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의 인물/상주의 인물 제6권

문명과 학행으로 유명한 한극창(韓克昌)

빛마당 2019. 4. 3. 21:25

* 이 글은 상주문화원이 발간한 상주의 인물 제6권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전재합니다. 스크랩을 하시는 분들은 이 내용을 꼭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문명과 학행으로 유명한 한극창(韓克昌)

박 찬 선
 
  한극창(韓克昌, 1600∼1650) 본관은 청주. 극술(克述)의 아우로 자는 유백(裕伯), 호는 오주(鰲州), 한형(韓衡)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간(韓幹)이고 아버지는 한서(韓瑞) 한서(韓瑞) : 자 정옥 廷玉, 직장이었으며 임란 때 상의군 의병에 좌막(佐幕)으로 참여하여 공훈을 인정받아 원종공신(原從功臣)이 되고 예빈시(禮賓寺) 직장(종7품)에 제수되었다.
이고, 한위(韓衛)에게 입양되었다.
  형 극술(克述, 1598∼미상)은 자 광보(光甫), 호 소호(蘇湖), 인조 갑자년에 생원하고 1630년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좌랑을 거쳐 홍원현감을 지냈다. 우복 문인이다.
  1630년에 형제가 같이 사마시(司馬試)에 뽑혔고, 1624년(인조 2)에 진사가 되고 1633년(인조 11년)에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선수홍문관박사(選授弘文館博士) 고산찰방(高山察訪)이 되었으나 권신 김자점(金自點)을 탄핵하다가 함창에 유배되었다. 사론(士論)이 잘하는 일이라 하여 곧 풀려났다. 벼슬에 뜻을 버리고 후진양성에 힘썼다. 일찍이 정 우복(鄭愚伏)의 문하생으로 문명을 얻고 학행으로 유명하였다. 때로 오주대(鰲州臺) 鰲州臺 : 상주의 남쪽 소호교(蘇湖橋) 윗 쪽에 있다. 남쪽으로는 넓은 들이 펼쳐있고 바로 앞에는 갑장산이 있다. 한극창이 쌓았다. 봄가을 모임에 여러 선비들과 강론을 벌였다.『상산지』
에서 선배들을 본떠 경술(經述)을 강론할 때면 정경세, 이원규, 김지복, 송준길, 황덕유 등 당시 상주를 대변할만한 선비들이 다 모였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에 왕을 호종하였다. 치욕의 화해를 뜻하는 강화에 극력 반대, 상소문을 올렸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아우와 함께 동해상으로 가서 영해의 일월산 아래에 은거하며 대명(大明)의 절의를 지키면서 종신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존주록(尊周錄) 尊周錄: 조선후기 문신·학자인 이태수가 조선 역대의 존주양이(尊周攘夷)의 정책이념과 군사력 강화책을 정리한 책. 9권 5책 필사본. 1716년(숙종 42)에 완성했다. 전편에는 조선 전기에서 숙종 때까지 전개한 존명양이(尊明攘夷) 정책과 이념을 적었고 후편에는 국방강화책을 수록했다.
에 실려 있다.
  1646년 민회빈 강씨(愍懷嬪 姜氏: 昭顯世子嬪)의 사사(賜死)를 반대하다가 유배당한 좌의정 이경여(李敬輿), 대사헌 홍무적(洪茂績)을 옹호하는 소를 올리는 한편 백설가(白雪歌)를 지어 이경여가 화를 입은 것을 한탄하였다.
  문집으로『오주유집(鰲洲遺集)』이 있다. 그 속에 산문으로「기몽(記夢)「구월구일낙봉동류시서(九月九日駱峯同遊詩序)」와「제전망사졸문(祭戰亡士卒文)」등을 남겼다.
  정헌세(鄭憲世, 자 景式)에게 준「영국증경식(詠菊贈景式)」시에서,

