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학/산문

한 상자의 원고료

빛마당 2010. 10. 4. 23:01

251. 한 상자의 원고료

 아직은 글 쓰는 일이 내 전업이라 말할 수 없지만 원고 청탁을 받을 때 기분은 참 좋습니다.

그 까닭은 내 작품과 독자가 상호 작용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이로 인해 내 글쓰기의 가치가 독자로 하여금 인정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내 작품이 실린 책과 또한 만족하진 않지만 얼마간의 원고료를 받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어느 날 부산에 사는 지인으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았습니다.

그 지인과는 10년도 훨씬 넘는 시간을 소식도 변변히 주고받지 못했는데

그 세월의 간격 속에서 잊지 않고 지면을 할애해 주는 마음 쓰임과 또한 지역에서 출판에 관한 열정을 아직 불태우고 있음이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한 달이 지난 후 두 개의 우편물을 받았습니다.

하나는 작품이 실린 잡지 세 권과 스칠로폼 상자 택배였습니다.

호기심으로 그 상자를 여는 순간, 십 수 년의 시간을 단숨에 밀어내고 닥아 온 편집자의 마음이 내 가슴을 설레게 했습니다.

 고맙다는 인사 편지와 행사 초대장,

표구만 하면 금방 예술 작품으로 바뀌어도 좋을 정갈하게 쓴 붓글씨,

그리고 막 짜온 듯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참기름 한 병,

그래도 아쉬웠는지 비닐이 터질 듯 봉해 담은 참깨 한 봉지 더,

또 영양 고추 가루 한 봉투.

그리고는 이것으로 원고료로 대신하는 무례를 용서해 달라는 정중한 양해의 글.

초대장에는 잡지 출판기념회를 필자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간곡함이 글의 행간에 짙게 묻어 있었습니다.

 가끔씩 원고청탁을 받고 원고료를 받았지만 이렇게 사람을 감동시키는 원고료를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아내가 참기름 병의 뚜껑을 열자 방안은 온통 고소한 냄새로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방안뿐만 아니라 우리 두 내외의 가슴에는  그분들의 배려에 감사한 마음으로 가득 채워져 오랜 날을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마침내 이 원고료를 통해 1박 2일 부산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모처럼 아동문학 담론으로 밤을 지새운 집필자들과 만남도 잊을 수 없지만

아동 문학인들의 후원은 물론 이들을 위해 흔쾌히 잡지를 발간하시는 광안리 바다만큼 인심 넉넉한

횟집 사장님 내외를 만난 것은 또 하나의 기쁨이었습니다.

자칭 음치(音癡)와 박치(拍癡)를 이겨 냈다며, 고수(鼓手)를 자청하여 판소리 심청가 한 대목은 물론

‘상주 아리랑’까지 멋들어지게 부르시는 사장님.

 새벽 4시.

 가는 날과 새날을 이어 주는 광안대교의 아름다운 새벽 풍경이 파도소리에 실려 흔들리며

내 곁으로 내 곁으로 자맥질하며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2010.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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