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거축덕(隱居蓄德)한 판곡 성윤해
김 정 찬*
성윤해(成允諧)의 생몰년대는 미상이다. 본관은 창녕이고 자는 화중(和仲)이며, 호는 판곡(板谷)이다. 참봉 근(近)의 아들이다. 원통산(圓通山) 밑에 집을 짓고 서책과 자연에 묻혀 일생을 보냈는데, 만년이 된 1583년(선조 16)에 이이(李珥), 정지연(鄭芝衍), 이후백(李後白) 등의 추천으로 왕자사부, 태인현감 등의 관직이 내려졌으나 모두 취임하지 않았다. 조헌(趙憲)의 상소에 숨은 선비 중에 언론과 풍지(風旨)가 바르고 굳센 최고의 인물이라고 평가되었다.
주학 제독관으로 제수된 조헌이 붕당의 시비와 학정의 폐단을 논한 상소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성윤해를 논하자면 그는 당대 일민(逸民)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입니다. 언론과 풍지(風旨)가 고고(孤高)하여 감히 자신의 결백한 지조를 바꾸지 못하였는데, 시론(時論)의 변란을 듣고 강개하다가 병이 중하여졌으니, 살아서 국가의 원로를 초치하여 기용하는 것을 받지 못하고 죽어서는 왕관(王官)의 대열에 끼지 못하였습니다.
상주의 봉산서원(鳳山書院)과 물계의 세덕사(世德祠)에 제향되었다. 소재 노수신이 성윤해에게 보내준 시에,
字爲和仲姓爲成(자위화중성위성) 성씨이고 자는 중화인데
才降于天運不亨(재강우천운불형) 타고난 재주였지만 운은
통하지 않았다네.
安得與之成二老(안득여지성이로) 성씨 두 분과 함께
往來幽地儘無營(왕래유지진무영) 외진 곳을 오가며 세상사
무관하였다네.
라, 읊고 있다. 알려진 것처럼 천부적인 재능은 있었지만 불운하게도 벼슬을 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초간 권문해가 쓴 시에는,
草徑無媒久(초경무매구) 초목이 무성한 길 오랫동안 찾는 이
없구나
生涯一室中(生涯一室中) 그 분 생애는 이곳에 있는데
谷深松翠合(곡심송취합) 동네는 외지고 소나무만 무성한 곳에
春去衆花空(춘거중화공) 봄이 지나고 온갖 꽃도 다 시들었다네
라 하여, 판곡의 쓸쓸한 정경과 그곳에서 지내는 생애를 읊고 있다. 그윽하고 외진 곳이라 소나무만 무성하고 마침 봄이 지나가 모든 꽃이 시들어진 모습을 그의 인생에 빗대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판곡 성윤해의 문집이 공개되지 않아 많은 자료는 찾을 수가 없다. 지금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가장 유명한 글은 그의 한시이다. 매화를 노래한 시말이다. 그 내용을 보면,
梅花莫嫌小(매화막혐소) 매화꽃이 작다고 탓하지 말라
花小風味長(화소풍미장) 꽃은 작아도 그 풍미는 뛰어나네
乍見竹外影(사견죽외영) 잠깐 대숲 밖에서 그림자 보고
時聞月下香(시문월하향) 때로는 달 아래서 그 향기 맡네
라 하여, 매화를 노래했는데 주 내용은 매화가 작아도 풍미는 뛰어나다라는 말이다. 그런 매화를 좋아하는 자신의 삶은 어떤 삶인지 알 수 있게 해 주는 시인 것이다. 드러내지 않고 은거하며 세상에서 벗어난 채 살아가는 전형적인 은사였던 것이다. 판곡 성윤해가 죽고 난 다음 그의 제자인 김안절이 쓴 제문을 보면 좀더 자세하게 그의 삶을 알 수 있을 듯 하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훌륭하십니다 선생이시여! 천품이 순수하셨지요. 순정한 학문은 그 근원이 있고 문장이 뛰어난 명분있는 집안으로 큰 덕을 가진 분들을 배출하였다네. 성제원과 성수침, 와기와 대곡 이 분들이죠. 상서로운 일의 조짐이 되는 별이 모두 모였지만 이곳에서 가업을 승계하셨다네. 어릴 때부터 명성과 재능이 뛰어났고 학문을 찾아 토론하며 애써 실천하여 명성이 사방에 퍼졌다네. 경전을 교정하여 모든 이치를 명확히 분석하였다네. 사물의 핵심을 파악[강거]하여 모두를 거느리고 엄정하고 명백하였다네. 업적은 아주 높아 모든 것은 준비하여 구하였다네. 궁구한 것은 그 조예가 지극하고 혼자서 모두 할 수 있었다네. 그 덕량은 넓고도 컸고 지식도 또한 그렇다네. 바닷물이 온 천지 물을 수용하듯 하였으나 잘난 체 하지 않았다네. 어질고 효도하며 우애 있고 공경하여 상쾌하게 분명히 하였다네. 온통 화락하여 유학자의 본보기를 펼쳤다네. 정당함과 선함을 갖추고 궁구하여 실천하였다네. 