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 차이(差異)와 공감(共感)
차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서로 같지 아니하고 다름. 또는 그런 정도나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대부분 ‘서로 같지 아니하고 다름’은 부정적으로 ‘함께’ 또는 ‘같이’라는 말은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드리고 있습니다. 이 때 ‘함께’나 ‘같이’는 공감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생각, 행동이 한 방향으로 나감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서로의 생각이 같으면 유난히 더 친숙하고, 조금이라도 다르다 싶으면 백안시(白眼視)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끼리끼리 문화’가 더 형성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이런 이유는 우리나라가 지구상에 남아있는 유일한 분단국가로 동질성에 대한 열등감 아닌가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사회에서 ‘같음’은 없습니다. 일란성 쌍둥이도 모습이나 성격이 다르고 자기 얼굴을 자세히 봐도 두 눈과 두 귀도 어딘가 다른 것을 발견합니다. 이러하니 공동체가 정한 목표를 추진하려는 과정에도 참여하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모두 한결같을 수는 더욱 없습니다. 이러함에도 우리가 겪는 갈등은 조금 다른 생각, 조금 다른 행동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이는 결국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생각으로부터 비롯됩니다. 다시 말하면 ‘다른 것 = 나쁜 것’이라는 그릇된 인식 때문이 아닐까요?
정치권을 비롯한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의 문제는 바로 위와 같은 인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름은 곧 나쁜 것이라는 인식이 ‘싫다’라는 감정을 만들고 이 감정이 증폭 되면 미움이 되고 결국은 다툼을 낳고, 다툼이 심해지면 갈등으로 얽혀 풀어질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서로 다름으로 인해 더 조화롭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 다른 얼굴, 다른 직업과 직무, 한 손바닥 위에 생김새가 다른 손가락들.... 그래서 더 전문화 되고 다양한 직능에 맞는 일들을 기능적으로 감당할 수 있음을 봅니다.
‘다름을 인정하면 공감이 쉬워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공감’이란 말은 차이라는 말을 전제해 두고 생긴 말입니다. 이 공감(共感)이야말로 갈등을 줄이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첩경이 됩니다.
지난 가을. 시청자들을 감동시켰던 박칼린 선생과 ‘남격 합창단’은 서로 다른 이들이 서로 다른 소리로 이루어 낸 합창의 참맛을 보여준 쾌거였습니다.
이제 우리도 ‘다름 = 나쁨’이 아니라 ‘다름 = 좋음’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래서 차이로 인해 생겨난 온갖 갈등을 해소하여 새해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서로 달라서 더 아름답게 이루어지는 합창을 부르는 사회가 될 수 있기를 소원해 봅니다.
2010. 12.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