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제2편
이스라엘 편 두번째 이다.
11시 50분에 가이사랴에 도착했다.
가이사랴는 주전 22-29년경 헤롯왕이 지중해변에 세운 항구도시로 주후 6년부터 500여년동안 로마 총독부가 위치했던 곳이다. 사도행전의 백부장 고넬료(행 10장)가 예수님을 영접한 곳이고 사도바울이 로마로 재판을 받으러 가기 전(행 22장) 2년 동안 이곳의 감옥에 머물렀다. 이곳에 지금 원형극장과 아고라 경기장의 유적이 남아 있다.
<원형극장에서>
<맑은 지중해가 보이는 고궁 유적지><이곳에 빌라도의 것으로 보이는 비석도 발견되었다>
<마차경기장과 지중해를 배경으로>
이곳과 베드로가 묶고 있던 욥바와의 거리는 약 60km 이란다. 베드로는 이곳에서 이방인에게 첫 세례를 베풀었던 곳이다. 바울은 이곳에서 약 400명의 호위 군사를 받아 2년간 머물렀다. 결국 이곳은 유럽으로 향한 첫 출발지인 셈이다. 전차경기장은 약 5,000명이 수용되는 대 경기장이다.
<노천 화장실의 모습 돌계단 사이로 물이 흐르고 있었단다>
12시 20분에 가이사랴를 출발하여 갈멜산을 향했다.
이스라엘은 남쪽엔 사막이지만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북으로 이동 할수록 풀도 나고 나무도 보였고 텔아비브지역을 통과할 때는 산에 숲도 많이 보였고 땅도 기름진 것 같이 보였다. 그럼에도 도로 주변에 심은 나무나 꽃들에게는 일일이 호스를 깔아서 물을 공급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곳 산에는 우리나라와 같이 소나무들도 많이 자라고 있었다. 숲도 우거지고 공원도 깨끗했다.
우리는 12시 40분쯤 갈멜산 아래 도착했고 여기서 점심(한식 도시락)을 먹었다.
이어 1시 50분에 승차하여 엘리야 기념교회로 향했다. 갈멜산은 이스라엘 서북쪽 해안평야지대에 위치해 있고 이스라엘에서 3번째로 큰 도시이인 하이파지역에 속한다. 최고봉이 해발 546m 정도의 낮은 산이다. 그러나 연평균 800mm의 강우량으로 수목이 우거진데다 샤론평야와 이스르엘 평야 사이에 맞닿아 있어 그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 갈멜산 봉우리의 므흐라카(불의 장소)라는 곳에 엘리야 기념교회(수도원)와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을 죽이는 모습이 동상으로 세워져 있다.(왕상 18장, 아가 7:5, 이사야 33:9, 나흠 1:4)
<엘리야 기념 동상과 엘리야 기념교회 안에서>
2시 쯤 우리 일행은 다시 므깃도를 향해 출발했다. 므깃도는 시리아와 이집트를 연결하는 길목에 위치한 곳으로 이러한 지정학적 위치로 고대로부터 이곳을 차지하려는 전쟁이 끊이지 않던 곳이다. 계시록 16장 16절의 ‘아마겟돈’의 어원도 ‘므깃도 언덕’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하르 므깃도’에서 나온 것으로 이곳이 얼마나 전쟁의 중심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현재 이곳은 텔므깃도라 불린다. 텔이란 전쟁으로 마을이 파괴도고 재 건축되는 과정을 여러 번 거치면서 지면이 높아져 생긴 언덕을 말한다.
<므깃도 언덕아래 펼쳐지 기름진 이스르엘 평지. 멀리 보이는 곳 왼쪽이 나사렛, 다음이 변화산, 나인성, 사울이 죽은 길보아산, 기드온의 300용사가 나오는 모레산이 보인다고 했다>
<텔므깃도에 2,800년 전에 만들어진 곡물 창고>
<지하 30m를 내려가서 만든 물길터널이 있다.>
3시 12분에 므깃도를 출발하여 나사렛으로 향했다. 나사렛이란 ‘뿌리’라는 의미를 가진 곳이며 예수님의 일상이 이루어 진 곳이기도 하다. 3시 40분에 나사렛에 입성을 했다.
