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학/상주학 제4권

제59강 우복 정경세의 양정편 소고

빛마당 2014. 11. 22. 09:54

養正篇 小考


聞慶大學校 招聘敎授 權世煥

Ⅰ. 愚伏 鄭經世略歷

愚伏 鄭經世明宗18年(1563)∼仁祖11年(1633)사이에 사셨던 분이다. 本貫晋州이고, 景任, 號愚伏이다. 아버지는 左贊成을 지낸 鄭汝寬이고 어머니는 李軻의 딸이다.

朝鮮中期文臣이요 學者로서 柳成龍의 제자이다. 어릴 때부터 남다른 재주가 있어 7세에 史略을 읽고 8세에 小學을 배웠는데, 불과 정반도 배우기 전에 文理가 통해 그 나머지 글은 스스로 해독했다고 한다.

1578년(선조11)경상도 鄕試에 응시해 생원과 진사의 초시에 합격했고, 17세 되던 해인 1580년에 柳成龍의 제자가 되어 학문에 진력하였다. 1582년 會試에서 進士로 뽑히고,1586년 謁聖文科乙科及第하여 承文院副正字에 임명되었다. 1588년 藝文館檢閱春秋館記事官이 되었다가 곧 통사랑대교로 승진되었다.

1596年 吏曺左郞侍講院文學을 지냈으며, 한때 잠시 嶺南御使의 특명을 받아 영남지방 9곳을 순시하고 돌아와 弘文館校理에 경연시독관ㆍ춘추관기주관을 겸임하였다. 吏祖正郞의 직에 있을 때 인사 행정이 공정해 현사(賢邪)를 엄선임용 또는 퇴출했으며 특정인에게 경중을 둔 일이 없었다.

1598年 2월에 승정원 右承旨로, 3월에는 左承旨로 승진되었고, 4월에는 慶尙道觀察使로 나갔다. 경상감사 재임시에는 영남 일대가 임진왜란의 여독으로 民力이 고갈되고 인심이 각박해진 것을 잘 다스려, 도민을 너그럽게 무마하면서 양곡을 적기에 잘 공급해 주고, 民風의 교화에 힘써 도내가 점차로 안정을 찾게 되었다.

1600년 영해부사(瀛海府使)가 되자, 이 고을 풍습이 싸움을 잘하고, 남을 모략하는 투서가 심함을 알고 이를 근절시켜 민풍을 일신시켰다. 그해 겨울에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왔다. 그 사이에 몇 번의 소명을 받았으나 잠시 상경하였다가 다시 귀향하였다.

당시는 당쟁의 풍랑으로 정계는 자못 시끄러웠다. 정경세는 이때를 기해 관직을 사양하고 고향에 돌아와 학문 연구에 전념하였다. 마을에 存愛院을 설치하여 사람들의 병을 무료로 진료하였다.

그는 道學鄭夢周에서 창시해 李滉에서 집성했으며, 金宏弼)ㆍ鄭汝昌ㆍ李彦迪같은 여러 현인들이 나와 正學으로 더욱 깊이 연구함에, 이들 주변 수백리 안에서 왕성한 발전이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그는 상주는 영남의 상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이곳에 서원을 세워야 한다고 역설하고, 유생을 설득해서 道南書院을 창건하여 五賢從祀해서 후학으로 하여금 도학의 정통이 여기에 있음을 알게 하였다.

1607年 大邱府使로 나가 治績을 올렸고, 이듬해 선조가 죽고 光海君이 즉위하면서 교서를 내려 鄭經世에게 求言하였다. 그는 이에 萬言疏를 올려 사치의 풍습을 경계하고 인물의 전형을 공정히 하며 학문에 힘쓸 것을 강조하였다.

1609년(광해군 1)봄에 冬至使나라에 가서 다음 해에 돌아오면서 화약의 수입량을 예년의 두 배로 늘리도록 교섭하여 성사되자 특지로 嘉善大夫의 칭호를 받았다.

그해 4월에 成均館大司成이 되었고, 10월에 외직을 원해 羅州牧使에 임명되어 12월 부임하는 날 다시 全羅道觀察使로 영전하였다. 그 뒤 道政에 전념하다가 이듬해 8월에 鄭仁弘 일파의 탄핵으로 해직되었다. 1623년 仁祖反正으로 정국이 일변되자 3월에 弘文館副提學이 제수되었다.

그 뒤 大司憲·승정원도승지·의정부참찬·刑曺判書ㆍ禮曺判書·吏曺判書·大提學 등의 관직을 거치면서 公道를 확장하고 요행을 억제하며, 인재를 널리 취하고 士論을 조정해 국정에 심혈을 기우렸다.

鄭經世儒學者로서도 大家의 경지에 이르렀는데, 朱子退溪의 학문을 깊이 私塾하였고 經學禮學造詣가 깊었으며 이황의 학통을 계승하였다.

