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 약속(約束)과 허언(虛言)
중국 주나라 성왕은 어린나이에 황제가 되었는데 어느 날 아우와 함께 뜰에서 놀다가 오동나무 잎이 떨어진 것을 아우에게 내밀면서 ‘너를 제후로 책봉하노라’라고 장난삼아 말했답니다.
그 이튿날 성왕의 삼촌 되는 주공이 제후책봉을 하례(賀禮)드린다고 문안을 하자 성왕은 놀라 장난으로 한 말이었다고 했지만 주공은 ‘천자는 농담을 할 수 없습니다.
'제후책봉을 하시옵소서’ 라고 해서 아우를 당나라 제후로 봉했다는 고사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이경검부처별급문기(李景儉夫妻別給文記)』라는 분재기가 유명합니다.
조선조 성종의 현손인 순녕군 이경검은 선조의 몽진을 도와 공신으로 책봉된 사람인데 전쟁이 끝나고 무너진 자기 집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외동 딸 효숙을 등에 업고 공사 감독을 하다가 무심결에 ‘이 집은 너에게 줄 집이다.’라는 말을 합니다.
물론 이경검은 농담으로 한 말이었지만 당시 아홉 살의 딸은 아버지의 말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아버지의 권위와 딸이 받을 상처에 대해 깊이 생각한 이경검은 한양 남쪽 명례방에 반듯한 기와집을 사서 부부 공동명의로 별급 분재기를 작성했다는 일화입니다.
약속은 인간관계에서 아주 중요한 삶의 요소입니다.
우리의 삶은 대부분은 약속들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문자도 약속기호이며 이를 기초로 한 학문도 약속입니다.
더구나 생활의 방편들은 모두 사람이 정해 놓은 약속으로 이루어 진 것입니다.
교통신호에 대한 약속이 사고를 방지하고, 수학과 음악에서는 약속의 기호들이 학문의 뿌리를 이루고 예술을 창조하기도 하며 명분과 규범과 법이 질서를 이루어 내기도 합니다.
이 약속들은 인간관계를 이루는 모든 구성원들이 공통적이며 평등하게 지켜야 할 덕목입니다.
언제나 신문과 지상파 방송에는 정치인들의 허언(虛言)에 대한 기사들이 우리를 씁쓸하게 합니다.
세종시가 그랬고, 신공항 그랬고 이어 과학벨트....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약속이 미치는 영향력은 다르다 하더라도 ‘약속’이라는 말에는 천자나 가장이나 등가의 차이는 없습니다.
오늘 아침 뉴스에 등장한 사람들, 저축은행에 대해 이런 저런 명목으로 가진 자들이 저질러 놓은 비리들을 뻔한 거짓말로 당당하게 위장한 모습을 봅니다.
하지만 그들만의 허언에 대해 씁쓸하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저지르고 있는 허언은 없을까 되돌아보는 아침입니다.
까치우는 소리가 ‘깍 깍 깍’ 하고 경쾌하게 들리는 것이 아니라 마치 목안에 가시가 걸린 듯 들리는 것은 어쩌면 불편한 내 마음 탓이 아닐까 합니다. 허허허.
2011.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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