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8. 아들의 등
인간관계에서 친밀해 지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주 만나는 일이고 다음은 음식을 서로 나누는 일입니다.
‘음식 끝에 정 난다.’라는 말도 있잖아요.
또 하나는 함께 여행을 하는 일이요 함께 목욕을 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가릴 것 없는 알몸으로 서로의 등을 밀어주노라면 훨씬 친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입니다.
주말마다 오는 아들 가족을 대리고 모처럼 성주봉에 있는 한방사우나를 갔습니다.
여느 때처럼 혼자 앉아 때를 미는데 아들이 다가와 등을 밀어 줍니다. 그
런데 등을 내밀고 있는 내가 몸 둘 바를 모르도록 어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나를 모르는지 아들은 내 등을 부지런히 밀고 있었습니다.
이젠 내가 아들의 등을 밀어줄 차례입니다.
내 눈 앞에 딱 버티고 앉은 튼튼하고 믿음직한 아들의 등.
그런데 내가 아들의 등을 미는 순간 갑자기 왈칵 하고 눈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되돌아보면 아들 나이 마흔이 되도록 한 번도 그의 등을 밀어준 기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늘 그랬습니다.
직장이 내 가정보다 늘 우선이었습니다.
여름과 겨울 그 방학동안도 집에 있기보다 학교에 가 앉았으면 마음이 편했습니다.
지난 41년의 교직 생활.
아무리 더듬어 봐도 생각 날만큼 뚜렷하게 해 놓은 일 하나도 없이 바쁘게만 달려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남들에겐 일상인 아들과 함께 목욕탕 다니는 일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습니다.
아들의 등을 보는 순간 자식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아비의 처신에 대해 미안함과 자책감이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아들 역시 아버지와 함께 목욕하는 일이 얼마나 어색했는지 내내 몸 둘 바를 몰랐다는 겁니다.
우리말에 ‘낯가림’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어린아이들이 낯선 사람을 가리어 대한다는 말이지만 결국은 쉬운 일이라도 평소에 자주 하지 않으면 어색해 지는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둘러보니 어린 아이와 함께 온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보입니다.
함께 물장난도 치고 몸을 씻어주기도 하며 다정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이런 추억 하나 만들어 주지 못한 자격 없는 애비의 모습이 자꾸 부끄러워 눈시울이 붉어 졌습니다.
하지만 땀으로 범벅된 내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아무도 보지 못한 게 참으로 다행스러웠습니다.
2012.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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