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종가음식 문화에 대한 소고
경북대학교 식품외식산업학과 박 모 라
목차 1. 서언 1) 종가음식의 정의 2) 종가음식 연구현황
2. 경상북도 종가음식문화 1) 1900년대 이전 2) 1900년에서 1980년대 3) 1980년 이후
3. 결론 및 제언 |
1. 서언
종가란 ‘한 문중에서 맏이로만 이어온 큰집’으로, 부계를 중심으로 혈족의식이 토대가 되어 영구적으로 계승하고자 하는 관념에서 형성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종가라는 용어가 보편화된 시기는 조선중기이후로 성리학을 바탕으로 한 유교의 종법제도가 확산된 18-19세기로 추정되며 종가의 역사는 길어야 300여년 정도로 보고 있다. 종가를 유지하는 근원에는 불천위의 대상인 종宗시조가 있다. 즉, 그의 후손들이 종가의 정체성을 불천위 선조의 유지로 이어받고, 강화하며, 지역 세력으로 성장하면서 사회구조적 측면의 한 몫을 담당하였기에 종가로서 명분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으로 사려 된다. 그러나 종가는 조선의 몰락과 일제강점기, 내전, 산업화를 거치면서 지역사회의 구조적 역할이 약화되면서 결속력도 흩어져 21세기 현재, 명색만 남아 있고 그 명분은 쇄락한 종가가 계속 증가하는 추세이다. 특히 세계화의 급물살아래 자신의 정체성을 성찰할 여유도 없이 달려온 20세기의 후손들은 물질만능주의와 자본주의의 교육철학 앞에 함몰되고 붕괴되어 종가의 보존과 존속에 큰 의미를 찾지 못한 체 범세계화의 사회 환경에 직면하게 되었다. 또한 사회적으로 만연한 비도덕적・비윤리적 사회범죄의 다양한 형태는 우리사회의 정체성 부재와 윤리성의 회복이 시급함을 시사한다. 이에 21세기 선진국을 향한 초입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한 문화’의 유지와 전승을 위해 우리의 정신문화에 대한 재조명이 무엇보다 필요한 과정이다. 그의 일환으로 종가연구는 조선왕조 500년과 그 후 100년의 근대화 과정에서 ‘한 문화’의 정체성에 정신적・물질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바 의심할 여지가 없으므로 종가를 키워드로 한 다양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이에 본 고는 경상북도 종가의 음식문화를 고찰하기 위해 경상북도 종가가 보유하고 있는 고조리서를 고찰하고 현존하는 종가를 대상으로 종가음식에 대해 인터뷰를 하였기에 그 결과를 보고하는 바이다.
1) 종가음식의 정의와 한식의 정체성
경상북도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종가와 종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어 우리생활문화를 이해하는데 주요한 자원이 되고 있다. 이에 종가문화에 대한 연구가 고문헌, 건축, 종법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진행되어 상당한 성과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종가의 음식문화에 대한 연구는 고古 서적이나 식기 등 유물적 자료가 부족하고 음식문화에 대한 이해가 형성되지 않아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최근 한식의 세계화는 한식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종가의 음식을 한식의 원형으로 담론화하고 우리나라 음식문화의 체계화와 홍보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더불어 우리나라 조선시대 종가의 음식을 설명하는 음식디미방, 수운잡방과 같은 고조리서가 경북 종가에서 발견됨에 따라 경북의 종가음식문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더욱 증폭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종가음식의 정의와 범주에 대한 논의가 학계와 종가문화 연구에서 대두되기 시작하였으며 특정종가의 음식을 관광상품화 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는 현실이다.
