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학/동시

내가 쓴 동시 1997년 분

빛마당 2007. 10. 15. 10:46
 

길 찾기

길은 늘 그 자리에 열려 있지만

 참 이상하지

 수수께끼나 스무고개처럼

 드러나지 않는 미로

 몇 번을 물어야 찾는가

 몇 고개를 넘어야 보이는가

 때로는 지도를 펴고 헤매기도 하고

 때로는 나침판을 들고

 힘겹게 높은 산을 오르기도 한다

 땀흘려 얻은 것이 귀하지만

 몇 발자국 내딛다 주저앉는

 한 두번 살피다가 되돌아 가는

 많은 사람들

 얼마나 헤매다 찾았을까 뉴턴은

 사과나무 밑에서 찾아 낸

 만류인력의 법칙

 이천 팔백 번의 실패를 딛고

 밝은 빛 전등을 찾아 낸

 에디슨을 보면

 오늘도 길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누구나 찾는 이를 위해

 늘 열려 있는데

     97.5. 21


 비

침묵하던 하늘이 말씀을 하고있다.

 어떤 모습, 어떻게 살아야 하는 법

 잔잔한 숨결로

 나직한 속삭임으로

 때로는 성난 음성으로 몰아치기도 하는

 하늘의 말씀.

 산과 들과

 풀과 나무는 벌써부터

 온 몸을 맡기고 있다

 무엇으로 열어야 하는가

 귀를 열어야 마음의 귀를 열어야

 들을 수 있는

 비밀스러운 하늘의 말씀

    1997. 6. 20


   전화

“여보세요?”

 “응, 나야.”

 줄을 타고 떠나는

 설레임의 여행

 보이지 않는 기쁨이

 보이지 않는 가슴으로

 번지는 물 무늬

 많은 말보다 따스한 마음이

 침묵 속으로 서로 얽히고

 “이제 안녕!”

 “그래 안녕”

 전화기 위로

 하늘의 별들이 내리고

 아쉬움이 수화기 속에서

 퍼지는 박하향

    1997. 6. 20


기다림

길목에 선다.

길어지는 목

마음은 분수가되어

하얗게 피어오르는 물보라

가슴속에서 

안개꽃이 핀다.

작은 새소리에도 눈이 열리는가

이름 모를 새들의 몸짓에도

인사를 하고싶고

하늘을 향해

비누방울을 날린다.

머리 위로

펑펑 터지는 무지개, 무지개

      1997. 6.28


     낚시터에서

큰산도 심심한지 물 속으로

 발을 담근다.

 고개만 내민 채 숨어 앉은

 낚시찌

 바라보는 눈가로 시간이 졸고 앉았지만

 ‘깜-빡’

 순간의 손놀림이 물결을 당기면

 낚싯대 끝에 전해오는

 팽팽한 떨림

 가느다란 은빛 낚시 줄

 작아도

 살아 있는 생명이 당기는

 거부의 몸짓

 물결을 일구는 작은 지느러미의

 힘살을 따라

 호수가 끌려온다

 물 속에 잠긴 산도 함께 끌려온다.

            1997.  9. 12


        11월

팔이 저리도록 무거운 열매들을

 제자리에 내려놓고

 나무는

 이제 빈 손으로 서있구나

 가지가 휘도록 꽃피우고 열매맺고

 더 높이 더 넓게 내닫던

 계절의 끝자락에서

 비에 젖고

 바람에 시달리면서도

 아쉬워 놓지 못하던 모든 것

 오늘은 홀가분하게

 내려놓았니?

 버림에 대한 아쉬움과

 빈 손에 대한 허전함이

 아픔으로만 가슴에 남는 줄 알았는데

 내려놓음이 이토록 편안한 것을

 겨울의 긴 터널을 기다리며

 네 몸에 그어야 할 또 하나의 나이테를 위해

 너는 저리도 조용히 서서

 손을 모으고 섰구나.

                   97.11.28


          11월

 

산은 참 넉넉해

 이맘 때가 되면

 산의 가슴에 뿌리를 둔 산의 식구들

 한 해의 열매들을

 조용히 산에다 묻는다.

 풀꽃이 달고 섰던 열매도

 떡갈나무가 내려놓은 도토리들도

 작지만 모두

 하늘의 무게이구나

 해님의 무게이구나

 흰 머리카락 흩날리며 선

 억새풀의 빈 손을 보면서

 지구보다 더 무거운 가슴을 보듬는다

 산은

                97. 11. 28

  

  새와 나무

유리알 하늘로

 나무들이 손을 기지개를 켜는 아침

 앙징스러운 나무의 손가락들이

 햇살에 투명한데

 “뾰로로-ㅇ”

 아침을 노래하는

 한 마리 새

 나무의 어디를 건드렸는지

 나무의 손가락들이

 하늘을 향해 일제히

 건반을 누르고 있다.

 하늘에서 아름다운 노래로 내리는

 “뾰로로-ㅇ”

 “뾰로로-ㅇ”

 나무가 노래하는

 새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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