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의 길잡이(문학 제4강)
김 재 수
1. 동시란 - 생활 감동을 짧은 문장에 담아낸 글. 마음속으로 깊이 생각한 것이나, 느낀 것, 그리고 실제 경험한 것을 짧게 다듬은 아름다운 글. 마음에서 우러난 감동을 노래 부르듯 신나는 기분으로 표현하는 ‘글의 노래’이다. 또는 마음속에 일어난 생각(희노애락)과 느낌을 짧은 말로 노래한 글
2. 동시의 특징 - 생각이나 느낌을 압축하여 쓴 글. 표현을 확실하게 비유와 상징으로도 나타냄. 짜임은 행과 연으로 되며 음악적 리듬을 갖음.
3. 동시의 종류 - 서정시-마음 속에서 우러난 정을 쓴 시
서경시-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을 그린 시
서사시-사건이나 인물의 이야기를 쓴 시
4. 동시를 쓰려면-감동의 마음-감동의 마음은 놀라움과 호기심의 눈으로부터 나온다.
가. 시의 마음, 시의 눈-‘어라’,‘아’,‘오’, ‘어머나’ 하는 놀라움의 눈, 호기심의 눈. 발견의 기쁨. 시가 새로움을 찾는 노력이라면 발견의 기쁨을 떠나서는 거두어지기 어렵다.
나. 뜨거운 사랑의 입김-시의 마음은 사랑의 마음 우리의 마음 밭을 기름지게하고 살찌우는 것, 아름답고 참되게 하는 것, 포근하고 뜨겁게 하는 것도 사랑이다.=진선미 모두 사랑에서 출발한다.
다. 꿈(환상, 이상, 동경, 바람)의 날개, 상상의 날개
5. 동시의 소재
산과 내, 해와 달, 짐승과 나무, -자연계
집과 마을, 학교와 교실, 나라와 세계-사회생활
다른 사람이 남겨놓은 문학 작품, 그림, 노래와 춤-예술
생각과 느낌의 소재-자연과 사회와 예술의 전부 즉 보고, 듣고, 이용하고, 만들고, 허물어 버리는 모든 것-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이 글의 소재이다.
그러나 이러한 소재들이 글이 되려면 표현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흙=옹기, 소재=글
6, 훌륭한 표현- 의인법, 은유법, 직유법, 소리시늉, 모습시늉 등
막연한 소재를 명확하게 붙잡는 개성적 눈과 소재를 조리 있게 구성하는 효과적인 솜씨 - 설계
개성적인 눈(과학자의 눈)-글의 바탕-사물을 관찰하는데 치밀하고 날카로우며, 평범한 사실에서 놀라운 진리를 발견하는 눈 아무나 보고 느낄 수 있으면서 깨닫지 못하는 것을 붙잡는 눈. 모든 사람이 다 아는 말이면서도 제자리에다 놓는 눈.
어린 시절의 정지상- 그 누가 새 붓을 잡아 강물 위에 저렇게 새을 자를 썼나?
어른인 프랑스의 르나르 개미를 보고 한 마리 한 마리가 ‘3’이라는 숫자와 같다.
이이의 어린 시절-석류 껍질 속에 새빨간 구슬이 부서졌구나!
어른인 현대시인- 투명한 석류 알은 가을을 장식하는 홍보석
7. 자연과 사물을 바라보는 눈
가. 남의 흉내를 내지 말고 나의 생각을 써보자
나. 자연과 사물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자.
다. 상상으로 생각의 깊이와 넓이를 확대시켜 보자
라. 호기심을 가지고 가까이 다가서 보자
8. 다듬기(퇴고)-한유와 가도의 일화
가. 지은 것을 감정을 넣어 여러 번 읽어본다.
나. 읽어 본 후에 필요 없는 말은 빼 버린다.
다. 말의 차례나 다른 말로 바꾸어 느낌을 알아본다.-가장 적합한 단어는 하나
라. 행과 연이 잘 짜여 졌나 살펴봅니다.
