尙州 文化財 還收에 대하여
尙州文化財還收推進委員長 姜 龍 哲
목 차
1. 머리말 144
2. 민족의 “혼” 이 담긴 우리 문화재 145
가. 국가 문화재 해외 유출 145
나. 경북 문화재 해외 유출 148
다. 상주 문화재 국내외 유출과 환수 150
3. 방촌 황희 정승 영정 환수 경위 159
가. 방촌의 생애와 자손의 상주 세거 159
나. 방촌 황희 정승 영정의 보관과 유출 159
다. 방촌 황희 정승 영정 환수 160
4. 타 시·군 문화재 환수 추진 162
5. 앞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 162
6. 맺 음 말 163
尙州 文化財 還收에 대하여
尙州文化財還收推進委員長
姜 龍 哲
1. 머리말
문화유산(文化遺産)은 다음 세대에 물려줄 우리 민족과 인류 사회 모두가 소중히 지켜야 할 사명을 가져야 한다. 이는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언제인가 소멸되는 때가 오겠지만 보존을 소홀히 한다는 것은 조상들의 영혼(靈魂)을 뭉개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6.25전쟁을 겪으면서 수많은 문화재가 남의 나라에 약탈당하거나 유출되었음은 불행이 아닐 수 없다. 그 중에서도 1876년 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되고부터 침탈(侵奪)이 시작되어 1905년 11월 을사보호조약을 거쳐 1910년 경술국치 이후 36년간 우리 강토의 문화재에 대한 약탈은 더욱 노골적으로 이루어 졌다. 그 뿐 아니라 조선 말기 병인양요 등 국난과 일제로부터 해방된 직후 혼란기에 유럽과 미국 등 세계 곳곳에 문화재가 유출되어 있어 오늘을 사는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우리 상주는 20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고도 웅주로서 고대 사벌국으로부터 신라 시대에는 삼국 통일의 전초 기지로서(백화산 금돌성) 장구(長久)한 역사와 함께 우리 조상들이 전승(傳乘)시킨 수많은 문화재는 우리 민족사에 남겨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백화산 금돌성>
본고에서는 우리 지역의 문화재 약탈(掠奪) 실태를 살펴보고 작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상주박물관으로 환수된 방촌(厖村) 황희(黃喜) 영정(影幀)의 환수 경위를 남겨 앞으로 우리 문화재 환수 추진에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우리 지역 문화재 환수에 대한 정확한 자료 수집(收集)과 고증(考證)은 빈약함을 밝혀두면서 유출(流出) 문화재의 개괄적인 내용을 확인(確認)하고 앞으로 문화재 환수(還收)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2. 민족의‘혼’이 담긴 우리 문화재
가. 국가 문화재 해외 유출
2012년 설립된 문화재청 산하의 국외문화재연구소가 2016년 발표한 “해외전적문화재조사목록”에 의하면 임진왜란(壬辰倭亂) 이후 일제 강점기, 6.25전쟁 등 나라가 혼란(混亂)스러웠던 시기에 해외로 유출되어 아직까지 국외에 소재하는 우리 문화재는 2015년 10월 현재 20개국에 160,342점에 달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는 매년 조사 시마다 늘어나고 있다고 밝히면서, 지금까지 회수(回收)된 문화재는 미국, 일본 등 10개국에서 9,749점(6%)이며 정부에서는 다각도로 환수(還收)를 추진 중에 있어 성과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까지 외국에 남아있는 문화재 중에 국가 별로 2,000점 이상 우리 문화재를 소장한 실태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표 1〉해외 소재 한국문화재(2,000점 이상 국가)
소장국 | 수 량(점) | 주 요 소 장 기 관 | 비 고 |
일 본 | 67,708 | 도쿄 국립박물관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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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 | 44,365 | 보스튼 미술관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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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일 | 10,940 | 쾰른 아시아박물관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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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국 | 9,806 | 베이징 고궁박물관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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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국 | 7,945 | 영국 박물관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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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 5,699 | 모스크바 동양박물관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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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 2,896 | 국립 기메박물관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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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만 | 2,881 | 국립 고궁박물관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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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 2,192 | 로열몬타리오박물관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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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문화재 소장 내역>
<사진1. 프랑스 기메박물관소장 철조천수관음보살>
ㅇ 일본 : 한일병합(1910)을 전후하여 교수 및 관리, 상인들에 의해 다량 유출
- 고려불화. 지장십왕도
- 안견의 몽유도원도 (천리대중앙도서관)
- 금동비로자나불입상 (도쿄박물관) 등
ㅇ 프랑스 : 병인양요(1866)를 기점으로 군인과 상인들에 의해 유출
- 직지심체요절, 왕오천축국전
- 외장각고문서, 철조천수관음보살 등
ㅇ 미국 : 일제강점기 및 8.15 해방 전·후 주로 학자들에 의해 유출
- 백자진사포도문호
- 우복 문집, 동춘당 문집 등
우리 문화재는 우리 땅에 있어야 그 의미가 더욱 빛날 것이다.