한편 종가음식에 대해 장기간 조사하고 있는 농업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에서는 한식의 원형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음식이 서울의 반가음식이고, 현재까지 반가음식문화를 가장 많이 간직하면서 명맥을 이어 오고 있는 곳이 서울지역 종가의 반가음식이라 하였다. 그런 이유로 한식의 원형은 서울의 반가음식이라 정의하였다. 그러나 음식문화는, 특히 교통이 발달하지 못한 근대이전에는 지역의 식재료나 자연환경, 지역적 정서 등 여러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으므로 서울지역 외 타 지역에서는 향토음식문화가 지역의 한식문화로 자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또한 우리나라는 조선시대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서울지역의 식생활 환경이 지방의 식생활 환경보다 더욱 급속하게 변화되어 왔음으로 지방의 음식문화보다 서울지역의 음식문화는 시대적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자유롭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식의 원형을 서울지역 반가에 국한하여 운운하는 것은 더 많은 연구와 검증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특히 경상북도의 종가들은 이미 조선시대 재지사족의 유림학파가 서울과 교류하면서도 별도의 독자적인 학풍과 지역의 전통을 문중의 절대적 가치로 신봉하며 최근까지 고집스레 조선시대의 문화적 양식을 최대한 고수하여 왔음으로 경상북도의 종가음식문화에서 한식의 전통적 원형을 찾는 것이 오히려 합당하다고 할 것이다. 즉 경상북도의 종가들은 서울의 반가음식문화도 수용하면서 지역의 음식문화을 이끌며 유지한 것으로 추측됨에 따라 경상북도 종가음식은 포괄적으로 우리 음식문화를 보유하며 시대에 따라 진화한 한식의 원형으로 거론되는 것이 오히려 타당성이 있다고 사려 된다. 그 일례로 종가의 의례음식문화는 지역의 음식문화와는 달리 가가례家家禮에 의해 유지되고 전수되어 왔기에 범지역적 특성을 지닌 점도 한식의 원형으로서 경북의 종가음식을 간과할 수 없는 이유가 될 것이다. 따라서 지역의 음식이 한식의 원형이 될 수 없다는 논의는 추가적인 검증과 학술적 합의가 필요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종가음식문화의 보수성에도 불구하고 지난 1세기 한국사회의 식생활 환경은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급격한 변화를 맞게 된다. 식생활의 서구화에 따른 식문화의 가치변화와 과학적 영양교육이 미친 조리법의 변화, 새로운 식품의 등장 등은 한식문화의 근간根幹을 움직일 만큼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왔다. 이에 종가음식문화에도 새로운 가치정립이 필요하게 되었다. 김미영은 종가란 불천위를 모시고 시호諡號를 받으며 문묘 및 서원에서 배향하는 현조가 있는 집안이 종가로서 자격을 가진다고 하였다. 그리고 주영하는 21세기형 종가음식은 종부가 현재 종택에 거주하고, 일정기간 종가의 내림음식교육을 받으며, 음식문화의 기본적 품목인 장류, 식초류, 주류, 채소절임 등 기본 음식을 종택이 있는 지역의 식재료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전제조건을 제안하였다. 더하여 지역의 식재료가 아닌 경우를 제외하고는 종가가 직접 수확하여 사용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오늘 날 종가는 직접 식품을 가꾸고 수확하는 일이 쉽지 않다. 또한 지역의 식재료 역시 시대적 변화에 따라 변화되어 왔고 또 일부 타 지역의 특산물은 원거리에서 조달되어 시절음식으로 즐겨 음복할수도 있었으므로 종가음식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은 범주에서 재정리할 수 있기를 제안한다.
첫째, 종가음식은 현재의 종택에서 상용하고 있어야 한다.
둘째, 3세대 이상 종가에서 상용한 음식이어야 한다.
셋째, 종부가 그 음식을 전통조리법에 근거하여 조리하고 제조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종가문화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2) 종가음식 연구현황
종가음식문화에 대한 연구는 주로 불천위제례음식에 대해 보고되고 있다. 이는 종가음식문화가 현대화의 합리주의에 퇴색되고 변형되고 있다는 긴장감에 한시라도 그 원형을 기록하고자 진행된 연구이다. 특히 경상북도의 종가는 전국에서 불천위제사가 가장 많고 그 방식에 있어서도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고 있어 학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음식문화적 측면에서도 제수품목은 시대적 식생활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수백년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는 경향이 있어 민속학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하겠다. 이에 국립문화재연구소, 농업과학기술연구소, 영남문화연구소, 한국국학진흥원 등 기관 및 연구소중심의 불천위 제례에 대한 실태조사와 기록들이 보고 및 진행되고 있다.
종가음식문화는 일반적인 음식문화연구와는 달리 음식의 식재료에 대한 연구가 주 主가 될 수 없다. 한 집단에서 통용되는 음식문화는 집단의 사회적 구조나 자연적 조건, 경제적 환경, 가구구성원의 내부적 관계 등 복잡하게 얽혀 형성되고 유지되어 관습화되기 때문이다. 이에 윤숙경은 안동지역의 불천위제례음식에 대한 실태연구에서 비록 불천위 제수품목이 규정화되어 있다하여도 선현의 유지에 따라 불천위제수품목이 조정되어진다고 보고하였다. 또한 권용철은 ‘종가와 명가음식의 계승발전 및 지역활성화’ 심포지움에서 종가의 음식이 혼반에 의해 시대흐름에 따라 유사해질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특히 경북북부지역의 종가는 혼반에 의해 문화적 교류가 강화된 관계로 제례음식, 접빈객음식, 혼례음식 등 특별한 음식들을 제외한 일상음식은 더욱 유사해졌다고 하였다. 따라서 종가음식문화에 대한 연구는 음식자체의 조리법, 재료 등 물리적 기록화도 필요하겠지만 혼반에 의한 문화적 교류를 감안한 음식문화의 변화과정도 연구가 필요한 것으로 사려된다.