나사렛은 예루살렘 북쪽으로 91km, 갈릴리에서 남서쪽으로 19km에 위치한 곳이다. 요셉과 마리아의 고향이자 예수님이 성장한 곳이다. 나사렛은 갈릴리 지방에서 가장 작은 마을이었다. 그래서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요 2:46)질문했던 곳이다. 나사렛 예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님을 조롱하기 위해 사용했으나 베드로는 오순절 설교에서 이 호칭을 사용함으로 오히려 유대인들의 회개를 유도 했다.(행 2:22)
이곳엔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수태를 알린 수태고지 기념교회가 있고 바로 곁에 요셉교회도 위치해 있다.
<수태고지 교회의 모습과 입구 그리고 교회 내부의 모습>
<수태고지를 상징한 마리아와 가브리엘 천사의 상>
4시 20분 우리는 다시 가나로 출발했다.
가나는 갈릴리 호수 방향으로 약 6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이곳에서 주님이 첫 이적(요2:1-12)을 행하신 곳이다. 이곳 결혼 풍습은 일주일 정도 진행되는데 보통 저녁 해질 때부터 시작이 된다. 일주일 정도 잔치를 하다 보면 포도주가 떨어지는 경우가 더러 있는 것 같다. 현재 이곳엔 1891년 프란체스코 수도회에서 세운 기적기념교회가 있다.
<가나혼인기적교회 앞에서>
4시 55분에 기적교회를 나와서 갈릴리로 향했다. 그리고 5시 40분에 갈릴리에 있는 킹솔로몬 호텔에 도착했다.
1401 김명자 김현숙 김일순, 1402 구의숙 최금자, 1403 김영래 박경숙,
1404호 차순이 김신향 1405 김재수 김성자 방배정이 끝났다.
호텔에서 6시 저녁식사를 하고 모두 피곤한지 모이지도 않고 꿈나라로 가고 말았다.
2011년 12월 12일 월요일
아침 7시 출발이다. 오늘 아침 기도는 한준희 사랑의 교회 집사님이 하셨다. 오늘은 갈릴리를 중심으로 한 순례길이다. 먼저 갈릴리 호수를 찾아갔다.
갈릴리 호수는 이스라엘 북부에 위치하고 남북으로 21km, 동서로 11km에 이르며 둘레가 53km, 면적은 166평방킬로미터에 해당된다. 헬몬산에서 흘러들어온 물로 풍요로운 이 호수는 이스라엘 전 지역의 식수로도 사용된다. 성경에서는 갈릴리 바다(마4:18), 디베랴 바다(요6:1), 게넷사렛 호수(눅5:1) 또는 겐네렛 바다(민수기 34:11, 여호수아 13:27), 긴네롯(여호수아 12:3) 등으로 불렸다. 이 외에도 중풍병자를 고치고(마 9:1-8, 막 2:1-12, 눅 5:16-26), 손 마른자를 고치고(마 12:9-14, 막 3:1-6), 백부장의 하인을 고침(마8:5-13, 요 4:43-54),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치신(마 9:23-26,막 5:38-43, 눅 8:49-56) 곳이다. 7시 14분에 갈릴리 호수에 도착을 한 후 모두 기념촬영을 했다.
<갈릴리 호수 선착장에서 기념 촬영>
호텔에서 볼 때는 잔잔한 것 같았는데 현장에 도착해보니 파도가 일었다. 예수님 당시 제자들이 풍랑으로 고생하고 물로 걸어오신 내용이 실감이 났다.
우리는 이곳 배위에서 선상예배를 하나님께 드렸다.
상해 장원봉 목사의 인도로 예배가 시작되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갈릴리 호수가 에서’찬양을 불렀다. 그리고 목포 무안제일교회 김성욱 장로가 기도를 했다. 김성욱 장로는 ‘내 평생에 가는 길’이란 찬송으로 기도를 대신했다. 장원봉 목사는 요한복음 21장 15절-24절의 말씀을 봉독한 후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있는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나도 너를 사알하니 너희들도 세상을 모두 사랑해야 한다’라는 음성을 듣기 바란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섬김을 통해 상처받은 자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주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이 될 수 있다고 말씀했다. 이어 ‘갈릴리 마을 숲속에서’ 찬양을 한 후 장원봉 목사의 축도로 선상예배를 마쳤다.
마침 배에서는 대한민국 국기를 게양하여 우리 모두 애국가를 힘차게 불렀고 복음성가를 틀어주어 복음성가도 힘차게 불렀다. 아울러 현지 이스라엘 여성이 우리들에게 간단한 폭크 댄스도 가르쳐 주어서 즐거운 선상체험을 하게 해 주었다.