마. 각 연의 내용이 서로 통하는 가 살핀다.
바. 다른 사람이 흔하게 쓴 표현이 아닌가 알아본다.
* 딸기
잎 새 뒤에
숨어 익어가는
산딸기-본 것
숨어 사는데도
무엇이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 졌나?-생각
자세히 들여다보니
얼굴은 주근깨투성이-관찰
주근깨 때문 이었구나
주근깨 때문에
얼굴이 붉어 졌구나-느낌과 상상
*봄
새끼 감긴 나무들이
입춘이란 말에
새 눈을 나오게 하려고
가지에
잔뜩
힘을 준다.
하늘빛이
변했다.
동시에 대한 생각 살펴보기(문학 제4강)
1. 동시의 본질과 그 언어
권형하
동시(童詩)는 자연과 인생에 대한 관찰의 시이자, 발견의 시라야 한다. 그만큼 정서의 함양을 드러내고자 하는 시 형태이다.
그리고 동시는 사랑의 문학이며, 사랑을 느끼고 깨닫게 하는 문학이라야 한다. 그러므로 동시는 독자가 아동이든, 어른을 위한 동시이든 간에, 온갖 인간의 삶에서 얻어지고 알게 되는 사랑의 세계는 무엇을 의미하며, 그 사랑이 독자에게 어떤 정신적 충족을 주는가를 느끼게 하고 깨닫게 하는 문학이라야 한다.
만약에 어떤 작품이, 사랑이나 사물이나 생활의 교훈을 가르치려고 한다면, 그것은 문학이 아니고 단순하고 명백한 하나의 지식이나 사실을 판단하게 하는 것이 되고 만다.
공부 잘하는 아이는/ 어떻게 공부를 잘 하는가 했더니/ 공부시간엔 한 눈 팔지 않고/ 선생님 말씀/ 말씀으로만 듣지 않고.
-윤부현 <공부 잘 하는 아이> 중에서
위 동시처럼 아동문학을 오해하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바로 이 가르침과 깨달음의 차이일 것이다. 그러므로 위 동시처럼 동시에서 교훈적인 측면이 강조하면, 교훈을 얻고자 문학을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 된다. 즉, 동시나 어른들의 시에서도 문학을 이념 전달이나 도구로 전락시키는 사실은 문학 그 자체를 망각하고 있는 셈이 된다. 예로 돈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님을 알고 있는 것처럼, 문학은 목적이지 수단이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문학을 도구화하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면 동시의 본질은, 자연과 사물과 인생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은 어떠한 것도 회득할 수 없다>는 모리악의 말은, 사랑을 통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동시의 본질은, 소박한 휴머니즘이다. 휴머니즘으로부터 출발한 작품이라야 존재의 참다운 면모를 드러내게 된다. 안델센의 동화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감동도 그 휴머니즘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동시에서 문제점은 관념적 의도로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다. 세계를 사랑으로 보지 않는 사람에게는 세계는 증오와 갈등과 편애를 보여준다. 그 대신, 세계를 사랑으로 바라보는 사람에게 세계는 모든 것을 사랑으로 보여준다. 세계를 또는 사물을 편애로만 바라볼 수밖에 없을 때, 현실 또한 경직된 꿈과 아름다움과 행복을 감추고, 좌절과 추악과 슬픔을 내보인다. 그러니 바라보는 방향대로만 보여주는 세계 앞에서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착가하게 된다.
그러므로 최소한 현실 있는 그대로를 보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리의 관념들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수많은 관념들은 세상과 사물과 세계를 순수한 눈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이를테면 이것은 옳다 저것은 옳지 않다고 하는 것까지 다 버려야 하고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를테면, 자기 스스로 겪은 게 아니라 뉴스나 소문을 듣고 쓴 동시들은 그 어떤 상황이나 사태를 너무 단순하게 파악하거나 감정이 앞서는 나머지 동시에서 바라는 전체적 안목이나 통찰력과 그리고 좀더 섬세한 느낌으로 육화(肉化)되지 못하게 한다. 그런데 비해, 몸으로 겪었다고 할까, 안팎으로 산 체험을 쓴 동시는 한결 익어서 떨어지는 것이다.
