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 어떤 동행
바람이 불었습니다. 이리저리 먼지도 흩날렸습니다. 날씨 때문인지 거리엔 사람도 드물었습니다. 오전 11시. 상주시외버스터미널 건너편 작은 가게에 문이 열리고 휠체어 하나가 문밖으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휠체어를 탄 70대 할머니는 햇볕을 가릴 수 있는 챙이 넓은 모자를 썼습니다. 창백한 얼굴만큼이나 하얀 마스크가 안쓰러웠지만 목에 두른 분홍색 스카프가 하얀 마스크와 묘한 대조를 이루었습니다. 휠체어를 밀고 계시는 할아버지의 은색 머리칼이 중절모 속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이웃의 말을 종합해 보면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모시고 정해진 골목을 한 바퀴 도는 듯 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계절과 날씨에 따라 복장은 달라지지만 두 내외분의 외출은 어김이 없는 듯 했습니다. 첨에는 대수롭잖게 지나쳤지만 한결같은 이 동행에 때론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는 날 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분들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할머니는 하반신을 쓸 수 없는 장애인이란 것뿐입니다.
할머니는 건강이 많이 나쁜 때문인지 퍽 신경질적이었습니다. 가끔 날카로운 목소리로 휠체어를 미는 할아버지에게 못마땅한 표정으로 퍼붓는 모습도 눈에 띄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표정은 한결 같았습니다. 할머니의 잔소리나 원망쯤은 이미 바람에 날려 버린 지 오래인 듯 얼굴엔 언제나 넉넉한 웃음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으로 이루어집니다. 그 중에서 세 번의 중요한 만남이 있지요. 부모님과 스승과의 만남, 그리고 평생을 함께 할 부부의 만남입니다. 첫 번째의 만남은 나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고, 둘째와 셋째는 어느 정도 선택이 가능하다지만 어쩌던 이 세 만남을 우리는 운명적이라 합니다. 그 중에서도 한 가정을 설계하는 부부로의 만남이야 말로 참으로 중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단순히 두 사람에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자녀라는 또 다른 공동운명을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남남이 만나 새로운 가족으로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끊임없는 이해와 신뢰 그리고 사랑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시간적으로도 오래 반려자로서 함께 해야 한다는 일입니다. 세월이 변하여 이혼율이 증가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결손가정이 늘어나고 그것도 모자라 황혼이혼이란 새로운 용어까지 등장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가정은 제 자리를 지키며 아름다운 동행을 하고 있기에 이 나라가 좋은 나라가 되고 있음입니다.
노부부의 휠체어가 바람이 부는 골목길로 들어섰습니다. 두 내외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할아버지는 여니 때와 다름없이 조용히 휠체어를 밀고 갑니다. 나는 일부러 두 분이 다음 골목으로 꺾어 돌아가실 때까지 한 참이나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비록 몸은 불편하시지만 두 내외분이 오래 오래 행복하시기를 마음속으로 빌면서 말입니다. 허허허.
2011.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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