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 빈 의자
추석 연휴가 하루 지났습니다.
골목마다 명절이 지나면 익숙한 풍경들이 펼쳐집니다.
낯 선 차들이 하나, 둘 떠날 차비를 하면 어김없이 승용차 뒤 트렁크가 열리고 이것저것 보따리를 챙기는 부모님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곁에 서서 안쓰러워하는 자녀들과 싣고 또 실어도 아쉬워하는 부모님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 풍경 너머로 오늘은 또 하나의 그림이 오버랩 되고 있습니다.
한가하게 뻗은 큰 길옆 담 아래 길 쪽을 향해 놓인 빈 의자가 보입니다.
객지에 나간 자녀들이 그리워 날이면 날마다 차들이 다니는 한길을 향해 한 손에는 유행지난 묵직한 휴대폰 하나 들고서 의자에 앉아있는 팔순의 할머니 모습.
그 할머니 모습은 보이지 않고 오늘은 빈 의자만 동그마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자녀들이 모시고 서울로 갔는지 대문은 굳게 잠겨있고 그 집 담 위로 감나무 가지 하나가 얼굴을 붉히는 풋감들을 잎사귀 뒤에 숨긴 채 기웃거리고 있을 뿐입니다.
할머니는 매일 그 의자에 앉아 계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지나칠 때마다 반가워 합니다. 어떨 때는 손에 들고 계시던 작은 드링크 병을 내 밀기도 하셨고 어떤 때는 내 손을 꼭 잡고 흔들기도 했습니다.
“좀 앉았다 가.”
핏줄만 도드라지게 튀어나온 앙상한 손에서 그 핏줄을 타고 전해지는 따스한 온기가 내 손바닥으로 전해지고 있음을 그때마다 느낍니다.
“00는 잘 있다네. 어제도 전화 왔어.”
내 손을 잡을 때마다 똑 같은 이야기.
그 이야기 끄트머리에는 할머니의 쓸쓸함이 눈물처럼 항상 묻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울리지 않는 묵직한 핸드폰은 땀으로 젖어 있었습니다.
그 날도 우체부는 아무런 소식 하나 할머니에게 내려놓지 않고 지나가고 할머니는 모퉁이로 사라지는 오토바이의 꽁무니만 아쉬운 듯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빈집 대문 앞에/그대로 자리 지키고 앉은/ 할머니의 의자//신작로 향해/ 오늘도 앉아 있는/빈 의자//하늘나라에서도/할머니 손엔 손전화가/들려 있을까//객지에 나간 아들 딸/
눈에 밟히는 손자들이 얼른거려/늘 땀에 젖은/ 할머니의 손 전화//문득 그 할머니에게/
문자를 보내고 싶어//“안녕하세요?”/단추를 눌렀다//갑자기/빈 의자에서/신호음이 들리는 듯/반짝반짝/빛나는 글자와/할머니 얼굴//“오냐, ^*^”
‘빈 의자’라는 시가 이렇게 태어났습니다.
행여 집안에 혼자 계시지나 않을까 닫혀있는 대문을 밀고 들어가고 싶었지만 ‘서울 아들딸들이 잠시라도 모시고 갔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무너질까봐 그냥 지나쳐 오고 말았습니다.
“부르릉-”
저편에서 차가 출발을 합니다.
차 소리 뒤로 헤어짐의 안타까움이 흔들어 대는 손들 사이에서 아지랑이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2010.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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