歲暮白草腓(세모백초비)  한 해가 저무니 온갖 풀 시드는데
時菊滿叢薄(시국만총박)  때맞춰 국화 송이 송이 맺히네.
香葩自嬋娟(향파자선연)  향기로운 꽃봉오리 절로 아리따워
不啻佳人色(불시가인색)  단지 가인 같을 뿐 아니라
所以陶夫子(소이도부자)  도부자(도연명)가
衰季爲爾惜(쇠계위이석)  말세에 널 아낀 까닭이 있네.
此地亦栗里(차지역율리)  이 땅 또한 율리요
流風今可續(유풍금가속)  당시의 풍류가 오늘도 이어지네.
漉酒自不妨(녹주자불방)  술을 거른들 무슨 해 되랴
風味猶昔日(풍미유석일)  멋은 오히려 옛날과 같은 걸
富貴一筌跡(부귀일전적)  부귀는 한 통발과 같은 것
功名但毫髮(공명단호발)  공명 또한 한 터럭에 불과하네
郎詠步東離(낭영보동리)  낭랑히 읊조리며 동쪽 울타리 서성이니
餘香襲人烈(여향습인렬)  남은 향기 엄습해 향내도 짙네

  부귀공명의 덧없음과 스스로 술과 국화를 사랑했던 도연명의 의취를 본 떠 임천락(林泉樂)을 노래하였다. 도잠에게 마음에 그리는 전원이 있다면 오주에게는 율리(栗里, 청리면)가 있다. 도잠이

采菊東籬下(채국동리하)  동쪽 울타리에서 국화를 따다가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  한가로운 마음으로 남산을 바라본다.
山氣日夕佳(산기일석가)  산 기운은 해질녘에 아름다운데
飛鳥相與還(비조상여환)  날던 새 짝지어 돌아오는구나.
此中有眞意(차중유진의)  이 가운데 진정한 뜻이 있거늘
浴辨已妄言(욕변이망언)  말하려니 이미 말을 잊었구나.

라고,「음주(吟酒) 5」에서 읊은 풍류나 자적(自適)의 멋은 시공을 넘어 예나 이제나 다름이 없다. 한 해가 기우는 세모에 자성(自省)의 거울을 보는 듯한 차분히 펼치는 사유와 시의 정취가 고아(古雅)하다.

「오주대조어음(鰲洲臺釣魚吟 世事不須問 悠然心自閑 手持一竿竹 來往滄波間『鰲洲遺集』卷1「詩」
)」에서도,

 “세상일 굳이 물으랴/ 유연하니 마음 절로 한가하네/ 손엔 낚싯대 쥐고/ 창파 간을 오가며 노네”

라고, 읊었다.
  번잡한 세상일에 관심을 두지 않고 초연하게 자연에 묻혀 한가하게 유유자적하는 자세가 돋보인다. 거센 물결치는 현실 사이를 오가며 사는 은자의 청빈한 삶에서 무엇을 더 바랄 수 있겠는가?

山中秋正晩(산중추정만)  산중의 가을 정히 늦은데
旅雁亦南飛(여안역남비)  길 떠난 기러기 또한 남으로 나네.
學稼難爲食(학가난위식)  농사일 배워도 먹기 어렵고
迎寒未暖衣(영한미난의)  추위 맞아도 아직 솜옷이 없네.
孤松撫屈軼(고송무굴질)  고고한 솔은 굴질을 어루만지고
殘菊愛芳菲(잔국애방비)  쇠잔한 국화는 꽃다운 향기 아낀다네.
物我宜歸盡(물아의귀진)  물아가 다 이치대로 돌아갈 일을
何勞問是非(하로문시비)  어이 수고롭게 시비를 가리랴.

 「추일우음(秋日偶吟)」『鰲洲遺集』卷1「詩」
 이다. 자연의 순환은 변함이 없다. 그 속에 살고 있는 가난한 선비의 생활이 아리게 다가온다. 농사를 지어도 먹기 어렵고, 추위가 오는데도 따뜻한 솜옷이 없는 청빈한 생활이 안타깝다. 그러나 추위를 이겨내는 굽은 솔과 남은 향기를 아끼는 국화를 통해 고고한 지절의 자세는 물론 시비를 가리지 않고 대자연의 이치와 함께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이상경(理想境)을 보여준다.
  시언지(詩言志), 시는 뜻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때 위의「영국증경식」이나「추일우음」이 합치됨을 보여준다. 그것은 본래적 자아에 대한 인식이자 자기 갱생의 의지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1. 박약회상주지회,『웅주전고(雄州典故)』, 1998.
2.『영남인물고』
3. 권태을,『상주한문학』, 상주문화원, 2001.
4.『상산지』
5.『경북향토자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