세상과는 생각이 달라 그 뜻을 키우기만 할 뿐 드러내지 않았다네. 원통산 아래에서 지내시며 몇 칸의 띠로 만든 집과 작은 밭뙤기와 연못을 만들어 놓고 국화와 대나무로 겨울이면 더욱 의지를 굳게 하였다네. 깊은 산속에서 학이 우니 그 소리가 하늘에까지 들리는구나. 조정의 부름을 받았으나 더욱 은거하시며 공자와 주자의 글로 태평시대의 편안한 백성으로 지냈다네. 소박하게 살아도 흥이 나니 자연에서 유연하게 지내셨도다. 남을 걱정하는 것을 자신의 낙으로 삼고 천수를 누리다 가셨다네. 도덕이 성취되어 현명하고 정숙하다고 칭송한다네. 재주는 뛰어나나 운수가 막히니 훌륭한 친구들이 안타까워한다네. 나는 어릴 때 터벅머리로 찾아 인사드렸다네. 돌아가신 아버지와는 오랫동안 계를 하시며 친한 사이었으며 서로 도와주는 친구사이로 지란지교(芝蘭之交) 같았다네. 산림에서 덕을 쌓은 채 공정한 삶을 살았다 할 만하다네. 오직 의탁하여 어버이처럼 의지하였다네. 7년을 모시면서 외람되게 가르침을 받았다네. 명도가 남쪽을 가리키니 애쓰고 더욱 근면하게 되었다네. 나는 실로 어리석고 못났는데 위기지학(爲己之學)으로 가르침을 받았다네. 순순한 그 말씀은 더욱 시대사에 미치니 오직 맹문과 태항의 험난함을 말씀 하시며 너는 나를 따라 기쁨으로 돌아가자고 하셨다네. 날로 더욱 기약하여 영원히 거슬리지 않았다네. 하늘이여 어찌 돕지 않으십니까? 갑자기 병에 걸려 삼 년 동안 누워 지내시면서도 도서를 걸어 놓으시며 간혹 지팡이를 짚고 기수에서 바람쐬며 병이 나으면 학업의 완성을 보시자 하셨습니다. 시론에 걱정이 많으셔서 병이 더 심해졌습니다. 하루 저녁에 산이 무너졌습니다. 만사가 끝났습니다. 그 누가 나의 병을 바로잡아 주며 그 누가 나의 의심을 풀어주겠는가?
아, 선생이시여. 어쩌다 여기에 이르렀습니까? 나아가 시행하지 못하고 물러나 전수를 못 하셨다네. 가난하여 죽어서도 덧널이 없고 아들이 없어 조카가 대를 이었다네. 태연하게 거처하시며 일생을 궁하게 지내셨다네. 돌아가시니 하늘의 이치가 망극합니다. 장례 지내는 날이 다가와 의복을 갖추고 모였습니다. 한 잔의 술로 정성스레 올립니다. 통곡하며 만고의 긴 말을 해 봅니다. 산과 계곡이 울부짖고 바람과 구름이 슬프게 보입니다. 아 슬픕니다 흠향 하옵소서.
백호전서에 ‘대곡선생의 언행록 후미에 쓰다’라는 글이 있다. 대곡 성운의 평송 언행을 판곡 성윤해가 모아 기록한 책의 끝에 백호 윤후가 훗날 기록한 것이다. 여기에는 ‘이 언행록은 대곡 성운의 평소 언행들을 판곡(板谷) 성윤해가 모아 기록한 것이다. 선생은 도덕을 품고서 세상을 은둔하여 남이 알아주기를 구하지 않고 호서(湖西)의 속리산(俗離山) 아래 은거한지 거의 50년이 다 되어 작고하였는데, 작고한 뒤에도 선생의 언행을 포양할 문인이나 자제가 없어 이 때문에 언행이 크게 드러나지 못하였다. 다행히 이 언행록이 판곡 성공에게서 나왔는데, 성공은 바로 선생의 조카로서 율곡(栗谷)이 문성공(文成公)으로부터 ‘재덕(才德)이 있는 일민(逸民)’이란 칭찬을 받은 사람이니, 그의 말은 진실로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편들어 말한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기록한 효우(孝友)의 행실과 독립(獨立)의 지조와 사수(辭受)의 절개와 진퇴(進退)의 의리와 학문(學問)의 공과 진수(進修)의 방법이 모두 후세의 법이 될 만하거니와, 묘지(墓誌)의 문자에서 선생의 덕행을 형용해 놓은 것들은 말에 조리가 있고 질실하여 화려하지 않으니, 이것이 또 충분히 학자들에게 전하여 ‘먼 후세에까지 보일만 하다.’라는 내용이 있다.
판곡 성윤해는 경재(敬齋) 근(近)의 아들이요, 전한(典翰) 부정(副正) 세준(世俊)의 손자이다. 계부(季父)는 대곡 성운이다. 우계 성혼과는 재종(再從) 간이다. 판곡은 19세 때 상주화령현 판곡리(板谷里)에 우거하였고, 만년에 화령 원통산(圓通山)에서 은거하였다 한다. 두 번이나 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이율곡 등이 천거하여 태인현감에 특진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현재 상주 봉산서원(鳳山書院)에 봉향(奉享)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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