한편 유네스코가 음식문화를 무형자산으로 처음 등재시킨 2010년에는 ‘프랑스 미식문화’, ‘그리스, 모로코, 스페인, 이탈리아의 지중해식 식단’, ‘멕시코의 전통요리’ 북크로아티아의 생강빵 제조기술’ 등이 등재되었고, 2011년에는 ‘터키의 케시켁’, 2013년에는 ‘한국의 김장문화’, ‘일본의 와쇼쿠, 전통 정월음식문화’, ‘그루아지아의 전통 와인제조법’, ‘터키의 커피문화와 전통’이 등재되었다. 유네스코는 특정집단의 음식문화는 그 집단의 정체성을 이해하는데 매우 주요하다고 하고 공동체의 지속성과 관련성이 있다고 하였다. 이에 종가문화에서 음식디미방을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에 등재하고자 하는 활동과 종가의 불천위제사를 유네스코 무형문화재로 등재하기 위한 활동들이 활발하게 추진 중이다.
이상의 연구들을 분석하면 종가음식문화의 연구는 물성학적 연구보다 문화사적 관점에서 연구가 강화되어야 할 것으로 사려 된다. 연구대상도 음식자체에서 그 음식이 함의하는 정신문화적 역할까지 다각적 측면에서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한편 종가음식문화 연구는 음식문화의 세계화에 대비하여 한식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것이며 한식의 문화에는 종가의 정신문화, 즉 종가의 철학이 깊이 내재된 음식문화임을 체계화하는 연구가 될 것이다.
2. 경상북도 종가음식문화의 특징
우리나라의 식생활 문화는 1900년대 일제강점기를 기점으로 개방화에 따른 급격한 식생활 변화가 진행되었다. 그로 인해 오늘 날 관혼상제의 음식과 세시풍속의 음식 등은 1900년대 이후 사회경제적 환경과 근대화이후 현대의 합리주의 사조思潮에 밀려 그 명맥을 유지하기에도 급급한 현실이 되었다. 따라서 경북종가의 음식문화도 우리나라의 식생활 환경변화를 고려하여 1900년 이전, 1900년에서 1980년 이전, 1980년 이후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물론 물질적으로 식문화의 큰 변혁을 가져 온 사건, 즉 고추의 유입, 양조간장의 유입, 밀가루 원조 등 우리나라 음식문화에 큰 변혁을 가져온 사건들이 있으나 본 고는 종가음식을 현존하는 종가음식에 준해 비교하고 그 정신적 가치를 살펴보고자 하였으므로 식품사의 변천에 따른 종가음식문화와는 구별하였다.
1) 1900년대 이전 종가음식문화
1900년 이전 우리나라의 음식에 관한 문헌은 많지 않으나 농서農書, 식품 가공서, 구황서 등 일부 식경서食經書가 존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시대 이전의 기록은 유물로 남아 있지 않고 조선 중기이후 비로서 식품이나 음식을 기록한 전문서적이 유물로 발견되었다. 즉 1500년대 수운잡방을 위시하여, 1600년대 도문대작, 요록, 치생요람, 1700년대 역주방문, 온주법, 산림경제, 증보산림경제, 수문사설, 1800년대 임원십육지 등 남성들이 쓴 식품과 음식관련 서적이 발견되었다. 하지만 이들 서적은 주로 남성이 집필한 것으로 식품과 음식에 관한 내용들이 중국문헌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 많았고 한자로 집필되어 한문을 읽을 수 있는 남성을 위주로 한 서적이다. 이에 여성이 언문으로 집필한 한글조리서 음식디미방(1670년경)이 발견되고 주방문(1600년대), 음식보(1700년대), 술 만드는법(1700년대), 규합총서(1815년경) 등이 발견되면서 조선시대 반가의 음식문화를 이해하는데 큰 전환점이 되었다.
