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문화/상주문화 24호

상주학. 상주문화 제24호 현대 규방가사 연구

빛마당 2015. 5. 21. 21:59

                         현대 규방가사 연구


-상주 양정지역 가사를 중심으로-

상주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상주고등학교 교사

권 택 룡

목 차

Ⅰ. 서론356

Ⅱ. 양정지역 가사 개관361

Ⅲ. 내용 고찰372

Ⅳ. 문화적 의의395

Ⅴ. 결론397

현대 규방가사 연구

-상주 양정지역 가사를 중심으로-

상주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상주고등학교 교사

권 택 룡

Ⅰ. 서론

1. 연구의 방향과 방법

가사(歌辭)란, 고려가요의 붕괴와 조선 초 시조의 본격적인 창작과 더불어 생겨난 운문으로, 그 내용은 다분히 산문적이다. 따라서 가사는 운문과 산문의 중간적 존재라고 할 것이다.

고려 말기에 출현하여 주로 신흥 사대부들에 의해 창작된 가사는 고려 말 나옹 화상의 ‘서왕가(西往歌)’를 최초의 작품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정극인의 ‘상춘곡(賞春曲)’을 효시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4음보의 연속체 민요와 경기체가에서 발전하고, 시조의 영향을 받은 듯한 가사는 초기 가사의 경우 그 마지막 행에 있어 시조의 종장과 같은 3․5․4․3의 음수율을 지니고 있다. 또, ‘3(4)․4조, 4음보의 연속체 시가로 그 율격에 있어 시조와의 공통점을 엿볼 수 있다.

이 장르는 사대부들의 유교적 관념이나 삶을 표현하는 데 적합한 시가 형태였기에 초기의 가사는 양반 사대부들에 의해 주도되었고, 정격 가사로서 세련된 문학으로 정착되기에 이른 것이다.

가사 역시 시조와 같은 변화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주로 사대부들의 산촌 생활이나 혼탁한 정치적 현실의 갈등에서 빚어진 유배지의 고뇌를 읊었던 초기에는 양반 계층의 전유물이었으나 후기로 접어들면서 삶의 애환, 풍자, 교훈 등이 주를 이루며 평민 작자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처럼 초기 가사는 관념적․서정적인데 비해 후기 가사는 체험적․사실적․서사적 성격을 띠었다. 형식에서는 정격 가사에서 자수와 음보가 변하는 변격 가사로, 내용에서는 충효 사상이나 전원 한정에서 벗어나 실사구시적 경향을 띠었으며, 대체로 장편화하는 경향을 나타내었다.

특히 규방가사는 조선조 후기 이후 주로 영남지방의 양반 가문의 부녀자들을 주된 향유층으로 하여 창작되어 온 문학 양식으로 오늘날까지도 전통적인 방법으로 창작과 향유의 맥을 유지하고 있는 장르이다.

또한 남성이 지은 가사라 할지라도 이것이 규방으로 흘러 들어가 여성들에 의해서 향유되거나 필사를 통해 돌려 읽혀지는 등 유통되었다면 이도 규방가사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규방가사는 영남부녀자들의 언문습득과 높은 유교적 교양, 문학적 재질이 한데 어우러져 시작되었으며, 이를 자기들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그 내용과 형식이 완성되었다. 규방가사가 어떻게 해서 비교적 오랜 기간에 걸쳐 그 형식이 동일한 작품이 무수히 창작되었고 어떤 경로로 전파되었고 또 그것이 많은 부녀자들에게 향유되어 왔을까 하는 의문에 있어 중요한 것은 그것의 전승과정을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다.

규방가사는 처음에는 교훈적인 것에서 시작하였다. 할머니나 어머니가, 또는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출가하는 손녀나 딸에게 시가 살이의 방법 같은 실생활에서 알아두어야 할 내용, 시가 가문의 자랑 등의 자부심 고취, 양가의 딸과 며느리로서의 몸가짐에 관한 교훈적인 것, 부모와 자식 간의 석별의 정에 관한 내용을 가사형식으로 적어 두루마리에 써서 주면, 딸은 이것을 소중히 간직하고 틈날 때마다 이를 꺼내 보고 행동의 지침을 삼거나 부모를 생각하며 눈물짓기도 한다.

또한 이를 읽기만 한 것이 아니라 글씨 연습의 대본으로 삼아 글씨도 익히고 그 글의 형식과 내용의 특징을 배우고 이를 통해 자신의 상황에 맞게 직접 창작하는 경우도 충분히 생길 수 있다. 두루마리에 쓰인 부모의 가사를 자신만 보았을 리 만무하다. 처지가 비슷한 이웃의 부녀들이 이를 보고 내용이 좋으면 베껴 쓰기도 한다. 그것은 다른 부녀들에 의해서도 위와 같은 방법으로 전승된다. 서로가 가지고 있는 것을 서로 빌려주기도 하고 빌리기도 하며 읽는다. 관심이 많은 부녀의 경우 많은 작품을 소유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며, 뛰어난 창작능력을 가진 사람은 훌륭한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이런 과정으로 세월이 흘러 다음 세대가 시집갈 무렵이면 10여필씩 작품을 가지고 간다. 영남지방 풍속에 자기 동리에 새로운 신부가 오면, 부녀자들이 무리가 되어 그 집을 방문하고 신부가 친정에서 가져온 ‘가’가 얼마나 있으며 그 작품의 질이 어떠한가에 따라 그 신부 본인과 집안의 교양을 평가하였다. 또한 이를 빌려 보고 다시 돌려주는 풍속이 있었다. 처음에 어느 한 사람의 고유한 창작이던 작품이 서로 빌려주고 빌려보는 과정 속에서 와탈부연(訛脫敷衍)되어 작품이 변질되어 만들어지기도 한다. 부녀자들은 명절 모임이나 화전놀이 같은 단체모임의 시기에 ‘가’를 공동으로 창작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각 부녀자들은 모두가 자기가 창작한 것으로 삼기도 한다. 또한 부녀들은 부녀들의 작품만이 아니라 친정의 아버지나 할아버지, 시가나 시가 집안의 남성들이 지은 ‘가’도 빌려 읽거나 필사하고 낭송함으로써 남성들의 작품도 규방에서 향유․유통되었다.

위는 내방가사의 전승과정을 추론한 것이다. 이를 통해 규방가사는 주로 영남지방의 부녀자들을 중심으로 창작․향유되었으며 그 과정은 부녀들만이 경험하는 출가와 공동의 생활에서 비롯되었고 창작과 향유의 방식은 필사와 낭송을 통하여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이후 무수히 많은 작품이 지어졌다는 것은 그들이 작품의 창작과 향유를 즐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출가는 부녀자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사회적 관습으로, 양반의 경우에는 연줄혼인을 통해 사회적 위신과 높이고 지배를 공고히 하고자 하는 성향이 강하였다. 이런 이유로 시가의 가문을 자랑하거나 가문의 결속력을 다지는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또 여성들 고유의 생활체험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하거나 청명일을 전후로 화전놀이를 하며 느끼는 봄의 감회를 읊은 노래 등이 대표적이다.

양반 부녀자들이 내방가사를 창작․향유했다는 사실은 문학이 전문적 작가나 하는 어렵고 특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를 낭송하고 필사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즐거움이 양반부녀자들 사이에 창작의 과정으로 발전되어 널리 전승․발전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창작과 향유의 즐거움을 누린 것이다.

오랜 기간 동안 여성이라는 단일한 문학 주체에 의해 비교적 동일한 양식으로 수천 여 편의 작품이 지어지고 향유되는 가사가 조선후기보다는 그 작품의 수나 질이 적고 떨어지기는 하지만 현대까지 계승되고 있다.

필자가 수집․분석한 작품은 총 5편으로 경북 상주 지방에서 1970년대 이후에 지어진 작품들이다. 조선 후기에 발생한 규방가사가 아직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자료이다. 그리고 이 작품들은 옛 가사를 살리기 위한 취지에서 여러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행사와 관련된 작품도 아니고, 옛 가사를 현대적으로 계승하기 위해 일부 단체에서 시도하는 것과도 무관하다. 비교적 전통적인 방식과 내용을 유지하고 있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지은 사람들은 반가의 전통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특별히 교육을 많이 받았다거나 경제적으로 부유한 계층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없는, 이른바 ‘殘班’에 속하는 남성들이나 여성들이었다.

이에 본고에서는 영남지역 가사가 20세기 후반까지 창작․향유되었으며 일반인도 쉽게 창작하고 향유했다는 것을 작품의 실례를 들어 밝히고자 한다. 이를 통해 가사가 여전히 특정한 지역과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삶을 토로하고 즐기는 대상이 되고 있음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연구의 방법으로 우선 이 작품이 지어진 지역의 전반적인 특징을 조사하고 가사 두루마리를 소장하고 계신 분과의 인터뷰를 통해 문자와 가사의 體得방식과 작품을 지은 작가들에 관한 내용, 향유방식 등의 향유양상을 면밀히 조사하였다.

또한 5편 가사의 내용을 고찰하였고 표현상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먼저 내용상의 고찰로 門中意識 고양, 여행의 감회, 삶의 회고 등 세 가지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표현상의 특징으로는 전고의 인용, 수사법의 활용, 독창적이고 미려함 등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들 작품이 가지는 문학적 의의를 진단해 보았다.

Ⅱ. 양정지역 가사 개관

1. 작품의 전반적 개관

(1) 작품 1, ‘무오년 속리산가다’는 내용으로 보아 마을의 한 부녀로 추정되나 정확히 누가 지었는지는 알 수 없다. 권오덕씨가 1979년에 옮겨 적었다는 내용으로 보아 그 이전에 지어졌을 것이다. 부모효양과 자녀교육 등 근심과 걱정으로 살아 온지 60년 만에 마을의 부녀들이 처음으로 속리산으로 유행(遊行)을 떠나는 노래이다. 일정을 짜고 가사를 다독이며 행장을 준비하여 떠날 준비를 마친다. 온갖 먹을거리를 준비하고 화려한 옷차림을 다소 과장되게 표현하여 여행의 들뜬 마음을 표현하였다. 말티재를 올라갈 때 구불구불한 길을 인생살이에 비유하고 인공 기술의 대단함에 감탄을 한다. 속리산 정이품송을 보고 군자의 기질을 노래하고 법주사와 주변의 아름다운 봄 경치를 예찬한다. 점심을 마친 후에 반가운 사람을 만나 기뻐하고 함께 문장대에 오른다. 문장대에 올라 취흥을 즐기면서 같이 간 일가 친지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평을 한다. 사람들의 행동과 특징을 해학적으로 나열하고 있다. 귀로부분에서는 하루의 유행이 끝나고 있음을 아쉬워하며 짧은 인생을 즐겁게 살 것을 권하는 내용과 서로 화목하게 살 것을 당부하고 있다.

(2) 작품 2, ‘태사묘소 참배가다’는 ‘팔도강산 유람가다’와 마찬가지로 권오덕씨의 작품이다. 1985년에 지었다. 근본을 아는 것이 인간의 도리임을 강조하면서 始祖墓所 참배를 의논하고 정월 그믐으로 날을 정한다. 의복을 淨하게 단장하고 이안과 함창, 점촌, 용궁, 예천을 거쳐 시조 묘소가 있는 안동에 당도한다. 그 곳에서 신도비와 여러 祭閣을 구경하고 시조 묘소에 참배한다. 계속하여 영주, 풍기를 지나 죽령을 넘어 안동권문 추밀공파의 先祖인 양촌 권근의 묘소가 있는 음성 방축으로 간다. 천하의 명당인 선조 묘소를 참배하고 충주를 거쳐 탄금대에 이른다. 탄금대에서 신립장군을 추모하고 달래강을 지나 수안보에서 온천욕을 즐긴다. 연풍과 이화령을 지나 문경에 이르러 새재관문을 못보고 돌아감을 아쉬워하고 영남 팔경의 하나인 진남교반에 당도한다. 결사 부분에는 일가 친지끼리 화목하며 다시 한 번 길을 떠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노래한다. ‘일락서산 해가 지고 월출동방 달이 떠니’란 표현은 경기 민요 ‘양산도’에 그 용례가 보인다.

(3) 작품 3, ‘화수가’는 권영원씨의 작품으로, 1990년 3월 26일 지었다. 시조(始祖)의 덕과 복으로 권문(權門)이 십 오파가 형성되었으며 안동부로 관향(貫鄕)을 정한 것이라고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선조의 대를 이어 수신․제가하며 일가친지가 비록 가난해도 멀리하지 않는 자세로 살아가야 하며 이와 같은 정신을 되살려 종친회 상주지회 공검분회 창립에 일가 사랑의 자리가 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인근의 아름다운 장소로 총회지를 정하고 이웃마을 정경세의 후손들이 사는 우복동의 文章과 창녕조씨들이 모여 사는 가규동의 孝友를 이야기하고 열녀각(烈女閣)과 忠烈을 노래한다. 그리고 먼저 여러 종류의 화전(花煎)을 부쳐 이태백과 백이․숙제, 부모님 전에 봉송(奉送)하고 나머지는 우리가 먹고 마시며 춘색을 즐기는 내용이다. 특히 이 노래 가사 중 ‘서산에 지는 해는 양류사로 잡아매고 동천에 뜨는 달은 계수나무에 잡아 매여’란 부분은 조선후기의 판소리 단가(短歌)인 ‘만고강산’ 과 일치하고 있어 이런 표현들이 많이 유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4) 작품 4, ‘팔도강산 유람가다’는 권오덕씨가 1994년 7월 16일에 지은 작품으로 제목 그대로 이 곳 저 곳을 유람한 이야기이다. 70세를 맞이하여 막내의 권유로 시작된 여행은 설악산으로 가는 여정으로 시작하고 있다. 설악산에 올라 아름다운 자연의 경치에 감동하고 客窓感에 젖고 동해를 따라 낙산사, 경포대, 오죽헌 등을 유람한다. 태백과 삼척, 포항을 지나 경주, 부산에 가서 용두산과 해운대를 들린다. 통도사에서 웅장한 경치와 목탁소리를 듣고 마산을 거쳐 진주에 당도한다. 진주에서 촉석루에 올라 논개를 기리고 섬진강, 화개장터를 찾아간다. 전라도 남원에서 성춘향의 절개를 예찬하고 전주를 거쳐 집에 당도하는 여정이다. 여행을 끝낸 후에 세상 사람들에게 勸誡하는 내용으로 젊어 청춘에 구경을 많이 할 것과 인생무상을 이야기하며 짧은 인생에 부귀와 영화 때문에 남의 가슴에 한을 남기는 일을 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을 잃지 삶을 살 것을 노래하고 있다.