옛말에 계란으로 바위치기란 말도 있지만 “혼(魂)이 담긴 계란으로 힘을 모으면 얼마든지 바위도 깰 수 있다”는 문화재 환수 운동의 선구자(先驅者)요, 거목인 ‘혜민’ 스님의 말씀처럼 우리도 힘을 모아 선조들의 혼(魂)이 담긴 문화재 환수에 관심이 있는 분들의 동참(同參)이 기대된다. 최근 미국은 중국에 공룡 화석을 비롯하여 문화재 22점을 반환(返還)하였고, 호주 정부는 구입한 불상이 도난품으로 밝혀지자 원소장국인 인도에 반환하였으며, 중국은 네델란드로부터 아르헨티나는 페루와 에콰도르에서 약탈당한 유물을 대량 반환 받은 바 있다.
<사진 2. 북관대첩비>
2016년 1월에는 프랑스 기메박물관에서 캄보디아에 힌두석상 1점을 반환(返還)하였다. 이러한 국제 사회의 흐름은 우리 지역 유출 문화재 환수운동에도 분명 기회이다. 그러나 정부와 지자체 조사와 환수활동으로는 한계(限界)가 있으니 국민 모두가 유출 문화재의 실상을 이해하고 모니터링 해 가치 활용에 나서야 할 때다.
실례로 근년에 환수된 주요 문화재의 경우 민간의 역할이 중요함을 증명하듯이 2005년 ‘북관대첩비’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 : 함경북도 북평사 직을 맡고 있던 정문부(鄭文孚, 1565∼1624) 장군이 임진왜란 중 의병을 모아 왜군을 격퇴한 공을 기려 조선 숙종 때 북평사 최창대가 함경북도 길주군 임명면(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북도 김책시 임명동)에 세운 전공 기념 비석이다. 높이 187cm, 너비 66cm.(다음, 위키백과)
를 발견한 최서면 박사, ‘외규장각 의궤’ 외규장각 의궤(外奎章閣儀軌) : 강화도 소재 외규장각(外奎章閣)에 보관되어 있던 조선 왕실의 의궤. 외규장각은 1782년 2월 정조가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강화도에 설치한 규장각이다. 의궤는 ‘의식(儀式)의 궤범(軌範)’을 줄여서 한 단어로 만든 것으로, 의식의 모범이 되는 책이란 뜻이다. 2011년 5월 환수가 완료되어, 7월부터 그 중 일부를 국립중앙박물관을 통해 공개하였다.(다음백과)
를 프랑스 박물관에서 발견한 박병선 박사와 ‘겸재(謙齋) 정선화첩(畵帖)’ 겸재(謙齋) 정선화첩(鄭歚畵帖) : 조선 후기 최고의 화가라 불리는 겸재 정선(1676~1759)의 진경산수화뿐 아니라 사의산수화, 고사인물화, 고사화 등 21점의 그림이 담겨 있는데, 다양한 화제(畵題)와 화풍을 담고 있어, 겸재의 다채로운 예술 세계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소중한 화첩이다. 독일의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 보관돼 있던 화첩으로 2005년 영구 대여 형식으로 한국에 반환되었다.(http://blog.naver.com. 월간마음수련기자들의 수다방)
을 찾은 유준영 교수 등은 현지 교민과 유학생이었다.
나. 경북 문화재 해외 유출
삼한시대부터 통일신라를 거쳐 오늘 날에 이르기까지 찬란한 전통과 역사를 간직한 경북 지역은 23개 시군과 19,027㎢에 달하는 방대한 면적을 가지고 있다.
이에 전국적으로도 가장 많은 문화재를 간직한 우리나라 문화재의 보고(寶庫)로서 큰 수난(受難)과 상처를 받았으나 그 동안 관련 자료 및 조사가 미비하여 주로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 의한 문화재 불법유출 내용 위주의 조사만 되어 있다. 이에 정부의 정확한 해외 유출 현황자료가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경상북도에서 더 많은 것을 조사하고 찾아내기 위하여 다양(多樣)한 자료와 증거를 수집하여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경북 문화재 유출 현황을 밝혀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경상북도의 국외 문화재 유출 내역에 대한 총괄(總括) 자료가 없고 또한, 부분적 내용만 조사(照査) 공개되어 아쉬운 실정이다.
일제 강점기 초기 정찰용(偵察用) 목적으로 도내 전역의(특히, 경주지역 중심) 문화재를 조사하면서 일본으로 유출시킨 품목과 수량은 구체적인 목록이 없어 알 수 없다. 하지만 일부 일본 학회 등에서 발표한 기록에 의하면 경주 황산리 고분(古墳) 출토의 토기 외 20여 종에 달한다고 한다.