고조리서 중 경상북도에서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서적은 광산김씨 종가에서 보유한 우리나라 최초의 고조리서 ‘수운잡방’과 재령이씨 종가의 종부 장계향이 집필한 최초의 한글조리서 ‘음식디미방’이다. 두 서적의 목적은 집안의 음식문화를 후손들에게 가르치고자 하였음이나 집필자가 남성과 여성이라는 점에서 서적은 내용은 확연하게 구분되어 진다. 즉 수운잡방은 남성이 집필함에 따라 접빈객 및 의례에 빠질 수 없는 주류에 중점을 두어 전체 음식에 반 이상을 차지하며 기본 조미인 초醋류와 장류, 김치류 같은 기본음식의 조리법을 다루고 있다. 이에 비해 음식디미방은 여성이 집필함에 따라 순수 음식 조리서로서 그 음식의 분야도 주식, 찬류, 후식, 주류, 초류 등 보다 광범위한 음식의 항목을 다루고 있다. 특히 종부가 집필한 조리서이기에 접빈객을 위한 다양한 일품형태의 부식이 돋보인다. 예를 들면 붕어찜, 해삼찜 등과 같은 찜류와 가지누르미, 동아누르미 등과 같은 누르미류, 잡채, 대구껍질채 등과 같은 채류는 오늘 날 한식의 조리법 근원을 이해하는 주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음식디미방에 소개된 음식들이 당시 유교문화속에서 일상적인 음식으로 통용되기에 너무 사치한 부분이 있어 정부인 장계향이 체험한 음식의 세계를 기록하는데 더 큰 의미를 둔 것이 아닌지 문헌의 내용에 대한 고증과 분석이 필요한 것으로 사려 된다.
한편 경상북도의 고조리서로 집필년도가 18세기 무렵으로 추정되는 작자미상의 『온주법』과 『시의전서』가 있다. 『온주법』은 의성김씨 청계종가에서 발굴된 서적으로 필자와 집필연대가 확실하지 않아 그 소유를 운운할 수 없고, 『시의전서』 역시 필사본으로 1919년경 상주군수로 부임한 심환진이 상주군청의 편면괘지에 당시 반가에 소장된 조리서를 필사하여 그의 며느리 홍정에게 전하여 오늘에 공개된 것이므로 원본을 확인할 수 없어 경상북도의 고조리서로 확정함에는 무리가 있어 연구대상에서 배제되어 있다. 그러나 다른 고조리서와 달리 『시의전서』는 18세기말까지의 조선시대 식문화를 이해하는데 주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는 『시의전서』 안에 조리법뿐만 아니라 상차림과 음식의 사용시기 등 다양한 식사예절의 내용이 포함되고 있어 한식문화의 근원을 정립하는데 주요자료가 된다. 그럼에도 혹자는 『시의전서』의 식사예절은 18세기 후반 문란해진 반가의 음식문화를 가감 없이 담고 있어 음식이 권력이나 부의 상징으로 이용되었다는 지적이 있으며 『시의전서』의 반상차림이 한식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이상의 경상북도 고조리서에서 기록된 음식으로 오늘 날까지 비교적 온전하게 종가에서 전해지는 음식은 육회, 문어숙회, 장류, 김치류, 병과류, 음청류 등이 있으며 그 중 육회와 문어숙회는 종가의 접빈음식으로 대표적이라 할 것이다. 즉 육회와 문어숙회는 안동지역 종가에서 ‘육회와 문어숙회가 없으면 잔치음식이 아니다’라고 할 만큼 종가에서 전래傳來되어 왔다. 이는 1900년 이전 안동지역 종가음식문화에서 소고기와 문어의 사용목적과 빈도를 가름하게 한다. 재언하면 음식류 중 ‘회류’는 신선도와 위생적 처리가 까다로워 고급음식이고 오늘 날까지도 귀한 식재료로 취급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소고기는 조선시대 농사를 위한 필수품목이라 한 때 ‘우금령’을 내려 국가에서 관리하였고 문어는 해안가와 떨어져 있어 안동지역에서는 특별히 주문하고 챙겨야 하는 식재료이다. 그러므로 안동지역의 종가에서 육회와 문어숙회를 잔치에 사용하였다고 하는 것은 먼 거리를 마다하고 방문하는 접빈객을 위해 종가의 예禮를 다 하고자 하였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같은 음식, 같은 상차림이라 할지라도 『시의전의』에서 보여 준 양반음식문화와 종가의 음식문화는 사용목적과 의도 등에서 명백히 차이를 가진다. 특히 경상북도의 종가는 현실정치와 거리를 둔 사림학파의 종가들이 많다. 유교의 정통성을 주장한 경북의 사림학파는 검약, 절제의 정신을 강조한다. 사람학파의 대표인 퇴계선생은 예법禮法의 중심이 되는 제사에서 유밀과가 사치하다 하여 당신의 제사에 금하도록 유지를 남겼다고 할 정도로 음식문화에서도 정신적 가치의 실현을 강조한 사례이다. 그러므로 경북의 종가는 특정음식이 종가의 상징이나 부의 상징, 권력의 상징으로 이미지화하는 것에 깊은 경계를 하였을 것으로 사려 된다.
