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시화전 어떤 시화전 온갖 꽃과 나무들이 제 모습 그대로 자라는 낙동강생물자원관 식물원 온실에 시화 스물 넉 점이 옹기종기 걸려 있다 사람이 없는 걸 아는지 시화들이 슬며시 벽에서 내려와 작은 도랑 물소리와 어울리고 물소리가 어느 듯 외운 시를 졸졸졸 아래로 들려주고 있다 온실 안에 꽃과 나무들이 물소리의 끝없는 시낭송에 꽃은 시의 향기로 나무는 시의 색깔로 취하고 있다. 2023. 9.5 나의 문학/동시 2023.10.26
송전탑 송전탑 무거운 전선줄 두 어깨에 메고 들을 지나 강을 건너고 언덕 넘어 높은 산 능선도 넘더니 골마다 환한 빛 밝혀 주려고 산골짝 작은 우리 집까지 왔다. 2023. 9.4 경북문단 43호 보냄 나의 문학/동시 2023.10.26
비 비 비는 내린다고 하지 흐르는 물은 때대로 거슬러 오르기도 하고 분수처럼 하늘 높이 솟구치기도 하는데 보슬비도 소낙비도 아래로만 내리는 거 보면 비는 바보. 2023.9.1. 나의 문학/동시 2023.10.26
왜 그럴까? 왜 그럴까? 내 동시집 『열무꽃』 서른 권을 나누어 주었어 참가자 모두에게 나에게 사인해 달라는 사람이 없다 동시쓰기 강사님의 책은 미리 사서 기다리다가 줄을 서서 사인을 받는데 강의 도중 퀴즈를 맞히면 주던 강사님의 동시집 연신 고맙다고 허리 굽히며 받는데 이상하다 서른 권이 넘는 내 동시집 『열무꽃』 고맙다는 말 하는 사람도 없다 흔히 시인들은 책을 드리면 고맙다고 자기 책을 보내 주는데 내 책을 드린 강사님 모두 아무도 책을 보내주지 않았다 내 책 정가가 자기 책보다 낮아서 그런가? 책 이름이 촌스러워 그렇겠지 책속의 시들이 시들해서 그렇겠지 아니, 내가 강사 선생이 아니어서 그렇겠지 내 시도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기도 했는데 아 이제 알겠다 공짜로 주어서 그런갑다 다음 화요일 마지막 수업인데 .. 나의 문학/동시 2023.10.26
갈매기 살 갈매기 살 고기를 굽다가 엄마가 말했어 “이건 맛있는 갈매기살이야” 아무리 살펴봐도 갈매기살에 갈매기가 보이지 않고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갈매기 떼만 보였어. 2023.8.5. 나의 문학/동시 2023.10.26
꼭.딱.쯤 꼭·딱·쯤 ‘꼭’ 이라는 말 부담스럽고 ‘딱’ 이라는 말 빈틈이 없는데 ‘쯤’ 이라는 말 넉넉해 “어디쯤 오니?” “다 와 가” “몇 시 쯤 됐니?” “곧 12시네.” 2023.8.4. 나의 문학/동시 2023.10.26
빈집 빈집 전세도 사글세도 걱정 없는 집 마음대로 와서 마음 놓고 산다 아무 곳에나 자리 잡아도 탓하지 않고 문패만 걸면 곁을 내 준다 바랭이, 명아주, 강아지풀, 개망초 이름도 웃기는 애기똥풀도 있다 할머니 계실 대 보다 훨씬 더 많은 식구가 사는 할머니 빈집 2023. 8.3 나의 문학/동시 2023.10.26
개미네 집 개미네 집 개미가 집을 지었다 땅위에 짓기도 힘든데 땅 속에다가 콘크리트도, 철근도 레미콘은 물론 크레인도 없이 땅속으로 1층, 2층, 3층... 층수는 달라도 모두 한 길로 통하도록 지은 집 큰 바람이 불고 오랜 장마가 지났는데 무너졌다는 소식이 없다. 2023. 8.2 나의 문학/동시 2023.10.26
틈 아스팔트 틈 사이로 민들레가 꽃을 피우고 인도 벽돌 사이에도 질경이가 자랐다 야외음악당 마루 옹이구멍에 강아지풀이 솟아올라 꼬리를 흔들었다 모두 다 나 여기 있어요 하고 손을 흔들고 있다 틈이 있어 고맙고 틈이 있어 잘 살고 있다고. 2023. 7.20. 천태산 시화전에 보냄 나의 문학/동시 2023.10.26