고적조사(古蹟調査)라는 미명(美名) 하에 각 대학 및 일본 학계에 유출된 문화재는 1909년부터 일본 세키노일행이 조선 유적유물(遺跡遺物)에 대한 조사 시 엄청난 문화재가 유출되었고 더구나 그 목록이 없어 구체적인 수량은 알 수 없으나 학회 등에 보고된 자료 등에서 추정(推定)해 볼 수 있으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사)우리문화재찾기운동본부, 2013,「경북지역의 문화재 수난과 국외 반출사」, 학연문화사.
ㅇ 1912년 도쿄 제국대학 전시회에 출품된 유출 문화재는 경주에서 출토된 서악동 고분 석침(石針) 등 31종이다.
ㅇ 1913년 일본 사학회에 출품된 유출 문화재는 고령 분묘 부장품 등 9종이다.
ㅇ 1914년 도쿄 제국대학 전시회에 출품된 유출 문화재는 예천 용문사 세조 교서(敎書) 등 23종이다.
ㅇ 1915년 도쿄 제국대학교수 구로이타가쓰미가 유출한 문화재는 선산 해평 곡옥 등 3종이다.
ㅇ 1929년 도쿄 제국대박물관 직원인 세이이치가 도쿄박물관에 출품한 경주의 고배(高杯) 등 13종이다.
ㅇ 1951년 도쿄 제국대 고적 조사위원인 우메하라가 고고도록에서 밝힌 경주의 석검(石劍) 등 54종이다.
그 외에도 1927년부터 1936년까지 도쿄 대학에서 발간된『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報)』에서는 경북지역 출토 유물이 다수 소개되고 있으나 체계적인 조사에 따른 정확한 유출 확인은 앞으로 문화재 환수의 자료가 되는 만큼 관계자들의 큰 과제(課題)이다. 다행히 경상북도가 2011년에 (사)우리문화재찾기운동본부를 설립하여 경북에서 국외로 유출된 문화재의 환수를 위하여 여러 가지 활동을 해 왔다. 특히, 최근에는 서울에서 “영남지역 문화재의 국외반출과 관리 현황”을 주제(主題)로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 2015.12.01 국회세미나실에서 500여 명이 모여 문화재의 보존과 국외소재 문화재 환수방향에 대하여 토론.
하는 등 앞으로 기대가 크다 하겠다.
다. 상주 문화재 국내외 유출과 환수
정부와 경상북도가 ‘우리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을 수년전부터 추진해 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경상도의 뿌리인 우리 상주에서도 그동안 잊혀져 있던 향토문화재(鄕土文化財) 유출 현황을 파악하고 이를 환수(還收)하여 제자리에 안착(安着)시키고자 상주 지역 시민단체인 “희망상주21”(회장 김근수)의 부설(附設)기구로 “상주문화재환수추진위원회”(위원장 강용철)를 2014년 12월 15일 발족하였다.
2015년 2월 10일까지 관계 인사 8명의 추진위원(김영산, 조흥기, 박강범, 이상민, 성우제, 남명호, 김문섭, 김진형)이 국내·외에 유출된 문화재를 관련 자료와 관계자 증언(證言) 등을 통해 수집한 내용과 환수(還收) 계획을 전국의 기초자치단체로서는 처음으로 발표하여 전국의 언론 및 시민들로부터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상주시의 국내·외 유출문화재(2017년 10월말 현재) 현황은 다음과 같다.
【상주시 국내·외 유출문화재(2017년 10월 말 현재)】
ㅇ 수 량 : 16,521점
〈국 내 : 16,416점〉
- 숭실대 박물관 : 요녕식 동검 1점
- 이화여대 박물관 : 청동기 유물 8점
- 국립중앙박물관 : 삼국시대 금동관 1점
- 국립경주박물관 : 고려 범종 등 3점
- 국립대구박물관 : 신라 금동보살입상 등 14,445점
- 부산시립박물관 : 안수사 동종 1점
- 규장각 : 상산지. 상산록 등 5점
- 영남문화재연구원 : 복룡동 유적 1,796점
- 삼성 리움박물관 : 요녕식 동검 2점
- 강윤구(서울) : 상주성도 1점
〈국 외 : 105점〉
- 일본 : 정기룡장군 투구, 소재선생 문집(1665년) 등 53점
<사진 4. 정기룡 장군 투구>
- 미국 : 주문작해 (朱文酌海, 鄭經世撰) 등 51점
- 프랑스 : 철조천수 관음보살 1점(고려)
상주문화재환수추진위원회는 2015년 2월 10일 유출 문화재 내용을 공개한 후 뜻있는 시민들로부터 많은 관련 제보(提報)가 있어 사실 확인 중에 있다. 그 중에서 몇 점 만 밝혀 둔다.