음식문화는 시대적 구분없이 축적된 섭생攝生이나 사회적 변화와 더불어 변질, 진화되어 간다. 그러나 식문화의 본질이 정치적 제도나 사회적 혼란에서도 쉽게 변화되지 않는다.는 섭생의 원리를 감안할 때 종가의 음식문화는 정신적 가치를 부여함에 따라 변질과 진화를 거부하며 오롯이 종가만의 가가례에 준해 고유한 음식문화를 전승해 왔을 것이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의 억불정책은 고려시대의 다茶문화를 축소, 쇠퇴시켜 ‘차’는 사라졌으나 다식茶食이라는 음식은 접빈객의 다과상에 올려지는 의례의 음식으로 유지되어 와 오늘 날까지 종가의 다식문화는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따라서 종가문화의 정착이 조선중기라 할지라도 종가의 음식문화는 전통과 가통을 고수하고 내림으로 전수하고자 하는 식문화의 보수적 특성을 감안할 때 종가가 보유한 음식문화는 우리나라 음식문화의 정체성과 함께 진화되어 왔다고 해도 무방할 것으로 사려 된다. 따라서 1900년 이전 경북지역 종가의 음식문화에 대한 연구는 한식의 원형으로 정착하는 조선시대의 음식문화를 고찰하는데 주요한 근거가 될 뿐만 아리나 현대 한식의 정체성을 정립하는데 의미있는 자료가 될 것으로 사려된다.
뿐만 아니라 퇴계선생이 필사한 활인심방活人心方은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마음가짐과 생활습관, 운동법 등 건강을 위한 행위들을 기록한 것이기에 일상생활에서도 이에 준한 생활방식을 널리 권장하였기에 종가의 음식문화와의 관계도 고찰하여 한식을 체계화할수 있기를 기대한다. 또한 수운잡방에 소개된 술 중 일부는 약효를 소개하기도 하여 음식을 식료食療 및 식의食醫의 관점에서 관리한 점 등의 음식에 대한 가치부여는 조선시대 음식관을 이해하는 주요자료가 될 것이다.
2) 1900년에서 1980년의 종가음식문화
조선의 몰락과 일제강점기, 내전의 1900년 초중반의 시대는 그동안 축적된 우리 문화를 내림으로 전수하기 어려운 사회적 환경이 되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문화말살정책으로 종가문화가 더욱 위축되었다.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던 종가는 늘 일제의 감시 대상이었다. 특히 종가를 중심으로 문중이 결집하고 지역적 연대를 강화할 수 있음을 예의주시하여 기회만 되면 종가 탄압을 서슴지 않았다. 그 중 불천위제례는 지역과 문중의 정체성에 관계함에 일본으로서는 눈에 가시였다. 당연히 여러 방면의 방해공작을 계획하였을 것이고 음식분야에서는 그 대표적 공작이 양조이다. 술이 없으면 제사를 지낼 수 없음을 시사한다. 그 시대의 상황으로는 조상에게 올릴 술을 사서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는 현존하는 고령의 종부가 제사를 지내려고 일본인 몰래 밀주를 담가 숨겨놓았는데 이를 들켜 고초를 당했다는 증언들이 다수이다.
가양주의 쇠퇴는 시작에 불과하다. 독립운동으로 크든 적든 종가의 살림을 보탠 종가는 경제적 곤궁으로 가사생활이 어려워졌다. 접빈객에 대한 예를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하는 종가음식문화에 큰 위기가 닥쳐온 것이다. 심지어 불천위의 제수마련도 녹록치 않았다. 종부들은 온 몸으로 이 절대적 빈곤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 후 해방과 임시정부 등 혼란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종가문화의 재개再開가 미처 시작하기도 전前 6.25 전쟁이 발발하고 종가문화는 전쟁이 끝나기까지 근 50여년의 시간을 혼란으로 보내게 된다. 당시 평균수명이 50여년정도라 볼 때 1세대가 건너간다. 즉 1900년 이전의 음식문화가 일제강점기, 내전, 복구, 문호개방 등으로 단절된다. 그동안 궁핍한 종가경제는 최소한의 종가문화만을 유지한 채 현실적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1960년대 이후의 산업화와 도시화, 현대화는 종가문화의 복원과정에서 문화적 충돌을 피할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종손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종택을 비우고 도시근로자가 되어 수년간 도시생활을 하게 되고 문중에서의 종가에 대한 권한과 역할도 급격한 변화가 진행된다. 근대화와 더불어 종가문화도, 또 종가의 음식문화도 정체성 혼란과 문중 내의 관계정립은 세월 속에 밀려갔다.