(5) 작품 5, ‘어와 세상 창생들아’는 작천 할머니가 지은 작품으로 1995년에 지었다. 다른 작품들이 전체 내용을 포괄하는 것으로 제목을 정한 데 비해 이 작품은 서두에 나오는 구절로 제목을 삼고 있다. 이렇듯 시작 부분으로 제목을 정한 이유는 별 의미 없이 편의적으로 제목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인생 70세를 맞이한 화자가 객지에 살다가 고향과 다름없는 시댁 마을에 돌아오는 이야기로 허무한 인생 회고와 시댁 마을에 대한 그리움, 늙음의 한탄, 고향 가는 길에 느낀 인생무상을 이야기 한다. 남편도 죽고 자식도 잃은 처지에서 종반임내 무덤에서 이미 죽은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인생에 대한 쉼 없는 공부만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깨닫기도 하며, 집안의 사람들에 대해 일일이 그 모습을 평가하며 때로는 칭찬하고 때로는 비꼬기도 한다. 이를 통해 우수한 인생 공부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못 다한 학교 공부, 늙음에 대한 한탄을 한다. 이와 같이 이 작품은 古稀의 나이에 자신의 한 많은 인생을 회고하고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친숙한 집안의 여러 사람들에 대한 평가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작품이다.

2. 지역적 특징

가사 5편이 수집된 지역은 현재 ‘慶尙北道 尙州市 恭儉面 楊亭 2里 대밭마’란 자연마을이다. 1914년 행정구역 통합으로 함창군 남면의 봉성리와 소정리를 합하여 양정리라 하고 상주군 공검면에 통합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또한 양정 1리와 2리는 1960년에 나누었다.

楊亭里의 유래는 함창군 남면 공갈못 가에 버드나무 정자가 많이 있어서 ‘楊亭里’라고 하기도 하고 양정리의 모태인 ‘대밭마’란 마을은 뒤에 대나무가 있어서 그렇게 지었다고도 한다. 또 다른 설로는 조선 효종 때 큰 선비인 양정공(養亭公) 권성(權惺)이 이 곳에 정착하여 자신의 호를 따서 양정이라고도 하며 권성이 처음으로 마을을 개척하고 버드나무를 많이 심어서 버드나무 밑에 정자를 지어 양정이라 하기도 한다. 이 ‘양정리’의 유래에 해당하는 마을이 현재 ‘대밭마’란 마을인데, 마을 뒤에는 대밭이, 마을 앞에는 고목 버드나무가 한 그루 있다.

대밭마는 安東權氏 20여 호가 모여 사는 集姓村이다. 이들은 모두 권성과 하동부사를 역임한 그의 아들 獨軒公 權緝의 直系 후손이거나 傍系 자손이다.

이와 같은 마을의 유래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비록 이 마을 사람들은 조선 후기 官界로 진출하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몰락의 길을 걸었지만 그들의 뿌리 깊은 가문에 대한 명예와 양반으로서의 자존심은 여전하였다. 그래서 그들이 가장 신경을 쓰던 것은 혼반문제였다. 혼인문제에 있어 비록 경제적으로 남루할 지라도 대등한 지체의 양반들끼리 연줄혼인이라는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가문의 자부심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게 되었다. 이렇게 가문을 중시한 연줄혼인으로 인해 한 가문에서 다른 가문으로 딸을 출가시킬 때에는 시가의 가문에 대한 자랑을 통해 향촌사회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자 하는 의도와 시가에서의 예의범절에 관한 당부 등이 중시되었을 것이다. 즉 양정리 대밭마의 딸을 출가시키는 것과 며느리를 맞아들이는 것이 일정 정도 이상의 지체를 갖춘 집안과만 이루어졌으며, 그들은 위와 같은 내용의 ‘두루마리’나 ‘가’의 내용을 읽고 지을 수 있는 교양을 갖춘 사람들이었다. 필자의 어머니를 비롯한 마을 분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자신의 인생 한탄, 친정집 이야기, 여행 갔다 온 이야기, 예의범절에 관한 것 등 다양한 내용의 ‘규방가사’가 많은 작가들에 의해서 많이 지어졌고 또 이를 규방을 중심으로 향유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많은 작품들이 보관이 부실하여 파손되거나, 싼 값에 팔려나가거나, 행방이 묘연하여 찾지 못하거나 하여 겨우 5편만을 수집하였다.

3. 작품의 향유양상(體得, 作家, 享有方式)

조선 후기에 시작된 규방가사가 20세기 중반과 후반에도 창작․향유되고 있으며 일반인들이 쉽게 창작하고 향유한고 있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 이 논고의 주된 내용임을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규방의 부녀들이 글자를 익히고 싶었던 이유와 글자를 배우게 된 과정은 무엇인가. 그리고 작가는 누구이며 그들이 가사를 향유한 이유는 무엇인가. 또한 가사의 향유 방식은 어떠하였으며 감상 작품들에는 어떤 것이 있었는가. 이와 같은 작품의 향유 양상과 관련된 몇 가지 의문을 풀기 위해 수집한 5편 중, 4편을 필사하여 소장하고 계신 홍차원 할머니를 면담하였다.

먼저 한글과 한자와 같은 글자를 배우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냥 한참 배우고 싶을 때에는 잠도 안 오더라고. 무리미 할배가 선비문집도 있고 다른 동네에는 없어 이름자도 모르는 사람이 많아여. 보만 우리 집 남자들은 서당에서 한시도 배우고 남자들은 한문을 배우니까 언문은 그냥 배우게 되거든. 학교는 없었고 서당에서 배우고. 나도 한자를 어깨너머로 배웠는데 어른들이 못 배우기 하는 기라. 여자들이 언문만 알면 되지. 좀더 많이 배우면 좋을 긴데.

배움에 대한 열의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고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글자를 체계적으로 익힐 수 있는 학교는 양정리와 같은 영남의 산간 마을에서는 없었으며 그나마 漢學을 익힐 수 있는 서당은 여자로서는 들어갈 수 없는 시대 상황이었다. 홍차원할머니가 가사를 향유할 정도로 글자를 익힌 것은 할머니의 배움에 대한 열의가 우선은 작용하였다. 또 남자들이 서당에서 한학를 배우는 등, 글을 숭상하는 양반 동네의 분위기도 작용하였으리라 판단된다. 비록 어른들은 여자가 글을 익히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여겨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지만, 그 마을의 崇文主義의 분위기가 어린 부녀들에게 글자를 익히게 유도한 동기로 작용하였다.

다음으로 글을 익히게 된 과정은 다음과 같다.

열 너댓살 먹었는가 몰라. 일가어른이 나하고 한 항렬 오빠뻘 되는 데 그래 내가 자꾸 아무 소리 했으만, 대구 뭘 써 버릇한께 한문을 한 장씩 조여. 그걸 가지고 또 베끼고 베끼고. 정지에 앉아서 배우고 부뚜막에 앉았다가 배우고 양반동네다보니까 주위에서도 배우고. 난 참 배왔다캐도 더 뭐 공부한 거도 없고. 그래 그거 가지고 또 재독해서 보고 또 재독해서 보고 그러니 그기라도 배웠지. 참 남사서러워여.

배움에 대한 열의를 가진 할머니는 14․15세 무렵 고향에서 글을 아는 한 집안 오빠가 한자로 된 글을 한 장씩 전해주어 이를 바탕으로 여러 번 베끼는 과정에서 한자나 한글을 익히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집안의 오빠가 준 한문이 적힌 한 장의 종이를 교과서 삼아 부엌에서 흙바닥에 써 보기도 하고 부뚜막에 앉아 읽기도 하면서 익혔다.

이와 같이 비교적 어린 나이부터 한자와 한글을 익히게 되어 훗날 가사를 쓸 수 있는 소양을 갖추게 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한자를 익히게 됨으로써 남자들이 지은 가사에서 보이는 어려운 古書나 한시구의 표현 및 중국의 인명과 古事를 사용한 한문을 이해하고, 자신들의 창작물에도 이와 같은 표현을 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동네에서 가사를 지은 분들과 가사를 향유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동네에서 가사를 지은 분은 무리미 할매, 작천 할매, 그 두 사람 뿐이라. 남자들이 지은 것도 베끼고 읽고 했는데, 지산 할배나 염시미기 아재도 있었지. 가사는 심심해서 보기도 하고 시방도 테레비 보다가 테레비 보다가 싫증하면 시간만 나면 가사나 보고 비끼기만 하고 그러면 좋겠어. 간직 안 하먼 소용없어. 그래 그거 읽고 옛날 일을 생각하면 눈물도 흘리고 옛날 추억도 떠올리고 소일거리로 하지. 자기 집에 힘들었던 사연, 그런 거 보면 속 풀이가 되여. 고생을 많이 해 가지고.

동네에서 가사를 창작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제한적이었다. 많은 이들이 읽고 베끼는 일을 할 수 있었지만 직접 짓는 것은 상당한 정도의 문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만이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남자들도 가사를 지었으며 이것이 규방으로 흘러 들어와 규방의 여성들에게 향유의 대상이 되었다. 실제 필자가 수록한 5편의 작품 중 4편이 남자들의 작품이다. 어릴 때부터 서당교육을 통하여 한자를 공부한 남자들이 여성들에 비해 한시 등을 지을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았으며 이와 같은 학문적․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많은 가사를 짓고 이것이 규방으로 유입되어 부녀들의 향유 대상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여성들은 가사를 읽으며 옛 일을 떠올린다. 시집살이 등 고생한 이야기나 여행 갔다 온 이야기 경제적인 어려움을 비롯한 힘든 사연들을 떠올리며 눈물도 흘리고 옛 추억을 떠올리며 웃음 짓기도 하는 등 가슴 속의 응어리를 풀기 위해 가사를 읽는다. 또 일정한 유희 문화가 없었던 시절, 가사는 유용한 소일거리의 일종이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이유로 부녀들은 가사를 향유하였다.

또 가사의 향유과정은 다음과 같다.

뭐 우리끼리 지은 것을 베끼기도 하고 그래서 돌려 읽고 그랬지 뭐. 가사는 혼자 많이 읽었는데, 심심하만 들다보고 주로 집에서 심심하만 들다보고 혼자 많이 읽고 가끔 같이도 읽었는데, 지금은 다 죽었지. 동서나 종동서나 친족들하고 읽지 남자들하고 에이 안 읽지 혼자 볼 때는 속으로 읽고, 다같이 볼 때는 누가 읽고 듣는 사람은 듣고. 어-와 세-상 창생- 들아. 이내- 말좀- 들어- 보소-. 노래하듯 읊는 거지 초성 좋다고 하지 줄줄 빼서 읽으만 초성 좋다고 하지. 듣는 사람도 듣기 좋다고 하지.

부녀들은 그네들이 지은 가사를 베껴서 돌려가며 읽었음을 알 수 있다. 주로 혼자 많이 읽었으며 혼자 읽을 때에는 黙讀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여럿이 읽을 때에는 어느 한 사람이 朗讀하고 다른 사람은 이를 듣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낭독하는 이는 ‘초성’이라 부르는 ‘歌辭唱’으로 낭독했음을 알 수 있다. 주로 같이 듣는 사람들은 집안의 동서나 종동서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모여 외로움과 시집살이의 괴로움, 여성으로서 갖춰야 할 교훈적인 내용, 같이 여행 갔다 온 이야기 등을 서로 공유함으로써 슬픔과 기쁨을 같이 느꼈다. 그러므로 남자들과는 같이 가사를 읽고 즐기기엔 同性간에 비해서 疏通되는 측면이 훨씬 적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거의 없었다. 또한 內外같은 윤리적인 문제도 작용했으리라 짐작된다.

마지막으로 그 당시 주로 글을 익히고 보고 즐기기 위한 목적으로 감상한 작품들 에 대한 것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쓴 기 많은 데, 가문 자랑한 것, 봄에 꽃놀이 간 것, 어디 갔다온 것, 고생한 이야기 뭐 그런거라. 또 좀 이름난 거는 ‘부인서행록’이라고 여자들 가르치는 건데, 남편이 선빈데, 7남매의 맏이로 와 가지고 선비가 공부만 해서 힘든데 부인이 너무 잘해서 남편이 부인의 모습을 보고 지었다는 거라. ‘붕우가’는 인제 친구 사이로 딸을 시집보내가지고 마음이 아파서 유씨로 시집보냈는데, “시집살이 말도 마라, 바람만 언뜻 불어도 너의 생각, 하늘에 비만 와도 나의 눈물인지 알아라.” 뭐 그런 내용인데 친정어머니가 딸에게 시집살이의 어려움을 알아라 뭐 이런 뜻이라. ‘망부가’는 안에서 남편이 공부하러 갔는데, “오늘이나 올까, 내일이나 올까, 유월이나 유두날…….”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일정한 문학적 소양을 갖춘 마을의 부녀들이 지은 가사를 읽으며 글도 익히고 새로운 표현도 알며 내용에 공감하며 눈물도 흘렸다. 가문자랑이나 花煎놀이, 여행의 감회나 삶을 회고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었다.

