던 인간의 역사는 마침내 대 재앙을 스스로 초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일찍이 노자는 ‘無爲自然’을 루소도 ‘自然으로 돌아가라’ 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자연과 더불어 가 아니라 오히려 더 멀어지고 있는 형편입니다. 오늘도 제철 음식이 아닌 갖가지 채소로 만든 반찬과 과일을 먹었습니다. 자연 상태가 아니라 대부분 냉장고에 저장된 것들이며 인공 첨가물로 가공한 것들입니다. 오래 전부터 코스모스는 공해로 인해 왕성하던 번식이 눈에 뜨이게 줄어들었고 철 잃은 꽃들이 한 두 송이정도만 눈에 띄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7월에 만개한 코스모스를 보니 시적 감흥보다 오히려 두려움이 앞섭니다. 코스모스가 미련한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가 아닐까하는 우려 때문입니다. 이런 걱정이 차라리 소심한 내 성격 탓이라고 억지로 우기고 싶다는 것이 솔직한 아침입니다.
2008. 7. 10
212. 꽃이 청춘이라면....
이른 봄. 겨우내 보듬던 첫 눈을 틔우는 새싹을 보노라면 보드라우면서 가녀린 모습이 아기들의 살결처럼 신비합니다. 이윽고 빗으로 빗은 듯 결 고운 햇살이 조금씩 굵어지면 연한 잎과 색깔은 차츰 진한 녹색으로 힘이 실리고 이어 작열하는 태양이 온 세상을 달구는 여름이 되면 녹색은 오히려 검은 빛이 감도는 강렬함으로 자신을 의지를 마음껏 펼쳐 보입니다. 이렇듯 꽃과 잎이 어우러져 펼치는 자연의 신비한 생명력에 지구는 자전을 멈추고 싶은 충동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우리 인생을 흔히 계절과 비유하기도하고 자연의 이치와 견주기도 하는데 아마도 꽃피고 잎 무성한 이시기는 정녕 청춘이라 할 만 합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 계절을 사랑합니다. 꽃은 꽃대로 화려해서 아름답고 잎은 잎대로 무성해서 멋있습니다. 그러나 이 화려함이나 무성함도 결국 열매를 맺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 아닐런지요. 꽃이 청춘이라면 열매를 맺고 익히는 일은 중년과 장년의 몫이라 하겠지요. 꽃이 한 순간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일이라면 열매를 보듬고 익히는 일은 시나브로 정성을 다하는 일입니다. 비록 겉으로 확연히 들어나는 일이 아니어도 시간을 두고 열매의 속살을 채우고 보듬는 오랜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 송이 꽃에서 씨앗을 잉태하는 순간도 신비하지만 하나의 열매로 성숙해가는 과정은 오히려 엄숙합니다. 잎사귀들이 수 없이 품어 안은 햇빛과 여린 실뿌리가 어둠 속에서 자아올린 정갈한 물로 영양분을 만들고 때를 따라 이른 비와 늦은 비에 몸을 맡기며 때로는 가뭄이나 심한 비바람에 흔들리는 아픔도 견뎌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은 열매를 위한 것이기에 그 수고의 땀을 오히려 당연하게 여깁니다. 이 ‘당연히’라는 희생이 없다면 아름다운 열매와 그리고 그 안에 새롭게 창조되는 생명의 씨앗은 이루어 지지 않겠지요.
세월이 빨라 중년을 넘어 장년으로 넘어 섰습니다. 첫돌배기 손녀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가 거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현관문을 나서는 내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매달리는 것이 우습습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 앞만 보고 부지런히 달려온 지난 날. 히끗히끗한 머리칼을 걸림이 없이 쓰러 올리다가 어느새 내가 여기까지 왔을까 잠시 뒤돌아보는데 반백의 머리칼이 꽃보다 오늘따라 훨씬 더 멋지다는 걸 느끼는 아침입니다. 허허허.
2008. 7.25
213. 행복일기
‘늦잠. 식사할 여유가 없이 출근하려는데 아내가 토마도 쥬스를 내민다. 냉장고에 마지막 남은 토마도란다.’,
‘하늘이 너무 무겁다. 우산이 없어 난감한데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퍼붓는 소나기’.