그는 평소에 朱子를 흠모하고 존경했다. 朱書를 편람, 정독해 후진교육이나 朝議에서나 경연에서 진강할 때 주서에 근거를 두지 않은 적이 없다. 특히 예학에 조예가 깊었다. 그의 제자로는 全命龍ㆍ申碩蕃ㆍ姜震龍ㆍ黃紐ㆍ洪鎬 등이 있다.

저서로서는 養正篇, 朱文酌海, 喪禮參考, 愚伏集 등이 있다. 그는 退溪學派南人에 속했지만 栗谷學派西人들과도 친하였는데 특히 金長生과 가까웠고, 宋浚吉을 사위로 맞이하기도 하였다.

死後 議政府左贊成追贈되었다. 諡號文莊이다.


. 晉陽世家

姜氏, 河氏와 더불어 진양삼성의 하나로 일컬어진 진양정씨의 일파가 상주 땅에 뿌리를 내린 것은 고려 후기인 14세 중엽이었다. 정경세의 8대조인 鄭義生이 상주목사로 부임한 아버지 鄭澤을 시종하다 당시 상주의 최고 문벌 가문인 상산김씨 金得齊의 딸과 혼인 한 것이 그 계기가 되었다.

鄭義生婿留婦家의 풍습에 다라 처향에 눌러 살았다. 현손 鄭蕃이 율리로 이사하면서부터 文運이 크게 일어 門庭에 선비가 가득했고, 입향 9세대인 정경세가 17세기를 대표하는 학자 관료로서 일세를 풍미함으로써 진양정씨는 영남유수의 문벌가문으로 도약하게 되었다.

정경세는 1586년(선조 19년) 문과에 합격하여 관계에 입문한 이래 1633년 정2품 정현대부의 직함을 지니고 사망하기까지 약 50년 세월을 관료로 봉직하며 經世濟民의 삶을 살았다.


. 愚伏의 學問淵源

李滉을 종사로 하는 퇴계학파는 16세기 이후 영남지역의 선비들이 학문을 계승‧발전시키고, 지식과 정보를 소통‧공유하던 거대한 學林이었다. ‘退陶晩隱’이란 자술처럼 중년이후 이황은 학문과 저술에 여생을 바쳤고, 陶山 자락에 서당을 열었을 때 조선의 선비들은 그의 바다처럼 넓고 깊은 덕망과 학문에 빠져들었다. 어느새 도산은 16세기 조선의 학적 淵藪이자 영남의 聖山으로 인식되어 갔고, 그의 말과 학문은 退溪學의 이름으로 계승‧발전되어 갔다.

도산에서 발원한 퇴계학이 月川 趙穆, 西厓 柳成龍, 鶴峯 金誠一, 寒岡 鄭逑로 분파되어 저마다의 학풍을 이어갔다. 학ㅈ다 관료로서의 퇴계를 스승의 본질로 여긴 사람은 류성룡이었고, 이런 인식은 정경세에게 인식되어 ‘서애학맥’이라는 퇴계학의 우뚝한 줄기를 이루었다.


Ⅳ. 養正篇의 理解

養正篇文莊公 愚伏 鄭經世(1563∼1633)가 선조 37년(1604)에 필사한 아동용 수신 교과서이다.

愚伏이 밝힌 養正篇의 편찬 동기는 저자의 발문에 나타난 것과 같이 그의 아들이 8세에 입학하여 小學을 가르치려고 하였으나 너무 어려워, 명유들이 지은 鄕校禮輯童子禮篇을 우리 실정에 맞춰 쉬운 아동교재로 편집한 초학아동용 修身敎科書이다.

養正篇의 구성은 원문에 토를 달고, 언해된 내용이 동시에 수록되어 있으며, 책은 檢束心身之禮·入事父母出事師長通行之禮·書堂肄業之禮의 세 부분으로 크게 나누어져 있다.

각 부분은 다시 세목으로 분류되어 도합 28목으로 되어 있다. 내용은 동몽들이 일상생활에서 마땅히 준행해야 할 생활규범에 대하여 기술한 것이다.

이 책은 일상적인 사실 속에 지극한 이치가 있음을 강조하고 이를 교육내용에 적극 반영한 책으로서, 조선시대 서당교재의 표본적 성격을 지닌다.

책의 구성은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에 대한 세밀한 지침으로 되어 있다. 세수하고 머리 빗기·옷 입기·읍하기·절하기·쓸고 닦기·나들이·보기·음식 들기·글 배우기 등 일상생활의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대한 준칙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행위에는 까다로운 예법과 범절이 있음을 강조하고, 아동들에게 있어 서당의 수업기간은 기존의 문화를 착실히 내면화하는 단계로 설명하였다.

이에 아동은 존장자의 지시에 철저히 순종하는 피동적인 존재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교재의 내용은 아동들이 일상생활에서 尊長者에 대하여 지녀야 하는 예법과 인식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尊長者에 대한 응대법, 尊長者 앞에서의 진퇴법·시좌법·출입법·수행법 등이 중심내용을 이룬다. 일상생활에서 後覺者인 아동은 언제나 先覺者尊長者의 행위를 본받아야 하고 받들어야 한다는 논리는 교재의 서술방식에서도 드러나 있다.

