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학/상주의 아동문학

상주의 아동문학 연재(3)

빛마당 2017. 2. 25. 16:26

. 정기룡 장군 설화

1) 정기룡(鄭起龍)과 적렵마(赤鬣馬)

 

정병사(鄭兵使) 기룡(起龍)은 상주 사람이다. ()는 경운(景雲)이요, 초명(初名)은 무수(茂壽)였다. 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하여 이름을 부를 때 쯤 선조(宣祖)가 문득 꿈을 꾸었는데 한 말이 종루(鍾樓)에서 일어나 하늘나라로 올라갔다. 선조가 꿈에 본 사람을 찾았는데 정기룡이 그 주인공이라 이상히 여겨 기룡(起龍)이라 이름을 내려 주었다.

기룡은 어려서부터 소 한 마리를 먹을 만하였고 기운과 위엄이 뭇 아이들을 항복시켜 감히 령()을 어기지 못하였다. 늘 진 치기 놀이를 할 때면 치고 찌르는 모습이 비범하였고 천성이 청백(淸白)하고 곧아 늘 급한 사람의 곤란에는 사사로움을 돌아보지 않았다. 일찍이 빈한하고 낙척하여 편모를 모시고 주()에서 살았는데, 이름이 절도관(節度管) 군관(軍官)에 매어 있었다.

하루는 관아에서 낮잠을 자다가 갑자기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절도사(節度使)가 불러 그 까닭을 물은 즉, “대장부가 세상에 나서 위로는 등단하여 부월(장수에게 주던 큰 도끼와 작은 도끼)을 잡고 한장군(漢將軍)의 깃발을 꽂지 못하고, 밑으로는 명마를 달려 칼을 휘어잡고 용맹을 발휘하지 못하여 답답함을 이기지 못한 고로 자던 중 꿈결에서라도 소리를 질러 그 기운을 편 것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절도사가 그 말을 듣고 장하게 여겨 늘 속으로 언젠가는 크게 쓸 재목이라고 생각하였다. 마침 일이 있어 전주에 가게 되었는데 이웃 사람이 전주 향감(鄕監) 권모(權某)와 서로 혼인한 사이라 가는 편에 심부름을 부탁하여 정기룡이 편지를 지니고 그 집에 도착하니 권모 집은 아주 부자여서 여러 채의 집이 즐비하고 창고는 그득그득 했으며 담장이 우람했다.

권모에게는 단지 딸 하나가 있었는데 재주와 슬기가 무쌍하고 부모가 사랑하길 장중의 구슬 어르듯 하였는데 눈 같은 얼굴이 예쁘기도 하였다. 차츰 자람에 아는 것이 빼어나고 앞일을 미리 헤아릴 줄 알았으며 또한 선견지명이 놀라와 사람들이 그 예견을 깨닫지 못하고 다들 그 기지에 미치지 못하리라 칭찬하였다. 시집 갈 나이가 되어, 부모가 신랑 구할 것을 의논하면 누차 명을 어기고 그 이유를 사뢰길, “여자가 우러러 한 평생을 맡길 사람은 유일하게 어진 사람이어야지, 만약에 그 짝되지 않을 사람을 만난 즉 평생을 그르치게 되니 이것은 실로 대사이옵니다. 가히 삼가 해야 할 일이옵고 부모님께서도 다 배필을 맞출 때는 궁금하기를 예로부터 그리 하였는지 아옵니다.”고 하였다. 이어서, “조선의 여인인들 어찌 스스로 택한 게 아니겠습니까? 일찍이 우리 보모께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없는 줄을 들었고, 내 비록 육안(肉眼)이나 응당 천정(天定)의 배필을 구하고자 하오니 행여 번거로운 말씀은 마시옵소서.” 하여, 부모도 또한 어찌할 도리 없어 그 곧은 마음을 꺾을 수가 없었다.