또 주목할 만한 사실은 20세기 중․후반까지 일부 班家의 부녀들이 조선 후기 작자 미상의 규방 가사를 읽었다는 사실이다. ‘부인서행록’은 모범적인 부녀의 이야기로 女必從夫하며 가정에서 남편에 대해 절대 불만을 드러내지 않고 자녀들을 기르는 유교적인 부녀에 관한 교훈적인 내용의 가사이다. 또한 ‘붕우가’ 어릴 적 동무 집에 딸을 시집보낸 한 친정어머니가 시집살이의 어려움과 자신의 안타까운 마음을 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지은 가사 작품이다. 같은 여성끼리 경험할 수 있는 시집살이의 고단함을 이야기하고, 또 혈육을 떠나보내는 어머니의 마음과 합쳐져 그 슬픔은 절절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모범적인 부녀의 행실에 대한 것이나 시집살이의 어려움에 대한 가사는 조선 후기 규방가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내용이다.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와 같은 작품들이 지금에도 전승되고 있으며 여전히 부녀들에게 향유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Ⅲ. 내용 고찰

1. 門中意識의 高揚

필자가 수집한 6편의 가사 가운데 문중의식의 고양을 주제로 하는 작품은 ‘화수가’와 ‘태사묘소 참배가다’의 두 작품이다. 또한 나머지 작품들 역시 모두 간접적으로 宗班과 연관성이 있는 것들이다. 그 나머지 작품들의 주요 내용이 인생 회고나 여행이지만 비슷한 처지의 동서 등 규방의 부녀자를 비롯한 宗班과 관련을 맺거나 그들과 함께한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듯 대부분의 작품들이 직․간접적으로 문중의식의 고양과 관련을 맺고 있다. 이는 양정리의 규방 부녀들이 완고한 유교의식의 바탕아래 문중 중시의 지역문화에 녹아들어간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수집한 자료의 작가들과 이를 함께 향유한 부녀들은 1920년 무렵에 태어나 40년 무렵에 ‘양정리’ 권씨 문중에 시집을 온 부녀들이다. 20세기 초․중반에 태어나 결혼을 한 이들은 이 ‘양정리’ 마을이 인생의 전부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세대이다.

어와 세상 창생들아 이내 말 좀 들어보소, 바쁜 세상 살다보니 칠십 고개를 넘어섰으니 꽃다운 이내 청춘 풍운에 날리었고, 호호백발 내게 있네, 가시덤불 헤쳐 가며 산도 넘고 물을 건너, 고달픈 이내 신세 개 발 물어 던진 듯이, 곰곰이 생각하니 적막강산이 아닌가, 심신이 황홀하여 창문열고 내다보니 봄은 벌써 무르익고, 만산에 홍녹화(紅錄花)는 연연(年年) 잎도 다시피어 청춘을 만끽하여, 변화무쌍 하것마는, 헛부고도 가엾어라 무엄하다 인생들아 지 잘났다 자랑마라, 한 번 아차 지나가면 어디 가서 만나보랴, 녹의홍상 곱던 시절 불꽃처럼 일어나네, 고향종반 그립구나 이만할 때 달려가자, 꽃다운 이내 청춘 어느 누가 잡아갔나, 보기 싫은 이내 풍상 더 늙으면 못가노라, 어서 가자 어서 가자 고향산천 어서 가자, 옛날에 정든 고향 어서 가서 보고프라, 미친듯이 일어서서 고향길에 올랐구나, 달리는 차창에 내 일신 실었구나,……

칠십이 되어 객지에 생활하고 있는 화자가 아름다운 봄 경치를 즐기며 인생을 회고하다가 갑자기 젊은 시절을 보낸 宗班이 있는 고향이 너무도 그리워 허겁지겁 달려오는 모습이 나타나 있다. 그런데 화자가 가고자 하는 곳은 친정이 아니라 종반이 있는 시댁 마을이었다. 이미 친정에는 찾아갈 만한 사람이 없는 이유도 있을 수 있지만 젊어 시집을 와서 인생의 대부분을 희로애락하며 보냈던 제 2의 고향인 시댁 마을로 오고 싶어 했던 것이다. 또 이와 같은 자신의 경험과 유사한 부녀들과 인생의 회포를 풀고자 함이었다.

이렇듯 삶의 대부분을 시댁에서 보낼 수밖에 없었던 부녀들은 이제 친정을 잊고 시댁과 그 가문에 모든 것을 맡기고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그들의 도리이자 현실이었다. 이와 같은 처지에서 가문의 번성과 화합은 곧 그들의 번성과 화합이었으며 명예였다. 시댁 가문의 시조는 곧 부녀들 자신의 시조였고 그 시조가 훌륭한 인물일수록, 시조의 묘가 명당에 위치할수록 그들은 스스로 뿌듯해 하고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다.

문중의식의 고양을 주제로 하는 작품 ‘화수가’와 ‘태사묘소 참배가다’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모두 남성들이 지은 작품이다. 그러나 이는 시가가 인생의 전부가 된 부녀들에게 있어 주된 향유의 대상이 되어 필사되고 읽혀졌다.

‘태사묘소 참배가다’는 근본을 아는 것이 인간의 도리임을 서두에서 노래하고 있다.

여보소 세인들라 이내말섬 더레보소, 천지간 만물중의 근본음난 뿌리읍소, 남산우의 저소나무 시시각각 근본잇고, 앞네가의 흐런물도 시시각각 건원은 잇다, 뿌리가 튼튼하며 정음이 무성이요, 원은이 유장하며 듸헤을 이룸이라, 하물면 인간이야 건본을 모을손야, 유인최기 하고보면 만물연상 안일는가, 조상을 모르오면 유인최기 허원이요, 부모동기 불화하면 만물영장 힌말이라, 삼강오륜 모르오면 초목금수 몬면하고, 인의예지 모르오며 난진적자 몬면한다, 야속할사 셋인드라 조상모소 잇지마소, 데소지절 일가임네 시조모소 아신는가, 시조모소 아시는분 몃분이나 데시는가, 자손도리 못하오며 불성영모 허원이라,…….

남산 위의 소나무나 앞 냇가의 흐르는 물도 다 근본이 있으며, 뿌리가 튼튼하면 가지가 무성하고 본디 근원이 유장하면 대해를 이룰 수 있다고 분위기를 잡고 있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삶이 조상과 삼강오륜, 인의예지를 모르면 초목금수나 난신적자와 매 한 가지라고 노래하고 있다. 이를 통해 시조 묘소를 참배하는 것이 당연한 인간의 도리임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무나 물 같은 자연물에도 다 그 기원이 있는 것인데, 精誠이 있어서 가장 귀하다고 하는 우리 인간이 근원을 모른다는 것은 이치에 닿지 않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또한 나무의 기원에 해당하는 뿌리나 바다의 근원이 튼튼하고 유장하면 그 나무나 바다는 아주 무성하고 커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조상을 찾아 높이 받들고 그들의 은혜에 감사하는 행위는 나무가 무성해지거나 큰 바다를 이룰 수 있듯이 후손의 번성을 위한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이는 부모나 同氣, 가까운 친척과 화합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를 유교적인 人倫과 道德으로 여겨 당위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화수가’에서는 始祖의 덕과 복으로 오늘의 우리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어와세상 일가님내 이내말슴 더러보소, 천지지간 만물 중에 사람이 귀함이오, 허다사람 많은중에 일가지친 으뜸이라, 지친을 알자며는 조상님을 모를손가, 우리 권문 덕성함은 병기달권 우리시조, 삼한벽상 삼중대강 아부공신 태사공 호봉햇으니, 위대하신 덕망아래 후복장원 하온것은 천리의 자연이라, 심오대파 헝성함은 우리시조 복록이요, 안동부로 명침함도 우리시조 덕망이라, 세세문헌 혁혁함은 우리권문 실력이요, 대대상신 성성함도 우리권문 위력이라, 절정명조 후손으로 유명문호 생장하여, 학문을 생활화로 수신제가 업을 삼아, 욕급선조 조심하고 위인지방 차자가며, 교자과손 열심하여 문호계성 하옵소서…….

가문의 단합을 위하여서는 시조에 대한 예찬이 중요하다. 또한 시조는 종친들의 구심점이 되어주고 자부심을 느끼게 해 주는 대상이다. 일가들에게 천지의 만물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은 사람이고, 사람들 중에서 가장 으뜸인 것은 일가이며, 이렇게 至親한 일가를 알기 위해서는 당연히 조상을 알아야 한다고 하고 있다. 우리 권문이 덕성한 것은 태사공에 봉해진 시조의 덕망 때문이며 십오대파로 번성한 것은 시조의 복록이라 평하고 있다. 위대한 시조 아래 번성을 누리는 것을 자부하며 계속하여 학문과 修身을 통하여 선조를 욕되게 하지 않고 자손을 잘 가르쳐 가문을 계속 이어갈 것을 일가들에게 勸戒하고 있다. 규방의 여성들 역시 당당히 권씨 문중의 일원으로 始祖를 추모하며 예찬하는 가사를 향유함으로써 시가 가문에 대한 자부심을 키웠을 것이다. 이렇게 훌륭한 시조를 두고 있으며 그간의 훌륭한 전통을 이어받아 修身하며, 자손의 교육에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을 것이다.

또 가사를 통해 문중의식을 고양하는 방법으로 같은 지역 내의 명문대가로 손꼽히는 가문과의 연관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 그리고 禮儀와 凡節을 아는 집안답게 풍류를 즐기기에 앞서 조상에 대한 차례를 먼저 올리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우복동을 바라보니 문장이 요연하고, 가규등을 건너보니 효우가 유연이요, 열녀각이 빛어서니 충열이 완연이라, 이러흔 명성지에 조흔자리 마련하여, 행장을 풀어노와 갓관자로 솣을걸고, 샘정자로 돍을고와 진유백분 내여다가 청류 탄 물을 길너, 도리화로 꾸언 적은 이태백전 봉송하고, 채미화로 꾸언 적은 백이숙제 봉송하고, 불로초로 꾸언 적은 부모님전 봉송하고, 두견화로 꾸언 적은 우리들이 먹고노소, 금준미주 옥반가효 만반지수 차려노와, 쌍저로 집어다가 춘색을 맛을보니, 봄빛은 눈에가득 봄향기는 입에가득, 일배일배 부일배로 춤도추고 노래하여, 춘흥이 도도하니 풍진세계 어될는가, 취리건곤이 아니가 얼사좉아 지하조화……

종친회 총회 장소는 숙덕산 밑 명당골이라는 곳으로 지세가 좋고 아름다운 곳이다. 또한 이 곳에서 총회를 여는 것은 이 곳이 인근의 명문가인 우복 정경세를 위시한 진주 정씨가 모여 사는 우복동, 지역에서 손꼽히는 가문인 창녕 조씨들의 집성촌인 가규동을 바라보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화자가 이들 가문을 명문가로 꼽는 까닭은 경제력이나 관작 보다는 文章이 뛰어나거나 忠孝烈이 훌륭한 것이 이유로 작용했다. 문중의 단합을 위한 종친모임의 성격상 총회장소를 함부로 정할 수는 없다. 단순히 풍류를 즐기기에 적합한 장소가 아닌, 그들이 추구하는 문장, 충효열 등 유교의식을 느낄 수 있는 곳을 택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또한 풍류를 즐길 적에도 시의 神仙이라 일컬어지는 이태백에게는 복숭아꽃으로 장식한 전을, 지조와 절개의 상징인 백이와 숙제에게는 그들이 생전에 먹었다고 하는 고사리 전을, 효도의 의미로 부모에게는 늙지 않는 풀로 만든 전을 奉送한 후에 가장 흔한 꽃인 진달래로 만든 전을 부쳐 먹고 취흥을 즐기겠다는 것이다. 본격적인 풍류를 즐기기에 앞서 오늘의 이런 취흥을 즐길 수 있도록 하여 준 분들에게 먼저 차례를 올리고 있다. 훌륭한 문장을 노래한 이백, 不事二君의 태도를 보여준 백이와 숙제, 자신을 낳아준 부모님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총회 장소를 문장, 충효열 등 유교적 분위기가 있는 곳으로 정하는 등 함부로 하지 않았고 본격적인 풍류에 앞서서도 조상을 비롯한 오늘의 모임을 가능하게 해 준 분들에게 먼저 예를 올리고 있다. 이는 스스로 격식 있는 집안임을 과시하여 종친의 자부심을 느끼게 하고 이를 통해 연대의식의 고양에 목적이 있는 것이다.

시조 묘소와 先祖 양촌 권근 묘소의 웅장한 광경과 묘소가 있는 곳이 천하의 명당임을 과장되게 강조하여 가문의 자긍심과 이를 통한 연대의식 고양에 관한 부분도 있다.