예컨대, 교재서술방식은 ‘무릇 尊長이 부르시거든’, ‘尊長을 모셔 행함에’, ‘尊長을 길에 만나서’ 등으로 되어 있어, 아동들의 일과는 尊長者의 의사를 충실히 따르는 것이 가장 주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구성방식은 조선시대 유학자의 아동교육관을 보여주는 전형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유학자들은 아동이 서당에서 수업하는 기간을 ‘스스로 온전히 하지 못하는(不得自事)’ 배움의 기간으로 파악하였다.

아동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이러한 下學의 공부를 반복하여 그것이 내면화될 때(反復入身來), 비로소 능히 스스로 도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이 구비되는 것으로 이해하였던 것이다.

이 책은 표지에 제첨도 없이 養正篇이라 본문의 글자 크기보다 약간 크게 묵서되어 있고, 수진본처럼 작게 장정되어 있어 초학자의 휴대서처럼 보이지만 정경세 자신이 직접 쓴 精稿本이다. 이 精稿本에 의해 후대에 간행된 목판본의 오자도 바로잡을 수 있어 주목되는 자료이다.


Ⅴ. 養正篇의 解釋

養正篇原跋

原文

余年八歲時 先君子 課以文公小學書 日用間提耳 以遜悌之方者 甚勤且切不肖無狀 未有以奉承遵守之 終無所成就 然猶未嘗 以悖慢之行 得罪於州里者 皆先君子 敎誨之恩也 亦年八歲矣 顧乃耽於玩弄 而闕於訓誨 是爲不愛之甚也 鳴呼 古人所謂 方知父母恩者 豈但於養子而知之耶 余 旣悲且懼 欲依先訓 課以小學則 又慮其懵於文字 不可以猝語也 遂就明儒所撰 鄕校禮輯童子禮篇中 稍加刪改令稚騃者 易曉手寫以敎之 名之曰養正篇 蓋 冀其涵揉於此 而不至於驕惰 壤了也 嘗聞程子之言曰 灑掃應對 形而上者也 夫灑掃應對 人事之至近者也 形而下者也 至粗淺者也 然而其中 自有至理 而爲仁之本 在焉故曰 形而上者也 下學人事 乃上達天理之階級 君子之道 孰先傳焉 孰後倦焉 則是篇之言 雖甚淺近 而作聖之功 實基於此 其可忽之而不勖耶 若夫 修身大法備在小學書 此特 爲之路逕而已 非談 其安於此而不求進於 小學也 其勖之哉 甲辰 季夏上澣 垂悌以書

解釋

내가 여덟 살 때 아버지께서 文公小學을 가르치셨는데 날로 읽고 쓰는 사이에 귀에 익혀 겸손하고 공경하는 방략이 되도록 하셨다. 아주 근면하시고 간절하게 해주시었으나 불초 무상하여 받들어 지키지 못하고 끝내 이루어 내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 패만한 행동으로 마을 주민들에게 죄를 지은 바는 없으니 이 모두가 아버지의 가르침의 은혜일지라. 이제 나도 아들이 있어 나이 여덟 살이 되었는데 장난이나 즐기고 있으니 돌이켜 보면 가르치지 못한 것은 자애가 부족하기 때문이리라.

아아. 옛사람이 말한 바, 바야흐로 부모의 은혜를 아는 것은 아이를 길러보아야만 아는 것이로다. 내가 죄스럽고 송구하여 선대의 가르침에 따라 과제로써 小學을 가르치고 싶으나 문자를 모르는 것이 염려되고 갑작스레 말로써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명나라 학자가 지은 鄕校禮輯童子禮篇중에서 조금 고쳐서 어린아이로 하여금 쉽게 깨닫고 손으로 베끼도록 가르치고자 하니 이름 하여 養正篇이라 하였다.

대저 이것으로 자연스럽게 젖어 익히고, 교만과 게으름에 빠지지 않고 떨쳐버리기 바란다. 일찍이 程子의 말씀을 듣자니, 이르기를 灑掃應對形而上者(정신적인 것)이라 하였다. 무릇 쇄소와 응대가 사람의 일에 가장 가까운 것이며 形而下者(물리적인 것)의 몹시 조잡하고 천박한 것인데, 그러하나 그 가운데 스스로 이치에 이름에 있어 爲仁의 근본이 여기에 있으므로 形而上者라 일컬었으리라. 아래로 사람이 하는 일을 배우는 것은 곧 위로 하늘의 이치에 다다르는 단계이니 君子之道를 누가 먼저 전하며 누가 나중에 지치는가 하는 것인즉 이 양정편의 말이 비록 너무 얕고 가까운 것이라 해도 성인이 지은 공적은 실로 여기에 바탕을 둔 것이니 어찌 가히 소홀히 하여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무릇 修身의 대법이 小學에 마련되어 있고 이것은 특히 이행하는 지름길일 뿐이니 이에 안주하여 小學에 나아갈 길을 탐구하지 않음이 없기를 바라노니 노력할지어다.