하루는 권모의 부부가 일가 댁의 대상(大祥)에 가고 처녀 혼자 집을 지키고 있는데 문을 두드리는 손님이 있어 계집종을 시켜 어디서 온 손님이냐고 물으니, “진주에서 왔습니다. 모의 편지를 요긴히 드릴 게 있습니다.” 하였다. 처녀가 그 음성을 듣고 속으로 이상히 여겨 문틈으로 훔쳐보니 헌헌한 장부가 서 있었다. 비록 그 입은 옷은 남루하고 그 형색은 파리하고 메말랐으니 의표가 영매하고 기골이 장대한 것이 과연 평소에 원하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곧 종을 시켜 우리 집 어른이 오래지 않아 돌아오실 것이니 잠시만 바깥사랑에서 기다려 주십사고 전했다가 다시 생각하여 바깥사랑은 썰렁하니 안채 사랑에 들어 쉬는 게 좋겠습니다.’고 전갈하였다. 처녀는 계집종을 불러 의논하고 술과 밥으로써 대접하였는데 얼마 후에 그 모친이 먼저 귀가하여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인데 내실 근처에 앉았느냐고 묻자 처녀가 오늘에야 백년가약을 맺을 사람을 다행히 만났습니다.” 하기에, “너는 부모의 교훈을 듣지 않고 매파의 말도 따르지 않더니, 고작 네 말마따나 제가 시집갈 데를 구하겠다는 사람이 필경 이것이냐? 저 자는 마치 길거리에 세운 토성이 아니면 바로 문간에 그려놓은 귀신상이다. 네가 실로 두 눈동자가 있느냐? 정말 소위 연완(燕婉)이 곱사등이를 구한 것 같구나. 내 비록 너로 하여 규중에게 늙어 죽게 할지언정 결코 메추리 같은 옷을 입을 늙은 거지에게는 시집보내지 않으리라.”하고 나무라기를 그치지 아니했다. 처녀가 말하길, “나는 이 사람의 됨됨이를 살핀 바 있고 마음으로는 이미 정하였으니 어머니께서 걱정하실 일이 아니옵니다.” 하였다. 얼마 후에 권모가 돌아왔는데 그 처가 그릇 알린 까닭에 또한 노하여 꾸짖었다. 처녀가 아버님, 제 비록 사리를 분별할 줄 모르오나 아버님께서 저 사람을 자세히 살피신 뒤에 저를 꾸짖고 주장하심이 어떨는지요.” 하였다.

그 아버지가 그 말을 따라 외당에 나아가 정기룡을 불러서 먼저 외모를 살피고 다음으로 말을 건네 보았다. 정기룡이 비록 망한 집안에서 곤란을 당하곤 있으나 풍채가 뛰어나고 말이 격렬하여 진실로 남자였다. 드디어 안채에다 전갈하기를 옛날 단부(單父) 여옹(呂翁)이 사위를 택할 때 그 아내에게 일러 말하길, 이는 아녀자의 알바가 아니다 하였으니 오늘 그대(아내)에게 내가 할 말이로다.” 하였다. 그래서 권모는 정기룡에게 여러 가지와 장가를 들었는지의 여부를 물었다. 정기룡이 대답해 단지 편모를 모시고 있으며 살림이 극히 빈한하여 아직 결혼을 못하였다고 했다.

권모가 말하길, “나에게 딸 하나가 있는데 비록 잘 가르치지는 못해도 받들어 공양함을 감당할 만하니 원컨대 결혼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정기룡이 돌아가 어머님께 고하고 결정하는 게 좋겠습니다.” 하자, “편지로 고하겠습니까?” 응당히 하였다. 권모도 그대의 말이 정말 옳다. 가는데 인마(人馬)를 내어 줄 테니 속히 갔다가 돌아오도록 하라.” 하니 정기룡이 저는 본디 미천하여 걷는데 습관이 되었은즉 무슨 사람과 말이 필요하겠사옵니까?” 하였다. 권모가 또 집에 말 한 필이 있는데 굳이 사양하지는 말라. 일찍이 장사꾼이 말라빠진 말 한 마리를 몰고 지나가는 것을 우리 집 여식이 보고 사기를 권하여 내가 말하길, 너는 말 잘 보는 백악(白樂)아니면서 어찌 말을 안단 말이냐? 하자 여식이 말하길 꼭 쓰일 데가 있을 것입니다 하여 드디어 말을 사고 말았다.

말이 몸은 비록 크게 말랐으나 골격은 뛰어났고 여식이 잘 거두어 수월에 아주 윤

기는 말이 되었네. 또 심히 성질이 사나워서 사람을 보면 입을 벌리고 발굽을 치들

어 마치 달아날 듯이 하여 늘 먹이를 줄 때도 꼴을 던져 주곤 하였네.” 하였다. 권모가 고통스럽게 여겨 팔려고 하자 딸이 곧 만류하여 그 아버지에게 아버님, 정도령이 어떤 인물인지도 모르잖습니까? 저 말이 비록 성질이 사나우나 붉은 말갈기와 홍의 털을 지녔으니 곧 귀한 말일 것입니다. 시험 삼아 정도령에게 가지라 함이 어떨지요?” 하였다. 권모도 그러리라 생각하고 정기룡에게 묻기를 그대가 능히 저 말을 다룰 수 있겠는가?” 하자 어찌 남자의 몸이 되어 말 한 필을 못 다루겠습니까?”하고 곧 마구로 가 말 앞에 서니 또 앞발을 치 들곤 사납게 울부짖거늘 정기룡이 그 뺨을 꾸짖자 말이 그제야 머리를 수그렸다. 곧 나아가 쓰다듬으며 안장을 얹었다. 이후로는 아주 순해지자 처녀가 기뻐서 이 말이 또한 사람을 볼 줄 아도다.” 하였다.

