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학/산문

239. 버림과 찾음

빛마당 2010. 4. 5. 11:00

 

239. 버림과 찾음

 추질추질 겨울비가 내립니다.  앞산이 빗속에 잠기고 있습니다.

 골목을 나와 막 큰 길 모퉁이 지나려는데 어제까지 보지 못했던 짤막한 현수막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개를 찾습니다.

사모에드. 수컷 흰색. 6년생. 현상금 1,000,000원. 신고자 500,000원. 절대비밀 보장

연락처 010-9*5*-****

 갑자기 지난 해 읽은 사회면의 기사가 자동차 와이프가 닦아내는 차장에 달려들어 붙습니다.

세탁기 포장 박스에 버려진 할머니

-청소부가 발견 경찰에 신고-

필리핀 관광객이 어머니 버리고 가

-교민들이 돌보며 가족 찾기 고심-

 

 서로 다른 일을 두고 참 착잡했습니다.

 현상금을 걸고서라도 찾겠다는 어느 동물 애호가의 안타까워하는 모습과 버림받은 자식의 주소를 묻는 경찰관에게 끝내 입을 다물었다는 두 어머니의 모습이 자꾸만 서로 오버랩 됩니다.

 그간의 사정을 모르는 우리로서는 속단할 수는 없지만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 버려야 할 것과 찾아야 할 일을 분간 못하는 우리사회의 양면에서 자괴감을 느낍니다.

 비가 내립니다. 길을 잃은 낙엽 몇 장이 빛이 바랜 채 아스팔트 가장자리에 젖었습니다. 차가운 땅바닥에 껌 딱지처럼 붙어있는 모습을 보며 존재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버림과 찾음’은 존재에 대한 가치가 기준입니다. 나는 지금 어떤 존재인가? 타인으로 하여 가치가 있는 존재인가? 나도 누군가에 의해 지금은 잊혀 지거나 버려진 존재는 아닌가? 아니면 나 또한 누군가를 내 기억에서 지우고 있거나 무심한 채 잊고 사는 건 아닌가? 그리고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들이 정말 의미 있는 것들인가?

 전봇대 하나가 비를 흠뻑 맞고 있습니다.

사람을 찾습니다.

이름 : 000(여) 나이 : 75세 치매 노인

20**년 0월 0일 13시 집 근처에서 행방불명

파마머리에 이마에 검은 점. 붉은 색 상의 파란색 바지

연락처 :011-5***-1***

 우연일까요? 빛이 바래 가장자리가 떨어져 나간 전단지 한 장이 전신주에 붙어 함께 젖고 있습니다.

 빛바랜 전단지 안에 애타는 자녀들의 마음이 오늘따라 선명하게 돋보이는 건 비오는 날의 값싼 감상 때문일까요?

‘저 노인은 가족들의 품에 돌아갔겠지. 분명히 돌아갔을 거야’

애써 그렇게 믿으며 출발하는 길 위로 겨울을 재촉하는 비는 여전히 차갑게 내리고 있었습니다.

200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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