. 동방사 추정 출토 금불상 1점(1965년 출토, 개인소장)
.『시의전서』1점(전북 고창 이상운 소장)
. 정기룡(鄭起龍) 장군 갑옷, 관복, 종군기(일본)
. 연원동의 석조천인상 1점(1982년 이후 행불)
. 동해사 석조여래입상 1점(직지사 소장)
. 이조 선조시대 강신(姜紳) 관찰사 영정 1점(서울, 개인 소장)
. 강신(姜紳) 관찰사 임란때『일기』1점(서울, 개인 소장)
. 이경유(李敬儒)의『창해시안(滄海詩眼)』-서울, 권태문(權泰文) 소장
. 조선 중종 문신 이언적(李彦迪)의『사벌국전』(소장자 불명)
. 조선 선조시대 창석(蒼石) 이준(李埈) 서신(書信) 1점(대구 개인소장)
<주요 환수 대상 문화재>
문 화 재 명 | 소 장 자(기관) | 비 고 |
철조천수관음보살 | 프랑스 기메박물관 | 고 려 |
菊圃(姜樸)선생집 | 일본 東洋文庫 | 조 선 |
穌齋(盧守愼)선생집 | 일본 富山大도서관 | 조선목판 |
心圖(周世鵬) | 일본 尊輕閣文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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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湖(兪彦述) 集 | 일본 早稻田大도서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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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川世稿(蔡壽) | 일본나고야 蓮在文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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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山(車天輅)集 | 일본 天理大도서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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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畹(李春元)선생집 | 일본 大阪部立도서관 | 조 선 |
同春堂(宋浚吉)文集 | 일본 國會도서관 | 조선목판 |
愚伏(鄭經世)文集 | 일본 大阪府立도서관 | 조선목판 |
鄭起龍將軍 鬪俱 | 일본 동경 | 조 선 |
黔澗선생집 | 미국 하바드대도서관 | 목 판 |
朱文酌海 | 미국 하바드대도서관 | 목 판 |
雙修堂遺稿 | 미국 하바드대도서관 | 목활자 |
西川世稿 | 미국 버클리대도서관 | 목 판 |
靑銅器遺物 8점 | 이화여대 박물관 | 청동기 |
高麗 범종 | 경주 박물관 | 고 려 |
金銅冠 1점 | 국립중앙박물관 | 삼 국 |
黃喜政丞 影幀 | 국립중앙박물관 | 조 선 |
金銅보살입상 | 대구 박물관 | 신 라 |
辛亥銘 銅鐘 | 대구 박물관 | 고 려 |
甄萱山城 유적 71점 | 대구 박물관 | 후백제 |
안수사 銅鍾 | 부산시립박물관 | 신 라 |
尙州事例(민종열) | 규장각 | 조 선 |
尙州城圖 | 강윤구 | 조 선 |
ㅇ 일제의 문화재 약탈 및 고적 조사 경상북도, 2013,「경북 지역의 문화재 수난과 국외반출사」
<사진 5. 안수사 동종>
⋅ 1893년 일본 상인이 부산에 상륙하여 배편을 이용 상주까지 왕래하였다고 해진대위(海津大尉)가 “조선기행”에서 기록한 것으로 보아 우리 지역 문화재가 이 시기부터 도굴(盜掘)되어 약탈된 것으로 추정(推定)
⋅ 1900년 10월 27일 - 11월 6일 사이 도쿄대학의 야기쇼자부도가 문경, 함창(?)지역에서 선사시대 유물인 요석 및 타제(打製)를 채집
⋅ 1910년 11월 19일 경무 총감부에서 압수한 서목(書目) 내용에 장지연 선생(발행 : 황성신문)이 저술한 애급근세사(埃及近世史)가 포함
⋅ 1912년 12월 9일 - 12월 12일 사이 도쿄 대학의 세키노야쓰이, 구라야마 등이 함창 일대의 건축물, 사벌 화달 삼층석탑, 외남 지사 석탑 조사
⋅ 1914년 9월에서 11월 사이 이도리류조가 안동, 상주, 김천 등지에서 신라시대 고배, 토기 등을 수집
⋅ 1929년 후지다큐사쿠는 조선에서 발견된 이식(耳飾)은 대단히 많았는데 학술적으로 조사를 거친 것만도 70쌍이지만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이는 대부분 경주, 달성, 선산, 상주에서 출토(出土)되었다고 저서에서 밝힘.
