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 ‘모두가 다 그래도 ..’
따뜻한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저만치 해질 녘 노을빛으로 저무는 가을을 보내고 있습니다. 찬란하던 여름 그 싱싱한 은행잎들이 행선지도 모르는 바람에 실려 우르르 몰려가고 있습니다. 은행잎들이 구르는 길을 따라 이내 겨울이 찾아오겠지요.
참으로 짧은 시간, 다가 왔다 떠나는 계절을 환송하면서 오늘 받은 한 통의 전화를 생각합니다.
“모두가 다 그래도 선생님은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어쩌면 원망 같기도 하고 간절한 부탁 같기도 한 그 분의 마지막 말이 좀처럼 가슴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원망이나 아니면 부탁이어도 둘 다 내겐 얼굴 붉히는 송구함과 민망함뿐입니다.
“글 쓰는 일이 목적이라면 다른 일은 이 목적을 이루게 하는 수단에 불과하죠. 수단이 본질을 훼손시켜서야...”
우린 서로에게 시간을 나누어 주며 이야기 했습니다. 다행이 우리의 대화는 공통분모를 함께 맞추었고 서로가 공감을 했습니다.
그러나 며칠 후 들리는 소식은 우리가 공유했던 그 공감의 중심에 날카로운 금을 발견했습니다.
“목적이 좋아도 서로의 이해관계가 부합되어야 된다고 하니 저로서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내가 다시 그 분에게 확인 전화를 걸었을 때 나도 모르게 바람이 일고 있었습니다.
원래 인간관계란 참 어려운 것이지요. 개인과의 관계도 어렵지만 개인과 단체, 단체와 단체와의 관계는 더 어렵습니다. 여기에 소통을 가로막는 요소는 역시 ‘이해관계’라는 것임을 발견했고 이 벽은 순수한 목적으로도 무너뜨리기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내 주변의 사람들이 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나도 순수한 것을 들고는 만나지 않겠다고 독한 말을 해버렸습니다. 이 때 그분의 마지막 말이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모두가 다 그래도 선생님은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저분은 나의 무엇을 믿었기에 마지막 말에 힘을 주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앞으로 내 언행이 저분의 믿음을 무너뜨리는 단초가 된다면 나는 정말 부끄러운 사람이 됩니다.
“항상 자신을 다른 사람의 입장에 두세요. 만약 당신의 마음이 상처 받았다면
아마, 다른 사람도 상처 받았을 겁니다.”
어느 분이 보낸 편지 한 토막을 붙잡고 있습니다.
창밖으로 계절은 나를 홀로 남겨두고 저리 빨리 가고 있는데 나는 이 말에 발목이 잡혀 아직도 부끄러운 얼굴로 자리를 떠나지 못합니다.
2009. 11. 5
'나의 문학 >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237. '감사'라는 말 (0) | 2009.11.21 |
---|---|
236. 맞장구치기 (0) | 2009.11.07 |
234. 길을 가다가 (0) | 2009.11.07 |
232. 받침 돌 (0) | 2009.11.07 |
231 분수(噴水) (0) | 2009.1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