정기룡이 그 말을 타곤 진주로 돌아와 어머니를 뵙고 장가갈 것을 고하고 다시 전주에 돌아와 성례를 마쳤다. 장인 권모가 정기룡에게 그대가 진주에 있으며 이미 일호의 책임질 일도 없이 어머니 모시기에 어려움을 당하니 어머님을 모시고 와서 같이 의지해 삶이 어떤가?” 하자, 딸이 여자가 부모 형제를 떠남은 여필종부의 예 탓이옵니다. 원컨대 저희들 일생 의식비를 주시어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 주시옵소서.” 하자 권모가 허락하고 금백전포(金帛錢布)를 많이 주어 보냈다. 딸이 돈을 뿌려 쇠붙이를 쌌는데 심지어 솥이며 종, 호미, 가래 등 장만해 가지 않은 것이 없자 집 사람들이 다 기이히 여기었다. 정기룡이 처를 데리고 말로 고향에 왔을 때는 집안은 단지 네 벽뿐이었다. 그 처가 살림을 꾸리고 생활에 근면하여 문득 안정되었고 또 철물로 많은 병기를 만들어 쌓아두며 반드시 쓰일 때가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임진년에 왜구가 대거 침입해 오자 정기룡이 의병을 모아 근왕병(勤王兵)으로 나서고자 하나 노모와 약한 처가 있음을 근심하니 그 처가, “우리 고부의 피난처는 이미 골라 두었으며 첩이 응당 부지런히 시부모님을 모실 터이니 행여 걱정을 마십시오.” 하여 정기룡이 병기를 차고 그 준마를 타고 나서니 말은 더욱 신용(神勇)하여 오추마(명마)와 같았다.

정기룡은 조경(趙儆)의 휘하에 들어가 늘 선봉으로 돌격하였는데 금산(金山. 현 김천)에 이르러 조경이 왜국에게 사로잡힌 바가 되었다. 정기룡은 말을 달려 호통을 치며 적진으로 달려가 조경을 구해 옆구리에 끼고 나왔는데 적이 다 바람에 쓰러지듯 하였다. 전장에선 늘 말을 채찍 해 적진을 횡행하였는데 바람이 불듯 번개가 치듯하여 적이 송곳처럼 서 조총을 쏘았으나 끝내 맞힐 수가 없었다. 말도 아무리 깊은 구덩이도 뛰어 오르고 절벽을 달려 오름이 마치 돌풍이 일듯 하였으며 정기룡도 쌍검을 휘두르며 한 명의 적도 놓치기 않았다.

하루는 적병 대군이 겹겹이 에워싸 사세가 급한데 정기룡은 자던 중이었다. 응급결에 말을 두고 탈주하여 산에 올라 길게 휘파람을 불어 말에게 들리게 하니 말이 도망쳐 왔다. 왜구도 그 말을 사랑하여 잡아 두려 하였으나 말이 갑자기 고삐를 끊고 용약, 정기룡이 있는 곳으로 왔는데 매단 듯한 언덕과 절벽을 한 달음에 뛰어 올랐던 것이다. 정기룡이 드디어 대공(大功)을 이루었고 벼슬이 영우절도사(嶺右節度使.경상우도 병마절도사)에 이르렀다.

 

2) 정무수(鄭茂壽)와 호랑이

 

정무수는 정기룡(鄭起龍) 장군의 처음 이름이다. 정기룡 장군이 경남 화동군 금남 중평리에서 상주군 사벌면 금흔리로 이사 오게 된 이면에는 호랑이와 얽힌 전설이 있다. 무수는 자람에 무술에 특출하여 동리에서도 늘 아이들의 대장 노릇을 하였다.

무수가 12살 때의 일이다. 아이들과 전쟁놀이를 하려고 뒷산에 올랐는데 갑자기 비

바람이 몰아쳐 이를 피하려고 모두 바위 아래로 들어갔다. 뇌성벽력이 치고 먹구름

에 천지가 암흑 같았다.