갑진년 여름에 진심으로 간절히 바라며 쓴다.


一. 撿束身心之禮(몸과 마음을 단속하는 예절)


1. 盥櫛 : 세수하는 예절

原文

晨興 卽當盥櫛 以飭容儀 凡盥面 以巾帨 遮護衣領 捲束兩袖 勿令霑濕 櫛髮 必使先整 勿令散亂

解釋

새벽에 일어나면 곧 낯을 씻고 머리를 빗어 얼굴과 몸가짐을 말끔이 할지니 대체로 낯을 씻을 때에 수건으로 옷깃을 둘러 가리고 양 소매를 걷어 묶는 듯이 해서 젖지 않게 하며 머리를 빗을 때는 반드시 먼저 정리하여 흩트리고 어지럽게 하지 말 것이니라.


2. 整服 : 복장 정돈하는 예절

原文

凡著衣 提領欲直 束帶欲緊 毋使偏斜寬緩 致失容儀 飮食 須照管 勿令點汗 行路 須看顧 勿令泥漬 服役 必去上服 以便作事 有垢破 必洗澣補綴 以求完潔 上自冠巾 下及鞋履 俱當修飭 燕居及盛暑 尤要矜持 不得袒衣露體

解釋

대체로 옷을 입을 때 옷깃을 꼿꼿이 하고 허리띠를 팽팽히 묶으려 하지만 얼굴과 거동이 불편하도록 너무 졸라매거나 느슨하게 하지 말고 음식을 먹을 때에도 모름지기 잘 관리하여 흘리지 말며 길을 걸을 때에도 잘 살펴서 진흙에 빠지지 말며 힘들여 일할 때 반드시 웃옷을 벗어 일하기 편하게 하고 때 묻고 해지면 반드시 씻고 기워서 완전하고 정결함을 구하고 위로 갓과 건으로부터 아래로 신발에 이르기까지 마땅히 닦고 정제하며 한가롭게 사는 데나 무더위에도 더욱 긍지를 요하나니 오슬 여미어 몸이 드러나지 않게 할 것이니라.


3. 叉手 : 양손잡는 예절

原文

以左手 緊把右手大拇指 令左手小指 向右手腕 大指向上 右手四指皆直 以掩胸 亦不可太著胸 須令稍離方寸

解釋

왼손으로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당겨 잡아 왼손 새끼손가락은 오른손 팔을 향하게 하며 큰손가락을 위로 향하고 오른손 네 손가락은 모두 곧게 하여 가슴을 덮되 또한 가슴에 바짝 붙이지 말고 가슴에서 조금 떨어지게 할 것이니라.


4. : 양손을 잡고 공경을 나타내는 예절

原文

凡揖時 稍闊其足則立穩 須直其膝 曲其身 低其首 眼看自己鞋頭 兩手圓拱而下 與尊者揖 擧手至眼而下 與長者揖 至口而下 皆令過膝 與平交揖 當心而下 不必過膝 皆當手隨身起 叉於當胸

解釋

대체로 읍할 때에 조금 그 발을 넓히면 서기가 편하니 모름지기 무릎을 곧게 하되 몸을 굽히며 머리를 낮추어 시선은 자기의 발끝을 보고 두 손으로 둥글게 팔짱을 질러 내리되 존장(어른)에게 읍할 때는 손을 들어 눈높이에 이르렀다가 무릎까지 내리며 장자(윗사람)에게 읍할 때에는 입에 이르렀다가 무릎까지 내릴 것이요 평교에 읍할 때에는 가슴에 이르러 내리되 반드시 무릎을 지나지 않도록 할지니 읍한 뒤에는 손을 가슴에 이르러 차수할지니라.


5. : 절하는 예절

原文

凡拜 一揖少退 先跪左足 次跪右足 俯首至地而起 先起右足 以兩手 齊按右膝 次其左足 再一揖而後 拜 其儀度 務爲詳緩 不可急迫

解釋

무릇 절을 함에 있어서 한번 읍하고 조금 물러나와 먼저 왼발을 꿇어앉고 다음에 오른발을 꿇어서 머리를 굽혀 땅에 닿을 만큼 이르렀다가 일어나되 오른발을 일으켜서 두 손으로써 오른 무릎을 같이 안고 다음에 왼발을 일으킨다. 다시 한 번 읍한 뒤에 절하되 그 거동과 태도를 자세하고 느리게 하도록 힘써 급박하게 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6. : 어른 앞에 꿇어앉는 예절

原文

低頭供手 穩下雙膝 腰當直豎 不可蹲屈 背當稍俯 以致恭敬

解釋

머리를 굽히고 양손을 잡아 무릎위에 놓으며 허리는 바르게 세워 가히 구부리고 앉지 말며 등은 조금 구부려서 공경하도록 할 것이니라.


7.: 서서 어른을 대하는 예절

原文

拱手正身 兩足齊幷 必順所立方位 不得歪斜 雖因倦 不得倚靠墻壁

解釋

손을 팔짱질러 몸을 바르게 하고 양쪽 발을 함께 모아 반드시 서있는 방향과 위치를 바르게 하여 비뚤어지거나 기울지 않고 비록 피곤하고 게으름이 나도 담과 벽을 기대고 의지하지 말 것이니라.