안동부중 드러간이 천동산이 놉히선늬, 능골경을 다다런이 신도비가 늠늠쿤다, 동재서제 놉헌제각 궁중궁걸 이안인가, 시모전 참븨한이 울창지심 간절하다, 좌우산천 살펴봄이 천하명산이 안가, 좌청룡 우백호의 간만우방 헹용이요, 게입수건 속덕의 촤촤오향 문명하다, 옥겨단장이 안이며 금자락지 이안인가, 시조모전 하직하고 시조별모 차자가세, 안동부중 지나갈제 만인간 자랑인 듯, 시조참배 하는 사람 우리 군정인드시, 차창을 늬다보면 노래도 불너본다, 고러거각 놉흔보각 상한공식 자랑이요, 듸공듸륵 송득비는 여기저기 서 잇구나, 모직이 압장서서 사당알모 마친후, 삼곡유정 생각하니 데기당당 안일는가, 시조별모 하직하고 양촌선조 참븨가자, 영주풍기 잠간지나 중영제을 다다른이, 첩첩산중 기이함은 소벡산븩 분명하다, 즁영틔산 넘어간이 관아팔경이 여기도다, 충청도을 더러선이 인심도 조흘시고, 선조모소 여데메요 저산누으 자정일세, 유성방축 차자간이 데지명당 여기로다, 선조모소 참븨한이 우리선조 반기난 듯, 상하데분 외함은 삼데정성 모소로다, 가진 성물 웅장한이 잉으명산 여기로다, 좌우산천 웅장한이 상군데자 이안인가, 산고슈헤 곡심하니 잉으명당 안일는가, 선조모소 하직하고 석산을 내려온다, 제궁을 둘너보고 휴식을 최한후의……

안동 천동산에 위치한 시조의 묘에 다다르자 신도비가 늠름하며 시조묘에 위치한 여러 건물들의 격식 있고 웅장한 모습을 마치 궁중 궁궐과 같다고 하고 있다. 또한 그 묘소가 있는 곳이 천하의 명당이라 예찬하고 있다. 계속하여 안동 시내에 위치한 시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시조별묘도 찾고 있다. 역시 높고 큰 누각이 그들의 자부심을 높여주며 산지기가 안내하는 순례길은 콧노래가 절로 나올 정도이다. 이어서 그들은 영주를 넘어 충청북도 음성 방축에 위치한 선조 묘소인 양촌 권근의 묘소를 찾는다. 선조의 묘소인 이곳도 좌우산천이 웅장하며 山高樹海한 명당이며 石物이 웅장한 곳이다. 그들이 숭상하는 시조나 선조의 묘소가 하나같이 격식이 갖추고 높고 큰 누각이 있고 신도비가 곳곳에 펼쳐져 있으며 웅장한 석물들이 지키고 있다고 하여 그들의 살아서의 공적을 짐작할 수 있다. 또 천하의 명당에 위치하고 있는 그들의 무덤은 후손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것이란 확신이 있는 듯하다. 시조와 선조묘소를 찾은 후손들은 이와 같은 선조에 묘에 대한 찬탄을 통하여 그들의 자부심과 연대의식 고양에 그 목적을 두고 있으며 이를 통해 가문의 발전을 위한 각오를 다지는 기회로 삼고자 했다.

문중의식 고양이 주 목적인 두 편의 가사는 마지막 결사 부분에서 종친끼리 화목하게 지낼 것과 행사가 끝나 감을 아쉬워하며 문중행사를 다시 기약하는 내용으로 끝을 맺고 있다.

이러흔 조흔자리 석화광금 신속하여 일락서산 해가지니, 서산에 지는 해를 양류사로 잡아 메고, 동천에 뜨는 달은 계수남게 잡아 메여 여흥무공 푸련마는, 조화말류 끼가 업서 해를 용서 못 바더니, 오날날 미진정은 추칠월 기망절과, 명춘삼월 호시절에 제회를 약속하고 각기평안 하옵소서, 불문멸식한 이사람이 감헤를 둘바업서 두서업시 말슴더러 죄송하오나, 족의를 되살려서 앙헤하시기를 지원지원 하나이다.

조상전의 참븨하고 철이강산 구경하니, 무어시 부족하며 무으시 부러우리, 여보소 임가임늬 부데부데 하목하소, 서로서로 악겨주고 서로 인도하여, 착한일은 자랑하고 악한일은 선도하여, 일연이 하루갓치 화목하기 사라가, 일조혈맥 자손이요 동기연지 형제로다, 오촌십촌 머다말고 오순도순 사라가, 자여교육 일을 삼아 조상부모 잊지 마소, 일간친척 여러분들 이네 말섬 험을 말고, 멍춘삼을 호시절의 다시 한번 기약하고, 열낙서산 헤가 지고 월출돌방 다시 뜨니, 이별자 각한이 녹키 시른 작별이요, 만날 봉자 각한이 제차기약 윈이로다, 부데부데 널지마소 제차기약 하여보세, 소정양정 벡판후로 이른 노름 처음이라, 천우신조이 안인며 일일낙이 안인가, 천연만연 변치 말고 이걸 한자 지엿선이, 일가친척 여러분들 이를 잊지 마소, 남의게도 자랑이 후손의도 모븜로다.

‘화수가’의 끝부분은 여행에 대한 아쉬움을 시작하고 있다. 서산에 지는 해를 푸른 버들로 잡아매고 동쪽 하늘에 뜨는 달은 계수나무로 잡아매어 못 뜨게 하여 남은 흥을 즐기고 하나 조물주의 뜻을 꺾을 수 없다고 하고 있다. 오늘 못 다한 정을 추칠월 기망절과 삼월 좋은 때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그때까지 건강하기를 기원하고 있다.

‘태사묘소 참배가다’의 끝부분은 조상 앞에 참배하고 여러 구경도 많이 하였으니 더 이상 부족할 것도 부러울 것도 없다는 내용으로 시작하고 있다. 친족들끼리 서로 화목하고 자녀교육과 조상부모모시기에 힘쓰기를 당부하고 있다. 또 삼월 좋은 때에 다시 한 번 이런 행사를 기약하며 이별의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마을이 생긴 이후 이런 행사는 처음이며 일생의 낙이기도 하다고 하고 있다. 이런 행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남에게도 자랑이 되고 후손에게도 모범이 된다고 하며 긴 글을 마치고 있다.

문중과 관련된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심정은 아쉬움이 가득했을 것이다. 더구나 그 행사가 여행의 성격을 띤 것이기에 심정적으로 들뜬 상태여서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지역의 종친회 모임의 창립과 그것을 기념하기 위한 야유회 행사가 끝나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화수가’의 끝부분은 아쉬움으로 가득하다. 사람의 마음과는 달리 지고 있는 저녁 해가 아쉬울 뿐이다. ‘태사묘소 참배가다’ 역시 자랑스러운 선조를 둔 자부심과 후손으로서 도리를 다 했다는 뿌듯함을 이야기하며, 여행의 아쉬움을 다음 기회에 대한 기약으로 달래고 있다. 더구나 시조나 선조 묘소 참배와 같은 일을 기록으로 남기는 의의도 이야기하고 있다. 일가친척이 이 글을 보고 오늘의 행사를 잊지 말 것과 서로 화목할 것을 당부하고 다른 가문에도 자랑할 만한 행사이며 후손에게도 모범이 될 것이라 하고 있다.

그 문중의식을 고양시키고자 하는 위의 두 작품은 문중내의 모임을 통하여 친가 친족들의 자긍심 함양과 연대의식을 고양하고자 하는 목적이 강하다. 물론 그 모임의 성격도 지역 종친회 모임이거나 시조 묘소 참배와 같은 지극히 문중의 화합과 발전을 위한 것이다. 자긍심 함양과 연대의식의 목적을 띤 위와 같은 가사가 왜 지어졌고 끊임없이 규방을 비롯한 문중에서 읽혀지고 필사되는 등 향유되어 왔는가. 이는 후손들이 비록 지금은 그렇게 내세울만한 정치․사회적인 지위도 없고 경제적으로도 부유하지 못하지만 과거 시조나 선조의 치적을 자랑하고 그것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묘소를 참배함으로서 자랑스러운 가문의 후예란 점을 부각시키고자 함이다. 또한 지금의 남루한 처지에 대한 보상심리 같은 것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문중의식 고양을 목적으로 한 작품을 통하여 자긍심 함양을 추구하고자 하였으며 동시에 후손들의 연대의식도 높이고자 하였다. 자랑스러운 조상의 공통된 후손으로서 그들에게 누가 되지 않는, 당연한 후손의 도리로서 친족 간에 서로 돕는 의식을 가져야 함을 이야기 하고 있다.

양정가사의 내용상의 고찰 가운데 그 첫 번째로 살펴본 ‘문중의식의 고양’에 관한 부분은 조선 후기 가사의 특징인 ‘유교적인 이념과 도덕’에 관한 내용을 계승한 것이다. 조선조는 유교를 사상적 이념으로 삼았기 때문에 지배계층인 양반 사대부들은 유교적 이념으로 무장하였고 이를 솔선수범했을 뿐 아니라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유교적인 도덕생활을 강요하였다. 특히 그들의 지배체제인 봉건제도를 영구적으로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절대왕권이 필요했고 왕권의 신장을 위해 충성이 절대적임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내세운 것이 三綱五倫이었으며 이를 그들의 실천윤리로 삼았던 것이다. 그래서 사대부들은 가사와 같은 문학작품에도 文以載道의 관점으로 유교적 이념, 유교윤리와 도덕을 많이 읊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종류의 가사로는 조식의 <勸善指路歌>, 이황의 <道德歌><琴譜歌> 이서의 <樂志歌>, 한석지의 <吉夢歌>, 이기경의 <尋眞曲>, 작자미상의 <安宅歌>, 이상계의 <人日歌> 등이 있다. 그런데 유교 이념을 직접적으로 읊지는 않았으나 유교 윤리와 덕목을 현실에 적용시켜 실천토록 하고자 한 가사가 있으니 정학유의 <農家月令歌>, 위백규의 <勸學歌>등이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유교적인 이념과 도덕 가운데 양정지역 가사는 효도에 관한 부분, 즉 조상을 경건히 숭배하고 이를 받들고 있는 내용이다. 다만 조선 후기의 가사가 단순히 인간적 도리로서의 유교적 ‘孝’관념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교훈적인 성격의 가사였지만 양정지역 가사는 구체적인 자신들의 조상에 대한 예찬을 통하여 조상을 후손들의 자긍심 함양과 연대의식 강화를 위한 하나의 구심점으로 바라보고 있는 점이 다른 점이다.

이와 같은 내용의 가사가 규방의 부녀들에게 향유된 것은 여성들이 가문 또는 촌락을 중심으로 한 모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함이었다. 양정지역 가사의 가장 큰 내용상 특징으로 문중의식 고양을 꼽을 수 있는 근거는 조사한 대부분의 작품에서 직․간접적으로 문중과 관련을 맺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여행의 감회

20세기 초․중반까지만 해도 여성들의 바깥출입은 자유롭지 못하였다. 기껏해야 5일장을 보러 가까운 읍내로 나가거나 친정에 覲親을 가거나 했을 정도였다. 그와 같은 출입도 시어른들의 허락을 받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여행에 관한 작품은 필자가 수집한 자료 5편 중 4편이다. 상대적으로 편수가 많다. 이 중 규방의 여성이 직접 여행에 참여한 것은 ‘화수가’와 ‘태사묘소 참배가다’와 ‘무오년 속리산가다’의 세 편이다. 이 중에도 여행 그 자체가 목적인 경우는 ‘무오년 속리산가다’ 한 편 뿐이고 나머지는 문중의식 고양을 목적으로 한 행사차원이었다.

규방의 여성들에게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바깥 사회생활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현실에서 하나의 탈출구이지 삶의 고통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렇기에 부녀들은 그들 자신의 참여여부나 여행의 목적과 관계없이 ‘떠남’과 관계가 있는 작품들을 짓기도 하고 베끼기도 하고 돌려 읽기도 하는 등 대단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다음은 이 여성으로서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좌우의 하는 말씀 규중에 매인 몸이, 여자 遊行 처음이라 남정 동행 어떠하오…<중략>…

슬프다 여자 일생 꼿꼿이 매인 몸이, 有故함이 없을손가 이런 기회 쉽지 않네, 이왕 지사 모였으니 밤중까지 놀다 가세, 양정 땅 매판후로 이런 놀음 처음이라, 이상하고 기이하여 이 글 한 장 지었으니, 지낸 사연 생각하고 부디 부디 늙지 마소……

유교윤리에 따라 공식적인 바깥 생활이 금지된 규방의 부녀들에게 遠行의 경험은 거의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여자들이 주체가 되어 떠나는 여행임에도 처음이기에 친척 남성들이 동행할 수밖에 없는 처지임을 보여준다.

또 여행이 끝나갈 무렵 그동안 갇혀 살았던 자신들의 삶을 슬퍼하며 다시 오기 힘든 기회이니만큼 마치 한풀이하듯이 밤중까지 놀다가 가자고 하고 있다. 이런 원행은 이상하고 기이한 일이라 기록을 남기고 나중에 이 글을 읽으며 지난 일을 추억하길 바라는 내용이다.

규방에 갇히다 싶게 지내며 농사일과 집안일에만 매여 있던 양정 지역의 부녀들에게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껏 즐거운 기분을 표현할 좋은 기회였던 것이다.

여행에 관한 규방가사의 내용을 한 편씩 살펴보자.

어와 세상 범내내 인생살이 허무하다, 어언간 지난 자취 역역히 살펴보니, 근심 걱정 회자하니 편할 날이 며칠인가, 부모효양 낙을 삼고 자녀교육 일을 삼아, 이럭저럭 살다보니 영광이 육실일세, 무오년에 당도하니 무색하기 짝이 없다, 춘심을 맞이하니 춘색이 완연하다, 이팔청춘 소년들은 경(景)을 찾아 구경가네, ……<중략>…… 법주사가 어디메오 저 산속에 좌정일세, 산천경이 웅장하니 별유천지 여기로다, ……<중략>…… 어서 가세 어서 가세 고행산천 어서 가세, 문장대에 잘 있거라 속리산아 다시보자, 법주사 잘 있거라 다시 한 번 만나볼까, ……<중략>……, 무오년 무슨 일에 이 글 한 장 지었으니, 이 글 노객기 삼아 서로 서로 화목하소.

‘무오년 속리산가다’의 처음과 끝 부분이다. 화자가 60의 나이를 맞이하여 규방의 부녀를 포함한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속리산으로 봄 구경을 다녀오는 내용이다. 노년을 맞이한 화자가 부모효양과 자식교육에 헌신한 인생살이를 돌아보며 정작 즐기지 못한 자신의 일생을 허무하다고 한탄이 여행의 동기로 작용하고 있다. 가는 길의 들뜬 모습과 정이품송, 법주사를 관광하고 문장대의 올라 봄의 경치를 즐기며 권주가를 부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또한 같이 간 종반들의 모습을 해학적으로 그리고 다시 오기 힘든 여행이 끝나고 있음을 아쉬워하고 있다.

여행지에서 보고 느낀 것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은 서두 부분은 인생회고와 관련된 출발동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여행지에서의 여정이 제시되는 중간 부분에서는 주로 경물에 대한 묘사가 주를 이루며,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 글을 지은 동기가 제시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다음은 ‘팔도강산 유람가다’이다.