ㅇ 일제의 문화재 도굴
⋅ 상주면 거동리 고분 9기 ⋅ 청리면 월로리 고분 2기
⋅ 청리면 청하리 고분 9기 ⋅ 청리면 마공리 고분 8기
⋅ 공성면 거창리 고분 6기 ⋅ 모서면 도안리 고분 24기
⋅ 화북면 상오리 칠층석탑 ⋅ 화북면 운흥리 오층석탑
⋅ 외남면 지사리 석심회피탑 ⋅ 모동면 용호리 사층석탑
ㅇ 문화재 환수를 위한 추진위원회 활동사항 개요(槪要)
⋅ 2014년 11월 5일 “희망상주21” 부설기구로 가칭 “상주문화재환수추진위원회”를 발족키로 결의
⋅ 2014년 11월 7일 상주 박물관장을 면담하여 위원회 설립 취지 설명과 협조 요청
<사진 6. 상주 성도>
⋅ 2014년 11월 8일 (전)상주문화원 사무국장 박윤성(84세) 옹(翁)을 면담하여 취지 설명 및 협조 요청 - 정기룡장군 투구와 상주성도(尙州城圖) 행방에 대하여 증언
⋅ 2014년 11월 17일 정기룡 장군 투구 소장자 파악을 위하여 역대 상주 경찰서장 명부(名簿)를 상주 경찰서 및 경북도경(慶北道警)에 요청 - 1945년 이후 명부만 있음.
⋅ 2014년 11월 20일 - 12월 5일 추진위원 9명 위촉
⋅ 2014년 12월 2일 상주 성도 소장자로 추정되는 서울 거주 강윤구씨와 전화 협의 - 소장 사실 시인 및 반환은 추후 논의
⋅ 2014년 12월 5일 “상주문화재환수추진위원회” 발족(9명)
⋅ 2014년 12월 8일 상주시장에게 정기룡 장군 투구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본 소장 문화재 반환목록(返還目錄)에 포함되도록 협조 요청
⋅ 2014년 12월 30일 정기룡 장군 투구 소장자를 증언하여 줄 정춘길(75세)씨를 면담하여 관련 자료 녹취(錄取)
⋅ 2015년 1월 14일 강영석 도의원을 면담하여 경북도에서 협조하여 줄 것을 요청 - 도 관계부서와 협의 적극지원
⋅ 2015년 1월 29일 문화재 환수추진위원회 1차 회의 - 추진사항 점검 및 향후 방안 논의
⋅ 2015년 2월 3일 안동MBC - TV에서 활동 상황 취재 후 보도
⋅ 2015년 2월 3일 국외 문화재재단에서 상주 문화재환수 추진 상황 파악
⋅ 2015년 4월 16일 진주 강씨 서울 이사회에 참석하여 상주 성도 소장자인 강윤구 씨에 대한 협조 요청
⋅ 2015년 4월 28 일 상주 불교 사암연합회 회장인 서담스님을 면담 협조 요청 – 철조천수관음보살상 환수에 적극 협조
⋅ 2015년 5월 24일 서울 김종성(82세)씨를 방문하여 정기룡 장군 투구 소장자 파악 협의 – 일본 측 관계자와 적극 논의
⋅ 2015년 6월 25일 문화재환수추진위원회 2차 회의 개최 - 추진사항 점검 및 향후 방안 논의
⋅ 2015년 8월 13일 (사)우리문화재찾기운동본부에 철조천수관음보살 출토지(出土址) 정정요구(성주 ⇒ 상주)
⋅ 2015년 9월 10일 경북일보에 “실크로드를 통한 문화재 환수 기대” 게재(揭載)
⋅ 2015년 11월 17일 정영호 (전)단국대박물관장을 면담하여 상주성도 환수 협의
⋅ 2015년 8월 20일부터 12월 10일까지 상주 불교 사암연합회가 철조천수관음보살 환수촉구 대 시민 서명 운동 전개 - 4,500명
⋅ 2016년 2월 3일 동방사 추정 금불상 발견 지점 답사 및 발견자(이영식) 증언 녹취
⋅ 2016년 3월 3일 정읍시립박물관을 방문하여 최치원 선생 영정(影幀) 환수 경위 파악
⋅ 2016년 4월 7일 익성공 황희 정승 영정 반환 요구 건의서 제출(옥동서원 - 국민권익위원회)
⋅ 2016년 4월 20일 문화재환수추진위원회 3차 회의 개최 - 추진사항 점검 및 향후 방안 논의
⋅ 2016년 5월 11일 “상주성도” 소장자 강윤구(용인시)씨 자택 방문 환수 협의
⋅ 2016년 6월 9일 1차 문화재 환수 - 출향인사 강영석 옹이 소장 중인 사헌부감찰 교지 등 170점을 상주박물관에 기증
⋅ 2016년 6월 10일 미국대학교 박물관 소장 상주문화재현황을 문헌으로 확인 – 주문작해(朱文酌海) 등 51점
⋅ 2016년 6월 16일 국민권익위원회 조사관 옥동서원방문 조사 - 환수 타당성 및 방안 논의