8. : 앉아서 어른을 대하는 예절

原文

定身端坐 斂衣拱手 毋得偃仰傾斜 倚靠几案 與人同坐 尤當斂身莊肅 毋得橫臂 致有妨碍

解釋

몸을 단정히 앉고 옷을 거두어들이어 팔짱끼되 쓰러지거나 재끼거나 기울이거나 비스듬히 궤짝이나 책상을 기대지 말며 여러 사람들과 앉을 때는 더욱 몸을 거두어 씩씩하고 엄숙하게하고 팔을 벌려 남에게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될 지니라.


9. 步趨 : 어른 앞의 걸음걸이 예절

原文

兩手 籠於袖內 緩步徐行 擧足不宜太闊 毋得左右搖擺 致動衣裾 目須常視其足 登高 必用兩手提衣 以防傾跌 其掉臂跳足 最爲輕浮 常宜收斂

解釋

양손을 소매 안에 갈무리고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걷되 너무 느리지 않게 발걸음을 옮기고 좌우로 흔들리고 펄렁이도록 옷깃을 움직이지 말고 눈은 항상 발을 보며 높은 데에 오르거든 반드시 두 손으로 옷을 잡아서 자빠지고 넘어지는 것을 막고 팔 흔들고 발걸음 띠는 것이 경솔하게 되니 항상 마땅히 거둘 지니라.


10. 言語 : 말하는 예절

原文

凡童子 常宜緘口靜默 不得輕忽出言 或有所言 必須聲氣低平 不得喧聒 所言之事 須眞實有據 不得虛誕 不得亢倣 訾人及輕議人物長短 如市井鄙俚戱謔無益之談 尤宜禁絶

解釋

무릇 아이는 항상 마땅히 입을 다물고 교요하고 침묵하여 모름지기 경솔히 말을 내뱉지 말 것이며 혹 말할 바 있거든 반드시 소리와 기운을 낮추어 평온하게 하고 요란하고 시끄럽게 하지 말 것이며 말한바 일을 모름지기 진실에 의거하되 허망하게 하지 말고 교만하지 말며 사람을 헐뜯고 인물장단을 가볍게 논의함과 저자(시장)거리에 천박하고 더러운 속된 희학과 같이 무익한 말은 더욱 마땅히 금하고 끊을 것이니라.


11. 視聽 : 보고 듣는 예절

原文

收斂精神 常使耳目專一 目看書則一意在書 不可側視佗所 耳聽父母訓戒 先生講論 則一意承受 不可雜聽佗言 雖非觀書聽講時 亦當凝視收聽 毋使心慮外馳

解釋

정신을 가다듬고 항상 귀와 눈이 한결같이 하여 눈으로 글을 보면 뜻이 오로지 책에 있어서 가희 다른 곳을 기울여 보지 아니하며, 귀로 부모의 훈계와 선생의 강론을 들으면 한 뜻으로 이어 받아서 가희 다른 말을 섞어듣지 아니하며, 비록 글을 보고 강의를 들을 때가 아니라도 또한 마땅히 자세히 보고 거두어 들여서, 마음과 생각이 밖에 돌아다니지 말아야 할 것이니라.


12. 飮食 : 밥 먹는 예절

原文

斂身離案 毋使太逼 擧匙下箸 毋得急遽撥亂肴蔬 安放椀楪 俱當加意照顧 毋致傾墜 毋得搏飯流啜 毋令咀嚼有聲 亦不得恣所嗜好 貪求多食 非節候及尊長命 毋得飮酒 飮亦不過三爵

解釋

밥상에 너무 떨어져 앉거나 너무 다가앉지 말며 숟가락을 들면 젓가락 내려 놓되 너무 급히 반찬을 흩트려 어지럽히지 말며 사발과 접시를 바로 놓고 기울거나 떨어지지 않도록 마음으로 잘 돌아보아 마땅히 갖추어 놓으며 밥그릇을 들고 흘리거나 마시지 말며, 소리 나게 씹지 말고 또한 즐기고 좋아하는 것이라 해서 마음대로 많이 먹으려 탐욕하지 말며, 명절이나 존장의 명령이 아니거든 술을 마시지 말며 마시되 또한 석 잔에 지나지 아닐지니라.


二. 人事父兄出事師長通行之禮(부모님께 그리고 어른께 통행하는 예절)


1. 灑掃 : 물뿌리고 청소하는 예절

原文

左手持木盤 實水 右手把竹枝 浥水 輕灑堂中 先灑遠於尊長之所 請尊長就其地(掃時亦然) 然後以次灑畢 方置箒於箕上 兩手捧之 置於楹外 執箒以進 右手運箒 左袂遮箒 徐步却行 不使塵及於尊長 掃畢斂塵於箕 出棄佗所

解釋

왼손으로 물그릇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대나무 가지로 물을 적셔서 마루 가운데 가볍게 뿌리되 어른 계신데서 먼 곳을 먼저 뿌리고 어른이 그 곳에 옮겨가시도록 청안 연후에 차례로 뿌리기를 마친다. 그리고 쓰레받기 위에 둔 비를 두 손으로 고이 들어 기둥밖에 내다놓고, 비를 잡고 나아가서 오른손으로 비를 잡아 쓸고 왼편 소매로 비를 가려서 느린 걸음으로 쓸어간다. 티끌이 존장에게 미치지 않게 하고 다 쓸고 나서 티끌을 쓰레받기에 거두어 다른 곳에 내버릴지니라.