그러므로 이 시기의 경상북도 종가음식 문화의 특성은 실제 본 연구팀이 경상북도 종가를 대상으로 음식문화에 대해 인터뷰한 결과로 요약하고자 한다. 다행히 이 시대의 종가음식문화를 설명할 수 있는 고령의 종부와 그 음식문화를 전해 받은 현 종부들이 조사에 임해 주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종가에서 1980년 이전은 경제적으로 어려워 음식문화도 매우 빈약하였다고 하였다. 그럼에도 종부는 종가에 누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종가를 위한 헌신과 수고를 음식으로 봉양하고 있었다. 이에 1980년 이전의 경상북도 종가음식문화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① 예禮의 종가음식문화
종가의 법도는 가문의 신분을 가늠하다. 그래서 종가에서는 접빈객에 대한 대접을 소홀할 수 없다. 종가의 접빈객 음식문화가 격변기의 식생활 문화 속에서도 그나마 명분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예의禮儀의 도리道理때문이다. 그러나 절대빈곤의 종가 살림은 접빈객을 위한 음식 장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구미의 P종가는 너무 살림이 어려워 맑은 물 한 사발을 대접하고 ‘가문 삶은 물’이라면서 접빈객에게 대접하였다고 하였다. 비록 물의 실물적 가치는 진귀한 음식들에 비해 소홀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예禮와 도道를 다하겠다는 종부의 진심은 가문을 대접한 최고의 접빈음식이었을 것이다.
② 효孝의 종가음식문화
효와 관련한 종가의 음식문화는 매우 많다. 1900년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과 관련해 옥고를 치르고 심신이 허약해진 시부媤父를 위해 타계하시는 그 날까지 평생 약상藥床이 떨어지지 않게 준비한 예천의 C종가 종부는 시부별세 후 치매를 앓은 시모 역시 8년간 봉양하였다. 문경의 N종가에서도 연로하신 조모를 위해 흰죽을 좀 더 기호에 맞춰 드리고자 흰밥을 참기름에 눌려 가면서 몇 시간동안 쌀 누름죽을 끓여 봉양하였다고 하였다. 그런 정성 탓인지 조부는 82세, 조모는 85세까지 장수하였다고 하였다.
③ 절제節制의 종가음식문화
욕망의 조절과 절제를 주장하는 유교는 음식에 대한 절제를 수양의 수준으로 평가하였다. 식재료를 구하려고 안달하지도 않았고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고 형편에 맞춰 드셨다고 한다. 식재료는 시장에서 구하기보다 산에서 들에서 종가의 담장에서 자연이 주는 그대로의 식재료를 활용하여 그때그때 만들어 드셨다고 한다. 안동의 Y종가에서는 그런 연유로 오늘 날까지도 아침상은 3찬 이상 차리지 않는다고 한다.
④ 화합和合의 종가음식문화
종가의 제사문화는 문중의 결속과 정체성을 함양하기 위한 종족宗族의 장이다. 그런 이유로 모든 종가에서 제사의례는 매우 진지하고 성의를 다해 모시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드린다. 당시는 교통편이 좋지 않아 종가의 불천위제례에 오는 손님들은 자연히 몇 일 동안 묵어 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종가는 문중을 찾는 접빈객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대접한다. 그런 까닭에 종가의 술과 안주상은 늘 화합의 장이되었다.
⑤ 나눔의 종가음식문화
종가를 이웃은 대다수 친족집단이다. 그러므로 각 종 대소사가 많았던 종가에서 품앗이를 하는 것은 동성촌에서 흔한 문화이다. 종가의 각종대소사에는 음식장만이 넉넉해야 한다. 접빈객을 위한 접대도 접대지만 품앗이의 품삯으로, 종가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접빈객들의 손에도 봉송封送을 쥐고 돌아가게 하였다. 종가의 이러한 반기살이문화는 나눔의 대표적인 음식문화이다. 오늘 날에서도 대부분의 종가에서 불천위제사의 참배나 봉송문화는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⑥ 치유治癒의 종가음식문화
예천의 C종가는 조부가 지역민이 평소 아파도 약재한번 재대로 먹지 못하는 사정을 알고 종가마당에 다양한 약초를 심고 지역민에게 약초를 나눠주고 그 효능도 교육하였다고 한다. 음식이 약이 되는 동원약식의 원리를 종가가 직접 솔선수범하여 지역민과 함께한 것이다. 이 종가에는 조부가 지역민을 위해 늘 약재를 준비한 약장이 있다. 현 종손은 이 약장을 보면 종가의 공터에 다양한 약초를 키우고 식용과 약용에 대해 아직도 지역민들과 종가를 찾는 접빈객들에게 소소하게 설명을 하신다. 종부는 이를 따라 약재로 만든 음식들을 접빈객과 외지인들에게 소개한다.