이 때였다. 어디서 왔는지 대호(大虎) 한 마리가 나타나 입을 벌리고 금세라도 아이들을 삼킬 기세로 으르렁거렸다. 다른 아이들은 공포에 질려 더 깊이 바위틈으로 기어들기만 하였다. “우리가 호랑이를 만난 것은 운명이다. 또 이곳은 더 이상 피할 곳도 없다. 가만히 있다가 죽느니 모두 힘을 합쳐 호랑이와 싸우자.”고 무수가 나섰으나 감히 나서는 아이는 한 사람도 없었다. 무수는 분연히 뛰쳐나가며 혼자라도 싸울 수밖에 없다. 너희는 구경이나 해라!” 하며 비호같이 호랑이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무수가 달려든 순간 호랑이는 흔적이 없어졌고 등 뒤에선 산이 무너지는 뇌

성 벽력이 났다. 무수가 바위굴에서 뛰쳐나오는 순간 벼락이 그 자리를 쳐 아이들은 참화를 입고 말았다. 이 일이 있은 후 어른들은 무수를 비범한 아이라고 지목하였고 그때 나타난 호랑이는 무수를 구출한 산신령의 화신이라고들 믿었다.

그 후 13세 때는 집안일로 그 어미가 진주로 이사를 갔는데 무술을 배우게 하여 그 어머니가 무수를 글방에 보내었다. 이곳에서도 무수는 전쟁놀이를 일삼았다. 하루는 남강 변에서 또 놀이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고 천둥과 번개가 요란하였다. 아이들과 함께 강변의 정자 밑으로 비를 피해 들었다. 그런데 이 날도 대호(大虎)가 나타나 으르렁대기 시작하였다. 이때에도 무수는 겁내지 않고 아이들의 옷을 하나하나 호랑이 앞으로 던져 보았다. 호랑이도 아이들의 옷을 받아 오히려 던져 주고는 열두 번째로 던진 무수 자기의 옷을 덥석 움켜쥐는 것이었다. 무수는 호랑이 앞으로 나서며 내가 가야 한다.” 하였다. 무수가 호랑이 앞으로 뛰쳐나가자 호랑이는 연신 뒷걸음질만 치는 게 아닌가. 다가가고 물러서기를 몇 번하는 사이에 비를 피하던 장자와는 거리가 생겼다. 바로 그 때 또 전과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번쩍하는 번개와 뇌성은 열 한명의 아이와 정자를 순식간에 없애 버렸다. 그 순간 호랑이 또 한 눈앞에는 없었다.

남강변의 참사로 무수의 집은 동민의 가록한 박해를 받게 되었고 끝내는 이곳에서 상주로 피신해 오기는 하였지만 나라의 인재는 호랑이(산신령)도 알아보았다는 소문은 사방으로 퍼졌다.

 

. 이상향 우복동 전설

소가 엎드려 있는 모양의 마을, 그런 마을을 우복동이라고 한다. 평화롭고 살기 좋은 마을이란 뜻도 된다. 어떤 이들은 오복동이라 하여 부자도 없고 가난한 사람도 없고 생존경쟁도 없이 매우 안락한 이상 촌락을 이루고 있는 마을, 말로만 듣고 아무도 가보지 못한 이상촌(理想村), 이런 마을이 상주지방 어딘가에 있다고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고 있다.

나무꾼 한 사람이 산 속으로 나무를 하러 갔다. 그날은 어찌하다 보니 산 속 깊숙이 들어갔던 것이다. 나무를 하려고 지게를 내려놓은 참이었는데 웬 사슴 한 마리가 나무꾼 눈에 들어 왔다. 나무꾼을 보고도 겁을 먹은 모습이 아니었다. 나무꾼은 지게 작대기로 사슴을 겁주는 시늉을 했다. 그래도 사슴은 태연히 서 있기만 했다.

오히려 나무꾼을 더 정답게 바라보는 듯했다.

별난 사슴도 다 있군.”

나무꾼은 슬금슬금 사슴 가까이로 갔다. 사슴은 나무꾼을 힐끔 훑어보며 걷기 시작했다.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고 그냥 그 걸음이었다. 나무꾼이 따라 오다 서 있으면 사슴은 또 서 있고, 나무꾼이 따라오면 다시 슬금슬금 걷는 것이었다.

그것 참 이상한 일이로다. 한번 따라가 볼 수밖에 없지.”