2. 應對 : 어른을 대하는 예절

原文

凡尊長 呼召 隨聲卽應 不可緩慢 坐則起 食在口則吐地 相遠則趨而近其前 有問則隨事實對 又必待尊長所問辭畢 方對 毋先從中亂說

解釋

무릇 어른이 부르시면 곧 대답하고 느릿느릿 태만해서는 안 될 것이니, 앉아서면 곧 일어나고, 먹는 것이 입에 들었으면 땅에 뱉으며, 서로 멀면 빠른 걸음으로 그 앞에 가까이 나아가고, 물으시면 사실대로 대답하되, 반드시 물으시는 말씀이 끝나기를 기다려서 대답하고 중간을 따고 먼저 어지러이 말하는 일이 없을지니라.


3. 進退 : 나가고 물러나는 예절

原文

不命之進 不敢進 不命之退 不敢退 進時 當低首鞠躬 疾趨而前 其立處 不得逼近尊長 須相離三四尺然後 拜揖 退時 亦疾趨而出 須從旁路行 毋背尊長 與同列進退 以齒爲序 進則魚貫而上 毋得越次紊亂 退則席卷而下 毋得先出偸安

解釋

오라 명하지 않으시면 감히 오지 아니하고, 물러가라 명하지 않으시면 감히 물러가지 아니하며, 올 때는 마땅히 머리를 낮추고 몸을 구부려서 빠른 걸음으로 앞에 나아가되, 어른께 바싹 가까이 다가서지 아니하고 서너 걸음 떨어져선 다음에, 절을 해 읍한다. 물러갈 때에 또한 빨리 움직이되, 모름지기 곁길로 가서 어른을 등지고 서지 않느니라. 같은 무리끼리 함께 나아가고 물러갈 때에는 나이 차례로 하고, 나아감에는 한 줄로 올라가되 차례를 어겨 어지럽히지 말고, 물러감에는 자리를 말아놓고 내려가되 구차하게 먼저 나가서 편하고자 하지 말지니라.


4. 溫淸 : 덥고 추울 때 모시는 예절

原文

夏月 侍父母 常須揮扇於其側 以淸炎暑 及驅遂蠅蚊 冬月則審察衣裘之厚薄 爐火之多寡 時爲增益 幷候視囱戶罅隙 使無爲風寒所侵 致父母安樂

解釋

여름철에 부모를 모시되, 모름지기 늘 그 곁에서 부채를 부침으로서 불꽃같은 더위를 서늘하게도 하고 파리와 모기를 몰아 쫓기도 하며, 겨울철에는 속옷과 겉옷의 두텁고 엷음과 화로에 불이 많고 적음을 살펴서 때로 모자라면 더하고, 아울러 문이 뚫어져 구멍 난 것이 없는지 살펴보아 바람과 추위가 들어오지 않게 하여 부모가 편하고 즐거우시도록 이룰지니라.


5. 定省 : 매일 어른 모시는 예절

原文

侵晨 先父母起 梳洗畢 詣父母寢所 問安否 如父母已起 就前先作揖 後致問 畢仍作揖退 昏時 候父母將寢 布席與衾 待就寢 下帳閉戶而退

解釋

새벽이 되면 부모보다 먼저 일어나서 머리 빗고 세수를 마치고 부모의 침소에 나아가 안부를 여쭙되, 만일 부모가 이미 일어나셨거든 앞에 나아가 먼저 읍을 하고 뒤에 문안을 드린 뒤 이어 읍을 하고 물러가며, 어두울 때에 부모가 장차 주무시기를 기다려 자리와 이불을 펴고 잠드시기를 기다려 장막을 내리고 덧문을 닫고 물러갈 것이니라.


6. 出入 : 드나드는 예절

原文

家庭之間 出入之節 最所當謹 如出赴書堂 必向父母兄姉前 肅揖告出 散學時 入必以次 肅揖 在書堂時 或因父母呼喚 有所出入則 必請問先生 許出方出 不得自專

解釋

집안에서 나가고 들어가는 절차를 가장 당연히 신중히 해야 할 것이니 만일 서당에 가고자 한다면 반드시 부모와 형과 누이의 앞을 향하여 엄숙히 읍하여 나간다고 아뢰고 배움이 끝나면 들어와서 반드시 차례로 아뢴다. 서당에 있을 때에 혹 부모가 부르시어 출입할 일이 있으면 반드시 선생께 여쭙고 나가라는 허락이 있으면 나가고 스스로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되느니라.