‘미쳐 백미러 보지 않고 차선 변경하려는데 휙- 지나는 외제 승용차 한 대. 겁에 질린 내 차도 나만큼 떨고 있다. 휴-’
며칠 전부터 이상한 일기를 쓰기로 작정했습니다. 거창하게 이름을 붙여 ‘행복 일기’입니다. 아직은 서툴러 그냥 메모만 하는 정도입니다.
‘Carpe Diem’이란 ‘현재를 즐겨라’, ‘오늘의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란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늘 복권 당첨이나 기적 같은 사건을 행복이라 착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면 발견할 수 있는 행복은 하루에도 얼마든지 많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입니다.
행복은 한 개인의 감정이나 가치관에 따라 분명한 차이가 나면서 존재하므로, 어디까지나 당사자의 주관에 의해 만족감이 성취된 심리상태에 따라 달라집니다. 흔히 행복으로 인해 파생되는 심리 상태 즉 만족, 기쁨, 즐거움, 신남, 보람을 느낌, 평온감 등으로 존재하나, 매슬로가 지적한 것처럼, 사람의 욕구는 계속하여 더 높은 단계를 원하기 때문에 '절대적 행복'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행복은 그 속성상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지만 느낄 수 있는 감정입니다. 그러기에 가끔은 행복을 느끼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훈련을 하는 이유는 훈련을 통해서 익숙해지고 익숙함은 곧 편하게 되고 편함은 심리적으로 행복을 느끼게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집을 나서면서 기대를 해 봅니다. 오늘 하루, 나를 행복하게 해 줄 행복의 동행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하고.
2008. 8. 22
214. 불편 참기 연습
국제 원유 가격 상승으로 정부도 승용차 홀짝제라는 극단의 처방을 내렸습니다.
1993년부터 타기 시작한 승용차 덕분(?)에 체중이 늘어나자 이상하게 운동도 하기 싫고 가까운 거리도 걷기보다는 차를 타는 못된 버릇이 생겼습니다.
정부시책도 시책이려니와 건강유지를 위해 일주일에 3번은 자전거를 타리라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시작 첫 날부터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습니다.
늘 시간을 앞당겨야 했고, 복장도 그렇고, 약속이 있을 땐 기동성이 떨어지기에 신중해야 했습니다.
‘풍선 효과(ballon effect)’라는 것이 있습니다. 풍선의 한 곳을 누르면 다른 곳이 불룩해지는 것처럼 특정 분야의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나는 현상을 말합니다.
승용차가 내게 베푼 ‘편리함’만큼 내겐 잃은 것들도 참 많습니다.
운동량이 부족하니 건강이 조금은 약해지는 것 같습니다. 한편 자동차는 속도감이 있어 여유가 있을 법 하지만 속도는 더 빠른 속도를 요구하여 결국 ‘빨리’라는 속도의 톱니바퀴에 물려 여유를 잃은 것 같습니다.
교통이 좋지 못했던 시절, 친척의 길흉사에는 하루나 이틀씩 서로가 묶어가곤 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친척끼리 얼굴도 익히고 서로의 형편을 이해하며 혈연의 정을 나누곤 했습니다. 하지만 교통의 발달은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에서 겨우 몇 시간정도 얼굴을 대면하다보니 인정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앞만 봐야하는 승용차는 옆을 돌아볼 여유가 없으니 이웃끼리도 스쳐 지나야 하는 꼴이 되었습니다.
아직은 불편한 점이 많지만 아침 일찍 서둘러 자전거를 탑니다. 시원한 아침 공기가 폐부를 가득 채웁니다. 보지 못하고 지냈던 앞산의 늘씬한 이마와 훨씬 커버린 나무들도 보입니다. 이 가을을 장식하는 코스모스가 제 빛깔을 뽐내며 내 눈 안에서 한들거립니다. 만나는 이웃들에게 손 인사 눈인사도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머릿속에는 생각할 여유도 생겼습니다. 불편함도 참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아침입니다.