서울에는/ 하늘이 없다/ (...............)/ 오색 도깨비불은 켜지고/ 소금끼에 놀란 /미꾸라지들은/ 별빛도 꺼진/ 하늘을 찾다가/ 비키니 섬의/ 거북이가 된다.
-‘서울에는(박인술)’ 에서
위 동시는 표현된 자체보다, 이런 표현을 있게 한 이면의 것은 현실 그대로이다. 그러나 도깨비불이라든지, 놀란 미꾸라지라든지, 비키니 섬의 거북이라든지 하는 등의 비유가 오히려 현실감을 없애는, 저급한 낙서가가 가지는 만화와 같은 현실감을 떠올리게만 한다.
고등어 눈동자에서/ 치솟는 아침 해
-‘생선가게 앞에서(이진호)’에서
위 동시는 생선가게 고등어의 눈동자에 아침 해가 <치솟는>다는 아름다운 표현이, 사실은 억지로 만들어 놓았을 뿐 과장된, 그러므로 현실감을 잃은 예이다. 고등어 눈동자에도 물론 아침 해가 비췬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해 보라. 그것이 비췰 뿐이지, 결코 치솟는 현상은 그곳에는 없다. 이것은 작위적으로 만들어낸 과장의 결과이다. 즉 작가가 아침 해를 오랫동안 사랑으로써 관찰해 본 일이 없이 그저 쉽게 만들어 내놓은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동문학과 그 언어의 속성은 무엇일까. 아동문학은 아동이 쓴 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동문학 즉 동시(童詩)는, 아동을 사랑하고, 아동이 있는 그 세계와 그 세계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어른이 쓴 시이다. 그렇다면 직접 아동이 되어 쓴, 아동의 작품과 조금도 다름없는 동시는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 하는 질문도 당연히 해 보아야 한다.
황소가 끄는 달구지를 타고/ 삼촌 따라 오늘도/ 덜그럭 덜그럭 들에 나갔지/ 너는 모를 거야.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논둑에 높이 쌓아올린 짚단을/
달구지에 날라 싣다가/ 심촌 몰래/ 달구지에 실린 짚단 속에/ 숨어 있었지.//
너는 모를 거야.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너는 모를 거야> 전문 (김구연)
위 동시도 작품 자체로 본다면,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한 장난의 즐거움을 어린이가 스스로가 드러낸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작품은 매우 아름다운 시이다. 그러나 그 우수성은 아동이 스스로 표현이 내었을 때를 전제로 하고 있음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작가의 회고 취미, 혹은 지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 직접어릴 때 체험한 또는 체험 가능한 사실을 어른이 되어, 한 동시시인이 되어, 그것도 어린이 흉내를 내며 드러내고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그러면 아동(어린아이)의 문학 작품과 기성 아동문학가의 작품을 따로 존재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도 문제가 된다. 오늘날은 아동문학은 어른이 어린아이 입장으로 쓴 시를 동시라고 보통으로 말하고 있지 않을까 한다. 즉 이것이 아동문학만이 지닌 참다운 사랑의 속성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동시가 시의 차원에서 편입되기를 노력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1930년대 시인 김광균처럼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와 같이 가을의 우울한 정서를 표현하기에는 동시는 어렵다. 즉 동시가 자유시처럼 사물과 존재에 대한 질문과 응답을 자유로이 할 수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동시는 무엇을 탐구하고 얻을 수 있는 것인가를 질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동시의 언어는 탐구의 언어가 아니라 회화(그림)의 언어이다. 그리고 고뇌의 언어가 아니라 발견의 언어이다. 그러므로 동시는 소박한 휴머니즘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다. 오히려 탐구와 고뇌의 언어이기를 고집하면 동시가 아니고 자유시가 된다. 그러므로 동시는 소박한 휴머니즘의 세계를 발견과 회화의 언어로 긍정하고 사랑해야 할 것이 동시의 한계이기도 하다.