<선상예배를 드린 목선>
우리 일행은 배에서 내려 다시 게네사렛을 향해 출발하였다. 게네사렛은 갈릴리 호수를 끼고 있는 주변 마을을 말한다. 이곳에서 팔복 교회를 향해 출발했다.
갈릴리 호수 북쪽에 위치한 팔복산은 산이라기보다는 낮은 언덕의 모습이지만 갈릴리 호수 쪽으로 내려오는 완만한 비탈은 우리가 모여 산상수훈(마5:1-10)을 듣기에 최적의 모양을 하고 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기념하여 후에 이곳 이름을 팔복산이라 하고 갈릴리 호수를 내려다보고 팔복교회가 세워져 있다. 팔복교회는 8복을 상징하는 8각의 형태를 하고 있고 1938년 이탈리아 건축가 바루치의 설계로 세워진 곳이다.
팔복교회에서 나이지리아에서 온 순례단과 같이 만났다. 이들은 이곳에서 찬양을 했다. 우리도 이곳에서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찬양을 했다. 우리는 우리말로 그들은 영어로 찬양을 했다. 이곳에서 나이지리아 순례단과 같이 사진도 찍었다.
<팔복교회에서 기념촬영과 나이지리아에서 온 순례단과 함께>
9시 25분 우리는 중동 6일 전쟁으로 유명해진 골란 고원을 통과했다. 과거 이 지역은 시리아가 점령하고 있었던 지역이다. 6일 전쟁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영토가 되었다.
이곳에서 바라본 헬몬산(2,200m)은 만년설이 하얗게 보였다. ‘헬몬의 이슬이 내림같이’란 시편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텔 단으로 가는 길은 들도 넓고 비옥하고 숲도 우거져 있으며 이곳에는 목장과 과일나무, 밀밭 등 경작지가 넓고 풍족하단다.
10시 5분에 텔단에 도착 했다. 여긴 단의 신전이 있는 곳이다. 북 요단강이 발원하여 남으로 내리는 지역이다. 물줄기는 거세고 물 흐름이 빨랐다. 모두들 요단강물에 손을 담구며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이곳 상수리나무가 유명한데 도토리크기가 매우 컸다. 모두들 도토리를 주우며 도토리묵을 쑤어 먹었으면 좋겠단다. 주워 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음이 안타까웠다. 카메라를 차에 두고 내려 텔단과 요단강을 찍지 못했다. 아쉬웠다.
<도토리의 크기가 엄지 손가락보다 더 컸다. 모두 탐을 냈다>
<텔 단을 가는 길의 숲과 넓은 들>
10시 05분에 텔단에 도착했다. 여기서 양을 잡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이곳으로 요단강 상류의 물이 발원하고 있다. 제단은 헬몬산을 바라보면서 쌓았다.
10시 55분 텔단을 나와 가이사랴 빌립보를 향했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텔단에서 동쪽으로 약 4km 떨어진 헤르몬산 남서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이 가이사랴 빌립보란 이름이 불리게 된 것은 헤롯의 아들 헤롯빌립이 이곳을 수도로 정한 후 로마황제와 자신의 이름을 합쳐 그렇게 불렀다. 이곳은 베드로의 신앙고백(마16:13-20, 막 8:27-30, 눅 9:18-21)으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이곳에서 거대한 폭포가 흐르고 이 흐르는 물이 요단강이 되어 갈릴리 호수로 흘러들어 간다. 가이사랴로 가기 전 우리는 요단강이 시작되는 곳으로 갔다. 계곡 아래로 내려가자 폭포소리가 계곡을 흔들고 있었다. 이 물이 남요단강이 되는 시발점이란다.
<거대한 폭포가 요단강으로 흘러내려가고 있다>
<현장 학습을 나온 유대 학생들과 함께>
이곳에서 올라와 신앙고백을 한 지역으로 올라 갔다. 이곳은 당시 신전이 있던 곳이었다. 그리스의 제우스, 로마의 쥬피트와 같은 신을 모신 곳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은 후에 비로소 수난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신전이 있던 자리에서. 이곳에 있는 거대한 바위를 보고 아마 베드로에게 ‘반석’이란 이름을 주셨는지도 모른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있던 장소이다>
<가이사랴 빌립보를 나오면서 이곳 유대 초등학생들이 현장학습을 나왔다. 이들과도 기념촬영>
11시 50분쯤 가이사랴 빌립보를 나와 12시 42분에 오병이어 기념교회에 도착했다.