천지간 만물중에 인간이 최중이라, 인생사 태어나서 일평생 사라갈 제, 구비 구비 몃 구빈가 부귀빈천 불규함은 요소장청 정함이요, 길흉화복 정한 것은 천지만물 자연이라, 거럭 저럭 살아보니 영광이 칠십이라, 상봉하굴 매인 몸이 집을 나설 여가 으, 휴가 하 변 못 질긴니 누구보고 원망하라, 망내동이 하는 마리 휴가가자 근유하니, 이라 한 변 못 모시면, 후일다시 어럼노라, 공문천 발령나면 뜻잇으도 소용업소, 저의마리 고마워라 핸쾌이 성락하고, 운전이 미숙하여 조심조심 부탁하고, 첫재코스 어되메요 설악산이 재일아라,……<중략>…… 명성고적 만큰만은 신간없으 다못보고, 도라볼기 총총한이 후일기약 다시하고, 여보소 롱유임내 절메 천춘 구경하소, 이 몸 한 변 아차하며 천금만금 부운이요, 만송천자 진씬황도 죽어진이 거만이요, 남한갑부 이병철도 죽어진이 허사로다, 인간 칠십 고래희리 그 시간을 못참아서, 남의 가슴 한을 품고 남의 눈에 핏물 내며, 삭탈관직 못 면하고 철창 생활 일 삼으니, 어와 새생 인생르라 화속금전 왼수로다, 처알도 돈이리며 사얀완고 먹은구나, 여보개 후손드라 금전탐을 내지마라, 공수래 공수거이로다 인간의 사연이라, 인간본성 일치말고 안빈낙도 사라가새

화자는 70세를 맞이한 남성이다. 굴곡진 인생을 회고하며 자연의 이치를 깨닫기도 하고 그동안 웃어른과 자식들 때문에 집을 나설만한 여유가 없었으나 막내의 권유로 비로소 여행을 떠나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가족들과 함께 설악산과 낙산사, 오죽헌, 부산, 통도사, 진주 촉석루, 화계장터, 광한루 등 강원도와 경상도, 전라도 등지의 대표적인 관광지를 차례차례 여행하며 즐거움을 만끽한다. 여행지에서의 見聞과 感想이 비교적 자세하게 묘사되고 客窓感도 군데군데 보이고 있다. 마지막 부분은 돌아볼 것이 많음에도 여행이 끝나가자 이를 아쉬워하는 대목이 나오고 있다. 또 젊어서 구경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남한갑부 이병철도 만송천자 진시황도 죽으면 다 허사라고 하면서 말이다. 이와 아울러 너무 이기적으로 살아서 남의 원한을 사거나 금전에 탐을 지나치게 내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간의 사연이며 인간의 본성을 지키며 안빈낙도 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지극한 즐거움을 읊은 작품을 조선 초기의 가사에서 엿볼 수 있다. 조선 초기 가사에는 자연에 은거하여 내면적 성찰을 통해 자기완성을 추구한 작품들이 있다. 이들은 강호에 거닐면서 한정을 노래하거나 安貧樂道를 토로하였다. 정극인의 <賞春曲>을 비롯한 다양한 작품들이 있다.

자신들의 여행기록도 아닌 것을 많은 부녀들이 필사하고 읽은 것은, 전국 각지를 여행할 기회는 거의 없었던 부녀들이 이런 내용의 가사를 읽음으로써 대리 만족의 기쁨을 가지려고 했기 때문이다.

다음은 문중행사와 관련된 여행에 관한 규중가사이다.

여보소 세인들라 이내말섬 더레보소, 천지간 만물중의 근본음난 리읍소, ……<중략>…… 자손도리 못하오며 불성영모 허원이라, 면면 일가 마련하여 시조참배 이논하늬, 듸종헤에 모이 분들 만장일체 가별이라, 소정양정 하고보면 안동권문 제족이라, 일심동체 단합한이 그도 한 자랑이요, 천사만사 먹은 마음 오널나레 헤필일시, 일장을 의논한이 정월 그뭄 제일이라, 좌우의 모인 분들 그도 한 찬성이라, 그달 그뭄 기다린이 일각이 여삼추라, 굴지기일 당도한이 동천에 해가 네, 의복단장 정이하고 어서가자 제촉하네, 청천도 유심하여 일기도 화창하다,……<중략>……인는전금 맛친후에 양정 출발하네, 이안함창 지나갈제 데가산이 장관이요, 점촌사냥 지네갈제 영순강이 청유로다, 용궁의천 지나갈제 비행장이 과간이고, 금당맛질 바라본이 살기도 조흘시고……<중략>……안동부중 지나갈제 만인간 자랑인 듯……<중략>……스에 몸을 실고 충쥬시로 달여온다, 탄금데가 좃타한 후의 잠시잠간 구경하세, 구심구곡 깁흔고른 베수진지 적당하다……<중략>……거고게을 얼는지나 수안부을 당도한이, 산도족코 물도좃타 천하절경 여기로다, 온천의 모욕한이 심신도 졍결하다……<중략>……인간 육십 긴긴 시월 오널 유행 처음이다, 조상전의 참븨하고 철이강산 구경하니, 무어시 부족하며 무으시 부러우리,……

천지간 만물은 다 뿌리가 있다. 그래서 안동권씨 제족들은 시조 참배를 만장일치로 가결하고 일각이 여삼추로 그 날을 기다린다. 이윽고 인원을 점검하고 참배길에 오른다. 이안과 함창,을 지날 때 대가산의 장관을 보고 금당 맞질의 살기 좋은 곳을 바라보며 가는 길은 흥겹기만 하다. 목적지인 안동에서 시조 참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충주에 들러, 신립장군의 마지막 격전지인 탄금대를 찾는다. 매우 깊고 많이 굽이친 물줄기를 보고 背水陣을 생각하기도 한다. 거한 고개를 지나 수안보에 당도하여 아름다운 강산의 경치에 감동하며 온천에서 목욕을 好事도 즐긴다. 조상 묘소에 참배를 겸해 천리 강산을 구경하는 기쁨은 육십 평생에 처음 있는 遊行으로 더 이상 부족할 것도 부러울 것도 없는 여행이 되었다고 하고 있다. 이 작품은 시조 참배와 연관된 여행이기에 여행의 모습이 부차적으로 제시되고는 있으나 여행에 관계되는 부분에 있어서는 景物위주의 묘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대한 찬탄이나 그 곳에 얽힌 이야기, 자신의 여러 생각이 그 뒤에 제시되고 있다.

규방의 부녀들에게는 흔치 않은 遠行이었으니 두고두고 읽어보며 그 날의 즐거움을 되새겼을 것이다. 또한 그 여행의 경험은 시조 묘소 참배라는 행사를 위한 것이니만큼 문중의 소속원이라는 자부심도 느낄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다음은 지역의 종친회 창립을 맞이하여 총회를 열기 위해 지역의 경치 좋은 곳을 찾아가는 내용의 가사이다.

어와세상 일가님내 이내말슴 더러보소, 천지지간 만물중에 사람이 귀함이오, 허다사람 많은중에 일가지친 으뜸이라,……<중략>……이 정신을 되사겨서 중앙본회 상주지회 공검분회 창입되니, 술자리로 생각 말고 일가 사랑 자리 되소, 오날날 총회지를 어너 곳을 정하는가, 산가수려 명성지가 방방곡고 허다커늘, 이름조흔 숙덕산하 명당골이 제일이라,……<중략>…….도리화로 꾸언 적은 이태백전 봉송하고, 채미화로 꾸언 적은 백이숙제 봉송하고, 불로초로 꾸언 적은 부모님전 봉송하고, 두견화로 꾸언 적은 우리들이 먹고노소, 금준미주 옥반가효 만반지수 차려노와, 쌍저로 집어다가 춘색을 맛을 보니, 봄빛은 눈에가득 봄향기는 입에 가득, 일배일배 부일배로 춤도 추고 노래하여, 춘흥이 도도하니 풍진세계 어될는가, 취리건곤이 아니가 얼사 좉아 지하조화,……

지역의 종친들이 봄 경치를 즐기며 종친의 화합을 위한 모임을 흥겹게 벌이는 내용이다. 천지만물 중에서 사람이 가장 귀한 것처럼 많은 사람 중에 일가지친이 으뜸이라 하면서 지역 종친회 창립을 한다. 총회지를 산수가 좋은 곳으로 정하고 풍류를 즐긴다. 총회지에서 화전을 즐기고 온갖 술과 안주를 차려놓고 아름다운 봄의 경치 속에서 춤도 추고 노래하는 등 취흥을 마음껏 즐기고 있다. 속세인 風塵世界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고 있다. 비록 남성 위주의 문중모임이지만 봄을 맞이하여 花煎을 즐기는 모습으로 보아 여성들도 모임에 참석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이후 많이 지어진 규방가사가 ‘화전가’이다. ‘화전가’는 양가 댁 규중 부녀자들이 청명절을 전후하여 들놀이를 하면서 부른 노래로 조선 여인의 풍류노래라 할 수 있다. 규중의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즐기는 이 날은 여성들이 즐길 수 있는 유희가 총동원되는데, 조선시대 이후에는 유희의 방법 중에 가사 짓기도 포함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 때 지어지는 노래가 ‘화전가’인데, 이런 종류의 노래는 지금도 영남지방의 여성을 중심으로 지어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이런 종류의 노래들은 개인적으로 짓는 경우도 있었지만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짓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까지 조사된 노래들을 보면 상당히 많은 작품이 존재했고, 내용이나 수사기법 등으로 볼 때 여성 문학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作品群으로 본다. '화전가'는 춘삼월 호시절을 당하여 신명나게 놀아보자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지어진 가사들을 노래로 부르면서 하루를 즐겨 놀았으니 여성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이면서도 회한이 교차하는 하루라고 할 수 있다.

‘화수가’는 작가가 남성이고 종친회의 단합을 위한 총회의 성격을 띤 모임이 주가 되는 행사였다. 즉 본격적인 여성들만의, 봄을 즐기기 위한 화전가의 내용은 아니지만 화전을 부치는 행위로 보아 여성들이 음식을 장만하고 취흥을 즐기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규방의 여성들이 오랜만에 외출하여 경치가 좋은 자연 속에서 화전을 부치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행위를 통해 일상의 고단한 삶과 지루함을 떨쳐 버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조선 후기 규방가사의 한 부분인 ‘화전가’의 맥을 잇고 있는 것으로 본다. 여성들만의 유희를 즐기던 데에서 벗어나 남성들과 함께 봄을 즐기고 있는 점과 종친의 단합을 위한 모임에서 화전을 즐기는 점이 이전의 화전가와는 차별되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현대로 접어들면서 남성과 여성의 엄격한 구분이 사라지고 문중의 행사도 조선조의 근엄한 성격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즐거운 행사가 곁들여졌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사회상의 변화와 더불어 ‘화전가’의 대상이나 목적도 다양성을 띠게 되었다.

3. 삶의 회고(신변탄식)

규방가사의 내용 분류 중에서 삶의 회고(신변 탄식)에 관한 것은 오래전부터 학자들에 의해 연구되어 왔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우선 권영철을 들 수 있는 데, 그는 규방가사를 신변탄식류, 풍류소영류, 윷놀이가사, 영사, 내간의 다섯 가지로 분류하여 유형화시켰다. 또한 신변탄식류 가사에는 반항정신이 있다고 보았다.

한정희는 기존 사회 체제로 인하여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조선조 여성들의 생활면과 그에 대한 갈등으로 노출되는 한탄의 양상을 살피었고, 강연옥은 조선 시대 여성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가부장제 아래에서 여성은 婦德으로써 유교사회를 뒷받침하며, 사회활동을 금지당하고, 남편의 가문을 빛내기 위해 살아야 했음을 밝히고 있다. 또 규방가사에 나타난 여서의 의식을 탄식, 불만, 원망, 외로움, 남성들의 세계에 대한 동경, 소망 등으로 파악하고 있다.

백순철은 이를 소외의식과 회고성으로 설명하였다.

유교 윤리에 지배를 받던 여성들의 한과 시집살이의 고통을 담은 조선후기 이후의 규방가사는 내용 분류의 한 유형을 이룰 정도로 보편적 것 중 하나였다.

20세기 중․후반까지 出嫁外人의 유교의식이 여전히 지배하던 영남지역 ‘양정리’의 부녀들은 한 많은 인생을 회고하는 내용으로 시작되고 있는 가사가 두 편이 있다.

어와 세상 창생들아 이내 말 좀 들어보소, 바쁜 세상 살다보니 칠십 고개를 넘어섰으니, 꽃다운 이내 청춘 풍운에 날리었고 호호백발 내게 있네. 가시덤불 헤쳐 가며 산도 넘고 물을 건너, 고달픈 이내 신세 개 발 물어 던진 듯이……

어와 세상 범내내 인생살이 허무하다, 어언간 지난 자취 역역히 살펴보니, 근심 걱정 회자하니 편할 날이 며칠인가, 부모효양 낙을 삼고 자녀교육 일을 삼아, 이럭저럭 살다보니 영광이 육실일세……

누구나 인생살이를 육칠십 세를 살다보면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거나 한스러운 부분이 있을 것이다. 늙음을 한탄할 수도 있고 수많은 人生歷程이 走馬燈같이 스쳐갈 것이다. 그런데 위의가사 내용은 부녀들의 삶에 회고에 관한 것이다. 그들은 완고한 유교적 관념이 남아있던 시기에 가시덤불, 산, 물 같은 인생의 장애물을 하나하나 건너 왔다. 부모를 공경해야하는 시집살이를 낙으로 삼아야 했으며 오직 자식교육을 필생의 사업으로 여기고 살아왔던 것이다.

때로는 평생을 같이 보낸 남편을 먼저 보내고 자식을 먼저 잃은 慘慽의 슬픔을 토로하기도 한다.

