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학/산문

상주향청 어깨춤을 추다

빛마당 2011. 7. 20. 17:07

 

 

266. ‘상주 향청’ 어깨춤을 추다

 상주 향청 앞뜰 늙은 소나무 가지에 휘영청 보름달이 걸렸습니다. 주변엔 청사초롱에 불도 밝혔습니다. 장마와 무더위에 잔뜩 짓눌려 있던 하늘이 모처럼 환한 기색을 보였습니다. 한적하던 상주향청 앞마당에 시끌벅적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상주거리예술단이 벌이는 ‘금요예술한마당’이 자리를 깔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아직 사회자의 멘트가 있기도 전에 징소리의 긴 울림이 향청의 마당을 한 바퀴 돌아 골기와 지붕위로 오르는 모습이 보입니다.

 오후 8시 40분. 더디어 ‘놀이패 신명’의 사물놀이가 문을 열었습니다.

 꽹과리와 징과 장구와 북, 네 사람의 연주자는 이미 자기들이 만들어 내는 장단 속으로 깊이 끌려들어 가고 있습니다. ‘디-잉, 디-잉’ 징소리가 한 줄기 바람을 불러 오더니 이어서 ‘둥 둥 둥 둥’ 북소리가 구름을 불러 오고, 이윽고 ‘또드락 따 딱 땅 따다닥’ 장고소리가 소나기로 내리더니 한차례 소나기 사이로 꽹과리 가 번개와 천둥으로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땅의 소리와 하늘의 소리가 함께 어우러지고 있습니다. 참 신기합니다. 자세히 들으면 각각 제 목소리인데 그러나 어느 하나 훌쩍 제목소리만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함께 어우러져 잔잔히 흐르다가, 어느새 분수처럼 솟구쳐 오르다가, 폭포수 인양 거칠게 떨어지다가, 바람인 듯 온 몸을 휘감아 가더니 다시 잔잔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굿거리장단, 자진모리장단, 엇모리장단, 휘모리장단에 대해 해설자는 부지런히 설명하지만 아! 우리 가락, 우리 장단에 무식한 이 안타까운 낯가림이여!

하지만 모른들 어떠랴. 조상 대대로 이어온 우리 가락과 장단은 나도 모르게 내 가슴 깊은 곳에서 나를 설렘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을...

  어느 듯 뜰에 앉은 관중들의 손뼉장단도 그들과 같이 어울러 집니다. 모두들 어깨가 움찔움찔 움직입니다. 옛 이름 간판 하나 이름표로 달고 앉아 오가는 사람 눈길 주기를 마냥 기다리고 있던 향청이 마당가득 북적대는 관중들에게서 새로운 기(氣)를 받고 있는듯 합니다.

 소나무 가지에 걸렸던 보름달이 향청 용마루와 처마에 머물고 있는 어둠 을 밀어내고 향청의 자태를 실루엣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입니다. 가만히 보니 처마며 용마루 잔잔한 곡선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습니다. 아! 향청이 어깨춤을 추고 있습니다.

 상주거리예술단의 ‘금요예술마당’이 공연문화 불모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 주더니 마침내 오랜 세월 잠자던 향청의 어깨에 덩실덩실 춤바람까지 깨우고 있었습니다.

 2011. 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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