2008. 9. 9
215. 아내와 감사장(感謝狀)
‘감사장. 김성자(金成子). 귀하께서는 35년간 김해 김씨 가문으로 출가하여 자신을 희생하며 부모를 공경하고 가정의 평안과 가족들의 건강과 신앙생활을 위해 헌신하였기에 결혼 35주년을 맞이하여 감사의 글을 이곳에 옮겨 드립니다. 2008년 1월 17일 가족대표 김재수 드림’
위 글은 결혼 35주년을 맞으면서 내가 손수 제작하여 아내에게 전달한 감사장입니다. ‘마누라에게 무슨 감사장’이냐고 웃을 일이지만 내가 이 감사장을 만들게 된 것은 진심으로 아내에게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예로부터 자식자랑, 아내자랑은 팔불출(八不出)에 해당된다고 하지만 결혼하여 한 번도 신혼다운 생활 하지 못하고 남이 힘들다는 홀시어머니를 정성껏 모셨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20년 전 회갑을 하시던 해에 그만 중풍이 왔고 다시 정상적인 활동을 하시는 듯 했지만 재발하여 지금까지 고생 하고 계십니다. 어머니는 환자이니 고생이 그러하지만 아내의 약수발이며 병간호는 참으로 지극했습니다. 결혼기념일이나 생일이 되어도 변변한 선물 하나 하지 못한 죄스러움도 있고 해서 이번만은 좀 근사한 선물을 하고 싶었습니다. 월급을 타면 늘 주는 생활비지만 은행에 가서 신권으로 100만원을 바꾸고 깨끗한 봉투에 담아 감사장과 함께 전달했습니다. 무슨 싱거운 장난이냐며 눈을 흘기는 아내는 속으로 무척 행복해 했습니다.
그 어머니는 올 6월에 세 번째 중풍이 왔습니다. 이제 첫돌지난 손녀까지 돌봐야 하는 아내로서는 감당하기에는 한계에 이르러 할 수 없이 병원에 모셨습니다. 이제 9월이 되면 두 달하고도 열흘이 넘습니다.
퇴원을 하고 싶어도 아내에게 미안해 마음속으로만 걱정 하고 있는데 “어머니 퇴원도 해야 하는데 빨리 방을 비워야 하지 않겠느냐”며 며칠 전부터 아내가 채근을 하더니 서재로 사용하던 방을 며칠 째 땀을 흘리며 나와함께 정리 했습니다.
내일이면 어머니가 퇴원을 하십니다. 대소변은 물론 혼자서는 식사도 못하십니다. 정신도 많이 혼미해 졌습니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 무거운 멍에가 아내의 어깨위에 얹힐 것 같습니다.
손녀를 등에 업고도 무엇이 즐거운지 아내의 입에서는 찬송가 한 구절을 흥얼거립니다. 팔불출이 되면 어떠랴. 이런 아내가 더 건강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집을 나서는 아침입니다.
2008. 9. 9
212. 기저귀 갈기
아빠 발 씻겨 드리기가 숙제다/ 부끄럽기도 해서 망설였지만/나를 바라보시는 선생님 모습/의자에 아빠를 앉히고/발을 씻겨드렸다/시멘트 바닥처럼 굳어버린/아빠 발/발을 씻기는 손이 떨리고/왈칵 눈물이 나왔다.
아주 오래 전 ‘상주어린이백일장’에서 장원 한 옥산초등학교 학생의 작품입니다. 지은이의 이름은 잊었지만 너무 그 장면이 생생해 외우고 있습니다.
요즘 내가 엄마의 기저귀를 갑니다. 가끔 아내와 손녀의 기저귀를 갈면서 포동포동 젓 살이 오른 다리를 보며 더럽다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행복해 했는데 엄마의 기저귀를 갈면서 뼈만 앙상한 다리가 가슴이 아팠습니다.
엄마도 내가 어린 시절 내 기저귀를 갈면서 포동포동 살이 오른 날 보며 행복해 하셨겠지요. 내가 초등학교 시절 늑막염으로 한 달 간 학교를 가지 못했을 때 안타까워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치지 않고 솟는 샘처럼 엄마의 사랑과 헌신으로 나는 이렇게 오늘까지 왔는데 자신의 모두를 남김없이 내게 넘겨주신 엄마는 이렇게 앙상한 모습으로 누워있습니다. 미안함과 죄송함이 가슴 저 밑바닥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젠 자식이 누구인지, 며느리가 누구인지 목소리를 들어야 분간이 가능하고 그것마저 5분이 지나면 또 딴 소리를 하는 엄마. 그런 엄마의 정신과 육체를 고려하지 않고 정상인인 내 수준으로 맞추려 하니 서로 어긋난 생각과 행동의 간격으로 겪는 문제는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나도 몰래 불쑥불쑥 나오는 짜증으로 스스로 감당 못하게 할 때도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은 끝이 없고 세상 이치는 내리사랑은 하늘의 법이라지만 조금만 이런 이치가 반반으로 조정이 되었다면 자식들이 부모에게 향하는 애증(愛憎)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창밖 석류나무엔 잘 익은 석류가 입을 열고 빨갛게 웃는데 푸르던 석류 이파리는 추분이 지나자 누렇게 변하고 있습니다. 열매 속에 석류알맹이들은 누렇게 변해 이내 떨어질 이파리의 아픔을 알기나 할까요?