나무꾼은 사슴을 따라 이 골짝 저 골짝을 다녔다. 얼마를 그렇게 따라 갔을까. 사슴은 바위 돌 사이에 뚫린 조그만 굴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나무꾼은 내친걸음이니 그냥 굴속으로 따라 들어갈 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 굴속엔 무엇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무꾼은 슬금슬금 굴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굴은 이상하게도 안으로 들어 갈수록 크고 넓었다.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캄캄한 것인데도 그 굴은 들어 갈수록 밝아 오더니 나중에는 환한 세상이 되었다. 나무꾼은 어떻게 이처럼 딴 세상이 있을까 하고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저쪽 소나무 밑에 두 노인이 바둑을 두고 있는 게 보였다.

나무꾼은 바둑을 두는 노인들 곁으로 갔다. 노인들은 모두 불그레한 얼굴에 수염이 하얗게 세었으며 소나무 가지에는 학이 앉아 있고 나무 아래에는 이름 모를 꽂들이 피어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솔가지를 스쳐오는 바람이 나무꾼의 가슴 속에까지 시원하게 스며들었다. 두 노인은 말없이 바둑을 두는데 세상에 아무 걱정이 없고 괴로운 일, 슬픈 일도 없는 듯한 얼굴로 바둑알을 놓았다 들었다 한다. 그러면서 나무꾼에게 거문고 소리 나는 쪽으로 가 보라고 했다. 나무꾼은 시키는 대로 풍채가 좋은 노인 앞으로 가 공손히 절했다.

잘 오셨네, 여긴 저렇게들 즐겁다네.” 하는 것이었다. 노인이 가리키는 곳에는 노래하며 춤추는 무리가 있었다. 노인은 다시, “여긴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없네, 도둑도, 사기꾼도, 가뭄도, 홍수도, 전쟁도 없지, 우리도 피난 온 사람들이지만

나무꾼은 이곳이 낙원이라고 생각하였다.

얼마 뒤에는 예쁜 처녀가 눈이 부신 쌀밥을 해 올렸다. 처음은 정신없이 먹다가 문득 숟갈질을 멈추었다. 이 흉년에 이런 쌀밥을 혼자 먹다니! 생각이 이에 미치자 목이 컥 막혔던 것이다. 이 눈치를 알아차린 노인이 걱정 말고 먹으라고 했다. 나무꾼은 밥을 먹으면서 처자식을 생각했다. 그는 용기를 내어 가족이 다 이곳에서 살수는 없겠느냐고 애소하듯 했다. 그러자 노인은 뚫어지게 나무꾼을 응시하더니 나는 이 마을의 촌장일세, 내 말을 어기지 않는다면 그도 허락하겠네.” 하는 것이었다.

나무꾼은 말대로 하겠다는 다짐을 골백번하고 사례하자, “누구도 이곳으로 오는 줄 알게 해서는 안 되네!” 하였다.

나무꾼은 집으로 돌아왔다. 참으려 해도 즐거운 미소를 감출 수가 없었다. 더구나 이사 가자고 제의하는 남편의 모습에서 아내는 더욱 의아하기만 했다. 연유를 물었지만 남편은 끝내는 반 윽박지르듯 이사를 강요하여 아내도 할 수 없이 승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문 모를 이사를 가지만 수십 년간 정들었던 이웃 몰래 도망칠 수는 없다하여 작별을 나섰다. 느닷없는 이사에 이웃들이 놀랐을 뿐 아니라 그 이사 가는 이유조차 전혀 알 수 없는 게 궁금증만 자아내게 하였다.

정작 떠나야 할 아침이었다. 이제야 알았다면서 평소에 가장 잘 지내던 친구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갈 때 가더라도 마지막 이별주 한 잔을 못 한단 말인가?”

나무꾼도 그 말에는 자신의 행동이 너무하다 싶었다. 둘이는 참으로 섭섭해 하며 술을 몇 순배 나누었다. 친구도 꼬치꼬치 연유를 알고 싶어 했지만 그보다도 정말 도망치듯이 어디로 간단 말 한마디 못하고 친구와 헤어지는 게 마음 아팠다. 술을 사발로 마셨다.

이 사람아, 우리가 그간 사귄 게 이렇더란 말인가!”

친구는 정말 서운해서 얼굴색이 변했다.

에라, 말만 안 새면 될 것 아닌가!”

나무꾼은 그만 그간의 내력을 다 털어 놓았다.

절대로 이 말을 남에게 누설해선 안 되네!”

하고 몇 번이나 다짐을 두었다. 그러자, 친구는 도리어 자기도 데려가 달라고 간청하는 것이었다. 나무꾼은 마음씨가 고와 그만 어겨서 아니 될 약속을 어기고 말했다. 그는 가족을 데리고 산속으로 들어갔다. 사슴을 따라가던 굴을 찾았으나 나무꾼은 끝내 그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