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 골목을 쓸다가
이른 아침 골목을 비질하다가 감나무에서 떨어진 노란 꽃들이 금싸라기를 흩어놓은 것 같아 얼른 멈추었습니다. 아직 시들지 않아 풋풋한 감꽃들. 흩어놓으면 별꽃이다가 주워들면 마치 왕관처럼 생긴 꽃입니다. 꽃 하나를 입에 물자 떫은맛이 여전히 혀끝으로 전해옵니다.
감꽃 목걸이의 추억과 함께 구석구석 잠자던 내 유년의 추억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합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온 내게 늘 보던 환경이기에 추억다운 추억이 없을 것만 같았는데 말입니다.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 우리 뒷밭은 또래의 부러움이었습니다. 떨어진 풋감을 주워 소금물에 담가두면 너무도 좋은 간식꺼리가 되었기에 콩밭을 망가뜨린다는 호랑이 우리 할아버지 고함소리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발길은 이곳저곳 콩밭을 망가뜨리기 일쑤였습니다.
지금의 우리 집 앞은 말끔히 포장되어 있지만 예전엔 뒷산에서 내려오는 개울물이 흘렀고 개울을 건너 조금 넓은 공터에 이맘때면 높다랗게 그네를 매어 신명난 여인네들이 치맛자락을 바람에 펄럭이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집 골목을 지나 조금 아래로 내려가면 200m 코스가 됨직한 골목길이 원형으로 이어져 있어 또래의 남녀 아이들은 이곳에서 심심하면 달리기도 했습니다. 그럴 듯한 상품도 없지만 편을 나누어 서로가 이겨보겠다고 기를 쓰며 달리던 맨발의 손년 소녀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무릎은 깨어져 피가 흐르고 형들은 고운 흙을 가져다가 상처 난 무릎위에 뿌려주면 보드라운 흙 위로 붉은 피가 빨간 꽃잎처럼 번지던 추억....
깡통하나면 밤새 만족 했던 깡통 차기, 아카시아 나무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만든 자치기, 잘 닳은 물돌을 주워하던 밭 전자 놀이나 비석치기, 유일하게 돈을 주고 사야 했든 구슬치기, 시멘트 포대(그 때는 돌가루 종이라고 불렀다)로 만들면 가장 튼실했던 딱지치기, 골목 가득 커다란 네모를 그려놓고 깨진 사기그릇 조각을 병뚜껑처럼 다듬어 엄지손가락으로 퉁기며 놀던 땅뺏기, 달 밝은 밤이면 흙 담에 머리를 박고 허리가 무너지라고 뛰고 오르던 말 타기도 했고 술래잡기를 하다가 미운 친구가 술래가 되면 골려 주려고 아무 말 없이 집으로 들어와 버리면 그 친구는 날 찾아다니느라 땀을 흘렸다는 뒷이야기.
늘 왁자지껄했던 이 골목의 악동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예순이 지난 지금도 생생한 그 시절. 컴퓨터 게임이나 오락실 게임기에서 혼자 놀이에 익숙한 요즘 아이들에게 이 골목의 그림 같은 추억이 살아날 수 있을까요?
비질을 멈추고 한 동안 멍하니 골목길을 바라보다가 오늘은 아무리 바빠도 저들에게 안부 전화라도 해야겠다고 작정을 하는 아침입니다.
2011.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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