여보시오 종반임네, 남편 잃고 자식 묻고 홀로 남은 이내 신세 처량할사 거동보소, 하소연에 깊은 사연 일장설화 하였는지, 그들 무덤 찾아가니 산천초목 모두 우네 산새들도 슬피우네, 이를 물고 올라가니 말없는 저 무덤들 곤한 잠에 빠졌구나, 기가 막혀 선웃음이 절로 난다, 말 없는 저 무덤도 찢기는 이내 심정 알아주랴……

자신과 처지가 유사하며 규방가사를 빌리기도 빌려주기도 하며 함께 향유하기도 했던 동서나 사촌 동서에게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하소연하고 있다. 이제는 죽어 무덤에 묻힌 사람이지만 자신의 그와 같은 사연을 알아 줄 사람은 삶의 대부분을 交流한 宗班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엄격한 유교윤리가 지배하는 상황 속에서 규방의 여성들은 공식적인 사회생활이 통제되어 있었으며 오직 부모 효양과 농사일, 자식의 교육에 평생을 바쳤다. 그러나 고생한 보람도 없이 자식이 먼저 죽거나 자신을 위로해줄 남편이나 말벗이 되어줄 종반들이 먼저 죽은 경우에는 위로 받을 곳조차 없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처지에서 규방의 부녀들은 삶을 회고하며 한탄하는 가사를 짓고 이를 혼자 또는 같이 읽음으로써 마음을 달래고자 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양정가사의 내용상 특징에 대해 ‘문중의식 고양’, ‘여행의 감회’, ‘삶의 회고’의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문중의식 고양’의 측면에서는 규방의 부녀들이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와서 거의 평생을 시댁에서 보내는, 마치 시댁이 친정과도 같이 되어버리는 현실 속에서 시댁 가문의 명예와 번성을 위한 가사를 짓기도 하고 읽기도 하면서 종친의식을 고양하고자 했음을 보여준다. 女必從夫와 出嫁外人의 유교적 윤리가 지배하던 시기에, 죽더라도 시댁의 귀신이 되는 상황에서 자신 역시 당당한 종친의 자격으로 시조와 조상 참배 모임에 동참하고 종친회 창립에 참가하였다.

‘여행의 감회’의 경우에는 원행의 기회가 거의 없었던 부녀들에게 가끔 찾아오는 여행의 기회를 가사로 남기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심지어 자신이 참여하지 않은 내용의 여행에 관한 가사도 필사되고 읽혀진 것은 억압되고 폐쇄적인 유교사회에서 逸脫을 꿈꾸는 대리만족 같은 것임을 이미 밝힌 바 있다. 이와 같은 모처럼 만의 여행을 가사로 남겨 두고두고 읽음으로써 고달픈 평소의 생활에서 벗어나 그날의 즐거웠던 추억을 회상하며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규방 여인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삶의 회고’의 경우를 살펴보자. 삶의 회고(신변탄식류)는 규방가사에서 전형적으로 보이는 내용에 관한 것으로, 한 평생 자신보다는 부모효양과 자식교육을 위해 헌신해 오다 6․70세의 인생 노년기에 이르자 이미 몸은 늙어지고 한 많았던 자신의 삶에 연민을 느끼는 경우이다. 더구나 남편이나 자식을 먼저 보낸 안타까운 상황에서 자신의 마음을 알아줄 종반들의 무덤을 찾아 하소연하는 대목은 슬픈 탄식이 절로 나온다.

불과 5편의 자료에 불과하지만 이와 같이 다양의 내용이 들어 있음을 밝혔다. 과거 문중의식을 고양시키기 위한 글은 남성들이 지은 漢詩와 같은 운문이나 辭, 賦, 說과 같은 산문 등 한문학이 위주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 이후 남성들은 물론 여성들 역시 한글로 이뤄진 가사를 짓고 향유한 것은 한글 사용의 확대와 더불어 여성의식의 성장을 의미한다. 또 삶의 회고에 관한 것은 여성들만이 가질 수 있는 경험을 절절하게 표현하였고 여성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그 內密한 감정을 풍부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여타의 문학과 구별된다고 할 수 있다.

Ⅳ. 문학적 의의

양정지역의 가사들 중 본 고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95년까지 지어진 작품 6편을 대상으로 하였다. 비교적 최근까지 지어진 작품도 있긴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구시대적인 요소가 많이 발견됨을 알 수 있다. 이는 양정리 마을의 특성과 연관성이 있다. 이 마을은 안동 권씨 집성촌으로, 비록 사회․경제적으로 몰락하였지만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이에 따라 유교적인 윤리가 많이 남아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양정 지역 규방가사는 여성 화자 자신의 정서를 애써 미화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을 사실적으로 표출시킴으로써 자기 위안을 얻는 규방가사의 문학적 형상화의 한 방식을 잘 따르고 있다. 남성들의 한시와 같은 문학이 공식적이며 관념적이고 사회적이라면 여성들의 규방가사는 사적이며 사실적이고 개인적인 보다 구체적인 미적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리고 양정 지역의 가사는 규방가사가 20세기 중․후반까지도 지어지고 향유되었음을 보여준다. 규방가사는 조선 후기에 발생하여 오랜 기간 동안 창작되고 향유된,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여성문학이다. 지금까지 수천 편의 가사가 수집되었고 그 내용 또한 다양하다. 이와 같은 규방가사가 그 맥이 끊어지지 않고 최근까지 여전히 지어지고 향유되고 있음을 양정지역의 가사가 증명하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性 역할의 차이일 뿐, 근본적인 인격에 차별이 있을 수 없다. 出嫁外人이나 男尊女卑같은 관념이 여전히 남아 있기는 하였지만 규방 여성들의 인격적인 삶의 고뇌와 인생의 喜怒哀樂에 대한 표현과 감상의 기회마저 박탈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여성들이 처한 특수한 삶의 경험과 정서가 문학적으로 형상화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양정 지역 가사는 한 개인의 체험이나 정서 혹은 집단의 공동의 경험을 누군가에게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진 문학 작품이다. ‘어와 세상 일가(一家)님네’라고 특정 독자를 염두에 둔 표현도 있지만 ‘여보소 세인(世人)들아’, ‘어와 세상 창생(蒼生)들아’, ‘어와 세상 범(벗)내내’ 와 같이 불특정의 다수를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또 ‘이내 말섬 들어보소’와 같이 敬語體 의 표현을 쓰고 있다. 가사를 혼자서 읽는 경우 있지만 여럿이 감상할 때에는 청중들은 다양한 항렬(行列)과 나이가 혼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사가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가기도 하고 윗세대에서 아랫세대로 전해져 오기도 하면서 이와 같은 표현들이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표현들은 양정 지역의 가사가 하나의 생활 문학으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유통된 것임을 보여준다.

남성들의 문학이 화자의 정서를 지적인 방법으로 갈고 닦아서 정제하여 드러내는 글쓰기 방식이라면 규방에서 읽혀지고 향유된 문학은 특별한 제약 없이 자유롭게 자시의 삶을 토로하는 생활 속의 글쓰기였다. 또 그 글을 다른 사람들에게 돌려가며 읽었기에 자연스럽게 두루마리 형식을 취하게 되었다.

공간적으로 인접하고 나이가 비슷하며 처지가 유사한 사람들끼리 같이 가사를 읽음으로서 공감대가 형성되고 연대의식도 갖게 되는 것이 규방가사의 특징이다. 그래서 규방가사는 독백체 뿐 아니라 특정 독자를 염두에 둔 표현이나 문답식의 형태를 띠는 등 친밀한 말 건넴의 방식을 가지고 있다.

양정지역의 가사는 20세기 중․후반까지 평범한 일반인들도 일상생활에서 문학을 짓고 향유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양정지역의 가사를 통해 양정에 사는 사람들의 삶과 가치관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들은 자신들의 삶이 가사를 통해, 자신들의 가사가 삶을 통해 얼마나 풍요해질 수 있는가를 확인하였다.

Ⅴ. 결론

본 논문은 1970년대 이후 영남 지역의 ‘양정리’에서 지어지고 향유된 5편의 규방가사 작품을 바탕으로 하였다. 가사가 지어진 지역의 특징과 가사를 향유한 여성과의 인터뷰를 통해 문자와 가사의 體得 방식과 享有 방식을 알아보았다. 또 양정 지역 가사의 내용상 특징을 통해 양정지역 가사의 문학적 의의를 살펴보았다.

기존 규방가사에 대한 연구는 조선후기부터 개화기 시기까지 지어진 작품들을 대상으로 그 의의를 살펴보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지어진 규방가사 작품을 대상으로 그 문학적 성과를 검토하는 연구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면면히 이어지는 규방가사의 맥이 최근의 작품에서는 내용과 표현 등의 부분에서 무엇이 과거의 것을 창조적으로 계승하는지, 그렇지 않으면 시대변화에 능동적으로 변모해 가는지 살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할 것이다. 또 기존의 연구가 匿名의 가사작품이나 뛰어난 문학적 자질을 갖춘 여성들의 작품만을 대상으로 하였지만 본고에서는 거의 모든 작품이 實名이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작품이다. 평범한 일반인들의 생활과 의식을 보다 정확히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본고는 기존의 규방가사에 대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지어진 시기와 작가가 분명한 양정 지역 규방가사 작품 5편을 바탕으로 그 문학적 의미를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앞선 논의를 간략히 정리하면 ‘Ⅱ. 양정 지역의 가사 개관’에서는 먼저 규방가가 지어진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양정리 대밭마’의 지역적 특징을 살펴보았다. ‘양정리’는 본고의 자료인 5편의 가사 작품이 지어진 마을인데, ‘양정리’란 지역 이름도 ‘대밭마’ 마을에서 비롯될 정도로 전통이 있는 자연부락이다. 비록 경제적으로 몰락하였지만 그들의 뿌리 깊은 가문에 대한 명예와 양반으로서의 자존심은 여전하였다. 그들의 그와 같은 자부심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유력한 방법은 인근 지역의 지체 있는 가문과 혼인을 맺는 것이었다. 학문을 숭상하는 유학적 분위기를 갖추고 그에 걸맞은 어느 정도의 문자 해독력과 교양을 갖춘 여성들이 이 마을로 출가하여 왔다는 것이 이 지역에서 규방가사가 꾸준히 지어지고 향유할 수 있게 한 바탕이 되었다. 이어서 규방가사를 소장하고 계신 87세의 홍차원 할머니와의 면담을 통해 한글과 한자를 배우게 된 과정과 배우고 싶었던 이유, 가사의 향유과정, 가사를 짓고 향유한 이유, 감상한 작품들에 대해 알아보았다. 친정과 시댁 마을이 글을 숭상하는 양반동네의 분위기와 지적 호기심 등이 글자를 익히고 가사를 향유할 수 있는 動因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가사의 향유는 다른 작품을 필사하거나 빌려 읽는 방법으로 주로 혼자서 많이 읽고 가끔은 공동으로 읽기도 했다. 가사의 창작 및 향유 동기는 여성도 하나의 인격체로서 비록 사회적으로 억압된 존재였지만 자신의 생활과 의식을 드러내고자 하는 표현의 욕구와 이를 읽을 때에 얻어지는 여러 가지 문학적 즐거움을 느끼기 위함이었다. 또 규방 여성들의 글을 익히고 보고 즐기기 위한 목적으로 감상한 작품들은 ‘부인서행록’, ‘붕우가’, ‘망부가’등이 있었다.

‘Ⅲ. ‘내용 고찰’에서는 ‘문중의식 고양’, ‘여행’, ‘삶의 회고(신변탄식)’의 세 가지로 살펴보았다. 유교적 관념이 지배적이었던 20세기 초중반에 출생하고 반가로 시집 온 부녀들에게 시가 문중의 번성과 명예를 드높이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였다. 당당한 종친의 일원으로 행사에 참가하고 또 이를 기록한 글을 읽으며 그 의미를 되새겼음을 알 수 있다. 이어서 억압되고 폐쇄적인, 여성들의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시절, 이에 대한 반발 심리로 가끔씩 있는 ‘여행’의 경험을 가사로 지어 두고두고 읽어 보는 내용도 있다. 평소의 꽉 짜여 진 생활의 억압적이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산천경계를 즐기는 내용의 가사를 짓고 향유하는 것은 규방의 여성들에게 소중한 즐거움이었다. 또 양정 지역 가사의 내용으로 여성들의 의무인 부모효양이나 자식교육을 위해 일평생 헌신하다 노년기에 자신의 인생이 덧없음을 문득 깨닫고 이를 하소연하는 ‘신변 탄식’류의 가사도 확인할 수 있다.

양정 지역의 가사는 20세기 후반 양정리에서 살아간 규방의 여성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삶의 기록이다. 하나의 사회 문화적 유산이면서 규방가사의 맥을 잇는 데서 양정 지역 가사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30여 년 전 담배연기 자욱한 방에 여성들이 모여 가사를 읊조리고 즐긴 것은 그들의 삶과 의식을 확인하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행위의 일환이었다.

자료1

무오년 속리산가다

어와 세상 범내내 인생살이 허무하다.

어언간 지난 자취 역역히 살펴보니

근심 걱정 회자하니 편할 날이 며칠인가.

부모효양 낙을 삼고 자녀교육 일을 삼아

이럭저럭 살다보니 영광이 육실일세.

무오년에 당도하니 무색하기 짝이 없다.

춘심을 맞이하니 춘색이 완연하다.

이팔청춘 소년들은 경 찾아 구경가네

세상사람 다 가는데 우리들은 못갈손가.

삼월삼일 무슨 일에 대택에 모여 앉아

유사를 의논하니 만장일치 가결이라.

목적지는 어딜런고 보은 속리 제일이라.

경비지출 얼마든가. 삼천 원이 적당하다.

당일 유사 누굴런고 본평댁이 적당하다.

좌우의 하는 말씀 규중에 매인 몸이

여자 유행 처음이라 남정 동행 어떠하오.

남정이라 하고 보며 숙질 사촌 아닐런가.

좌우에 모인 분들 그 또한 찬성이라.

일자를 의논하니 삼월 중순 적당하오.