이곳은 예수께서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서 개를 가지고 오천 명을 먹이셨던 일(마 14:13-21, 막 6:30-44, 눅 9:10-17,요6:1-14)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교회이다. 1930년대에 이 지역을 발굴하던 중 비잔틴 시대 교회 터와 함께 오병이어 모자이크가 발견되어 1936년 그 유적지 위에 다시 건립을 하고 1982년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지었단다.
<오병이어교회 내부의 모자이크와 교회 입구 장식. 오병이어교회를 배경으로>
이곳을 나와 1시에 우리는 다시 베드로 수위권 교회를 찾았다. 걸어서 불과 5분 정도의 거리였다. 이곳은 실망한 제자들이 갈릴리 호수로 고기잡으러 내려 왔을 때 주께서 이들을 찾아 오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질문하셨던 곳(요21장)이다. 교회 안에는 고기로 아침을 드시며 대화를 나누셨던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에는 ‘멘사 크리스티’라고 불린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식탁이란 뜻이 담겨있다. 우리는 모두 ‘갈릴리 호수 가에서’라는 복음송을 각자 시몬이란 이름 대신 자신의 이름을 넣어 불렀다. 베드로에게 당부 하시던 그 모습이 눈에 선 하다. 그리고 그 말씀이 곧 나에게 하시는 말씀과 같다. 우리는 조용히 2분간 함께 묵상 기도를 드렸다.
<베드로 수위권 교회 내부와 갈릴리 호수 바로 위 언덕에 세워진 교회에서>
<네가 날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 베드로와 예수님의 기념상>
11시 15분 수위권 교회를 출발하여 그 아래 있는 식당으로 내려갔다. 이곳에서 우리는 베드로 고기와 대추야자가 곁들인 점심을 먹었다.
<베드로 고기와 대추야자를 곁들이 점심식사>
2시 10분 경 식당을 나와서 예수님의 본 동네인 가버나움으로 향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북서쪽에 있는 작은 마을로 당시 주요 무역 중계 역할을 했던 곳이다. 이곳을 갈릴리 복음전파의 중심지로 삼으셨던 예수님은 3년간의 복음 전파기간 중 2년을 가버나움에서 많은 이적을 행하셨다. 이곳이 예수님의 제2고향마을이라고 불리는 이유이다.
(마 9:1-8, 막 2:1-12, 눅 5:16-26 중풍병자를 고침), (마 12:9-14, 막 3:1-6, 눅6:6-10 손 마른 자를 고침),(마8:5-13, 눅 7:1-10, 요4:43-54 백부장의 하인을 고침)
(마 9:23-26, 막5:38-43, 눅8:49-56 야이로의 딸을 고침)
이곳에는 베드로의 장모의 집이 있었다. 이곳에서 베드로의 장모 열병을 고쳤다는 곳에 기념교회가 세워져 있는데 교회 지하에 옛 베드로 장모의 집터라는 곳이 유리 아래로 보였다. 그리고 이곳에는 ‘김나지움’이라는 유대인의 회당 자리도 그 유적으로 남아 있었다.
<베드로 동상과 베드로 장모의 집 기념교회 아래 옛 집터 모양>
<가버나움에 있는 김나지움(유대인의 회당)>
이곳에서 2시 40분에 출발하여 3시 11분에 남요단강에 도착을 했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흘러내린 물과 함께 여기서 남요단강이 물의 흐름을 잡는 곳이란다. 이곳에서 침례를 행하는 순례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흰옷을 입은 이들은 요단강에 몸을 잠그며 연신 온 몸에 물을 끼얹고 있었다. 그리고 유료 화장실도 기념으로 찍어봤다.
<남요단강의 발원지에서 침례를 하고 있는 이들이 보였다>
<유료 화장실>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는 예수님을 묘사한 성경말씀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분당지구촌 교회에서 세운 것이다>
3시 24분 남 요르단 강을 출발하여 이제 요르단으로 출국하기 위한 수속을 밟았다. 지금까지 우리를 위해 운행해 주신 이스라엘 기사는 오마르 씨였다.
다음 편부터 요르단 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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