머지않아 가을 낙엽처럼 우리 곁을 떠날 엄마. 자식들의 원망과 짜증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 가장 편안한 모습으로 잠들고 있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사랑을 저 잠든 모습에서 발견하는 마음을 주소서.
기도하는 아침입니다.
2008. 9. 24
213. 만남이라는 것
일상이란 수없이 많은 이들과의 만남과 관계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이런 만남들은 때로는 필연으로 때로는 우연일 경우도 있습니다. 흔히 우연한 만남과 그 순간의 교감, 또는 우연한 만남이 오랜 시간을 보내며 그 교감의 관계들은 뜻밖의 의미로 다가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호등 앞에 정차된 승용차 차번호가 눈에 많이 익은 듯해서 보니 내 직장 전화번호였습니다. 괜히 반가웠습니다. 어쩌다 내 차와 비슷한 번호만 봐도 반가운 것은 아마 인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오늘 아침, 내 앞에 선 봉고 트럭. 차번호가 우리 집 전화번호입니다. 더구나 트럭위에 실린 보일러용 기름 탱크가 낯익었습니다. 신호대기 중이라 자세히 살펴보니 바로 우리 집 보일러실에서 나온 탱크입니다. 20년을 보일러실에 자리 잡고 앉아 추운 겨울에 기름을 공급해 주던 기름 탱크. 며칠 전 심야전기공사를 하면서 내 놓았는데 우리 집 전화번호와 같은 트럭위에 실려 가고 있습니다. 이상한 호기심으로 나도 모르게 그 트럭을 따라갔습니다. 트럭은 시내를 가로질러 외곽지에 자리 잡은 고물상으로 들어갔습니다. 멀찍이 차를 세우고 고물상으로 사라지는 20년 지기 기름통을 보면서 묘한 연민의 정이 들었습니다. 저 기름통은 머지않아 또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겠지요.
한낱 사물과의 만남도 이러한데 일상을 통해 맺어지는 수많은 사람과의 관계를 너무 소홀이 했다고 자책했습니다. 인간관계는 참으로 묘해서 여건과 상황에 따라 수없는 변수가 작용됩니다. 그러므로 미묘한 감정의 차이에서도 결과는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함에도 이런 관계에 소홀하게 대처함으로 엉뚱한 일들이 생겨나게 하곤 합니다.
특히 사람과의 관계는 한 번 어긋나게 되면 원상회복이 어렵습니다. 어쩌면 영원히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어집니다.
다시 차를 되돌리며 오늘 나와 맺게 될 또 다른 인연들을 생각합니다. 비록 보잘 것 없는 것들이라 하더라도 소중히 챙겨 아쉬움처럼 영원히 기억되는 인연을 만들겠다고 다짐하는 아침입니다.
2008. 10. 18
214. 가시
‘가시’라고하면 긍정적이기 보다 부정적인 말로 많이 사용됩니다. 가시는 ‘바늘처럼 뾰족하게 돋친 것’, ‘물고기의 잔뼈’, ‘살에 박힌 나무 따위의 가늘고 뾰족한 거스러미’, ‘ 남을 공격하거나 불평불만의 뜻을 담은 표현’ 등으로 사전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가시가 세다’, ‘가시가 박히다’, ‘가시 먹은 것 같다’ 등의 관용구의 의미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극히 작은 가시하나로 인해 고통스러웠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 터이지요.
하지만 이런 가시는 뽑아 낼 수 있어 다행이지만 잘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잘 뽑히지도 않는 가시가 있으니 문제입니다.
