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학/산문

봄날

빛마당 2010. 4. 15. 21:47

 

241. 봄날

 아내와 모처럼 나란히 걸었습니다. 짧은 거리도 승용차에 의존하던 습관을 바꾸어 보자는 생각에서였는데 자동차의 속력만큼 빠르게 앞서던 시간이 우리들 걸음의 속도만큼 느슨하게 따라와 좋았습니다. 더구나 아주 가까이에서 가로수 연한 가지에 통통하게 물 오른 잎눈과 눈인사 하는 일이며 인도 사이를 뚫고 올라오는 연한 새싹들에게 발목을 잡혀 잠시나마 발걸음을 멈출 수 있었으니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은 듯해서 더 좋았습니다.

 그랬습니다. 차를 타면 느낄 수 없는 계절의 향연, 봄은 취하도록 그렇게 가까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발아래 퇴색해 버린 우레탄 포장길. 포장한지 4-5년이 지났으니 많이 낡은 게 당연하겠지만 나는 아내에게 싱거운 질문을 했습니다.

 “우리의 지금 모습이 어쩌면 이 포장길처럼 보이진 않을까?”

 아내는 한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이 찬란한 봄날에 던진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질문 때문이겠지요.

 20대, 꿈같은 청춘, 그리고 30-40대, 격정의 세월을 보내고 50의 가파른 언덕을 오르다 이제 60대 인생 후반에 내려선 우리의 모습이 어쩌면 낡은 이 길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새것이라고 다 좋은 것인가요 뭐?”

 아내는 빙긋 웃으며 한 참 후에 대답을 합니다.

 “손 때 묻은 가구, 잘 익은 된장, 그리고 오랠수록 정이 더 깊어지는 친구, 고목에 돋아 난 연한 새 생명, 아침 해보다 석양에 물든 노을 등등, 생각해 보면 얼마나 많은데....”

 아내의 상기된 얼굴은 점점 노을빛을 닮아가 있었습니다.

 그랬습니다. 돌아보면 우리네 삶이란 새롭고 신선해야 좋은 것도 있지만 오래 되고 낯설지 않아야 장점인 것도 참 많았습니다. 결국 존재해 있는 모든 것들은 그 어느 하나 무의미하지 않고 크던 작던 저마다의 의미가 다 있습니다.

그리고 주어진 여건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을 충실하게 다 했느냐 아니냐에 따라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젊었을 때 보다 지금이 더 멋있어. 하는 일도 더 열심이고...”

 겸연쩍어하는 내가 민망했는지 아내가 내 가슴에 풍선을 달아 줍니다. 비행기 태운다는 걸 뻔히 알지만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그래, 맞아. 내가 어때서, 오늘도 열심히 생각하고 또 내게 주어진 일을 욕심 부리지 않으며 하고 있잖아.’

 스스로를 위로 하면서 마을 어귀로 들어오는데 ‘아!’ 수령 100년의 동구 밖 느티나무가 온 몸에 연두 빛 새 단장을 하고 우리 내외를 마중하고 있었습니다.

 2010.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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