7. 饋饌 : 상차려 드리는 예절

原文

凡進饌於尊長 先將几案拂拭然後 兩手捧食器 置於其上 器皿必乾潔 肴蔬必序列 視尊長所嗜好頻食者 移近其前 尊長命之息則 退立於傍 食畢 進而徹之 命之侍食則 揖而就席食 必視尊長所向 未食者不敢食 將畢則急畢之

解釋

무릇 존장에게 음식상을 차려 드림에 있어서는 먼저 상을 닦은 연후에 식기를 두 손으로 올려놓고 그릇과 접시를 반드시 깨끗이 닦아서 반찬을 순서 있게 차리고 존장이 좋아하고 잘 잡수시는 것을 보아 그 앞에 가까이 옮겨놓고 존장이 그만두라 명하시면 그 옆에 물러선다. 다 잡수시면 나아가서 그것을 물리고 어른 앞에서 먹어라 명하시면 읍하고 자리에 들어앉아 먹되 반드시 존장이 뜻한 바를 보아서 아끼느라고 잡수시지 않은 것을 감히 먹지 않으며 거의 끝나게 되면 서둘러 끝낼지니라.


8. 侍坐 : 모시고 앉는 예절

原文

凡侍坐於尊長 目則敬候顔色 耳則敬聽言論 有所命則起立 有倦色則請退 有請與尊長獨語者則 屛於佗所

解釋

무릇 존장을 모시고 앉으매, 눈은 낯빛(안색)을 공경히 기다리며, 귀는 말씀을 경청하되, 지명하시는 바가 있으면 일어서고 피로하신 기색이 보이면 스스로 물러나기를 청하고 존장께 혼자 말씀 드리기를 청하는 자가 있으면 얼른 자리를 피할지니라.


9. 隨行 : 모시고 가는 예절

原文

侍尊長行 必居其後 毋得相遠 恐有所問 目之瞻視 必隨尊長所向 有所登陟則先後扶持之 與之攜手則 兩手捧之 遇人於途 一揖卽別 不得後尊長而與之言

解釋

존장을 모시고 갈 때는 반드시 그 뒤를 따라가되 멀리 떨어지지 말지니 물으실 말씀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라. 눈은 잘 살펴서 반드시 존장이 향하는 바를 따르며 올라가는 곳이 있으면 앞뒤를 잡아 부축하고 더불어 손을 잡으시면 양손으로 받들어 잡으며 도중에 사람을 만나거든 한번 읍하고 곧 돌아설 것이며 존장을 뒤에 두고 길게 이야기하지 말지니라.


10. 邂逅 : 어른을 만나고 헤어지는 예절

原文

遇尊長于道 趨進肅揖 與之言 則對 命之退 則揖辭而行 若尊長 乘車馬 則避匿 若等級 相懸 不爲己下馬者 則拱立道傍 以侯其過

解釋

존장을 길에서 만나면 빨리 나아가 엄숙히 읍하되 더불어 말씀하시거든 곧 대답하고 물러가라 명하시거든 곧 읍해 하직하고 갈 것이며 만약 존장이 수레나 말을 타셨거든 피하여 숨고 나를 위해 말에서 내릴 것이 아니거든 곧 팔짱을 한 채 길옆에 서서 그 지나기를 기다릴 것이니라.


11. 執役 : 어른이 일하시는 경우 예절

原文

尊長有所事 不必待其出命 卽當趨就其傍 致敬服役 如將坐則 爲之整席拂塵 如侍射與投壺則 爲之授矢拾矢 如盥洗則 爲之奉槃持帨 夜有所往則 爲之秉燭前導 如此之類 不可盡擧 俱當正容專志 毋使怠慢差錯

解釋

존장이 일을 하시고 있을 때는 명령 내리시기를 기다리지 말고 곧 그 곁에 빨리 나아가서 공경스럽게 힘든 일을 받아할지니라. 만일 앉으시려하면 자리를 정리하고 먼지를 털어드릴 것이며 만일 활쏘기나 투호하시는 자리에 모시게 되면(위에서) 화살을 집어 드리고 (쏜 화살)을 주어 드리며 세수를 하실 것 같으면 수건을 상에 올려 받들며 밤에 길을 걸을 때는 초롱불을 잡아 앞을 인도할지니 이 같은 것을 (일일이) 모두 거론하지 못하니 마땅히 얼굴을 바로하고 뜻을 바로 세워 실수나 태만하지 말지니라.