아침이/ 건져 올린/ 햇싸라기가/ 비인/ 하늘에서// 솔/ 솔/ 솔/ 쏟아져 내린다.// 쏟아진 햇살들이/ 한 톨/ /한 톨/ 바람이 그리는/ 메아리를 따라//
숲으로 흩어지면/ 그/ 푸르던 숲 속 나라에/ 잎 새 마다/ 수른/수른/ 물들어 가는 소리
-<가을 햇살> 전문 (이선아)
그래서 동시는, 위 동시처럼 <소박한 가을 햇살을 아름답게 묘사해 내는 것>이 동시의 장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2. 동시의 여러 모습
월간문학 2006년 3월호에는 여러 동시가 실려 있다. 먼저 위에서 말한 동시의 특성인, 즉 자연과 사물과 인생에 대한 사랑과, 휴머니즘으로부터 출발한 작품과 존재의 참다운 면모를 드러낸 작품과 관념적 의도로 세계를 바라보지 않은 작품을 소개할까 한다.
시골 텃밭의 채소들도 따라왔다/ 플라스틱 상자에 상추가 자라고/ 깨진 항아리에는 고추도 심어졌다./ “상추와 고추가 참 좋네요.” /보는 사람마다 부러워한다. //할머니 우리 집 오실 때/ 시골에서 길들인 입맛도 따라왔다./
상추쌈에 풋고추가 상에 오르고/ 구수한 슝늉도 한 몫 한다./
“어머니 음식 솜씨가 최고예요”/ 아버지가 엄지를 세워 보인다.
-할머니 오실 때(김종상) 전문
위 동시는 <할머니가 오실 때, 길들인 입맛이 함께 따라오는 체험>을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동을 잘 전달해 주고 있는 동시이다. 즉 시적으로 미화하거나 꾸미지도 않으면서 상황 묘사가 선명하면서, 엄지를 세워 할머니를 존경하는 마음을 일러주는 것이 압권이다.
여기서 동시의 특성인 자연과 사물과 인생에 대한 사랑과, 휴머니즘으로부터 출발한 작품임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강물 위/ 고추잠자리 한 쌍/ 통통통 물수제비를 뜨며/ 흰 구름 속에 알을 낳네.// 새끼들은/ 흰 구름을 먹고 자라/ 파란 하늘에/ 빨간 글씨로 시를 쓰겠네./ ‘가을’이란.
---고추잠자리(심인섭) 전문
위 동시는 늘 보아오던 고추잠자리를 다른 시각과 입장에서 노래한 작품으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즉 물수제비를 뜨며 흰구름 속에 알을 낳고, 파란 하늘에 빨간 글씨로 ‘가을’이란 시를 쓰는 고추잠자리. 그 잠자리의 모습을 새롭고 낯설게 표현한 점이 위 동시의 큰 장점이다.
경북 문경시 산길 깊은 내화리/사과를 주렁주렁 매단 사과나무 한 그루가 명찰을 달고 있는데요/"지나다 목마르면/하나 따 드세요"/까치밥에 사람 밥 얹어 매달아 놓은 주먹 만한 물통들/목젖 가득 찰랑대는 물소리.
---'옹달샘' 전문 - 엄재국
위 시는 자유시이다. 그런데도 동시로 읽고 싶어서 소개를 해본다. 엄재국 시인은 문경 출신으로,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시인이다.
시 제목이 <옹달샘>이다. 옹달샘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갈증을 해결해 주는 구실을 한다. 그런데 시인은 깊은 산골에 있는 사과나무 한 그루가 까치밥처럼 달려서, 길손들에게 목이 타면 하나씩 따 드시라고 한다. 이러다 보니 사과가 목을 축일 수 있는 옹달샘의 구실을 한다는 이 시의 메타포(은유)가 되는 것이다.
