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 달력위의 동그라미
무심코 거실에 걸린 달력을 바라봤습니다. 4월 달력에 빨간 싸인펜으로 그려진 동그라미 몇 개가 보입니다. 아마 가족 중 기념일이거나 했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어제 본 달력엔 3개뿐인데 오늘 아침에 갑자기 하나가 더 불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기념일이 또 있었구나 하고 그냥 지나치려다 그 동그라미가 다른 동그라미에 비해 색깔도 다르고, 좀 더 진하게 그려져 있기에 일부러 살폈습니다.
동그라미 안에 빨간 볼펜으로 다음과 같이 씌어 있어 웃었습니다.
“나를 여보 라고 첨 부른 날”
우리 부부는 결혼하여 호칭을 제대로 부르지 못했습니다. 내가 결혼하기 전 사람들의 한결같은 당부는 어머니에게 소홀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엄마는 꽃다운 나이 스물에 혼자 되셨습니다. 나를 위해 외로운 인생을 사신 분입니다. 그래서 엄마는 행여 자식에게 누가 될까봐 늘 조심하셨지만 ‘낮에는 남 본 듯, 밤에는 님 본 듯’이 우리 내외의 생활이었습니다. 어쩌면 ‘밤낮에도 남 본 듯’ 하였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호칭은 늘 ‘봐요-’이거나 ‘어이’, ‘저-’였고 자녀가 태어난 후부터는 아이의 이름으로 호칭을 대신했습니다. 2년 전 어머니 돌아가시고 자녀들 다 바깥에 나가 살면서 단 둘이 남았지만 아직도 호칭은 버릇이 되어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내 입에서 ‘여보-’라는 말이 나왔던 겁니다. 아내가 놀란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을 때의 그 쑥스러움. 마치 낯선 얼굴이 반가움으로 다가왔을 때의 당황함이었습니다. 아울러 그 순간 아내도 한 사람의 여자였음을 발견했습니다.
어느 글에서 ‘여보’와 ‘당신’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일이 있습니다.
‘여보’는 ‘如寶’로 ‘나에게 보배와 같은 사람’이란 뜻이고 ‘당신’은 ‘當身’으로 ‘마땅히 내 몸과 같은 사람’이란 의미를 지녔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의미 있는 호칭을 결혼하여 지금까지 바르게 불러주지 못했음에 미안한 마음이 앞섰습니다.
그날 이후 벌써 일주일이 빠르게 지났는데 아직도 내 입에서는 ‘여보’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마치 한번도 ‘아버지’라는 호칭을 불러보지 못한 내가 ‘아버지’라는 호칭에 어색하듯 말입니다. 아내는 은근히 그렇게 불러 주길 바라는 눈치인데 글쎄요.
이 글을 쓰면서 건너보이는 거실의 달력엔 꼭 그렇게 해야 된다는 듯 빨간 동그라미가 자꾸만 눈짓을 보내고 있습니다. 허허허.
2010.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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