三. 書堂肄業之禮(서당이업지례): 서당에서 수업하는 예절


1. 受業 : 공부를 배우는 예절

原文

受業於師 必讓年長者居先 序齒而進 受畢肅揖而退 所受業或未通曉 當先扣之年長 不可遽凟問於師 如必請問 當整衣斂容 離席而告曰 某於某事未明 某書某言 未通敢請 先生有答 宜傾心聽 受畢復原位

解釋

스승에게 수업을 받되 반드시 연장자가 먼저 자리 잡도록 양보해서 나이 순서로 나아가며 수업을 마치면 엄숙히 읍하고 물러가고 배운 수업 내용에 혹 통효치 못하는 것이 있거든 마땅히 먼저 연장자에게 묻고 갑자기 번거롭게 스승에게 묻지 않을지니 만일 반드시 청해 묻거든 마땅히 옷을 단정히 하고 얼굴을 매만지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가서 고해 가로대 “아무가 아무 일에 밝지 못하고 아무 글 아무 말에 통효치 못하여 감히 청하옵니다.” 선생이 답이 있으시거든 마땅히 마음을 기우려 듣고 마치면 원래의 자리에 돌아올지니라.


2. 會揖 : 단체로 읍하는 예절

原文

每日淸晨 直日一人擊板 咸起 盥櫛衣冠 再擊升堂序立 侯師長出座 肅揖 次分兩序 相揖而退 至夜將寢 擊板會揖如朝 其會講會食 皆擊板 朔望則 師長就座立 皆再拜

解釋

매일 맑은 새벽에 당번 한사람이 (일어나라는 신호)로 판을 치거든 다 일어나 세수하고 의관 정제할 것이며 두 번째 치면 마루에 올라 차례로 서서 스승이 자리에 나와 앉으시기를 기다려서 엄숙히 읍하고 다음에 양쪽으로 나누어 서서 서로 읍하고 물러나느니라. 밤이 되어 자려할 때 판을 치고 모여 읍하기도 아침과 같이 하느니라 그 모여서 강론하고 모여서 먹을 때 모두 판을 치되 초하루와 보름에는 스승이 자리에 앉으시면 모두 두 번 절하느니라.


3. 居處 : 서당에서의 행동예절

原文

端身正坐 書冊硯筆等物 皆頓放有常所 其當讀之書 當用之物 隨時從容取出 毋得翻亂 讀用畢 還置原所 毋使錯雜

解釋

몸을 단정히 하고 바로 앉아 책과 벼루와 붓 등 물건을 다 정돈해 둠이 늘 한자리에서 있으되 그 마땅히 읽을 글과 마땅히 쓸 물건을 때때로 조용히 끄집어내 번득거리거나 어지럽히지 말며 읽고 쓰기를 마치면 원래의 장소에 도로 갖다 두어 착잡하게 하지 말지니라.


4. 讀書 : 읽고 쓰는 예절

原文

整容定志 看字斷句 玩味徐讀 務要字字分明 毋得目視佗處 手弄佗物 須熟讀貫詢 又必遂日溫理 遂旬通讀 以求終身不忘

解釋

얼굴을 정제하고 의지로 작정하여 글자를 살피고 구절을 끊되 천천히 읽어 음미하고 글자 낱낱이 분명하도록 힘써 눈으로 다른 것을 보고 손으로 다른 물건을 희롱하지 말지니라. 모름지기 익혀 읽고 꿰어 외우되 반드시 나날이 온당하게 이해하며 열흘마다 통독하여 종신토록 잊지 않도록 강구할지니라.


5. 寫字 : 글씨 쓸 때 예절

原文

專心把筆 毋求字畵嚴整 毋得輕易草率 致令欹斜脫落 硏墨放筆 毋使有聲 及濺汗于外 其戱書硯面及几案 最爲不雅 切宜戒之

解釋

마음을 온전히 하여 붓을 잡아 글자 획이 엄정하도록 힘쓰고 가볍고 쉽사리 초솔해서 삐뚤고 빠뜨리지 말 것이며 먹 갈고 붓 내칠 때 소리를 내거나 흩거나 바깥에 더럽히지 말며 그 벼루 위와 궤와 책상에 낙서하는 것이 가장 아담치 못하니 경계할지니라.


Ⅵ. 養正篇의 현대적 의미

愚伏 鄭經世 선생이 엮은 養正篇은 어린 아이들이 일상생활에서 준행해야 할 생활규범에 대하여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그 내용은 몸과 마음 다스리기, 웃어른 공경하기, 배우고 익히기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몸과 마음 다스리기는 세수하고 머리 빗기, 단정한 옷차림, 손을 두는 법, 인사하기, 절하기, 어른 앞에 앉기, 서 있기, 앉기, 걷기, 말하기, 보고 듣기, 식사하기 등 일상생활에서 준수해야 할 12가지 예절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웃어른 공경하기는 청소하기, 대답하기, 들어가고 나가기, 부모님 공경하기, 문안드리기, 외출하기, 어른과 함께 식사하기, 어른과 함께 나들이 가기, 웃어른을 만났을 때 인사하기, 웃어른 도와드리기 등 웃어른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11가지 예절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배우고 익히기는 선생님과 함께 활동하기, 함께 모이기, 정리정돈, 책보기, 글쓰기 등 학교에서 지켜야 할 생활규범과 학업 중에 지켜야 할 5가지 예절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의 어린이들은 정확한 예절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버릇없는 사람으로 분류되고 인성교육의 필요성들이 강조되고 있다. 비록 500년 전의 기록이지만 이 책을 어린이들의 예절교본으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