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 할아버지와 사탕
요즘 회자(膾炙)되는 말로 ‘가장 귀한 금은? 지금, 가장 소중한 일은?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 그리고 가장 소중한 사람은? 나와 함께 한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곱씹어 보면 결국 ‘현재의 모든 것에 충실 하라’는 의미일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대수롭잖게 여기거나 내일로 미루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굳이 주자십훈(朱子十訓)을 들지 않아도 그 때의 일이 영원히 지울 수 없는 후회로 남기도 하죠.
벌써 38년 전의 일입니다.
할아버지는 여든이 훌쩍 넘은 연세에도 치아가 남달리 튼튼하셨는데 그래서인지 유난히 사탕을 좋아하셨습니다.
할아버지 머리맡에는 늘 사탕봉지가 떨어지지 않았고 난 때를 맞춰 사다 드리는 걸 잊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입니다.
그 날도 일상처럼 소득 없는 일에 바삐 쏘다니다가 늦게야 집으로 들어서는데 아침에 보고 간 할아버지 머리맡의 사탕봉지생각이 났습니다.
출근하면서 사탕을 사다 드려야 하겠다고 마음먹고 나갔는데 그만 깜박 잊어버리고 빈손으로 온 겁니다. 되돌아가서 사 올까도 생각했지만 이미 너무 늦은 밤이고 내일 사다드리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냥 들어와 잤습니다.
이튿날 새벽, 할아버지의 신음소리에 놀라 들어가 보니 심한 복통으로 고통스러워하셨습니다.
체하셨나 하는 생각에 이른 아침에 약국에서 급체에 좋은 약을 지어 드리고 출근을 했는데 급기야 급성 장출혈이라는 병명으로 아침 10시 쯤 운명하셨습니다.
어느 날입니다.
그날도 무슨 역마살이 뻗쳐 한동안 무작정 직행버스를 타고 대구까지 오간 일이 있었습니다.
북부 정류장 대합실에 그냥 앉아 오고 가는 사람들 구경을 하고 앉았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할아버지를 닮은 분이 앉아 계시는 겁니다.
나도 모르게 매점에 뛰어가서 할아버지 손에 사탕을 한 봉지 사 드렸습니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당황하는 할아버지에게 돌아가신 할아버지이야기를 했더니 고맙다며 물끄러미 바라보시는 그분의 얼굴에서 나는 내 할아버지의 모습을 가슴에 품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마냥 행복했습니다.
세월이 벌써 40년이 다 되고 나도 네 아이의 할아버지가 되었는데도 어쩌다 길에서 스치는 할아버지들을 뵈면 그 때 사 드리지 못한 사탕 때문에 가슴이 찌르르- 울립니다.
이 울림은 40년 전 그 날, 내일로 미룬 내 미련으로 사탕 한 봉지 드시지 못하고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후회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2011.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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