어느 날 장난삼아 ‘미운사람’ 이름을 적어봤습니다. 그런데 이외로 여럿이 나와 나도 놀랐습니다. 하얀 메모지 위에 쓰여 진 이름들이 한결같이 ‘왜?’ 하고 반문하는 듯해 민망했습니다. 따지고 보니 이들은 이런 저런 이해관계로 얽힌 이들이었고 대부분 관계에서 소통이 원만하지 못했던 이들입니다. 소통의 불편함이라 했지만 따지고 보면 나와 다른 가치관의 차이 때문입니다. 참 다양한 세상에 다양한 사람들이 저마다 다양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데 이 미묘한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내 알량한 잣대만을 금과옥조로 믿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내 마음을 읽지 못한 그들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그 까닭조차 모르고 있을지도 모를 터이지요.
이번에는 ‘좋은 사람’ 하고 이름을 적었습니다. 그러나 미운이만큼 그 이름이 확연하게 떠오르지 않는 것은 어쩐 일인지요?
천평 저울에 실린 내 삶의 방식이 이토록 부정적인 방향으로 쏠리고 있다니. ‘참으로 잘못 살고 있구나.’ 하는 후회가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징소리로 울리고 있었습니다.
‘행과 불행이 멀리 있지 않고 내 마음 하나에 달려 있다’고 남들 앞에서는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내 스스로 불행의 덫을 놓고 있음을 발견 했습니다.
짜증도 내고 화도 내면서 모두 그들 탓이라고 원망했던 일들. 되돌아보니 내가 만든 보푸라기들이고 결국 이것들이 나를 찌르는 가시였음을 우연한 장난이 일깨워 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8. 11. 14
215. 무엇으로 채울까?
어느 서당에 훈장님이 학동들을 모아 놓고 엽전 한 닢으로 방안을 가득 채울 수 있는 물건을 사오라고 했습니다.
이때 두 아이가 손을 들고 나섰습니다. 한참 후에 한 개구쟁이가 막대 끝에 오물을 잔뜩 찍어 와서 방안에 한 바퀴 휘둘렀습니다. 고약한 냄새가 방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모두들 코를 막고 앉았는데 이번엔 다른 아이가 양초 한 자루를 들고 들어오더니 말없이 불을 붙였습니다. 양초는 점점 방안과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의 눈 속을 빛으로 채우고 있었습니다.
훈장님의 뜻을 아는 두 아이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참 지혜롭습니다. 그러나 이런 지혜도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 남에게 피해를 주기도하고 덕을 주기도 합니다.
우리의 지식이나 경험은 전자보다 후자의 지혜가 훨씬 사회를 밝게 하는 요소임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앎을 실제 생활 속에서 실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는 가끔 볼일이 없으면서도 ‘상주농협남원동지점’에 갑니다. 여기 가면 신기하게도 사무실을 밝고 따스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육근영 지소장, 이현숙 과장을 비롯한 네 분의 지소 가족들입니다.
들어서면 마주치는 눈빛부터 다릅니다. 꼭 집어 무어라 표현하기 어렵지만 직원들의 표정과 말씨 속에 자연스럽게 베어 나오는 친절은 흔히 일선 창구에서 보이는 박제된 직업적 친절이 아님을 직감합니다. 노인 고객들이 자동화기기에 익숙하지 못할 땐 부모님을 대하듯 기꺼이 창구 밖으로 나와 도와드립니다. 추운 날씨에 손을 호호 불고 들어오는 고객들에게 억지로라도 권하는 차 한 잔은 마시기 전부터 마음을 녹이게 합니다. 그런데 둘러보면 사무실의 환경과 집기의 배치가 세련된 것도 아닙니다. 너무 깔끔한 곳은 괜히 마음이 쓰인다는 심리까지 아는 분들입니다. 그러기에 조금은 정리되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오히려 고객을 편하게 하는 요소라는 마음 씀씀이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사군자 그림이 사무실과 휴게실 벽에 나붙기 시작했습니다. 요즘은 사무실 창문마다 마치 창호지를 바른 것처럼 그림이 붙어 있기까지 합니다. 아직은 설익은 과장님의 솜씨지만 고객들을 위한 애정 표현임을 잘 압니다. 그래서 모두들 이 그림까지 싫지 않은 것은 표구하지 않은 습작에서 화장기 없는 순수미를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난 어제도 오늘도 이곳에 들렸습니다. 물론 볼일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들어오면 주책 서러울 만큼 말이 많아집니다. 볼일이 다 끝났음에도 쉽게 자리를 뜨지 않고 오래 머물고 싶은 것은 아마도 이분들이 켜는 따스한 빛이 내 가슴에 가득 차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2008. 11. 18
216. 한 그루 소나무
우리 집 거실에 며칠 전부터 참 멋있는 소나무 한그루가 있습니다. 산 정상. 그것도 험준한 바위 위에 당당히 자리 잡고 앉은 소나무 사진입니다. 전시회를 마친 이 지역 사진동호회 남경환 씨로부터 기증 받은 작품입니다. 사진에 대해 문외한이기에 그냥 아름다운 정경을 바라볼 뿐이었는데 볼수록 조금씩 다른 이미지가 보입니다.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감성을 가지기만하면 느낄 수 있지만 그러나 보다 깊은 심미의 세계에 들어가려면 전문가들의 의견이나 조언이 필요합니다. 이론이나 경험으로 특정한 분야에 정진한 이들은 남들이 소유하지 못한 특별한 지식을 얻게 되고 우리처럼 평범한 이는 이들의 설명을 들어야 평소 알지 못해 답답했던 부분들이 마치 햇살이 비치듯 환해짐을 느낍니다. 이 작품에 대해 그분의 의도와 작품세계에 대한 설명은 듣지 못했지만 주신 분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 너무 고마웠습니다.