⋅ 2016년 6월 20일 철조천수관음보살(프랑스 기메박물관 소장) 출토지를 성주군으로 표기한 경북도 홍보물을 성주군을 삭제하고 경북도가 제작 배포
⋅ 2016년 6월 28일 상주시장에게 상주시 연원동에 장백사 추정 석불이 매장되어 있으니 발굴 건의
⋅ 2016년 7월 1일 황희 정승 영정 환수 협의차 위원장, 옥동서원 관계자가 중앙박물관 방문
⋅ 2016년 7월 5일 중앙 박물관이 황희 정승 영정 장기임대 형식으로 상주시에 대여 가능 회신
⋅ 2016년 7월 6일 동방사 추정 터에서 발견된 금불상 소장자(이종석) 후손과 소장 확인 및 환수 협의
⋅ 2016년 7월 11일 시청 관계자와 연원동 매장 석불 발굴 건에 대하여 협의
⋅ 2016년 7월 20일 훈민정음 상주 해례본 환수 협의차 소장자인 배익기씨와 면담
⋅ 2016년 7월 22일 문화재청에 훈민정음 상주 해례본 환수 추진 사항 및 향후 대책 질의
⋅ 2016년 7월 29일 문화재청장으로부터 훈민정음 상주 해례본 환수 질의에 대한 회신 접수 - 내부적으로 추진 중에 있음
⋅ 2016년 8월 23일 상주문화재환수추진위원회 4차 회의 개최 - 그동안 성과 및 향후 대책 논의
⋅ 2016년 10월 12일 정기룡장군 투구와 장검 소재 파악 협의 - 한얼학회 이사장 정홍기
⋅ 2016년 10월 21일 2차로 황희 정승 영정 환수 - 상주박물관 특별전시
⋅ 2016년 11월 19일 연원동 장백사 추정 매립 석불 발굴 - 제보내용 사실 무근 확인
⋅ 2016년 11월 24일 유출 문화재 환수를 위하여 경상북도와 시⋅군 공동대책 촉구 언론 기고 - 영남일보
⋅ 2017년 2월 13일 정기룡장군 유물(투구, 장검, 종군기 등)이 일본 동경국립박물관에 방치되어 있다고 정홍기 한얼학회 이사장이 제보.
⋅ 2017년 4월 10일 검감 조정(黔澗趙靖) 문집과 창해시안(이만부 선생의 증손 이경유 著述) 소장자 확인.
⋅ 2017년 5월 12일 상주신문(제886호)에서 강용철 환수위원장이 밝힌 “정기룡 장군 유물 일본에 있다”의 내용 보도
⋅ 2017년 6월 19일 경상북도 문화유산과에 1910년 상주 상산관에 보관중이던 전패(殿牌)가 경북도청에 봉납되었으니 소재파악 요청
⋅ 2017년 6월 21일 상주문화재환수추진위원회 5차 회의 개최 – 추진 상황 점검 및 향후 대책 논의
⋅ 2017년 7월 7일 경상북도 문화유산과장(이규일)으로부터 상산관 전패(殿牌)의 소재를 파악중이라고 회신을 받음.
⋅ 2017년 8월 11일 3차 문화재 환수 - 출향인사 대구의 김한백씨가 소장중인 창석(蒼石) 이준(李埈) 선생의 서간문(書簡文) 1점을 상주박물관에 기증
⋅ 2017년 8월 29일 영남일보 최보규 기자가 상주 문화재 환수 추진 내용 취재
3. 방촌(厖村) 황희 정승 영정 환수 경위
가. 방촌의 생애(生涯)와 자손의 상주 세거(尙州世居)
<사진 8. 방촌 황희정승 영정>
황희(黃喜, 1363. 03. 08∼1452. 02. 28) 정승. 고려 말 조선 초기의 문신이며 송경(松京 : 개성) 가조리 출신으로 초명은 수로(壽老), 자는 구부(懼夫). 호는 방촌(厖村), 시호는 익성(翼成)이다. 본관은 장수(長水)로서 고려 창왕 1년에 과거에 급제하였고 관직에 나간 후 조선에서 4대 국왕(태조, 정종, 태종, 세종)을 모시면서 형조판서, 대사헌, 이조판서 등을 거쳤다. 특히 세종대왕 치세 기간 중에는 18년간이나 영의정에 재임하면서 성격이 원만하고 청렴하여 존경을 받았으며, 시문에도 뛰어났고 많은 치적과 일화를 남기고 향년 90세로 세상을 떠났다. 사헌부 감찰과 호조 정랑을 역임하고 이후 관직을 떠난 방촌의 둘째 아드님이신 황보신(黃保身, 1401∼1456)이 처(남양 홍씨) 외조의 고향인 상산(商山) 중모현(中牟縣)으로 낙향하여 세거하셨으며, 그 후손들이 조정의 주요 관직에 진출하였다. 선생은 학문에 열중하여 우수한 인재가 다수 배출되었고 현재까지도 서원 관련 고문서가 잘 보관되어 지역의 인물과 교육제도의 연구에 역사성을 인정받은 옥동서원은 2015년 사적(史蹟) 제532호로 지정되었다.