⑦ 애민愛民의 종가음식문화
문경의 H종가에서는 조부가 곡간을 열어두고 언제든지 지역민에게 쌀을 빌려주었다고 한다. 더불어 지역민이 끼니를 어렵게 하는 것을 보고 그들과 같이 저녁은 죽으로 끼니를 하셨다고 하였다. 지역민의 생활고를 함께 느끼고자 한 그 마음은 죽상을 받고 깊은 밤 고뇌로 보냈을 것이다.
3) 1980년 이후의 종가음식문화
1980년대는 우리나라 경제성장이 안정화하는 시기로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 등 각 종 국제행사가 진행됨에 따라 우리나라 음식문화의 현대화가 가속화한다. 또한 영양과학의 발달과 외식학, 미식학과 같은 학문은 음식문화에 대한 새로운 평가지표를 제시하였다. 그로인해 맛집의 열풍과 음식관광산업의 확산은 종가음식문화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특히 언론 및 TV 등 미디어는 종가와 종가문화, 종가의 음식문화에까지 일반인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충족시키고자 과도한 경쟁과 지나친 연출로 종가음식문화를 왜곡하기도 하였다. 이에 종가의 종부들도 종가의 음식을 소개하고 제대로의 대중화 교육 및 사회활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더불어 경상북도는 종가문화의 종주지宗主地를 자처하고 종가음식체험관을 위시하여 다양한 종가문화 복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본 연구자는 1980년대 이후 종가음식에 대해 언론과 미디어, 학계 등에서 거론되고 있는 종가음식 문화형태를 크게 고문헌 조리서 중심의 산업화현황과 실제 종가에서 실현하고 있는 종가음식들을 고찰하여 다음과 같은 결과를 도출하였다.
첫째, 고문헌 중심의 종가음식은 대부분 오늘 날 종가에서 상용하지 않는 음식들이다. 종가의 꿩요리는 한동안 수렵금지에 묶여 꿩고기의 유통이 단절되자 음식문화도 쇠퇴하였다. 동해안을 중심으로 한 생선식해는 생선의 유통구조변화에 따라 내륙지방에서도 신선한 생선이 풍부해지자 복잡한 발효과정을 거쳐야 하는 생선식해는 사라지고 신선한 활어회를 기호하게 되었다. 식재료 역시 동아나 민어껍질 등 현대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식재료들이 많고 조리법에 있어서도 직접 다듬고 숙성시키며 만들어 내는 옛 음식의 조리형태를 간편화와 편리화로 대체하며 ‘손맛’보다 분쇄기, 튀김기, 찜기 등 다양한 조리도구에 의해 조리형태가 큰 변화를 맞이하였다.
둘째, 과거 종가에서 제조하던 장류, 초류, 양조 등 식품가공산업의 확대로 공장에서 대량생산하는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종가에서의 가공식품사용이 확대되었다. 그럼에도 장류와 김치류는 아직까지 독자적 조리법을 보유하고 있는 종가가 적지 않으나 도시화와 현대사회의 주거환경이 이들 종가음식을 차종부에게 전승하는데 어려움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셋째, 고문헌 조리서에 따른 종가음식복원과 산업화가 재화적 가치 및 생산을 목적으로 할 경우 종가음식문화에 잘못된 인식이 확산될 우려가 있다. 성리학을 근간으로 한 조선시대 음식문화가 근검과 청빈정신의 예외일 수 없다. 소비자위주의 마케팅정책이 종가음식문화를 화려함과 체험적 경험으로 희소가치를 높이는 접근방식이 계속 지속되면 우리나라 식문화의 정체성은 붕괴되고 말 것이다.
넷째, 산업화한 종가음식은 식재료뿐만 아니라 조리법에 있어서도 개념정리가 재조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종가음식의 외식산업화가 일반 외식점과 경쟁할 때 종가음식문화의 근본적 개념을 위배한다면 경쟁력은 이미 상실한 것이다. 소비자의 기호를 고려한 종가음식산업은 단기적 이익을 위해 장기적 이익을 저버리는 것이다. 특히 그 이익의 평가지표가 재화財貨적 가치에만 치중한다면 종가음식 산업화는 더 이상 진행되어서는 곤란하다. 종가음식 산업화가 종가음식이 한식의 원형으로서 정체성을 찾아가는데 장해물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최근의 종가음식점들의 음식은 현대 종가에서조차 인정할 수 없는 화려함, 사치스러운 음식 일색이다. 뿐만 아니라 조리법이나 상차림 등에서도 퓨전문화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외식산업형 종가음식을 일반인들이 체험한다면 종가음식문화에 대한 잘못된 체험과 인식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곧 종가음식문화에 대한 일반인의 연민과 사회적 경외를 왜곡하게 될 것이다. 재언하면 종가음식의 산업발전 방향이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목표로 두지 말고 한식의 원형으로 우리가 전수하고 보전하여야 할 문화적 자산으로 이해하고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21세기 종가의 음식에 대해 정의한 주영하의 내용을 모두는 수용할 수 없을지라도 그 지적내용에 대해서 종가의 성찰이 필요한 부분이다. 특히 종가의 음식이 종부의 개인적 재능에 의존하여 변형되고 종가문화와의 조화와 대치된다면 그 음식은 더 이상 종가음식이라 할 수 없다. 최근 궁중음식화하는 종가음식을 보며 종가음식문화가 갖춰야 할 예禮를 성찰하게 한다. 또한 고가高價의 식재료와 조리법의 외래화外來化는 우리 음식문화의 근간마저 혼란스럽게 한다.