제 좁은 안목으로 본 정경은 가을 하늘이 비취색으로 열리면서 그 끝자락으로 하늘과 땅이 편하게 손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마다 수묵화의 농담으로 누운 다섯 개의 산들이 독특한 원근감으로 하늘의 아득함을 가늠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끔 살면서 ‘아득함’이나 ‘막막함’을 만납니다. 그러나 그 아득함도 마침내 끝나는 자리가 있고 그 자리는 다시 또 다른 세상과 이어지는 통로가 있음으로 새로운 희망을 꿈꾸고 있지 않습니까.
이름 모를 산의 정상, 기암절벽에 단정히 앉아 참선하는 모습으로 족히 수 백 년을 견뎌왔을 소나무 한그루가 다섯 개의 산들을 고즈넉하게 굽어보고 있습니다. 이따금 정상을 지나는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소리도 들립니다. 지금 저 솔가지들은 솔잎을 스치는 바람의 이야기 하나에도 귀를 열고 있을 터이지요. 소나무 아래 자리한 이름 모를 관목들은 저마다 마지막 가을을 아쉬워하며 화려한 빛으로 물이 드는데 정작 가부좌를 튼 소나무는 환한 세상에 홀로 역광인 채 명상에 들어 있습니다. 무엇을 염원하는 것일까요? 정상에서 바라보는 이 소나무에게 산 아래 펼쳐진 세상은 어떤 의미가 있을지 어리석은 질문(愚問)을 나 자신에게 해 봅니다.
아침 출근 전, 사진 앞에 잠시 서 봅니다.
어제 본 소나무의 모습이 이아침 또 다른 모습으로 내게 다가와 무언(無言)의 말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아직은 그의 말을 들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지만 언젠가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깨닫게 될 날이 오겠지요.
오늘은 솔잎 사이를 지나는 청정한 산바람 한 자락만 가슴에 담고 집을 나섭니다.
2008. 11.17
218. 한 잎 낙엽처럼 그렇게
출근길입니다. 정지선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문득 가로수에 매달린 나뭇잎 하나가 가지에서 손을 놓고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가을이 되면서 늘 보던 광경이었지만 이상하게 가슴속에서 에밀레종소리가 울렸습니다. 한 장 나뭇잎을 떠나보내는 나무의 빈손과 바람에 실려 그렇게 떨어지고 있는 낙엽. 불현듯 저 나무와 낙엽은 이별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해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이요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변하지 않는 진리가 우리 앞에 있음에도 우리는 무슨 준비를 하고 있을까요. 하루하루 삶에 내 모든 것을 올인 하면서 정작 ‘이별’이라는 현실을 남의 일처럼 생각하거나 이들이 늘 함께 있을 거라는 착각 속에 살아오지는 않았는지요. 아니면 언젠가 다가올 아픔이 두려워 일부러 무시하고 살았는지도 모릅니다.
집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다급한 아내의 음성입니다. 아침 출근길에 보았던 한 장의 낙엽이 떠올랐습니다.
