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 그림 속에서 희망을 보며
오늘은 경북지역자활센터협의회가 주최하는 인문학 강좌 졸업식이 있는 날입니다. 졸업식을 거행하는 경북대 상주캠퍼스 예일당에는 경북지역 14개 지역자활센터에서 모인 졸업생들로 붐볐고 예일당 입구 로비와 복도에는 각 지역에서 만든 시화와 그림, 글씨들이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전시 작품 중 크레파스로 아주 편하게 그린 8절 크기의 그림에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화면을 이등분 하여 썩 잘 그린 그림은 아니었지만 화면가득 길을 그렸습니다. 화면 아래에는 좁고 험한 길과 그 길 위에 놓여있는 여러 가지 장애물들-나무가 길을 막기도 했고, 바위가 길을 막기도 했으며 어떤 곳은 가시가 길 한가운데 막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 위에 그려진 파란 색의 넓은 길입니다. 그곳은 넓기도 했지만 아무런 장애물이 없었습니다.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와 같았습니다. 짐작컨대 이 길이야 말로 이 그림을 그린 주인공의 길, 희망의 길일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자활센터의 일꾼들은 하루 여덟 시간의 고된 일을 합니다. 그리고 이 시간은 삶의 의지를 스스로 일깨우는 피땀 어린 시간입니다. 아침에 출근하면 각자 맡은 일터로 향합니다. 쓰레기 분리수거, 봉제공장의 제봉 일, 병원에서의 간병, 각종 텃밭 가꾸기나 농사 일 등등 대부분 힘든 일입니다. 이런 노동을 하는 분들에게 무슨 인문학이냐 라고 반문 할런지 모르지만 ‘인문학’을 통해 보다 삶의 가치를 찾게 하려는 의지부여를 위해 강좌는 시작되었습니다.
2010년 9월 6일. ‘문학 이란?’ 주제로 한 열 번의 강좌가 이들과 함께한 소통의 자리였습니다.
오후 4시. 하루의 힘든 일손을 멈추고 모여든 수강생들에게는 떨쳐 버리려고 해도 떨칠 수 없는 피곤이 온 몸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음을 봅니다. 이들에겐 일하기 보다 더 힘든 시간입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시간이 늦으면 3층 계단을 헐레벌떡 뛰어 오르는 열정은 그 피곤함을 누르고 있었습니다.
하루의 일을 일기에 담고 무디어 진 감정을 갈아 시를 쓰고 스스로의 의지를 짧게나마 수필로 남기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오히려 그들에게서 배우고 있었습니다.
오늘 하루 일손을 멈추고 환한 얼굴로 학사모를 쓰고 앉은 그들.
“여러분이 받은 이 졸업장은 진학에도, 취업에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가장 의미 있는 졸업장임을 저는 압니다.”
눈시울 붉히며 말을 잇지 못하는 경북지역자활협의회 회장의 회고사를 들으면서 다듬어 지지 않은 한 장의 그림이 여기에 모인 모두의 희망으로 커다랗게 오버랩 되고 있었습니다.
2011. 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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