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 상주(尙州) 향청(鄕廳), 다시 태어나다
상주 향청. 물받이 없는 처마 끝에서 빗물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가뭄에 단비. 참 오랜만에 보는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입니다. 아마도 한낮이었다면 뜰아래로는 동동 떠내려가는 물 가마를 오랜만에 구경할 수 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비가 오는 밤임에도 이마가 확 트이는 삼 칸 대청마루에서는 다섯 명의 통기타 주자들의 화음에 책 속에 갇혀 있을 시인의 시편들이 노래로 다시 살아 처마를 울리고 있습니다. 비록 많은 관중은 아니어도 마루 위와 뜰아래는 하나의 공감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막 상주문인협회 조재학 지회장이 그 낭랑한 목소리로 서정주님의 시(詩) ‘견우와 직녀’를 낭송하여 분위기가 한층 고조되고 있습니다.
2010년 4월부터 10월까지 ‘세계유교문화유산축제’를 맡은 ‘상주거리문화예술단’의 공연이 열리는 밤입니다. 오늘이 벌써 7번째. ‘포크, 문학과 만나다’라는 내리닫이 걸게 막이 향청 이곳저곳에서 비에 다소곳이 젖고 있습니다.
상주 향청은 1997년 9월 29일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336호로 지정되었고 상주시가 소유, 관리하여 왔습니다. 원래 향청의 기능은 지방행정의 보조자적인 것과 향촌의 민풍 순화가 주된 것이었으며, 사대부의 향촌에서의 정치, 사회적 지위를 보장해 주고 이곳에서 향토 선현들이 향안을 닦고 향토사회의 보다 나은 발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의식을 고취했던 장소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향청자체가 남아 있는 경우가 희소한 점에서 그 문화재 자료적 가치가 높다 하겠습니다. ‘상산지(尙山誌)’에 따르면 상주향청은 1500년대 말에 세워졌다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1610년(광해군 2)에 진사 한정(韓珽)이 중건한 것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그 후 중건한 뒤 수차례 중수하였고,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이 주둔한 이래 상주 관아로 사용되었으며, 그 뒤 1955년 12월까지 관사로 사용되었다가 2009년 다시 정화복원을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사실 향청을 복원, 정화하고 있을 때 의구심은 없지 않았습니다. 이지방의 각종 문화유산들, 예컨대 상주향교, 도남서원이 수많은 예산을 드려 복원한 후 과연 얼마만큼 시민을 위해 활용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었습니다. 향교나 서원이 가진 고유의 기능을 살리기 위한 프로그램은 물론 지역문화 발전이라는 새로운 목적을 지닌 계획들이 충분하지 못해 복원으로 그친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문화재라는 거창한 이름표만 달고 시민들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곳이라면 솔직히 말해 있으나 마나 한 곳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공연을 보면서 이제 시대의 변화 속에 향청의 기능도 사대부들에게서 시민 모두에게 자유롭게 열려 있게 되었음도 다행이려니와 이 향청을 통해 누구나 참여하고 함께 지역사회 문화와 예술을 걱정하는 장소로의 변환은 내 처음의 의구심을 불식시키기에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이 비 그치면 내일이라는 새날이 더 환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 오겠지요.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 난 상주 향청, 이를 위해 애쓰는 ‘상주거리문화예술단’의 활약에 박수를 보냅니다.
2010.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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