위 시는 시적 발상이 재미있게 동시와 같은 발견의 언어로 되어 있고, 한 폭의 그림과 같이 회화적 수법으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산골 풍경과 함께 넉넉한 동심의 세계로 초대하는 작품이다.
3. 동시와 동요의 문제점
동시가 가지고 있는 난해성은 어떤 것이 문제인가. 동시도 시라는 생각을 가질 때, 동시가 시의 세계로 깊은 관심을 보일 때에 동시의 난해성이 문제가 된다. 물론 동시가 시다운 면모를 가지고 있으면서 아동의 건전한 사고를 촉발하게 하는 동시가 창작 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그런데 일군의 동시인은 동시도 한국 현대시의 흐름 속에 함께 한다는 점에서 아동의 정서나 감정을 표현하고 담아내려고 노력한다. 즉 표현면에서 일군의 동시인들은, 현대시의 표현들을 동시에도 그대로 표현하고 있으며, 또 일군의 동시인들은 내용면에서 생활의 모순이나 비리를 서슴없이 동시에다 표현함으로서 아동의 정서를 일깨우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아동문학의 독자가 되는 아동이 얼마나 문학의 향수자로서 감수성을 가지고 동시를 읽겠는가 하는 것이 의문이다. 또 동시의 난해성도 문제가 된다.
산은 어둠을 걷어내는 건/ 때맞아 울리는/ 산종소리다.// 늦밤일까/
이른 새벽일까/ 그런 시간에,// 바다 속일까 /하늘 밖일까/ 그런 깊이로, //
샘솟는 넘침으로/ 피어올라서/ 안개처럼 흔들리며/ 밀려와서는//
한 꺼풀 한 꺼풀씩 /어둠을 걷어내고/ 묻혔던 산 빛을/ 드러내 준다.
-박경용 <산종소리>-
이 작품은, <늦은 밤 또는 이른 새벽> 그런 시간에, <바다 속> 혹은 <하늘 밖> 그런 깊이의 산종소리가 산의 어둠을 걷어내고 내밀한 산 빛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를 아동이 어느 정도로 이해할까라는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다음으로 동시의 문제점은, 동시가 시로 부르기에는 지나치게 감상적이거나 유아적 요소를 많이 지니고 있을 때 문제가 된다. 더구나 이런 문제점은 동요에서 많이 드러난다. 물론 노래가사가 물론 동시가 될 수는 없다는 말은 아니다. 이러한 점은 동시란 아동을 핑계 삼아 쓰는 말장난일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다. 이 문제도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하나는, 어른이 어린애가 되어 부리는 재롱 같은 동시와, 또 하나는, 어른이 아이가 되어 부리는 재롱 같은 동시이다. 그러므로 동시인이 쓴 동시와, 동시인이 아동이 되어 쓴 동시가 문제이다. 즉 작가가 언제까지나 어린애 흉내를 내고 재롱만 부리는 재롱꾼이어야 하는가이다.
아기가 잠드는 걸/ 보고 가려고/ 아빠는 머리맡에/ 앉아 계시고,/
아빠가 가시는 걸/ 보고 자려고 /아가는 말똥말똥/ 잠을 안 자고.
-윤석중 <먼길>-
이 작품은 난해의 문제로 비난받을 요소는 전혀 없다. 그러나 이 동요는 어른이 어린애가 되어 부리는 재롱의 냄시가 짙다. 아빠는 아기가 자는 걸 보려고, 아기는 아빠가 가시는 걸 보려고 안 잔자는 것은, 시를 만들기 위한, 동심을 핑계삼은 어른의 말장난일 수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사실에 근거한 동심의 발견이 아니라, 시를 위해 만든 동심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이 점이 바로 앞으로 동시를 쓸 시인들이 극복해야 할 동요의 한 요소이다.
4. 동시를 잘 쓰기 위해서 할 일
동시 작품을 많이 읽는다. 그리고 습작을 많이 하면서 많이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