1980년 이후 경북 종가음식의 문화적 특성은 문화적 단절과 절대적 궁핍의 시기에 사라진 종가음식문화를 복원하는 시기이다. 복원의 목표가 어디에 있는지 사회적 담론이 필요하지만 현대의 종가는 종가문화의 한 영역인 종가음식 정착하여 대대손손 물려줘야 하는 개별적 과제를 안고 있다. 문화는 진화를 거치며 성장한다. 현대교육을 받은 종부들이 전통적 조리법을 현대 생활기준에 맞춰 변화, 진화하는 과정을 막기는 어렵다. 그러나 종택을 보존하고 종가문화를 세우려하는 것처럼 종가의 음식문화도 보존하고 물려줘야 할 자산임을 인지하고 설득하여 그들의 헌신을 청할 수는 있다. 이는 전통조리법과 전통음식문화를 보존해야 하는 사명감이 종가음식을 바라보는 사회적 경외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3. 결론 및 제언
경상북도는 종가음식을 콘텐츠로 무지개밥상을 개발하고 있다. 경상북도에서 개발하는 무지개밥상은 단순히 무지개의 색처럼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밥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무지개의 색처럼 다양한 가치와 철학이 담겨진 밥상을 의미할 것이다. 경상북도 종가음식이 예, 효, 절제, 화합, 나눔, 치유, 애민의 7가지 철학을 담고 있으므로 무지개밥상은 종가음식의 철학을 담아야 한다. 무지개가 주는 미래의 희망처럼 종가의 음식문화도 한식의 원형으로 그 정체성을 정립하고 한식문화의 미래희망으로 거듭 나길 기대한다. 경상북도의 종가음식문화는 개별적 차별화를 만들 수 없다. 혼반에 의해 음식문화가 서로 교류하여 왔기 때문이다. 즉 경상북도 종가의 음식문화는 서로 닮아 있다. 종가가 추구하던 음식문화에 대한 철학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경상북도 종가음식문화의 산업화는 종가의 음식문화를 스타종가로는 만들 수는 있겠으나 종가음식문화가 가져야 할 정신적 가치를 상실한다면 종가음식문화에 대한 사회적 경외는 소실되고 말 것이다. 이는 현대의 종가가 급격한 식문화 환경에 직면하여 어떤 방향으로 진화해 나갈 것인지 그 기준점을 성찰하여야 함을 시사한다. 경상북도 종가음식문화의 특성이 그 정체성을 확립하고 사회의 기재에 부응하는 진화를 기대하며 경상북도 종가음식문화가 갖춰야 할 규범으로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종가음식문화는 철학적 가치를 보유하여야 한다. 이는 사회적 경외의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종가음식문화를 유지하고 보전하는 것은 종가문화를 유지하는 것과 같다. 종가의 주요행위나 행사에서 종가의 음식문화는 늘 공존했다. 그러므로 종가의 문화를 벗어나지 않는 종가음식문화가 되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셋째, 종가음식문화의 주역인 종부는 현대 식생활 환경의 변화를 거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종가의 전통적인 조리법을 연마하여 실현할 수 있게 노력하여야 한다.
세계화는 문화적 충돌을 피할 수 없고 21세기 우리의 음식문화는 세계의 음식문화와 전면전全面戰을 앞두고 있다. 현 시점에서 한식문화의 정수인 종가음식이 어떤 전망을 바라보며 우리 음식문화의 독자성과 차별화를 지켜갈 것인가 사회적 고심이 깊어 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종가의 50% 선을 보유한 경상북도는 종가음식문화의 정립이 한식의 정체성을 위한 초석으로 인식하고 종가음식문화를 보존하는데 전승함에 지원을 보태야 할 것이다. 한편 이러한 사회적 요구가 종부들의 지난하고 고단한 삶을 복귀시키고 종부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종가음식문화를 구축한 그 노고는 세계 속의 한식문화를 우뚝 세울 수 있음에 헌신하는 것임을 잊지 말기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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