나. 방촌 황희 정승 영정의 보관과 유출
방촌 62세(1424)때 그려진 영정을 방촌의 둘째 아드님이신 황보신이 상주로 입향하실 때 모셔 와서 600여 년 간 후손들에게 대물림 되어온 국내 유일본(파주시 반구정 소장 영정은 임진왜란 때 소실)으로 1585년 백옥동(白玉洞) 영당(影堂)에 봉안한 이래로 문중에서 정성을 다 해 보관해 왔었다. 지난 2008년 8월 장수 황씨 대종회 회장(황갑주)이 옥동서원을 방문하여 영정이 심히 훼손될 것을 우려하는 종친들의 의견을 듣고 서원의 제반 정식 반출 절차도 없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상의 안전함을 이유로 기증하였다. 그러다가 이를 늦게 알게 된 많은 종친들이 옥동서원 대표 황의훈씨 명의로 영정의 반환을 국립중앙박물관에 요청(2012.7.11)하였으나 국립중앙박물관은 박물관 예규(例規)에 의거한 적법절차를 거쳐 국가기관에 입수되었으므로 반환할 수 없다고 옥동서원에 회신(2012.7.19)하고 2016년 10월 20일까지 8년 2개월 동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었다.
다. 방촌 황희 정승 영정 환수
ㅇ 상주문화재환수추진위원회는 방촌 황희 정승의 영정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반출된 사실을 2015년 11월 17일 옥동서원의 황인석으로부터 내용을 청취하고 수차례 상주시청(尙州市廳) 관계자 등과 대책을 논의하였음.
ㅇ 2016년 3월 3일 전북 정읍시립박물관을 황인환, 황인석 서원과 강용철 추진위원장, 김상호 상주시청 계장이 방문하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던 최치원 선생 영정 환수 경위를 파악.
ㅇ 2016년 3월 11일 황희 정승 영정 환수방법을 옥동서원 측, 추진위 측, 상주시청 관계자가 협의 – 반환 건의서를 작성하여 국민권익위에 제출키로 함.
ㅇ 2016년 4월 7일 황희 정승 영정 반환 요구서를 옥동서원장 명의로 국민권익 위에 제출 - 기증(寄贈) 절차 상의 하자(瑕疵) 등으로 기증행위는 무효임.
ㅇ 2016년 6월 16일 국민권익위원회 최영락 조사관이 옥동서원을 방문하여 경위 조사 - 국립중앙박물관에 옥동서원으로 반환토록 협의하겠음.
ㅇ 2016년 7월 1일 서원 관계자(황인환, 황인석, 황학연)와 추진위원회 강용철 위원장, 상주시청 조연남 학예사가 중앙국립박물관을 방문. 담당 학예관(오춘영)과 유물관리 부장(권상열)을 장시간 면담하고 반환을 강력 요청하여 긍정적 답변을 받음.
ㅇ 2016년 7월 5일 국립중앙박물관 오춘영 학예관이 영정을 상주박물관에 장기 임대(賃貸) 형식으로 반환을 검토하겠다고 옥동서원과 추진위 측에 전화로 통보.
ㅇ 2016년 7월 7일 상주박물관에서 관장과 황인환, 황인석 이사, 강용철 추진위원장이 영정 환수 관계 협의 - 정읍시의 최치원 선생 영정 환수방법(장기 임대)을 참고하기로 함.
ㅇ 2016년 9월 20일 국립중앙박물관 오춘영 학예관이 상주박물관을 방문 - 영정 보관 가능 시설 점검.
ㅇ 2016년 10월 18일 국립중앙박물관이 황희 정승 영정을 10월 21일 반환하겠다고 상주박물관에 통보.
ㅇ 2016년 10월 21일 16:00 황희 정승 영정이 옥동서원을 떠난 지 8년 2개월 만에 돌아 와 고유제(告由祭)를 지낸 후 상주박물관에 모심 – 안동MBC 등 언론 집중 보도.
ㅇ 2016년 11월 2일부터 8일까지 상주박물관에서 황희 정승 영정 특별전시 - 향후 국가문화재로 지정토록 노력.
4. 타 시·군 문화재 환수 추진 사례
2008년 조선왕실 의궤 환수를 위한 서울특별시 의회의 특별위원회 구성. 2009년 서울시 조례로 발족한 서울시 “문화재찾기시민위원회”, 2008년 경기도 이천시의 “이천오층석탑환수위원회”, 경남 진주시의 “연지사종반환국민행동”, 2011년 경상북도의 “우리문화재찾기운동본부”, 경기도 고양시의 “육각정환수추진위원회” 등이 각기 자기 지역의 문화재를 제자리에 있도록 하기 위하여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나 일부 시군을 제외하고는 행·재정적 지원의 어려움과 지역 주민들의 무관심 속에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5. 앞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
1876년 조선의 개항 이래 우리 문화재는 외세에 의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1890년 들어 구미 열강에서 건너온 사업가, 공직자 또는 통역관들에 의한 문화재 수집 유출도 상당하였으나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에 의한 불법수집반출(不法收集搬出)이 대다수였다.