집에 도착하자 엄마는 이미 운명하셨습니다. 오전 11시 경, 목사님이 예배를 드리고 가신 후 아내가 젖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 드리는 사이 그렇게 편안하게 가셨답니다. 병원에서 퇴원 하신 후 줄곧 한 달 동안 같은 방에서 잠을 잤지만 정작 엄마가 가시는 하늘 길을 지켜주지 못한 불효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되돌아보니 엄마는 평소에 이미 이별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먼 길 가시면서도 나와 가족들에게 단 한마디의 별다른 당부를 하지 않으셨던 것은 자신의 삶의 모습으로 이미 하실 말씀을 대신한 것 같았습니다.
엄마는 신혼의 꿈이 채 깨기도 전, 6․25라는 민족의 비극 앞에 희생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 철부지 나 하나를 위해 여생을 그렇게 보냈습니다. 회갑을 하던 해에 중풍이라는 불청객까지 찾아 왔으니 여든이라는 개인의 역사 속에 견디기 힘든 날들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하지만 하나님을 향한 신앙으로 꿋꿋하게 견디며 흐트러짐 없는 삶으로 본을 보였습니다. 그러기에 난 누구보다도 엄마의 무언의 말씀을 알 수 있습니다. 이별의 말씀이 나에게 어떤 아픔이 될 것이란 것까지 엄마는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엄마를 반기는 듯 감나무 위에 까치가 유난히 소리 내며 반가워합니다.
아버지 계신 무덤. 참으로 긴 세월, 54년 만에 엄마를 함께 모셔두고 돌아오면서 다짐을 했습니다. 나도 엄마처럼 내 자녀들에게 말이 아니라 삶의 모습으로 모든 것을 보여 주리라는 다짐 말입니다.
2008. 11. 22
219. 자신감
어제 상주문화회관에서 상주아카데미가 열렸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인기 강사 최윤희 씨가 왔습니다.
아내는 최윤희 씨의 펜입니다. 손녀를 등에 업고서도 강의를 듣겠다고 나서기에 할 수 없이 나도 참석했습니다. 그녀의 달변과 유모는 샘물처럼 거침없이 쏟아져 두 시간 내내 청중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나도 이곳저곳에서 강의를 한 일이 있지만 저런 열정으로 강의를 하고 싶다는 것이 평소 욕심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분의 몸짓, 말씨, 억양 하나도 빼놓지 않고 열심히 경청했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강의를 다 마쳤을 때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저서를 한 권 주겠노라 제의를 했습니다. 그녀의 강의를 들으면서 800명이 넘는 방청객 중에서 과연 내가 손을 들고 질문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두 시간이 한 순간처럼 지나가고 마침내 그녀는 질문자를 찾고 있었습니다. 일순간 좌중이 조용했습니다. 누군가가 앞에서 손을 드는 것 같았지만 손이 올라 가다가 내려가고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연단 앞으로 나가 그녀와 함께 섰습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습니다. 무슨 대화를 했는지,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녀의 저서 한 권을 받아 연단을 내려오면서 800명의 방청객들의 시선과 마주한 내 자신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 며칠 후면 41년의 교직생활을 마감하고 퇴임을 합니다. 많은 이들이 퇴임은 곧 새로운 인생의 출발이라고 말하지만 삶이란 그리 만만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걸어 온 길은 어쩌면 안정되고 편안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 새롭게 걸어야 할 길은 불확실하기만 합니다. 꼭 무엇을 할 것인지 정해두지도 않았습니다. 마음속으로 막연히 이런 저런 일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만 했을 뿐입니다. 과연 새롭게 출발하는 나의 길을 잘 걸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이런 나에게 ‘긍정의 힘’을 강조하는 그녀의 강의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래 나는 잘 할 수 있어.’라는 자신감이 어느 듯 내 가슴 속에 살아나고 있었습니다. 내가 손을 든 것은 유명 인사의 저서 한 권이 욕심난 것도 아니고 한 때의 치기(稚氣)로 다른 이들에게 주목을 받고 싶은 영웅 심리는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다만 이 많은 방청객들 중에서 과연 내가 가장 먼저 손을 들 수 있을까 하는 나 자신을 시험하고 싶었던 겁니다.
돌아오는 길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긍정의 힘’을 지은 조엘 오스틴의 말처럼 ‘믿는 대로 된다’라는 신념만 있다면 결코 제2의 인생을 출발하는 내 앞에 좋은 것들이 이루어 질 것이라는 확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돌발적인 행동으로 손녀를 업고 연단 앞까지 걸어 나왔던 아내는 아직까지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습니다. 부끄러워하던 아내의 얼굴까지 오늘은 퍽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2009.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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