가사를 다독이고 행장을 갖추울제

그날 밤 그 시간이 어찌 그리 장장한고.

왼쪽의 기명성이 요란히 조들려온다.

고양진미 장만하여 이고 들고 출발할제

녹이홍상 갈아입고 일보 일보 가는 모양

천상선녀 부럽잖고 물찬 제비 시기할까.

월태화용 고운 몸이 세월을 못 이겨내

양정역에 도착하니 아침 해가 떠오른다.

우리 군정 몇 일런고 이십 칠명 정원이라.

버스에 몸을 싣고 상주역에 도착하니

차시간이 도착되어 이 차 저 차 승간하니

그 모양이 미안하나 하는 수가 없었지요.

속리 직행 몸을 실어 낙서골에 달려간다.

차창을 내다보니 산도 가고 물도 가네.

국가의 은덕으로 도로포장 잠깐일세.

근심걱정 하는 마음 잠시라도 풀어 보세.

골티재를 올라갈 제 구불구불 굽은 길은

전체 창가 흡사라고 인생살이 흡사 험사하다

말티재를 올라갈 제 구구곡곡 굽은 길을

살같이 달려가니 인공 기술 찬란하다.

그 고개를 넘어가니 오전 열 시 분명하다.

저 소나무 그룽 보소 우리 보고 반기는 듯

그 고개를 넘어가니 일장고송 우뚝 섰네.

저 소나무 그룽 보소 우리 보고 반기는 듯

저 소나무 충성하여 정품벼슬 받았다네.

사시장춘 창창한데 군자기절이 아닌가?

속리 땅에 당도하니 오전 열시 분명하다.

법주사가 어디메오 저 산속에 좌정일세.

산천경이 웅장하니 별유천지 여기로다.

작작 도화 만발하니 춘색이 만안이라.

녹죽창송 울울하고 시내물도 잔잔하다.

청명한 새소리는 숙인 마음 도와내고

어화 츠츠 높은 가지 춘색을 자랑한다.

녹의홍상 소인들은 오락가락 춤을 추네.

백운심처 유인간은 삼삼사호 놀음하듯

남녀노소 유객들은 섬섬옥수 부여잡고

삼라 수려 괴이함은 적송자의 유희로다.

법주를 찾아 가니 사천왕의 가관일세.

남슴 여승 목탁소리 석가여래 유풍이라.

천둥만한 등불을 달고 소원성취 마련하네.

승백양유 거울아래 점심식사 마쳤도다.

인생화초 불상봉은 고인의 격언이라.

소식 없는 범식이를 천만위에 상봉하니

천상 연분이 아니며 평수상봉이 아닌가.

범식이 앞장서서 놀음터로 찾아간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주 험로를 올라갈새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음을 재촉하니

원산 한산 석경사라 무여 걸음 빠를 손가.

높고 높은 문장대가 구름높이 솟았으니

놀라 갈길 막연하여 경지 망지 하였도다.

척피고광이 아니며 청망물금이 아닌가.

기암거석 좌정하여 온갖 음식 풀어놓고

서로서로 권할 적에 권주가로 불러보고

취흥이 도도하니 신선노름이 아닌가.

인생 일장춘몽이라 마음대로 놀다가세.

시시각각 매인 몸이 이런 기회 쉬울손가.

인생 육십 긴긴 세월 노을 놀음 처음일세.

우리 군정 많다만은 흉볼 사람 몇 분 있네.

예의바른 멍갓댁은 인정도 많을시라.

버스라고 타고 보면 무슨 양반 그리 높아 구역질 무삼일고.

점잖은 작천댁은 묵중하기 사장일세.

허리 짐숙 능동댁은 요조숙녀 태도로서

무슨 감기 그리 길어 잔기침은 웬 말인가.

맵시 좋은 무리댁 무슨 짐을 거리 져서 허리 살짝 굽었는가.

둥굴둥굴 지산댁은 자동차 싸울리라는가 빠르기도 빠르도다.

사람 사람 흉보자니 시간 없어 못 보겠네.

명사십리 해당화는 연연이서 피건마는

우리 인생 한 번 가면 후기약이 언젤런고.

우리 인생 짧다 한들 재차 기약 없을 손가.

여보소 릉워임내 놀기사 좋다만은

서강이 재산이요 산영이 도강이다.

갈 길을 생각하니 백리 원정이 아닌가.

어서 가세 어서 가세 고행산천 어서 가세.

문장대에 잘 있거라 속리산아 다시보자.

법주사 잘 있거라 다시 한 번 만나볼까.

슬프다 여자 일생 꼿꼿이 매인 몸이

유고함이 없을손가 이런 기회 쉽지 않네.

이왕 지사 모였으니 밤중까지 놀다 가세.

양정땅 매판후로 이런 놀음 처음이라.

이상하고 기이하여 이 글 한 장 지었으니

지낸 사연 생각하고 부디 부디 늙지 마소.

무오년 무슨 일에 이 글 한 장 지었으니

이 글 노객기 삼아 서로 서로 화목하소.

무오년 무오일에 양정 거인 지산(권오덕)

자료2

태사묘소 참배가다

여보소 세인들라 이내말섬 더레보소

천지간 만물중의 근본음난 리읍소

남산우의 저소나무 시시각각 근본잇고

앞네가의 흐런물도 시시각각 건원은 잇다

리가 튼튼하며 정음이 무성이요

원은이 유장하며 듸헤을 이룸이라

하물면 인이야 건본을 모을손야

유인최기 하고보면 만물연상 안일는가

조상을 모르오면 유인최기 허원이요

부모동기 불화하면 만물영장 힌말이라

삼강오륜 모르오면 초목금수 몬면하고

인의예지 모르오며 난진적자 몬면한다

야속할사 셋인드라 조상모소 잇지마소

데소지절 일가임네 시조모소 아신는가

시조모소 아시는분 몃분이나 데시는가

자손도리 못하오며 불성영모 허원이라

면면일가 마련하여 시조참배 이논하늬

듸종헤에 모이분들 만장일체 가별이라

소정양정 하고보면 안동권문 제족이라

일심동체 단합한이 그도한 자랑이요

천사만사 먹은마음 오널나레 헤필일시

일장을 의논한이 정월그뭄 제일이라

좌우의 모인 분들 그도 한 찬성이라

그달그뭄 기다린이 일각이 여삼추라

굴지기일 당도한이 동천에 해가 네

의복단장 정이하고 어서가자 제촉하네

청천도 유심하여 일기도 화창하다

집집마다 우섬이요 그리마다 재촉이라

광광버서 대절하니 어서가자 호통치늬

인는전금 맛친후에 양정 출발하네

이안함창 지나갈제 데가산이 장관이요

점촌사냥 지네갈제 영순강이 청유로다

용궁의천 지나갈제 비행장이 과간이고

금당맛질 바라본이 살기도 조흘시고

안동부중 드러간이 천동산이 놉히선늬

능골경을 다다런이 신도비가 늠늠쿤다

동재서제 놉헌제각 궁중궁걸 이안인가

시모전 참븨한이 울창지심 간절하다

좌우산천 살펴봄이 천하명산이 안가

좌청룡 우백호의 간만우방 헹용이요

게입수건 속덕의 촤촤오향 문명하다

옥겨단장이 안이며 금자락지 이안인가

시조모전 하직하고 시조별모 차자가세

안동부중 지나갈제 만인간 자랑인 듯

시조참배 하는사람 우리 군정 인드시

차창을 늬다보면 노래도 불너본다

고러거각 놉흔보각 상한공식 자랑이요

듸공듸륵 송득비는 여기저기 서잇구나

모직이 압장서서 사당알모 마친후

삼곡유정 생각하니 데기당당 안일는가

시조별모 하직하고 양촌선조 참븨가자

영주풍기 잠간지나 중영제을 다다른이

첩첩산중 기이함은 소벡산븩 분명하다

즁영틔산 넘어간이 관아팔경이 여기도다

충청도을 더러선이 인심도 조흘시고

선조모소 여데메요 저산누으 자정일세

유성방축 차자간이 데지명당 여기로다

선조모소 참븨한이 우리선조 반기난 듯

상하데분 외함은 삼데정성 모소로다

가진 성물 웅장한이 잉으명산 여기로다

좌우산천 웅장한이 상군데자 이안인가

산고슈헤 곡심하니 잉으명당 안일는가

선조모소 하직하고 석산을 내려온다

제궁을 둘너보고 휴식을 최한후의

스에 몸을 실고 충쥬시로 달여온다

탄금데가 좃타한 후의 잠시잠간 구경하세

구심구곡 깁흔고른 베수진지 적당하다

천운이 불길하여 실입장군 페하연네

청함절벽 은덕우의 흘흘고각 놉히선늬

장국공적 읍건마는 장한명만 남인늬

청청명한 저소리는 신장군의 영혼인 듯

사시장춘 허른물은 신장군의 눈물이요

무심한 구럼은 신장군의 한숨이라

탄금데을 작별하고 수안부로 차자가세

충주시을 얼는지나 달네강밴 달여갈제

물은 깁흐데 강이요 산은 놉하 테산이라

산수경치 히한하다 천하절벽 여기로다

거고게을 얼는지나 수안부을 당도한이

산도족코 물도좃타 천하절경 여기로다

온천의 모욕한이 심신도 졍결하다

영풍읍을 잠간지나 이화령 올나갈제

구구곡곡 비탈길은 평노갓치 학장한이

인공기술 찰난하다 성진국가 이안인가

그 고게을 올나간이 청천공중 머럿난 듯

구럼 우외 안자선이 천상신선이 안인가

녹중창송 우를 보니 만고음는 절경이요

청산벽수 말근물은 소부허유 노을음터다

문경읍네 다다른이 주흘산이 놉히선네

사자간문 못보온이 시간이 원수로다

칠남교을 당도한이 영남팔경이 안인가

천유불식 시늬물은 강데공의 낙수트라

인간육십 긴긴시월 오널유행 처음이다

조상전의 참븨하고 철이강산 구경하니

무어시 부족하며 무으시 부러우리

여보소 임가임늬 부데부데 하목하소

서로서로 악겨주고 서로 인도하여

착한일은 자랑하고 악한일은 선도하여

일연이 하루갓치 화목하기 사라가

일조혈맥 자손이요 동기연지 형제로다

오촌십촌 머다말고 오순도순 사라가

자여교육 일을삼아 조상부모 잊지마소

일간친척 여러분들 이네 말섬 험을 말고

멍춘삼을 호시절의 다시한번 기약하

열낙서산 헤가지고 월출돌방 다시ㅅ더니

이별자 각한이 녹키시른 작별이요

만날봉자 각한이 제차기약 윈이로다

부데부데 널지마소 제차기약 하여보세

소정양정 벡판후로 이른노름 처음이라

천우신조이 안인며 일일낙이 안인가

천연만연 변치말고 이걸한자 지엿선이

일가친척 여러분들 이를 잊지마소

남의게도 자랑이 후손의도 모븜로다

갑자연 갑자이레 갑진노름 하엿도다

안양의 게시는 권오덕

자료3

화 수 가

어와세상 일가님내 이내말슴 더러보소

천지지간 만물중에 사람이 귀함이오

허다사람 많은중에 일가지친 으뜸이라

지친을 알자며는 조상님을 모를손가

우리권문 덕성함은 병기달권 우리시조

삼한벽상 삼중대강 아부공신 태사공 호봉햇으니

위대하신 덕망아래 후복장원 하온것은 천리의 자연이라

심오대파 헝성함은 우리시조 복록이요

안동부로 명침함도 우리시조 덕망이라

세세문헌 혁혁함은 우리권문 실력이요

대대상신 성성함도 우리권문 위력이라

절정명조 후손으로 유명문호 생장하여

학문을 생활화로 수신제가 업을삼아

욕급선조 조심하고 위인지방 차자가며

교자과손 열심하여 문호계성 하옵소서

형제간에 사촌나고 사촌에서 육촌나고

삼종사종 분가되어 일가지친 버더나니

백대지친 아니릿가 타인부자 친치말고

골육빈자 멀리마소 보물찾는 정신팔아

일가찾는 정신사소 이정신을 되사겨서

중앙본회 상주지회 공검분회 창입되니

술자리로 생각말고 일가사랑 자리되소

오날날 총회지를 어너곳을 정하는가

산가수려 명성지가 방방곡고 허다커늘

이름조흔 숙덕산하 명당골이 제일이라

검교방 조설단하요 칠문중에 장구지라

삼월춘방 호시절에 창송록죽 울밀하니

검문고로 화답하고 호수간수 창일하니

백주로 변화하고 기암기석 준엄하니

장부의 기상이요 이화도화 만발하니

숙녀의 형용이라

우복동을 바라보니 문장이 요연하고

가규등을 건너보니 효우가 유연이요

열녀각이 빛어서니 충열이 완연이라

이러흔 명성지에 조흔자리 마련하여

행장을 풀어노와 갓관자로 솣을걸고

샘정자로 돍을고와 진유백분 내여다가

청류 탄 물을 길너

도리화로 꾸언 적은 이태백전 봉송하고 채미화로 꾸언 적은 백이숙제 봉송하고

불로초로 꾸언 적은 부모님전 봉송하고

두견화로 꾸언 적은 우리들이 먹고노소

금준미주 옥반가효 만반지수 차려노와

쌍저로 집어다가 춘색을 맛을보니

봄빛은 눈에가득 봄향기는 입에가득

일배일배 부일배로 춤도추고 노래하여

춘흥이 도도하니 풍진세계 어될는가

취리건곤이 아니가 얼사좉아 지하조화

이러흔 조흔자리 석화광금 신속하여

일락서산 해가지니 서산에 지는해를

양류사로 잡아메고 동천에 뜨는달은

계수남게 잡아메여 여흥무공 푸련마는

조화말류 끼가업서 해를 용서못바더니

오날날 미진정은 추칠월 기망절과

명춘삼월 호시절에 제회를 약속하고

각기평안 하옵소서 불문멸식한 이사람이

감헤를 둘바업서 두서업시 말슴더러

죄송하오나 족의를 되살려서 앙헤하시기를

지원지원 하나이다

경오삼월 이심육일

시조삼십오세손 추밀공파 영원 근지(권영원)