이러한 시기에 상주도 예외가 아니었으며 그동안 각종 문헌(文獻) 및 관계자들 증언에 의하면 지금까지 밝혀진 내용 외에도 일본 관헌(日本官憲)에 의한 문화재 유출이 상당량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방 이후 우리 지역에서 출토된 문화재도 항구적(恒久的)으로 보관 및 전시할 지역 박물관이 없어 대구박물관을 비롯 저명 박물관 수장고(收藏庫)에 위탁하는 보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2007년 상주박물관이 개관되어 이제는 국내외 유출문화재에 대하여 관계 전문가로 이루어진 민·관이 중심이 되어 체계적인 실태 파악을 해야 할 것이다. 이 자료에 의거 문화재청, 경상북도의 협조를 받아 상주시에서도 전담(專擔)팀을 구성 환수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해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유출된 문화재의 전모(全貌)가 밝혀진다 해도 원활한 환수를 위해서는 국외적으로는 소장 국가 간의 외교적인 절차 문제와 소장 경위의 타당성 논란을 비롯하여 타 국가의 사례탐구(事例探究)등 풀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또한, 국내적으로는 소장자(기관)와의 심적, 물적 보상 등 까다로운 현안(懸案)이 도사리고 있다.
그동안 국외에 있는 문화재 환수는 일부에서 극적으로 이루지고 있으나 국외 문화재의 대다수가 일본의 박물관이나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만큼 머지 않는 장래에 한일간에 문화재 환수가 현안(懸案)으로 대두될 것이 틀림없다 하겠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라도 일본의 대학박물관이나 국가·지자체 박물관을 중심으로 우리 지역 문화재 소장 여부를 철저히 파악한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나아가 상주시 공무원 등의 해외연수(海外硏修) 시 필히 해당 국가의 박물관을 방문하여 지역 문화재 소장 여부를 확인토록 하는 제도화(制度化)도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6. 맺 음 말
상주는 고대 사벌국 이래 오랜 역사와 함께 조상의 얼이 녹아 있는 문화재를 어느 지역보다도 많이 보유하고 있었으나 그동안 이들 문화재에 대한 소중함이 관계기관이나 시민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일제침략기(日帝侵略期) 전후는 물론이고 최근인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사이에도 다량의 문화재가 유출(流出) 또는 반출(搬出)되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의 미명 아래 시행한 건설현장에서 발굴(發掘)된 문화재 또한 소리없이 사라진 것이 허다한 것으로 이번 현황 조사 시 여러분들이 증언(證言)해 주고 있다.
그러나 문화재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여 주는 고리이며 그 지역의 혼(魂)을 전해주는 유산(遺産)으로 이와 함께 국내·외로 유출된 우리 문화재를 찾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다. 현재 남아있는 문화재 보존 역시 우리가 늘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며 그동안 숱한 역경(逆境)을 넘기고 오늘날까지 온 국민의 정성(精誠)으로 보존한 귀중한 문화재는 그 가치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문화재는 발명될 수도 없고 오로지 전승(傳承)과 보존(保存)이 되어야 하는 독특함 때문이다.
이는 아무리 현대문명이 발달했다하더라도 선조들의 숨결이 가득 베인 문화유산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지역은 숨이 막히는 아스팔트와 황사(黃砂)와 매연(煤煙)으로 뒤덮인 죽어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이천년 역사를 간직한 고도(古都) 상주가 옛 조상이 남긴 고귀한 발자취를 오늘에 연계시켜 과거(過去)와 현대(現代)가 조화롭게 발전하는 문화 도시로 면모(面貌)를 일신(日新)하여 이를 통한 문화관광(文化觀光) 산업이 더욱 발전하는 기폭제(起爆劑)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금번 ‘상주시문화재환수추진위원회’의 단편적인 실태 파악 및 환수 추진을 계기로 관계 기관이나 민간단체에서 심도(深度)있는 조사와 원활한 문화재 환수가 이루어져 우리가 지금 보고 들으며 경험하는 것들과 남아있는 문화재 속에 과거를 현재와 연결하여 선조들이 남긴 귀중한 유산을 바탕으로 새로운 상주를 준비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祈願)한다.
【參考文獻】
1. 정영호, 1969,『상주지구고적조사보고서』, 단국대학교출판부.
2. 상주시, 2010,『상주의 문화재』
3. 상주시, 2010,『상주시사』
4. 경상북도, 2012,『일본, 미국소재 경북지역 문화재 목록』
5. 경상북도, 2013,『경북지역의 문화재 수난과 국외 반출사』
6. 경상북도, 2014,『옥동서원 사적 지정자료 보고서』
7. 황수영, 2014,『일제기문화재피해자료』국외소재문화재재단
8. 국외문화재연구소, 2015,『해외전적문화재 조사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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