자료4

팔도강산 유람가다

천지간 만물중에 인간이 최중이라

인생사 태어나서 일평생 사라갈제

구비구비 몃구빈가 부귀빈천 불규함은

요소장청 정함이요 길흉화복 정한것은

천지만물 자연이라 거럭저럭 살아보니

영광이 칠십이라 상봉하굴 매인몸이

집을나설 여가으 휴가하변 못질긴니

누구보고 원망하라 망내동이 하는마리

휴가가자 근유하니 이라한변 못모시면

후일다시 어럼노라 공문천 발령나면

뜻잇으도 소용업소 저의마리 고마워라

핸쾌이 성락하고 운전이 미숙하여

조심조심 부탁하고 첫재코스 어되메요

설악산이 재일아라 강능고속 더러선니

호호탐탐 대로로다 용인땅을 드려슨니

금게표란 이안인가 산새가 수려한니

죽워 용인이 안닌가 말만듯던 대괄영이

하늘높이 소사꾸나 산고곡심 험한이를

차책이 달여간이 장하도다 우리망내

대관령을 올나서서 잠시잠간 휴식한니

산천은 기구하고 운문은 자욱하다

슬슬 부는 새우풍은 결인가 의심하내

전정을 무르본이 이백여리 원정이라

강능속초 을는지나 설악산에 당도한이

석양은 재산이요 산영은 도강이라

태양여광 자정후에 하루밤 유숙하고

세벽같이 이러나서 설악산에 등산할세

산명은 설악이나 눈이업서 아소구나

우리망내 인도하야 두늘건이 따라간내

준준험노 석경사라 조심조심 올나갈제

송죽가지 희여잡고 거럼을 재촉하내

연화운무 자욱함은 천상선녀 노름트요

만화전봉 괴이함은 금강산이 안일는가

헌들바위 어되맨요 시내가애 욱뚝선내

육중한 저 바위가 사람힘예 흔들인니

귀이함도 귀이하다 천지자연이 안인가

소생유공 남여노소 산재불공 한창일세

설악산은 태산이라 전휴구경 다할손가

죽장망해 부평객이 어너누가 말유할가

그럼을 재촉하여 서로서로 재촉하여

일보일보 하산하여 열두시 오종소리

은은하니 들여오내 속초시을 잠간지나

낙산사로 차자가자 미르불상 웅장함은

동양에 재일이라 동해바다 바라본니

일엽고주 왕내하고 갈매기띠 기룩기룩

유인마음 분주하다 경표대가 어되메요

신사임당 차자가자 훈자교휸 선도하음

천새만세 초불이라 거알들은 누시른고

율곡선생 안니신가 오죽현을 차자간니

상하재각 웅장하다 오죽이 층층한니

청풍이 소설하다 봉황은 어되가고

죽실만 남았꾸나 태백삼척 을는지나

표황을 당도하니 일낙서산 해가지고

갈매기도 잠을자내 천금갓튼 내손자은

오는 잠을 마개내고 할머니 당도함을

두눈깜박 기다리내 반갑기도 반가워라

기다리든 손자밋흘 하루밤 유숙후에

행장을 준비하고 경주땅을 을는지나

동내부산 차자가자 용두산이 놉파스니

일목요연 대해로다 열낙선에 고등소리

석별인의 눈물이요 해운대 저문날예

스스유객 춤을춘다 동내부산 일별하고

통도사로 차자가자 산천은 수려하고

창송은 울울하다 통도사 경을차자

잠시잠간 구경하니 절경은 웅장하고

불상은 대웅이라 남승여승 목닥소리

만세불공 안일은가 울산마산 지나가서

진주남강 구경가세 진주읍에 주차하고

오로를 마친후에 거럼을 재촉하야

초석누로 올나하니 논개의 고운화상

손짓하고 반기는 듯 논개의 거동보소

왜정청정 목을안고 희희능청 벼랑끗을

낙화갖이 뜨려진니 명귀왈 기생이나

만고충여 안일는가 누상풍경 둘너보고

남희대고 차자가자 교각엽는 저다리가

반공중외 노였으니 대해차파 오열이요

갈매로 쇠여가내 이차저처 왕래한니

공중대로 안닐는가 게롱산이 으대메요

만첩천봉 괴이하다 놉고나진 봉으리가

금게갔이 소사구나 남여노소 풍유객은

경을차자 모였도다 최흥이 도도한이

고서방가 춤을추내 말만듯든 섬진강이

유유이 흘느가니 강촌에 어부들은

돗대젓기 밥뿌구나 강변도로 달려갈제

화계장트 어되메요 저리가며 남원이요

이리가며 화계로다 길이원 부평객이

숙속찾기 극정이라 남원부중 드려선니

인심도 졸흘시고 호텔여관 좌정하여

객리수심이 안인가 여관한 동독불면은

이향교객 수심이라 하루밤 유숙후애

강한루 구경가니 만고열여 성춘향이

건내타고 노난 듯이 이도령이 양유아래

방자불너 뭇는듯ㄴ이 여기저기 규경한니

당일향색 완연하다 춘향은 어되가고

공트만 남아잇내 십장고목 불목함은

만고열녀 분명하다 송죽것은 그절개는

만새여성 초불이라 그유풍이 남아있으

인사치면 분명하고 에이볌절 장하도다

절라도 전주땅은 옜부터 예향이다

명성고적 만큰만은 신간없으 다못보고

도라볼기 총총한이 후일기약 다시하고

여보소 롱유임내 절메 천춘 구경하소

이몸한변 아차하며 천금만금 부운이요

만송천자 진씬황도 죽어진이 거만이요

남한갑부 이병철도 죽어진이 허사로다

인간칠십 고래희리 그시간을 못참아서

남의가슴 한을 품고 남의 눈에 핏물내며

삭탈관직 못면하고 철창생활 일삼으니

어와 새생 인생르라 화속금전 왼수로다

처알도 돈이리며 사얀완고 먹은구나

여보개 후손드라 금전탐을 내지마라

공수래 공수거이로다 인간의 사연이라

인간본성 일치말고 안빈낙도 사라가새

계유년 칠월 기망에 팔도강산 유람한니

심신이 감동하여 이글하장 지였도다

안양거주 권오덕

자료5

어와 세상 창생들아

어와 세상 창생들아 이내 말 좀 들어보소

바쁜 세상 살다보니 칠십 고개를 넘어섰으니

꽃다운 이내 청춘 풍운에 날리었고

호호백발 내게 있네 가시덤불 헤쳐가며

산도 넘고 물을 건너 고달픈 이내 신세

개 발 물어 던진 듯이 곰곰이 생각하니

적막강산이 아닌가 심신이 황홀하여

창문열고 내다보니 봄은 벌써 무르익고

만산에 홍녹화는 연연 잎도 다시피어

청춘을 만끽하여 변화무쌍 하것마는

헛부고도 가엾어라 무엄하다 인생들아.

지 잘났다 자랑마라 한 번 아차 지나가면

어디 가서 만나보랴 녹의 홍상 곱던 시절

불꽃처럼 일어나네 고향종반 그립구나.

이만할 때 달려가자 꽃다운 이내 청춘

어느 누가 잡아갔나 보기 싫은 이내 풍상

더 늙으면 못가노라 어서 가자 어서 가자.

고향산천 어서 가자 옛날에 정든 고향

어서 가서 보고프라 미친듯이 일어서서

고향길에 올랐구나 달리는 차창에

내 일신 실었구나 정신없는 이 사람아.

무슨 생각 그리하나 일어서면 삼천린데

도척인줄 알았것만 이렇게도 즐거움도

있었는걸 헛부개도 살았어라.

하염없이 내다보니 산천이 비웃는다.

청춘은 어대 두고 백발이 웬 일이냐.

가지마다 핀 꽃들도 날 보고 비웃노라.

꽃나무 하는 말씀 내 청춘은 연연한 데

지는 청춘 어디 있냐 청송녹죽 하는 말이

우리의 고운 몸매 연연히 곱건마는

니 모양 우습구나 오는 백발 못 막으니

한심하고 가엾구나 보물이 무엇이며

금전이 무엇이랴 운명이 무엇이며

전기불은 무엇이냐 모두가 부질없다.

청춘만 하올소냐 호롱불 솟가지는

내 청춘 보았건만 답변할 점 전혀 없네

각색으로 조롱만 실컷 받고 고향산천 다다르니

담담하기 짝이 없네 여보시오 종반임네

남편 잃고 자식 묻고 홀로 남은 이내 신세

처량할사 거동보소 하소연에 깊은 사연

일장설화 하였는지 그들 무덤 찾아가니

산천초목 모두 우네 내 산새들도 슬피우네.

이를 물고 올라가니 말없는 저 무덤들

곤한 잠에 빠졌구나 기가 막혀 선웃음이 절로 난다.

말 없는 저 무덤도 찢기는 이내 심정 알아주랴

무덤에게 물어보니 삶에 공부 힘들기에

휴가얻어 왔다던가 인생낙오 전영달아

매력없이 쉬지말고 한시바삐 일어나서

사랑 그리워 우는 아내 애비 그리워 우는 자식

남은 공부 빨리 해서 박사학위 출세하라.

잠든 무덤 쥐에 두고 종반 품에 안겼구나.

묵묵한 이내 심사 종반 임내 모를손가.

어화둥둥 좋을시고 대소제절 돌아보니

백수풍상 종숙모님 박사학위 힘드는지

온갖 트집 다 하시네 무엇 그리 바쁘신지.

동서분가 어렵구나 조용하신 사연형님

모든 시련 품에 안고 대학생이 되셨구만

인정 많은 멍갓댁은 학교성적 우수하다.

병든 모양 아깝구나 꼬부라진 무림이댁

철봉하다 다쳤구만 소학생 너무 많아.

주야장천 바쁘구만 알뜰한 사실댁은

간신히 마친 공부 우수상을 받았는지

쾌활한 우리 조카 만세소리 외치면서

깡충 깡충 뛰는 양은 보는 나도 흥겹구나

영규내외 볼작시면 성적 좋아 급장되니

많은 생도 지도하에 시련도 많고 많네.

문화인의 자태로서 보기 드문 우수 성적

우수상을 타야겠다 무림이댁 작은 질부

특별한 인생 공부 우수하게 잘함으로

특별상 타야겠다 호탕한 우집씨는

웅장한 체격으로 겁 없이 나온 배는

매력 없이 되었구나 절절한 지산댁은

박사 노친 모시느라 회장소임 어렵구나.

지휘자인 오길씨는 음악에 소질 있어

소리 공사 어디 두고 보물찾기 여념 없네.

의젓한 덕산댁은 육상선수 뽑혔는지

재치 없이 뛰려다가 발을 다쳐 저는구나.

대궐같은 집 짓기에 절며 뛰며 정신없네.

사리 밝은 여동댁은 동지 섯달 만났던가

겹겹이 신은 신발 흙 묻은 그 신발로

교실 내왕 하는구나 둘째 종질 거동보소

취흥을 못 이겨 일배 일배 마신 술이 취흥을

불렀어라. 세월아 가지 마라 나도 늙고 너도 늙었구나.

늘어졌다 수양버들 휘휘 청청 잘도 추네.

오랜만에 만난 종반 이걸로 마칠손가.

늙은 학생 거동보소 원숭이로 변신하여

괴상하게 춤을 추네 방송국에 나갔으면

특별상을 받아 올걸 혼자 보기 아깝구나.

외롭던 마음 간 곳 없고 의지심이 생기노라.

권씨 문중에 학생들 실수 없는 인생 공부

우수한 성적으로 회장승진 되었어라.

김회장 분부하에 깊이깊이 복종하소.

흥미있는 야간작업 원없이 발전하여

늦었다 한을 말며 남은 여생 즐기시어

학사공부 잘하소서 추풍낙엽 허튼 자식

상봉길이 있거들랑 일 이 삼 사 불러주면

짚신감발 안 뛰어도 일시에 상봉해서

노회장에 쌓인 회포 수학문제 풀어보세.

여보시오 종반임네 나의 갈 길 따로 있으니

지중(至重) 판사 될 때까지 허전한 발길 돌려

하던 공부 하러 가네 앞길이야 짧지만은

다시 만날 기약하고 멈출지 모르는 필설

아쉬움이 너무 많아 멈출 줄 모르노라.

홍회장님 고회장님 아뿔사 늦었구나.

진작에 알았다면 숨은 인재 공개하여

보지 못한 손짓 발짓 방송국에 출연하여

만백성의 갈채 속에 박수소리 요란하여

특별인재 되었을 걸 누구든지 한 번 보면

먹구름도 삭아지고 모든 병을 고칠 것을

고이고이 간직하여 쉬지말고 연습하여

김회장 가거들랑 다시 한 번 보여주게.

또 한 가지 있었구만 낙제생이 되지 말고

차례를 잊지 말게 김회장이 승진되면

어사화를 꽂고 지중시찰 가거들랑

피고의 오집씨 형제 중벌로 판결내려

꽃다운 우리 청춘 돌려주라 호령하리.

퇴학당한 그 인사들 엄한 벌을 줘야겠네.

돌려받은 청춘 되면 늘지 않는 비결 배워

젊은 청춘 살아보세 여보게나 홍고회장

수업에 힘들 때는 나의 기록 보노라면

울다가도 웃음 웃고 수명장수 하시게나.

오랜만에 붓을 드니 글씨도 기구하고

뭔지 나도 모르겠네 두서불문 안 쓸 수 없어

적었으니 용서하게나 밤길 허삼경인데

그대 생각 못 잊어 잠 못 이루노라.

하얀 별장 뒤에 바라보니 하늘 길 달리던 보름달

지붕 위에 선 나그네처럼 쉬고 있네.

일천구백 구십오년 임오월 갑술일(작천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